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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산동네 의풍리.

밖에는 햇살 몇 조각들 모여,

가을장마의 물기 툭툭 떨어내듯

조곤조곤 안부인사를 건넨다.

토요일 오후 동네 카페에 앉아

무심히 창밖을 내다본다.

 

<그리운 산동네 의풍리> - 정기복 -

 

담론이 끝나고

철문이 내려진 거리에

스산한 겨울이 어슬렁거리면

구겨진 전단 같은 퇴색한 잎들이 날리고

이제 나는

그리움의 수배자가 된다

그 많던 사람들

뿔뿔이 흩어져 어디로 갔나

지워진 얼굴들 대책 없이 호명하다가

가슴에 품었던 산동네 하나 끄집어낸다

 

살얼음 진창 밟으며

사람의 하늘 열던

동학군 깃들어 짚신 고쳐매던 그곳

그믐 가시밭길 봉화 치켜들고

새벽을 밝히던 산사람들

싸릿불 지펴 감자 굽던 그곳

비탈산 불 놓아

조며 수수며 메밀 갈던

생떼 같은 화전민들 목숨 부쳐먹던 그곳

그렇게 시절에 쫓긴 땅벌들이 더덕 뿌리 흙살 박아 물 차오르던 곳

 

암울에 지쳐 병이 된

이 계절에 산동네 의풍리 떠메고 와

만나는 사람마다

한 자락씩 떼어주고 싶다

 

- 정기복 시집 <<어떤 청혼>> 중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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