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요롭다'

from 글을 쓰다 2011/05/19 21:22
비슷비슷한 어투와 목소리 때문일까요. 집회장에는 난생 처음 왔다는 사람들도 세 번 정도 식순이 지나고 나면 벌써부터 식상하단 소리가 나오곤 합니다. 물론 연단 위에선 이들에게는 절실함과 굳은 의지가 그리 나타나는 것이겠지만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음이 틀림없을 터인데도 어찌 그리도 한결같은지. 하지만 그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결의대회에서도, 끓어오르는 분노가 가득한 규탄대회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니 그 분은 구수한 사투리로 외치는 구호 하나만으로도 참가자들을 절로 웃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지요. 결코 허황된 몸짓이나 말투가 아닌, 권력에 대한 해학과 풍자, 조롱, 민중에 대한 올곧은 사랑과 진실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 구호 하나, 하나. 그것은 우리의 웃음‘이자, ‘무기’였습니다.
 
“다운 다운 더블유티오(down down WTO)”
“아우워 워드 이스 아우워 웨폰(our word is our weapon)”
 
종요롭다 : 없어서는 아니 될 만큼 긴요하다. 사물에 있어서 가장 중추(中樞)의 부분이 될만하다.
 
전라남도 해남 출신으로 농민운동을, 민중운동을. 아니 스스로를 ‘전선운동가’라 부르며, 치열한 삶을 살아왔던. 권력을, 부를 움켜쥔 자들에게는 한 알의 ‘쭉정이’겠지만. ‘여의도에 아스팔트 해방농사’를 맨 앞에서 이끌어왔던 종요로운 사람, 정광훈. 그가 이제 광주 망월동 민중항쟁 열사들 곁에, 고향 후배 고(故) 김남주 시인의 옆에 고이 잠들었습니다.
 
1년 내내 씨 뿌리고 뼈 빠지게 거두어서
보리농사 망하고 고추농사 조지고 남은 것은 빚 덩이뿐
이 세상에 지어먹을 농사가 하나 있어
여의도에 아스팔트 해방농사 지어보세
너 살리고 나 살리는 아스팔트 농사 이 농사가 최고로세
농민해방 앞당기는 단결투쟁 농사 이 농사가 최고로세
 
사람답게 살겠다고 죽자 살자 일을 해도
사람구실 못하고 이내 신세 조지고 남은 것은 쭉정이뿐
이 세상에 지어먹을 농사가 하나 있어
여의도에 아스팔트 해방농사 지어보세
너 살리고 나 살리는 아스팔트 농사 이 농사가 최고로세
농민해방 앞당기는 단결투쟁 농사 이 농사가 최고로세 이 농사가 최고로세
(고(故) 정광훈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이 쓴 ‘아스팔트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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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9 21:22 2011/05/19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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