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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3/20
    한심하다.(1)
    풀소리
  2. 2007/03/19
    거절하기...(2)
    풀소리
  3. 2007/03/17
    왜 나는 제사를 지낼까?(6)
    풀소리

한심하다.

풀소리님의 [변한 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너무나 변했다.] 에 관련된 글.

날짜가 넘었으니 어제구나.

청주 우진교통이 오랜 우여곡절 끝에 다시 우리 노동조합으로 들어왔다.

 

총연맹에서 우진교통 노동조합 대의원대회를 잡아놨는데, 예상했던 불상사가 발생했다.

대의원대회는 10시부터인데, 대의원들은 8시 30분쯤 왔고,

우진교통 현 대표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대의원대회를 방해하기 위해 총연맹 앞으로 20여명이 몰려왔다.

 

조합원들끼리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급박한 전화가 잇다라 걸려오는데,

월요일이라 자유로는 주차장을 방불케하였고, 나는 2시간이나 걸려 9시 20분경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난 현장으로 갈 때 이미 어느 정도 봉변은 각오하고 갔다.

봉변을 당하더라도 대의원대회를 치르는 조합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이랄까...

 

현장에 가니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대회를 방해하러 온 자들은 흥분해 있었고, 술에 취해 있는 자들도 있었다.

일단 대의원들을 입장시키려고 하는 순간 이들은 내게 덤벼들었고, 나의 가벼운(?) 몸뚱어리는 밀리고 밀려, 총연맹 1층 화장실로 쳐밖히며 폭행까지 당했다.

 

폭행을 당하면서 한심하다는 생각과 이렇게 해서라도 대의원대회를 성사시켜야겠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우진교통. 이른바 자주관리기업 1호다. 그놈의 1호라는 것 때문에 온갖 수모를 다 당하면서도 조직을 지키고 바로 세우려 애썼는데, 참으로 결과는 참담했다.

민주노총 충북본부 사무처장을 지낸 대표부터 우리 노동조합과 핵심 간부들에 대하여 온갖 음해를 하면서 결국 총연맹 규약까지 어겨가면서 우리 노동조합을 탈퇴하고 충북지역본부에 직가입한 바 있다.

 

돌이켜보면 우진교통은 내가 진보 블로그에 발을 디디게 한 사업장이기도 하다.

자주관리기업을 출범시키면서 출범식 스케치를 올리기 위해 진보블로그를 쓰기 시작했으니까.

 

난 가끔씩 내가 처음 썼던 포스트(위에 트랙백 건)를 꺼내 읽곤한다.

저날의 감동은 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고민과 함께 말이다.

자주관리기업은 출발의 결의가 왜 그렇게 쉽게 변질되는 것일까...

변질된 혁명처럼 변질된 결의는 참으로 참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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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하기...

나는 거절을 잘 못 하는 편이다.

어쩌면 심한지도 모르겠다.

 

가난하니 누가 돈과 관련한 부탁을 하는 이야 없지만,

일과 관련된, 또는 술 약속 등 만남과 관련된 부탁(?)이 많은 편이다.

 

난 누가 부탁을 하면 우선 들어줄 수 있는 방안부터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무리를 해서라도 들어줄 수만 있으면 들어주려고 한다.

그렇다고 내 성격이 좋다는 얘기도 아니고, 내가 잘 하고 있다는 얘기도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고치고 싶은 성격 중의 하나이다.

 

비유가 맞는 지 모르겠지만, 저축을 하고 그 저축된 범위에서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예정된 수입을 고려해서 미리 돈을 쓰는 그런 꼴이랄까?

돈이 아니라 시간을 그렇게 쓰는 꼴이다.

그러다보니 시간에 늘 쫒기게 된다. 힘들기도 하다.

 

모르겠다. 그렇게 힘들고, 스스로도 싫어하면서 고치지 못하는 이유를...

일은 일대로 제때 처리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스스로 자학하고, 화내는 꼴은 또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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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제사를 지낼까?

1.

연수원으로 가야하나 아님 바로 집으로 가야하나. 5시가 가까와 오는데, 아내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5시 15분 이번에도 안 되면 연수원 가는 걸 포기하고 집으로 가야지... 그런데 마침 아내가 받는다.

 

'나 오늘 연수원 신입생 환영회가 있어서 8시에 끝나는데, 수업듣고 가면 안 돼?'

'... 몇시까지 올 수 있는데?'

'9시 쯤.'

'9시 반까지 꼭 올 수 있으면 그렇게 해.'

 

아내의 목소리는 불만이 섞여 있다. 모르겠다. 내가 내심 그렇게 짐작했기 때문에 그렇게 들렸는지도 말이다. 하여간 내가 받은 느낌은 불만이 상당히 섞여 있었고, 그것은 내게 다시 없는 압박이었다.

 

연수원 수업을 마치고, 함께 수업을 듣는 자문위원이 자신이 책임진다고 환영회에 잠깐 갔다가 가자고 한다. 그래야 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양해를 구해 집으로 왔다.

 

2.

오랫동안 활동해왔었고, 기존 질서를 부정하고 새로운 질서를 지향했던 나였지만, 이상스럽게 지금까지 꼬박꼬박 제사를 지내고 있다. 그것도 명절 빼고 1년에 다섯번 씩이나.

 

누구 제사냐고? 말하면 놀라겠지...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이렇게 다섯번을 지낸다.

 

오늘이 증조할머니 제사다. 물론 지냈다.

 

제사를 지내는 날이면 마음이 무겁다. 제사를 안 지냈으면 하는 아내와 이런 사정은 아랑곳 않고 제사지내는 걸 '존재의 이유'로 여기는 엄마...

 

오늘 제사를 지내면서 이제 증조할아버지 할머니는 안 지내도 되지 않을까? 아니야, 할머니 할아버지를 묶어서 한꺼번에 하는 건 어때? 등등의 생각이 지나갔다.

그러면서 내가 왜 제사를 지내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3.

내가 제사를 지내는 이유는

나태한 이들이 잘 바꾸지 않는 그런 종류의 '습관'일 수도 있지만,

엄마에게 행하는 '보상' 성격이지만, 나름대로의 '배려'(?)가 아닐까 한다.

 

배려라고 써놓고 보니 조금 이상하다.

오히려 하지 말라는 일만 골라서 하는 불효자들이 무언가 '하나'를 효도의 '상징'으로 작심하고, 그거에만 '집착'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말이 적절하겠다.

 

그래 이러나 저러나 이런 식이라면 제사를 지낼 적마다 늘 노심초사해야 하고, 우울해 해야 할 것 같다.

 

알면 바꿔야 하는데, 그거이 잘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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