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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역사....

눈 앞에 닥친 일에도 불구하고... .정말 무언가 쓰지 않을 수 없는 날이다.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에 보면 1960년대말-70년대 초, 미국은 두 개의 전선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베트남 민중들과의 전선, 하나는 국내 흑인 민권운동과의 전선....

흔히, 대학에서,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반전운동이 일어났다고 알고 있지만 가장 큰 반대는 민중들, 특히 남부의 가난한 흑인들 사이에 컸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군대에 끌려가서 자신과 별로 다를바 없는 베트남 민중을 향해 총구를 겨눠야 했고, 그러지 않아도 힘든 그들의 살림살이가 전쟁 때문에 더 황폐해지고 있었으니까...

 

이번 주에 벌어진 전대미문의 태풍 피해를 보면서 어쩌면 30년 전과 너무도 비슷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911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연방 비상사태 관리청(? FEMA)에서는 3가지 가상의 최악 시나리오를 가정했단다. 뉴욕시에 대한 테러리스트 공격, 샌프란시스코의 지진, 뉴올리언즈의 태풍.... 그 중 하나가 이번에 발생한 거다. 나같은 사람이야 뭐 알 수가 없는 일이었지만, 미국의 알만한 사람들은 익히 짐작하고 예상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는 것.

 

태풍 때문에 막대한 수해를 입었다. 전기도 끊기고...

여기까지는 익히 보아온 수해 상황이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도저히 상상불가능한 수준이다.

사건이 발생한지 5일이 지났다.

시체가 강물 (원래는 도로였겠지)에 둥둥 떠다니고, 인접한 피난민 캠프로 가려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배고픔과 더위에 지쳐 쓰러져 있다. (뉴올리언즈, 섭씨 35도는 보통이다). 슈퍼마켓은 약탈 당하고, 군인들은 실탄을 장전한 채 거리에 나섰다.

마실 물이 없다고, 먹을 것이 없다고, 가족을 잃었다고 울부짖는 주민의 목소리는 물론, 뉴스 리포터의 목소리에도 날 것의 분노가 그대로 묻어나 있다. "여기는 이라크도 아니고, 소말리아도 아닙니다. 미국입니다!"

연방 지원 물자와 군인들이 오늘에야 도착했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건가...

 

FEMA 디렉터는, 시가 태풍 전에 대피령을 내렸는데도 이를 따르지 않은 사람들을 비난했다. 오늘 뉴욕 타임즈 기사를 보면, 사실 피난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한국이 건설족을 위해 설계된 나라라면 미국은 자동차족을 위해 설계된 나라... 웬만한 곳에서는 차가 없으면 슈퍼마켓 가기도 힘들다. 지난 토/일 뉴스에 고속도로를 가득 매운 피난 차량들 속에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의 자리는 없었던 것이다. 차가 없는 사람들.... 그들이 남기로 "선택"했고, 위험을 자초(!)한 것이다.

 

배가 고파서, 더위에 지쳐서, 엄청난 사건에 절망해서 그야말로 사람들 눈이 뒤집혔다. 상점들이 털리고 그야말로 무정부 상태란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참사라는데, 구호물자가 도착하기 전에 그 상점에 있는 물건들을 그냥 나눠주면 안 되나? 꼭 군인을 동원해서 총질을 해야 하나? 사람 목숨보다 재산이 그렇게도 중요한가?

루이지애나 주지사의 경고는 섬뜩하기 그지 없다. 방위군이 실탄을 장전했고, 발포명령이 떨어졌단다. 이들은 이라크전에서 단련된 용사들이란다. 함부로 약탈하면 총맞을 거라구 경고를 날렸다.... 아..... 물난리에서 겨우 살아남았는데 슈퍼마켓에서 도둑질하다가 방위군 총맞아 죽게 생긴 미국 사람들....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알라바마는 미국 내에서도 가장 가난한 주들에 속해 있고, 특히 이번 수해가 집중된 지역의 주민들은 대개 흑인들, 그것도 빈곤층들이다. 수해 복구에 나설수 있는 루이지애나 주 방위군의 상당수는 이미 이라크에 가 있고, 수해에 대처할 장비도 이라크전 때문에 부족하단다. 전세계 어디든 하루 안에 출동하는 자랑스러운 미군... 코 앞의 루이지애나에 도착하는데 사흘이 걸렸다. 도대체 그동안 돈 쏟아부으면서 국가안보, 응급상황 대비를 노래부르더니 뭘 했다는 건가?????? 나같은 이방인도 열받아서 도저히 흥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세상사가 모두 그렇듯 재해도 결코 공평하게 발생하지 않는다. 그동안 미국사회에서 인종차별은 있어도 없는 듯, 대놓고 말하기 어려워하는 일종의  금기였던데 비해 이번 사건을 두고 CNN 같은 반동 뉴스에서도 공공연히 인종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화면에 나오는 희생자가 모두 흑인인데, 울부짖은 남녀노소가 모두 흑인인데 어떻게 눈치채지 않을 수 있나... 사람들은 "사회 불평등이란 이런 것이다"를 아주 생생하게, 머리가 아닌 심장으로 배우고 있다.

 

이라크에서, 루이지애나에서, 안팎으로 높아져가는 이 긴장을 미국 지배계층은 어떻게 해소해나가려는 것일까?

 

 

* 사족...

미국인들의  기부, 그야말로 물밀듯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FEMA 가 공시한 정부 공식 자선단체 목록에 첫번째로 적십자 (당연하다)가 올라있고, 네 번째에 Operation Blessing 이 올라있다. 이 단체가 무엇이냐. 얼마 전에 베네수엘라 차베스 암살하자는 겁대가리 없는 발언을 했던 그 꼴통 광신도가 이끄는 우익 종교단체란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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