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支柱)

from 11년 만천리 2011/10/31 19:39
지주(10월 14일/흐림 9-15도)
 
내년에 농사를 짓지 못한다고 하니 이것저것 생각해야 할 게 많다. 우선 어렵사리 모아 올 한 해 잘 키워 갈무리한 종자들을 잇지 못한다는 게 가장 걸린다. 내후년까지도 농사를 짓는 게 어찌될지 모르니 무작정 보관만 할 순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다 밥에 넣어 먹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여기저기 조금씩 다 나누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또 걸리는 게 있다면. 100평 농사를 짓던 1,000평 농사를 짓던 꼭 필요한 농사기구들이 문제다. 삽, 괭이, 호미, 낫 같은 것들이야 잘 닦아서 보관하면야 문제가 없지만. 비닐 끈이라든가. 첫 해에 쓰고 남은 멀칭용 비닐이라든가. 창고에 넣어둔 고추용 대나무 지주. 토마토, 호박, 오이에 쓴 각목 지주까지. 덩치가 꽤 있는 것도 있어 이래저래 보관하기도 그렇고. 또 내년엔 이사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버리자니 아깝기도 하고. 참 난감하다.
 
오늘도 그렇다. 내일 또 영하에 가까운 추위가 온다 해서 마지막으로 팥꼬투리 따기 위해 밭에 나왔지만. 황량하게 서 있는 각목 지주를 보니 저걸 어째나 싶어 한참을 망설이다. 버릴 때 버리더라도, 아니 집으로 갔다 놔야 짐만 될 게 뻔해 어딘가 처박아 둘 게 뻔하지만. 일단은 한데 모아두자는 마음에 찬바람 맞으며 한 시간 넘게 끈 잘라내 모으기까지 하며 다 뽑아냈는데. 다 하고 나니 저걸 어째 다 자전거로 옮기나 싶어. 괜한 짓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또 참 난감하기만 하다. 
 
율무(10월 28일/맑음 8-20도)
 
봄 날씨다. 낮 기온은 20도를 오르내리고. 아침나절도 쌀쌀하지 않으니. 엊그제 그리고 지난 주 딱 이틀만 춥지 않았더라면 팥을 제대로 수확했을 터인데. 이미 지나간 일, 그리고 사람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두고두고 안타깝다.
 
지난주에 베어 널다 남겨둔 메주콩을 마저 다 베고. 서리태는 어찌 여물었나 보니 음. 오늘은 율무 수확하고 내일은 서리태를 베어야 할 듯. 빈 꼬투리가 많이 보이긴 하지만 이만치 속이 찼으니 이제 거둘 때다. 
 
한 시간 남짓 쭈그리고 앉아 율무 따내고 나니 등에 땀이 날 지경. 날씨가 거꾸로 가는 건가. 마침 배도 고프고 하니 듬성듬성 서 있는 들깨 몇 개 더 베어 널고는 자전거에 오른다. 한 봉기 가득 딴 율무 싣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1/10/31 19:39 2011/10/31 19:39
Tag //

Trackback Address :: https://blog.jinbo.net/nongbu/trackback/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