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과 강물이 넘나들며 버드나무 군락을 적셔줘야 할 장항습지 갯골에 각종 생활 쓰레기가 가득차 있다.
덩굴을 뒤집어쓴 나무들이 말라죽고 있었다. 퇴적된 토사는 강 한가운데까지 걸어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았다. ‘습지 생태계의 보고’라는 말이 무색했다.
환경부와 경기 고양시가 람사르 습지 등록을 추진 중인 장항습지의 생태계가 최근 급격히 훼손된 것으로 드러났다. 3일 김포대교~일산대교 사이 자유로 철책선 안쪽 7.6㎞ 구간의 장항습지에 가보니 예전의 평화롭고 고즈넉한 모습은 간 데 없었다. 대신 가시박과 환삼덩굴, 단풍잎돼지풀, 미국쑥부쟁이, 족재비싸리나무, 붉은서나물 등 생태계 교란 식물과 외래, 육지 식물이 을씨년스럽게 뒤덮여 있었다. 가시박 덩굴과 환삼 덩굴로 뒤덮인 작은 나무들은 대부분 고사했고, 큰 나무들도 덩굴의 공격에 버티는 일이 위태로워 보였다.
한강하구 습지보호지역인 경기도 고양 장항습지에 가시박 등 외래식물이 크게 번져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바닷물과 강물이 드나들며 실핏줄처럼 버드나무 숲을 적시던 갯골엔 쓰레기더미가 가득한 채 말라붙어 있었다. ‘한국의 맹그로브 숲’이라 불리던 2.7㏊ 규모의 버드나무(선버들) 군락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버드나무와 공생하며 뿌리가 숨쉴 수 있게 돕는 말똥게와 펄콩게가 줄어든 탓이다. 빠르게 진행된 육지화 때문이라는 게 환경단체 활동가들의 설명이다.
습지 곳곳은 상류에서 떠내려온 스티로폼과 플라스틱, 깡통 따위 생활 쓰레기들로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탐조대에서는 2~3년 전만 해도 개펄에서 놀던 철새떼와 강물을 볼 수 있었으나 김포시와 경계 지점인 강 중간까지 너비 700m 가량 육지화가 진행돼 널따란 갈대숲이 생겨났다.
추수가 끝나 텅빈 경기도 고양시 장항습지 안 농경지에 큰기러기 등 겨울철새 수천마리가 찾아와 날갯짓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곳의 육지화 원인으로 신곡수중보를 지목했다. 수중보가 강의 흐름을 막아 보 아랫쪽이 계속 퇴적되는데 2007년 이후 태풍이나 홍수로 인한 범람이 없어 침식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동욱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본부장은 “하천 하구에서 갈대군락이 늘어나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순천만에서처럼 물새 서식지를 유지하기 위한 갈대 제거 작업이 필요하다. 장기적 관점을 갖고 습지의 활력도를 높일 수 있게 중앙정부가 적극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고양시 장항습지가 잇단 퇴적으로 육지화가 급속히 진행돼 강 중간인 김포시 경계 지점까지 갈대숲이 새로 조성됐다.
환경단체도 이곳이 국가의 습지보호지역인 만큼 한강유역환경청과 고양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박평수 한강유역네트워크 운영위원은 “이 상태를 더 방치하면 덩굴들로 인해 나무들이 고사할 수밖에 없다. 습지를 덮고 있는 가시박과 육지화를 촉진하는 나무와 풀을 우선 제거하고, 중장기 습지 관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염형철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대표도 “갯골을 메운 쓰레기부터 치우고 물길을 터서 버드나무 군락을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강유역환경청도 조만간 전문업체를 선정해 지난해 장마 이후 쌓인 쓰레기 제거에 나설 계획이다. 육지화와 관련해 이 곳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습지보전 5개년 계획에 전문가와 시민단체 의견을 수렴해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박평수(왼쪽) 한강유역네트워크 운영위원과 염형철(가운데)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대표, 윤용석(오른쪽) 고양시의원이 지난 3일 경기 고양시 장항습지의 생태계 훼손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환경부는 2006년 신곡수중보에서 강화군 송해면 숭뢰리까지 총면적 60.668㎢(약 1835만평)를 한강하구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장항습지와 파주 산남습지, 김포 시암리습지 일대에는 재두루미, 개리, 저어새 등 멸종위기종 36종을 포함해 868종의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다.
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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