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다 녹으려나 싶었던 눈들이 조금씩 사그라질 때 쯤, 농업평생학습대학 친환경농업과정에 등록했다. 자격증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몇 년 전 들여다봤었던 책도 다시 꺼내고. 농진청에서 주관하는 사이버 강의도 신청하고. 가물가물한 기억도 다시 되살려보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 3년 간 경험을 정리해보는 의미도 있겠고, 외우기만 했던 것들을 직접 해보는 시간이 있을 것도 같으니. 두루두루 좋은 기회일지 싶어서다. 
 
게다가 어찌된 게 춘천에서보다 더 밭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을 어떻게든 벗어나보고자 함이니. 이번 기회에 두루두루 안면도 넓히고 동네도 차분히 알아보면 좋겠다, 싶은데. 입학식이라는, 생각지도 않았던 거창한 행사(?)를 치르고 함께 1년간 공부할 사람들을 만나고보니. 벌써 수년 째 유기농사를 지어오신 분들도 있고. 이제 막 농사를 시작하는 사람, 농사짓는 걸 고민하는 사람, 텃밭농사 짓는 사람 등등. 사는 곳들도 농사짓는 곳들도 사람만큼이나 다양하니. 사뭇 기대가 된다. 
 
다만 일 년 간 공부할 내용을 보니 만만치가 않은데. 한여름 한 달을 빼고 주 1회씩 진행되는 수업이 조금은 아쉽다. 하지만 이 과정이 원래 농사짓는 분들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4시간, 아니 왔다, 갔다하는 시간까지 하면 꼬박 반나절을 빼야 하니 농부들에겐 큰 부담일 수 있겠다. 한 창 바쁠 땐 고사리 손도 아쉬운 게 농사니. 그러니 이론 중심보단 실습 중심이었으면 더 좋겠단 생각인데. 글쎄 어떻게 진행될는지. 
 
각자 자기소개도 하고, 회장 뽑고 총무 정했지만 아직은 서먹하다. 몇 몇 서글서글한 분들과 함께 온 사람이 있는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얘기꽃도 피우지만. 콩 종자 판다는 말에 그것 사러 가는 사람에, 벌써 시작된 봄 농사 준비하러 서둘러 자리를 뜬 분들이 있으니. 몇 주는 더 지나야 어색함이 사라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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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8 16:09 2014/03/18 16:09
1.
바야흐로 ‘유기농’ 열풍입니다. 대형마트엔 어김없이 ‘유기농’ 코너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아파트 밀집 지역엔 ‘유기농’ 전문매장이 들어서 있으니 말입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유기농’이라는 말은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과 같은 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그에 비하면 정말 격세지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MB정부가 4대강 막무가내 ‘삽질’로 국내 친환경 유기농업 태동지인 팔당 일대 지역을 파헤치려는 꼴이나 이름도 괴상한 각종 첨가물로 범벅이 된, 기껏해야 성분 구성표 맨 뒷자리에 겨우 이름을 올려놓고서는 버젓이 ‘유기농’ 매장에 진열되고 있는 온갖 과자와 음료수들을 보고 있자면. 이 ‘유기농’이란 열풍이 한때의 ‘유행’ 정도로 치부되는 건 아닌지, 소비자들의 얇팍한 지갑을 노린 상업주의로만 흐르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그럼에도 이 ‘유기농’ 열풍이 우리 사회에 가져다 줄 영향을 고려해볼 때 아직은 실망보단 희망을 더 봐야 하겠지요. ‘돈’과 ‘인간중심’ 보다는 ‘생명존중’과 ‘평화’, ‘조화로운 삶’으로 이끌어줄 가치로 ‘유기농’이 이제야 발견된 셈이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2.
15년이 넘게 농업생산방식과 건강과의 관계에 대해 연구해온 피에르 베일이 쓴 <빈곤한 만찬>은 생태계와 조화로운 방식의 농업만이 좋은 먹을 거리, 좋은 건강을 준다고 강조합니다. 비만, 당뇨병, 심장혈관계통 질환과 같은 현대병의 원인이 잘못된 섭생방식, 즉 식생활이나 운동부족과 같은 개개인의 문제이기 이전에 생태계를 보호하고, 먹이사슬을 존중하며,좋은 먹이와 좋은 환경이라는, 인간에게 알맞은 생산방식에서 멀리 달아났다는데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는 거대 제약업계와 농가공식품기업들에 의해 왜곡되고 과장됨으로써 한층 더 멀어졌구요.
 
그리고. 이젠 사람에게까지도 발병하는 광우병이니 조류독감이니 하는 것들이 베일의 말대로 애초 먹던 것들을 대신해 값싼 사료와 먹어선 안 되는 것들을 먹여서 생겨난 것이고. 어떤 어떤 성분을 강화했다고 하는 것들도 따지고 보면 인위적으로 화학물질을 첨가한 ‘약품 구실을 하는 식품’이거나 처음부터 그렇게 자라던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 놓은 것이니. 비틀린 먹이사슬을 복원하고 그 상태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생태계와 건강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시간문제일뿐이겠지요.
 
하지만. ‘해결책을 한 상 그득히 차린 희망의 잔치’가 ‘불꽃놀이와 만찬’만으로만 보이지 않는 건 왜일까요. 그건 분명 ‘좋은 품질의 영양을 섭취하도록 이끄는 예방 정책’임에 틀림없는데도 말이지요. 혹여 베일이 유달리도 고기를 좋아하는, 그래서 지금과 같은 고기 소비량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해서인가요. 아님 오메가 6와 오메가 3의 비율만 적정하면 지금과 같은 고기 소비량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해서인가요. 글쎄요. 솔직히 잘은 모르겠습니다. 
 
3.
가끔, 밭 구경을 나오신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유~ 풀이 왜 이렇게 많아. 약 한 번 치면 싹 죽는데. 그걸 그렇게 놔두나”
 
동네분들은 물론이고 생전 호미라고는 몇 번 쥐어본 적도 없을 이들까지도 한 목소리이지요. 사정이 이러하니 누구에게 밭을 보여주는 게 그리 썩 내키지가 않더랬습니다. 비료도 주지 않아 언제나 키가 작기만한 작물들은 그렇다 쳐도 고랑이며 두둑까지 풀들로 빽빽한 모습을 보고 한 마디 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제딴에는 다협한다고 해서 고추며, 참외 같이 기르기 쉽지 않은 작물은 비닐멀칭까지 했는데. 그런 맘은 몰라주니. 혹여 “농사라는 것 자체가 다른 풀들을 폭력적으로 몰아내며 인간을 위해 한 작물을 기르는 행위인데.....”라는 말이라도 꺼냈다간. 이번엔 뭔 소릴 들을지 상상도 가지 않아 입도 뻥긋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요. 다른 이들이야 뭐라 한들 어떻습니까. 땅을 살리고 그 땅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과 조화롭게 사는 것. 그저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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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2 15:24 2009/12/12 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