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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1/21
    유전의 신비(?)(2)
    onscar
  2. 2005/01/17
    <연재소설>-인생역전(5)(3)
    onscar
  3. 2005/01/10
    <연재소설>-인생역전(4)(4)
    onscar
  4. 2005/01/07
    <연재소설>-인생역전(3)(1)
    onscar
  5. 2005/01/03
    'Yes'라고 말하기(1)
    onscar
  6. 2004/12/31
    지난 364일, 그리고 하루
    onscar
  7. 2004/12/29
    <연재소설>-인생역전(2)
    onscar
  8. 2004/12/24
    Christmas Card From ...
    onscar
  9. 2004/12/23
    <연재소설>- 인생역전(1)(1)
    onscar
  10. 2004/12/23
    열흘 동안의 행복
    onscar

유전의 신비(?)

대학원 시절 교육 등 후천적 요소가 인간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하며 살았다.

 

대학시절 자연과학을 전공하며 생물학적 결정론을 신봉했던 것을 속죄라도 하듯 말이다. 

 

다행히 사회적 인식이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게 차별로 이어지는 건 부당하는 수준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어쨌든 나를 놀라게 하는 자연의 신비를 발견하는 일이 종종 있다.

 

며칠 전 한 친구를 만났다.

 

그녀는 두돌이 안된 딸의 '변비' 증상에 대해 얘기했다.

 

그 어린 것이 2-3일에 한번씩 화장실을 가며

마치 얘 낳는 것처럼 뭔가를 부여잡고

열심히 힘을 줘야

배설물이 나온다는 것이다.

(다행히 항문이 찢어진다거나 이런 외상을 없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그 배설물의 크기는

흠흠...

일반인의 것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한다.

 

이 철없는 엄마는 담배갑을 옆에 놓고 크기 비교 사진을 찍기도 했다.

 

요구르트에 야채쥬스에 온갖 과일 등

변비에 좋다는 건 다 먹여봤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해답은 내 친구의 딸이 쏙 빼닮은 자신의 아버지에 있었다.

(내 친구가 아이를 낳은 뒤 한동안 우린 내 친구와 딸의 닮은 곳을 찾으려

무진장 애썼다. 우린 '손'이 닮았다고 결론 내렸다.)

 

그녀의 아버지 또한 동일한 증상을 갖고 있는 '환자'였다는 것이다.

 

내 친구는

 

"부녀가 화장실 한번 가려면 아주..."

 

웃음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근데 이거 치료가 불가능한가...혹시 치료 방법 아시는 분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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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생역전(5)

김 형사가 몸을 돌려 순애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어디를 맞았어요?”
“머리하고, 온 몸이 다 아팠어요.”
“주먹으로 얼굴을 몇 대나 때렸어요?”
“다섯 개, 여섯 개?”
“발로 찬 건?”
“기억이 잘 안 나요.”
“주변에 사람은 없었어요?”
“네. 손님들 다 나가라고.”



향숙이 다시 참지 못하고 말을 가로챘다.

 

“야가 거기 있으면 계속 맞을 것 같으니까 사정을 했대요. 우리 조금 더 생각을 해보자고. 그래서 마음이 풀렸는지 박영철이 나가서 맥주 사오라고 그러더래요. 야가 계속 있으면 맞을 것 같으니까 그 길로 택시 타고 교회로 튀었죠.”

 

“다음엔 칼로 죽인다고 그랬어요.”

 

순애가 볼멘 목소리로 불쑥 말했다.

 

“다음에 또 말 안 들으면 칼로 죽인다고 그러니까 애가 겁을 집어먹고.......”

“어디 피나고 그런 것 있어요?”
“아니, 그래도 멍들고 시큼시큼하고 그러니까 슈퍼 아저씨가 택시 타고 빨리 도망가라고 그랬겠지.”
 
“맥주 사면서 슈퍼 주인 아저씨한테 맞았다고 이야기 했어요?”
“안 했대요.”
“그러면 슈퍼 아저씨가 딱 얼굴 보고 알았을 것이다?”
“네, 야가 막 울고, 머리도 다 헝크러지고 그러니까.”

 

김 형사가 다시 순애한테 물었다.

 

“남편이 술 마셨어요?”
“많이 마시지는 않았는데.”
“같이 싸우지는 않았죠, 같이 때렸어요?”

 

“네.”

 

순간 김 형사의 타이핑 소리가 멈췄다. 순애의 대답을 받아치던 그는 고개를 들어 순애를 약 5초간 빤히 쳐다봤다. 그리곤 다시 기계적으로 물었다.  

 

“박영철씨를 때렸어요?”

“네.”

 

순애의 대답에 놀란 향숙은 정색을 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너도 때렸어? 니가 몇 줌이나 때렸어? 남자를......”

“아니 막느라고......”

 

순애가 고개를 떨구며 말을 흐렸다. 향숙은 순애에게 눈을 살짝 흘긴 뒤, 바로 표정을 바꿔 김 형사에게 한껏 웃으며 목소리를 한톤 높여 말했다. 

 

“응. 때린 건 아니고 방어하느라고 그랬다는 소리예요.”

 

“박영철씨, 법대로 처벌하길 원해요?”

 

김 형사의 물음에 순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 형사는 작성된 고소장 내용을 읽은 뒤 순애에게 맨 뒷장을 내밀었다. 순애는 김 형사가 시키는 대로 서툰 글씨로 이름을 또박또박 쓰고 엄지 손가락 끝에 붉은 인주를 듬뿍 묻혀 이름 옆에 지장을 꾹 찍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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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생역전(4)

2.

 

한달 반전인 11월14일, 순애는 서울 구로에 위치한 ‘조선족 동포의 집’에서 일하는 정은희 간사와 함께 구로6동 파출소를 찾았다. 정 간사는 서울에 온지 채 6개월이 안되는 순애의 사연을 듣고, 가정폭력으로 남편을 신고하라고 조언했다. 2년 전 한국 남자와 재혼해 안양에서 살고 있다는 순애 사촌 언니 향숙도 한국말이 서툰 순애를 돕겠다며 파출소에 나타났다.

 

짧은 스포츠 머리와 떡 벌어진 어깨에서 느껴지는 남성성을 뚝 떨어뜨리는 불쑥 나온 배. 중년 형사다운 외모를 가진 김 형사가 순애의 조서를 쓰게 됐다.

 

김 형사가 묻고, 순애가 대답했다.  



“주민등록증 있어요?”
“몰라요. 박영철이 서류 다 가지고 있어요.”
“생년월일?”
“1978년 5월13일.”
“직업 있어요?”
“없어요.”
“핸드폰 있어요?”
“없어요.”
“지금 사는 곳은 어디예요?”
“구로에 있어요.”
“구로 어디?”
“교회에 있어요. 외국인 노동자 교회.”
“혼인신고 언제 했어요?”
“중국에서요? 중국에선 3월25일.”
“법적으로 남편이에요?”
“네.”

 

김 형사는 이틀 전인 11월 12일 있었던 사건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몇 시예요, 남편한테 맞은 시간이?”
“3시 반.”
“새벽?”
“네.”
“주먹으로만 때렸어요? 다른 흉기 같은 것은 없었고?”
“재떨이. 유리로 된 둥근 거.”
“어떻게 맞았어요?”
“저보고 사기 결혼이라고 1천7백만원 도로 달라고. 돈 안 준다니까 밤에 술 마시고 때렸죠.”

 

옆에 있던 향숙이 거들었다.

 

“야가 친오빠가 있어서 자꾸 일요일마다 밖에 나가니까, 남편이 그게 싫어 가지고 ‘살기 싫으면 나가라’고 했더니 까만 비닐 봉투에다 바지 하나만 들고 나왔더라구. 한국말을 잘 이해 못하니까 나가라니까 나온 거예요. 그래서 야 오빠하고 내하고 내 남편하고 한번 집에 데려다 준 적이 있어요. 그때 박영철이 하는 소리가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집에서 살림할 생각은 안 한다는 거예요. 아침에 애보고 고추를 빻으러 방앗간에 갔다 오라고 했는데 못 하니까 자기가 가서 빻아 왔대요. 말도 제대로 모르는 애가 어케 하겠어요. 그래서 내가 그랬죠. 살려고 왔으니까 자꾸 가르쳐야지 못 한다고만 하면 아니 되지 않겠는가. 그랬더니 노력해보겠다 하더라구.

 

그리고나서 불과 한달도 못 되어서 야가 또 튀어 나왔더라구. 왜 그러는가, 도저히 자기는 다른 여자 데리고 왔다갔다 하는데 못 살겠다. 그러니까 박영철이 너 그러면 중국 보내 줄 테니 돈 천칠백만원을 돌라 하더래. 야보고. 결혼 경비 그렇게 썼으니까.”

 

김 형사가 다시 순애에게 물었다.
 
“어떻게 때렸대요,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어요, 발로 찼어요?”
“주먹으로 얼굴을 막 때리고 발로 밟고. 제가 당구장 보고 있는데. 당구장에 살림집이 겸해 있어요.”
“당구장에서 때린 것입니까? 당구장 이름이?”
“열림 당구장.”
“몇 층이예요?”
“2층.”
“친오빠 만나러 일요일마다 나갔어요?”
“일요일마다 만나러 나간 건 아니고, 처음에 네 번만.”
“당구장에 여자를 데리고 와서 잔 게 언제입니까? 당구장에 딸린 방은 하나 밖에 없지 않나요?”
“제가.......”
“아, 나가 있을 때요?”
“아니요. 당구장 카운터에 앉아 있을 때.”
 
향숙이 또 끼어들었다.

 

“한국에 야를 데리고 와 가지고 한 주일은 같이 생활하고 그 다음부터는 그냥 외박을 했데요. 야보고는 당구장 지키라고 해놓고 밤에 와서 돈 가지고 나가서 외박하는 거지. 2-3일에 한번씩 들어오고. 그러니까 말 대상도 없고 심심해서 일요일날 오빠한테 가서 놀고 그런거죠.”

 

향숙은 어눌한 순애의 태도가 답답한 듯 의자를 앞으로 당겨 자세를 고쳐 앉더니 순애 대신 김 형사의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당구장에 방이 몇 개인가요?”
“하나예요. 가정집은 또 따로 있고.”
“여자를 데리고 온 게 가정집이에요, 당구장이에요?”
“당구장이죠.”
“그러면 세분이 같이 잔겁니까?”
“그 여자랑 둘이 방에 같이 있고, 야한테는 당구장에 카운터를 보라고.”
“그 때가 언제, 어디서죠, 맞은 날이 며칠?”
“11월12일, 새벽 3시 반. 당구장에서.”(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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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생역전(3)

제 소설을 기다리시는 분이 적어도 한분은 있다던데 하하

'이기준' 때문에 정신이 한개도 없어서...이번 건 좀 짧습니다.

(흥미 유발을 위해 말씀드리면 박 검사가 주인공은 아닙니다.^^) 

 

팬티 바람의 박 검사는 실내화를 질질 끌며 옷장 앞으로 다가갔다. 옷장 문을 열고 혹시나 양복 사이에 와이셔츠가 끼어 있지는 않나 싶어 가지런히 걸린 옷 사이사이를 헤집어 보았다.
 
아! 양미간을 찌푸리며 옷장 안을 한동안 뒤지던 그의 얼굴에 갑자기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의 시선과 손길은 어느새 옷장 한 귀퉁이에 걸린 여름옷으로 옮겨갔다.



반팔 와이셔츠라.......박 검사는 세탁소 비닐에 싸인 비교적 도톰해 보이는 흰색 여름 셔츠를 꺼냈다. 그는 비닐을 벗기고 셔츠를 이리저리 살피며 여러 가능성을 타진해 보았다. 겨울이라 실내에서 양복 윗도리를 벗을 일도 없고, 크게 표가 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 오늘 하루만인데....’

 

박 검사는 반팔 셔츠를 입고 그 위에 감색 겨울 양복과 검은색 반코트를 겹쳐 입었다. 차 열쇠와 서류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서며 “내일 아침까지 와이셔츠 다 다려놔”라고 아내가 있는 부엌을 향해 큰 소리까지 치고 나니 기분은 한결 나아진 듯 했다.
 
이날 출근하자마자 공교롭게도 박 검사를 기다리는 첫 사건은 가정 폭력 사건이었다.

 

‘아, 오늘 정말 재수 옴 붙은 날이군.’

 

짜증이 다시 확 밀려왔다.

 

‘김순애, 25세, 중국 국적.......조선족이군. 아니, 이거 뭐야? 박영철, 50세? 완전 아버지와 딸이잖아. 도대체 제정신이 있는 사람들이야.......’

 

자기 나이의 곱절인 남자와 결혼한 조선족 여성의 사연에 호기심을 느끼며 박 검사는 짜증스런 마음을 다잡고 경찰서에서 넘어온 조서를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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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라고 말하기

연초엔 많은 사람들이 다짐을 한다.

 

"새해엔 이래야지..."

 

어제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오랜만에 찾아온 연휴를 즐기느라

(이틀 내내 집에서 잠만 잤지만^^)

 

그러나 어제 우연히 가슴 아픔직한 사연을 듣고 나서

올해엔 "타인에겐 정직하되 내 자신은 현실을 직시하며 살자"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치고 갔다.  



사연은 내 지인이 부산행 열차에서 우연히 옆에 앉게 된 

심상치 않아 보이는 40대 남성의 이야기다.

 

심상치 않아 보인다는 것은

40대 남자가 꽁지 머리에 청바지,

지퍼가 달린 차이나 칼라 스타일의 니트 위에 자켓을 걸친,

또 이런 차림이 비교적 잘 어울리는 

굉장한 멋장이라는 뜻이다.

(이런 옷차림을 한 40대 남성은 평범치 않은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이 남성은 선물 꾸러미를 선반에 올리고 좌석에 앉더니

안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들었다.

그는 뿌듯한 표정으로 지갑 속에서

빳빳한 만원 짜리 지폐 한 뭉텅이를 꺼내

한장 한장 세기 시작했다.

 

돈 세기가 끝난 그는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난데, 내 지금 너 만나러 기차 타고 부산 가는 길인데,

연말이고 하니 저녁이라고 같이 먹자."

 

전화 속 그녀가 대답한 정확한 내용을 확인할 순 없었지만

그녀는 "왜 미리 연락을 못했냐"고 면박을 준 듯 했다.

 

그는 "어제 하루 종일 전화했는데, 전화기가 꺼져 있더라"고 해명했다.

 

전화 속 그녀는 "바빠서 핸드폰을 받지 못했다"고 해명한 듯 했고

한참 더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그에 대한 타박이 이어졌다.

 

심상치 않아 보이는 덩치 좋은 아저씨는 엄마한테 혼난 아이처럼

금새 기가 죽었다.

 

그리고 애처로이

"미리 연락 못한 건 미안한데, 그래두 연말이고 하니 얼굴이라도 봐야 않겠냐.

너 주려고 선물 산 것도 있다."

 

드문드문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바쁘다"고 거절한 듯 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오늘 바빠서 안되면 내일 점심 때라도 보자.

내가 너 보러 부산까지 내려가는데 잠깐만 시간 내면 안되겠냐"고 사정했다.

 

"바쁘다"와 "그러지 말고 잠깐만 시간 내달라"는 실랑이는

기차가 대전역을 빠져 나갈 때까지 계속 됐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통화한 결론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애인과 데이트 하기 위해 준비한 돈을 셀 때의 의기양양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준 나의 지인은

"왜 바쁘다고 핑계를 대냐. 바쁜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만나기 싫은 거 아니냐.

솔직히 만나기 싫다고 했으면 부산까지 선물 사들고 내려가진 않았을 거 아니냐"며

전화 속 그녀를 비난했다.

 

하지만 언제나

'Yes' or 'No' 를 요구하는 순간에

정말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기는 어렵다.

 

또 입장 바꿔 내가 상대방에게

'Yes' or 'No' 의 대답을 요구하는 순간에 정말 듣고 싶은 건

솔직한 마음이 아닐 경우가 많다.

 

혹은 솔직한 심정을 전했을지라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 가닥 희망에 매달리곤 했을 것이다.

 

"바쁘다"는 건 "널 위해 내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마음이 있는 곳에 시간이 있고 몸이 있다.

 

"난 누구에게 구속받는 걸 싫어한다"는 건 "너에겐 구속받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사랑이란 일정 정도의 소유욕과 독점욕을 기반으로 하는 감정이다. 이런 속성을 극복하기 위해선 엄청난 시간과 수양이 필요하다.    

 

"난 여자들이 원하는 걸 충족시킬 능력이 없어"라는 건

"난 너란 여자가 원하는 걸 해줄 마음이 없어"라는 말이다.

진정 사랑한다면 상대방에게 불가능한 어떤 것을 요구하지도 않고

설사 '하늘에 별을 따다줘'라는 허황된 요구를 할지라도

일단은 "그래, 따다 주마"라고 애인을 만족시킨 뒤

(사실 애인이 원하는 건 '대답'이다.) 

반디불이, 촛불, 하다 못해 야광 팔찌 등...각종 대체제를 제공한다.

 

"난 결혼제도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는 건 "너와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당신보다 더 나은 상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저 사람이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라는 고민을 안겨주는 상대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덧글 : 새해 처음으로 올린 글 치고는 유치한데다 우울하군.

         어쩌겠나...살아가는 게 그런 걸^^

         이 글 보시는 분들, 새해 좋은 일 많이 생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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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64일, 그리고 하루

"과거는 이미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현재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무한한 접점이다. 그리고 바로 그곳, 그 시간이 없는 한 점에서, 인간의 진정한 생활이 영위되고 있다."(레프 톨스톨이 <인생독본> 중에서)

 

한해가 가고 또 한해가 찾아온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숱한 생명체들 가운데

오직 인간이란 종(種)만이

'시간'이라는 철학적 사유 속에 존재한다.

 

자연 현상으로 보건데 특별히 다른 점을 발견하기 힘든

하루와 하루 사이에 인간은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무한한 욕망의 동물인 인간에게

똑같은 날들이지만

어쩐지 지난 3백64일을 반추해야만 할 것 같은

시간이 단 하루라도 주어진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일 게다.

 

옛 사람들의 혜안(慧眼)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2004년 마지막날 한 일간지에서 우연히 톨스토이에 대한 글을 읽고 떠올른 생각이다.

 

내년 3월 27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톨스토이전’이 열리고 있어서 그런지 올 연말에는 유독 그에 대한 글을 많이 볼 수 있다.

 

톨스토이는 선과 악, 욕망과 두려움, 이기심과 박애정신 등 인간의 전체적인 모습을 가장 잘 파악한 작가라고 한다. 

 

그는 백작 가문의 4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일찍 부모를 여의고 모성결핍과 지독한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대문호이자 사상자, 그리고 신학자로 추앙받는 그이지만 정작 자신은 술,도박, 여성편력, 결투로 인한 살인, 허울뿐인 신앙 등에 대한 자책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래서 감행한 게 82살의 가출.

 

그는 집을 떠나면서 아내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남겼다고 한다.

 

"집에서의 나의 입장은 더이상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모든 다른 이유에 덧붙여 나는,내가 산 것과 같은 그러한 사치스런 삶을 살 수가 없기 때문에,내 나이의 늙은 사람들이 했던 방식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삶의 마지막 날들을 고독과 평화 가운데 보내기 위해 세속의 삶을 떠났던 것입니다. 제발 이것을 이해해주고 설사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낸다해도 나에게 오려는 시도를 하지 말기 바랍니다.”“집에서의 나의 입장은 더이상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모든 다른 이유에 덧붙여 나는,내가 산 것과 같은 그러한 사치스런 삶을 살 수가 없기 때문에,내 나이의 늙은 사람들이 했던 방식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삶의 마지막 날들을 고독과 평화 가운데 보내기 위해 세속의 삶을 떠났던 것입니다. 제발 이것을 이해해주고 설사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낸다해도 나에게 오려는 시도를 하지 말기 바랍니다."

 

집을 떠난 톨스토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라잔-우랄행 기차 안에서 폐렴에 걸렸고 간이역인 아스타포브 역장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온 톨스토이의 시신은 '평범한 묘지에 안장하고 기념비를 세우지 말 것이며 무덤 앞에서 슬퍼하지 말라'는 그의 유언에 따라 흙무덤에 묻혔다. (국민일보 12월 31일자. '2004년 마지막 날에 읽는 톨스토이…여든두살 대문호 왜 집을 떠났나'에서 재인용.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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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생역전(2)

 박 검사는 지난 세 달간 아내와 서로 말도 안 하는 냉전을 계속해왔다. 그러던 그가 새해를 이틀 앞둔 12월30일 아침, 폭발했다. 옷장에 걸려 있는 깨끗한 와이셔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 말이다.

 

“도대체 당신이 뭐하는 여자야? 아니 어떻게 열개가 넘는 와이셔츠 중에 빨아놓은 게 없어?”



속옷 바람으로 어제 밤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졌던 와이셔츠를 한 손에 움켜쥔 채 부엌으로 달려가 소리를 질렀지만 아내는 들은 척도 안 했다.

탁탁탁탁......아내는 둥근 유리 그릇에 계란을 깨뜨려 넣고, 계란물에 잘게 썰은 파 한 웅큼과 소금 약간을 집어넣은 뒤 젓가락으로 내용물을 휘저었다.

 

촤아......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프라이팬에 계란물을 붓자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이내 고소한 냄새가 부엌에 퍼졌다. 전날 거나하게 술을 한잔 걸친 박 검사는 그날따라 속이 헛헛했고 계란말이 냄새가 그의 코를 자극하자 종소리를 들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입안엔 침이 가득 고였다. 고작 계란말이에 무너지는 스스로에 화가 나 그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 말이 말 같지도 않아? 물어 봤으면 대답을 해야지? 내가 당신에게 대단한 거 요구하는 거야? 적어도 기본은 해야지. 기본은....... 이거 당장 어떻게 출근하겠어?”

 

착착착착....박 검사의 짜증섞인 목소리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아내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말이를 도마로 옮겨 먹기 좋은 크기로 썰은 뒤 두 딸의 도시락에 가지런히 담았다. 냉정을 먼저 잃은 사람이 지는 게 냉전의 법칙이다. 아내 입장에선 대응하지 않는 게 길게 끌어온 냉전을 승리로 이끌며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길이다.

 

아뿔사! 그제서야 박 검사는 자신의 패배를 깨달았다.  

 

“이런 씨발......”

 

박 검사는 방으로 돌아와 손에 쥔 와이셔츠를 바닥에 내동이치며 혼잣말을 했다. 침대에 걸터앉아 어제 입었던 것을 다시 입을 것인가를 한동안 고민했지만, 포기했다. 공교롭게 엊저녁 전남 목포 출신인 부장 검사와 홍어를 먹었기 때문이다. 와이셔츠엔 삭힌 홍어의 암모니아 냄새와 탁주 냄새, 거기에 담배 냄새까지 짙게 배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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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mas Card From ...

내가 들은 크리스마스 노래 중 가장 슬픈 노래... 

톰 웨잇의 78년 블루발렌타인 앨범에 있는 곡.

 

Christmas Card From A Hooker In Minneapolis


hey charlie I'm pregnant                   
and living on the 9th street
right above a dirty bookstore    

off euclid avenue    

     
  



and I stopped takin dope                 
and I quit drinkin whiskey               
and my old man plays the trombone        
and works out at the track

 

and he says that he loves me  
even though its not his baby 
and he says that he'll raise him up  
like he would his own son                        
and he gave me a ring                
that was worn by his mother                
and he takes me out dancing      
every saturday night.

 

and hey charlie I think about you   
everytime I pass a fillin station  
om account of all the grease     
you used to wear in your hair        
and I still have that record            
of little anthony & the imperials        
but someone stole my record player       
now how do you like that?              

 

hey charlie I almost went crazy    
after mario got busted         
so I went back to omaha to       
live with my folks                  
but everyone I used to know      
was either dead or in prison     
so I came back to minneapolis       
this time I think I'm gonna stay. 

 

hey charlie I think I'm happy        
for the first time since my accident   
and I wish I had all the money      
that we used to spend on dope     
I'd buy me a used car lot       
and I wouldn't sell any of em            
I'd just drive a different car 
every day, dependin on how  feel    
 
hey charlie for chrissakes       
do you want to know the truth of it?

I don't have a husband  
he don't play the trombone        
and I need to borrow money         
to pay this lawyer    

             
and charlie, hey                           
I'll be eligible for parole              
come valentines day   


이봐요 찰리, 나 임신했어요
유클리드가(街) 변두리 9번 거리
지저분한 책방 위에서 살아요

 

마약도 끊었고 술도 끊었어요
우리 그이는 트럼본 불고 운동도 열심히 해요

 

그인 날 사랑한대요
비록 그의 아기는 아니지만 친자식처럼 키우겠대요
자기 어머니가 주신 반지도 내게 줬구요
매주 토요일 밤이면 같이 춤추러 가요


이봐요 찰리, 주유소를 지날 때마다
늘 당신 생각이 나요
당신이 머리에 바르곤 하던 그 머릿기름 때문에 말예요
아직도 '리틀 앤소니 앤 더 임페리얼스'의 레코드 갖고 있는데
누가 내 레코드플레이어를 훔쳐갔지 뭐예요
지금도 그 음악 좋아하나요?

 

이봐요 찰리, 마리오가 잡혀갔을 땐 정말 미칠 뻔했어요
그래서 고향사람들이랑 함께 살려고 오마하로 돌아갔었죠
근데 내가 알던 이들은 전부 죽거나 감옥에 갔더군요
그래서 다시 미네아폴리스로 돌아온 거예요
이번에는 여기 머물 것 같아요

 

이봐요 찰리, 사고 이후 처음으로 나 행복한 거 같아요
마약 사느라 써버린 그 돈들 다 갖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중고차 판매장을 하나 사서 한 대도 남한테 안 팔고
매일매일 그 날 기분에 따라 다른 차를 몰고 다녔을 텐데
 
이봐요 찰리, 세상에...진실을 알고 싶나요?
실은 남편 같은 거 없어요
트럼본 불 리도 없고
나 이 변호사한테 지불할
돈이 필요하거든요

 

찰리, 이봐요
가석방될 수 있을 거 같아요
발렌타인 데이에 와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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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인생역전(1)

 

지난 번에 올렸던 엽기적 시(詩)와 달리 이 글을 올리기까진 좀 고민이 있었다.

 

우선 미완의 작품이다. 때문에 '연재소설'이라고 붙였다. 완성시킬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허걱..


또 앞의 시보단 심혈을 기울였다.


사실 이 소설에 앞서 내 생애 첫 소설을 썼었다. 여기 올리는 글과 아주 다른 일종의 성장소설이자 연애소설. 근데 묻어두기로 했다. 언제까지 묻어둘지 모르겠지만. 당시 그 글을 읽었던 한 친구가 이런 조언을 해준 적 있다.


“원래 처음 쓰는 작품은 자기가 간직하는 것 같아. 자기가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첫 작품에 거의 다 녹여내니까. 첫 작품은 자기와의 대화인 것 같아. 그리고 차츰 자기와의 대화에서 벗어나, 자꾸 쓰다보면 세상과의 대화를 하고 싶은 욕구가 점점 더 커지겠지?”


언제쯤 세상과 대화할 수 있을 만큼 품이 넓어질 수 있을지,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생역전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동화책 마지막 구절이 문제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 구절이 나오기까지 과정을 대략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들은,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자신들은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갖고 결혼했지만, 서로에, 결혼생활에, 실망을 느껴 싸우는 일이 잦았고, 실망이 커지면서 상대에 대한 증오나 심할 경우 살의를 느낀 적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혼하자’는 말을 적잖이 내뱉었고, 어떤 때는 선수를 빼앗겨 상대방이 먼저 ‘헤어지자’고 요구해,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으며, 때론, 오! 하나님 용서하소서, 이웃의 아내를 탐하기도 했다. (주 : 이 욕망의 실현 정도는 개인마다 편차가 크다. 특히 이웃, 즉 욕망의 대상의 남편이 자신과 비교할 때 어느 정도 우위를 갖고 있느냐를 중요한 변수로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아내가 사랑스러워 보일 때보단 길 가는 모든 여자가 낫다고 느껴지는 때가 많았고, 그때마다 유난히 옆에 찰싹 붙어 오는 아내를 모른 척하며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아이 때문에 참아야지’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기 시작한 건 자식놈이 채 1살이 되기도 전이라 기나 긴 결혼 생활 동안 도대체 몇 번이나 되새겼는지 헤아리기 힘들다. 자식들은 들어가는 돈에 비해 천천히 자랐다.

 

좀더 나이가 드니 ‘그래도 늙어 등 긁어줄 사람은 이 사람밖에 없지 않나’라는 좀더 건설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특히 아내하곤 비교도 안될 만큼 사랑한, 거품 빼고 말하면 투자한, 자식들이 커가며 배신감을 안겨주는 일이 생길 때마다 그랬다.

 

드디어 자식들이 다 자랐는지 그들의 전철을 밟겠다며, 물론 본인들은 부모처럼 살지 않을 거라 믿으며, 제짝을 찾아들 갔고, 아내와 둘만 남겨졌지만, 기대가 크지 않으니 실망이 크지 않더라. 물론 기쁨도 그랬다.

 

그러다 병상에서 옆에 있는 아내를 보며 ‘그래도 총량적으로 내 인생이 행복했겠거니’ 위안하며 생의 마지막을 맞았다. (주 : 여기서 행복의 총량 역시 개인마다 편차가 크고, 심지어 총량적으로 행복하지 않은 사람도 적지 않음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한다.)

 

위에서 아내를 곧장 남편으로 바꿔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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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이 또한 말도 안 되는 생략과 압축이다. 따라서 왜곡이기도 하다.

 

또 신부가 신랑집에 지참금을 가지고 가거나, 신부 측 가족에게 신랑이 신부대를 지급하는 풍습들을 볼 때 인류사적으로 결혼의 형태는 다양했지만, 그 기원에서부터 ‘거래’였다. 특히 3백-4백여 곳의 결혼정보회사가 성업 중이며 연간 5백억원 규모의 ‘짝짓기’ 시장이 형성된 대한민국 사회는 결혼을 통한 경제적 거래가 자본주의와 비례해 발전한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결혼에 대한 동화책 마지막 구절의 효과가 너무도 강력해, 극히 이성적인 남성마저 포섭한다는 것이다. 박 검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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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동안의 행복

1968년 프랑스에서 학생운동이 극에 달했던 시절, 바리케이드 안쪽에 씌어진 여러 낙서 중에 'Ten days of happiness'라는 글귀가 있었다고 한다. 열흘 동안의 행복. 그정도면 충분하다. 문학을 하는 이유로도, 살아가거나 사랑하는 이유로도. -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중 김연수 편.

 

열흘 동안의 행복...살아가는 이유로도 충분한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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