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 2011/07/01
  2. 마음의 빗장을 풀며 2011/06/29
  3. 찜찜함 2011/06/02
  4. 평온 2011/05/28
  5. 죽음 2011/04/17
  6. 2011/04/13
  7. 양날의 검, 나는 가수다 2011/03/24
  8. 몇 가지 단상들 2011/03/10
  9. 출산에 대한 욕구 2011/01/23
  10. 지긋지긋한 싸움이 다시, 2010/12/12

사랑

from monologue 2011/07/01 17:08

결국, 탈이 났다.

 

생리 중에 두 차례 폭주를 하고서

몸이 심상치 않더니

저번 주에는 방광염 이번 주에는 목감기,

땡땡 부은 편도선을 가지고 도저히 일을 못 하겠어서

조퇴를 했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니 들어가 잘 회복하라는 동료의 말이

새삼 고맙게 느껴질 정도로,

참, 아프고 무능한 인간으로 취급받기 싫은데

'살아야' 겠어서 사무실을 나왔다.

 

허옇게 뜬 얼굴은 이내 벌겋게 홍역처럼 피워올랐다.

'나는 아프기라도 하다, 그게 잘 티가 난다, 그래 나는 잘 살아 있다'

증명이라도 해주는 듯.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계속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

내내 이에 대한 생각을 했다.

 

아픔이 전염되는 것처럼, 사랑도 전염되기 마련인가.

내가 너만을, 배타적으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 사랑인가.

 

아니다, 내 몸부터 사랑해야 한다.

여름은 보약도 안 듣는다던데, 왜 이렇게 몸이 말을 안 듣지.

 

겨우 잠에서 깨어 다시 컴퓨터를 켠다.

여노에 와서는 대체로 잘 쉬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불질만 계속 한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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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1 17:08 2011/07/0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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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빗장을 풀며

from monologue 2011/06/29 20:25

종일 네가 생각났다.

 

올 해 처음, 거짓말처럼 동지를 떠나보내던 날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나를 잘 기억해주고, 함께 맺었던 관계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던,

누구와도 거리낌없이 소주 한 잔 기울일 수 있었던 사람이

내 곁을 떠나던 날,

나는 명절이라고 멀리 내려와 있다고

마지막 가시는 길, 함께 하지 못 했다.

 

그래, 멀지 않은 과거에 그 일을 겪고도

나는 또 내 일상을 살겠다고,

불편한 상태로,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겨우 워크샵 장소에 도착하고,

어제 하루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몸으로 표현해보자는 강사의 말에,

그만 철퍼덕 바닥에 스러졌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던 오후 내내

쓰러져 있던 마음,

 

결국

가까웠던 사람이 자살했다고, 생활고도 어려움도 아픔도

건너 건너 짐작만 했지만

난 너무 내 삶만 생각했다고...

 

다 하지 못한 말들을 애써 눌렀는데,

결국 서럽게 울었다. 마음의 빗장이 풀린 것처럼, 그렇게.

 

처음 부음을 들었을 때,

그래, 나는 살아야지.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죽지 말아야지, 라고 말했다.

무의식적으로 툭 나온 말이었는데 참 의식적이었다. 매정했다.

그렇게 말했던 내가, 눈물조차 고이지 않던 내가

아무도 모르는 이들 앞에 쓰러져 펑펑 울고 말았다.

 

살기 위해서, 어려워도 살기 위해서 하는 짓인데

대체 난, 누굴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지,

내가 겪었던 고통이나 상처가 무엇이기에, 그깟게 무엇이기에

나는 살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을 지독하게 아프게 했다.  

이제야, 그 아픔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야.

 

너무 고마웠던 것,

사람들이 팔짱 끼며 방관하지 않았던 것, 

고개를 숙이며 하염없이 우는 나와 똑같이 울어주고 안아주며

그 마음을 나눴던 것. 무거운 걱정, 죄책감 다 내려놓고

무조건적으로 안길 수 있었던 것.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돌아오는 길,

네가... 곁에 있어주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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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9 20:25 2011/06/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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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찜함

from monologue 2011/06/02 14:29

대체 트윗을 해야 할지

페이스북을 해야 할지

이 답답한 감정을 토로하고 싶을 때는

어디로 가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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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2 14:29 2011/06/0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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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

from monologue 2011/05/28 01:41

추웠죠 한 겨울, 당신 언저리에 있던 아픔들을 만나며

냉기 가득한 골방 안에서 나는 늘, 당신을 그리워했어요.

봄이 유독 늦은 해처럼, 그렇게 서서히 그대와 나에게 온

어떤 것.

나는 이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얼마나 괴로웠어요.

얼마나 힘들었어요.

삶은 혼자일 수밖에 없는 거지만

혼자라서, 그래도 결국에는 혼자라서

오롯이 버티고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너무 잘 견디어 왔어요.

 

새벽,

혼자 혹은 여럿이

외롭게 혹은 피터지게 싸우는

여전한 전쟁터.

나 혼자 평온을 찾으며 잘 살고 있노라고 부끄러운 고백을 해요.

 

그저 그런 안부 인사가 아니었으면...

오랫동안 그리워 하던

그대와, 그대를 생각하게 된 나에게

뒤늦은 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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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8 01:41 2011/05/28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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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from monologue 2011/04/17 21:07
때로 그것을 갈망하는 시간이 있다 친구야 넌 얼마나 힘들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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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7 21:07 2011/04/17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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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monologue 2011/04/13 17:03

며칠 간 시가에 다녀온 뒤로

나를 놓아주기 위한 시간을 만들고 있다.

곰곰 되짚어 생각해 봐야갔다. 나를 옭아매는 것들...

 

 

1. 결혼해서 산다는 것

 

내가 놓인 불평등한 위치 때문에

그걸 강제하는 제도 속에서, 상대방이 보다 더 많은 내용들을 양보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상대방은 가부장제의 핵심에 들어와 있었다.

개인이 개인에게 처한 제도의 영향력을 단번에 뒤집기란 쉽지 않아도

노력이라도 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의식적 노력 아니었나.

 

헌데 내가 내 스스로 해내고 있다는 것도, 그만큼을 상대방이 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누가 누구에게 얼마 만큼, 그만큼을 다시 누가 누구에게로

계산된 관계를 만들어간다는 것, 누가 하고 싶어서 하나.

여성들에겐 숨이 차도 이런 방법이 아니면 쓸 방법이 없다. 

특히 남성과 맺는 삶의 관계와 태도의 문제에서는 더욱.

 

남성 일반이 갖게 되는 특질이란 없다고 여겨왔으나,

요즘들어 비슷한 조건과 환경 그리고 개인의 의식 여부에 따라...

비슷한 특질들도 몇몇 발견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나는 항상 남편 집에 가면 부엌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먼저 말을 걸며, 안부를 묻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해 의식적으로 애를 쓴다.

남편은 어디에 있든 TV만 본다. 우리 집에 와도 마찬가지다. 소파 위에서 티브이만 본다.

엄마에게 잘 지냈는지, 건강은 괜찮은지 형식적 인사 한 마디 건네지 않는다.

결혼 5년차인데 자발적으로 전화 한 번 해본 적 단 한번도 없다.

못해서 그러려니 해도 이제는 아예 안 한다.

언니들한테 물어보니 남편들 다 그런단다. 그래도, 내 남편은 더 특수하다.

 

상대방에게 관심 없다는 투, 혹은 너와 대화를 나누기 싫다는 투가 너무 현격하게 드러난다.

고갤 숙이거나 돌리거나(이럴 때 티브이는 굉장히 좋은 대상이 된다) 말을 걸어도 한 마디면 끝, 혹은 아예 안 하기도 한다. 이런 무엇 같은 경우가!

 

이런 사람인지 몰랐다. 솔직히 결혼 직전부터 알게 되었고, 이해해야지 하면서 그 이후부터

계속 내 속을 긁어놓는다.

그 무성의한, 말없는, 싸가지 없는, 이걸 지적하면 지적한다고 난리를 치는 그 잘난 자존심만 쎈 태도...

사람과 어울릴 수 없는, 사회성이 제로인 그 천성!

 

어쩔 수 없다. 나는 이런 남편과 살기에 늘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

그러면, 나는 늘 귀찮게 하고 부탁하는 사람이 된다.

그럼 그 사람은 늘 그걸 받아주었다. 속으로 짜증은 났겠지만...그게 싫었다면 말을 해야지

적어도 나에게 부탁이라도, 혹은 말로써 짜증이라도 한번 건네는 게 그리 어렵나.

 

죽자 사자 일에 매달리는 생협 내 구조, 전화로 온갖 소리륻 다 들으며 감정노동을 해다 바쳤던 1년

짧았지만 결코 짧지도 않았던 그 불합리한 구조와 지쳐가는 시간 속에서...나는 버텼다.

얼마나 힘들었냐고, 말 한 마디 못해주는가. 자기 삶이 바빠서? 해 줄 인간도 아니었다.

 

헌데 내 가족의 모임이 있을 때 자기 일정이 있어서 싫고

지 가족 모임이 있을 때는 가야 한다 챙기면서 내 일정이 되는지 안 되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나는 안 가려고 했다. 그 무성의한 태도가 너무 싫증나서 무척 짜증나서, 당연히 가지 말아야지 했다.

헌데도 갔다. 가는 내가 문제야, 하면서 갔다. 오만가지 생각에 휩싸이며.

 

2. 제사

 

그는 내 가족을 만나러 가는 게, 사회주의 모임(개 빌어먹을! 너는 사회주의 모임 잘도 가면서 일상은 이 따위로 사니! 사회주의자 모두가 자기 가족은 끔찍하게 챙기고 그렇게 순종적이며 가부장제도에 한 마디 제동도 못 거는 찌질이로 사니? 어?) 이 있어서 안 된다고 했다.

 

반대로 일을 그만두고 하루도 제대로 못 쉬고, 나는 시가에 가야했다.

계속 걸려오는 시아버지나 시어머니의 전화를 만류할 수가 없었다.

위가 뒤집어진 남편의 건강이 신경 쓰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너무 지쳐 있는 지금의 일상이 조금이라도 뒤틀어지면 내가 너무나 아플 것 같았다.

예민한 나를 잘 알기에, 헤어지고 뭐하고 생쑈하는 것보다 차라리 마음에 없어도 가지 하며 마음 먹었다.

나락으로 치닫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보다, 남편의 가족에 대한 예의라 생각했다.

멀리 살고, 잘 보지 못하기에 가서 얼굴이라도 딸처럼 보여주자 생각했다. 된장맞을!

 

말도 안 되는 비과학적 호주제의 풍습 때문에, 제주도의 토착민들(남성들)이 모여 지내는 제사에 여자들은 들러리다. 아니 없다. 그래, 섬이라 척박하고 파도에 휩쓸려 죽고 못 먹고 없어서 죽고 43때 죽고 왜 제사를 지내는지 알겠다. 알겠는데...이걸 지내면 여자들은 행복해지나? 이걸 준비해주는 여성들은, 행복해지냐고? 너희들이 뭔데 성씨를 잇네 어쩌네 하며, 제주도를 이끌어가는 뭐뭐네 ㅈㄹ인데? 어? 너네들 뒤에서 피터져라 일해주고 희생해주는 부인이나 다른 여성들은, 뭔데? 어? 대체 뭔데!!! 여성주의자로서 제사에 간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들고 싫은 일인지 모른다. 희한하게 남편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욕할 거면 가지 마. 이거였다. 

아니 그냥 여성주의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여성이라면, 가기 싫다. 정말로!

실제 이번에 애를 가진 동서는 돌도 안 된 아이를 끌고 알 수도 없고 알 지도 못하는 제사에 가서 음지에 앉아 하루를 꼬박 보냈다. 대체 우리가 왜 이래야 하나. 왜!

 

출산에 대한 생각도 없고, 생계 부양을 하려고도 하지 않는 매우 훌륭하신 남편은

이 사실을 부모에게 숨기고 있다. 이제 보니 아주 의식적인 것 같다.

그러면서 '왜 니 스스로 옭아매냐며, 너는 왜 나만 문제라고 비난하느냐며, 너도 일정있으면 안 가면 되지 않느냐며' 나한테 화살이 돌아온다.

 

나는 남편이 아이를 갖지 말자고 한다고 시가에 이야기를 수차례 했다.

그럼에도 가서 아이 낳지 못하는 여자 역할을 해주고 와야 했다.

남편이 아파 들른 약방에 갑자기 나를 앉히더니 애 못낳는다고 진맥을 보란다.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누가 애를 못 낳아서 못 났나? 내 자궁이 아파 보이면(얼굴에 써있나?) 내 몸이 아프다고 말 하든지

왜 임신을 못한다고 약을 먹으라며 난리인가.

 

남이야 섹스를 하든 말든, 배란일에 딱 맞추어 남편이 사정을 해서 수정란이 잘 안착되어

내 자궁 속에서 자라든 말든 무슨 상관이며,

나도 때때론 그걸 원하는데 남편이 원하지 않는 이런 상황은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한다는 말인가!

아이에 대한 대화 자체를 남편은 거부해왔다. 역시 말 없이 티브이만 본다.

 

'저희 섹스 안 합니다. 잠도 따로 자요. 몇 달 됐어요. 서로 원치 않습니다.'

말하기 싫다. 이렇게, 특별히 필요한 말도 아니고 하기 싫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해야 하나.

 

지 스스로 술 먹어서 위가 뒤집어 진것을 두고도 시아버지는 나에게 아프면 안 된다고 말한다.

어이가 없다. 남편의 몸이 내 몸인가.

 

함께 얼굴 보며 같은 공간 안에서 산다는 것

무얼 하자면 무엇을 하고, 별 말은 없어도 지금까지 살아왔다.

상호간 다른 대화들은 일절 나누지 않는 지금 같은 상황,

나는 남편의 기분을 풀기 위해 혹은 상호 관계를 부드럽게라도 만들기 위해

말도 걸어보고 이것저것 다 해봤다.

 

헌데도 소용이 없다. 여전히 말이 없고, 대화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나를 무시하며

고고한 가부장제도의 수익자로, 사회주의자로, 게다가 환경운동가로 잘 살고 있다.

사람 관계 하나 제대로 맺을 줄 모르는 게  사람 만나는 태도 자체가 너무 무성의한데다

뭐하나 제대로 결단 내릴 줄 모르고, 지 혼자 도도하고 고고하게 살고 싶어하고,

그러면서 남에게는 이래라 저래라 선배 운동가(?하찮아서 내원!)로서 어줍잖게 조언하려 하고

 

매번 열띠게 일하고 활동하는 건 나이고, 활력도 얻지만 그만큼 소진되는 에너지도 커서 지치는 사람도 나다.

 

열이 솟구치겠다. 정말 니가 문제이기 때문에 문제라고 말하는 건데 왜 이게 일방적 비난인가.

대답을 해봐라. 대답해보라고!

 

제발이지 이렇게 나를 정체화하기 싫다. 애써 행복하게 사는 걸 보여주기 위해 거짓으로 내 삶을 포장하는 것도 싫지만, 전형적인 부인 역할을 해주며 남편의 건강과 시가에 사다줄 옷가지와 돈과 안부 전화와 그런 것들을 매번 먼저 챙기는 대상이 되기는 싫다.

 

어떻게 이를 거부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남편처럼 싸가지 없이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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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3 17:03 2011/04/1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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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를 빼놓지 않고 봤다.

개인적으로 7명의 가수 모두를 좋아하기에,

목숨을 걸고 노래하는 그들의 노래를 나 역시 재밌게 앉아 즐기고 있었다.

꼭 보게 만드는 MBC의 치밀한 전략에 나도 말려들어가는 구나,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노래들이 좋은 걸 어떡하나.

 

솔직히 김건모의 노래는 좋았다. 떨어진 김건모 만큼 다른 가수들의 노래도 다 좋았다.

립스틱 퍼포먼스를 할 때 저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떨어질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거의 비슷하게 공을 들이며 노래를 부른 듯 했다.

무엇을 기준으로 어떻게 평가할 수가 없는 무대였는데, 누군가 붙으면 누군가는 떨어져야 하기에...어쩔 수 없나보다 싶었다. 애초부터 재도전 형식을 넣었거나 서바이벌이 아니었으면 이런 잡음이 나오진 않았을텐데...

 

자처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순간 김건모 만큼은 나와줬으면 했나보다 나도.

찌들긴 했어도 초창기 데뷔곡들은 이십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너무 좋고,

그의 음성이 담긴 라이브 무대를 오랜만에 맛볼 기회를 놓치는구나 싶어 너무 아쉬웠다.

재도전에 찝찝하기도 하면서 이건 뭐야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김건모에게 주어진 기회에 안도했다.

처음 선정된 가수들이 경합하며 도전에 도전을 거듭나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후폭풍은 있겠다 싶었지만 

이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서바이벌을 문화적 코드로 차용했다가

아, 이게 아니구나 하고 선회했기로서니

대체....갑자기 원칙은 왜 나오며, 중견가수에 대한 전관예우?는 왜 나오는가. 내 생각이지만, 김건모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탈락했어도 이소라는 똑같이 행동했을 것 같다. 웬 자질 논란? 500명의 청중이 절대적 기준이라 할 수 있나. 납득하기 어렵고, 치욕스럽고... 그럼 그런 기분도 표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왜, 리얼리티 쇼에서 출연자들이 밥을 먹지 않는 것에 대해 시청자들이 목을 매게 만드는가?

꼭 굳이 그래야 하는가?

누가 누구와 약속했는가. 피디들이? 출연진들이?

피디들은 애초부터 강건한 의지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치만 출연진들은 모두가 탈락할까봐 벌벌 떨었다.

기성 가수들의 파격적인 서바이벌이 아니면, 그만큼 자극적인 코드가 아니면 대중들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물론 방송사는 대중들이 길들여진 문화적 코드가 그렇다는 핑계들을 대며, 그것을 활용하여 더 자극적인 서바이벌로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한다. 발언할 기회가 없는 대중들은 그저 수용하거나, 외곽에서 주시하고 때로 비판하며....거대 방송사와 자본이 주입하는 문화들을 수용/저항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분위기는 쫌....

 

'떨어지고 탈락하는 살벌한 분위기로 만들지 않겠다'는데도 사람들은 난리를 친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오히려 다행이지 않나.  거짓말쟁이 피디라고 속았다, 고 비난만 퍼부을 때인가.

 

순식간에 원칙을 저버리는 인간으로 낙오된 피디는 누굴 탓하며,

광대 노릇하는 가수들의 긴장과 분노는 누구를 향해 있으며,

500명의 청중들을 바보로 만든 것은 무엇인가.

 

서바이벌이 문화적 코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그것을 활용하고 있는 방송사나 자본,

거기에 이미 잠식되어 있는 대중들의 여론이

서로가 서로에게 겨눠진 양날의 검이라는 것도...

망각해서는 안 되지 않나.

 

총체적인 문제다. 누구를 자르고, 누구를 비난하고 탓하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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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4 18:54 2011/03/24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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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단상들

from monologue 2011/03/10 15:42

# 며칠 전 TV에서 영화 접속을 봤다.

파란 화면에 오타 한 자 없이 채팅을 이어나가는 능력, 오랜만에 보는 장면들이 그렇게나 반가웠다.

물론 한없이 유치한 연애드라마일 뿐이었던 것을, 그 땐 왜 그렇게 센세이션하게 느껴졌을까

여인2의 직업이 마음에 들었다.

어릴 때 봤을 땐, 전도연의 직업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었다. 그저 사람 사이의 밀고 당기기와 뭔가 또 다른 사랑이 이어질 것 같은 기분좋은 예감을 줘서...그래서 좋았는데 이제야 텔레마케터인 전도연의 직업이 눈에 들어왔다. 나의 처지와 비슷하여서. 

귓가에 맴도는 더스티 스프링필드의 노래들...

 

# 개인적으로 김영하 소설을 그닥 좋아하지는 않는다.

故 최고은 작가의 논쟁 과정 역시 그러했다. 고인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맘에 들지는 않았는데

김영하의 지적도, 한겨레의 보도도 어떤 것이든 고인에게 위로가 되는 말들은 없었던 듯.

왜 죽은 사람을 더 처참하게 만드는 걸까. 

누구에게 잘못이 있든, 세상은 너무 더럽다. 순수하든 불순하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그래서 생각난 그의 소설, 퀴즈쇼를 봤는데

학교 다닐 때 밤새 술마시며 영퀴를 즐기던 생각이 났지만 이내 재미가 없어 덮었다.

조건과 환경은 비슷할지라도 이물감이 있다, 그가 세상을 보는 것 그리고 내가 세상을 보는 것..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소부르조아들의 농담 따먹기의 장인 것일 뿐일까.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네트워크를 해야 사람들이 모인다.

모니터를 켜고 보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생각만 하는 것도 어떤 실질적 주체의 행위(로 이어질 초석)는 아닐까.

게다가 '소부르조아'라니, 저 낡은 강박관념.....기껏 하는 것은 '좋아요'나 '공유하기', 리트윗이지만 저 멀리 진짜 '자스민'처럼 불어오는 혁명의 향기들이 바로 이 온라인 상에서 공유되고 있지는 않을까.

가끔은 전혀 현실과 맞지 않게 황당무개한 고집만 내세우는 활동가적 자세,

버려야 한다.

 

#땀나게 사무실에서 나사를 조이며 파티션을 설치하니

자판을 두드리는 팔이 아프다.

누군가 볼까봐 조마조마한 마음도 똑같다.

다 가리워지지도 않는 공간에 벽만 설치했다고 해서,

자유로운 몸이 되기는 불가능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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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0 15:42 2011/03/10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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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에 대한 욕구

from monologue 2011/01/23 23:07

생협에 있다보면

많은 아이들과 마주치는데,

문득 과거의 나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단 한번도 유쾌하게 들어본 일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됐다.

예뻐하거나 귀여워 해 준적도 없었던 듯 하다.

 

헌데 왜일까.

지금에 와서야 애들이 예뻐 보이는 건

좋아서, 결혼까지 한 주제에. 너무도 사람 사는 문제에 무심했었나.

 

아마도, 둘 사이에 하나의 관계가 늘어나고

하나가 늘면 그 뒤로 따라 붙는 몇 십배의 관계들이 생기기 때문에 

게다가, 거기에 대한 전적인 책임까지 져야 하는 서로의 처지 때문에

남편은 부담스러워하는 것이리라.

 

쉽게 가져질 줄로만 알았던 아이는,

생각처럼 가져지지 않는다.

내가 아파한 경험을 남편은 알기 때문에

혹여나 갖게 되면 지우자고 하지도 못할 것 같다.

 

운동한다는 사실 이외에 남편은 부모에게 단 한번도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고

혈기왕성한 시절, 그 흔한 반항조차 해본 사실이 없었다.

그럼에도, 출산과 양육에 대한 남편의 태도는 확고하다. 

그러나 나는....

 

결혼 전에는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을 가지고

고민해보리라 생각지도 않았다.

누군가 출산에 대해 물어보면, 심지어 시가의 제일 연세 많은 할아버지한테도

나는 계획해서 낳을 거고 여튼 지금은 낳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다고 대답해왔다.

 

아주 현명하게 대처하고 있는 남편과는 다르게,

왜 출산에 대한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 걸까.

왜 초연한 남편을 보면 화딱지가 나고 굳이 나를 출산과 육아의 틀로 옭아매려 하나.

 

이해하기 어려운 고민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하고 있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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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3 23:07 2011/01/23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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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코아 점장 출신의,

생리휴가를 없애겠다던 매니저가 잘렸다.

 

뉴코아 점장 출신의 매니저를 고용한 것부터가 이상했지만

수습 기간 떼기전에 너 그만두세요 하며

밥줄 자르는 형태를 생협도 하고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지역 사람들과 활발하게 대안적인 경제를 조직해보자는 환상이 가차없이 깨지는 순간이다.

이름만 협동조합이지 돈벌레나 다름 없는 생협, 이토록 '바닥'이었다.

 

개인으로써 노동조합에 가입할지

혹은 다른 통로를 통해 이 사건을 알려낼지

고민 중이다.

 

중립적인 체 하며 생협을 편드는 생각만 진보적인 짜증나는 인간들 때문에

어쩌면 나도 그런 군상들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게,

모든 게 짜증이 난다.

 

내가 추구하던 가치관은,

왜 너와 나는 다른가. 라는 질문보다

왜 너와 나는 다를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 천착하게 했다.

여기서 제발 좀 벗어나자고 택한 공간도 생협이었다.

헌데 다시 내게 묻는 질문은 후자로 돌아온다.

 

된장, 아무 곳도 아니더라.

피와 살이 튀어나가는 살벌한 공간이었다, 여기도.

끈질기게 장기적인 전망을 안고 버틸 것인가.

대립각 세우며 들이밀고 싸우다가,

기어코 박차고 나갈 것인가.

무엇부터 변화시켜야 하나.

변화를 수용할 사람들이라 상정하는 것부터 무리였나.

 

그들과 똑같이 되지는 말자, 적어도.

오늘 하루도 내게 거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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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2 00:35 2010/12/12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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