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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지만 노동자 아닌 이들의 노동권 되찾기

[2022 더 왼쪽으로] 진짜 사장 나와라 ①

대통령선거가 4개월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누가 돼야 한다’는 이유보다 ‘누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이유가 유독 넘쳐나는 요즘이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 등으로 평가절하 된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민중의소리는 이번 대선이 한국 사회가 더 진보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

‘2022 더 왼쪽으로’는 대선에서 주목할 만한 진보적 대안을 조명해보는 기획이다. 연말까지 몇 차례에 걸쳐 독자들에게 전할 의제와 주장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린다.

네번째 기획으로 ‘진짜 사장 나와라’ 시리즈를 3개의 기사로 보도한다.

① 노동자지만 노동자 아닌 이들의 노동권 되찾기
② “우리랑 계약한 건 아니잖아?” 책임회피하는 ‘진짜 사장’들
③ 일하는 모든 사람이 ‘진짜 사장’과 마주앉는 확실한 방법

짧게는 1055일, 길게는 8년. 대리운전 기사들이 노조할 권리를 보장받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7월 17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대리운전노조에 노조설립신고증을 발급했다.

대리운전노조는 2012년 출범했다. 2005년 대구 지역노조를 시작으로 대리기사들이 전국에서 모였다. 노조를 만들었다고 끝이 아니다. 고용노동부에 설립신고를 하고 신고증을 받아야 한다. 노조법상 노동부는 3일 이내 신고증을 발급해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신고증을 내주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법외 노조 신세는 계속됐다. 2017년 8월 전국노조 변경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9년 5월 새 노조로 설립신고 해 지난해 7월에야 신고증을 받았다. 노조 출범 8년 만에, 조직변경 신청 1000일이 지난 후였다. 그 사이 대리운전 수수료는 2~30%까지 오르고 보험료 등 각종 비용은 기사들에게 전가되는 등 불공정 계약이 생계를 위협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리운전 노동자들에 대한 실효성 있는 생계지원과 노동기본권 보장, 대리운전보험 정상화, 고용보험 적용, 대리운전업법 제정 등 생존권 보장이 제대로 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김철수 기자

헌법에 명시된 노동삼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받기 위해 대리기사들은 먼 길을 돌아왔다. 특수고용노동자(특고)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일하지만, 고용계약이 아닌 위탁계약을 맺었다는 이유로 개인 사업자로 취급된다.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이하 노조법)이 적용되지 않는, 노동법 바깥의 비정규·불안정 노동자들이다.

사용자가 사라진 고용 형태도 나왔다. 플랫폼을 통해 일거리를 얻는 플랫폼 노동이다. 플랫폼 기업은 서비스와 수요자를 이어주는 중개자를 자처한다. 사용자의 지휘·감독은 알고리즘이 대신 맡았다. 기업들은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고 단물만 취하는 법을 나날이 발전시키고 있다. 대리기사는 대표적인 플랫폼 노동자기도 하다.

현행법상 노동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는 노동자다. 그러나 법은 여전히 전통적인 고용관계로 노동자를 규정하는 탓에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대리기사들처럼 당사자들의 오랜 투쟁이 있어야 그나마 노동삼권을 보장받는 실정이다.

이에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도록 노동자 정의를 확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주환 대리운전노조 위원장은 “노동자로서 삶을 살아가고 노동 기본권을 향유하는데 오히려 기존 법이 장애가 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대리기사, 레미콘 차량 기사, 방송작가, 방과 후 강사 등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을 만나 노동자성 인정 투쟁 과정에 대해 들었다. 법의 공백 속에 스스로 권리를 되찾은 이들이다.

‘한 명의 사용자를 위해 일한다’ 깨뜨린 대리기사들

대리기사는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았다. 노조할 권리를 보장받았다는 뜻이다. 대리기사의 노동자성 인정은 ‘노동자가 한 명의 사용자를 위해 일한다’는 기존의 전속적 관계를 깨고 ‘노동자가 여러 명의 사용자를 위해 일한다’는 새로운 관계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리기사는 여러 업체의 콜을 받아 운전한다. 대리운전업의 운영구조 때문이다. 업체들은 해당 지역의 콜을 감당하기 위해 하나의 프로그램을 사용하며, 해당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기사는 소속 업체와 상관없이 다수 업체의 콜 중 본인이 선택해 일한다. 이 시장에 플랫폼 기업인 카카오모빌리티가 뛰어들어 대표 사업체로 자리잡았다.

이런 시장 구조는 예전부터 대리기사가 노동자로 인정받는데 걸림돌이 됐다. 대리운전노조가 2017년 8월 전국택배연대노조와 함께 노동부에 노조 신고했을 때 택배 노조만 신고증이 나왔다. 전통적 특수고용노동자인 택배기사는 한 대리점의 일만 한다.

대리운전노조가 합법 노조가 돼 카카오모빌리티에 단체교섭을 요구했을 때도 전속성 등을 걸고넘어지며 자신이 교섭 대상인지 의문이라고 거절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한국도로공사, 한국교통안전공단, 한국도로공사서비스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류긍선 카카오모빌리티 대표가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공동취재사진

그러나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는 대리기사를 노조법상 노동자로 재확인했다. 여러 업체 프로그램을 사용한다고 해도 노동자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중노위는 “카카오모빌리티의 주장대로 특정 사업자의 관계만으로 한정해 전속성을 해석한다면 다양한 근로시간 및 고용형태가 존재하는 현대사회에서 개별적 사정으로 여러 개의 파트타임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도 특정 사업자와의 관계에서는 전속성이 부인되는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된다”고 지적했다.

또 실질적인 노무제공 관계를 따졌을 때 교섭할 필요성이 크다면 전속성과 소득 의존성이 강하지 않더라도 노조법상 노동자로 부정할 것은 아니라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기도 했다.

대리운전노조는 ‘진짜 사장’인 카카오모빌리티와 단체교섭을 앞두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중노위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냈지만, 국정감사에서 플랫폼 기업의 갑질 문제가 다뤄지는 등 비판 여론이 일자 결국 교섭에 응했다.

카카오모빌리티, 전국대리운전노조 성실교섭 선언식ⓒ전국대리운전노조 제공

김 위원장은 산업·직종별 특성이 뚜렷한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경우 단체협약이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수고용노동자에 맞는 근로기준법을 만들기 위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어려움을 노사가 만나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할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를 상대로 장기간 투쟁해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다음, 카카오모빌리티에 단체교섭을 요구한 건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의 현실에 기반한 선택이었다고 김 위원장은 말했다.

“일반 노동자는 사업장에서 시작해 지역에서 모여서 정부랑 싸우는데, 저희는 정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권리를 바탕으로 힘을 키워서 개별 사용자에게 갔다. 사업장 울타리 너머에 있다보니 기업별 교섭보단 전체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담을 수 있는 넓은 수준의 교섭이 필요했다.”

법적 투쟁 대신 조직력 키운 레미콘 차량 기사들

대리기사들이 법적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아 단체교섭에 나섰다면, 레미콘 차량 기사들은 조직력을 키워 단체교섭을 이끌어냈다.

레미콘 차량 기사는 원래 레미콘제조사 직원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부터 사 측에서 기사들에게 법인 차량을 팔고 운반위탁계약을 맺기 시작했다. 외주화의 일환이다. 현재는 80%가 위탁계약을 맺은 지입차주고 20%가 법인 차량을 운전하는 직원이다.

정해진 물량을 시간 안에 처리해야 하는 레미콘 차량 기사는 레미콘제조사와의 종속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레미콘이 온도에 따라 응고되기 때문에 1시간 반~2시간 안에 건설현장으로 운송해야 한다.

미리 조별로 지정된 시간에 출근해 대기하다가 배차를 받아 움직인다. 레미콘제조사가 지시한 납품처(건설현장)에 운송해야 한다. 안정적인 운송을 위해 다른 제조사와 일할 수 없도록 했다. 운송을 거부할 경우 배차정지라는 징계성 조항도 있다.

이 같은 종속성을 인정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는 2001년 레미콘 기사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했다. 일반 노동자처럼 해고·퇴직금 등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취지다.

건설노조 울산건설기계지부가 울산 남구 북항 에너지터미널 건설현장 앞에서 총파업 결의대회를 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뉴시스

하지만 2006년 대법원에서 근로기준법상, 노조법상 모두 노동자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 나오기도 했다.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좁은 기준에 번번이 가로막힌 것이다.

레미콘 차량 기사의 노동자성 인정에서 문제가 된 건 1억 5천만 원 상당의 레미콘 차량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가의 작업도구를 가졌으니 독립사업자란 취지다. 장현수 울산건설기계지부장은 “목수는 망치 하나로 일당 20만 원 받는데 우린 1억 5천짜리 차가 있으면서 할부 내다가 인생 종 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레미콘 차량 기사들은 노동자성 인정 투쟁보단 조직력을 키우는 쪽을 택했다. 한 제조사에 30명가량의 기사가 전속돼 집단으로 일하다보니 단결력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레미콘 차량 기사들은 2000년대 초부터 노조 활동을 해왔다.

장 지부장은 사 측을 상대로 열심히 투쟁하고도 단체협약을 위한 투쟁까진 생각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다 다른 건설기계노조가 중앙임금단체협약 등을 통해 급격히 성장하는 것을 보고 단체협상 투쟁에 나서게 됐다. “특수고용노동자는 노조를 지키는 것도 어려운 현실”이라고 장 지부장은 말했다.

지난 9월 울산건설기계지부(지부장 장현수) 레미콘지회가 울산레미콘산업발전협의회(회장 이중춘)과 첫 단체교섭을 맺는 조인식을 진행했다.ⓒ건설노조

울산뿐 아니라 부산, 경남, 경주 일부 지역까지 다같이 공장을 멈춰 세웠다. 대체차량도 투입하지 못하게 되자 결국 사용자 단체는 첫 지역교섭에 나섰다.

그렇게 민주노총 건설노조 울산건설기계지부 레미콘지회는 지난 9월 울산레미콘산업발전협의회와 첫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사용자단체와의 지역교섭은 9년 역사상 처음이다.

장 지부장은 “노동법을 우회했다기보단 정면돌파했다. 그동안 특수고용노조가 단협투쟁을 너무 소홀하게 보지 않았나 싶다. 사용자를 넘어서기 위한 유일한 무기다. 공장 담벼락 넘어서 단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지부장은 지역 전체 건설사를 상대로 다른 건설기계노동자들과 함께 지역 단협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방송작가 부당해고 판정나왔는데, 행정소송 맞선 방송국

방송구성작가는 대리기사와 레미콘 차량 기사가 부럽기만 하다. 지난 10월 중노위에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됐지만, 사용자인 MBC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에 나섰기 때문이다.

관계자가 지나가는 말로 ‘대법원까지 간다’라고 했을 때 암담했다고 김한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 지부장은 말했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 돈도 많이 든다던데 저희는 돈이 없다.” 그러면서 기자에게 요청했다. “방송국 취재 좀 해달라. 자신들은 보도되지 않으니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는다.”

ⓒ방송작가유니온

방송작가유니온의 조합원은 보도, 시사·교양, 예능, 라디오 등 방송구성 작가들이다. 방송작가하면 창작자란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자유롭게 원고를 작성해서 결과물을 넘기는 작가는 드라마뿐이다. 나머지는 피디가 시키는 대로 한다. 작가들은 보통 방송사와 6개월~1년 단위로 위탁계약을 맺고 회당 비용을 받는다.

보도국 작가와 막내 작가의 종속성이 가장 높은 편이다. 보도국은 매일 생방송이라는 특징이 있어 일정 시간에 맞춰 출근하고 정해진 노트북에서 사내 프로그램을 사용해 원고를 올리고 피디의 감수를 받는다. 그 와중에 데스크 수정 지시는 계속된다. 막내 작가는 자기 글조차 쓰지도 못한다. 피디나 선배 작가의 지시에 따라 일한다. 보조하는 역할이다.

김순미 사무국장은 “방송작가는 처음부터 노동자였다. 그런데 방송국에서 작가를 싸고 쉽게 쓰려고 프리랜서란 이름으로 계약한 것뿐”이라고 꼬집었다.

위탁계약을 하다보니 개편을 이유로 하루아침에 잘리는 일이 다반사다. 한 프로그램에서 10년을 일한 작가가 교체, 즉 해고 소식을 다른 이를 통해 듣기도 한다. 열심히 준비하고도 방송이 안 나가면 돈을 못 받는다. 제작비가 송출 기준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노조가 출범하기 전엔 구두계약이 기본이었다.

ⓒ방송작가유니온

방송작가는 지난 4월 중노위에서 처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았다. 김순미 국장은 “노조 처음에는 노동자성을 법정에서 따져볼 생각도 못 했다. 당사자가 나서야 하는 문제가 컸다”고 말했다.

이전과 달라진 건 없다. 방송국들은 단체교섭을 회피하고 있다. 특히 이번 중노위 판정에서 진 MBC는 행정소송으로 맞섰다. 첫 공판기일에서 해당 작가가 대학원에 다녔다는 것으로 꼬투리를 잡았다고 김한별 지부장은 전했다.

“재판 첫 기일이 9개월 만에 열렸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게 제일 힘들다. (지노위부터 대법원까지) 사실상 5심제다. 돈과 시간이 없는 노동자에게 너무 불리하다. 다 같이 하겠다고 마음먹기가 쉽지 않다.”

방송국에는 점점 특수고용직이 늘고 있다. 정규직이었던 직군도 프리랜서로 넘어가고 있다. 한 지역 방송사는 행정 직원도 프리랜서로 뽑고 있다고 김순미 국장은 말했다. 방송국들은 지난 4월 시작된 근로감독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정부가 고용한 특수고용노동자, 방과 후 강사

학교 방과 후 강사는 모범 사용자여야 할 정부가 고용한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점에서 짚어볼 필요성이 크다.

강사는 학교와 위·수탁 계약을 한다. 계약 기간은 보통 1년. 학기별로 하거나 분기별로 할 때도 있다.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2월 이맘때면 면접 보러 다니기 바쁘다. 16년 차 강사인 김경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방과후강사노조 위원장도 1년에 5~10곳 이상 서류를 접수하고 면접을 본다. “지금까지 면접을 100번 이상 봤다.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다.”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민주노총 방과후강사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노동자대회을 열고 방과후 수업 재개와 전국민고용보험 적용, 노조 필증 교부 등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김철수 기자

강사들은 학교 지시에 따라 일한다. 수업 장소, 시간, 요일 모두 학교가 정한대로 수업한다. 휴강·보강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수업 내용과 교재교구만 강사의 재량이다. 1년에 한두 번 공개수업을 통해 교직원·학부모·학생의 만족도 조사를 하고 결과가 재계약 때 반영된다. 이진욱 공공운수노조 방과후학교강사지부장은 “학교가 쥐락펴락하는데 어떻게 개인 사업자고 사장이냐”고 지적했다.

강사들이 지목한 ‘진짜 사장’은 학교가 아니라 교육청이다. 계약 당사자는 학교지만, 학교를 움직이는 건 교육청 지침이기 때문이다. 17개 시·도교육청은 매년 ‘방과 후 학교 길라잡이’를 낸다. 길라잡이에는 방과 후 수업에 대한 개념, 운영방식과 절차, 서식 등이 자세히 적혀있다. 방과 후 수업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는 현실에서 교육청 지침은 곧 법이다.

그러나 교육청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길라잡이는 말 그대로 지침일 뿐 방과 후 수업은 모두 학교 재량이라는 것이다. 실제 계약 주체도 학교라며 슬쩍 발을 뺀다. 학교는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교육청으로 책임을 돌린다. 수강료를 내는 학부모가 사장이라는 학교 관계자도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방과후학교강사지부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방과후 학교 업체위탁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뉴스1

다단계 하청 구조로 가면 강사의 노동환경은 더 열악해진다. 학교가 민간위탁한 업체와 계약하는 방식이다. 업체와는 근로계약, 위탁계약 등 형태가 다양하다. 업체는 교육콘텐츠에 대한 전문성보단 주로 운영을 책임진다. 이에 A 학교와 계약하면서 기존에 학교와 계약했던 강사들을 승계한다. 업체는 자신들이 사용하는 교재교구를 쓰도록 강요하는 등 불공정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

교육청과 직접 위·수탁 계약을 맺는 강사들도 있다. 농산어촌 지역에서 강사 구하기 어려운 학교를 순회하는 이들이다. 교육청 예산으로 임금을 준다. 김 위원장은 “순회 강사의 경우 종속성은 더 높아진다. 전체 인원의 3~40%는 된다”고 말했다.

“요새는 학교 업무 경감을 위해 교육청이 관련 행정 업무를 해준다. 누가 봐도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가 분명해지고 있다. 최근 교육청 교부금이 많아져 일부 지역에서 방과 후 수업을 무상으로 했다. 국가 재정으로 수업료까지 받았다면 개인 사업자라고 보기에 우습지 않나.”

서비스연맹 전국방과후강사노조는 지난해 9월 노동부로부터 477일 만에 노조설립신고증을 받고 교육청들을 상대로 단체교섭에 나설 예정이다. 지난 7월 중노위로부터 강사의 노동자성과 교섭요구를 인정받기도 했다. 오는 1월 경남교육청과 첫 단체 교섭을 앞두고 있다.

이 지부장은 “방과 후 수업도 공교육이다. 방과 후 수업도 행정절차에 따르고 회계담당 부서도 있고 길라잡이도 있고 교육개발원에서 연구도 하고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심의도 한다. 강사를 특수고용직으로 유지하는 건 공교육의 외주화“라고 꼬집었다.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노조할 권리를”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도록 노조법 제2조를 개정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현재 헌법 제33조 제1항의 노동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는 노동자다. 노동자는 노조법 제2조 제1호 정의상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 노조 활동을 하려면 이 정의에 부합하는 노동자여야 한다.

법원은 노조법상 노동자 판단 지표로 ▲소득 의존성 ▲계약의 일방성 ▲사업 수행에 필수적인 노무인지 ▲지휘·감독 관계 ▲보수의 노무 대가성 여부 ▲관계의 전속성과 계속성 등을 제시했는데, 법원 판단까진 당사자들의 지난한 투쟁이 뒤따라야 한다. 지표가 협소하게 해석되면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은 제외될 수도 있다.

이에 계약 형식과 상관 없이 타인의 사업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노동자로 추정하고, 이를 부인하는 사 측이 노동자 아님을 입증하도록 하는 안이 힘을 얻고 있다. 종속성을 판단하는데 필요한 자료 제출 부담을 누가 지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로 전환하자는 취지다.

고용 형태와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가 결사의 자유·단체교섭권 등 노동 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요구는 국제노동기구(IL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럽연합(EU) 등 국제기구의 일관된 태도다.

해외는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를 기존 노동법에 편입해 노조할 권리뿐 아니라 최저임금·근로시간 등도 보장받도록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플랫폼 종사자법을 통해 노동자가 아닌 제3 지대를 만드려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김주환 위원장은 “플랫폼 노동자를 겨냥한 회색지대 법안은 전례가 없다”며 “플랫폼 노동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기업에겐 사용자 책임을 면제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원들이 서울지방노동청 앞에서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쟁취, 대리운전노동자 생존권 사수 농성 투쟁 선포식'을 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뉴스1

참고ㅣ근로기준법상 노동자와 노조법상 노동자의 차이

노동법의 두 축인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은 노동자를 다르게 정의한다.

― 근로기준법 제2조
:‘노동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
― 노조법 제2조
:‘노동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으로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

두 법률의 입법목적이 달라서 노동자 정의에 차이가 발생했다. 근로기준법은 개별적 근로관계를 규율한다. 해고·근로시간·휴업수당 등 사용자가 지켜야 할 노동조건의 최저기준이 담겼다. 여기서 노동자는 국가의 보호 대상인 만큼 비교적 좁게 정의했다.

노조법은 집단적 노사관계를 규율한다.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삼권을 구체적으로 보장하고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막았다. 노사 자치를 위한 규칙을 정한 셈이다. 이때 노동자는 단결권 등을 보장할 필요가 있는 대상이다.

법원은 노동자성 판단에서 몇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은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 계약의 형식이 아니라 실제 종속적인 관계가 있었는지에 따라 판단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다음은 종속적인 관계를 판단하는 지표다.

―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 지표

다만 기본급, 근로소득세, 사회보장제도 등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노동자성을 쉽게 부정해선 안 된다고 대법원은 판시했다.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다는 게 이유다.

노조법상 노동자성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 판단 지표보다 완화된 기준을 적용했다.

다만 대법원은 전속성과 소득 의존성이 강하지 않다고 노조법상 노동자임을 부정해선 안 된다고 판시했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판단할 때 노조법상 노동자로는 인정하지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경제적 종속성은 강하지만 인적 종속성이 약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골프장 캐디, 학습지 교사, 요구르트 판매원 등이 대표적이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판단에서 인적 종속성에 대한 해석이 지나치게 좁다는 비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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