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유두류록(遊頭流錄)’길?, ‘빨치산루트’길?(2016년 5월 5일)
 
여전히 반대방향으로 걷느라 들머리가 된 동강마을에서 늦은 점심을 합니다. 당체 오가는 사투리가 암호마냥 알아들을 수 없는 긴 했지만요. 그래도 재미난 얘기도 듣고 반대쪽 길 소식도 좀 듣고요. 오늘처럼 햇볕이 따가운 날이 아니라도 잠시 쉬어가기 딱 좋은 팽나무를 못보고 시작하긴 했지만요. 오르막길 내내 선선히 부는 바람이 발걸음을 가볍게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둘레길 금계-동강 구간은 김종직(金宗直)이 쓴 '유두류록'을 따라 걷는 길로 알려졌습니다. 그가 함양군수로 있을 때 만든 <관영차밭조성터>가 가까운 동호마을에 있는 것부터 그렇구요. 동강마을 팽나무, 운서마을로 넘어가는 구시락재, 송대마을 함양독바위들은 고증을 거쳐 찾아낸 곳들이라고 하니요. 그도 그럴만 합니다.  
 
앞에 그냥 지나쳤던 팽나무도 그렇습니다. 수령이 600년이나 됐다는데요, 계온(季溫)이 관아를 출발해 이곳을 거쳐 지리산에 올랐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헌데 무엇이 그리 급했던지 그걸 놓친 거였지요. 필시 해가 지기 전에 금계를 거쳐 창원마을까지 가야한다는 부담 때문이었겠지요.   
 
사실 동강에는 지난번에도 지나친 재미난 얘기가 하나 더 있는데요. 바로 마을 입구에 있는, 엄천사 스님들이 '중이 바랑을 메고 가는 형국'이라며 깨려고 했다고도 하는, 짚신을 삼는데 쓰는 나무틀처럼 생겼다는 신틀바위가 그겁니다. 나중에야 여간해선 눈에 들어오지 않아 그냥 지나치기 일쑤라는 걸 알긴 했지만 말입니다.
 
구시락재까지는 아무리 오르막길이라 해도 뒤를 돌아보면 엄천강이 시원하게 보여 걸을만하지만요. 운서마을 쉼터를 지날 때까진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면서 힘을 뺍니다. 그것도 경사가 급합니다. 결국 자주 쉬어 가야겠는데, 어찌된 게 아무렇게나 앉아 쉬었다 출발하면 바로 앞에 정자(亭子)가, 의자가 있습니다. 조금 약이 오르지만 하는 수 없지요.
 
다음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는 하지만, 송문교까지 가는 길에선 둘레길꾼들을 가장 많이 만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짝지어 오거나 단체로 때론 혼자서. 어색하지만 인사말도 건네 보고요, 커피까지 타 먹게 해 놓은 쉼터에서 급한 볼일도 보고요, 용을 닮아 와룡대라 불리는 소나무 바위도 너머보고요. 심심할 새가 없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데도 세동마을서 모전마을까진 안내판이 친절하지 않습니다. 그냥 아스팔트길을 따라 가면 되긴 하지만요. 난데없이 나타난 [지리산 둘레길 전설 탐방로]라는 표지가 헛갈리게 합니다. 뭐 뜨끈한 길에서 내려다보자면요. 농로로 이어지기도 하고 강가에 바짝 붙어 있기도 하니요. 그쪽이 훨씬 걷는 재미가 많아 보이긴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동강-금계 구간은 ‘빨치산루트’라고도 불립니다. 전쟁이 끝나고도 10년이나 더 산속에 있었던 이은조가 죽었다는 선녀골과 그 주변 비트들 때문입니다. 또 가까운 벽송사 뒤편 능선을 따라서도 흔적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물론 산청 쪽에도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이 사로잡혔던 고향 집이 있으며, 하동 쪽도 꽤 많은 자취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시간만 된다면야 그 길들을 되짚어 가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만. 송대마을까지 올라야 제대로 된 안내판을 만나게 되니까요. 갈림길인 모전마을에선 알 수가 없다는 핑계, 서둘러 걷지 않으면 숙소로 정한 창원마을까지 어렵겠다는 판단. 벽송사로 이어지는 산길 대신 둘러가는 길로 접어드니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그늘 하나 없던 딱딱한 길을 버리고 숲길로 들어서기 전 잠시 쉬어갑니다. 하지만 철모르게 일찍 나온 모기 때들이 어찌나 극성이던지요. 곧 만나게 될 급한 오르막과 너덜겅을 앞두고, 아홉 마리 용과 마적도사 얘기는 그렇다해도. 별 소용도 없는 댐 짓겠다고 아우성치는 바람에 몸살을 앓고 있는 용유담도 제대로 못봅니다. 첫 여행 때도 그랬는데 지리산 모기, 꽤나 성가십니다.
 
매번 그랬지만 안내 책자나 둘레길 홈페이지에 나온 거리에 따른 시간은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또 겪습니다. 4시간이면 충분할 거라던데, 모전마을에서부터 시작된 숲길을 지나 의중마을에 내려서니 벌써 6시 입니다. 급한 오르막길 이후 너덜겅과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져 생각보다 오래 걸었다고 해도, 4시간 반이나 지났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둘레길 함양센터 앞에서 미리 예약한 민박집에 연락하니 40분이면 올라올 수 있을 거라 합니다. 후아, 40분이라. 줄기차게 올라야 하는 산길임을 감안하면 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헌데 무슨 깡인지 평상에 올라 대(大)자로 눕습니다. 아마 오르막길이 험하면 얼마나 험할까 얕잡아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산길을 한 번 제대로 쉬지 않고 내리 걸어 숲길에서 나오니 딱 40분이 걸렸습니다. 다행히 어둑어둑해지기 전에 도착했지만요. 또 민박집 주인장 걷는 모양새를 보고나서야 왜 40분이라고 했는지 알게 됐지만요. 역시 지리산 둘레길은 순례길이란 생각에 고개가 절래절래. 밥이고 뭐고 또 팔다리 쫙 펴고 눕습니다.       
 
 
 
* 인민군 야전병원으로도 사용됐던 벽송사 뒷산의 선녀굴로 피한 마지막 빨치산은 이은조와 정순덕 외에 이홍이가 있었습니다. 휴전이 되고도 근 10년 가까이 은신했던 이들 가운데 1962년 이은조가 가장 먼저 사살됐습니다. 살아남은 정순덕과 이홍이는 고향인 산청으로 피신하게 되구요. 하지만 다음해 이홍이 역시 경찰에 피살됩니다. 정순덕만이 총에 맞은 채 붙잡히게 된 것이지요. 체포된 정순덕은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 넘게 옥살이 하다 1985년에야 전향서를 쓰고 출옥합니다. 하지만 이 전향서 때문에 미전향장기수들이 북으로 돌아갈 수 있었음에도 거부당하게 됩니다.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은 2004년 인천의 한 병원에서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7/07/26 13:38 2017/07/26 13:38
핏빛 자락, 지리산을 걷다: <수철-동강> 구간(2015년 4월 24일)
 
지리산자락 어디 한 곳 가슴 아픈 사연을 품지 않은 곳이 있을까요. 조금 멀게 갑오년 농민군에서부터 가깝게는 한국전쟁 전, 후 '빨치산'까지. 또 이들 틈바구니에서 무고하게 목숨을 잃어야했던 무수한 이름 없는 이들 말입니다. 해서 지리산은 어느 노랫말처럼 "떨리는 비명 소리"에 숨죽어 있는 "죽음의 저 산"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처럼 파란 하늘을 보여주고 있는 오늘, 산길 따라 걷다 그 끝에 만나게 되는 방곡마을 역시 그렇습니다. 똑같은 일이 있었던 거창에서는 그래도 학살 당시 알려졌지만. 가현과 방곡, 점촌, 서주마을에서 벌어졌던 학살은, 맞습니다. '민주화' 이후에야 겨우 목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추모 묘역이 조성돼 있으니 이만하면 '명예회복'까진 이뤄진 걸까요.  
 
그래도 한 날, 남들 알까 모르게 제사상을 차려야했던 아픔이 어디 쉽게 치유되겠습니까. 묘역으로 오르는 저 높은 계단만큼이나 세상과 단절됐던 마음속 아픔들 말입니다. 그러니 이 구간을 걷는 동안만큼은 옷깃을 여미며 걸어야겠습니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고 말하기조차 그 아픔을 오롯이 알 수는 없으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심원에서부터 경호1교까지는 건너뛰고 시작합니다. 둘레길 걷기 첫 번째 여행 때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땐 성심원에 게스트하우스가 생기기 전이라 수도원 피정시설에 묵었었는데요. 저녁나절 살랑살랑 부는 강바람을 맞으며 가뿐히 걸었더랬지요. 그러니 산청터미널에서부터 바로 시작해도 되겠습니다.
 
다만 잠시 둘레길 산청센터에 들릅니다. 저녁에 잘 곳을 알아봐야 하니까요. 사실 어제 낮 까지만 해도 길을 나설지 정하지 못했습니다. 해서 미리 예약을 못했습니다. 물론 방곡마을회관 전화번호를 챙겨오긴 했지만, 거기 말고도 다른 민박집들을 알아봐야 합니다. 휴일도 아닌데다 예전만치 둘레길 걷는 이들이 많지 않아 문 연 곳이 많지 않으니까요. 
 
다행이 바뀐 전화번호에, 몇 군데 민박집이 적힌 메모지를 받았습니다. 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걱정을 했는데 조금은 안심입니다. 바로 머리 위에서 내려쬐는 햇볕이 따갑기는 하지만 이제 속도를 내서 걸어야겠지요. 수철마을까진 그래도 강을 따라 걷는 길이라 수월하지만. 고동재와 쌍재를 넘는 산길은 만만치 않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처음부터 꼬였습니다. 경호1교에서 길을 잘못 들어선 겁니다. 한참을 갔다 되돌아와 봤던 이정표는 분명 강 쪽으로 향해 있는데. 대체 무슨 얘기를 하다 그리됐는지요. 아니 뭘 보다 그리됐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만 마을 길로 곧장 갔던 겁니다. 생각했던 시간보다 빨리 도착했다 싶었는데 여기서 다 까먹었습니다.
 
애초 둘레길을 역방향으로 걸으려 했던 이유는 해를 등지고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동에서 산청까지 길들이 대략 북쪽으로 난 길이니 말입니다. 물론 뜻대로 되진 않았습니다. 아침에 걸을 때와 낮에 걸을 때, 해질 때 걸을 때에 따라 다 달랐으니까요. 하지만 산청구간으로 오니, 그것도 오후에 걸으려니 해를 정면에서 마주보고 걷게 생긴 겁니다. 아, 어쩌지요. 
 
대장마을을 지나 평촌마을까지 땡볕에 내처 걷습니다. 길이 아니라는 표지판에 되돌아 걷기도 하고. 강을 따라 걷는 길이라 그런지 군데군데 보이는 보(洑)를 보며 4대강 얘기도 하며. 줄줄이 이어지는 다랑이 논들에 놓여있는 모판들을 보며 그새 날이 이렇게 됐나, 하며. 머리 위 따가운 해 때문에 속도는 나지 않지만 간간이 부는 강바람에 힘을 내봅니다. 
 
수철마을 매점에서 간단히 배를 채웁니다. 마음 같아서는 ‘금방 가버리면 뭐하느냐, 천천히 쉬었다 내일 아침에 가라’는 할머니 말처럼 쉬었다 가고도 싶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나선 길인데다 빠듯한 시간이 좀은 걱정되긴 하지만, 결국 길을 나섭니다. 곧 겹벚꽃나무에 홀려 길을 잃고 오르막길을 한참이나 올랐다 되돌아오면서도 말입니다. 
 
길이 가파르게 이어집니다. 마치 지난 번, 두 번째 여행에서 올랐던 웅석봉과도 같습니다. 이런 걸 데쟈뷰라고 하던가요. 저 고개만 돌아서면 나올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돌아서면 또 고개가 나오고 급기야 임도를 벗어나 산길로 말입니다. 그런데 아차차, 같이 걷던 걸음이 서서히 차이가 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도 거기선 좀 나았습니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쌍재에 이르기까지는 보이지가 않을 정도로 떨어져 버린 겁니다. 길도 오르기만 했던 아까보단 훨씬 나은 능선길이었는데요. 산길이라 길을 잘 못 들어설 수도 있고,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 생길수도 있는데. 뭐가 그리도 바빴던 걸까요. 소리치면 들릴 정도는 아니, 보일만큼은 거리를 뒀어야지요. 
 
아닙니다. 함께 길을 걷기로 나섰으니 좀 늦어 밤길을 걸으면 어떻고, 혹여 잘 곳이 없어 택시를 불러야 한다 해도 어떻습니까. 무조건 같이 갔었어야지요. 산길로 접어들기 전처럼, 이런 저런 얘기도 하고 경치도 보고 말입니다. 지난 번 여행 때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또 그랬습니다. 그것도 산길에서 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쌍재부터는 길이 좁아지는 계곡 옆을 걸을 때만 빼곤 나란히 걸었습니다. 전처럼 도란도란, 소곤소곤. 내리막길이기도 했지만 훨씬 힘이 덜 듭니다. 다만 시간이 있었다면 계곡에 발도 담그고 쉬었다 가겠지만 민박집과 전화 통화를 하지 못해 마음이 급합니다. 해서 조금은 서두릅니다. 해지기 전에 도착해야 추모 묘역도 둘러보고 할 수 있으니까요.
 
다행히 해가 뉘엿뉘엿 할 때 쯤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우려했던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추모비에 들를 여유는커녕 마을 어디서고 잠 잘 곳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을회관은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하고. 회관에서 알려준 어느 할머니는 아들 집에 와 있다 하고. 또 다른 민박집은 2명은 안 된다고 하네요. 하는 수 없습니다. 늦기 전에 동강마을로 가야겠습니다.
 
배낭에서 후레쉬도 꺼내들고 해는 져서 어둑어둑해진 길을 나섭니다. 여기저기서 개들이 짖고 난리도 아닙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잠잠했었는데, 깜깜해지니 그치들도 경계를 하는 가봅니다. 더구나 멀리서보니 줄에 묶여 있지 않아 보이는 산만한 개도 보입니다. 어찌해야 하나요. 다행히 저 쪽 길 아래 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모습이 보입니다.
 
두릅을 따고 계셨던 두 분 덕에 민박집을 찾았습니다. "안 되면 우리 집으로 와, 우리 집에도 방 있어"라고 하며 넉넉한 웃음을 지어어보이던 두 분이 아니었으면 어찌됐을까요. 깜깜한 밤도 밤이었지만, 그 덩치 크고 목소리도 무서운 개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막막합니다. 게다가 버스는 진즉에 끊겼고 돌아가는 길은 어딘지도 모르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둘레길을 걸었던 세 번째 여행 만에 처음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또 계곡물에 귀도 기울여보구요. 그러니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날 동강마을까지 길은 동네 산보나간 정도였으니 딱히 소개할 것이 없네요. 한 30분이나 됐을까요, 금세 도착했거든요. 아, 어제 밤 그 줄도 안 묶여 있던 산만한 개요? 어째요. 그냥 논길을 빙 둘러 갔답니다.
 
* 지리산 둘레길 걷기 세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여전히 둘레길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습니다. 함양읍에서 수철마을과 방곡마을을 거쳐 동강마을까지 약 18.5km입니다. 
 
* 가고, 오고
거리가 먼만큼 시간도 많이 걸리네요. 차 시간이 잘 맞아도 대략 5시간에서 6시간 남짓 걸리니까요.   
 
* 잠잘 곳
수철마을이나 방곡마을, 동강마을에는 민박집이 많습니다. 하지만 둘레길 걷는 사람이 많을 때가 아니면 문을 열지 않는 곳이 꽤 됩니다. 그러니 출발하기 전에 확인해야겠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7/06/07 17:22 2017/06/07 17:22
사용자 삽입 이미지첫 번째 여행 ② 제주의 아픈 역사를 오롯이 만나다: 10구간 화순-모슬포 올레(2015년 1월 28일)
 
제주에 가면 꼭 가야할 곳으로 두 군데는 일찌감치 정했습니다. 올레길도 마찬가지로 한 구간만큼은 걸어야겠다, 마음먹었구요. 4.3 평화공원은 도착하는 날 그리고 강정마을은 떠나기 전에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해서 여행 첫날엔 세찬 비구름에도 기념관을 둘러봤고, 강정은 이제 내일 가보려 합니다.
 
올레길은 어제 우도가는 길이 막히는 바람에 대신 예정 없이 걸었던 21구간은 제처놓구요. 바로 오늘 걸을 10구간만은 꼭 걷고 싶었습니다. 제주 어디라고 그렇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요. 모슬포항에서 얼마 떨어지지 섯알오름과 알뜨르비행장 그리고 송악산 자락 여기저기에 새겨져 있는 아픈 역사를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현대사에서 제주만큼 가시밭길을 걸어왔던 곳도 많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여전히 가슴 아픈 길을 걷고 있기에 마음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온 몸으로 겪어온 곳이면서 여전히 미국과 중국이라는 세계 초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가 될 지경이니 말입니다.
 
화순-모슬포 올레는 이런 제주 역사를 생생히 보고 느낄 수 있는 구간입니다. 물론 중산간 마을들을 이어주는 다른 곳들에서도, 해안가 마을과 오름들을 걷는 또 다른 길들에서도 제주와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만큼이나 오롯이 역사와 마주설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요. 해서 오늘은 지난번과는 다른 마음으로 올레길을 걷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다들 여기 10구간은 모슬포에서 시작해 화순모래해변으로 걷더군요. 내내 산방산을 품고 걷는 게 좋았다는 사람, 송악산과 섯알오름을 지나고 나면 다소 밋밋한 길이 이어져 마무리가 아쉽다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바로 걷던 거꾸로 걷던 무슨 상관입니까. 그 안에 담긴 역사를 제대로 본다면 말이지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요. 맞습니다. 걷기 전에 배부터 든든히 챙깁니다. 대략 5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니 시간이 될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단 먹어야지요. 그래야 힘차게 걸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서는 배 툭툭 두드리며. 엊그제 만났던 것만큼이나 예쁜 모래밭, 이름도 비스므리한 하모라는 해변을 걷는 것 또한 나쁘지 않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올레길에서 만나는 풍경 가운데 가장 익숙한 것이라는 건 다음 날 알았더랬습니다. 동백꽃이 예쁘다는 위미에서 떼 지어 나돌아 다니는 덩치 큰 개들을 보고 나서 말입니다. 모래밭을 벗어나 소나무 숲길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주친 산만한 개. 딴에는 그저 무심한 듯 쳐다본 것 같지만, 방심하다 어찌나 놀랐던지요.
 
하는 수 없습니다. 찻길로 내려와 돌아갑니다. 다행히 얼마 가지 않아 혹시나 하며 다시 숲길로 들어섰을 때 개가 보이질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숲길이 금방 끝납니다. 별 도리 없네요. 올레길에 빨리 적응해야 할 터인데, 아직은 쉽질 않습니다. 지금은 돌아서 갈 수야 있겠지만 외길인 경우엔 어쩌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알뜨르는 ‘아래쪽 들판’이라는 뜻을 가진 예쁜 이름인데요. 이름만큼이나 정말 넓디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산방산과 섯알오름을 번갈아가며 마주고보고 걷던, 억새가 가득한 그 들판 말이지요. 하지만 이곳이요. 눈에 보이는 표지판 하나 없고, 위성지도를 통해서야 겨우 그 형태를 알아 볼 수 있는, 일본군 비행장이었다니요.
 
19개나 남아 있는 비행기 격납고며 고사포 진지, 탄약고, 지하벙커들을 하나하나 둘러보고 있자니 가슴 한편이 먹먹해집니다. 곧 만나게 될 송악산 일본군 진지들도 그렇겠지만, 대체 얼마나 많은 제주민들의 희생이 있었던 걸까요. 그저 전쟁이 미치지 않아 다행이었지, 하기엔 그 노역(勞役)이 너무 무거울 따름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격납고 안에 세워진 제로센을 먼발치에서 보고 난 후 섯알오름에 오릅니다. 물론 입구에 세워진 <섯알오름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묵도(默禱)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추모비에는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학살 된 200여명의 제주민들의 영령이 새겨져 있습니다. 잠깐 멈췄던 아련함이 다시 밀려옵니다.
 
10구간은 알뜨르비행장에서 섯알오름, 그리고 곧 이어지는 송악산 둘레 일주가 전부라 해도 될 만합니다. 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던가요. 이미 알고 있다면 이 길이 가진 의미를 세 곳에서 다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더구나 이 세 곳에서 보는 풍경은 이 길에 보여주는 모든 풍경이라 해도 충분하니, 그것만으로도 족합니다.
 
다만 송악산에서는 다른 곳과는 달리 좀 어수선합니다. 꼭 그런 이유 때문인 것만은 아니겠지만. 중산간 지역도 모자라 여기까지 손을 뻗쳤다고 하는 중국인들이 많습니다. 거기에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판도 무시하고 산 정상에 올라가는 사람들.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까지. 서둘러 자리를 뜹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용머리해안은 이미 매표소가 문을 닫았습니다. 입장료가 있어 처음부터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막상 닫힌 문을 보니 들어가 보고 싶네요. 참 사람마음 간사하지요. 하지만 시간도 그렇거니와 해가 뉘엿뉘엿, 곧 어두워질 것 같으니 서둘러야겠습니다. 엊그제와 같이 예상시간은 그야말로 걷는 시간만을 따진 듯합니다.
 
아무리 까치발을 해도 볼 수 가 없었던 화석지는 분명 용머리 해안 전이었을 터인데 가물가물합니다. 또 설큼바당과 산방연대, 퇴적암지대는 어둑어둑한 가운데 걸었던 탓에 변변한 사진 한 장 남기질 못했습니다. 다만 밤하늘 반짝이는 별과 같았던 검은 모래와 조개껍데기만은 선명히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격납고 안으로 숨은 제로센에는 일제강점기 때 친일했던 이들을 써놨다던데 왜, 누가 그리로 치웠을까요. 절벽 가까이까지 데크에 계단은 만들어 놓고는 정작 일본군 진지에는 가까이 가보질 못하게 해놓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맞춤법조차 맞지 않고 읽기에는 숨이 찬 섯알오름 유적지 알림판을 제대로 해 놓을 수는 없는 걸까요.
 
동아시아의 화약고가 될 수 있을 해군기지를 만들면서 ‘세계 평화의 섬 제주’라는 현수막을 내건 이유는요. 왜 지금 이 순간 ‘재심사’라는 말을 꺼낸 걸까요, 혹시 여전히 ‘빨갱이’들 때문이라고 믿는 걸까요.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유적지들을 놔두고 오가는 버스 편도 많지 않은 곳에다 4.3 평화공원을 들여놓은 이유는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짙은 어둠이 내려앉는 화순항에 도착하니, 이런저런 답 없는 생각들이 떠돕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6/11/17 14:55 2016/11/17 14:55
사용자 삽입 이미지첫 번째 여행 ① 꿩 대신 닭이라고 하던데..... 이건, 닭이 아니라 꿩이었네: 21구간 세화리에서 종달리까지(2015년 1월 27일)
 
성산항에 한무더기 사람들을 내려놓은 버스가 성산일출봉 쪽으로 부리나케 달려갑니다. 하지만 무리들은 갈 길을 몰라 우왕좌왕, 스마트폰을 꺼내느니 지도를 펼치느니 부산합니다. 그 틈을 비집고 내리기 전 얼핏 봐둔 길을 어림잡아 들어서는데요. 이런, 함께 내린 사람들이 뒤따릅니다. 가만 보니 여행사 가이드라도 된 모양새입니다.
 
순간 난감해지지만 장난기도 발동합니다. 따르는 이들이 어쩌나 힐끔힐끔 뒤돌아보기도 하지만요. 이쪽이 맞는 길이라는 듯 선창가 쪽으로 앞장섭니다. 아니나 다를까. 저건 오징어잡이 배인가 보다, 저건 뭘 잡길래 저리 작지, 두런두런. 그제야 상황파악이 된 몇 몇은 다른 길을 찾기 시작하고, 또 다른 몇 몇은 왔던 길을 되짚습니다. 
 
이왕 들어선 김에 선창가를 빙 둘러봅니다. 뭐, 항구가 크면 얼마나 크다고. 또 우도 가는 배 시간도 넉넉히 남았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저 쪽 끄트머리에 해양경찰이란 글씨도 큼지막하게 보입니다. 아까 버스에서 내렸을 때 보단 바람이 좀 세게 불어 걷기가 힘들 지경이지만, 뭐. 일단 저까지 가보고 배타는 곳이 어딘지 물어봐야겠습니다.
 
첨엔 성산항이 저쪽이다 손짓을 하는 가 싶었는데, 웬만하면 오늘은 우도에 들어가지 말랍니다. 2시 쯤 주의보가 뜰 예정이고 지금은 들어가도 나오는 배가 없을 거니 가질 말라는 얘기지요. 허참, 종달리 쪽 도선항에서도 허탕을 쳤는데 여기서도 이러면 어쩌지요. 설마, 아까 사람들 놀리던 벌이라도 받으라는 건가요.
 
덕분에(?) 이른 점심을 고등어구이에 고등어추어탕으로 아주 비리게(?) 먹고 다시 세화리로 향했습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하던가요. 우도 올레길 대신, 날씨가 좋았더라면 어제 낮에 걸었을지도 몰랐을, 세화리에서 종달리까지 이어지는 21구간을 걷기로 한 겁니다. 제주도까지 와서 우도를 못 가보는 게 아쉽긴 하지만 말이지요.
 
해녀박물관은 내부를 새로 꾸미는 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성산항에서도 그랬고, 여기서도 도착하자마자 무작정 바닷가 쪽으로 가 찬바람 맞고 해맨 탓에 쉬었다 가려했는데 말입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비가림치곤 꽤 큰 쉼터가 있어 몸을 녹일 수 있습니다. 올레길 가운데 비교적 짧은 구간이지만, 오름도 올라야 하니 만만하게 봐선 안 되니까요. 
 
박물관 뒤편 연대동산을 넘으니 면수동 마을회관 앞을 지납니다. 그리고는 곧, 세상에. 이런 앙증맞은 무밭과 당근밭을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요. 까만 돌담들 사이로 푸른 무 잎과 당근 잎이 바람에 살랑살랑. 첨엔 그저 그 파랗고 까만 모습에 넋을 놓고 보았더랬는데. 그러다 뭘 심은 걸까, 하고 봤더니. 맞아요. 무와 당근이었답니다.
 
까만 돌이 지천에 널려서인가요. 아까 마을을 지나올 때 봤더니 담도, 집도 돌이요. 밭을 지날 땐 밭 경계도 돌들로 삼더니. 글쎄 묘를 두고도 빙 둘러 야트막한 돌담을 쌓은 게 보입니다. 아마 묘자리를 파다 나온 돌들을 어찌 처리하기 뭐해 그저 주위에 둘렀을 터임에 분명한데. 여기서 보니 저것도 좋은 풍경을 이룹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참을 까맣고 푸른 낯불밭길을 지나고 나니 길은 다시 마을로 이어집니다. 서문동이라고 하는데요, 조선시대에 쌓은 별방진이라는 독특한 성을 두고 있는 마을입니다. 제주도에는 이런 성곽이 곳곳에 있는데요, 올라가지 말란 표지가 없으니 한번 쯤 성 위를 걷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별방진에 올라보면 마을이며 바다 먼 곳까지도 한 눈에 들어오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도해수욕장까진 조금은 심심한 길입니다. 물론 제주니까, 그것도 올레길이니까 하는 말이지. 실은 쪽빛과 옥빛을 번갈아 보여주는 바다를 왼편에 두고 있어 한 눈 팔고 걷다간 오른편에서 오는 차에 큰일 날 수도 있습니다. 아, 다행이도 여기 제주도 찻길엔 비교적 인도가 널찍이 있는 편이고 갓길도 여유가 넘칩니다. 그러니 여유를 가져도 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도 바람의 여신이라는 영등할망에게 의례를 하는 곳인 각시당도 기웃하고. 꽃이 필 때면 섬 전체가 하얗게 문주란으로 덮여 꼭 토끼처럼 보인다는 토끼섬도 너머다 보고. 밀물 때 들어온 고기를 썰물 때 거두는 갯담, 특히나 멜(멸치)이 많이 몰려들어 잘 뜨는 개라서 붙여진 멜튼개에서는 멜이 있나 한참 들여다보기도 했으니. 여간 한 눈을 판 게 아니네요.
 
저 멀리 우도와 성산이 머리를 내밀 때쯤이었을까요. 또 난생 처음 이런 모래해변을 어디서 봤을까요. 어찌나 곱고 고운 모래들이 펼쳐져있던지. 게다가 바다는 또 얼마나 푸르고도 파랗던지. 이쪽에서 저쪽까지 뛰어봐야 숨 한 번 고르면 될 만큼 작은 백사장이지만. 바람만 없다면, 작은 의자라도 있었다면 오늘은 여기까지 걸어도 괜찮겠다, 싶을 지경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핏 멀리서 보면 보아뱀 같기도 한 지미봉을 앞두고 숨고르기를 합니다. 봉우리를 아래서 돌아가는 둘레길도 있으니 마음이 흔들릴 법도 하지만. 뭍에서라면 뒷동산에도 못 미치는 166미터만 오르면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한라산과, 우도, 성산일출봉, 제주 바다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미봉을 놓치는 건. 맞습니다. 앙꼬 없는 진빵입니다.
 
하지만 앙꼬 없는 진빵이라도 맛보긴 쉽지 않습니다. 시작부터 격한 오르막이거든요. 게다가 자꾸만 어디서 방송 소리가 들리는데. 좀 아까 성산항에서 들은 주의보, 어쩌구 때문이던가요. 내용이라도 알면 괜찮겠는데 웅웅 소리만 들리고. 신경이 쓰여도 너무 쓰입니다.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만큼 스피커 소리도 거칠어지고. 아, 꼭대기 가면 좀 나아지려나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감탄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는 풍경이 눈앞에 가득합니다. 이름 그대로 소 누운 듯 펼쳐져 있는 우도와 그 옆에 우뚝 솟은 성산일출봉. 앙증맞게 오밀조밀 붙어 있는 종달리 마을 집들과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한라산. 정말 어디 한 곳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이건 분명, 꿩 대신 닭이 아니라 꿩 그 자체입니다.
 
얼마나 오래 있었던지 지미봉에서 내려오니 노을이 밀려옵니다. 출발할 때 봤던 이정표에는 3시간이나 4시간이면 된다던데. 얼추 여기까지만도 벌써 4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마 그 시간이란 게 그냥 걷는 시간만 따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가보고. 한참을 쉬고 한참을 구경하느라 그랬을지도 모르지요.
 
서둘러야겠습니다. 근처에 잠 잘 곳을 정했더라면 느긋이 종달리 해변을 걷겠지만. 오늘은 서귀포까지 가야 하니 그렇습니다. 또 21구간이 끝나는 곳에서 짐을 맡긴 숙소까지 더 걸어야 하니. 이러다 시간이 모자랄지도 모르겠습니다. 발걸음을 빨리해 종달바당을 걷습니다. 바닷바람을 쐬고 있는 오징어도, 살랑거리는 갈대도 그저 흘긋흘긋 볼 뿐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6/07/12 14:49 2016/07/12 14:49
사용자 삽입 이미지첫째 날, 2년 만에 다시 찾은 둘레길, 따뜻이 품어주다(2014년 10월 10일)
 
만만치 않을 거라 생각했으나 그리 호되게 고생할 줄 몰랐던 게 지지난 여름입니다. 그리고 2년 하고도 3개월여 만에 다시 둘레길을 찾았습니다. 한 여름에, 그것도 하루에 두 구간을 걷겠다는 게 말도 안 된다는 걸 다음날 알게 됐고. 지금 와 달리 할 말은 없지만, 둘레길 역시 지리산 자락이라는 것. 그래서 여느 걷는 길과는 다르게 맘을 잡았어야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걷기에 딱 좋은 가을 날, 하루 5시간 내외로만 걷기로 작정하고 길을 잡았습니다. 남명 조식이라는 이름이 곳곳에 보이는 덕산에서 청계호수를 바라보는 곳까지 오늘 오후 반나절. 내일은 아침 일찍 웅석봉을 넘어 재작년 여름 이틀 동안 편히 쉬었던 성심원까지. 그렇게 말입니다.
 
일단 출발은 좋습니다. 맑은 가을 하늘에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게. 길 양옆 한 없이 늘어선 감나무들을 사이를 지나자마자 시작되는 긴 오르막길도 땀 흐를 새가 없으니요. 한적한 임도로 접어들면서는 시원한 계곡물 소리까지 줄곧 따라오니, 걷기엔 금상첨화입니다. 다만 마근담교를 지나자 만나게 되는 가파른 오르막길엔 잠시 숨이 가파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코가 닿을 만치 가파른 오르막 산길을 오르고 나면 어디서 이만한 참나무들이 있나 싶은 숲길이 기다리니 꾹 참을만합니다. 이때쯤 잠깐 숨도 돌리고 출출한 배도 채우고 가기 알맞지요. 그렇게 쉬다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밟히는, 행여 머리에 떨어질까 싶은 도토리가 지천인 길을. 다람쥐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보면, 곧 대죽 숲길에 내리막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원래 진행방향 쪽에서 왔다면 가쁜 숨과 흐르는 땀에 시원하게 얼굴과 목이라도 훔칠 텐데. 한참 내리막길을 내려온 데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도 그렇고 해서 백운계곡에선 손만 담그고 맙니다. 그래도 얼추 남은 거리를 보니 앞으로 2시간이면 충분 할 듯. 물장구도 치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노닙니다.
 
산길이 끝나고 다시 딱딱한 아스팔트를 따라 내려오니 원정마을, 단속사지*가 금방입니다. 하지만 워낙 큰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5시가 안 됐는데도 어둑어둑하네요. 여기서 잘 거라면 모르겠지만. 청계마을까지 가야하니 잠시도 쉴 틈이 없습니다. 그래도 왠지 모르게 3층탑은 보고 가야할 것 같은 데, 다행히 길 가에서 멀지 않습니다.
 
청계호수로 가는 마지막 오르막길에 산 너머로 빨간 노을이 집니다. 저 노을, 언제 또 봤을까 싶은데. 가만 생각해 보니 지리산 자락을 걸을 때 늘 보여주던 수줍은 얼굴입니다. 붓으로 그려 넣은 것 같은 산줄기도 그렇고. 힘이 부칠 때면 어김없이 쉴 곳과 내리막을 내놓는 곳. 그렇게 또 지리산은 따뜻이 품어주고 있습니다.
 
 

둘째 날, 잠시나마 세상과 인연을 끊고 걷는 길(2014년 10월 11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제 밤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 때문에 일정이 아침부터 어그러지고 있습니다. 일찍 길을 나서 점심 먹을 때쯤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있으려 했는데. 아침을 9시가 다 돼서야 먹은 데다, 밥 먹고 잠깐 누웠다 씻고 하니 그새 10시. 서둘러야겠습니다. 다행히 단속사지는 어제 둘러봤으니. 호수를 끼고 돌아 성불정사로 오르는 길로 접어듭니다.
 
해장도 제대로 못했으니 속은 속대로 좋지 않은데 길마저 긴 오르막입니다. 그것도 자갈길과 아스팔트가 번갈아가며. 당연지사 자주 쉴 수밖에 없고, 시간은 배 넘게 걸리는 듯합니다. 반대편에서 힘겹게 산을 올랐다 긴 내리막 임도를 걷는 사람들이 볼라치면. 연신 얼마나 남았느냐 물어보지만 야속한 대답만 돌아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겨우 웅석봉 아래에 도착하고 보니 벌써 2시. 4시간을 주구장창 오르기만 한 셈입니다. 간식도 먹고 땅에 굴러다니는 도토리도 줍고. 높이 오르긴 올랐나, 어느새 빨갛고 노랗게 물든 단풍도 보고. 아는 노래 모르는 노래 중얼중얼. 둘레길 걸으면서 언제 또 이 많은 사람들 만날까 싶게, 만나는 사람들마다 정답게 인사도 해보지마. 힘든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이제부턴 내리막이다 싶으니, 시간이 늦었어도 정자에 누워 신발까지 벗어젖힙니다. 그나마 입으로 풍겨나던 술기운은 좀 가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쫄쫄 굶고 걸어야 할 생각을 하니 일어날 기운이 없네요. 주먹밥을 싸달라고 했어야했는데, 이제와 생각났으니 말입니다. 이래저래 쉬어도 쉬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있다 보니, 엊저녁 술자리를 함께 했던 이들이 저쪽 고개 아래서 올라옵니다. 술 마실 땐 그리 친한 척 하게 되더니만. 아침 먹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뭐지, 이 서먹함. 잠깐 언제 출발했느냐, 조금 더 가면 앞지르겠다, 말을 섞어보지만 금세 일어나게 되네요. 말이야 맞는 말이지, 더 쉬었다간 일 나겠다 싶기도 하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분명 꼴딱고개를 넘는 거 보다는 낫다고 했는데, 이건 오르는 게 되레 나을지 싶습니다. 어찌나 가파른 내리막길인지요. 미끄러져 엉덩방아 찧기도 여러 차례. 휘청하며 크게 구르지 않은 게 다행이지 싶습니다. 단풍구경이고 뭐고 한 발, 한 발. 조심조심 또 조심. 올라가는 것만치로 내려가는 것도 힘들고. 다행인지 시간 가는 줄만은 모릅니다.
 
그래도 어천계곡을 지나고 나니 길이 좋아지는데. 가만, 어디서 많이 본 길 같습니다. 키 큰 소나무가 쭉쭉 뻗어있고, 그 사이로 푹신한 숲길이. 버스로만 6시간을 걸려서 온 이곳에서 강릉 바우길과 같은 소나무 숲길을 만난 것입니다. 갑자기 어디서 솟았는지 반가움에 발걸음까지 가벼워집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둘레길 이정표로는 어천계곡에서 얼마 안 되는 것 같았는데. 성심원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니 5시네요. 남들은 5시간 만에 걷는 다는 길을 7시간이 걸려 도착한 겁니다. 그러니 몸과 마음은 어련할까요. 염치불구하고 바구니에 담긴 사탕부터 까먹고 매점으로 달려갑니다. 산청까지 가는 버스 시간만 겨우 물어보고 말이지요.
 
금방 온다던 군내버스를 20분 넘게 기다리다 겨우 산청터미널로, 산청에서 다시 함양터미널로. 또 대구터미널로. 대구에선 서부정류장에서 북부정류장으로 택시타고 이동. 거기서 심야버스를 타고 4시간 넘게 달려 강릉에 도착하니, 새벽 1시입니다. 걷는 내내 그랬고, 버스도 그렇고. 둘레길, 역시 만만하게 볼 게 아닙니다. 아고, 힘드네요.
 
 
* 지리산 자락에는 크고 작은 절들이 그 이름을 널리 떨치고 있습니다. 하동의 쌍계사와 칠불사, 남원의 실상사, 유평의 대원사, 구례의 화엄사, 마천의 벽송사, 중산리의 법계사. 이만하면 그것들만으로도 골짜기, 골짜기 깊은 침묵과 관조로 이끌기 충분합니다. 거기다 수를 다 따지기도 어려울 만치 이쪽, 저쪽에 흩어져 있는 폐사지(廢寺址)까지 둘러본다면 더 말할 것이 없겠지요. 그 중에서도 세속과의 인연을 끊는다는 절, 단속사지(斷俗寺址)는 여러 폐사지들 가운데 단연 돋보입니다. 물론 남아있는 두 동, 서 탑(塔)이 보물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탑과는 무관한 듯 무심히 서 있는 당간지주도 그렇고. 이제는 절터를 중심으로 마을이 들어서 단속사(團屬寺)가 된 모습이 처량하지만은 않기 때문일 듯합니다.
 
 
* 지리산 둘레길 걷기 두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첫 날은 덕산에서 백운계곡과 운리를 차례로 지나 청계호수까지 걸었고, 다음 날은 웅석봉 턱밑까지 올랐다 성심원까지 줄곧 내려갔습니다. 덕산에서 청계호수까지는 대략 15km, 청계호수에서 성심원까지는 13km 정도 될 듯합니다.
 
* 가고, 오고
강릉에서 지리산까지는 대전을 거쳐 가는 것이 빠릅니다. 여기서 산청은 함양이나 진주로 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니, 차를 기다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적어도 6시간은 걸립니다. 다만 강릉으로 돌아올 때 대구를 거쳐서 왔던 이유는 대전보다 늦게까지 버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 잠잘 곳
청게호수 주변에는 민박과 펜션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식당은 덕산과 어천마을을 제외하고는 눈에 보이는 곳이 없습니다. 길을 나서기 전에 간식과 물은 충분히 챙겨야 하고 식사는 민박집에 미리 얘기해야 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5/05/03 15:19 2015/05/03 1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