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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한겨레 책소개를 읽다가
천규석님의 책소개글을 발견하고 키핑(?0차원에서 퍼온 것인데
어찌하다가 퍼온 글이 블러그에 공개되고
또 어찌하다보니 앙겔님의 공개부탁을 받게 되었네요....ㅎㅎ
제가 쓴 글도 아니고 또 특별한 이야기도 아닌데
제목(?)상 호기심을 일으켰나 ?...싶어서 밍구스럽네요....ㅎㅎ
여튼 앙겔님께 죄송해서 여튼 글 올려놓습니다....ㅎㅎ
[공정무역 비판]이라는 제목
특히, 천규석님의 논지는 이미 보편화된 이야기가 아닐까 싶네요..
몇 해전인가 이리저리 일종의 모색(?)을 감행할때 접하게 된 이야기인데
한실림에서는 꽤 오랬동안 논쟁(?)이 있어 왔었던 것 같더군요.
가장 크게는 한살림이 제품생산에 사용하게 되는 설탕(?)에 관한 이야기인데
유기농설탕, 그리고 이를 수입하는 문제(수입사의 윤리성..??..), 그리고 공정무역 등에 대한
이야기로 조금씩 넓어진 이야기인데 그 중에서 나름 꾸준히 한살림의 정신(?)처럼 여겨지는
어떤 신념체계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된 것이 천규석님의 논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여기저기 글들과 한살림관련 분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들은 것이라서 정확하진 않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공정무역]이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결국 식민지지배를 고착화하는 방식을
재현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인듯 싶네요...ㅎㅎ
다만 아직도 확신이 들지 않는 것은
천규석님의 소농자급시스템이 과연 대안이 되어 줄 것인지는 여전히 이런저런 고민을 주네요...ㅎㅎ
여튼 앙겔님이 알고싶으셨던 것이 맞을지.....^^;;
공정무역’ 불공정한 속내를 꼬집다 | |
“착취구조 숨기고 연장하는 신식민주의적 발상 소농공동체 자급자치보다 윤리적인 소비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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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동 기자 | |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 천규석 지음/실천문학사·1만5000원
공정무역은 정말 공정한가? 그리고 윤리적인가? 4년 전 “질 들뢰즈나 펠릭스 가타리류의 유목주의(노마디즘)를 국가로부터의 해방철학이라도 되는 양 떠받들면서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탈을 쓴 세계시장제국주의와 신침략주의를 합리화하는 변설임을 애써 외면”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농사꾼 철학자 천규석(72). 실명비판을 마다않는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생태적 자급자치 소농(두레)공동체 복원이라는 자신의 오랜 작업을 가로막는 ‘적’들이라면 그 누구와의 논쟁도 피하지 않았던 그가 이번엔 민중무역·윤리적 소비·착한 초콜릿·착한 여행 등으로도 변주되는 공정무역을 정면으로 문제삼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정무역 이념은 옛 식민지 착취구조를 현재와 미래까지도 계속 연장 확대하려는 제국주의 국제분업체제의 신식민지주의 논리일 뿐이며, 약자에 대한 강자의 지배의존관계를 은폐시켜 그 영속에 일조하는 반민중주의라는 게 천규석의 생각이다. 직거래 형식을 통해 유통 모순을 어느 정도 해소함으로써 제3세계 가난한 생산자들에게 20~30%의 이익이 더 돌아갈 수 있게 해주고, 잘사는 먼 나라 소비자들에겐 안전식품에 대한 욕구와 심리적 부채감을 해결해주며, 생태환경 보존과 세상의 수평적 연대에도 기여한다는 공정무역. 지은이에 따르면 다분히 일본 그린코프 등의 생협활동에서 자극받은 이 땅의 공정무역 운동은 마스코바도 설탕과 올리브유 등의 수입품을 취급하는 두레생협연합, 여성민우회생협, 동티모르 교육사업 지원 명목으로 동티모르 커피를 평화커피라는 브랜드로 판매하는 와이엠시에이(YMCA), 생산자에게 두 배의 가격을 주고 네팔산 커피를 수입하는 아름다운가게, 밸런타인데이에 맞춰 ‘착한 초콜릿’을 홍보하고 공정무역여행을 기획한 한국공정무역연합 등 날로 세를 얻고 있다. 이에 대해 천규석은 야멸칠 정도로 냉소적이다. “히말라야 오지의 산악국가에까지 자급 대신 세계시장에 예속시키는 데 일조하는 장삿속을 인도적 지원으로 위장하는 양두구육은 노골적으로 돈벌이에 나선 세계무역보다 오히려 더 역겹다.”
그가 지적하듯이 공정무역의 대상은 커피, 차, 카카오, 바나나, 설탕 등 주로 기호식품이다. 이들 기호식품은 상품화 역사 자체가 서구 제국주의 식민지수탈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전세계 기호식품 주요 생산지들에는 서구 열강들이 무자비한 수탈을 위해 생필품 중심의 자급적 전통농업을 철저히 파괴한 뒤 건설한 기호식품 단작 플랜테이션(모노컬처), 도태당한 현지 노동력을 대체한 추악한 아프리카 노예무역 등 원주민 절멸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천규석도 공정무역이 상대적으로 공정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일품목 경작 때문에 외부 의존형으로 바뀐 원주민들의 삶을 온전하게 복원시켜주기보다는 오히려 그 왜곡을 더욱 심화시킨다. 그 결과 이득을 얻는 쪽은 지금의 뒤틀린 국제분업체제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기업 등 자본, 그들과 결탁한 지배그룹이 사실상 사유하는 국가다. 게다가 원거리 공정무역은 운반과 이동 등에 엄청난 에너지와 자원을 낭비함으로써 지구 생태계 파괴를 가속시키고, 자원 거래를 장악하고 있는 강자들의 이익을 더욱 배가시킨다. 이런 불평등·생태파괴 구조를 온존시킨 채 “사실은 자신들의 기호적 필요와 이익사업을 위해 (공정무역을) 하면서도 마치 시혜를 베풀듯”하는 공정무역의 위선을 천규석은 질타한다. 결과적으로 “공정무역은 전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의 세계시장체제에 예속된 농업의 국제분업을 기정사실화하고 거기로부터 차선이라도 구하는 현실주의자들의 자기위안 행위일 뿐이다.” 대안은 그가 지난 수십년간 계속 주장해온 지역적 자급자치 소농공동체의 복원이다. 소비도 “자급자치적 소비보다 더 높은 윤리적 소비는 없고”, 또 없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급이다. 제국주의 ‘외세’의 식민지·신식민지 수탈 출발점은 바로 이 자급체제를 강제로 무너뜨려 외부의존체제로 만드는 것이다. 자급이 무너지면 자치도 무너진다. 자급자치 소농공동체를 무너뜨린 이 외세의 대변자, 착취의 실행주체는 자본가와 관료 등 지배세력이 사실상 사유화한 국가다. 제국주의 일본도 외세였지만, 국내적으로는 중앙집권적인 국가도 자급적 소농공동체에겐 외세였다. <윤리적 소비>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국가지배로부터의 탈피, 국가에 대한 저항, 나아가 국가 해체 없이는 인간의 진정한 해방도 임계점을 넘어버린 지구생태계 파괴 저지도 불가능하다고 거듭 외친다.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에서도 그랬지만, ‘국가 타도’를 역설하는 지은이의 목청은 이번 책에서 더욱 단호하고 집요하다. 공정무역이 나쁜 것도 결국은 그것이 강자들의 수탈기구인 국가를 온존시키거나 더 강화시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가 노동조합 또는 노동운동의 대안 가능성에 회의적인 이유도 자급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국가에 저항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급이 안 되면 외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자급적 소농공동체와의 연대 없는 노동운동은 자본과 국가에 예속되거나 그들과 한통속이 돼 치명적인 살인무기 생산이나 생태파괴에도 앞장설 수 있다. 설사 노동계급이 예컨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 국가를 장악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마르크스가 예언했듯이 국가 소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가게 된다는 건 실패로 끝난 현실사회주의 실험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유럽형 사민주의나 복지국가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거부감도 거기서 비롯된다. 소농두레공동체 복원은 그가 보기에 국가에 대한 가장 완강한 저항이며, 가장 강력하고도 유일한 국가해체 작업이다. 그것은 혁명적이지만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같은 권력 탈취를 통해 단기간에 달성될 순 없다. 소농공동체 복원과 국가 소멸은 오히려 권력을 버리는 기권, 인간과 자연에 대한 무자비한 수탈을 거부하는 절약과 가난을 선택하는 결단을 통해 주체와 객체가 함께 바뀌어가는 점진적 과정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 그것만이 위기에 처한 세상을 구하는 길이라고 천규석은 생각한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먹거리 연대로 시장 예속 벗어나야” 한살림운동 펴는 천규석씨
상업적 수익 극대화에 매진해온 다른 유사조직들이 1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거둔 물량주의 성과들에 비하면 20년이 넘은 역사의 한살림 외형은 초라해 보일지도 모른다. 임원이나 활동가들이 그 때문에 불평도 하고, 빈약한 대우 때문에 사람 붙들어두기도 쉽지 않지만 그는 “한살림도 그렇게 한다면 다를 게 없다”며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천규석은 한살림운동이란 “결국 가난하게, 하지만 재미나게 살자는 것”이라며 “가난하지 않으면 이웃이 안 보인다, 가난해야 비로소 주변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가난한 삶이야말로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고도 했다. 시인 김지하보다 1년 늦게 들어간 서울대 미학과를 그보다 2년 먼저 졸업한 그는 학창시절에 이미 자급적 소농공동체 건설을 꿈꾸었다. 고향인 경남 창녕으로 내려간 게 1965년. 이후 반세기 가까이 “소농두레공동체 혁명”에 매진해오면서 지금과 같은 생활이 “재미나고 좋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느꼈다”며 “나보다 못사는 친구들이 없지만, 남부러울 게 없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국가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지난 정권교체 뒤 한층 더 확고해졌다. “70 평생 (국가의 언설에) 다 속고 살아왔는데, 이젠 결론을 내려야 할 때”라고 했다. 국가지상주의 시대에 일방적으로 국가를 해체한다면 외부세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겠느냐는 우려에 대해 그는 “다들 그런 고민들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시도를 하지 않으면 국가 극복은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했다. 세계연방정부가 대안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쪽이 더 어렵다”며 국가가 존속하더라도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면 된다고 했다. 국민국가 거부로 인한 혼란과 무질서를 어찌할 거냐고 지레 겁먹는 것은 기우라면서, 국민국가를 대체하거나 극복할, 어떤 의미에서는 국민국가보다 훨씬 강력한 공동체의 출현이 없이 절대로 국민국가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말하자면 소농두레공동체만이 국가를 대체할 수 있으며, 소농두레공동체가 그만큼 강력해지지 않는 한 국가는 계속 존속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로 들렸다. 그는 당장 모두가 소농공동체에 동참하기 위해 귀농할 순 없는 일이라며, 비록 도시에서 살더라도 그런 정신으로 연대하면서 먹을거리 하나만이라도 우선 시장과 자본의 예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한살림에 호의적인 사람들조차 대다수는 건강식품을 먹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을 갖고 있을 뿐이지만 그런 식의 참여도 꾸준히 오래 하다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했다. 1980년 무렵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한살림운동은 1985년 원주에서 첫출발을 했고 1986년 천규석이 두번째로 마산에서 시작했으며, 서울에 가게를 연 것은 1987년이었다. 지금은 전국 회원이 18만에 이른다. 고령이 된 그는 겨울엔 주로 대구 쪽에서 생활한다. 창녕엔 농업전문대를 나와 함께 농사짓는 아들 식구들이 살고 있다. 한승동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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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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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공정무역이 참 좋으면서도 뭔가 야릇한 느낌이 있었는데... 잘 정리한 책이 있었군요.부가 정보
앙겔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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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이 있네요, 기호 식품으로서의 수탈의 역사성...근데 현실 사회주의 국가 시망했으니 계급 혁명이 시망이라는 부분은 기분이 나쁘다..-_-
어제 공정무역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저는 팔레스타인의 난민 캠프에서 생산되는 주로 악세사리들을 좀더 열심히 사다가 팔면서 운동을 하면 어떨까, 고민하는데 공정무역에 대한 비판이 하두 많아서.... 암튼 품목 부분에서 기존 공정무역과 차별화가 가능...< 공정무역 자체가 아니라 내가 운동의 수단으로 쓰려는 공정무역에 대해 정리해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슴당 나중에 트랙백 ㄱ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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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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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의 수단으로 쓰려는 부분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난민캠프에서생산되는 악세사리는 사주는 것도 연대라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유통을 생각하면서 비싸게
팔지 않으면 됩니다. 시장가격으로 파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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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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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이 제가 하는 운동의 목적이 아니고,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지원하고 한국에 팔레스타인의 정치 상황을 알릴 때 단지 유인물만 나눠주는 게 아니라 팔에서 생산된 물건과 함께 설명하면서 - 올해에 함 해볼 수 있겠다 싶은 거죠. 해보고 잘 안 되면 바로 접고 다른 방법을 쓸 거구요. 수단이 나쁜 말은 아니지 말입니다.가격 책정은 현지 지원 + 비행기가격 + 단체 재정 사업, 기타 사정도 고려되지만 시장가격?? 뭐 그런 건 좀 애매하고, 당장 동의는 안 된다능.. 소량 구매하는데 가격 경쟁이 될리가 없잖아요. 뭐 먹을 거 팔 거는 아니고 오히려 비싸게 팔아야 먹히는 대상들도 염두에 두고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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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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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필자처럼 많은 이들이 대안으로 주장하고 있는 지역적 자급자치 공동체는 외부에 대해서는 자립적일지 모르지만 그 공동체 구성원들은 서로에게 상호의존적입니다. 우리는 도시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어느 미장원을 이용하든 그것은 나의 자유이며 A가 싫으면 B를 택하면 됩니다. 하지만 지역공동체에서는 사회적 필요에 따라 미장원이 한개 이상일 필요가 없게 됩니다. 내가 그 미장원 미용사와 사이가 나빠지면 어떻게 될까요. 귀농한 사람들이 농촌에 대해 로망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은 도시인의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귀농을 해서 여전히 도시적인 생활양식을 유지할 수도 있고 또 변화된 생활양식에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한 세대가 지나면 과연 그 후손들이 그 공동체 생활을 견딜 수 있을지. 생산양식은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선택이라면 상관없는 일이지만 공정무역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어떻게 생산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심성도 달라지고, 따라서 자립공동체를 대안으로 한 운동을 하자는 것은 과거로 회귀하자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부가 정보
우중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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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제가 아는 것이 많지 않아서 뭐라하기는 좀 그렇지만 제 블러그에 덧글 달아주시니 제 생각 조금 적어봅니다.우선 "암담"님이 하신 말씀을 굳이 옳고 그른 잣대로 이야기하고픈 생각은 없지만
뭔가 오해(?)가 약간 있으신듯해서....ㅎㅎ
우선 천규석님이 말씀하신 소농두레공동체의 논리가 마치 공동체 성원들의 기호 혹은 취향과 지향성을 무시한 체 운영되는 일종의 전체주의적 성향으로 읽히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을듯 싶습니다.
소농두레공동체의 경우 제가 보기에 일차적인 먹거리 해결의 측면에서 이야기되는 것이고(먹거리 생산방식) 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와 같은 거대 국가시스템의 극복을 위한 연대의 형식이 보다 더 적절히 읽히는 것 같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보다 다양한 작은 단위의 공동체들의 연대 혹은 네트워크 방식이 전제된 것이 아닐까 싶거든요.
또한 실제 작은 공동체라는 것이 상정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공동체라는 말들이 함께 성립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즉, 삶의 다양성만큼 각자의 공동체가 다양한 측면들을 열어놓고 상정된다는 것입니다...ㅎㅎ
제가 잘은 모르지만 천규석님의 논조를 마치 전체주의적 경향으로 바라보는 것은 오해인듯 싶다는 것이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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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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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급공동체가 공동체 성원들의 기호 혹은 취향을 무시한다는게 아니라 판매를 위한 생산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다양한 생산자가 존재하는 것이 자급공동체에서는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기호를 무시하는 것은 둘째치고(마을사람들 헤어스타일이 다 똑같아지는건 사실 그리 문제도 아닙니다) 종속적 인간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자급자치공동체뿐만이 아니라 소도시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있는 유학생 사회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을 선택하고 나머지 사람들과는 표면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만 소도시의 유학생 사회에서는 자신이 알고지내는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한다는 부담감때문에 나쁜 소문이 돌돌거나 하면 아예 학교를 옮기는 일도 벌어집니다. 게다가 저 필자는 이 공동체 운동을 국가를 해체할 수 있는 거대한 운동으로까지 보고있는데 어떠한 사회가 진정으로 자립하려면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자립해야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리고 중세의 꼬뮌들은 사실상 군사기구까지 갖추고 있었는데 왜 깨졌나요? 길드는요?부가 정보
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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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가 저녁준비하느라고 말을 다 끝맺지못하고 갔는데 어쨌든 중세에는 상당히 괜찮았던 도시꼬뮌이나 길드도 여지없이 깨진 이유가 상품경제의 혁명성 때문이잖아요. 그냥 나는 도시생활이 싫다, 농촌에서 마음맞는 사람들끼리 농사지으며 살고싶다 이런 견해에 어느 누구도 반대할 사람은 없지만 왜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는지, 요 가까운 서울 근처 소도시만 가도 왜 사람들 심성이 우리와 다른지(버스 끝에서 끝까지 애들이 뛰어다녀도 기사분이 가만있습디다) 그런 건 생각안하고 오로지 도시의 비인간성과 살인적 물가만 생각하고 귀농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서울에 다시 돌아왔으며 이 운동의 문제점은 무엇인지(문제적이지 않은 운동은 없습니다) 말씀안하시고 오로지 국가를 해체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라고 하시니 참 갑갑합니다. 운동은 보통 사람들이 하는 것이지 엘리트들이 하는게 아니지않나요. 문제는 반드시 나타납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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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포스트에서 제가 천규석님의 글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측면은제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먹거리 해결방식이외의 작은 단위로서의 공동체들이 어떻게 도시내에서 가능할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 연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제 스스로 좀더 해야한다는 것입니다...ㅎㅎ
여튼 소농두레공동체처럼 도시내에서 어떻게 자급가능한 공동체들이 어떻게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들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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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관심 감사합니다....ㅎㅎ부가 정보
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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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이 나왔습니다^^ 책 받으실 주소를 알려주세요. 제 블로그에 덧글로 남기시거나 raputers@jinbo.net로 메일 보내주세요. 예약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부가 정보
카라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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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공정무역에 관련 일을 준비하면서 천규석님 책을 읽어 보지 않았지만 많은 고민을 한 부분 입니다. 국내 공정무역 운동과 세계 공정무역의 역사, 단체들을 보면서 과연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이루어지는 무역?은 어떻게 작동되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그가 지적하듯이 국내에서의 공정무역의 상품들을 보면 커피, 차, 카카오, 바나나, 설탕 등 대부분의 기호식품으로 이루어져서 대중의 기호에 철저히 맞춰지면서 자본주의 경제관에 편승하는 모습과 전통적 농업의 생태적 파괴에 대한 문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의 공정무역의 발전은 거대 NGO단체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기호식품에 집중되어 자본주의 생산방식을 따르면서 거래방식에 있어서는 대중적인 착한 가격이 아닌, 공정무역 인증마크제로 독점적이고 선택적인 상품으로 인해 착한소비자들에게 선의적 구매를 강요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정무역은 개인이고 단체곤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인들이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일 국의 상품으로,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생산한 생산재만으로 삶을 영위하거나 그것에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천규석님의 지적대로 소농공동체에 모두가 동참하거나 귀농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자본의 예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러한 공동체에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저도 이 부분은 많은 부분을 생각나게 하는 부분입니다.
저 역시 초창기 한 살림 회원으로 참여를 하면서 한 살림 상품들을 공동구매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드는 생각은 직거래 방식인데 개인적으로 상품이 비싸다는 생각이고, 우리만 잘 먹고 잘 살면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자본의 비교등극이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시장이나 마트의 싼 가격에 손이 빨리 갑니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비교와 경쟁을 할 때 생산력문제도 있지만 자본주의를 생산양식을 뛰어넘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생각도 있었기에 언제나 민중들의 삶을 유린하였습니다. 모든 직거래 방식은 싸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내에 유통의 단계를 너무나 축소시키기 때문입니다. 생협의 직거래 상품도 싸야하고, 공정무역 제품들도 자본주의 시장내 유통되는 상품들과 비슷한 가격으로 경쟁하여야 합니다.
또한 공정무역은 앞서 지적했듯이 제3세계 제품들을 상품으로 포장된 것이 아닌 것들을 그들의 공동체에서 만든것들을 사주면 됩니다. 그러한 제품들은 여행을 가거나 인터넷에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직접 생산한 제품을 산다는 것이 생산자 개인이나 소비자에게는 하나의 연대입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를 지키는 힘입니다. 그러한 것들을 지키지 위한 다양한 생각과 논의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천규석님의 지적은 현재 공정무역을 하는 단체들에게 많은 부분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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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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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공정무역과 관련된 무슨 얘기를 쓰셨던 건가 했더니...요거였군요^^ 어젯밤에 지음이랑 또 친구랑 요책 야그를 나누었었다는..ㅋㅋ부가 정보
우중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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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홋...ㅎㅎ...좋았겠네요....ㅎㅎ저두 요즘 혼자 책읽기에 조금씩 지쳐서
누군가와 이야기 하고프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라는...ㅎㅎ
뭐 그래도 요즘 워낙 할일들이 밀려 있는 중이라서 짬이 나질 않지만요...ㅎㅎ
여튼 반갑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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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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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담님께.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현재 님께서 말씀하시는 공동체의 상이 천규석님이 말하시는 공동체의 상이 아니라는 것
즉, 천규석님의 글을 읽어보시라는 겁니다....ㅎㅎ
단순히 [소농두레공동체]혹은 [자급자립]이라는 단어에 지나치게 매이지 마시고
한살림 혹은 천규석님의 글을 있는 그대로 읽어보시면
현재 님께서 오해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수 있으실겁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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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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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렇지만 우중님도 다이하드하신 분이시군요. 제가 보기엔 님도 오해하고 계세요. 저는 천규석님의 공동체의 상에 대해서 비판한 것이 아니라 그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필연성 내지는 경향성에 대해서 우려 내지는 회의를 표시한거에요. 저도 기회가 있다면 한살림에 대해서 공부를 해보겠지만 우중님 역시 기회가 된다면 외국의 다른 공동체들에 대한 객관적 사례들을 살펴보시길 바랍니다.부가 정보
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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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면 저는 천규석님의 말에서도 모순을 느낍니다. "자급적 소농공동체와의 연대 없는 노동운동"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결국 판매를 위한 생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자급이 안되면 외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노동조합은 자급공동체의 외부가 아니면 무엇인가요. 자급이 무너지면 자치도 무너진다고 했는데, 공정무역이 공정하지 않다고 한 것처럼 이렇게 되면 자급공동체도 자급이 아닌 것이 됩니다.부가 정보
우중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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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트를 보시는 분들께...변명하자면...^^;;제가 쓴 글도 아니고 단지 책소개 글 퍼온것 뿐인데...^^;;
이 반응들이 조금 당황스럽군요...ㅎㅎ
공정무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은데
저때문에 천규석님의 글이 오독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정도...?...가
저의 솔직한 심정이라는...ㅎㅎ
여튼
책소개니
책을 읽고 책이야기를 했으면 하네요....ㅎㅎ
여튼 다들 관심주셔서 감사...?,.....^^;;....ㅎㅎ
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