컨텐트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44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6/24
    요것들봐라 - 국민행동본부
    흑무
  2. 2009/06/22
    놓아주기
    흑무
  3. 2009/06/22
    남모르게 흘린 땀과 눈물
    흑무
  4. 2009/06/22
    '두번째 일'
    흑무
  5. 2009/06/22
    뿌리를 내릴 때까지
    흑무
  6. 2009/06/22
    젊었을 적의 내 몸은
    흑무
  7. 2009/06/19
    경향 - 동아일보의 경향신문 왜곡 2009.06.19
    흑무
  8. 2009/06/05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김진숙지도위원 편지글)
    흑무
  9. 2009/06/01
    "내가 늘 함께하리라"
    흑무
  10. 2009/06/01
    얼룩말
    흑무

요것들봐라 - 국민행동본부

국민행동본부 "盧 전 대통령 분향소 치웠다"
연합뉴스 | 입력 2009.06.24 09:21 |

 

보수단체인 국민행동본부는 고엽제 전우회와 함께 덕수궁 대한문의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를 없앴다고 24일 밝혔다.

국민행동본부 서정갑 본부장은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국민행동본부 소속 애국기동단 요원 20명과 고엽제 전우회 회원 30명이 오늘 오전 5시40분께 분향소를 치웠다. 노 전 대통령 영정은 훼손하지 않고 따로 보관하고 있으며 오후 2시께 경찰에 넘길 예정이다"고 말했다.


서 본부장은 분향소를 파손한 사람을 재물손괴 혐의로 입건한다는 경찰 방침에 대해 "불법 시설물을 치운 것이라 잘못이 없다. 오히려 해당 시설물을 놔둔 경찰이 직무 유기를 했다"고 반박했다. 
 

--------------  지난 3월에 국민행동본부는 '애국기동대'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좌익세력에 의해 무너진 법치를 세운다', '법치가 무너지고 공권력이 무기력한, 개탄할 상황'  '친북 좌익세력의 척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활동안하나, 싶었는데 요즘 이런 일을 하고 있구나. 

'감히 노대통령님의!!' 뭐 이런것은 아니고,

이들이 우파의 한 축으로, 정권의 수족으로, 맡은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는데 주목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놓아주기

놓아주기


과거나 환상 혹은
부수적인 것에 집착하는 한
새로운 것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놓아줌은 자신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놓아준다는 것은 당신이 기다리는
은총이 올 수 있도록 자신과 인생에
자유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 뤼디거 샤헤의《마음의 자석》중에서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남모르게 흘린 땀과 눈물

남모르게 흘린 땀과 눈물


"얼마 전에 맥이 그러더군.
'꿈을 이룬 사람들의 웃는 얼굴,
그 주름살에 숨어 있는 땀과 눈물의 흔적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지. 맥은 이 말에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더군.
"하나는 '그 사람들이 지금은 웃고 있어서,
편안하게 그 자리에 오른 것처럼 착각하기 쉽지만,
그들이 그 과정에서 겪은 고통은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다'는 거야. 또 하나는
'비록 그들이 꿈을 이루어서 겉보기에는 행복해 보이지만,
그들 역시 우리와 다를 바 없이 남모를 고통과
슬픔을 겪고 있다'고 말이야."


- 스탠 톨러의《행운의 절반 친구》중에서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두번째 일'

'두번째 일'


'두번째 일'을 가져라
나의 본업은 의사이지만,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이
내게는 '두번째 일'에 해당한다. 이것은 취미라고 하기에는
내 인생에 있어 무척 소중한 일이며, 나는 나름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글쓰기에 임한다. 막연히 취미로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확실한 목표를 가지면 더욱 좋다.
인생의 기둥이 두 개가 되는 것이다.
일생을 걸고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생긴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 마음은
풍요로워질 것이다.


- 사이토 시게타의《유쾌한 카리스마》중에서 -

 

----

두번째 일, 까지는 아니고 요즘 들어 테니스를 다시 시작하든,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든, 뭔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뿌리를 내릴 때까지

뿌리를 내릴 때까지


스스로 선택한 곳에서
뿌리를 내릴 때까지 어떤 일이든 지속하십시오.
그런 당신의 성장을 꼭 보고 싶습니다.


- 안젤름 그륀의《머물지 말고 흘러라》중에서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젊었을 적의 내 몸은

젊었을 적의 내 몸은


젊었을 적의 내 몸은
나하고 가장 친하고 만만한 벗이더니
나이 들면서 차차 내 몸은 나에게 삐치기 시작했고,
늘그막의 내 몸은 내가 한평생 모시고 길들여온,
나의 가장 무서운 상전이 되었다.


- 박완서의《호미》중에서 -

 

-------

지금도 조금, 부대끼기 시작했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경향 - 동아일보의 경향신문 왜곡 2009.06.19

[기자메모]동아일보의 경향신문 왜곡

 

동아일보는 19일자 A8면에 <경향신문, 민노총과 구독 확장 ‘거래’>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경향신문과 민주노총이 함께 벌이고 있는 ‘희망릴레이’ 사업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경향신문이 민주노총과 구독 확장을 위한 ‘거래’를 하고 있고, 이로 인해 경향신문은 민주노총을 제대로 비판할 수 없다는 것이 기사의 골자다.

반론에 앞서 ‘희망릴레이 사업’의 내용을 먼저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경향신문과 민주노총은 지난해 3월부터 ‘비정규직 차별 철폐 희망릴레이’라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이 경향신문을 구독할 경우 월 구독료 1만5000원 중 40%인 6000원을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한 기금으로 적립하는 내용이다.

동아일보의 주장대로 ‘희망릴레이’ 사업이 저널리즘의 원칙에 반하는 불순한 ‘거래’인지 따져보려면 세 가지 기준이 필요하다.

첫째 사업의 불법성 여부다. 현행 신문고시는 월 구독료의 20% 이상을 경품으로 제공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개인 독자에게만 적용된다. 경향신문은 “개인이 아닌 단체의 경우 경품 관련 조항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신문협회의 유권해석을 얻었다. 동아일보 서울 지국 30곳 전체가 무가지와 경품을 제공해 구독자를 늘린 것은 ‘불법’이지만, 경향신문의 ‘희망릴레이’는 ‘합법’이다.

둘째, 사업의 윤리적 하자 문제다. ‘희망릴레이’는 월 구독료의 40%를 ‘비정규직 차별 철폐 기금’으로 적립하도록 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민주노총 조합원의 관심도를 높이고, 그와 연계해 경향신문 독자 수도 늘리겠다는 취지다. 적어도 상품권·현금·시계·선풍기·전화기 등을 제공해 독자를 모으는 행태보다는 윤리적으로 떳떳하다.

셋째, ‘희망릴레이’가 민주노총과 관련된 경향신문의 논조에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다. 동아일보는 소위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민주노총 기관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중앙 정부부처로부터 수주받은 광고액이 전년 대비 432% 증가한 동아일보가 정부의 기관지로 전락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희망릴레이’는 경향신문의 논조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민주노총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어느 매체보다 비판해온 언론이 경향이다.

이는 올 들어 보도된 경향신문의 노동기사 목록만 검색해봐도 알 수 있다. 민주노총 간부의 성폭력 사건은 경향신문의 보도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이로 인해 이석행 집행부가 총사퇴하는 등 민주노총은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민주노총은 경향신문에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보도 내용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이 밖에 ‘민주노조운동 20년, 위기의 민주노총’ 등 민주노총의 문제점을 진단하는 기획 기사도 여럿이다.

끝으로 기사의 사소한 오류도 몇 개 짚어주고 싶다. 동아일보는 ‘희망릴레이’ 사업이 마치 최근에 알려진 것처럼 ‘나타났다’고 보도했는데, 이 사업은 지난해 3월 민주노총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진행됐다. 어지간한 노동부 출입 기자들은 ‘1년 전부터’ 알고 있던 내용이다.

또 동아일보는 경향신문 사업 담당자인 ‘판매국 김주희 차장’의 발언을 인용했다. 기사에 따르면 김 차장은 “경향신문과 민주노총은 전적으로 비정규직 차별 철폐 기금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사업을 시작한 것… 기금도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만 국한해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독자서비스국 김주이 차장’을 ‘판매국 김주희 차장’으로 오기한 것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문제는 김 차장이 기사에 인용된 발언을 전혀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김 차장은 동아일보 기자의 질문에 “내가 답을 해야 할 의무도 책임도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동아일보의 해명을 기대한다.

<정제혁 사회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김진숙지도위원 편지글)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김진숙지도위원 편지글) (2009/06/03 12:26)
 
집회도 없고 수련회도 없는 휴일은 외려 잠이 일찍 깨요.
아무 일도 없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언제부터 저는 평화가 실감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걸까요.
아무 일도 없는 이상한 토요일.
아니나 다를까. 텔레비전 화면에 뉴스속보가 뜨는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 뇌출혈로 입원”
검찰조사가 시작되면 입원으로 시작해서 휠체어나 마스크가 구명보트처럼 등장하는 꼴을 늘 봐오긴 했습니다만
당신은 그런 쇼를 할 사람은 아닌지라 스트레스가 어지간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10여분 후 “노무현 전대통령 사망한 듯”이라는 자막이 뜨고 그제서야 뒹굴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날이 일구 우일구하기 여념없는 시시껍절한 방송이 중단되고 속보가 이어지더군요.
경호원, 사저뒤편, 부엉이 바위, 세영병원, 양산부산대병원, 심폐소생술, 열상 따위의 일상과 밀접하지 않은
단어들이 바퀴벌레처럼 툭툭 튀어나와 소름을 돋게 했습니다.
정신적 공황상태까진 아니었지만 불면 탓으로 약간 멍한 채로 이틀을 보냈고 월요일 아침 부산역까지 가긴 했으나 조문은 못하고 역 광장을 몇 바퀴 빙빙 돌다 왔습니다.
선뜻 신발을 벗고 절을 하는 문상객들의 거리낌없는 몸놀림이 참 부럽다고 생각하며.
잠이 안오대요.
다음 날 다시 부산역엘 갔습니다.
역 광장을 또 빙빙 돌다가 그냥 돌아가면 다시 닥칠 불면의 밤이 성가셔
문상객들의 뒤에 얼른 붙어 섰습니다.
방명록에 몇 줄 쓰기도 했습니다. 잠을 자야하니까.
“오랜 세월 동지였고 짧은 시간 적이었습니다.
90년 변호사 접견 오셨을 때처럼
봉하마을 어딘가에 앉아 각자의 위치가 만들어 낸
그동안의 원망과 미움들을 두런두런 털어낼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곧..
고맙고 죄송합니다.“
 
90년. 제가 첫 징역을 살 때였습니다.
접견을 오셨었지요.
보통 변호사 접견은 재판 전날 와서(사실 재판 전날도 안 오는 변호사도 많습디다만)
재판절차를 일러주고 이빨도 맞추고 하는데 재판날짜와는 아무 상관없는 시기였던지라
많이 의아했던 만큼 20년 전인데도 이리 생생하네요.
접견실에 먼저 오셔서 기다리시더군요.
보통은 재소자들이 한 시간 이상씩 주리를 틀면서 기다리는데.
요샌 교도소 반찬이 뭐가 나오냔 얘기, 여사에선 뭐하고 노냐는 얘기, 변호사가 해주던 징역살이 얘기, 남사에선 뭐하고 논다는 얘기,
법무부 시계도 가니까 재밌는 놀이를 많이 개발해서 징역을 잘 깨라는 얘기.
변호사가 접견을 와선 재판이야긴 한마디도 없이 노닥거리기만 하다 그 더디기로 유명한 법무부시계가 세상에 한 시간이나 흘렀습니다.
 
“가야겠네” 일어서시길래 하도 황당해서 물었습니다.
“왜 오셨어요?”
“진숙씨 징역살이 힘들까봐 놀아 줄라고 왔지요”
 
그리고 당신은 정치권으로 갔고,
정치권으로 갔다는 건 권력을 탐하는 변절로 규정하는데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으니
변호사비용을 거침없이 떼먹고도 사기꾼의 돈을 떼먹은 것 마냥 일말의 부채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복직하면 갚으마. 유전 발견하면 갚으마. 보물선 찾는대로 갚으마. 막연한 약속이 선임비였던 시절이었으니.
그게 인권변호사의 당연한 책무였으니.
이제와 생각해보니 상실감이었어요.
 
그 시절 당신은 우리들의 유일한 빽이었는데.
공돌이 공순이 편을 들어주는 가장 직책 높은 사람이었는데.
당신이 있어 우린 수갑을 차고도 당당할 수 있었는데.
그때 직감적으로 생각했어요.
이제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겠구나.
재판장 앞에서 수갑을 찬 채 잔뜩 주눅 든 우리를 향해, “피고인은 무죕니다.”
외쳐 줄 사람이 이젠 없겠구나.
이제 재판에서 지더라도 찾아가 울 데도 없겠구나.
노동자들이 그들의 부엉이바위인 크레인 위에 올라갈 때 따라 올라가지도 않겠구나.
 
그리고 당신을 잊었습니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없어서 혼자 진행했던 1심 재판에서 당연히 지고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왜 항소를 안했어요?” 라는 질문에 “항소가 뭔데요?” 라고 되묻던 저에게
“노동자가 항소를 알면 그건 노동자가 아니지.” 하던 말도 잊었고,
노동자도 이론이 있어야 세상을 바꾼다며 함께 했던 소모임도 잊었고,
군사정권 시절 해고된 노동자의 그 막막한 눈빛을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유일하게 내 얘기를 그대로 들어주던 무료법률 상담소도 잊었고,
어느 날은 밤에 오라 길래 밤에 찾아갔더니 그날이 전태일이라는 노동자의 기일이라고
변호사 사무실 구석에 조촐한 제상을 차려놓고 아무 말도 없이 유령들처럼 절을 하던
그 뭉클하던 밤도 잊었고,
함께 같은 거리를 달리던 6월 항쟁도 잊었고,
최루탄 가루가 싸락눈처럼 내린 범냇골 국민운동본부 옥상에서 막걸리를 나누던 걸판지던 뒤풀이도 잊었습니다.
 
그리고 침례병원이 초량에 있을 때였습니다.
 
노동조합 조합원 교육에 초청을 받았는데 앞 시간 강사가 당신이었더군요.
당신은 내려오고 나는 올라가던 계단에서 마주쳤습니다.
난 참 어색하기가 짝이 없습디다.
그냥 모른 척 할라고 했습니다만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지요?”
굳이 손까지 내미시더군요.
그때 대답을 했거나 웃기라도 좀 했으면 지금 잠을 이루기가 좀 쉬었을까요.
 
그리고 당신이 출마한 대선에서 전 4번을 찍었습니다.
단 한 번도 단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외포리를 한번도 벗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평생 1번을 벗어난 적이 없는
큰언니가 전화를 했더군요.
“이 노무헤니가 그 노무헤니지? 니 벤호사. 그 사람 찍었다. 너 인쟈 깜빵 안가지? 복직두 되갓지?” 얼른 대답할 말이 떠오르질 않더군요.
 
제가 왜 “내 변호사”를 놔두고 4번을 찍었는지 우리 큰언닌 죽을 때까지 이해 못할 거예요.
2번과 4번의 극심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도 이리 막막한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그 미세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은 저의 재주로는 난망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뻐서 우는 사람도 있습디다만 이회차이가 당선된 거보다 노무혀이가 당선된 게 노동자들에게는 더 힘들 거라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고립은 깊어졌고 고착화되었습니다.
김영삼이가 당선되었을 때 운동권이 1/3이 떨어져 나갔고, DJ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른바 재야가 사라졌고,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서는 그야말로 오롯이 노동자들만 남았습니다.
한 사업장에서 수천 명이 한꺼번에 해고될 때 그 무지막지한 자본을 향해 호통쳐주는 어른 하나 없습디다.
노동자들이 핏발 선 눈으로 거리로 나설 때 역성들어주기는커녕 죄 우리만 나무랍디다.
그거 아세요. 당신은 조중동이랑 열심히 싸우셨습니다만 우리에겐 조중동이랑 한편처럼 보인 거.
 
 “야~ 기분좋다!” 시며 봉하로 가셨을 때 오리농법보다 더 중요한 일은 농민들의 삶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왜 목숨 걸고 한미 FTA를 반대했는지.
그리고 전용철, 홍덕표 그들의 죽음에 당신이 늦게나마 사과를 하면 참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랬다면 제가 봉하마을을 갔을까요. 아마 갔겠지요.
그리고.. 김 주익 얘기도 했을까요. 아마 그 얘긴 못했을 거예요.
말로 꺼내긴 크나큰 상처였으니까.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 말씀.
유난히 노동자들에겐 가혹하셨습니다.
2003년도 한진중공업에서 저는 한꺼번에 두 명의 지기이자 동지를 잃었습니다.
김 주익은 600여명 조합원의 명퇴에 맞서 2년을 싸웠고 노사가 합의를 했고
그 합의를 회사가 번복을 했고 그래서 크레인에 올라갔고 그 크레인 위에 129일을 매달려 있다가
아시다시피 목을 맸습니다.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 시대는 정말 지났을까요.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에게 종종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조각인 것을..
 
저는 당신을 부정한 게 아니라 당신을 넘어서고 싶었습니다.
착한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지배가 없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시대에 그 꿈은 가장 허황되고 지리멸렬해졌습니다.
때론 우리가 품은 꿈이 너무 초라했고 궁색했습니다.
당신의 시대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짤렸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구속됐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됐고
그리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으로 격상됐고 그들은 언론과 자본은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조차 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이기주의를 꾸짖으십디다만 동료가 수백 명씩 짤리는 걸 목격한 노동자가 비정규직에게 내밀 손이 남아 있겠습니까.
저 살아남는데 써야지.
 
징역을 살 때 만난 사형수가 있었어요. 이 여잔 영치금이 한 푼도 없는 개털이었는데
새로 신입이 들어오면 아주 불쌍한 표정으로 샴푸나 속옷을 사달라는 거예요.
출소한 사람들이 쓰다만 물건들도 다 그 여자 차지였죠.
언제 죽을지 모를 사람이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는 게 도덕의 눈으로 보자면 참 추접스럽습디다.
그 여자 집행되고 보니 샴푸나 속옷 나부랭이가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옵디다.
백분의 일도 못쓰고 죽었죠. 생에 대한 나름의 집착이었던 거죠.
샴푸 생길 때마다 빌었겠죠. 이거 다 쓰고 죽자.
정규직 노동자들은 삶의 벼랑에서 그런 심정으로 잔업하고 철야를 합니다.
얼마가 남았을지 모를 정규직의 삶을 그딴 식으로 저축하면서.
그 무렵쯤이었을 거예요.
변호사비용을 이제 그만 갚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당신의 시혜나 은전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적이 될 거라면 호적수이고 싶었습니다.
실력도 한참 모자라고 열정도 전만 못하고 진정성마저 잃어 그리 되진 못했습니다.
그게 참 부끄러워요.
똑똑한 사람들은 다 떠나 우리를 속속들이 아는 가장 무서운 적이 되었고 남은 자들은 동네북이 되어
초딩들마저 두들겨대고 천덕꾸러기가 되어 크레인엘 올라가고 굴뚝엘 기어 올라가도 언놈 하나 눈길주는 놈이 없어졌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고등학교 밖에 못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입 달린 사람은 죄다 침이 마릅디다만
고등학교도 못나온 저 같은 노동자들은 당신의 시대에 대부분 절감해야 할 원가가 되어
구조조정 당했고 효율화를 위해 비정규직이 됐습니다.
차라리 군사독재 시절엔 대드는 노동자만 짤렸으나 당신의 시대엔 남녀노소가 짤렸습니다.
서민의 벗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부자와 빈자의 간극은 훨씬 더 까마득해졌습니다.
당신이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24년의 세월 동안 전 아직 복직도 못한 해고노동자로 찌질한 50대가 됐습니다.
생각해보니 짧은 시간 동지였고 오랜 세월 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뜨겁고 바른.
만고 씰데없는 소립디다만 그래서 대통령 같은 거 하지 말았으면 참 좋았겠단 생각
지금도 해요.
 
불안하고 불길한 기운으로 떠돌던 예감이 당신의 죽음으로 확연해집니다.
한 시대가 갔다는..
 
이제 상고출신이 변호사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양양한 가도가 보이고 그 길을 편하게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의 있습니다!”
외칠 때, 그 외침에 뒤돌아보는 사람도 이제 더는 없을지도 몰라요.
 
만 명이 울어주면 천국에 간다했던가요.
천국에 가셨을 거라 믿어요. 진심으로.
김주익 곽재규 배달호 김동윤 최복남 이용석 이해남 이현중 정해진 하중근 박수일 허세욱..
당신의 시대에, 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서러움으로 억울함으로 목 놓아 울었던
죽음들입니다.
 
당신처럼 벼랑 끝에 내몰렸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죽음을 당신이 이해해주길 바란 적이 있었어요.
하도 야속해서. 노동자의 삶을 안다는 사람이 어찌 저럴 수가 있나 너무 미워서.
아무리 야속하고 미워도 그런 바람은 품지 말걸 그랬다 싶어요.
애증도 부질없어 졌습니다.
 
언젠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말들이 기형도의 시처럼
떠돌다 때때로 부딪히겠지요.
이제 변호사비용은 영원히 안 갚아도 되게 생겼습니다.
  
다음 생에 오실 땐, 너무 똑똑하게 오지 마시구려.
사법시험 같은 것도 합격하지 마시구요. 그냥 태생대로 기름밥 먹는 노동자로 만났으면 해요.
저는 당신에게 변절이라 손가락질 할 일 없이, 당신은 절더러 경직되었다거니 세상을
모른다거니 한심해 할 일 없이. 떠날 일도 보낼 일도 없이 그냥 내내 동지로.
그래서 언젠가 하셨던 말씀대로 자본가가 지는 해라면 노동자는 뜨는 해다.
그 멋진 말씀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순수한 열정, 남다른 정의감 그대로 만날 수 있길.
다시는 미워할 일도 상처 받을 일도 이렇게 미어질 일도 없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quot;내가 늘 함께하리라&quot;

"내가 늘 함께하리라"


슬픔에서 벗어나고자
홀로 애쓰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너와 늘 함께하리라"는 말에서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슬퍼하라. 하지만 소망이 없는 사람처럼 슬퍼하지는 마라.
슬퍼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슬퍼하라."
현실을 받아들이려 노력할 때 현실은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마음 한구석에 희망이
다시금 자리 잡습니다.


- 그랜저 웨스트버그의《굿바이 슬픔》중에서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얼룩말

얼룩말


천등산 끝자락에서
가서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린다

박하 향기 아득한 시간의 터널 지나
푸른 기적 달고 숨가삐 달려 와서
내 생의 한복판 관통해 간
스무 살의 아름다운 기차여!


- 정하빈의《비, 혹은 얼룩말》중 '첫사랑'(전문)에서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