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상당산성을 걸으며

  • 등록일
    2005/02/13 18:19
  • 수정일
    2005/02/13 18:19

토요일 저녁때 쯤

무료하게 집에서 뒹굴뒹굴대다가

휭하니 바람 쐴 생각으로 상당 산성을 갔다.

 

뭐 워낙 자주 오는 곳이라서 무슨 특별한 감흥이

새롭게 생길리 없다지만

그래도 마지막 겨울을 자축하듯 추운 저녁 바람이 몰아치는 것이

그럭저럭 샌티멘탈한 감흥정도는 느껴지도록 한적하니 으스스하니 좋았다.

 

통일신라 시대때 만들었고

조선시대 대대로 새롭게 축성했다는 것이 실감나도록

 선조니 숙종이니 영조니 하는 임금님들의 이름들이 나오고

요즘 칼의 노래에서 때아닌 호황을 맞는 원균이라는 사람이 축성했다는 설명도 나오고

한때 유명했던 이인좌의 난도 나오고

그럭 저럭 오래된 유물임을 한껏 뽐내려는 듯

우리가 알수 있는 여러명의 사람들이 거론되는 거창한 설명문을 읽으며

해지는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남쪽 성벽으로 다가갔다.

 

뭐 항상 오는 산성이지만

올때마다 나는

무료로 배포하는 산성 설명 리플렛을 받아다가

어디 오타라도 난데 없나 하는 심정으로 꼼꼼이 읽고 또 읽곤 한다.

 

저번에 친구 녀석과 올땐

이런 나를 보면서

넌 뭐 볼게 있다고 항상 일고 또 읽곤 하느냐고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뭐 ! 그렇든 말든

항상 챙겨서 읽고 집에다가 잘 모셔두곤 한다.

 

워낙에 문화유적에 관심이 많긴 하지만

유독 연대니 아니면 특정 인물들의 이름 특히, 임금님들의 찬란한 이름들을

외우는데 상당한 곤란함을 겪는 놈이라

이렇게 읽고 또 읽곤 해야 잊어먹지 않는 게 나다.

 

여하튼 헉헉대고 춥고 배고픈 몸을 끌고 산성을 오르면서

한 눈  팔지 않고 설명서에 눈독을 들이며 걸어 올라가서

멀리 떨어지려는 해의 밑에 뿌옇게 앉아 있는 청주를 쳐다보면서

아 ! 올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도시에나 있는 매한가지인 산성에다가

문화재보수라는 거창한 이름하에 허여멀건한 대리석인지 화강암인지

모르는 비싼 돌로 흉하게 땜질된 산성 성벽위에 있다보면

보기 흉한 땜질 만큼이나 보기 흉한 도시의 풍경들이

아른하게 마음을 시리게 하고

그런 아른한 시린 감정에

아 ! 저녁때 소주나 한잔 해야 겠다는 간절함이 들어서 좋다.

 

술먹고프면

무슨 핑계를 못대겠냐만은

그래도 이런 도시의 냉정함과

세월을 무시하는 인간들의 추함을 안주 삼아

씨팔개팔하면서 술한잔 하는 것 만큼 복된 술자리도 없지 않는가 ?

 

맨날 모여서

맨날보는 사람들과 노무현이니 열우당이니 하며 욕하기도 지겹고

민노당이니 민주노총이니 성토하는 것도 그렇고

그 잘난 시민사회단체를 안주삼아 떠드는 것도 지겨운 요즘이면

차라리 무슨 고고한 학자나 된 듯

맨날 저리 우뚝 서있는 산성이나 욕하며

술한잔 하는 여유로움도

가끔은 몸보신 삼아 누릴 수 잇는 즐거움이 아니겠나 싶다.

 

 

 

이 노을 밑에 청주가 있다.

 

뿌연 도시의 스모그 아래 바삐 움직이는

그저 그런 도시들중에

전혀 특별하지도 않은

그저그런 도시가 하나 있다.

청주라는 이름하에....

 

솔직히

이 밑에 충주가 있든 대전이 있든 전주가 있든 대구가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고

그안에서 만들어 가는 무엇인가가 뭐 얼마나 다르겠는가

보이지 않는 저 어둠처럼

어쩌면

사람들은

그만큼의 어둠이라는 무게에 눌려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