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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기사
http://spp.seoul.go.kr/main/news/news_report.jsp?search_boardId=2391&act=VIEW&boardId=2391
그제부터 티비와 신문으로 해방촌 주민들 이면 알고 있던 일이 점점 현실화 되어 가는듯 하다.
환경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업적이나 상업적인 목적으로 쓰이는것을 보아 왔었지만 이제 그것이 이곳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것일까..
현재의 계획구역에서 빈집1,2,3,4 모두 녹치축의 개발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나 음악방은 간신히 들어가 있다..ㅋㅋ
오늘 지도를 보면서 유심히 본결과 구획안에 들어가 있는걸 확인했다.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될것인지
모르겠지만.. 2012년 착공하여 2015년 완공으로 보고 있으며 구역내 해방촌 이주민들은 후암동의 개발제한
구역을 풀어서 주거밀도를 높인후 이주 시키는 방법을 구상하는듯 하다.
mb시장때 부터 계획이 있었던것이 조용히 있다가 요새와서 발표를 하는걸 보니..요새 O시장의 전략이 아닐
까 ...
해방촌의 가장 번화가인 오거리에서 해방교회를 지나는길은 가장 중심인데 녹지축이 그곳을 관통하게 되면
"돼지목의 진주목걸이" 같은 꼴일 것이다.
명품 도시 서울은 점점 자본화 되고 시민들은 그 자본에 허덕이게 되고 조금씩 밀려난다..
문명과 세련됨에 조금씩 도태 되고 있다..
그리고....
내일 음악방 합니다..ㅋㅋ
5월 9일 4번째집의 집들이에 초대합니다.
7시부터 -
필요한 게 (먹을 게 ㅎㅎ 쌀이나 술???)
집에서 밥을 먹고 (실험적 막걸리포함) 놀다가 나중에 남산에 후암약수터로 옮길 예정은 있어요.
무료시장이 생길 가능성은 높아요-
악기도 가면 좋지요~
오시는 길
4호선 숙대입구역이나 1호선 남영역에서 마을 합승차(bus)를 타거나
또는 남산의 둘레를 도는 소월길로써 (402번, 0014.4012번 시내합승차) 오시려면:
(숙대입구역에서 마을 합승차를 타는 것보다 걷는 것은 빨를 같습니다)
숙대입구역 5번출구 또는 남영역 1번출구에서 마을 합승차 2번을 타고 해방촌 오거리에 내리세요.
또는 시내 합승차를 타시고 남산 소월길에 있는 보성여고 정차장에 내려서 용산2가동사무소로 내려서 해방촌 오거리에 도착하세요.
해방촌 오거리에는 남산을 직면하면 왼쪽의 길로 오세요. 거리의 모퉁이에 과일 가계가 있어요 (아마도 저녁에 문이 닫아서 못 볼 거에요).
한 이백 미터 걸어서 남산마트가 보여요. 이 마트를 지나시고 왼쪽의 제이 개단으로 내려요세요.
한 백 미터 내려서 오른쪽에 우리의 집의 주황색 작은 담과 (깨진)문이 보일 거에요. 거기에서 옥상만 보여요. 문으로 들어오신 다음에 개단을 내리세요. 우리 집입니다.
집을 찾기 힘드면 이무기(제프)에게 연락하셈~ 010-9871-9941
아래 #1은 모임제안 글(펌), #2는 모임이 꾸려지게 된 배경(펌)
#1.
티피 제작비가 총 예산의 3분지2정도를 차지할 것 같네요.
나머지는 크게 비용 들어 갈 것이 없고, 있다면 주님 정도?
요것에 대해선 기획 워크샵에서 이야기 해 보죠.
#2.
이 모임은 '생명평화 활동가 대회'의 후속 모임으로 준비되고 있습니다.
생명평화 활동가 대회는 2004. 2005. 2006년 개최되었던 '생명문화포럼'의 현장 활동가 모임으로 두번째 진행되었지요.
생명문화포럼은 음..
궁금 하신 분들은 -> 요 링크로 할려 했건만 홈페이지가 사라져 버렸네요. ;;
간략히 설명하면 우리 시대 진보적 담론을 만들어 냈던 노인네들과 학자들이 모여서 왁자지껄 했던 포럼이지요. ㅎ
암튼 그 포럼을 계기로 생명이라는 단어가 회자되기 시작했고
생명평화결사의 도법스님 빼밀리가 5년 순례를 하면서 '생명' '평화'라는 단어가 쉬이 쓰일 수 있게 된 것 같네요.
아직도 생명과 평화라는 개념이 몇몇 단체의 운동적 개념이라 오해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나로부터의 생명과 평화. 그것이 곧 사회 운동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기도 한답니다.
이러이러 해서 그런 활동을 나부터든 어느 단체에서든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을 '생명평화 활동가 대회'라 이름 붙였구요.
요번 대회에서 깨는 발언들이 나온것이
그래서 거기 젊은 친구들이 어디 있는 것이냐. 였습니다.
이 초 감각적인 다음 세대들을
여전히 구시대적인 담론을 나누는 형식의 장에서 만나려고 하는 것이냐.!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감각으로
시대의 청년들과 만나보자.
해서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
위의 모임이구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아서 무한팽창이 가능한 열린 모임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 관심있는 누구나 참여하세요.
계절의 여왕 5월이 왔군요..
5월에도 푸르고 밝은 음악방이 되길 바라면서..
*수업 일정: 4화음과 7th 코드 , 펜타토닉 스케일 등등..
* 응용곡: 신중현의 미인 , 송골매의 세상만사 등등
배우는분들에게 어려운곡 이겠지만 재미를 위해서..
시간 역시 오후 8시 입니다..
위치와 연락처는 전의 포스트를 참조하십시요
'척추에 침 맞을래?'
워워워.. 고개 저으며, 절친이라는 애들도, 세상 하나뿐인 혈육도, 누구하나 선뜻 등을 내주질 않네.
아무래도 그동안 잘못 살아왔나봐, 이렇게 믿음들이 없어서야. -_-
초짜에게 주저없이 침을 찌르게 해준 공x 같은 대범하고 자애로운 사람은 정녕 없는 걸까요?
(※ 3분 지압 덤으로 제공. 척추에 침 맞을 사람구함. 리플 플리즈..)
노동절+촛불+지리산+빈농사 땡땡이
내일은 노동절, 벌써 촛불 1주년인데, 서울을 뜰래니 맘이 좀 무겁지만, 그래도 지리산 갑니다.
그래서 지선결혼축하도 마음으로만, 빈농사 잡초도 마음으로만 뽑을 밖에.
오랫만에 산길도 좀 걷고, 수제녹차 만드는 데서 좀 비비다 올까해요.
그동안 빈집이여, 안녕-
ㄼ
여행 자료 정리하다가, 크리스티아니아 홈페이지에서 자전거 링크된 게 있길래 몇 자 적습니다.
전에 지음이 크리스티아니아 자전거에 대해 물었던 게 생각나서...
http://www.christianiabikes.dk/gml/galleri.htm
그럼 담에 또 봐용~
안녕요.
어제밤 옆집 마루에 쓰러졌던 살림이에요.
몽중 취재를 마치고 오늘 글이 나왔어요. (사실 지난번 글에서 살짝 보태고 약간 수정한거임 켁)
# 아직 교정보지 않은 글이라 내용만 확인해주셔요.
(뒤에 사진설명도 있는데 것도 확인부탁드려요)
# 글 끄트머리에 지각생이 '진보복덕방'에 쓴 글 가운데 일부를 따옴표로 옮겨 왔는데 허락을 구할게요.
지각생~ 괜찮아요?
# 또 들어갈 사진을 빈집 갤러리에서 퍼왔어요.
이것도 허락을 구해요....
알던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것은 참 고역이지요.
이것도 일종의 착취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상대방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잘 안 들리고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에만 목매달고....
그러다 보면,
결국 사람은 보이지 않고
사건만 남게 되는...
뭐 그런 절망감...
빈집 식구들.......
미안하고, 고마워요 ㅠㅠ
-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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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5_특집_공동체 가족
새로 쓰는 가족 이야기(가제)
글 민균
저녁밥상에 둘러앉은 이들 사이에 말이 없다. 짝이 맞지 않아 어색하게 밥그릇에 부딪히는 젓가락질 소리와 들어주는 이가 없어도 말 잘하는 거실 텔레비전 소리만 들릴 뿐. 식사가 끝난 뒤 아들은 책상, 엄마는 싱크대, 딸은 컴퓨터, 아빠는 텔레비전을 차지하러 서둘러 흩어졌다. 혈연으로 묶여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집에 살지만 이들 사이엔 무언가 빠져 있는 것만 같다. 가족을 가족이라 부를 수 있기 위한 그 무엇. 평범한 가족이 잃어버린, 가족을 가족답게 하는 관계의 뿌리는 오히려 평범하지 않은 가족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가족의 탄생 - 빈집
집 쓰임에 대한 혁명을 꿈꾸는 곳이 있다. 서울 남산 아래 2호 터널과 3호 터널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빈집’. 최소한의 공간분담금만 내면 누구나 와서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으며 각자가 꿈꾸는 상상을 펼칠 수 있는 곳. 처음 이 공간에 대한 꿈은 ‘손님들의 집’이었지만 머무는 사람들이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빈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들고 남이 자유롭고, 비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와서 자신의 꿈으로 채울 수 있는 공간을 상상했어요.” 지난해 2월 빈집이 처음 생길 때부터 함께해 온 아규 님은 정해진 주인이 없고 함께 사는 동안 뭔가를 생산할 수 있는 즐거운 공간을 꿈꿨다.
공간 형태에 따라 삶의 양식이 결정된다고 했던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빈집의 독특한 구조는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왔다. 처음 세 명이서 시작한 빈집은 이제 스무 명이 넘는 대가족이 되었고, 공간도 네 곳으로 늘어났다. 스스로를 ‘장기투숙객’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저마다 이곳으로 들어온 이유도 다양하다. 그저 생활비를 조금 줄여볼까 하는 생각에 찾아온 사람부터 공동체에 대한 꿈을 안고 온 사람, 자전거 타다가 우연히 동네에서 만난 사람, 친구 따라 놀러왔다가 눌러 앉은 사람까지.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한 사람들은 빈집에 저마다 자신들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서로 다른 삶의 무늬들이 한곳에 모이고 엮이면서 이야기는 더욱 풍성하고 다채로워진다. 그렇게 쌓인 이야기들은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바탕과 힘이 된다.
꿈을 꾸는 주체
흔히 대도시에서 집이란 여러 채 가진 이들에게는 사고파는 물건쯤으로 여겨지고, 없는 이들에게는 소유욕이 투영된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장기투숙객 지음 님은 한집을 함께 나눠 쓴다는 것 자체가 빈집의 가장 중심 활동이라고 소개한다. “대개 젊은 맞벌이 부부 둘이 사는 집은 잠만 자는 곳이에요. 사실 그 살림살이면 예닐곱 명은 거뜬히 살 수 있거든요.” 함께 살면 단순히 각자 드는 생활비가 줄어드는 것뿐만 아니라 따로 살았더라면 불필요하게 들었을 소비까지 줄일 수 있다. 하루 가운데 대부분을 집밖 일터에서 보내는 맞벌이 가정이 어쩌면 정말 ‘빈’ 집인지도 모른다.
일터와 삶터가 분리된 현대사회에서 단지 소비 집단으로 전락한 가족공동체가 무언가를 생산할 수 있다는 꿈은 발칙한 도전처럼 보인다. 하지만 빈집에서는 오래 전 삶터 밖으로 밀려난 일들을 하나씩 되찾아오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자본에 매인 노동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가난하게 살면서 밖에서 소비하는 것을 줄이고 그 대신 빈집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늘려가려고 해요.”
우선, 먹을거리를 스스로 챙기기 위해 옥상에 텃밭상자를 마련하고, 도봉산 아래 주말농장을 꾸준히 다녔다. 지렁이를 키워 음식물 쓰레기를 거름으로 다시 쓰고, 설거지물은 모았다가 변기에 쓰는 물로 재활용해 작지만 빈집 안에서 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메주를 띄워 직접 장을 담그고, 텃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반찬을 준비한다. 필요한 살림살이는 목공교실을 열어 스스로 만들어 쓰거나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버려진 물건 가운데 쓸 만한 것을 가져와 고쳐 쓴다.
집밖을 나서면 돈을 주고 손쉽게 살 수 있는 것들이지만 빈집 식구들은 집에서 함께 만들어가며 활동으로 풀어낸다. 주변 친구들은 한 달에 3백만 원은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빈집 식구들은 적게 벌고 덜 쓴다. 대신 남는 시간을 이용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간다. “빈집의 가장 큰 매력은 날마다 새로운 일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저마다 소질과 특기도 제각각이라 배울 것도 많고, 늘 새로운 것을 해볼 수 있어요.” 어떤 이는 이런 빈집을 두고 ‘빈말이 현실이 되는 곳’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머릿속으로는 생각하지만, 아무나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일들. 빈집에서는 누군가 제안하면 서로 거기에 힘을 실어주며, 처음해보는 일이라도 일단 부딪히면서 길을 만들어간다.
새로운 관계를 세우는 시간과 공간
혈연과 결혼으로 묶일 수 없는 사람들이 함께 살다 보면 다양한 순간들을 마주한다. 지난해 가을부터 빈집에 살기 시작한 말랴 님은 크고 작은 일과 어려움도 많았던 지난 기억을 떠올렸다. “함께 쓰는 공간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딸려오고, 저마다 다른 생활방식과 습관은 예기치 않은 문제를 던져주기도 해요.” 빈집이 네 곳으로 늘어나면서 공간마다 규칙이 조금씩 다르고 식구들마다 처한 상황이 달라 혼자 속앓이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혼자 살던 것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날마다 겪어야 하는 새로운 관계와 상황이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 장기투숙객 지각생 님은 어긋난 관계를 바로 세우는 해답은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모두 불완전하고 약한 존재예요. 더구나 현실은 사람들을 더 작아지게 하죠. 그래서 약한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 기대고 지탱해주며 살 수 밖에 없어요.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꿈과 열망이 서로 충분히 섞일 수 있는 시간과 그 시간을 담아낼 공간, 그리고 서로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가족의 확장 -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
북한산 자락 인수동에 자리한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에서는 점심마다 ‘마을밥상’을 차린다.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방과후배움터에 모여 마을 사람들이 점심을 함께하며 도란도란 삶을 나눈다. 12시가 조금 넘자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한 사람들이 어느새 열네 명이 되었다. 마을신문 기자부터 마을학교 교사, 마을서원 운영자, 지역단체 활동가, 마을주민들까지 모두 마을에 살고 마을 공동체에서 일하는 이들이다. 태백으로 들살이 간 아이들 이야기와 새로 문을 연 마을서원 이야기, 건넛집으로 이사 온 이웃들 이야기로 점심밥상이 풍성해진다.
이곳 인수동에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가 들어선 것은 2004년이지만 그 시작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다. 출발은 1991년 총신대 신학생들의 모임 ‘새날을 여는 사람들’. “대학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 생기는 문제와 공동체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했어요. 배운 것을 공동체 삶 속에서 몸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곳까지 흘러들어왔어요.” 공동체의 크고 작은 일을 조율하는 생명평화연대 김종성 님(34세)은 그렇게 조금씩 찾아든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공동체도 함께 커왔다고 들려준다. 이미 있던 마을 주민들도 함께하고, 멀리서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이들도 한 데 어우러져 지금은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느슨하면서도 촘촘한 관계
생활을 공유하는 것을 지향하지만 그 정도와 폭은 마을 밖에서 공동체로 들어올 준비를 하는 수준에서부터 모든 재산을 공유하는 기초생활공동체까지 다양하다. 사실 공동체 밖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 더 많다. 다만 공동체에서 회원과 활동가가 따로 있지 않고, 회원이 회비를 내고 활동도 한다. “공동체 안에서 일 할 사람이 없다고 밖에서 사람을 들이는 자본주의 고용구조를 지양해요. 그 활동에 대한 필요가 생기면 관심 있어 하는 사람이 주체로 나서서 일을 시작하는 식이죠.” 주재일 님(35세)은 지난해 9월부터 마을 안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함께 나누고자 마을신문 만드는 일을 제안해 편집장을 맡고 있다. 2006년 교육관련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공동체와 인연이 닿은 고영준 님(31세)은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지만 마을신문 기자이면서 주말 청소년학교 교사이기도 하고 마을밥상 요리사이기까지 하다. “한 사람이 한 직장만 다니거나 마을에서 한 역할만 담당하는 게 아니라 많은 역할을 조금씩 나눠서 촘촘하게 연결돼 있어요. 그래서 같은 사람을 여러 장소에 서로 다른 관계로 만나기도 해요.”
“가족이란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한 뒤 저녁밥상에 같이 앉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마을밥상을 여럿이 함께하면 가족의 품도 그 만큼 더 넓어지죠.” 주재일 님에게 가족은 생활의 가장 기본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다. 마을밥상처럼 함께 공유하는 지점이 늘어나면 삶도 가벼워진다. 저녁밥상 차리는 일이 줄어드니 집집마다 부엌살림이 줄어들고, 책은 마을 도서관으로 보내 함께 돌려본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함께 모여 살면서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고민하다보니 공동육아나 대안학교처럼 공동체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지점을 찾은 거죠.”
아이들과 함께 커가는 마을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에서 가장 큰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아이들이다. 주재일 님은 공동체 안에 어린이집을 꾸리고, 방과후배움터와 대안학교 ‘아름다운 마을학교’를 시작한 이유도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 만큼 관심과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교육이 구조화되어 돌아가잖아요. 부모가 그런 구조 속에서 돈을 벌어다 주는 보조역할만 하다가 그칠 것인가 하는 고민이 공동체 안에서 생겼어요.”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관심에서 출발했지만 교육문제를 풀어가면서 마을 공동체는 한 걸음 더 성숙할 수 있었다. 또, 아이들은 집과 집 사이를 이어준다. “급한 일이 생기면 집집마다 서로 아이를 맡아서 재워주고 아침에 학교도 보내줘요. 그리고 지금 우리 아이가 입는 옷 대부분은 선배네 아이들한테 물려받은 것인데, 그 덕에 아이들끼리도 더 친해진 것 같아요.” 아이 옷 한 벌을 물려주고 물려받을 때마다 마을 공동체는 아이들 키높이만큼 커간다.
마을 공동체 사람들은 “아이를 데리고 함께 마실 갈 수 있는 거리만큼이 마을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늘 말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마을은 또 얼마나 커갈까.
* 사진설명
(01_빈집_함께모여.jpg) 빈집의 가장 큰 매력은 날마다 새로운 일이 벌어진다는 것. 두 번째 빈집 ‘윗집’을 계약한 뒤 즐거워하는 식구들.
(02_빈집_옥상텃밭.jpg) 먹을거리를 스스로 챙기기 위해 옥상에 텃밭상자를 마련하고 지렁이를 키워 음식물 쓰레기를 거름으로 다시 쓴다.
(03_빈집_막걸리 담그기.jpg) 처음으로 막걸리 담그던 날. 빈집에서는 누군가 제안하면 서로 힘을 실어주며 처음 해보는 일이라도 길을 만들어 간다.
(04_빈집_놀기.jpg) 집밖에 나서면 돈을 주고 손쉽고 구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빈집 식구들은 집에서 함께 만들어가며 활동으로 풀어낸다.
(05_빈집_회의.jpg) 빈집 회의하는 날. 빈집이 네 곳으로 늘어나면서 이제 ‘빈마을’이 되었다.
(06_아름다운 마을_마실.jpg) 마을 공동체 사람들은 “아이를 데리고 함께 마실 갈 수 있는 거리만큼이 마을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늘 말한다.
(07_아름다운마을_식사.jpg) “가족이란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한 뒤 저녁밥상에 같이 앉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마을밥상을 여럿이 함께하면 가족의 품도 그 만큼 더 넓어지죠.”
(08_아름다운 마을_아이들) 아이들은 마을의 중심. 아이들이 자라면서 마을도 함께 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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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지나가다 보니 동사무소에서 5월 22일(내일이네요) 오후 3시 건물 3층에서 토론회를 한다고 현수막이 걸려 있더라구요. (제목은 "녹지축이 왠말이냐"쯤 되었던 걸로 기억.) 가보고 싶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