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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그리고 아픔...(청원군 옛집 구경 - 1)

  • 등록일
    2005/02/13 20:35
  • 수정일
    2005/02/13 20:35

오늘은 일요일

아직 익숙치 않는 교회 예배를 보고

교회 아이들과 헉헉대며 농구 한판하고...그러고도 왠지 심심해져 오는 마음 달랠길 없어

집에 오는 길에 얻어 탄 형님 차안에서 갑자기 나들이를 결정했다.

 

뭐 거창하게 답사니 여행이니 하기엔 왠지 좀 미진해서

그냥 소풍이나 나들이처럼

편안히 훝어보고 올 심산으로 부리나케 떠났다.

 

뭐 솔직히 부리나케 떠났다는 것 자체가 좀 그런 것이 우리가 가기로 한 곳이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인 남일면인데다가

바로 이웃동네인 가덕면, 낭성면 정도라서

꼭 떠났다는 표현이외에 적당한 말이 없어서 그렇지

꼭 그 말 그대로로 받아들이기는 어폐가 있는 듯 싶기도 하다.

 

뭐 여하튼

사진찍길 좋아하셔서

아트(art)를 할 주변머리는 없고

그저 아트(art) 근처에서 머뭇거리길 좋아하는 천상 주변인인

그저 그런 심미안의 내가 보기엔

대단한 사진작가처럼

못내 부럽기만한 사진실력을 가지신

내가 넘 좋아하는 형님과 함께

그 형님의 아들로 왠지 꿍시렁 거리는 투가 나와 닮은 충현이와 함게

그렇게 떠났다.

 


   < 사랑채 지붕>

 

처음 들른 곳이

남일면 고은 3리에 있는 이항희 가옥이다.

한 100년이 좀 더 된 가옥이다.(윗 사진)

집에서 출발해서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으니

출발하자마자 도착했다고나 할까 ?

 

뭐 어디 한옥이나 비전문가 눈엔 거기서 거기지만

그래도 이 가옥은 좀 다른 게 있다.

 

일반적으로 문화재로 지정되면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가 되기 쉬운데

다행이 이 곳은 이돈희(?)라는 사람의 조형연구실인가 뭐 하여튼 미술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사는 집으로 바뀌어 그럭 저럭 사람사는 맛이 나는 집으로

보존되고 있으니

주변의 내 눈엔 몇 백년되어 보이는 향나무와

소나문진 뭔지 하는 하여튼 큰 나무와 어울려 포근한 집이다.

 

그 집 앞에 최근에 지은 마을정자가 하나 있고

(졸작이다...관에서 하는 짓이 다 그렇지만 여러 마을의 정자를 도매급으로 업자에게 넘기고

 업자는 업자대로 볼품없는 싼 낙엽송과 천장엔 싸구려 합판을 대서

그야말로 졸작으로 지은 정자 )

그 옆에 어디에나 있는 마을회관 겸 노인회관이 있다.

 

한 3년 전인가 이 회관에 온 적이 있었다.

 여러 사회단체들과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충북대책위(?)라는 연대단체에서

공동사무국장이라는 이름만 사뭇 거창한 직위에 있으면서

실제로는 뺀질뺀질 일도 안하면서

(그덕에 함께 일한 모단체의 상근자가 무척 고생했다...미안하구려...헤헤헤)

가끔 놀러다니곤 했는데

이 곳 고은 3리 노인회관에 당시 상황을 증언해 주실 할아버지를 만나러 온 적이 있었다.

 

한국전쟁당시 청주시내 사람들이 자무시 트럭으로 실려와

학살된 곳이 이 마을 바로 앞이었고

근 일주일동안 쉴새없이 많은 사람들이 실려와 학살당했다는 증언 이었는데

그 중엔 큰 푸대자루에 어린 아이들이나 아기들이 들어 있었데

자루채 개울가에 던져 놓고 기관총을 난사하는 걸 본 분도 있었다.

 

이 곳이 청주에서 보은으로 가는 국도 변이라 국군이랑 경찰이

퇴각하면서 이런 만행들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참 !!......참내...!! 

 

이렇게 고풍스러운 옛집이 포근하게 자리잡은 곳에 우리가 전혀 모르는

그런 아픔들이 산재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분단사회에서 사는 것 만큼이나

어쩌면 우리 피부 가까이에 있는 서글픔 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가볼 곳 대다수가 이런 죽음에 관계된 곳이니

참 이런 우연도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한참 흙담과 따스한 겨울날을 사진에 담는 형님과

곁에서 이런 저런 이야길 귀담아 듯는 충현이를 보면서

씁쓰레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역시 여행(?)엔

담배만한 동행자가 없으이....헤헤헤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의 걸쇠>

 

 

여하튼 그때 그 아품이 있던 마을앞 개울은 이미 4차선 도로가 되었고

그 당시 그 일들을 목격한 마을사람들은 마을을 떠나거나

아니면 영원의 침묵속으로 떠나고........

 

오직 남은 것은

이렇게 양반집 가옥으로 보수된 멋드러진 옛집이 있는

문화재 알림판이 떡하니 자리잡고

새로 만든 마을 정자가 동네 한가운데 떡하니 폼잡고 있는

그런 흔한 마을만 남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역사는 다 기억하고 있진 않은가 보다

오직 기억하고픈 것들만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도 사람사는 세상이니 오죽하겠나 싶기도 하고.......!!

 

<참고로 이항희 가옥은 철종12년에 만들어진 집인데 그때 당시 건물로

남아있는 것은 ㄱ 자 형태의 안채다.

사랑채랑 행랑채는 근년에 새로 지은 집이다.

뭐 그럭저럭 폼나는 학술용어로 이야기 하면

쾌 큰 여러 칸살이 집이고 쪽소로가 쓰인 초익공 겹처마 집이고...뭐 그렇다.

장연(긴 서까래)은 옛거이나 부연은 최근에 보수하여

맨질맨질한 것이 보수흔적이 역역히 남아 있다.

 

집주인이 미대 교수라나는 소릴 들은 적이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집의 구석마다 내가 도저히 감상할 능력이 없는 이상 야릇한

한마디로 형이상학(??)적인 조형물들이 놓여져 있어서

혹여 미술학도나 미술에 대한 대단한 심미안이 있으신 분들은

주말 오후 한가한 시간 때우기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곳이다.

 

가가운 곳에 사시는 분들은 한번 찾아가 보시길....?...헤헤헤

갑자기 무슨 청원군 관광도우미가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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