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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 베이비시터

몸이 쉬 지치고, 더디 회복된다.

마음도 마음이지만, 몸을 돌봐야겠다.

정말 그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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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때 교육일정이 잡혀서

진서가 걱정이다.

매번 이리저리 맡기고 부탁할 수도 없고.

 

그래서 베이비시터를 고용할 생각까지 하고 있다.

안산에서 누가 잘 돌봐줄 사람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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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남의 마음...

나의 마음만 있는줄 알고 철없이 나대며 살다가

남의 마음이 무서운줄 알고 눈치코치로 살다가

나의 마음이 불쌍해서 까짓 남 눈치 볼것 뭐 있나 싶다가 이제 다시 ,

남의 마음 살피는 일이 곧 내 마음을 잘 보살피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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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철도노동자가 파업한다.

시민이라 이름 붙혀진 사람들이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자본과 권력은 그 아우성을 무기 삼아 파업을 잡아 가두려 한다.

 

시민이라 이름 붙혀진 사람들이여,

아무렇게나 아우성하지 말자!

파업은 계속될 것이다.

 

파업으로 자기 힘들것이 걱정이라면,

언제든 파업할 수 있는 노동자들이

무엇을 바라는 지

무엇을 외치는 지

미리미리 관심하자.

 

파업이 두려우면,

언제든 파업할 수 있는 노동자의 바램과 외침을

미리미리 함께 외치자.

 

파업이 힘들면,

지금 파업하는 노동자의 바램과 외침을

지금 당장 함께 외치자.

 

시민이라 이름 붙혀진 사람들이여,

여러분의 대부분은

언제든 파업할 수 있는 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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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통신 24〉이주노동자와 망명자

〈전태일통신 24〉이주노동자와 망명자 2006-03-02 오후 12:06:31

이번 전태일통신의 필자 윈라이 씨는 1972년 버마에서 태어나 대학생이던 1990년 버마 민주화시위에 참여했다가 군사정부의 탄압과 추적을 피해 조국을 탈출, 중국과 태국을 거쳐 1993년 한국에 왔다. 1995년에는 다시 태국 국경 근처로 가서 버마 민주화운동가들과 함께 활동하다 1996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2004년 버마행동이라는 버마민주화운동 단체를 공개적으로 결성해 활발하게 활동을 벌이고 있는 윈라이 씨는 2004년 한국정부에 난민신청을 했는데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이 글을 통해 버마 인권운동가들의 소박하면서도 절절한 소망의 일단을 우리 독자들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버마 민주화운동 활동가들은 버마 군사독재 정부가 나라 이름을 미얀마로 바꾼 것을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버마 라고 부르고 있다. 〈편집자〉


그리운 어머니.

먼저 사랑하는 모든 가족에게 사과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항상 아버지께 "제가 가족을 전혀 돌보지 못하고 있는 것 때문에 항상 미안해하고 있어요"라고 말 씀드립니다. 지금도 아주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아버지께서는 저를 이해해 주시겠지만 어머니는 아마 이해 못하시는 것 같아요. 어머니 심정도 제가 이해합니다. 저를 걱정하는 마음 때문에, 가족이 따로따로 헤어지게 될까봐 미리 말리셨던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저는 가끔 제가 아버지와 외할아버지를 본받아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릴 적부터 가난한 이웃 일이라면 만사를 제치고 돕는 아버지 모습을 많이 보아왔지요. 언제던가요. 아버지께서는 가난한 이웃들이 장례를 치를 때 돈이 없어 화장터까지 시신을 옮기지 못해 애태우는 것을 보고는 운구차를 마련해 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가난한 우리 동네에는 운구차가 없어 시신을 옮기지 못하는 일도 많았고, 시신을 어찌 옮긴다 해도 가족이 화장터까지 따라가지 못하는 일도 많았지요. 그때 주변 사람들이 반대해서 뜻을 이루지 못하셨던 아버지께서 안타까워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외할아버지도 마찬가지셨어요. 외할아버지께서는 민주화운동을 하던 이들이 모여 일할 자리가 없다는 소리를 듣고 당신 집을 선뜻 내주셨습니다. 그 일! 때문에 외할아버지께서 체포되어 온갖 고초를 다 겪으셨던 일도 마음에 새긴 듯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저는 어머니와 가족 모두를 사랑하고 항상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억압 속에서 살면서도 자유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머니, 잊지 마세요. 지금 제가 가족도 만나지 못하고 먼 나라에서 고생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독재정부 때문입니다. 독재 정부가 얼마나 나쁜지 잘 생각해 보시면 알 거예요. 우리 국민은 항상 엄청난 억압 속에 살고 있지만 그 억압이 얼마나 큰지도 잘 모르고 자유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있는 것뿐이랍니다.

어머니께서는 저를 무척 걱정하시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몸도 건강하고요.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건강하신지요. 누나와 동생도 잘 있는지요. 어머니 생각나세요? 누나가 결혼한다고 전화로 말씀하셨을 때 제가 울었던 일 말입니다. 그때는 제 마음이 너무 섭섭하고 슬프고 너무도 그리워서 울었어요. 하나밖에 없는 누나를 시집보낸다니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섭섭하냐고요? 아닙니다. 어머니, 지금은 조카들이 보고 싶고 안아주고 싶을 때마다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그 귀여운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전화도 가끔 하죠. 동생이 결혼할 때도 저는 놀라고도 서글펐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아시지요? 제수씨가 제 친구 동생이라는 것을. 그 친구는 1988년 저와 함께 거리 시위를 벌이다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친구의 마지막 숨결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의 여동생이 제수가 되다니요. 참으로 놀랍고 반가운 일입니다.

그동안 새로운 가족이 태어나기도 했지만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지요.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저는 뒤늦게 알고서 사무치는 그리움과 죄송한 마음 때문에 무척 괴로웠습니다. 그리운 어머니, 제가 집을 떠나온 지도 벌써 13년이 됩니다. 그동안 쌓인 그리움과 외로움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을까요?

독재정부는 이국에서도 제 나라 국민을 괴롭힙니다

1990년 스님과 학생들의 시위가 거세지자 독재정부가 목을 죄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만달레이에서 시위에 참여했다가 주변 동료들이 발각되어 잡혀가는 것을 보고 무세(버마 북부 도시)를 거쳐 중국 쉬리로 탈출했습니다. 다시 태국을 거쳐 한국에 오기까지 여정은 길고도 한심스러웠습니다.

한국에 와서 처음에는 숨어 있듯 조용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국에는 돈을 벌기 위해 와 있는 버마 사람이 많습니다.  저도 일하면서 주변 친구들을 조금씩 돕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급작스런 병으로 사경을 헤매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열심히 일해주고도 월급을 못 받아 괴로워했습니다. 적지 않은 버마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아팠으며 돈 문제로 힘겨워 했습니다.

제 처지도 무엇 하나 다를 바 없었지만 저는 친구들을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간혹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만나 마음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더군요. 저와 비슷한 이유로 한국에 와 있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고, 어떤 친구들은 버마를 떠나면서 비로소 세상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친구들은 버마보다 더 발전되고 민주화된 한국에서 버마를 바라보며 그동안 몰랐던 진실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그 친구들과 뜻을 합쳐 새로운 움을 틔워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우리 정부는 여기 한국에서까지도 국민을 착취하고 못살게 굴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버마인이 숨도 못 쉬게 감시하고, 활동을 방해하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뜯어내지요. 저와 친구들은 대사관이 하는 일을 감시하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합니다.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감시와 항의마저 없으면 더욱 기승을 부리겠지요.

언제 우리 가족이 모여 살 수 있을까요?

한국에는 우리 버마인들을 비롯해 동남아시아의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와 있습니다. 한국은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된 나라지만 한국에 와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아직 제대로 된 인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어요. 열심히 일한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또 대부분의 경우 힘들고 어려운 3D 업종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열악한 환경과 부당한 대우로 몸과 마음이 상하고 있어요. 그중에서 미등록으로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더욱 심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미등록되어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언제 단속에 걸리고 잡혀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몸이 아프더라도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기 힘든 친구들도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저는 우리 버마 사람들을 비롯한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저와 생각이 같은 이주노동자들과 또 한국의 인권활동가들과 함께 싸우고 있어요. 한국의 인권활동가들은 예전에 우리나라와 같은 군사독재 정부와 싸운 경험을 가지고 있고 지금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아직 한국 사회에서 많지 않아요.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이주노동자들을 이상한 눈으로 보고 있고 차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활동으로 이러한 한국의 상황들이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요. 한국에도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집을 떠나 떠돌며 더 넓은 세상을 배우고 있습니다. 저는 거친 세상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키웠고, 기술을 배우고, 밥벌이 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적인 사회를 이룩하고 싶다는 뜨거운 열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이 뜨거운 불씨를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는 것뿐입니다. 어머니, 어머니를 뵐 수도 없는 이 먼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것뿐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저를 안타까워하지 마세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기쁘답니다. 저는 많은 친구들과 진실을 나누고 열망을 키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 어릴 적부터 집을 떠나 생활하는 일이 많았던 저는 아주 작지만 소중한 꿈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어머니께서 간직하고 계신 꿈과 같은 것이겠지요. 저는 우리 가족이 모두 모여 함께 살게 되기를 바라고 고대합니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것입니다. 어머니, 제가 달려갈 때까지 건강하시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한국에서 윈라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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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목사

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선교연대(옛 민중교회연합)이 기독교운동의 새로운 희망을 만들기 위해 준비한 주민운동(CO ; community organization)교육훈련과정이 시작되었다.

총 9명의 30대 젊은 목사, 전도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 교육훈련을 통해  '동네목사'가 많이 생겨나길 바란다.

배타적으로 자기교회와 교인들만 섬기는 교회목사만 넘쳐나는 이 때,

동네를 섬기고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동네목사로 자기 삶을 결단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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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기도..

 

감리교청년들이 모여 평화 캠프를 열었다.

지난 2004년 여름부터 이번이 3회째인데, 세번 모두 워크샵 진행자로 참석했다.

 

이번엔 특별히 모든 과정을 마치며, 참가자들이 각자의 고백을 담아 '평화의 기도' 혹은 '주기도문'을 작성했다.

 

보수적인 신앙교육만을 받고 자라서 그저 착하고 순하기만 한 청년들,

2박3일의 평화캠프를 마친 그들의 기도는 진지하다.

 



 

< 기도문 >


주의 기도

하나님, 당신은 나의 삶에 전부이심을 늘 고백하고 싶지만, 때로 그 고백에 내가 합당한 사람인지 고민함이 부끄럽습니다.

이 부끄러움이 더 계속되지 않도록 나에게 당신의 거룩함이 자리할 수 있는 고백이 있는 삶이 되게 하소서

이 나라가 당신의 땅이 됨을 고백합니다. 이 땅이 당신께 반하는 것에게 해를 당하지 않도록 우리의 눈과 귀를 더욱 섬세하게 움직여 주소서, 우리의 먹을 것이 나만의 먹을 것이 되지 않게 하시고, 우리 모두가 함께 나누어야 할 고통이 저들만의 고통이 되지 않게 나의 손과 발을 섬세하게 움직여 주소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살아 움직이며, 밝은 것들로 이 땅에 주님의 생기가 불어 넘치도록 인도 하소서

내가 깨어 하나님께 고백할 수 있음을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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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빛을 통과시키는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색과 성격으로 그 빛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색깔들 속에서 하나님을 상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나의 눈은 예쁜 색들을 즐기며 다니기보다 그 스펙트럼을 갖고 싶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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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늘에도 계시고, 하늘 밖에도 계시고, 우리 마음속에도 계시며, 우리들의 이웃들과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신 것 같이 우리도 거룩하기 원합니다.

새벽에 쌓인 하얀 눈과 계곡에 흐르는 투명하고 세찬 물결처럼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기 원합니다.

죄악과 우리안의 연약함, 게으름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만왕의 왕으로 오셔서, 이 땅의 왕이 되실 수도 있었지만.

겸손히 저 높은 십자가 위에서 한없이 낮아지신 그분,, 예수 그리스도..

주님의 거룩함을,, 주님의 화평을,, 우리 몸과 마음에 담게 하소서.


우리가 평화를 위해 달려갈 때, 우리의 자랑과 우리의 행위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모습을 십자가 뒤에 감춥니다. 나 자신은 죽고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게 하소서.


하나님,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임하게 하소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땅,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께 유업으로 주신 것처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사신 이 땅을, 우리 마음속에 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어,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게 하소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풍족하게 채우시는 하나님

풀 한포기, 생명하나도 귀히 여기시며 먹이시는 하나님,

우리가 풍족한 은혜를 이웃에게 나누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 전쟁과 폭력, 아픔과 눈물이 가득한 세상에서,

세상을 욕하며 정죄하기보다, 그것마저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눈물로 용서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가 씻을 수 없는 우리의 죄를 씻어 주셨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게 하소서.


게으름, 폭력, 욕심에서 우리를 구하시되, 다만 악에서만 우리를 구하소서.

거저 받는 은혜가 아니라, 희생과 노력, 헌신으로 단련된 우리의 모습으로

세상의 불의와 싸우게 하소서.


하나님이 주신 이 땅, 창조의 아름다움이 있는 완전한 이곳에..

예수그리스도의 청지기로 서게 하소서, 세상을 향해 청지기로 서게 하소서,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

모든 권세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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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계신 모든 만물의 어머니

두려움과 존경과 사랑을 받으세요.

천국을 이곳에 이루게 해주세요.

이곳의 뜻이 하늘의 뜻을 넘지 않게 해주세요.

남지 않게 또 쌓아두지 않게 오늘 하루치만의 양식을 주시고

제게 나쁜 일을 한 사람을 용서할 때,

저의 죄도 용서해주세요.

나 스스로 나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해주시고

선한 길로 갈수 있도록 굳센 의지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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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힘든 노동으로 지친 동남아시아 어린이들의 손을 잡아 줄수 있는 따뜻한 손을 주소서

가난과 폭력가운데서 허덕이는 여성들과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는 가슴을 주소서.

정이 그리워 방황하는 탈북 청소년들을 안아 줄 수 있는 가슴을 주소서.

가던 길을 되돌아가 도움을 청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발을 주소서.

모든 사람들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을 주소서.

이 기도를 계속할 수 있는 입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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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기도

나의 아버지 하나님, 분쟁과 갈등이 넘치는 세상 속에 참 평화를 바라보도록 고민케 하심을 감사합니다. 늘 새로운 마음으로 주님이 주시는, 주님이 가르치시는 참 평화가, 내안에, 나와 주님의 교재 속에 있게 하시고, 생활 속에서도,, 교회 안이나. 사회 속이나 참 평화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고, 체험하게 하소서.

이제 평화의 도구로, 평화의 씨앗으로 새롭게 결단하고 나아갈 때, 세상의 평화 속에서 그 중심을 잃지 않고 주님의 평화의 씨앗이 되어 참 평화의 열매를 잘 맺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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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사랑하는 내 당신

둘도 셋도 넷도 없는 내 당신.


당신의 숨소리와 눈길을 기억하며

오늘도 조용히 눈을 감아봅니다.


높은 산이 낮은 동산이 되며

굽은 골짜기가 곧은 대로가 되겠다던 당신의 말씀 기억하며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지고

산이 옮겨지길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높디높은 산을 삽 한 자루 뜰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아니, 흙 한줌 쥐어 나를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당신의 나라가 이 땅위에 그리고

이 나라와 민족 위에 임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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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교회 어린이부 교사로 지난 1년 동안 함께 했던 한 아이.

 

그 아이가 이제 중학생이 되어 함께 공부할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지난 성경공부 시간엔 좀 특별한게 하고 싶었다.

 

종이를 한장 주고 나무를 그리게 했다.

그리고 열매가 맺히는 자리엔 중학생이 되어 해보고 싶은 것을,

뿌리엔 그것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그리고 쓰게 했다.

 

좀 실망스러운 그림을 나에게 보여준다.

열매에는 온통 '물질' 투성이다.

'돈','핸드폰' 등등... 그러다 '친구'

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라니까, 아이는 가지고 싶은 것을 잔뜩 늘어놓았다.

그렇다 보니 뿌리에는 다시 '돈'이 나오고, 그 돈을 줄 '엄마', '아빠'가 나온다.

 

그래도 이야기는 들어 봐야지.

아이의 그림 설명은 나를 놀라게 했다.

'중학생이 되서 왕따 당하지 않을려면 친구를 많이 사귀어야 하고, 친구를 많이 사귈려면 돈도 많아야 하고, 핸드폰도 폼나는 걸로 있어야 돼요'

 

마음이 무거워온다.

졸업과 입학의 기쁨과 희망보다 먼저 찾아오는 왕따의 두려움.

뭔가 이야기 해야하지만 말문은 꽉 막혀버렸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그러다가 문득.........

 

예수는 왕따들의 친구였는데....

왕따들을  왕따 시키던 사람들은 예수를 미워했는데....

그래서 예수도 왕따가 되었는데....

 

2천년이 흐른 지금,

왕따들은 여전히 왕따로 남아 있고,

예수도 그 모습 그대로이고,

왕따들을 왕따시키던 자들도 여전하다.

 

예수는 2천년 째 만인의 존경과 사랑을 뒤로한채 왕따들의 친구로 살아있고,

그 예수가 사랑한 왕따들은 여전히 맘여린 왕따로 살고 있고,

예수와 왕따들을 왕따 시키던 그 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시기와 질투가 가득한채

만인의 적으로 2천년을 살아오고 있다.

 

아이와의 마지막 수업은

왕따의 친구로 왕따가 되어 우리 곁에 있는 예수 이야기로 마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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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청계천...

잘만들어진 관광상품,

그 청계천을 보며 가슴 아픈 사람들이 많겠지요.

 

그 옛날 원래의 청계천에서 쫓겨나

자식 뉘울 작은 집을 찾아 떠도는 가난한 이들.

그들과 함께 주거권 운동을 하고 계신 어느 활동가는

또 이렇게 청계천을 슬퍼 하고 계시는군요.

 

* 임덕균 ,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조직국장

 

 

청계천


임덕균

거적떼기 루핑 집 그림 같은 도시 만든다고 쳐부수더니

쫓겨난 철거민 피눈물 세월 속에 잠들고 

화려한 도심 기억마저 잃어버린 청계천


하수구 고쳐 복원한다더니

강바닥 시멘트 아래 내려않고

버들강아지 콘크리트 벽 뒤 숨죽여 우는 구나!


관광객 환호하는 노래는 솟아대는 분수대 울음인가!

하늘이 준적 없고 땅이 품어 준적 없이

억지로 펌프가 돌아가는 청계천…….


네 모습 나를 닮고

내 모습 너를 닮아 서러운데

화려한 조형물 배경삼아 우리아기 사진 찍는 청계천


아! 버들치는 어디로 가고 천변 바람 어디로 갔는가!

물 따라 인파도 흐르고

자연 없는 청계천에서 나도 흐른다…….


2005.11

청계천 끝자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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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고 팔짝 뛰고 환장하다

항상 그렇다!

 

대부분 그렇다!

 

 

지도자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는 옳다!'는 전제를 가지고

 

통크게 마음도 열고,

 

너그럽게 용서도 하고,

 

'아주 작다'고 생각하는 자기 잘못도 인정한다.

 

 

자기니까 그럴 수 있다는 듯 그렇게 한다!!!

 

 

 

그래서.........

 

지도자가 아닌 사람들은,

 

"답답해서 미치고 팔짝 뛰고 환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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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끼리...

누나네나,

우리네나...

아무리 용쓰고, 난리 친들,

쟤들이 끼워주기나 할꺼 같아?

어차피 쟤들은 자기들끼리만 잘먹고 잘살라고 작정한 애들이야!

그러니,

허튼데 힘 빼지 말고

우리끼리,

우리끼리나 잘살아 보자고!

 

우리끼리 어떻게 하면 재미나고 배부르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하고,

얘기하고, 그렇게 살고,

그렇게 사는데 쟤들이 방해하면 우리도 힘내서 싸움박질하고,

 

쟤들이 지들 좋은 법 지들 멋대로 만드는 것 처럼,

우리도 우리들 좋은 법 우리 멋대로 만들고,

그것도 또 쟤들이 방해하면 쫓아가서 몽둥이로 패주고,

 

쟤들이 지 애들 모아놓고 혼자 잘사는 법 가르칠 때,

우리는 우리 애들 모아서 함께 잘사는 법 가르치고,

그것도 쟤들이 못하게 지랄하면 물어 뜯고, 할키고,

 

...............

...............

 

그렇게 우리끼리 잘살아보자고.

 

 

우리교회 아줌마(나도 우리 교회의 당당한 아줌마다)들이 모여서

이렇게 수다 떨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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