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22/10/14

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22/10/14
    늙은 황소의 죽음..
    곰탱이
  2. 2022/10/14
    합리론과 경험론의 대결(삼봉과 동자의 대결)
    곰탱이

늙은 황소의 죽음..

조선 건국 과정을 그리는 역사소설 <<혁명>>(김탁환 지음,  민음사, 2014) 중 제2권에서 나온 내용 중에서 발췌함(65~69쪽). 

 

============================================================= 

 

곡소리에 잠을 깼다. 옆집 늙은 황소가 간밤에 죽었다. 늙은 농부는 쓰러진 황소 옆에서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수십 년 정이 들면 사람이 짐승보다 낫다는 말도 있어 참고 넘기려 했다. 점심까지 곡이 이어졌기에 옆집으로 갔다. 방 한 칸, 부엌 한 칸이 전부인 농부는 부엌에서 밥을 짓고 소를 키웠다. 여자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혼인을 했는데 사별한 것인지 아내가 집을 나간 것인지 혹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혼자 살았는지는 그때그때 말이 달았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니 그만 슬픔을 거두라고 권했다. 농부가 울음을 삼키곤 물었다. 

"부모 친척의 상(喪)을 제외하고 생명붙이를 위해 하루종일 운 적이 있습니까?" 

"없소." 

"왜구들이 침탈하여 많은 이들이 죽거나나 끌려갔습니다. 그때 혹시 울지 않았습니까?" 

"울지 않았소." 

"흉년이 들어 또 마많은 이들이 굶어 죽은 해를 기억하시지지요? 그때 혹시 울지 않았습니까?" 

"울지 않았소." 

"어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뒤이어 돌리병 때문에 열두 마을의 주민들이 몰살한 적도 있습니다. 그때 혹시 울지 않았습니까?" 

"울지 않았소." 

"그렇다면 내가 우는 것을 말릴 자격이 없습니다." 

"울어 보지 않았다고 어찌 이치를 따지지 못한단 말이오? 울음에 으르지 않더라도 알고 행해야 하는 일이 이 세상엔 가득하오." 

"슬픔을 느끼지 않고 이치만 따지기 때문에 백성이 정치가를 믿지 못하는 겁니다. 왜구에게 어느 날 갑자기 죽임을 당하는 일, 흉년이 들로 돌림병이 도는 일, 또 수십 년을 함께 산 황소가 갑자기 숨을 거둔 일, 이 불행들을 어떤 이치로 명쾌하게 설명하시렵니까? 우는 것 외엔 답이 없는 일도 꽤 많습니다." 

비로소 그 농부가 땅땅만 갈고 곡식만 시심는 이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노을이 깔리자, 곡소리가 멈추고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농부의 선창에 이어 수많은 목소리가 소리를 받았다. 집 안은 물론 마당과 길까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소 모는 소리>를 부르는 중이었다. 

 

이랴이랴 워디위디 이랴이랴이랴 

가자 가자 어서 가자 쉬지 말고 어서 가자. 

이 밭 갈아 옥토 삼고 씨앗 심어 길러 보세. 

이 곡식을 거둬들여 부모 봉양 다하고서 

자식 놈들 입고 먹여 이 한세상 살고 지고 

이랴이랴 워디 이래이 쯔쯔쯔쯔 이랴 

가자 가자 어서 가자 ㅅ쉬지 말고 어서 가자. 

 

노래가 끝난 후 마을 사람들에게 빠짐없이 고깃국이 나눠졌다. 구경꾼인 내게도 국 사발이 왔다. 새벽에 죽은 황소를 끓여 만든 것이다. 뒤이어 탁주도 한 사발씩 돌았다. 농부에게 물었다. 

"종일 곡을 하기에 황소를 양지바른 언덕에 묻겠거니 여겼는데, 마을 사람들 모두 불러들여 함께 노래하며 먹고 마시는 까닭이 무엇이오?" 

농부가 한심하다는 듯 헛웃음과 함께 답했다. 

"언덕에 묻으면 나만 황소를 기억하지만, 이렇게 나눠 먹고 즐기면 마을 사람 모두 우리 집 황소 덕분에 배를 채운 밤을 잊지 않을 겁니다. 여기선 누구나 이렇게 삽니다." 

술이 한 순배 돌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황소에 얽힌 이야기를 한 토막씩 꺼냈다. 온갖 황소들이 이야기판에 출몰했다. 사냥 나온 황을 구하고 정오품 벼슬을 받은 황소, 늑대 울음을 우는 황소, 발이 여섯 개, 일곱 개, 여덟 개인 황소, 공자님 말씀엔 귀 기울이지만 맹자님 말씀엔 고개 저으며 뒷발을 차 대는 황소, 풀 대신우 흙만 먹는 황소, 10년 동안 황소였다가 죽을 땐 암소로 변한 황소, 반대로 암소였다가 황소로 변한 황소, 하늘을 나는 황소, 바다 밑을 걷는 황소, 말보다 더 빨리 달리는 황소, 뿔로 바위를 부순 황소, 손바닥 하나에 쏙 들어가는 황소, 나라님 계신 궁궐보다 더 거대하게 자란 황소. 

농부는 황소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함께 웃고 마시고 노래하다가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 모든 황소를 합쳐도 오늘 죽은 황소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농부의 황소는 보름달이 뜨면 긴 울음을 먼저 울었고, 농부가 빈 손으로 나오면 다시 울어 술병을 챙기도록 했으며, 등에 탄 농부가 아무리 빨리 가자 채근해도 그윽한 풍광을 충분히 즐기기 전에는 걸음을 떼지 않았고, 취한 농부가 길을 찾지 못해도 스스로 적당한 때를 택하여 돌아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1000리를 하룻밤에 달리는 명마(名馬)를 칭송하지만, 그 밤 10리밖에 못 가더라도 농부에게 넉넉한 여유와 즐거움을 선물하니 이 황소야말로 명우(名牛)라는 이야기다. 말을 탔다면 놓쳤을 세상의 묘(妙)한 구석을 느린 황소 덕분에 만끽한 셈이다. 농부의 젖은 눈은 순하디순한 황소의 눈을 닮았다. 즐거우면서도 음란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마음 상하지 않는 시집을 읽는 기분이 이와 같을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합리론과 경험론의 대결(삼봉과 동자의 대결)

조선 건국 과정을 그리는 역사소설 <<혁명>>(김탁환 지음,  민음사, 2014) 중 제2권에서 나온 내용 중에서 발췌함(35~38쪽). 

 

================================================================= 

 

소나기가 한차례 지나간 뒤 무지개가 떴다. 마루에 앉아 구경하는 내 곁으로 동자가 슬금슬금 엉덩이를 밀며 다가왔다. 오늘은 또 무엇이 궁금한 걸까, 내색 않고 기다렸다. 

"왕성 사람들은 모두 나리처럼 지냅니까요?" 

동자는 태어나서 영주를 벗어난 적이 없다. 이 나라 도읍지가 북쪽인지 남쪽인지도 몰랐다. 영주를 돌아다니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나이였다. 왕성에서 벼슬을 살다가 내려왔다는 중늙은이가 서책 읽고 문장 쓰고 산책하며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그곳 생활이 궁금해진 듯했다. 

"아니다. 서생은 글을 읽고 쓰지만, 장사꾼은 물건을 팔고 장인은 옷이며 가구며 농기구를 만들지." 

동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입니다요. 난 또 우린 열심히 농사짓는데, 왕성 사람들은 놀고먹는가 싶었네요." 

"넌 내가 놀고먹는 것 같으냐?" 

"나라에 큰 죄를 짓고 유배 오셨단 소릴 듣긴 했는데, 아무리 봐도 벌 받으시는 것 같진 않네요. 옥에 갇히지도 않고 곤장을 맞지도 않고. 오히려 가끔 관아에 가셔서 술 대접, 밥 대접을 받고 오시지 않습니까? 그런 게 벌이라면 저도 달게 받겠습니다요." 

귀양의 힘겨움, 왕성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나날의 답답함을 어찌 동자가 알랴. 

"가끔 밤늦도록 잠도 자지 않고 끼적이시는 거 압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종이를 찢거나 물로 씻어 버리시더군요. 찢거나 씻을 글을 왜 저렇듯 낑낑대며 여러 번 고쳐 쓰는지 솔직히 답답했어요." 

계속 놀림을 당하긴 싫었다. 

"나도 일한다." 

"무슨 일 하십니까요?" 

"이 마음에 들어 있는 나라를 문장으로 옮기지." 

"또 그 마음속 나라 타령이십니까. 나리의 나라는 무척 작은가 봅니다. 마음에 쏙 들어갈 만큼. 나리의 나라는 무척 만들기 쉬운가 봅니다. 문장으로 옮겨 간직할 만큼." 

당돌한 지적이다. 

"왜 그리 여기느냐?" 

"나라를 문장으로 옮기는 건 고민해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저 언덕 무지개를 말로 담기 어렵다는 것쯤은 압지요." 

동자의 시선을 따라 잠시 무지개를 쳐다보았다. 

"나리는 저 녀석이 몇 가지 색깔로 보이십니까요?" 
"다섯 가지! 그래서 오색 무지개 아니냐?" 

"저는 볼 때마다 달라지던데요. 어떤 날은 다섯인데 어떤 날은 일곱이고, 또 어떤 날은 팍 줄어 셋이고. 무지개의 크기나 길이도 알쏭달쏭합지요. 여기서 보면 언덕 이쪽에서 저쪽까지만 걸친 듯한데, 막 달려가면 무지개가 점점 크고 길어지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말더라고요. 무지개 보면 재수가 좋다며 춤추는 이도 있고, 무지개 보면 불행이 찾아든다고 아예 고갤 숙이고 걷는 이도 있지요. 아직 저 무지개를 만졌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드럽다 축축하다 딱딱하다 말들은 많지만. 전부 추측일 뿐이에요. 무지개 하나만 놓고 따져도 이러한데 나라를 문장으로 옮기려면 얼마나 복잡할까요. 나라를 마음에 넣기도 어려운 일, 넣어둔 나라를 꺼내 문장으로 옮기기도 어려운 일! 나리는 왜 이토록 어려운 일을 하십니까. 그냥 편히 뒹굴뒹굴 지내면 누가 야단이라도 칩니까" 

집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