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무더위에 지쳐 겨우 덕산까지 걷고 성심원으로 향하다(2012년 7월 28일)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 밤 나물을 다듬던 옆 방 일행들은 편백나무 숲으로 산책을 나갔다고 한다. 누군 아무리 늦게 도착해 녹초가 됐다고는 해도, 참 부지런들 하다. 그나저나 빨래가 하나도 마르질 않았다. 새벽 서리를 맞은 건지, 피곤한 몸에 꼭 짜질 못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배낭에 주렁주렁 매달고 가야할 생각을 하니 식전부터 심란하다. 하지만 어째, 일단 밥부터 묵고, 냉장고에서 얼린 물과 빈 생수통을 바꾸고, 어제 일을 교훈 삼아 단단히 맘을 먹고 출발한다. 다만, 오늘 잘 곳이 마땅치 않으니 덕산까지만 걷기로 하고.
 
위태를 감싸 안은, 안개인지 구름인지가 걷히니 아침인데도 또 땡볕이다. 갈치재에서 만난 대나무 숲도, 유점마을 느티나무 그늘 아래 평상도, 더위를 피하기는 쉽지 않다. 점심때도 멀었건만 벌써 얼음물은 반 이상 녹았고. 길 옆 감나무가 늘어선 긴 내리막길을 지나 겨우 도착한 중태마을 안내소에 도착히니 얼음은커녕 물도 없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며 느닷없이 사진찍자 달려든 부부 때문에 잠깐 웃기는 했지만. 이래서야 어디 덕산까지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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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여서 자고 가라는 할마시들을 뒤로하고 땡볕에 다시 길을 나서니 다들 걱정스런 얼굴이다. 하긴 제 정신이 아니면 이 더위에 어찌 걸을 생각을 할까.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나 되니 기어코 길을 나설 터이니. 할마시들로서는 이해가 되질 않을 터이다.

 
11시가 넘어 중태마을을 출발해 1시가 다 되 덕산에 도착했으니 시간상으론 겨우 3시간을 걸었을 뿐인데. 천평마을 못 미쳐 2층 평상에서 대자로 뻗어 쉬었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아스팔트길을 느릿느릿. 달팽이 기어가듯 걸었으니 걸은 길은 얼마 되지 않을 듯. 하지만 얼굴뿐만 아니라 종아리, 허벅지까지 뜨끈뜨끈. 배는 등에 붙고 기력은 완전 소진. 여서 더 갈 수 없다는 게 되레 다행이지, 싶다. 그런데도 맛난 걸 먹겠다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몸만 더 고생이다.
 
셋째 날, 해질녘 강 따라 걷는 길, 성심원에서 산청읍까지(2012년 7월 29일)
 
하늘이 도왔나, 여름 성수기 때 방구하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 이 보다 더 좋은 민박을 구할 수 있을까 싶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둘레길 안내소와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경호강가 성심원.
 
어제 낮, 밥을 먹고 쉴만한 곳을 찾아 대원사까지 갔었지만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人山人海).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보지만 역시나 방 없음 또는 턱도 없는 방 값. 이거 집에 가야 하나 전전긍긍하고 있던 차에 생각난 것이 당초 모래 자기로 했던 성심원이었는데.
 
방도 2개에 샤워실과 화장실이 따로 있고, 밥은 식당에서 먹긴 했지만 취사시설까지 있으니. 둘이 머물기엔 호사가 아닌가도 싶다. 게다가 덕산에서부터 성심원까지 건너뛰긴 했어도. 실은 백운계곡이니 웅석봉이니 하는 산들을 넘는 게 여간 부담이 되지 않아 다행이지 싶지만. 여기서 다시 둘레길을 이어가면 될 듯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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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에 늘어지게 책도 보고 산책도 할 수 있겠다 싶어, 하루 더 빌리기로 한 것이다. 해서 어제, 오늘 이방에서 저방으로 뒹굴뒹굴, 책보다 밥 먹고 낮잠 자고. 해질녘이 돼서야 산책도 할 겸 산청까지 쉬엄쉬엄 걸었다.

 

길을 잘 못 들어 과수원을 가로질러 가기도 걷기도 하고. 산한만 개에 놀라 뛰다시피 걷기도 하고. 여름철 물놀이며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들이 내뿜는 매연을 피해 걷기도 하고. 노을 지는 강이 이뻐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말이다.

 

* 지리산 둘레길 걷기 첫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보통 둘레길은 시계방향으로 걷지만,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하동호-삼화실, 위태(상촌),-하동호, 덕산(사리)-위태 구간을 삼화실 바로 아래 이정마을에서부터 덕산으로 걸은 것. 여기에 덧붙여 수철-어천 구간 중 풍현(성심원)에서 바람재를 넘어 산청읍까지 산책하듯 걸었다. 첫째 날은 이정마을에서부터 위태까지 약 21km, 둘째 날은 위태에서 덕산까지 10km 남짓, 셋째 날은 6km 정도.
 
* 가고, 오고
태백에서 지리산까지는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버스로든 기차로든 여러 번 갈아 타야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뭐든 대략 6시간 내지 7시간 정도 걸리는데, 대구 쪽으로 가야 자주 있다.
 
* 잠잘 곳
이정마을과 바로 옆 삼화실에는 민박과 게스트하우스가 있으니 출발지로는 안성맞춤이다. 하동호 주변, 궁항리, 위태, 중태에는 숙박할만한 곳이 여럿 있으니 적당한 곳에서 쉬어 가면된다. 성심원에는 게스트 하우스가 있는데 식당 이용은 사전에 알아봐야 한다. 때맞춰 자원활동을 하러 온 이들이 있다면 저렴한 가격에 밥을 먹을 수도 있으니. 지리산 둘레길 공식 홈페이지에는 교통편, 숙박, 음식 등에 대한 더 자세한 후기들이 많으니 꼭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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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8 08:49 2012/10/18 08:49

첫째 날, 만만하게 봤다 큰 코 다치다, 해 넘어 겨우 당도한 곳 위태(2012년 7월 27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준비는 많이 했다. 배낭도 새로 사고 등산화도 사고. 한 짝이 있었지만 스틱도 하나 더 주문하고, 혹시나 몰라 손전등까지 함께 주문했으니. 둘레길 전제 지도는 물론이고, 구간별 지도도 일일이 프린트하고. 것도 모자라 바우길을 걸으면서 유용하게 쓴 GPS를 가져가기 위해 둘레길 트랙까지 구했으니. 휴가철과 겹치는 것 같아 두 번, 세 번 확인하며 일주일치  예약까지 한 민박은 출발 열흘 전에 마쳤고. 이만하면 다 준비됐다, 싶었다. 그리고.....
 
 
 
 
 
 
 
 
 
 
 
 
 
 
 
 
 
어제 기차에서만도 꼬박 8시간이 넘게 걸려서 온 하동읍에서. 내일부터 고생 많이 할 터이니 오늘부터 힘 빼지 마라며, 터미널에서부터 손수 차로 민박집까지 데리고 와주신 주인아저씨. 반찬이 너무 많이 남아 죄송한 마음까지 들게 진수성찬을 차려주신 주인 아주머니. 언제와도 푸근함으로 맞아주는 지리산만큼이나 푸근한 인심에 탁, 그만 마음을 놓았던 건 아니었나, 싶었다. 하지만.....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던 삼화실 게스트하우스를 지나자마자 시작된 가파른 오르막길. 며칠을 고민고민하다 반대로 걷는 게 햇볕을 덜 받겠다 싶었는데, 이거 웬걸. 아스팔트길이 끝나고 산길로 접어들었는데도 계속 얼굴로 비치는 해. 겨우 8시가 조금 넘었는데도 바람 한 점 없는 푹푹 찌는 날씨. 땀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모기떼들까지. 겨우겨우 첫 고개, 느닷없이 나는 오줌냄새에 오줌을 지릴 만치 높아 오줌고개라 부르고 싶은 존티고개를 넘어가는데. 이거 만만치가 않겠다, 걱정이 이만저만이다.
 
 
 
 
 
 
 
 
 
 
 
 
 
 
 
 
고개를 넘어 만난 첫 마을, 상존티마을 정자에서 잠시 땀을 훔치고. 관점마을을 지나서는 작은 고개를 또 넘기도 했지만, 이제 해도 등 뒤로 넘어가고 길도 평탄한 하니 걷기가 한결 수월하다. 또 멀리서 봐도 범상치 않다, 싶은 화월마을 당산 벚나무 아래에선 달게 쪽잠도 자고. 때 맞춰 밥도 먹었지만.
 
두 번이나 바꿔가며 가져간 돗자리가 햇빛을 고스란히 반사시키는 바람에. 하동호 아래 축구장 나무그늘에서 두 시간 넘게 쉬는 동안 통구이가 되다, 이거 안 되겠다 싶어 길을 나섰는데. 제일 더운 때 하동댐을 기어오르는 셈이니. 둘레길 휴게소에 도착하니 더위 먹는다는 게 어떤 건지 실감이 난다. 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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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시간 넘게 그늘에서 쉬다 길을 나섰지만. 다시 만난 고개 초입에서 거의 무더위에 실신하다시피. 가니 되돌아가니 실랑이를 하다 겨우 출발. 지나는 길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대나무 숲과 계곡물이 번갈아 나오며 몸을 호사롭게 하지만. 연신 흐르는 땀 때문에 머리와 목에 물을 퍼부어도 역부족. 더구나 엎친 데 덮친 격. 궁항마을을 지나면서 지기 시작한 해가 오율마을에 이르니 어둑어둑, GPS는 전원이 나가고. 겨우겨우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내리막길을 내려오는데. 몸은 천근만근, 민박집은 통 보이질 않는다. 분명 아까 전화했을 때 40분이면 된다고 했는데.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난다. 
 

겨우 포장길에 내려서니 저만치서 자동차 불빛이 보이는데, 그만 맥이 탁 풀리고 발이 후들후들하다. 다행히 든든한 정돌이가 앞장을 서고, 도착한 민박집에서 찬 물에 씻고 밥을 먹으니 쪼매 살 것 같다. 허나 아저씨 얘기론 오늘 밤 달이 지고나면 별빛이 쏟아질 거라는데. 만만하게 봤다 큰 코 다치고. 겨우 해 넘어 당도한 곳, 위태에서 혼절하듯 잠에 빠지고 만다. 내일 예약했던 마을 체험관이 빵꾸가 나 일정을 바꿔야 하는데도..... 아무래도 많이 준비한 거는 죄다 자잘한 것들이고, 정작 준비해야 할 것은 하지 못한 듯. 튼튼한 몸, 일주일 내리 산을 타야 한다는 각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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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0 13:59 2012/09/10 1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