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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적 페미니즘[여이연08여름강좌]2-1

 

★ 작은 틀 ★


1. 가사노동의 성격과 위상

-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의해 규정되는 자본주의 사회 구성체 내에서 가사노동에 관한 논쟁은 주로 노동력 상품 생산에 있어서의 가사노동의 역할, 즉 가사노동이 노동력의 가치에 기여하는가 하는 물음에 집중되어 있다고 한다.

- 가사노동은 생산적 노동인가 아니면 비생산적 노동인가?

- 가사노동은 소외된 노동인가 아니면 소외되지 않은 노동인가?

▶(나의 생각) 가사노동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재생산에만 주목해서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의 노동은 임노동의 측면, 즉 자본에게 노동력이라는 이름으로 팔리면서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것으로 완결되는 자본의 운동 시스템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노동의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노동자의 노동을 임노동의 측면에서만 바라보게 된다면, 노동자 계급에 대한 자본의 착취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노동자의 노동 = 임금노동>이라고 놓고 보면 <노동자의 노동의 대가 = 임금>이라는 도식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는 맑스가 ‘노동’과 ‘노동력’을 그토록 구분하고자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노동자의 노동은 모순적인 이중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첫째가 바로 위에서 말한 임금노동의 측면, 즉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운명적 측면, 둘째, 자신의 노동력을 판 대가로 얻게 되는 임금을 가지고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되어 살아가고자 하는 측면, 즉 ‘인간’으로서 자신을 생산하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 물론 주도적인 것은 둘째 측면이다. 이 둘째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맑스가 주목한 것도 이 측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맑스는 『자본론』에서 이 측면을 미처 다루지 못하였다. 아마도 다루었다면 3권 <계급투쟁> 장에서 다루었을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 장의 내용을 심화시켜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와 관련해서는 마이클 리보위츠의 『자본론을 넘어서』(백의)를 참조하면 좋겠다).

바로 이 둘째 측면 때문에 정치경제학적으로 <착취>에 대한 설명이 가능할 수 있다. 자본은 항상 생물학적으로 겨우 연명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주지만, 창조력과 상상력을 훨씬 풍부하게 갖춘 인간으로서 ‘공장 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라며, 또한 그렇게 강제한다. 이것이 바로 <착취>이다(맑스는 이것을 두고 “죽은 자가 산 자의 피를 빨아먹고 산다”고 말했다).

가사노동에 대한 논쟁도 단순하게 노동력이라는 상품 재생산의 측면에만 주목하게 되면 안 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재생산은 임금으로 환원되고, 즉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재생산 = (남성) 노동자의 임금>이라는 도식으로 나타나게 되고, 따라서 <가사노동 = (남성) 노동자의 임금>이라는 도식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가사노동에 대한 착취, 나아가서 여성노동의 착취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사노동의 논쟁에 대해서는 노동자의 노동의 둘째 측면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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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적 페미니즘[여이연 08여름강좌] 2

아래의 내용들은 어제 배웠던 가사노동과 관련된 논쟁들의 일부를 강사 선생님의 말씀과 강의록, 그리고 그 말씀과 강의록을 제가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을 일부 정리한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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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화이론연구소-08여름강좌>


# 유물론적 페미니즘 #

(강사 : 문은미 tothemoon00@naver.com)


@ 2강. 가사노동 논쟁 @ 


** 가사노동과 관련된 논쟁들은 나의 졸고들에서 이야기되었던 것과 아주 유사하다. 그렇지만 결이 다르다. 가사노동과 관련된 논쟁들은 벌써 3,40년 전에 했던 논쟁들이다. 60년대 말서부터 70년대 말까지 이루어졌던 논쟁들이다. 그 이후엔 가사노동과 관련된 논쟁들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요즘 들어 다시 가사노동과 관련된 논의들이 살살 고개를 들고 있단다.

여기에 나와 있는 가사노동 논쟁들은 가사노동을 협소하게 기능적 측면(예를 들면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 기르고 등등)에만 한정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논쟁 지점이 결과적으로 가사노동이 자본을 생산하는 데 직접적으로 관련된 ‘가치 있는’ 노동인가 아닌가 또는 이 두 논의들을 부정하면서 가사노동이 자본주의 생산양식 ‘외부’에 존재하는 노동(이 논의에서는 사회화된 무엇이라고 하는데 사회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지 못함으로써 신비화된 무엇으로 남게 된다)으로 봐야 한다는 데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사노동과 관련된 논의의 지점을 이런 기능적 측면으로부터 ‘구체적으로 인간을 생산’한다는 총체적인 측면으로 옮겨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사노동은 자본주의형 인간을 만들어 내는 물적 토대이다. 이는 자본이 가정, 가족을 얼마나 중요한 것으로 강조하고 있는지,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가족 이데올로기가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다([엄마가 뿔났다]라는 주말 연속극을 보라. 엄마(정한자)가 안식년 휴가 1년을 달라고 했을 때 가족 구성원 대다수가 엄청 반대했다).

그런데 자본은 이 구체적인 자본주의형 인간을 만들어 내는 물적 토대인 가사노동의 비용을 전혀 감당하지 않는다. 만일 자본이 이 비용을 떠안게 되면 그 즉시 자본은 자본이 아니게 된다. 자본은 그 비용을 개별 남성 노동자에게 떠넘기게 되었고, 그 개별 남성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생산노동을 여성들에게 떠넘기게 된다. 만일 이렇게 여성 노동자에게 노동력 재생산 노동을 떠넘기지 않게 되면, 자본은 남성 노동자에게 그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따로 계산해야 되고, 그러면 현재 임금의 몇 배를 남성 노동자에게 지불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세대의 노동력을 생산하기 위한 비용도 자본이 모두 대야 한다. 한 아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들어가는 총비용을 1억 정도라고 치고, 그 아이들을 500만으로만 잡는다 하면 과연 얼마인가! 아마도 천문학적인 숫자일 것이다. 자본이 이 비용들을 댄다면 자본은 또한 더 이상 자본이 아닐 것이다.

자본이 자본이기 위해서는 <자본 = 남성 노동자 임금 = 여성 가사노동>이라는 먹이사슬 구조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맑스의 상품교환관계 형태로 바꾸게 되면 <여성 가사노동 = 남성 노동자 임금 = 자본>이 된다. 여기서 자본은 ‘등가 형태’인데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신과 같은 절대적인 보편자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남성 노동자 임금은 자본에 대해서는 ‘상대적 가치형태’인데 자본에 의해서만 자신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단순한 개별자이지만, 여성 가사노동에 대해서는 자본과 마찬가지로 ‘등가형태’로서 보편자가 된다. 자본은 이러한 먹이사슬 형태를 끊임없이 유지해야 자신의 몸집을 끊임없이 불려나가게 되고, 그리하여 자신을 자본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것을 계급 문제와 연관시켜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은 이러한 먹이사슬 관계 속에서 생산된다. 그러므로 노동자 계급은 자신 속에 이러한 가사노동의 착취와 억압을 가지고 있는 모순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 계급이 노동해방을 이루려면 먼저 자신 속에 내재하고 있는 이러한 착취와 억압 관계 방식을 철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철폐는 자본 생산의 물적 토대인 <여성 가사노동(상대적 가치형태, 개별자) = 남성 노동자 임금(등가형태, 보편자)>라는 관계 구조 방식을 완전히 뒤바꾸어야 한다. 뒤바꾼다는 것은 이 둘 사이의 위치를 단순히 바꾸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단순히 바꾸는 것에만 머무르게 된다면 착취, 억압의 구조는 그대로인 채 얼굴마담만 바꾸는 격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뒤바꾼다는 것은 보편자가 되는 형식을 바꾼다는 것이다. 즉 등가형태의 자리를 차지하여 영원히 그 자리를 유지하려고 하는 방식이 아니라 등가형태의 자리를 여성과 소수자에게 넘겨주어 그들을 통해 자신의 삶의 문제를 표현하고 해결하려는 관계 맺음 방식을 창출하는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예를 최근의 촛불집회에서 볼 수 있다. 누구든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고, 그 의견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좀더 깊이 있고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통일시킴으로써) 자신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일종의 광장문화라고 할 수 있으며, 가타리는 이 광장문화 만들기를 <여성 되기>, <소수자 되기>로 표현했다. 다른 한편으로 이렇게 생산되는 인간을 맑스는 공산주의 인간, 즉 각기 자유로운 개인이 연대하는 사회의 사회적 인간이라고 하였다.

이제 나의 얘기는 일단 접고, 나의 얘기가 여기에 나와 있는 페미니즘에서의 가사노동 논쟁과 어떻게 결이 다른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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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틀 ★


1. 여성 노동

- 이것과 관련해서 크게 3가지의 논쟁 흐름이 있다고 한다.

- ① 노동 X ---> “노동”   ② 가치 절하(미숙련) ---> 제대로 된 “가치평가”(숙련)   ③ 노동의 성별 분업

- 이 3가지의 논쟁 흐름의 문제의식은 <왜, 여성의 노동이 저임금, 불안정, 미숙련 노동일 수밖에 없는가?> 하는 것이다.

- ①과 관련해서 이전에는 여성노동이 노동으로 취급되지 않았는데, 현재 와서는 노동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나의 생각) 여기에서 노동이라는 것을 자본주의 시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노동으로 봐야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노동’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상품(가치)을 만들어 내는 노동’, 즉 직접적으로 ‘자본을 생산하는 노동’이라고 해야 이해하기가 훨씬 쉽고, 논의의 맥락을 잘 따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②나 ③의 논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 ②와 관련해서 이전에는 여성노동이 가치 절하되었는데 현재 와서는 이 여성 노동이 제대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가사노동 중에서도 특히 감정노동이 임금노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 마트 판매직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의 웃으며 친절하게 손님을 맞아 물건을 판매하는 것은 미숙련 노동처럼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 정도의 기간을 거쳐 아주 숙련된 노동에 속한다는 것이다. 

▶(나의 생각) 여기서 가치 절하라는 것은 가치 즉 자본을 생산하는 데 있어 쓸모없다거나 아주 부차적인 것이라는 것으로 봐야 하고, 제대로 된 가치평가는 여성노동이 충분히 상품화되어 자본을 직접적으로 창출할 수 있다는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위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③과 관련해서 노동의 성별 분업은 바로 이전의 여성노동에 대한 편견에서 시작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되었던 것 같다.   

▶(나의 생각) ①과 ②의 논쟁의 결과로서 ③이 나타났다고 보여진다. 다시 말하자면 여성 노동이 자본을 직접적으로 생산하는 가치 있는 노동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의 성별 분업의 철폐는 여성 노동을 모두 임금노동, 즉 자본을 직접적으로 생산하는 노동으로 만들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현실은 그러하지 못한 것 같다. 이러한 성별 분업의 철폐는 자본이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자본은 상품화가 가능하다면 무엇이든지 상품화시키려고 한다. 이 논의는 자본의 상품화의 흐름에 따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2. 가사노동 

- 가사노동과 관련해서 크게 2가지의 논쟁 흐름이 있다고 한다.

- ① 생산노동/비생산노동     ② 자본주의 생산양식 외부에 존재하는 노동

- ①과 관련된 논쟁 틀은 맑스주의 문제의식 틀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생산노동과 관련하여서는 다시 이 생산노동이 ㉠ 소외된 노동 ㉡ 소외되지 않은 노동 2가지로 나뉘게 된다고 한다.

▶(나의 생각) ①에서 생산노동/비생산노동이라고 할 때 ‘생산’이라는 말은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자본의 생산’으로 이해해야 할 듯하다. 가사노동이 자본주의 생산양식 내에서 설명 가능한 것이 되려면, 어쨌든 가사노동이 자본의 이익을 생산하는 노동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②와 관련된 논쟁 틀은 ①의 논쟁 틀이 가사노동을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 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즉 가사노동을 사적인 영역의 노동으로 봄으로써 자본주의 생산체제 안에서 가사노동을 설명하고자 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편승하게 되는 꼴이 됨으로써 가사노동을 통한 여성의 억압과 착취를 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가사노동을 자본주의 생산양식 바깥에 있는 그 무엇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나의 생각) ②의 견해는 어찌 보면 ①의 비생산노동의 견해와 매우 유사해 보인다. 그렇지만 후자는 어쨌거나 ‘자본주의 생산양식 안’에서 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지만, 전자는 ‘자본주의 생산양식 바깥’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서 볼 것은 자본주의 생산양식 바깥에 있는 가사노동이 어떻게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아무런 관계도 맺지 말아야 할 것들이 현실에서는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촉발되었던 ‘신 존재 증명’ 논쟁에서의 딜레마를 그대로 옮겨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절대적으로 완전한 신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간(세상)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하는 것과 똑같은 딜레마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이 점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얘기가 없다. 또한 이것은 바로 다음에 ‘여성노동’과 관련하여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의 외부에 있는 가부장제의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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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 이대호와 당구 국대 김경률...ㅋㅋㅋ...

그저께인가 스포츠 채널에서 당구 게임(김경률 대 김형곤)을 보다가

김경률이 이대호와 무쟈게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교해 보시라.

 

ㅋㅋㅋ...

 

 

(김경률 사진)

 

 

(이대호 사진)

 

좀 닮지 않았나?^^

김경률은 서울 당구 연맹 소속이지만,

깅상도 보리 문디이 출신이다^^.

 

아님 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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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호 감독이 내 말에 귀를 귀울이셨나^^?[야구]-펌글

곰탱이님의 [부산 갈매기... ] 에 관련된 글.

로이스터 감독,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펜투수"

기사입력 2008-07-31 19:42 기사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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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늘...

여이연에서 하는 강좌(페미니즘 유물론)가 오늘 저녁 7시부터

시작인데, 가지 못했다.

오늘 우연찮게 울 애를 만나 진로상담(?,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무엇을 하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모 이런 것들)을 하느라 시간을 놓쳐 버렸다^^(글타고 그애 핑계를 대려는 것은 아니다, 얘야 미안해^^).

지금 막 여이연에서 전화가 왔다.

왜 못 왔냐고, 내일부터는 꼭 오실 수 있냐고...

아... 놔... 챙피해...^^...

 

좀 있다가는 9시에 다른 애들을 또 만나야 한다.

강좌 가면 8시가 되고, 다시 애들을 9시에 만나려면

8시 10에 나와야 한다...

 

가서 많이 배워야 하는데...

낼부터는 오늘 몫까지 열심히 배워서

배운 만큼 포스팅하리라!!!

 

아자, 아자, 아자!!!

 

화이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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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호 감독님, 아~~~.... [야구]

오늘 선발을 허준혁으로 하셨는데, 도대체 왜 그러셨나요?...

이 친구 방어율이 무려 20.25더만요!

그리고 지난 번 임경완 마지막으로 나와서 완전히 죽 쑤는 경기할 때,

임경완 전에 허준혁을 마무리로 내보내셨다던데...

2군에서 막 올라와서 아직 뭘 잘 모르는 데 말이죠...

그리고 거의 공이 밋밋하게 들어가서 타자들이 위압감을 가지지 않고

맘 놓고 칠 수 있는 그런 부류의 투수라고 하던데요...

 

아 지금 미련 곰팅이랑 2회초인데,

1회초 갈매기들이 3점 뽑았더만,

허준혁이 3점을 쉽게 내 주어서 3대3인데요...

 

오늘 경기가 올림필 브레이크 전에 벌어지는 마지막 경기인 걸로 알고 있는데...

꼭 허준혁을, 그것도 선발로 내보내셔야 했는지요?

 

아~! 오늘 경기장 잘 안 갔다는 생각이 드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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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벌서 갈매기들 힘차게 날다^^[야구]

어제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잠실 야구장에 갔다.

미련 곰팅이와 갈매기들 간의 한판 경기가 있었다.

혼자 가라면 못 가는 완소남(완전 소심한 남자? 맞나?)이라

은하철도 님의 힘을 빌어 잠실 구장에 갔다.

 

가서 은하철도님, 할멈 님, 그리고 선전부장 님 세 분을 만나는 과정에서 엄청 해맸다.

절 기다리셨던 세 분께 참으로 미안했다.

그렇게 길치는 아닌데 말이얌^^.

8시 다 돼서는 산오리 님과 어떤 여성 분이 오셨다.

노래 부르고 소리 지르고 하면서 응원했는데,

너무너무 좋더마요!

탁 트인 운동장에서 선수들을 보니 뭐랄까 테레비로 보는 거랑 완전히 달랐다.

투수가 던지는 공과 타자가 치는 공이 공간을 가르며 날라가는 모습은 과히 장관이었다.

파란 잔디도 너무 좋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야구장에 오는거구나 싶었다.

 

어쨌든 일단 갔더니 엄청 좋더라.

(오늘도 하는데 또 가고 싶다^^...히히...)

 

어제 갈매기들의 경기는 대체로 깔끔했다.

마무리 없이 장원준이 완투를 했다.

(오늘이 장원준이 생일이라고 갈매기들이 생일축하 노래도 불러 주었다.)

나름대로 깔끔한 투구였다.

1회에 2점을 주었지만, 3점을 줄 찰라에 이인구가 홈에 송구해서 아웃을 시켜 2점에 머물렀다.

타격으로 치자면, 오늘 맹안타를 날리며 수훈을 세운 선수는 조반장(조성환)이라고 본다.

출루율 100%!

갈매기들이 점수를 내는 이정표 역할을 한 것이 조반장이었다.

거기다가 적절하게 김주찬, 이인구, 이대호, 가르시아가 안타를 만들어 점수를 착실히 벌었다.

9회엔 정보명(지명타자)이 마지막에 1안타를 치면서 1점을 더 보탰다.

그런데 박기혁은 아주 죽을 쑤었다.

무안타에다가 더블 아웃까지 당했던 걸로 안다.

점수가 날 기회에 점수가 못 나고 무산된 데에는 박기혁의 공이 실로 크다.

그래도 오늘은 실수 없이 수비를 아주 깔끔하게 잘 해 내었다.

 

갈매기들 어제 너무 수고 많았다.

오늘 엉아가 못 간다고 해서 너무 실망하거나 서운해 하지 말고,

엉아가 왔다 생각하고 오늘도 승리를 챙기시길!!!

 

맘이 콩밭에 가 있다더니, 맘이 잠실벌에 가 있다...

ㅋㅋㅋ...

 

가을엔 모두 다 함께 갈매기들 응원하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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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도대체 누구냐, 넌?! - 3

곰탱이님의 [진보, 도대체 누구냐 넌?! -1,2 ] 에 관련된 글. 

3. 계급투쟁은 진보적인가 또는 아닌가?

이런 물음을 던지는 것 자체가 어떤 이들에게는 뜬금없고 ‘별 미친...’이라는 말을 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급이 가지고 있는 이중적 측면, 즉 모순적인 측면들은 이런 물음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지도 않을까 싶다.

계급투쟁은 그 자체로 절대적으로 진보적이며 절대적으로 선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계급이 처해 있는 상황 또는 계급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모순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은 오늘날 노동자 계급 투쟁이 현실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은 모순적인 존재이다. 먼저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에 팖으로써 자본의 대상이 되는 측면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한편 임금을 가지고 자신의 삶의 주체로 살아가고자 하는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측면을 ‘즉자적’ 계급이라 하고, 두 번째 측면을 ‘대자적’ 계급이라고 한다.

즉자적 계급으로서 노동자 계급은 자본의 적대적 경쟁 이데올로기에 따라 원자화되고 파편화된 존재로서 항상 모든 걸 자기 혼자(또는 오로지 자기 가족)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개별적인 개인에 불과하다. 이 노동자는 사회적 개인이 아니다. 이 노동자는 언제나 자기와 자기의 가족 안위만이 문제이며, 그 안위를 위해서 죽기 살기로 경쟁에 뛰어든다. 동료가 짤리든, 그 동료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 자본과 싸우든 그것은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만일 이런 것이 그의 생존을 위협할라치면 협력은 고사하고 적대적인 태도로 돌변하게 된다. 이 노동자는 오로지 ‘너 죽고 나 살자’라는 전쟁의 살얼음판 위에서 목숨 부지에 연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속에서 계급투쟁의 형태는 기껏해야 경제주의, 조합주의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게 된다. 이 즉자적 계급투쟁으로는 결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가 없다. 이 상황에서 자본은 노동자 집단 이기주의의 이데올로기를 퍼트리면서 노동자들 사이의 분열을 촉진시킨다. 그리하여 노동자의 저항을 쉽게 분쇄시킨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에 따른 자본의 기본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즉자적 계급투쟁은 진보적인 것이라 할 수 없다.

새로운 생산관계, 인간관계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대자적’ 계급투쟁이라 할 수 있겠다. 자기 삶의 주체가 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투쟁이 ‘대자적’ 계급투쟁이다. 자기 삶의 주체는 자본에 의해 개별화되고 원자화된, 그리하여 분열되어 있는 즉자적 계급을 넘어서는 데 있다. 즉 이 분열을 줄여 나가기 위한 물질적 기반과 조건들을 만들어 나가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개별적이고 원자화된’ 존재에서 인간의 유적 보편성을 지닌 ‘보편적인’ 존재로 만들어 나가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존재의 생산과정은 맑스의 말마따나 동시적 과정으로서의 “환경의 변혁과 인간 활동 또는 자기 변혁의 일치” 과정이며, “혁명적 실천” 과정이다. 또한 생산력을 ‘질적’으로 변혁시키며 동시에 생산관계를 변혁시키는 과정이다. 이것이야말로 ‘진보’로서의 대자적 계급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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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에...[야구]

곰탱이님의 [당연히 마무리에 신경 쓰셔야지^^.... [야구]] 에 관련된 글.

죽은 자식 뭐 만지기기는 하지만^^...

3년 전에 롯데는 나승현과 류현진 둘 중에 하나를 뽑을 수 있는 우선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나승현이 아니라 류현진을 뽑았다면,

그래서 류현진을 중간이나 마무리로 키워 썼다면,

부산 갈매기는 06년부터는 가을에 야구하지 않았을까?^^

 

물론 류현진은 지금의 류현진이 되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확실한 선발이 아니라 확실한 마무리로 빛을 발하지 않았을까?

근데 확실한 선발과 마무리 중 어느 것이 더 나을까?^^

아무래도 확실한 선발이 낫겠지? ㅋㅋ...

 

류현진 개인에게는 롯데에 안 온 것이 훨씬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승현이 한화에 갔다면 류현진처럼 확실한 선발이 되었을까?^^

 

하긴 지금 나승현은 아직도 재박 성이 눈독을 들이고 있긴 하지만^^...

쌍둥이한테 가면 확실한 선발이 돼서 눈부신 활약을 할 수 있을까?^^

 

야심한 밤에 잠 안 자고 쓸데없는 생각을 주절대고 있다^^...

 

오늘 미련 곰팅이를 어렵게 한판 뒤집기로 이겼다.

내일 경기가 아주 기대된다.

잠이 잘 올 거 같지 않다^^.

 

덧니> 어제 맥주 캔 하나 남아 있던 걸 홀짝 마셨는데,

오늘 밤에 먹어줘야 하는 건데...

밖에 나가기는 싫고 기냥 잠을 청해야 하나...

갈등을 몹시 때리는 중이다^^.

 

왜 이럴 때 귀차니즘이 발생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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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마무리에 신경 쓰셔야지^^.... [야구]

갈매기 제일호 감독께서 매클래리를 내보내고서는

쌍둥이의 페타지니에 눈길을 주셨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것은 갈매기들의 타격 부진을 우려하여 타력에 우선 순위를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봉다리 대호가 살살 살아나고 있고,

선발에서 나름 잘 해 주고 있는 덕분에 승리의 불씨를 살릴 수 있을 만한 상황이 되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제일호 감독께서 마무리를 구하고 있다는 낭보를 접하였다는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지금 미쿡에서 마무리를 고르고 있는 중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여 말하지만,

갈매기는 타력이 문제가 아니다.

바로 불펜, 마무리가 문제이다.

이 점을 항상 잊어서는 안 될 것이얌^^.

 

이제부터 쌈빡하게 마무리를 키우도록 하자.

그것이 임작가이던, 나승현이던 말이지^^...

향운장이 돌아오면 향운장을 마무리보다는

중간(불펜)요원으로 쓰는 것이 더 나을 듯싶다.

중간이 확실히 8회까지 콱콱 밟아줘야

마무리에게 부담주지 않고 잘 키울 수 있거든^^...

 

야구에서 진지전의 기초는  바로 투수진이라는 진지임을 알아야 할 것이얌^^.

낼 부산 갈매기는 누가 선발로 나오시남?

그리고 마무리는?

 

덧니> 나승현이를 재박옹께서 무지하게 탐을 냈다는 후문이^^...

페타치니와 맞바꿀 용의가 있었다는 후문이...

근데 롯데가 거부했다는...

안 그래도 마무리 없어 죽겠는데,

나승현까지 보내면 가을 야구 그만 둬야지...

 

지금 타력만으로도 타구단을 벌벌 떨게 할 수 있는데, 뭐하러^^...

 

확실한 마무리 잘 키워 내년에는 반드시 부산 갈매기를 전국에 울려 퍼질 수 있도록!!^^

ㅋㅋㅋ...

아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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