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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30
    심상정, 그리고 김부선(5)
    풀소리
  2. 2008/03/26
    (4)
    풀소리
  3. 2008/03/21
    파란풍차 아저씨는 어디로 갔을까?
    풀소리

심상정, 그리고 김부선

라울님의 [끼이익~~~ - 심 05] 에 관련된 글.

심상정도 멋있지만, 김부선도 참 멋있더라.

 

     문소리가 지지연설을 하고 나서 심상정 옆에 서있다. 김부선도 막 도착했다.

 

아직은 비가 차갑다.

차가운 봄비가 하루 종일 내린 어제

심상정 집중유세가 있었다.

12시부터 4시 30분까지 영화배우 문소리가 함께 했고,

4시부터 6시 30분까지 영화배우 김부선이 함께 했다.

 

      지지연설에 앞서 사회자로부터 소개를 받는 김부선

 

김부선은 전설적인 명화(?) 애마부인3의 주연배우였다고 한다.

당시엔 영화면 영화, CF면 CF, 암튼 잘나가는 배우였다고 한다.

 

      지지자들과 함께 한 김부선/ 오른 쪽 두번째 내 아내도 끼었다.

 

'제가 삼성을 비롯해 재벌 아들들하고 마약에 취해 놀고 있을 때

심상정 의원은 구로공단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하고 있었어요.'

 

      사진을 찍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마구 몰려들었다. ㅎ

 

상당히 직설적면서도 멋진 지지연설이었다.

그녀는 그 시절을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한다고 하는데,

스스럼 없이 얘기하는 것을 보면서

상처를 넘어 뭔가 원숙한 인격마져 느껴졌다.

내가 좀 오반가?

 

      피우진 중령도 상당히 튀는 편인데, 김부선에게 뭍혔다. ㅋ/ 몸이 안 좋으신 김해경 대표도 오셨다.

 

암튼 그녀를 보면 뭔가 자유의 향취가 느껴진다.

물론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김부선 자체가 아니라 내 마음 속에 있는 한 부분이

김부선을 인상지우게 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말이다.

 

      나도 사진 찍는 대열에 끼었다.

      / 낯술을 가볍게 먹은 상태라 늘 유모어가 빛나는 이덕우 변호사를 가운데 세웠다.^^;

 

대마초 합법화를 위한 헌법소원을 냈었기도 하고,

사람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리는 것도,

율동단과 섞여 춤을 추기도 하고,

길옆 가게에 불쑥 들어가 심상정을 찍으라고 열심히 홍보도 하고...

암튼 좋았다.

 

      선거 운동원들과 함께 춤추는 김부선

 

요즘 진보신당을 생각하면

우울하기도 하지만,

심상정이 꼭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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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봄...

세상이 아무리 칙칙해졌어도

상처가 아문지 아무리 오래 됐어도

봄에 대한 남다른 감흥은

이미 벗어날 수 없는 성정으로 굳어 있구나...

 

대림역 앞 개나리꽃/ 전날 내린 비 탓인지 깔끔한 꽃망울을 달고 있다.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대림역을 내려오자마자

노란 개나리가 화~알~짝 피어 있었다.

 

지난 주까지 전혀 기미가 없었는데,

그냥 겨울 풍경 그래로였는데,

아마 따뜻했던 날씨와

전날 하루 좋일 흠뻑 내린 봄비 덕분에

그렇게 활짝 피어났나보다...

 

성연이 선인장/ 예쁜 꽃을 피웠다.

 

2.

총무실로 자리를 옮기며

'은행 문닫으면 나도 업무 끝이야' 하고 떠들고 다녔는데,

걱정하던 동지들 말 그대로

어제는 새벽 2시까지 작업을 했다.

제길... 또 엇나간 선택인가 ㅎ

 

위에서 본 성연이 선인장

 

3.

그러고 보니 집에 선인장 꽃도 피었었지.

성연이가 사온 선인장으로

이름하야 성연이 선인장이다.

 

2년 전에도 예쁜 꽃들이 피었었는데,

작년에는 건너 뛰더니,

올해는 또 다시 예쁜 꽃들이 피었다.




꽃을 피운 난 옆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는 성연이 선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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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풍차 아저씨는 어디로 갔을까?

파란풍차.

우리 동네에 있던 빵집 이름이었다.

 

우리는 서울에 내내 살다 1999년 12월에 이곳 고양시 원당으로 이사왔다.

삶이 조금씩 뿌리를 내리면서 이 낯선 동네에서 단골집이 하나 둘 씩 늘어갔다.

파란풍차는 마트 다음으로 처음 단골이 된 집이었던 것 같다.

 

빵도 빵이지만, 주인 아저씨의 따뜻한 미소가 좋았다.

각종 선거 때면 누구하나 관심같지 않고 거들떠 보지 않는 우리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로 힘을 주기도 했었다.

 

제법 많은 단골을 가진 파란풍차였지만,

동네에 넓은 평수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사정은 급변했다.

신흥 아파트 주변으로 화려한(?) 상가들이 생기고,

유명 체인 제과점들이 둘씩이나 들어섰다.

 

사람들은 냉정하다.

간혹가다 여전히 의리(?)를 지키는 우리네 같은 사람들도 있지만,

어차피 우리들은 소수일 뿐이다.

 

파란풍차 아저씨가 하던 막걸리집/ 빛바랜 청사초롱처럼 문닫힌 지 오래다.

 

경쟁에서 밀린 아저씨는 그 자리에 막걸리집을 냈고,

어쩌다 들르면 장사가 썩 잘 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겨울 어느날

마을버스 차창너머로 '임대문의'라는 쪽지가 붙은

굳게 닫힌 문짝을 봤다.

 

참 쓸쓸했다.

파란풍차 아저씨는 어디로 갔을까.

 

지금도 곳곳에선

떠날까 말까를 고민하는 또 다른 파란풍차 아저씨들이 많겠지...

그들이 떠나 향할 수 있는 곳은 또 어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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