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신흥 이익창출 기관 업종이에요. 3년만 하면 빌딩 짓고 나가요. 요양원장들이 3년에 한 번 씩 로테이션 되는 곳들도 있어요. 아예 건설업자가 시설 건물을 짓고 분양을 하기도 하더라고요.”
도대체 무슨 말인가. 노인요양시설을 운영하면 빌딩을 짓고 나간다니. 전지현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사무처장의 말이다. 이 말은 사실이었다. 노인요양시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전 사무처장은 2020년 3월에 발표된 감사원의 ‘노인요양시설 운영 및 관리실태’ 감사보고서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민간기관장들에게 수천억원의 이익금이 탈법적으로 돌아가는데 복지부는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장기요양 수요도 급격히 늘고 있다. 정부 재원도 그만큼 늘고 있다. 장기요양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이 있고, 그들에게 좋은 서비스가 간다면 재원은 어떻게든 마련해야 한다. 좋은 돌봄을 위해서는 돌봄을 제공하는 노동자에게 그 재원이 잘 전달되어야 한다.
돌봄서비스 전달체계는 현실에서 돌봄 재원의 흐름이다. 정부가 지출하는 돈이 돌봄을 제공하는 노동자에게 잘 전달되고 그를 바탕으로 좋은 서비스가 돌봄 이용자에게 제공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 세금에서 나온 돈이 어디선가 줄줄 새고 있다는 점이다.
시설에서 돈을 남겨 빼내가는 원장님들
요양기관이 전체 세입에서 제반 운영비를 지출하고 남은 돈을 ‘잉여금’이라 부른다. 앞서 소개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노인요양시설에 1187억원, 1311억원, 1858억의 잉여금이 발생하고 있었다. 사실상 요양시설의 수입이라고 볼 수 있는, 건강보험공단 부담금과 본인 일부 부담금을 합한 금액인 장기요양급여액의 6.1~7.8%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요양기관을 운영하면서 꽤 많은 돈이 ‘남고’ 있었다.
특히 2018년은 잉여금 액수가 툭 튀어올랐고, 장기요양급여액 대비 잉여금 비율도 7.8%로 급격히 올라갔다. 2018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복지부는 2018년 3월 개인과 영리법인 등이 운영하는 시설도 잉여금을 전출할 수 있도록 사회복지시설의 재무회계규칙을 개정했다. 문제는 전출금의 규모와 사용처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떤 목적인지 밝히지 않아도 요양시설의 돈을 다른 계좌로 뺄 수 있다는 뜻이다. 원래는 사회복지법인만 장기요양기관 인프라확충, 운영과 노인복지사업에만 쓰도록 했었다.
이 규칙 개정 이전, 즉 허용되지 않았던 2016년과 2017년에도 개인・영리법인들은 요양시설에서 돈을 전출해 왔다. 2016년에 126개 시설에서 112억원이 전출됐고, 2017년에는 120개 시설에서 72억원이 전출됐다. 규칙개정으로 허용된 이후에는 510개 시설에서 321억원이 전출됐다. 전년에 비해 무려 4배나 많은 돈이 시설에서 빠져나갔다.
심지어 시설이 직원 퇴직금 등을 위해 쌓아놓아야 할 적립금으로 보험상품을 들면서 보험수익자를 대표자나 대표자의 자녀로 해놓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들어간 돈이 2009년부터 2019년 6월까지 무려 150억원 가량이었다.
세금받아서 빚 갚는데 있는 원장님들
노인요양시설의 상당수가 지원금을 대출 갚는 용도로 쓰고 있었다. 감사원 감사결과 3516개 시설에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원리금 상환액이 1584억원, 1812억원, 1850억원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평균 한 시설에서 매해 5천만원 내외의 돈이 빚 갚는데 쓰이고 있는 것이다.
노인요양시설은 다른 사회복지시설에 비해 설치할 때 건설원가의 80%까지 차입할 수 있도록 돼 있다. 2008년 장기요양보험 제도를 도입하면서 시설 인프라를 ‘빨리, 많이’ 확대하기 위한 파격적 조치였다. 사회복지시설에 부채가 많으면 복지서비스 수급자에게 제공되어야 할 비용이 원리금 상환에 쓰여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게 돼 있다.
아니나 다를까. 지원금으로 빚을 갚고 있는 시설들은 금융기관에 원리금을 ‘원천징수’ 당하고 있었다. 원리는 이렇다. 일단 요양시설이 건강보험으로부터 장기요양급여를 받을 권리인 채권을 금용기관에 넘기고 돈을 빌린다. 이렇게 되면 원래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요양시설로 보내져야 할 돈이 일단 금융기관으로 보내지고 금융기관에서 원리금을 떼고 나머지 돈을 요양시설로 보낸다. 시설을 운영하고 요양보호사들에게 인건비로 지급해야 할 돈이 일단 ‘떼이고 난 후’ 들어오는 것이다.
기기묘묘한 돌봄노동자 인건비 빼먹기
돌봄시설들의 이익극대화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돌봄노동자들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인건비를 여러 ‘계약 꼼수’를 통해 빼돌린다.
돌봄시설의 지원금은 이용자 숫자를 기반으로 계산된다. 이용자 숫자에 따라 시설이 고용해야 하는 인원수가 정해지고 그 인원수에 1인당 인건비를 곱하고 기타 운영비용을 더하는 방식으로 정해진다. 여기에서 1인당 인건비에는 4대보험료, 주휴수당 등이 포함돼 있다. 시설을 운영하는 개인이나 법인들은 4대보험, 주휴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는 계약방식으로 비용을 남긴다.
재가요양보호사, 아이돌보미, 장애활동보조사 등 집으로 찾아가는 돌봄노동자들의 상당수가 월 59시간 계약되는 경우가 많다. 4대보험 가입 의무는 주당 15시간, 월 60시간 이상 근로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이런 ‘초단기근로’ 계약으로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할 인건비가 시설에 남게된다. 돌봄노동자들은 받아야 할 월급보다 30만원 가량을 빼앗기는 꼴이다.
어린이집 담임교사를 보조하고 휴게시간 보장을 위해 도입된 보조교사와 시간연장반 아동을 담당하는 시간연장반 교사를 활용해 인건비를 가져가기도 한다. 원장이나 부원장이 한 반의 ‘담임교사’로 정해 놓고, 오전에는 보조교사에게 오후에는 시간연장반 교사에게 아이들을 돌보게 하고 원장이나 부원장이 담임교사 인건비를 받는 방식이다.
원장의 자녀나 친척을 시설에 취직시키고 인건비를 높게 계산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코로나 시기에 시설 운영비에 마스크 구입비용이 포함돼 있었지만 돌봄노동자에게 마스크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기도 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돌봄노동자들은 시설에서 벌어지는 인건비 빼돌리기가 상상을 초월한다고 입을 모은다.
돌봄을 민간에 내맡긴 결과, 시설들은 이익추구에 혈안이 됐다
“돌봄 정책을 시작할 때 모두 국공립으로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고 생각했었죠. 국가에 돈이 없다고 생각해서 민간이 들어와서 시설 투자하고 이익을 가져가라고 한 거죠. 마치 대장동 개발 처럼요.” 이주남 공공연대노동조합 조지국장의 말이다.
김정엽 연구팀장에 다르면 한국의 돌봄서비스는 민간 의존도는 정부 예측보다도 더 심하다고 한다. 김 연구팀장은 “장기요양서비스제도를 준비할 때 민간과 공공의 비율은 5:5나 4:6 정도로 예상했다는데, 결과는 개인사업자만 75%를 넘는다”고 설명했다.
“재가요양보호사들은 아예 센터 사무실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이용자와 요양보호사를 연결하는 일이야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하니까 우리도 센터에 가 볼 일이 없죠. 인천에서 일하는데, 센터 사무실이 일산이나 파주에 있어요. 심지어는 사무실이 전라도에 있기도 해요.”
전국 어디에서든 이용자와 돌봄노동자만 연결해주면 된다? 재가요양보호사인 이미영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인천지부장이 전하는 사례는 개인이나 영리법인이 돌봄서비스를 어떤 관점으로 대하는지 극명하게 드러내 준다. 이용자를 돈을 벌어주는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 자리잡았다.
그러다 보니 시설들 간에 이용자를 유치하기 위한 ‘영업 경쟁’이 치열하다. 그 과정에서 개인부담금을 깎아주겠다거나, 이용자를 영업해 오는 돌봄노동자의 시급을 올려주거나 영업비용을 목돈으로 챙겨주는 경우도 생겨난다. 그 비용은 모두 시설의 운영비에서 나온다.
원장님들이 빼돌린 돈은 돌봄노동자 몫이었다
돌봄시설에서 잉여금의 비율이 비상식적으로 높은 이유는 규모가 애초에 작기 때문이기도 하다. 규모가 작다보니 ‘적당한 이윤추구’로는 시설을 운영하는 원장이나 영리법인이 ‘만족할(?)’ 만큼의 이익이 나지 않는 것이다. 사실상 인건비 외에 남길 곳이 없다보니 인건비 착취가 극심하게 벌어지는 것이다. 그 결과는 돌봄노동자들을 견디기 어려운 현실로 밀어넣는다.
국민입법센터 이주희 변호사는 “돌봄노동자들은 이 수입으로 생계를 제대로 꾸려가기 어려운 경제적 곤란을 겪거나 다른 일자리를 구해 병행하여 결국 장시간 노동을 하지만 초단시간 노동자로 사회보험 수혜도 받기 어려운 상태”라고 설명했다. 김정엽 연구팀장은 “돌봄서비스 전달체계를 바꾸지 않고서는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지출하면서도 영세한 자영업자와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하는 결과를 공고화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노동자들은 받을 돈도 제대로 못받고 불안한 고용상태에서 돌봄노동에 임한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돌봄서비스가 제공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110만에 이르는 돌봄노동자들이 모두 천사이길 기대하는 것과 같다.
* 다음편부터 세차례에 걸쳐 돌봄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보도합니다.
코로나시대의 노동
코로나19 펜데믹은 한국사회의 노동을 둘러싼 불평등을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아프면 쉬세요’ 캠페인이 진행됐지만 현행 법에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은 보장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유급병가를 쓰지 못하는 노동자는 가족을 돌보기 위해 일자리를 그만 둬야 했습니다. 그렇게 맞벌이 가정의 수입이 줄자, 물류센터로 투잡을 나서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심야노동에 대한 제한이 없는 물류센터는 죽음의 현장이었습니다. 펜데믹은 또 돌봄과 돌봄노동자를 둘러싼 불평등도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민중의소리는 코로나 시대 노동의 불평등 문제를 현장과 전문가들을 광범위하게 취재하고, 국민입법센터와 함께 법제도적 대안을 찾아봤습니다. 이번 시리즈 기사는 현장의 현실을 잘 드러내는 것과 함께 구체적인 ‘법 개정안’ ‘법 제정안’을 제시함으로써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해법’을 도출하는 데 나아갔습니다.
총 5분야, 10개의 기사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4개 분야는 하나의 기사로 갈음하고,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사회의 주요 문제로 떠오른 ‘돌봄’에 집중해 시리즈 내의 시리즈로 6개의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①병가제도와 상병수당: 아프면 쉬어라? 아프면 쉬어라? 한국인만 아파도 출근한다
②정리해고자 재고용권: ‘정리해고자’ 성기훈은 456억에 목숨 걸지 않을 수 있었다
③야간노동 제한: 새벽배송 경쟁시대, 야간노동 ‘헬게이트’ 열고 있다
④돌봄국가책임제와 돌봄노동
④-1 이용자도 돌봄노동자도 우울한 돌봄 현장
④-2 요양시설 3년 운영하면 건물이 뚝딱 생긴다?
④-3 돌봄노동자의 현실 1:최저임금마저도 빼앗기는 돌봄노동자
④-4 돌봄노동자의 현실 2:휴게시간 보장으로 임금을 빼앗았다
④-5 돌봄노동자의 현실 3:폭력에 노출돼 있는 위험한 현장
④-6 돌봄기본법과 돌봄노동자기본법이 필요하다
⑤노동자성과 사용자의 확대, 새로운 교섭의 시대로
※ 이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