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시대는 노동의 양극화를 확연히 드러냈다. 고용이 안정된 노동자들은 재택근무가 가능했고, 돌봄을 위한 휴직도 가능했다. 사람들이 집안에 갇혀 지내는 ‘언택트 시대’가 되어도 사회를 유지시킨 노동자들이 있었다.
택배와 배달노동자들이 우리의 일상을 지켜줬다. 학교와 어린이집이 멈췄지만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긴급돌봄’이 유지됐다. 학교와 어린이집, 돌봄시설들이 멈추자 아이와 노인을 돌보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됐다. 우리 사회를 유지시켜 주는 사람들, 그들을 우리는 필수노동자라고 불렀다.
아이러니하게 ‘필수노동자’ 대다수는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처해있는 대표적인 노동자였다. 노동관계법으로 보호되지 못하는 사각지대 노동자다. 필수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코로나 시대의 노동’ 마지막 편은 우리사회 노동기본권 사각지대를 해소할 방안을 살펴본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하는데는 두가지 접근법이 있다. 하나는 법제도를 통해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조직, 노동조합을 만들고 사용자와 교섭을 통해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방법이다.
법적으로 ‘근로자’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들
한국에는 노동자 권리의 ‘최저선’을 제시하는 노동관계법들이 있다.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 이름만 봐도 무슨 법인지 알 수 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받을 수 있는 주휴수당을 비롯한 각종 수당이나 사회보험 가입, 연차 등의 권리가 주어진다.
문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국민입법센터 신의철 변호사는 “근로기준법은 물론 다른 노동관계법에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라는 규정을 준용해서 쓰기 때문에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요양보호사도 최근까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시절에는 노동부가 직접 나서 ‘근로자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결국 몇 년 간의 재판을 통해 법원에서 인정받고 나서야 비로소 법적으로 보호받는 ‘근로자’가 됐다. 아이돌보미는 아직도 재판 중이다.
‘근로자’라고 해도 각종 예외가 존재한다. 수습 3개월이내 노동자나 장애인은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에서 예외다. 상시 4명 이하 사업장도 각종 가산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예외 인데다 기간제법이나 파견법상 차별시정조치도 요구할 수 없다.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한다면 연차는커녕 주휴수당도 없고 휴일수당도 적용받지 못한다. 요양보호사나 아이돌보미 등 돌봄노동자들 중 상당수가 이런 계약을 하고 있다. 그들을 고용하는 ‘센터’에서 일거리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이런 계약을 강요한다. 당연히 수당도 연차도 4대보험도 없다. 법적으로 ‘예외조항’을 만들었더니 ‘합법적 차별’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택배노동자같은 특수고용노동자나 배달노동자같은 플랫폼 노동자들은 아예 고려 대상이 되지도 못한다. 이들은 임금이 아니라 ‘수수료’를 받고 있는, 사용자에게 종속되지 않은 사업자이기 때문에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언뜻 보면 보통 회사원같은 백화점 판매원이나 정수기 수리 기사 같은 노동자들도 ‘근로자성’을 인정해 달라고 법원에서 재판 중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서 근로자의 정의는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고 돼 있다. 이 조항의 핵심부분 중 하나가 ‘종속성’이다.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종속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근로자성을 얻지 못한다.
신의철 변호사는 “현장의 노동관계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했던 1970년대 전태일 시절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며 “우리가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사용자와 노동자라는 일면적 관계에서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구조가 업종마다 다르게 만들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돌봄노동만 하더라도 이용자-돌봄노동자-센터-정부로 이어지는 다층적 구조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변호사는 “기존의 단면적 관계를 전제로 하여 사용자에 대한 노동자의 종속성만을 기준으로 근로자성을 파악하는 것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노동법의 보호영역 밖으로 내치는 것에 다름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실에 맞게 법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 방향은 포괄범위를 확대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입법센터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제시했다.
근로기준법 제2조(정의) ①
1. “근로자”란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사업을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 다만, 자원봉사인 경우를 제외한다.
‘근로자’의 정의를 이렇게 바꾸면 계약의 형식에 관계 없기 때문에 특수고용노동자까지 포괄할 수 있다. 임금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치 자원봉사로 인식돼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했던 교육생이나 무급인턴도 포함된다. 이들을 통해 다른 노동자를 고용할 비용을 줄였거나 이익을 얻었다면, 당연히 ‘근로자’로서 임금을 요구할 권리가 있게 된다.
플랫폼 노동은 각종 산업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노동자는 있는데 이 노동자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플랫폼 사업자는 사용자가 아니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에서 사용자의 정의는 “사업주 또는 사업 경영 담당자, 그 밖에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를 말한다”고 돼 있다. 국민입법센터는 근로기준법을 바꾸면서 플랫폼 사업자를 사용자로 규정함으로써, 플랫폼 노동자를 ‘근로자’로 포함시키는 조항을 넣자고 제안했다.
근로기준법 제2조
<신설>2의2. ‘플랫폼 사용자’란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제2조제4호에 따른 이동통신단말장치의 플랫폼을 통하여 물건의 수거·배달, 대리운전, 승차 업무를 의뢰받아, 그 업무를 수락하는 타인(이하 ‘플랫폼 노동자’라 한다)으로 하여금 노동을 제공하게 하는 자를 말한다. 다만 플랫폼 노동자의 업무 수락 여부나 그 비율이 플랫폼 사용자의 플랫폼 접속 허락, 업무 수행 대가 결정 및 업무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한한다.
국민입법센터는 이와 함께 현행 노동관계법에 존재하는 각종 ‘예외 조항’을 대거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으로 4인 이하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 수습 3개월 이내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90% 지급가능 조항, 장애인에 적용되던 최저임금 지급 예외조항 등을 재검토해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단시간 노동자들에게 제외돼 있던 주휴수당, 연차, 무기계약직 전환 등을 보장하는 내용으로 근로기준법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노조,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근로기준법이나 최저임금법은 노동자가 누려야 할 권리의 ‘최저’를 보장할 뿐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월급을 올리거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중요한 방법은 자신의 조직을 만들고 사용자와 마주앉아 단체교섭을 하는 것이다. 법적으로 당연한 권리로,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라 부르며 보장하고 있다.
현행 노조법상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라고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개념에 비해 범위가 비교적 넓게 규정돼 있다. 실업자나 해고자도 포함되고 근로기준법에서 주요 쟁점이 되는 ‘종속성’도 더 넓게 인정되는 편이다.
폭넓다고 해도 ‘누구나’ 노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는 노동자이지만 계약상에서 ‘사업자’로 등록되는 특수고용이나 플랫폼노동 같은 새로운 노동형태의 경우, ‘노조할 권리’가 곧바로 보장되지 않는다. 끝내 법원에서 판결을 받고 나서야 합법적 노동조합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 시대 가장 주목받았던 노동조합 중 하나였던 택배노조 조합원이 ‘노조법상 근로자’라는 법원의 첫 판단은 2019년에야 나왔다.
특수고용이라는 형태가 등장한지 20년이 넘었다. 새로운 업종에서 새로운 형태의 계약이 등장하면 노조를 만들고 법원의 판결을 받고 교섭을 하는 데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린다. 사회적 비용이 그만큼 많이 들고 당연히 노동자의 권리도 미뤄진다.
“근로자”라 함은 계약의 형식에 관계 없이 타인의 사업을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거나 제공하려는 자를 말한다. 다만, 자원봉사인 경우를 제외한다. 사업주이지만 자신의 사업 내용이 다른 사업주로부터 지배적 영향을 받는 경우, 다른 사업주에 대한 관계에서는 “근로자”로 본다.
이렇게 법을 바꾸면 어떨까. 신의철 변호사는 “타인의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간단히 규정하고, 사업주의 경우에도 다른 사업주로부터 지배적 영향을 받으면 근로자로 보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되면 특수고용노동자나 플랫폼노동자를 포괄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내 월급을 정하는’ 사람과 교섭할 수 없는 이상한 현실
법을 바꾸든 법원에서 판결을 받아서 노동조합을 설립한다고 해도 더 험난한 난관이 존재한다. 도대체 ‘내 월급을 정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다.
나의 월급을 올리려면,<br style="box-sizing: border-box; text-size-adjust: none;" />하청기업의 노동자는 누구에게 말해야 할까?<br style="box-sizing: border-box; text-size-adjust: none;" />돌봄노동자는 누구에게 말해야 할까?<br style="box-sizing: border-box; text-size-adjust: none;" />택배노동자들은 누구에게 해야 할까?
최근의 고용관계는 과거의 ‘사장-직원’이라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사내하청 노동자와 원청 사이에 하청업체가 있고 돌봄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인건비는 정부에서 나오지만 법적 사용자는 각종 돌봄센터다. 택배기사와 택배회사 사이에는 집배점이 있고 플랫폼 노동자들의 수수료나 노동환경을 결정하는 플랫폼 기업들은 법적으로 사용자로 규정되지 않는다.
신의철 변호사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상당수는 구조적으로 사업의 이익을 가장 많이 가져가는 상위 사용자와 여러 방법으로 차단돼 있고 한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자가 여럿 있는 경우도 많다”며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의 개념을 넓히는 법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 변호사는 “계약의 유무와 형식에 상관없이 사업의 필수 부분을 운영하기 위해 타인으로부터 노동을 제공받거나 그로부터 이익을 취하며, 타인의 노동의 내용과 방식, 근로조건 결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는 자를 모두 사용자로 규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개념을 ‘공동사용자책임’이라고 말했다. 간단하게는 하청기업 사장도, 원청 사장도 모두 사용자로 규정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모회사도, 자회사도, 손자회사도 모두 사용자가 되면 재벌기업의 경우 재벌총수가 계열사 노동자의 사용자가 된다. 지금처럼 실질적 영향력을 갖는 재벌총수를 찾아가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해도 ‘법적 책임이 없다’는 허망한 답을 듣는 상황을 없애는 방안이다. 돌봄노동자의 경우 법적으로 계약을 맺고 있는 센터 뿐 아니라 임금을 실질적으로 제공하는 정부와 ‘노정교섭’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신의철 변호사는 “미국의 공동사용자책임을 참고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공동사용자책임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채택한 개념이다. 기존에는 ‘근로자’와 ‘사용자’를 판단할 때 한국의 종속성처럼 ‘통제기준’을 적용했는데, 오바마 정부 이후 ‘경제적 실체 기준’을 채택해 근로자가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사용자인지 여부를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즉, 근로자의 수입이 어디에서 나오는지가 중요하고, 그 수입을 제공하는 사업주는 모두 사용자라는 말이다.
공동사용자책임을 도입할 경우, 모든 사용자들에게는 근로조건을 보장할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우고 사용자로서 단체교섭을 할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게 신 변호사의 설명이다. 즉, 노동자들이 ‘나의 월급을 결정하는 사람’과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 변호사는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의 정의를 개정해 이를 실현하면 하자고 제안했다. 앞서 살펴본 ‘근로자’ 정의를 확대하면서 ‘사용자’의 정의를 확대하면 노사 단체교섭의 범위가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법적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의해 사회적 논란을 줄일 필요도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사용자”란 사업주(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근로자로부터 노동을 제공받는 자를 말한다) 또는 경영 담당자, 그 밖에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위하는 자를 말한다. 근로자의 노동의 제공 여부 및 노동조건의 결정에 관하여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업주가 둘 이상인 경우에는 계약의 존재 여부와 그 형식에 관계없이 이들을 모두 “사용자”로 본다. 다음 각 목의 경우를 포함한다.
가. 사업 운영에 상시 필요한 노무를 파견, 하청, 위탁 등 간접적 방식을 통하여 제공받는 자
나.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2조 2호의 가맹본부. 단, 같은 법 제3조 제1항의 소규모 가맹본부를 제외한다.
다. 근로자로부터 직접 노무를 제공받는 사용자에 대하여, 주식 소유, 임원 겸임 등 경영 전반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 사용자의 사업 내용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
라. 근로자로부터 직접 노무를 제공받는 사용자에 대하여, 계속적 거래관계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어 그 사용자의 영업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자
사장님들을 노사교섭에 나오게 하는 방법
나의 월급을 결정하는 '진짜 사장'을 법으로 규정할 수 있다. 하지만, 교섭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하청노동자, 돌봄노동자, 플랫폼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들은 하나의 사업장에 속한 노동자의 숫자는 적지만 업종별로 모이면 상당한 규모가 된다. 또한 이런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노동환경은 자신이 계약하고 있는 사업장에서 결정될 수 없기도 하다. 때문에 이들 노동자들은 한 회사나 사업장의 범위를 넘어 업종별로 노동조합을 구성하고 있다. 택배노조, 라이더노조, 요양보호사노조 등이 최근 늘어나고 있는 업종별 노동조합들이다.
이들과 교섭해야 할 사장들도 대부분 단체를 구성하고 있다. 한국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업종은 ‘협회’나 ‘연합회’가 있다. 몇 년 전 정부의 ‘유치원 공공성 강화’ 정책에 반발하며 집단행동을 예고했던 한국유치원총연합회나 어린이집 집단휴업을 주도했던 한국가정어린이집연합회 같은 단체가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어떤 업종이든 사업주들은 단체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정부가 운영하는 각종 위원회에 참여해 정책 결정에 관여하거나 국회에 입법로비를 한다.
김정엽 국민입법센터 연구기획팀장은 사용자단체의 개념을 확장해 이런 단체들에게 교섭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률상 법정단체로 구성돼 활동하는 사용자들의 단체나 정부의 정책 결정을 위한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는 사용자들의 단체는 물론, 사용자단체가 노동조합의 상대편인 만큼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향상 활동을 저해하는 사용자들의 집단까지 사용자단체로 간주하자는 것이다.
돌봄노동자기본법 제정법률안
제28조(사용자단체에 관한 특칙) 돌봄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용자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단체로서 다음 각 호 중 어느 하나의 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그 목적과 기능, 명칭에 관계없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제3호의 사용자단체로 본다.
1. 사용자들에 대하여 돌봄노동자의 고용 또는 노무관리에 관한 지침을 정하거나 기준을 제시하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
2.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위원회(위원회, 심의회, 협의회 등 명칭을 불문하고 행정기관의 소관 사무에 관하여 자문에 응하거나 조정, 협의, 심의 또는 의결 등을 하기 위한 복수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합의제 기관을 말한다. 이하 같다)에 그 대표자 또는 구성원을 참여시키는 행위
3. 돌봄노동자를 조합원으로 하는 노동조합과 노동조건에 관하여 협의하거나 노동조합의 조직 또는 활동에 개입하거나 간섭하는 행위
위 조항은 국민입법센터가 조문한 돌봄노동자기본법의 한 부분이다. 김 연구기획팀장은 이 조항을 노동조합법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노동조합법을 이런 취지로 개정하면 중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데 큰 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들어 산업단지나 공업단지의 소규모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나 근로기준법 적용의 사각지대에 놓인 4인 이하 사업장의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을 만들고, 그들의 사업주가 속한 단체와 교섭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사용자단체의 개념을 확장하는 것과 더불어 업종별로 노동자대표와 사용자단체가 교섭을 한 결과를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에게도 적용시키는 방안도 있다. 단체협약 내용을 사용자단체에 속한 모든 기업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이를 ‘만인효’라고 한다. 이미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는 노사교섭의 중요한 개념으로 적용되고 있다. 최근 노동계에서는 이런 방식, 즉 기업을 벗어나 업종별로 진행되는 ‘초기업교섭’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초기업교섭이 자리 잡아가는 업종이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건설현장에서 개벌로 이뤄지던 교섭이 지역, 전국범위에서 이뤄지고 있고 타워크레인이나 레미콘의 경우 전국적으로 교섭을 통해 표준계약 조건이 정해지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이나 플랫폼노동의 경우 초기업교섭은 꽤 효과적인 대안이다. 노동조합은 있는데 사용자가 불분명했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라이더들이 속해 있는 서비스일반노조와 우아한청년들이 플랫폼 배달업계 첫 단체협약을 맺기도 했다. 택배산업의 경우 사회적 협의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노사는 물론 소비자, 정부, 정당까지 참여하면서 교섭의 결과가 곧바로 법제정으로 이어졌다.
초기업교섭은 노동자들에게만 좋은 제도는 아니다. 오히려 업계의 무분별한 경쟁을 완화하는 효과도 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수기 수리기사를 예로 들면서 “시장에서 지배적인 기업이 있으면 수수료 덤핑을 하는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들은 이걸 못따라서 힘들어 한다”며 “업종별로 교섭을 하게 되면 노동조건을 맞추게 되면서 출혈적 경쟁을 안 해도 되는 시장경쟁 질서를 공정하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과 제도가 만들어진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사용자단체들을 교섭으로 이끌어내는 정부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정희 연구위원은 업종별 단체들이 교섭을 회피할 경우 정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실제 프랑스의 경우 노조가 교섭을 요청했을 때 기업들과 업종별 단체들이 교섭대표를 정하지 않으면, 정부가 사용자 단체나 대표적인 기업을 교섭상대로 지정하기도 한다”면서 “만약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정부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기본이고 각종 패널티를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초기업교섭을 지역단위에서 활성화 해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노동조합법 중 ‘지역적 구속력’ 조항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임기환 민주노총 제주본부장은 제주지역에서 협동조합 공동교섭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제주지역에 농협, 축협 등 23개 협동조합에 4천여명의 노동자가 있는데, 이 중 2/3를 조직하게 되면 지역적 구속력 조항으로 단체협약 내용이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 본부장은 “지역차원의 업종별 교섭을 하게 되면 지역 이슈가 되기 때문에 지방정부가 나몰라라 하기 어렵다”면서 “지자체나 지방의회에 가능한 범위에서 제도개선까지 이끌어 낼 수 있게 된다”고 전했다.
복잡해지는 산업구조, 노사교섭도 시대에 맞게 변할 때
이정희 연구위원은 “우리나라가 초기부터 기업별 교섭 중심 체제가 아니었다”면서 “산업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노사교섭이 기업단위에서 힘을 발휘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박정희 시절 잠시 산업별 노조 체제가 검토 됐는데, ‘어떻게 하면 잘 통제할 수 있느냐’의 관점이었다”면서 “결국 기업별 체제가 통제에 유리하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전두환 시기로 가면서 완전히 기업별 노조 체제로 굳어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근로기준법은 1997년 전면 재개정됐다. 이제 20년이 넘게 흘렀다. 그동안 산업구조는 상당한 변화를 맞았다. 사장-직원’이라는 단순한 노사관계는 전통적 기업에서나 볼 수 있다. 오히려 전통적 고용구조를 갖고 있던 기업들도 하청, OEM, 외주용역 등의 간접고용이 늘고 있고, 특수고용이나 플랫폼 노동, 시간제 계약 등의 새로운 고용형태가 늘고 있다.
노동관계법이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이라면 변화된 상황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단순한 관계, 하나의 기업으로 갇혀있는 교섭을 확대해 실질적 교섭의 시대로 갈 필요가 있다. 사용자들이 단체를 만들어 법적으로 누릴 혜택은 다 누리면서 노동자들과의 교섭의무는 피하는 현실을 바꿀 필요가 있다.
갈수록 노동자의 권리 사각지대가 넓어지는 과거 시스템의 그늘에서 벗어날 때다. 그 중요한 출발은 노동자들이 실제 자신의 임금과 노동환경을 결정하는 사용자와 마주 앉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코로나시대의 노동
코로나19 펜데믹은 한국사회의 노동을 둘러싼 불평등을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코로나 시대 노동의 불평등 문제를 현장과 전문가들을 광범위하게 취재하고, 국민입법센터와 함께 법제도적 대안을 찾아봤습니다. 이번 시리즈 기사는 현장의 현실을 잘 드러내는 것과 함께 구체적인 ‘법 개정안’ ‘법 제정안’을 제시함으로써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해법’을 도출하는 데 나아갔습니다.
총 5분야, 10개의 기사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4개 분야는 하나의 기사로 갈음하고,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사회의 주요 문제로 떠오른 ‘돌봄’에 집중해 시리즈 내의 시리즈로 6개의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① 아프면 쉬어라? 한국인만 아파도 출근한다
② ‘정리해고자’ 성기훈은 456억에 목숨 걸지 않을 수 있었다
③ 새벽배송 경쟁, 야간노동 ‘헬게이트’ 열고 있다
④돌봄국가책임제와 돌봄노동
④-1 필수노동이라 소중해? 돌봄노동자 월급이나 빼앗지 마세요
④-2 돌봄센터 사장님 어떻게 3년만에 빌딩을 뽑았나
④-3 30분 덜 일하게 하더니, 수십만원 덜 주더라
④-4 밤새 일했는데, 휴게시간이었다고요?
④-5 돌봄노동자는 때리면 맞고, 성폭력도 참아야 합니까?
④-6 돌봄 노동자가 살아야, 좋은 돌봄이 가능하다
⑤ 내 월급을 정하는 진짜 사장을 만나자
※ 이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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