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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1/31
    <현대 게릴라전 연구>2.
    곰탱이
  2. 2008/01/30
    <현대 게릴라전 연구>1
    곰탱이
  3. 2008/01/27
    기냥... (5)
    곰탱이
  4. 2007/12/24
    조강지처 플로그? (4)
    곰탱이
  5. 2007/12/10
    나 이제부터 죽었다... (8)
    곰탱이
  6. 2007/12/07
    인간관계...(2)
    곰탱이
  7. 2007/11/26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2)
    곰탱이
  8. 2007/11/16
    퇴보... (5)
    곰탱이
  9. 2007/11/07
    성(sex)에 대한 끄적거림...
    곰탱이
  10. 2007/10/24
    삶...
    곰탱이

<현대 게릴라전 연구>2.

 

(48~49쪽) 

** (빨치산, 게릴라의 역할)

“1년도 못돼서 독일군 전선의 후방에서 싸우는 (소비에트) 빨치산 전투대는 수송을 저지하고 통신을 차단했으며, 또 비축 보급물자를 파괴하고 상당수의 독일군을 사상했다. 이러한 <비정규군>의 활동은 극히 효과적이었으므로, 10만이 넘는 독일 군대도 전선으로 통하는 동맥과도 같은 보급로는 지킬 수는 없었다.”

-->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동맥은 노동자 계급의 임노동이다. 노동자 계급은 자본과의 직접적 투쟁에 있어서는 위와 같은 게릴라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즉 자본의 형성 보급로를 차단,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게릴라로서 노동자 계급은 자본에게 포획되지 않으면서도 정규군으로서의 전면전을 실시해야 한다. 이 전면전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게릴라전은 자본에게 전멸 당하거나 포획되어 자본의 진지를 강화시키고 그 속으로 잠적한다. 이 전면전은 토대(비임노동자로서의 노동자의 자기 생산)-상부구조의 전 차원에서 보급이 끊긴 자본을 포위 공격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 아니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 전면전을 통해 노동자 계급은 모든 반자본 투쟁 영역의 투쟁 주체가 되고, 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 자본 : 공격, 노동 : 방어

자본을 노동 진영 깊숙이 어떻게 끌어들여서 보급로를 차단하도록 할 것인가, 그리하여 노동은 최종적으로 어떤 시점에서 방어에서 최후 공격으로 나아갈 것인가?(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따라서)

사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현 상황에서는 답이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노동 진영이 자본을 깊숙하게 끌어들일 만한 진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릴라로서 노동자 계급을 안전하게 보위할 만한 진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 계급은 자신의 진지 속으로 숨어들어가서 자본에 대한 다음 공격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 진영으로 숨어들어가 거꾸로 자본을 위한 게릴라가 되어 버린다. 노조의 어용화는 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58쪽~59쪽) 

** (게릴라 형성의 두 가지 조건) 

“러시아인들은 성공적인 게릴라 부대가 들어설 수 있는 필수적인 두 가지 요건을 갖추고 있다. 즉 엄격한 규율을 받을 수 있는 용감하고 강인한 인민과, 빨치산 활동에 이상적인 엄폐물을 제공해 주는, 도로가 거의 날 수 없는 늪지대와 숲과 언덕지대가 그것이다.”

** <전국토의 전장화 전술(burnt soil tactics)>

“히틀러는 <전국토의 전장화 전술>에서 절망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전술이 신중하게 고안된 전투방식이었다는 사실은, 총통 자신에게는 아닐지라도 곧 독일국방군에게는 분명히 인식되었다. 스탈린이 하달한 명령은 러시아 군대가 퇴각한 지역들에서 빨치산 대원들이 활동하기 위한 포괄적인 계획을 규정해 주는 기초가 되었다. 그 명령은 적에게 유용한 모든 재산의 파괴, 첩보 활동망과 선전망의 확보, 새로운 빨치산 단체의 조직, 지속적인 게릴라 활동에 필요한 은폐된 거점의 구축 그리고 낙오병들과 수용소에서 탈주한 전쟁포로들이 다시 모일 수 있는 장소의 지정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 노동자 계급 자신이 용감하고 강인한 인민으로 어떻게 생산될 것인가? 그리고 자본의 도로가 날 수 없는, 다시 말해 자본이 자신의 이익을 최대로 뽑아내는 데 있어서 별로 투자하고자 하진 않는 늪지대와 숲과 언덕지대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곳들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의 실마리가 풀려야만 <전국토의 전장화 전술>이 가능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자본이 투자하고자 않는 부분은 바로 노동자 계급 자신의 노동력 재생산과 새로운 창조적 노동력의 생산,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노동력 생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이 바로 자본의 아킬레스건이며 동맥을 차단할 수 있는 부분이다.


(60쪽) 

** (게릴라의 조직 체계)

“빨치산운동의 (중앙조직인) 중앙참모부(central staff)는 (……) 당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지라도, 그것은 공산당 중앙위원회 및 붉은 군대의 최고사령부와 동등한 지위를 누렸다.

중앙참모부 아래에는 최전선에 배치된 주요한 붉은 군대의 사령부에서 작전수행을 하는 지역참모(regional staffs)들이 있었다. 이 사령부들도 최전선 너머에 있는 빨치산 부대의 전략적 활동을 통솔했으며, 게릴라 활동과 붉은 군대의 대등한 협력관계에 대해 책임을 졌다. 그 다음으로 낮은 빨치산 조직 체제는 작전 집단(Operational Group)으로서 전투선 건너편에 위치하면서 각 지역에 일반전술을 하달했다. 상위 사령부와의 통신은 무선기나 연락비행기 또는 적군의 전선을 꿰뚫고 다니는 정보원들을 이용하였다.”

--> 게릴라로서 노동자 계급과 그 계급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영역과 부문의 조직은 노동조합 또는 당 그리고 여타의 조직들과 대등하면서도 독립적인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노동자 계급의 재생산과 새로운 생산 부문과 직결되는 여성해방 조직은 이른바 노동해방을 위한 조직의 하위 조직이 될 수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며 차이를 인정하는 동등한 조직체로서 위치되어야만 한다.


(64쪽) 

** (빨치산 부대의 방어 기본 이론)

“빨치산 부대들은 방어 시 가능한 한 공격목표 대상이 되지 않거나 그 대상권을 벗어나면서도 한편으로는 최대의 안전도와 공격력을 보유하기 위해 전개(展開)(군사용어로서 종으로 집중된 부대가 공격을 행하기 위해 종횡으로 공격대형을 전개함)되었다. 수은방울처럼 게릴라 부대들은 단일한 임무를 위해 신속하게 대부대로 결집될 수 있었으며 또 독일군이 반격을 취할 때에는 마찬가지로 재빠르게 십여 개의 분대들로 분해되어 흩어질 수도 있었다. 방어의 기본 이론이란 통상적인 전력 비교에 따라 적과의 접전을 피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기동성과 유연성이 빨치산 대원들의 가장 강력한 전술적 특성이 되었다.”

--> 노동자 계급은 수은방울처럼 자신의 관계 형성을 끊임없이 바꿔 나가면서 자본의 공격을 무화시켜야 한다. 노동자 계급이 노동자, 특히 임노동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고정시킨다면 그것은 ‘가만히 있을 테니 때리시오’와 같은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 계급은 가타리가 말했던 것처럼 ‘되기(becoming)’, 즉 소수자 되기의 전술을 통해 자신을 방어할 수 있다. 특히 이 소수자 되기의 토대는 바로 ‘여성-되기’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산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 계급은 ‘소수자 되기’의 기동성과 유연성이라는 핵심전술을 채택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해방은 없을 것이다. 


(75쪽) 

** (반 빨치산 작전)

“모든 반 빨치산 작전에 있어서 핵심적인 전술은 독일어로는 선명한 사냥용어인 몰이사냥(Kesseltreiben)으로 알려져 있다. Kessel은 주전자나 원(圓)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사냥의 제일 목표는 먹이를 에워싸는(encircle) 것이라는 말이다. Treiben은 쳐부수는 것(to beat)을 뜻하는 것으로, 사냥감을 위협해서 함정으로 몰아넣고 그 다음에는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는 것을 의미한다.”

--> 이것은 자본이 노동자 계급을 공격할 때 쓰는 기본적 전략이다. 노동자 계급을 개별화, 원자화를 통해 고립시켜 포위 공격한다. 이는 제3자 개입 금지법을 통해 단적으로 알 수 있다. 


(75쪽~76쪽) 

** (나치 독일군에 대항하는 데 사용된 러시아 빨치산 전술의 개요)

“뚜렷한 정치적 목적이 없으면, 게릴라는 비록 능수능란하게 전투에 임한다고 할지라도 일시적인 성공만을 거둘 수 있을 따름이다. 영구적인 성과란, 오로지 게릴라의 공적들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군사력과 정치역량이 강력할 경우에만 기대될 수 있는 법이다.”(『게릴라들-추격대에 대한 지침』(Guerrillas-Hints for Hunting Units) 중에서)

--> 여기서 뚜렷한 정치적 목적이란 ‘공산주의 사회’의 건설이다. 그렇다면 공산주의 사회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과의 관계, 인간간의 사회적 관계를 통한 ‘~되기’가 현실화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 ‘~되기’가 현실화되는 것이 바로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며 노동자 계급이 게릴라로서 모든 반자본 투쟁을 이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영구적 성과>란 바로 끊임없는 이러한 <~되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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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게릴라전 연구>1

 

# 현대 게릴라전 연구 (오상카 외 지음, 편집부 편역, 세계, 1985) #


(38쪽~40쪽) 

** (텍스트 내용의 핵심요지) 비정규군(게릴라)의 탈 중앙집권제의 위험성에 대한 레닌과 트로츠키의 지적.

--> 이에 관해서는 영화 <랜드 앤 프리덤>에서 무정부주의자와 품의 군사조직이 스탈린 군대에 의해 강제적으로 해산되는 장면을 참고하면 되겠다. 이는 프랑코와 그를 원조해 주는 제국주의 정규군대에 맞서기 위해서는 일사불란한 정규군대가 필요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이는 일면적으로 타당하다. 각각의 게릴라 소부대가 서로간의 의사소통 관계(유기적 관계) 없이 각 소부대가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상대방의 정규군에게 각개격파 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커다란 특성인 원자화, 개별화와 관련이 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각 개인이나 소집단은 개별화, 원자화되어 있고 이 개별화, 원자화되어 있는 개인들이나 소집단들을 자본이 관계 맺게 하며, 만일 노동조합처럼 자본에 대항하는 경우 각개격파하여 궤멸시킨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탈 중앙집권적인 게릴라 전의 위험에 대하여 중앙집권적인 정규군의 필요성을 역설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과도하게 중앙집권적 정규군에 집중할 경우, 즉 게릴라를 정규군으로 만드는 데 집중할 경우 싸움은 백전백패를 당할 게 뻔하다. 왜냐하면 질적으로 동일한 형식(중앙집권제)으로는 양적인 것만이 승패의 요인이 되고 양적으로 불리한 정규군화된 게릴라들은 이미 지는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1936년 스페인 내전이 잘 보여 준다고 하겠다. 정규군에 대한 게릴라들의 싸움의 승패는 중앙집권화를 넘어서면서도 질적으로 새로운 관계 틀이 좌우한다고 보겠다. 탈 중앙집권적인 게릴라도 아니고, 중앙집권적인 정규군도 아니라면 무엇일까? 2차 세계대전 중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베트남전>의 보기를 들어서 그 싹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전력이 부족한 상태에 있는 측의 싸움 형태는 게릴라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게릴라 전이 눈부신 전과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질 수밖에 없었던 경우가 바로 이순신의 경우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순신은 [전투]에서 승리하였지만 [전쟁]에서는 패배한 장수라는 것이다. 이순신의 싸움은 게릴라전의 전형을 보여 준다. 이순신은 서남 해안의 물길 지형을 이용해서 치고 빠지는 전술을 택했다. 그리고 그 전술을 위한 무기도 개발했다. 이순신은 절대로 정규군들이 하는 식으로 일대일로 붙는 싸움을 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부하에게 도망가는 적을 절대로 쫓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런데 이순신은 마지막 노량 해전 때 도망가는 적을 쫓아 관음포구로 향해 갔다. 왜 이순신은 그랬을까? 이순신은 더 이상 게릴라전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었다. 명나라 육군과 수군의 수모를 받으면서도 육지를 탈환해서 앞으로의 싸움을 진지전으로 끌어가고자 하였다. 싸움의 힘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새로이 생산할 수 있는 진지로서의 육지의 탈환! 이것이 이순신이 무리하게 도망가는 왜군을 뒤쫓던 이유였다. 진지 없는 게릴라전은 결국 패배하게 돼 있다. 해방 후 남쪽의 빨치산의 최후는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싸움의 힘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면서 새로이 생산할 수 있는 진지를 어디서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는 노동자 계급이 계급투쟁의 힘을 어디서 어떻게 끊임없이 재생산하면서 새로이 생산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 (45쪽) “전시에 나온 한 전말서는 보고하기를, “그 이전 투쟁에 있어서의 게릴라 운동과는 달리…… 게릴라 부대들도 작전하기에 안전한 기지를 확보하고 있다”고 하였다.”


(46쪽) 

** (게릴라전의 특성- 비 중앙집권적, 탈 중앙집권화)

“중국의 유격전 개념은(공산당의 관점에서 볼 때) 확고하게 정립된 것이었음에 비해,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의 빨치산운동은 탈 중앙집권화의 경향을 띠었다. 중국의 비정규군들은 모택동과 주덕이 권력 장악을 위해 만든 그들 기구의 핵을 이루는 세력이었다. 모스크바 당국의 경우에 빨치산 운동은 지원군을 조직하고자 하는 시도였던 만큼. 인민과 병사들 간의 괴리를 제지하고자 하는 시도에 불과했다. 반 중앙집권제적 비정규군 세력은 시민전쟁 기간 동안에는 모스크바 공산당 정부에 비판적이었다. 모택동이 유격전의 개념을 실행에 옮겼을 때, 중국공산당원들은 결코 중앙집권제적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으며, 물론 비정규군들에 대해서도 편견이 깃든 반대도 하지 않았다. 전쟁 등으로 급박한 시기에도 소비에트 인민들이 정규군을 낭만적으로 묘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비정규군들의 전투는 처절한 것이었다.

(46쪽) “게릴라는 전술에 능하며 창조적이고 대담하며 독립적인 만큼, 실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질들은 공산당 최고 수뇌부 아래의 여러 수준에 맞는 훌륭한 공산당원들을 양성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소비에트 지도자들은 비정규군에게 호의의 자세를 기꺼이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비정규군에서 이상형을 목도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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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냥...

학교가 조용하다...

일요일이라서 그런가...

사위가 조용하니 너무 조쿠나...

옛날에는 사위가 조용하면 좀 불안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너무나 좋다...

 

요즘 사람을 안 만난 지 좀 된다...

1월3일에 학교 신년회 빼고는 거의 사람을 안 만나고 있다...

사람을 안 만나니, 별로 고민할 것도 없고 마음이 평온하다...

그러니 술 생각, 담배 생각도 안 난다...

술은 신년회 때 뻬고는 하나도 안 마셨고,

담배 안 핀 지는 4개월 정도가 되었다...

 

누가 건드린 사람이 없으니, 혼자 조용히 책이나 앍고

정말로 신선놀음하고 있다...

이것도 이제 한 달 전도밖에 안 남았다...

새학기가 시작되면 아이들과 울고 웃으며 부대끼며 살아야하고

그러면 술 땔길 테고, 그러면 또 체력이 필요할 테고...

술도 적절히 마시는 훈련도 해야 할 것이고....

 

참 올 여름에는 꿈에 그리던 지리산을 3박4일 정도 종주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 한다...

 

음... 그리고... 생활비를 좀 안정적으로 마련해야 하고...

마이너스도 거의 한계에 도달했다...

3월 말까지 잘 버텨야 하는데...^^... 

 

하여간 조용히 조용히 잘 버티며 지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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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지처 플로그?

요즘 사는 낙이 있다면 그나마 주말 연속극을 보는 것이다.

예전엔 연속극 정말 안 봤는데...

삼각관계에다 뭐 어쩌구 저쩌구 해서 울기나 하고,

안 그러면 되도 않은 시트콤을 지지고 볶는다고 생각했는데...

 

근데 요즘사 정말 주말이 기다려지는 연속극이 있다.

내 삶의 오아시스 같은^^ㅋㅎ...

그것은 이름하야 <조강지처 클럽>이다.

뭐 얘기 스토리는 바람 피는 남편(또는 남자)들을 조강지처라 불리는 안해(또는 여성)들이

조지는 내용이 주다.

뭐 본 사람들이야 잘 알겠지만, 목마름에 시원한 한사발 막걸리 같다고나 할까...

(퍽! 왜 여기서 막걸리란 말이냐!)

 어쨌거나 저쨌거나 거기 나오는 조강지처라 불리는 아줌마들, 이를테면 복수 엄니(김해숙),

복수(김혜선), 화신(오현경)... 그 중에서도 특히 복수에게 맘을 팍 주었다는 것인데...

(이 대목에서 울 여친께는 비밀로 해 주시압! 퍼버벅!! 배신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데 말이지,

근데 이 대목에서 지금 나두 바람 피고 있는 것이여?!)

 

그 아줌니들 너무 멋져용^^...

특히 김혜선 아줌마, 김해숙 아줌마... 통과!

오현경 아줌마도 멋져요! 힘내시고요!

 

다음엔 1월 5일에나 한단다.

뒌장!

시시껄렁한 시상식 같은 거 하지 말구

연말 특집으루다가 한 번에 2회 연속 방영해 주면 좋을 텐데...쩝...

 

조강지처 클럽도 안 하는데 이번 주는 무엇으로 버틸꼬!!!

아~~~ 이번 주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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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부터 죽었다...

오늘부터 일주일 간 기말고사 기간이다.

시험문제 무엇을 낼지도 거시기하고...

시험 끝나면 채점하고 성적 내서 인터넷에 올려야 하고...

그런 다음 바로 성적 때문에 아이들한테 전화가 가끔씩 오고...

설득하고 대답해 주려면 시간 많이 걸리고, 그래서 귀찮고...

그냥 시험을 pass 또는 non-pass로 하면 얼마나 좋을까...

왜 A부터 F까지 줄을 세우는지 원...

이것도 비율 맞춰서 주려면 머리 좀 많이 써야 한다...

 

다른 한편 더 죽을 맛은 학기 중 펑펑 놀다가(? 근데 뭐하고 놀았냐?...) 

책 원고 써 줘야 한다. 연말까지!!!

아주 벼락치기다.

그래서 세살 버릇은 여든까지 간다고 했던가...

학교 다닐 때 벼락치기하는 습관을 들여놔서 아주 골때린다...

좀 평소에 하면 누가 잡아먹냐!!!

 

청춘~~~을 돌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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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는 역시 유기적 관계보단 기계적 관계가 흐~~~~....

 

흐~~~ 이따 집에서 깍두기에다 소주 한잔...

크어~~~~... 앗싸 가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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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내가 뭐 이런 말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너무 참담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뉴코아 노동조합 위원장과 순천지부 지부장이 명동성당에서

천막 농성을 하고자 명동성당 신부에게 무릎까지 꿇어야 하는

이런 상황을 도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을까...

노동자가 노동자 자신을 스스로 보위하지 못하고,

종교단체에 농성자리를 구걸하도록 하고 있으니...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 한뼘도 없다니...

왜 우리는 노동자인 우리 자신을 보위할 수 없는 것일까...

투쟁할 진지 한조각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현재 우리 노동자의 모습을 보니, 그 모습이 꼭 이순신을 닮아 있구나...

진지를 마련하기 위해서 자신을 버릴 수밖에 없는 노동자와 이순신이...

 

우리는 언제까지 짓밟히며 구걸하면서 떠돌아다녀야 하는가!!!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coolmedia&id=1654 

(뉴코아 노조 위원장 명성 농성 관련 참세상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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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보...

요즈음은 수업에서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만 예쁘고,

수업에서 같이 공부하지 않는 학생들은 별로 예쁘다는 생각이 안 든다.

예전에 모두 다 예뻤는데...

우째 인간이 가면 갈수록 퇴보하는 것 같다.

ㅠㅠ...

일케도 되는 기야?!!!

퇴보하는 인간 = 보수적인 인간?

 

인격수양이 너무너무 필요하다는 생각만이...

 

철학은 왜 공부하냐!!!

 

불혹이라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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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sex)에 대한 끄적거림...

<여성되기>와 관련된 글을 구상하던 차에, 이러저러하게

생각이 흘러가다가 성(sex)과 관련하여 생각이 멈추면서

이에 대해서 주저리 주저리 생각나는 대로 끄적여 보았다^^...

 

혹시 지적해 주실 것 있으면 지적해 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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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과 인간관계, 자유와 평등 #


1. 성-사회적 관계의 토대이자 생산물(결과물).


성, 섹스. 이 주제는 우리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장 잘 모르는 영역의 주제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성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자주 이야기하면서도, 성이 무엇인지, 왜 성관계를 하는지, 성관계가 도대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 대체로 술자리 등에서의 음담패설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는 사람들이 대체로 성을 동물적인 본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성은 동물적 본능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왠지 인간적이지 않은 꺼림직한 것이고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을 인간 이하 또는 저질 인간이라는 눈총을 받게 된다.

그러나 성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고 사회적인 활동이다. 인간은 성을 통해서 사회적 관계의 기초를 만든다. 즉 사회적 관계를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새롭게 생산한다. 성을 통해서 서로가 서로를 통해서 인간임을 확인하면서 기존의 관계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대를 생산하면서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예를 들면 ‘부부는 서로 닮아간다.’ 서로 닮아간다는 것은 서로의 역사를 이해하고 껴안음으로써 서로의 관계 폭을 넓혀가는 것이다. 서로간의 관계의 폭넓음은 또 다른 이들과의 관계맺음의 폭을 넓혀 준다. ‘연애를 해 본 자가 연애를 더 잘 한다.’

그런데도 왜 성은 동물적 본능의 영역 속에서 억압되어 있는 것일까? 이러한 것이 왜 사회의 일반적인 시각(지배 이데올로기)이 되었을까?

  

2. 성-사회적 관계로부터의 자유이며 동시에 사회적 관계에로의 자유.


우리는 성에 대해 공론화하지 못한다. 성에 대한 공론화는 도덕적 비난뿐만 아니라 법적 처벌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성의 공론화는 이른바 ‘전문가’라는 특권층에게만 한정되어 있으며 대중 일반에게는 금지되어 있다. 도대체 왜 대중 일반에게 성은 이렇게 금기의 영역에 있어야 하는가? 도대체 대중에게 성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길래 금기의 영역으로 남게 되는가?

이러한 문제는 인간의 지배, 피지배 문제, 즉 인간의 서열화, 계급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문제이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구체적 현실화는 평등하지 않고 불평등하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의 성적 욕구는 모두 평등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현실 속에서 성적 욕구의 실현은 결코 평등하지 않고 불평등하다. 인간의 성적 욕구의 실현은 인간의 서열화, 계급화를 통해 서열화되고 계급화된다.  성적 욕구는 인간적인 것과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것으로 이분화된다, 지배계급의 성적 욕구의 실현은 인간적인 것이 되고 피지배계급의 성적 욕구의 실현은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인간의 성, 그리고 그 성과 연관된 욕구는 평등하다. 그런데 도대체 평등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흔히 공산주의 사회를 평등한 사회라고 할 때,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평등’을 산술적인 평등으로 생각하며, 그리하여 결국은 평등을 산술적 의미로만 제한시키게 된다. 1/n이라는 산술적으로 평등한 사회는 이루어질 수 없다. 평등이란 자유를 필연적으로 포함할 수밖에 없다. 즉 평등이란 인간의 ‘자유’로운 관계맺음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모든 측면에서, 전방위적으로!  그렇지만 그 관계맺음은 끝이 없으며, 하나의 타입이 존재하지 않으며, 시․공간적으로 특이하다. 관계의 무한함, 그 무한함에 따르는 자유로움……. 이러한 관계의 기초가 바로 성이며, 이 욕구 역시 무한하며 자유롭다. 그래서 평등하다.

성적 욕구의 자유와 평등은 인간관계의 자유와 평등, 변화와 발전을 내포하고 있다. 즉 성적 욕구 자체가 변태(metamorphosis)이고 인간관계 자체가 변태이며, 따라서 우리 모두가 변태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낡은 관계로부터 새로운 관계를 꿈꾼다. 그 관계의 기초인 성에서도 새로운 무엇인가를 꿈꾼다. 그래서 바람을 쐬기도 하고 바람을 피우기도 한다. 그 꿈의 원동력은 <상상력>이다. 변태는 상상력이다. 이 상상력을 통하여 성은 낡은 관계로부터 새로운 관계로 변태하는 끊임없는 과정이다.


3. 성의 타입화와 상품화-성 욕구 실현 불평등의 기원.


그런데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변태 자체를 비정상으로 본다. 변태는 서열화, 계급화되어 있는 관계의 질서를 송두리째 파괴해 버린다. 오르가즘은 기존 관계의 파괴이다. 그것도 핵폭탄급 이상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 눈에 콩깍지가 씌었을 때, 기존의 세계는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린다. 동시에 상상력은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며 사람들은 이 상상을 현실화시키려고 노력한다. 매번의 섹스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섹스는 매번 그 형태와 깊이를 달리한다. 그 속에서 새로운 자기를 발견한다. 인간으로서 새로운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 이것이 섹스의 원동력이며, 사랑을 지속시키는 끈끈이이다.

섹스는 단지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변혁시키는 혁명적․실천적 활동이다. 바로 이러한 성의 특성 때문에 지배 계급은 대체로 이 성을 암흑의 저 깊숙한 우리에 가두어두고자 했다. 지배계급은 이러한 길들여지지 않은 동물적인 성을 가축처럼 길들이려고 하였다. 이 길들여진 성이 <인간화된> 성이다. 이 인간화된 성은 <상품화된> 성이다.

상품화된 성은 변혁적인 변태로서의 성의 상상력을, 즉 저항으로서의 성의 상상력을 <타입화>한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상상력을 지배계급과 자본의 이익 방향으로 유도한다. 이러한 자본의 이익 방향이 타입화이다. 이 타입화의 컨셉은 이른바 <섹시함>이다. 그러나 이 섹시함은 구체적으로, 객관적으로 정형화된 타입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자본과 지배계급은 이 섹시함이 기거할 유일한 하나의 장소를 찾는다. 그리고 그것을 객관화시켜 대중들에게 종교처럼 설교한다. <너희가 섹시함을 믿느냐? 이것이 바로 섹시함이니라!> 이제 섹시함의 이데아는 34-24-34의 몸매를 지닌 스타급 연예인으로 왕림하신다. 부처를 믿으면 부처가 되듯이 누구나 위의 숫자에 다가갈수록 섹시함의 이데아가 된다. 이제 섹시함의 이데아는 객관화되고 동시에 수량화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량화는 곧 상품화를 의미한다. 즉 사고파는 것을 뜻한다. 섹시함의 이데아는 돈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돈이 없는 자는 섹시함의 이데아에서 타락한 자들이다. 그들에겐 참된 인간다움의 섹시함이 없고, 오로지 동물적 본능으로서의 성적 욕구만이 있을 뿐이다. 섹시함의 이데아 계에서 추락하고 타락한 돈 없는 자들은 자신의 성 욕구가 동물적인 것임을 깨닫고 섹시함의 이데아를 상기시켜 섹시함의 이데아 세계로 돌아가고자 기를 쓰고 몸부림친다. <넌 어떤 타입을 좋아하니?> <김태희 정도?!> 또는 <비 정도?!> 이 타입화는 우리 일상생활에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이 섹시함의 이데아를 돈을 들여 추구하지 않으면 그런 사람은 비정상이거나 모자란 사람이다. 즉 얼짱도 몸짱도 아니면 여자도 아니거나 남자도 아니거나 또는 세상물정 모르는 완전히 바보이거나 불평불만자이다. 이것은 아마도 성 정치학의 측면에서 보자면 배제의 정치학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성의 상상력을 복원하여야 한다. 그래야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성의 상상력의 복원은 섹시함의 이데아를 해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이데아, 타입의 절대적 보편성을 깨는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노동계급을 포함한 피지배 계급의 주체적인 새로운 수많은 타입들이 생산되어 타입들의 물결이 흘러넘치도록 해야 한다. 우리 모두 변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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