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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4/23
    남성들의 '아랫도리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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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5/03/10
    언론의 위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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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5/02/23
    왜 그렇게 배배 꼬였냐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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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2/19
    "남성들이여, 춤을 추자"(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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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2/16
    정의와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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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02/12
    직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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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5/02/07
    간디에 대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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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5/02/04
    종교의 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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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01/31
    <연재소설>-인생역전(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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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5/01/27
    코메디에 대한 추억(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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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의 '아랫도리 동맹'

지난 한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숨겨진 딸'이 정치권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다.

 

기자로서 난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보도에 대해 비교적 보수적 입장이다. 되도록이면 하지 말아야 한다는 쪽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뿐 아니라 혼외자로 알려진 김모씨(35)의 사생활 침해도 충분히 보도 이전에 고려했어야 한다. 김모씨가 인터뷰에 응해줬다고는 하지만 방송 이후 김모씨, 혹은 주변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고 그는 잠적했다.

 

기자라는 계급장을 떼고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평생 야당 지도자였던 DJ의 혼외자 문제가 다른 정적들에게 전혀 이용되지 않았던 이유였다.

 

SBS 보도에 따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의 사생활 관련 보고에 대해 '야, 남자 아랫도리 부분은 보고하지마'라며 일축했다. 이후 대통령들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각종 폭로와 의혹 제기가 난무한, 일종의 '정글'인 한국 정치판에서 DJ가 이 문제로 상처받지 않았다는 점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한국에서 권력을 가진 남성들 중 '여자 문제'에 있어 자유로운 인간이 거의 없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이 거의 전무한 한국 사회에서 남성들의 '여자 문제'만큼은 철저히 개인적 문제였다. 그리고 서로서로 비밀을 지켜주고 감싸줬다.  '여자 문제'를 거론할 경우 오히려 치졸한 사람으로 치부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아...얼마나 무서운 남성들간의 '아랫도리 동맹' 인가.

 

덧붙이는 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SBS가 왜 이 사실을, 이 시점에 보도했냐는 점이었다.

 

대략 세 가지 정도 분석이 나오는데

 

첫째는 '진승현 게이트'를 취재하다가 진승현씨 쪽에서 찔러서 DJ의 혼외자 문제를 알게 됐고 상업방송인 SBS 답게 과감히 '질렀다'. 뭔가 많이 부족한 설명인 듯하다.

 

두번째는 목포시장 선거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4.30 재보선 목포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할 경우 사분오열할 가능성이 높고 이때를 노려 열린우리당이 통합을 한다는 시나리오다. 이것도 좀 약하다.

 

세번째는 퇴임후 오히려 업적을 인정받고 있고 정치적 입지를 여전히 확보하고 있는 DJ 자체를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특히 DJ는 올해 회고록을 출간한 계획이었는데, 이것을 앞두고 완전히 재를 뿌린 격이 됐다. DJ 회고록은 역사적 의미 뿐 아니라 정치적 파장 또한 엄청날 것이라고 정치권에서 엄청 긴장하고 있었다.  여권에서 철저히 정략적인 목적에서 배후조정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제일 그럴듯하긴 하다. 

 

근데 왜 숨겨둔 자식들은 왜 다 딸인가?

 

(아들일 경우, 호적에 올리지 않을까 싶다. 왜냐...나중에 그 아들이 자라 자신보다 더 큰 권력을 갖고 복수할 게 두렵지 않을까. 대개 딸들은 그런 권력을 갖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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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위기

한 일간지 선배로부터 들은 얘기다.

 

그 회사는 지난해 각 부서에서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는

중견기자를 모아 야심차게 '기획취재팀'을 꾸렸다고 한다.

 

다양해지는 독자들의 요구를 총족시키고 신문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말이다.

 

근데 1년이 지나도록 별반 성과물이 없었다는 게 내부 평가다.

 

그 이유를 기획취재팀에 소속된 선배에게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하더란다.



"기획취재팀에 제대로된 기획을 할줄 아는 기자가 없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뉴스에 쫓겨, 때론 뉴스를 쫓아 허덕이기만 했지

정작 무거운 문제의식과 긴 호흡을 갖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기 위한

제대로된 기획기사를 고민하고 쓰는 것은

경력이 십수년인 기자들에게 조차 버거운 일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기자질을 시작한지 올해로 5년째인데

이대로 가면 나도 기획기사 하나 못 쓰는 중견기자가 돼 있을 게 분명하다.

 

상투적 표현으로

숲은 못 보고 나무만 보는...

 

하지만

분초를 다투는 속보경쟁이 치열한 인터넷 시대에

그것도 인터넷 신문 기자인 나는

여전히 '나무'에 매달려야만 하는 게 현실이다.

 

더욱이

언론이라 할 수 없는 포탈 사이트가

인터넷 뉴스 시장에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게 되면서

개별 언론사는 포털 뉴스에 하나라도 더 많은 기사를 내보내려고

자리 싸움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노컷, 땅콩, 쿠키뉴스...

아...과거 언론의 그 근거없는 자신감과 자존심을 다 어디로 갔던가.

초기 인터넷 매체가 등장했을때

기사의 질과 신뢰성을 문제 삼으며

언론 취급도 안 할 때가 불과 2-3년 전이다.

요즘엔 기존 언론사의 인터넷판 뉴스를 보면서

정통(?) 인터넷 신문 기자들이 인터넷 뉴스의 질을 걱정하고 있다.

(우린 적어도 '정보보고'를 뉴스랍시고 노털에 제공하진 않는다.)

 

위성 DMB, 인터넷 방송의 대중화 등 앞으로도 언론 환경을 계속 변할 것이다.

 

기존 매체에 대한 독자들의 냉소가 어디서 비롯된 것으로 인식할 것인가.

 

그래서 각 언론사들은 생존의 활로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나를 비롯한 모든 언론 종사자들 앞에 놓여진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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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배배 꼬였냐고?

어제 좀 이상한 날이었다.

 

하루종일 추적추적 내린 눈/비와 음산한 바람과

 

오후 늦게 전해진 배우 이은주의 자살 소식도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은주의 팬은 아니었지만 꽤 괜찮은 배우라고 생각했었다. 강인해 보이던 그녀가 우울증에 시달려 자살했다는 게 섬뜩했다.)

 

그러다가 어제 저녁 우리 회사 대표가 평 기자들에게 저녁을 사준다고 해서

 

음산한 날씨를 헤치고 용산 국방부 뒷골목에 위치한 '봉산'이란 고기집을 찾았다.



평소 맛보단 찾아가기 수월한 장소를 선호하는 편이라 가는 내내 속으로 툴툴 거렸더랬다.

(공간지각력이 떨어져 길을 잘 못찾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하튼 어렵사리 찾아간 술집은 손님들로 그득찬 걸 보니 소문난 집인게 확실하다 싶었다.

 

그리하여 그 맛있다는 음식맛을 맛보려는 찰나,

 

회사 후배가 잠시 나와 인사를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 옆 테이블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연세대 사회학과 유석춘 교수였다.

 

유 교수는 내 기사를 잘 보고 있다며 대뜸 "사람이 왜 그렇게 배배 꼬였냐"고 질문했다. 뒤 이어 "어릴 때 성장기가 불행했냐" "나도 보수 꼴통이란 소리를 듣지만, 홍 기자도 진짜 꼴통인 거 같다"고 나에 대해 평가했다.  

 

그러면서 소주를 쉴새 없이 권했다. 

 

결국 그날 난 그 집 고기는 한점도 못 먹고 양배추를 안주 삼아 깡소주를 들이켜야했고, 일찌감치 취해버렸다. 쩝;;;

 

건 글코...내 글을 보면 내가 글케 꼬여 있는 거처럼 느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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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남성들이여, 춤을 추자&quot;

"남성들이 춤을 멀리하게 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다."

 

엊그제 퇴근 후 서점에 들러 이런 저런 책을 훑어보다가 <무용의 현대>라는 책이 눈에 띄어 집어들게 됐다.

 

늦은 나이에 발레에 미치게 됐다는 일본 문예평론가 미우라 마사시(三浦雅士)가 쓴 춤에 대한 에세이집이다.

 

그는 이 책에서 20세기 후반부터 무대예술의 중심이 연극에서 무용으로 넘어왔다고 주장하면서 마사 그레이엄(1893-1991. 미국 현대 무용의 개척가. 그의 이름을 딴 마사 그레이엄 무용학교와 무용단이 있다),  조지 발란신(1904-1983. 뉴욕시티발레단을 만들었으며 네오클래식(신고전주의) 발레의 창시자), 유리 그리고로비치(1927. 볼쇼이발레단 예술감독. 볼쇼이 발레단에서 33년간 수석 안무가를 맡았었다) 등에 대한 평을 실었다.

 

서점에서 잠시 저자의 무용관을 밝힌 부분인 '지금, 왜 춤인가'라는 글을 읽었는데, 춤과 산업화와 신체의 표준화에 대한 설명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가끔 방송에서 일부 아프리카나 동아시아 지역에서 아직도 부족사회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춤이 그 사회를 유지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그 사회에서 춤은 특정 성별이나 연령, 계층이 향유하는 예술이라기 보단 온 부족이 기쁨, 슬픔, 분노 등 감정을 공유하기 위한 소통 수단이다.

 

저자는 남성이 춤을 추지 않게 된 것은 산업화 이후로 그 이후 노동자 남성들에겐 춤 대신 '체육'이 심신을 단련하는 수단으로 확실히 자리잡게 됐다고 밝혔다.

 

춤의 궁극적 목적이 몸을 통해 인간이 느끼는 수많은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라면, 체육은 인간 신체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저자는 또 체육은 인간의 몸을 표준화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동시에 그것이 궁극적 목적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산업화로 공장을 통한 대량생산체제가 도입되면서 똑같은 기계를 사용해 생산을 할 수 있는 표준화된 노동자들이 대거 필요하게 됐다. 규격화된 신체를 가진 노동자들을 확보하는 건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산업화 이전 사회구성원들의 몸의 다양성은 지금보다 훨씬 컸다고 말했다.

 

저자는 또 남성들의 신체를 표준화시키는 것은 근대 국가의 '군대'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고로 남성들이여, 춤을 춰라.

 

당신의 몸과 감성 체계를 정해진 틀에 몰아넣으려는 자본과 국가의 음모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춤을 함께 추자.

 

고백의 글

 

난 거의 모든 종류의 운동에 소질이 없지만 춤추는 것은 좋아한다. (결코 잘 춘다는 의미가 아니다.)

 

난 공을 가지고 승패를 가르는 종류의 운동은 싫어한다. 이기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태권도, 권투 등 힘을 쓰는 운동도 싫어한다. 맞으면 아프기 때문이다. 스키, 사이클, 롤러브레이드 등 바퀴가 달린 것을 타는 운동 역시 싫어한다. 넘어지면 다친다. 남들과 경쟁하지 않는 혼자 하는 달리기나 등산이 유일하게 부담을 갖지 않는 스포츠다.

 

춤은 다르다. 춤은 경쟁이 목적이 아니라 자기만족이 목적이다. 춤은 신체의 한계에 도전한다기 보다 몸을 내 감정을 표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뿐이다. 

 

그렇다면 춤을 출만한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어디서 춤을 추냐고?

 

좀 호사스런 취미라고들 할지 모르지만 내 취미 중 하나가 '발레'다.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건 1년반 정도 지났다.

 

일주일에 두번 집 근처의 발레스튜디오에 가서 천근만근 무게의 다리를 들어올리며 뒤뚱뒤뚱, 1시간 반 가량 땀 흘리며 춤추는 게 내 일상의 한 부분이다. 춤과 함께 춤추는 여자들의 수다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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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행복

오늘 한겨레에서 "우리는 행복한가"라는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의 칼럼을 읽었다.

 

이 칼럼은 물론 '철학적' 탈성장의 관점에 기반한 글이다.

 

"물질이 어느 정도나 있으면 우리가 행복해질까? 우리는 부가 늘어나면 더 행복해질 거라고 믿는다. 물질의 증가를 행복의 전제로 두는 점에서 전통적인 좌파와 우파는 큰 차이가 없다. 성장의 과실을 어떻게 나누느냐를 두고 생각이 갈라질 뿐이다. 이 글을 쓰는 책상 위에 세계 각국의 부와 행복지수를 나타낸 도표 한 장이 놓여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부자나라가 될수록 더 행복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필리핀이나 브라질 국민들은 그보다 훨씬 잘사는 포르투갈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아일랜드, 핀란드, 네덜란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사람들도 미국보다 ‘못살지만’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



이 칼럼과 또 이 칼럼을 진지하게 읽는 나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사회가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이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로 변했다는 거다. 나 자신도 그렇고.

(물론 간혹 어떤 사람이 '행복하세요' 이런 류의 인사를 하면 아직도 낯 간지럽게 느껴지긴 하지만...)

 

'우리(나)는 행복한가'라는 물음 자체가 참으로 '생뚱맞게'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그에 앞서 '우리(나)는 정당한가'가 질문돼야 한다고 믿었더랬다.

 

어쨌든 조효제 교수는 이 칼럼에서  리처드 레이어드의 <행복의 경제학>이란 책을 인용, "미국과 유럽은 물론 일본의 경우에도 전후 50년 동안 무려 6배나 잘살게 되었지만 행복지수는 변치 않고 있으며 여기에는 행복의 복잡한 사회심리적 요인이 깔려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국민소득 1만5천달러를 분기점으로 하여 더 잘살게 되어도 행복은 거의 제자리걸음 또는 심지어 퇴보하는 경향까지 있다"고 지적했다. 

 

"리처드 윌킨슨은 어느 수준 이상부터는 발전보다 오히려 사회의 응집력과 평등이 그 사회의 건강도와 행복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성장과 평등 사이의 해묵은 논쟁에 대한 어떤 암시를 얻는다...1만5천달러의 고지를 눈앞에 둔 우리가 어떤 길을 택해야 할 것인가? 진정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현실감각 없는 이상주의자의 꿈으로 비웃지 않을 만한 집단적 지혜가 우리에게 과연 있는가?"

 

어쩌면 결론은 '우리(나)는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으로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그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 확연히 다르며, 심지어 결과조차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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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법

그냥 지나가야 한다

말 걸지 말고
뒤돌아 보지 말고
모든 필연을
우연으로 가장해야 한다
누군가 지나간 것 같지만
누구였던가에 관심 두지 않도록
슬쩍 지나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죽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선
몇 번을 죽을 수도 있지만
처절하거나 장엄하지 않게
삶에 미련두지 말고
되도록 짧게 죽어야 한다
잊지말아야 할 것은
그 죽음으로
살아남은 자의 생이 더욱
빛나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이란 배당받는 것이다
주어진 생에 대한 열정과 저주,
모든 의심과 질문들을 반납하고
익명의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듯
세상을 한 번, 휙~
사소하게 지나가야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끝끝내
우리는 배경으로 남아야 한다.

 

엑스트라 / 정해종



난 정해종(41)이란 시인을 잘 모른다. 지난 91년 등단해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

<내 안의 열대우림> 이란 두권의 시집을 냈으며 삼십대 중반이 넘어 아프리카 미술에 매료돼 지금은 '터치아프리카' 대표로 있으며 국내에 아프리카 미술을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는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그에 대한 전부다.

 

"정해종의 시는 즐겁지 않다. 때로는 착잡하기까지 하다. 그것은 시적 화자가 이미 청춘의 꿈의 내용대로 우리 일상을 채워갈 수 없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 또한 버릴 수 없음을 알고 있다는 데서 온다. 그래도 굳이 선택하라고 한다면 시인에게 희망은 막막하고 절망은 구체적이다."

 

그의 시에 대한 비평이다.

 

무엇보다 난  그의 직설법이 마음에 든다. 폐부 깊숙이 우려난 냉소와 비관을 빙 둘러 말하지 않고 확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와 닿는다. 아니 머리 속에 팍팍 새겨진다.

 

절망을 대놓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게 그가 가진 희망이다.  

 

을지로 순환선
                                정해종

 

구멍난 도시의 심장을 여러분께선
관통하고 계신 셈인데, 관통을
자꾸 간통으로 알아듣는 이가 있다
혀가 짧은 것도 아닌데 순환선을
수난선으로 발음하기도 한다
그는 종일 간통죄 폐지의 거론과
도덕의 수난을 생각하였을 것이다

잠실과 신도림이 은밀하게 연결되었을 때,
그는 처음으로 교통과 고통을 얼버무리고
다 그게 그거라고, 우리말 사전의 몇몇
어휘들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우겼다
90년대에 이르러 그는 문명과 문맹을,
利器와 利己를 얼버무려 놓았다.

이제 그는 없다, 언젠가 그가 바람난 서울을
떠나겠노라 했을 때 아무 말하지 못한 건
관통과 간통의 일맥상통을,
소득수준과 소비지수가 다른
잠실과 신도림의 은밀한 밀회를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숨막히는 호흡의, 팽창하는 성감의 서울
간통죄 폐지의 거론과 도덕의 수난을
생각하며 마크네틱 테잎 들이밀 때
나는 문명의 진공 속으로 빨려드는
담배꽁초가 되고, 아랫배에 힘주어
바리케이드 밀고 나오면
그렇다, 이건 영락없는 문명과 이기의,
간통

 


연애편지를 쓰는 밤 

                             정해종


당신이 마련하신
기쁨과 고통의 행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 몇 명이 다녀가셨다지요
꽃을 준비하지 못한 건
시들지 않는 기쁨을
선사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러나 시들지 않는 꽃이란 게
끝내 사그라지지 않는 사랑이란 게
있기나 하던가요
살아 있음을 인생이라 하고
피어 있을 때만이 꽃이라 하고
고통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때만이
사랑이라 하지 않던가요
믿을 수 없는 것들이지요
그대의 문을 두드리지 못한 건
이 믿을 수 없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였습니다
용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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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에 대해

"봉사야 말로 나의 종교다. 나는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요 며칠 간디와 마틴 루터 킹의 '비폭력 저항'에 관한 책을 연달아 읽고 있다.

(<마하트마 간디>-앙리 스테른 지음. <비폭력>-마리 아네스 꽁브끄 외.)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단 최근 지율스님의 단식을 겪으면서 그냥 우연히 눈에 들어와 읽게 된 책들이다.



간디에 대해선 어린 시절 전기와 그의 삶을 다룬 영화를 통해 접한 지식이 아마 그에 대한 전부였었다.

 

또 서른 한살때부터 종교적 수행을 위해 부부 관계를 갖지 않았던 간디가 쉰 여섯의 나이에 당시 자신의 문하생이 되기 위해 찾아온 33세인 영국인 매덜린 슬레이트와 나눈 애틋한 '정신적 사랑'에 대한 전기적 소설(<미라와 더 마하트마>. 수디르 카카르 지음)이 출간됐다는 기사를 통해 간디를 다시 보기도 했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의심하는 인간적인 간디의 모습을 말이다.

 

간디가 미라(매덜린은 이후 신화 속의 여성 양치기이자 힌두신 크리슈나의 연인인 '미라'로 불렸다)에게 보낸 편지엔 격정적인 그의 감정이 담겨 있다고 한다.

"당신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주변을 둘 러보다 문득 당신을 그리워 합니다. 물레를 돌려보지만 잊을 수는 없습니다."

"당신을 위해 힌두 성가를 영어로 옮기면서 행복에 겹습니다. 내가 때로 격정에 사로잡혀 당신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던가요?"

 

이런 사랑은 인도독립운동의 정신적 지도자이며 금욕적 생활을 추구하는 그에게 기쁨이자 동시에 크나큰 고통이었다고 한다. 

 

반면 이번에 읽은 간디의 잠언집은 운동가이자 구도자로서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기자질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말하기 좋아하고, 평가하기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누군가를 '좋아한다' '존경한다' 이런 표현(특히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드러날 수 있는 경우)은 거의 쓰지 않는데, 간디의 의지와 결연함이 묻어나는 그가 남긴 짤막짤막한 글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특히 기억하고픈 구절들을 옮겨보았다.

 

"노동자가 그토록 자구 실패하는 것은 비협력을 통해 저항함으로써 자본가를 무력화시키기보다는 자본을 탈취하여 스스로 자본가가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럴때 유리한 입장에 있고 잘 짜인 계획을 가진 자본가는 언제나 노동자들 가운데 노동자를 탄압하기 위한 지원자들을 찾아낸다."

 

"모든 유형의 불평등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 때문에 모든 인간이 근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새나 들짐승처럼 모든 사람에게 생명 유지에 필요한 욕구를 채울 권리가 똑같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권리에는 공격에 대처할 수단과 의무가 따르듯이 우리는 근본적인 평등과 승리를 보장할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비폭력 수행자의 무기 가운데 가장 주된 무기인 단식을 남용할지도 모른다는 구실로 포기해서는 안된다. 폭력을 효과적으로 대체하기 위해 생각해낸 단식은 아직까지 시작단계에 있으므로 좀더 완벽하게 보완될 수 있다. 나는 비폭력을 생각해낸 사람으로서 어쨌든 비폭력의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인 단식을 포기할 수 없다."

 

"집착 때문에 행하는 모든 행위를 스스로에게 금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에게 많은 위험을 피하게 해줄 황금률이다."

 

"비폭력은 결코 현실에서 악의와 맞서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결 능동적인 투쟁 형태이다. 악의를 늘릴 뿐인 폭력적인 반격보다 훨씬 현실적인 투쟁 형태이다."

 

"비폭력과 비겁함은 함께 갈수 없다. 무기를 소유한다는 것인 두려움이나 비겁함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면 진정한 비폭력은 전적으로 두려움이 없을 때에야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힘이란 물리적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굴의 의지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임무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진, 의지 굳건한 소수의 사람들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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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힘

어제 정부 측 대표인 남영주 국무총리실 민정비서관이 최종 협상안을 들고 지율스님이 계시는 정토회를 찾았다는 소식에 '비상대기'하며 간디의 잠언을 모은 책을 읽었다.

 

새만금 삼보일배도 그렇고, 지율스님의 단식도 그렇고, 변화의 속도를 감당하기조차 힘든 테크노크라시 시대에 '자연'이라는 오래된 주제로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든 것은 종교인들의 몸을 던진 수행이었다.

 

물론 그간 환경단체의 공헌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사심이 없기에 단순명확하고, 신심을 담았기에 비타협적이며, 마침내 타인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가르침은 오랜 수양과 명상을 한 살아있는 현자들의 몫이 아닌가 싶다.   

 

* 이 글은 개굴님의 [터널이 아닌, 당신들의 막힌 귀를 뚫으십시오] 에 관련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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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인생역전(6)

3. 

‘김순애, 넌 죽었어.’

 

영철은 순애와 경찰서 대기실에서 20여일 만에 만났다. 순애가 들어서자 반쯤 벗겨진 머리에 작고 마른 체구, 한쪽만 쌍거풀진 작은 눈을 가진 영철이 벌떡 일어나 입을 앙다물고 그녀를 쏘아보았다. 당장이라도 한대 후려칠 듯한 영철의 눈빛을 피해 순애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고개를 떨구고 발장난만 했다. 

 

그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영철은 한바탕 육박전을 치루고 순애가 가출한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순간부터 복수를 계획했다. 순애가 자신이 던진 유리 재떨이에 가슴팍을 맞고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던 생각만 하면, 그는 지금도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처음 순애를 데려올 때만 해도 그가 예상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다. 조선족이란 이름에 걸맞는 순진하고 나긋나긋한 ‘조선처녀’를 꿈꿨다. 남영동 후미진 뒷골목이긴 하지만 당구장과 노래방을 하며 동네에선 돈 좀 만지는 축에 속하는 영철은 한국에서도 재혼 상대를 구할 수 있었다. 그가 굳이 멀리 중국까지 가서 신부감을 고른 건 드세고 돈만 밝히는 한국 여자들이 싫어서였다. 3년전 교통사고로 죽은 아내와 20년 결혼 생활로도 충분히 넌더리 날만큼 겪었다.     

 

재혼하기로 마음먹은 영철은 결혼상담소의 안내로 중국 심양에 신부감을 고르러 갔다. 그는 도착한 날부터 서너명의 아가씨를 소개받고 가장 어리고 늘씬한 순애를 선택했다. 조선족 여성들과 결혼하려는 다른 한국 남성들에 비해 경제력이 있는 그는 어딜 가나 환영 받았다.

 

고3인 큰아들보다 불과 여섯 살 많은 여자에게 처녀장가 든다는 기쁨에 영철은 자기보다 두 살 어린 장모를 ‘어머니’라며 존대하는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순영이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자신과 단둘이 살아온 장모 걱정을 하자 그는 결혼하면 장모에게 작은 슈퍼마켓 하나 차려주마, 큰 소리도 쳤다.

 

그렇게 만난지 일주일 만인 3월25일 영철과 순애는 결혼했다. 순애의 집 가까운 곳에 위치한 조선족 식당을 빌려 하루 종일 먹고 마시는 중국식 결혼을 치렀다. 고개를 젖히고 술잔에 담긴 술을 입에 탁 털어 넣는 순간 식도가 타 들어갈 것 같은 독한 중국술을 적잖이 마신 영철은 그날 밤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로 순애를 데려왔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10분도 안돼 사정하고 만 것은 그가 만취해서도, 20대 중반의 탄력 있는 순애의 몸 때문도 아니었다. 그 몸을 자신만이 독점할 수 있다는 희열이 더 컸다.(계속)

 

덧붙이는 말 : 이 소설을 기다리는 분이 적어도 두 분이나 된다는 걸 알면서도 여섯번째를 올리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사정을 말씀드리자면

요즘 좀 슬럼프입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저 글 쓰는 게 조금 피곤한 상태입니다.

 

좀 지나면 나아지겠죠^^

(이건 일곱번째도 늦어질 거란 암시? ㅎㅎ)

 

날씨가 너무 추워요....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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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메디에 대한 추억

어릴 적 심형래, 임하룡, 맹구(그의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등이 출연하던 코메디 프로그램을 즐겨봤었다.

 

하지만 지금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개콘(개그콘서트)나 웃찾사(웃음을 찾는 사람들) 등 코메디 프로그램은 거의 보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들이 모두 내가 보기 힘든 시간 대에 방송된다는 물리적 이유도 있지만

그 프로그램들 속엔 굳이 내가 시간을 내 보고 싶을 만큼의 동인이 없다.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왜 재미가 없나...

 

'웃음' 이란 것만큼 맥락과 상황(소위 콘텍스트)이 중요한 것도 없다.

 

그래서 '웃음'은 곧 '문화'다. 



어린 시절의 심형래 등이 했던 코메디는 슬랩스틱 코메디였다. 업어치고 넘어지고 메치고....

 

슬랩스틱 코메디의 미학은 '자학'이다. 자기 몸이 깨지면서, 자기가 바보가 되면서, 자기를 낮추면서 남에게 웃음을 주는 것이다. 다른 연기자들은 우리 주인공 바보가 넘어지는 상황을 만들기까지 스토리를 만드는 보조자였다. 보는 이들은 때론 무대 위의 바보를 비웃기도 하고 때론 그의 바보스러움에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한다.

 

반면 요즘 유행하는 많은 코메디는 '가학'과 '피학'의 코드를 무대 안으로 끌어들였다. 떼로 몰려나와  제일 덜 떨어진 한명을 다른 연기자들이 놀리면서 웃음거리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관객(시청자)들은 '가학'과 '피학'의 장에서 한발 멀어진 관찰자다. 특히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못생기고 뚱뚱한 여성과 예쁘고 날씬한 여성을 비교하면서 웃기려 하는 코메디다. 

 

이런 변화가 무얼 의미한다고 규정지을 능력은 없다. 물론 과거의 슬랩스틱 코메디도 지금 다시 보라고 하면 마찬가지로 재미없어 하겠지만 요즘 코메디는 너무 잔인해서 도저히 못 봐주겠다.

 

오늘 아침 국민일보에 실린 '우찾사'라는 엄청난 만평을 보고 떠오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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