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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라는 이름의 몰상식

최근 언론노조 파업과 국회파행사건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다보면, 흥미로운 논리가 발견된다. 해서, 당시 내가 말했던 내용을 기억을 위해 가다듬어 놓는다.

한나라당의 언론관계법에 대해서 가장 대표적인 논리이자 상식으로 통하는 말은 아마도 "시청자의 권리"라는 것이라 본다. 최근 중앙일보도 방송이 재벌에 의해 장악되어 특정 계급의 이해만을 반영할 것이라는 마봉춘의 보도에 '그렇게 되면 시청자들이 보지 않을 것'이라며 반박했다는 글도 보았다.

이른바 '소비자 주권'의 논리.

어제 KBS 뉴스에서 이스라엘의 지상전 투입과 관련한 보도를 하면서 이스라엘 국방부장관을 인터뷰한 미국 언론의 화면을 보여주었다. 그 방송이 바로 머독이 소유하고 있는 폭스뉴스다. 모든 매체가 모든 뉴스원에 대해 동등한 접근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이는 논리적으로만 존재하는 가정일 뿐이다. 이명박은 당선 직후 <동아일보>에만 인터뷰를 하는 은전을 베풀지 않았던가.

그동안 매체의 프레임 형성권에 대해 집중하면서, 조중동 찌라시와 같은 행태가 많이 언급되었는데 문제는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조중동의 경우에는 사실전달이라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포기하면서까지 마타도어로 일관하는 비언론인 셈이기 때문에, '언론사의 다양한 입장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이미 논외에 속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중동을 보는 이유다. 내 주변에도 '조선일보를 알기위해 조선일보를 본다'던가 '조선일보의 정보력을 넘어서는 언론이 없다'는 등 다양한 조선일보 찬양론의 버전들이 존재한다. 경제적 영향력이 바로 정보 접근의 범위를 비약적으로 확대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왜 이렇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가? 그것은 삼성이라는 대재벌의 영향력 때문이다. 비공식적인 정보의 집중을 바탕으로 '직접' 관료집단과 소통하고 있는 연구소의 능력을 누가 넘어설 수 있겠는가.

만약 마봉춘이 재벌의 금가락지에 넘어가게 된다면, 여타 지상파에 비해 막대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시청자로 하여금 '볼 수 밖에 없게' 만들 공산이 크다. 이런 상황은 시청자의 선택를 넘어서는 것이다.

비약해서 말하자면, 이정도의 재벌방송은 모든 뉴스보도를 '자기실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다시말해, "정부는 경제활성화를 위해 이런 저런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보도한다면, 며칠 뒤에 정부가 "경제활성화를 위해 이런 저런 조치를 취할 것이다"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상황이 그렇다면, 아무리 재벌이 소유한 마봉춘이 밉다하더라도 마봉춘을 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쉽게 생각해서 지금 이블로그를 보는 사람 중, 혹은 그 주변에서 여전히 조중동을 탐독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과연 그 사람들이 바보라 그럴까?

시청자의 선택권이란, 비대칭적인 정보량을 지닌 언론 매체 환경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마봉춘의 예능화보다 내가 더 우려하는 것은 이런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언론노조의 파업을 비롯하여 시민들의 투쟁은, 시청자의 선택권을 지키기위한 싸움이다.


다음으로 다수결의 논리.

새해랍시고 김영삼 옹께서 입을 여셨는데, 최근 국회 상황에 대해 '다수결의 원칙'을 강조하셨다 한다.
나름 합리적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꽤나 다수결의 논리를 들어가며 현 국회의 상황을 비판하곤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뭐 이들에게 한나라당도 예전에 그랬어!라고 말하면, '그래서 그렇게 욕하는 한나라당과 똑같은 짓을 해도 된다는 것이냐'는 핀잔이 돌아온다.

그런데 내가 궁금한 것은 민주주의의 원칙이라는 다수결의 정체에 대해서다. 물론 다수결은 소수의견의 존중, 다수결의 관철방식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소소한 제한들이 있지만, 일단 빼자.

국회의원은 국가를 구성하는 3개 주요한 기능 중 하나인 '입법행위'를 위한 대의자다. 유권자는 정치적 성향이나, 후보자와의 이해득실로 자신의 대의자를 선택하게 되는데 이로 다수당과 소수당이 만들어진다.

다른 것은 다 떠나서, 한나라당에서 "국민들이 만들어준 국정운영의 권한"으로 "엠비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는 심각한 모순이 존재한다고 본다. 바로 다수결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것인데, 이명박이 합법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가진 것도 맞고 한나라당이 선거를 통해 다수당이 된 것도 맞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4년이나 5년동안 무슨일이든 '다수의 의지'를 표방할 수 있는가라는 점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여론조사가 참 많다는 점이다. 유권자의 48% 지지로 대통령이 된 이명박의 지지도가 30%라면 합법적인 권력 획득 이후의 권력운용과 관련된 정당성은 없는 것으로 봐야 하지 않나? 그들이 말하는 다수결로 보자면, 국민 중 30%만이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인데 말이다.

또한 국민의 60%가 한나라당의 언론관계법에 반대한다고 하는데, 민주주의의 원칙인 다수결에 따르면 이런 국민들의 의견에 따라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국회안의 다수와 소수는 어떻게 구분될 수 있을까? 역설적이게도 한나라당이 소수당이면서도 몽니를 부리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언론관계법만 놓고 보자면, 한나라당 국회의원 1명은 고작해서 0.6 정도의 국민대표성을 지니고 있고 야당의원들은 1.5에서 1.6 정도의 국민대표성을 지니고 있는 셈인데, 한나라당 2명 정도 모여야 사람 1명 구실하면서 다수당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지 않을까?

조중동이던 한나라당이든 곧잘 이용하는(절대 자신들이 소수일때는 이용하지 않는) 다수결의 원칙은 제도의 원인과 결과에만 존재하는 반푼짜리 원리인셈이다. 과정 속의 다수결을 따져보면, 한번 다수가 지속적으로 다수인 적은 별로 없다. 그게 민주주의 아닌가 말이다.

신년을 맞이하여 보기 힘든 사람들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고민해서 답을 해야 한다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그들이 말하는 상식이란 고작 상식처럼 보이는 비상식이자 몰상식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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