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사회적합의기구는 연구용역을 통해 합의안 이행을 위해 약 170원의 택배비 인상 요인이 있다고 판단했다. 택배사들이 택배비를 올려, 이 돈을 택배 노동자들의 작업환경과 처우 개선에 쓰라는 의미다.
택배업계 1위인 CJ대한통운도 택배비를 인상했다. 사회적합의기구 합의안이 나오기도 전인 지난 4월 CJ대한통운은 선제적으로 170원의 택배비 인상을 단행했다. 그리고 내년 1월 추가로 택배비 100원을 인상한다는 계획이다. CJ대한통운 측은 “인상되는 운임은 택배 근로자의 근로여건 개선, 첨단 기술 도입과 물류 서비스 개선을 위한 투자에 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택배기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전국택배노동조합은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의 과로사를 돈벌이에 이용하고 있다”며 오는 28일 총파업 돌입을 예고하고 있다. 사회적합의 이후 택배비 인상을 통해 오히려 택배사가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택배업계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은 올해 초 선제적으로 인상한 택배비 170원 중 56원(부가세 포함)을 분류인력 투입 비용(38원) 및 고용·산재보험료(18원) 명목으로 대리점에 지급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114원은 CJ대한통운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CJ대한통운이 처리하는 연간 택배 물동량이 18억건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대리점에 지급하고 있는 분류인력 투입 비용은 약 684억원(38원X18억건)이다.
반면 전체 택배기사 수가 약 2만2천여명에 달하는 CJ대한통운이 운용해야 하는 분류인력은 4,400명(5명당 1명꼴) 정도다. 최근 CJ대한통운도 총 4,300명의 분류인력 투입을 완료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 분류인력에 대한 인건비는 월 평균 180만원 정도로 한 달에 약 79억원(180만원X4,400명)이 든다. 분류인력을 1년 동안 운용하기 위해선 약 950억원의 비용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CJ대한통운은 사회적합의 이행을 위해 택배비 170원을 인상하고도, 약 266억원(28.0%)에 달하는 분류인력 비용을 택배대리점과 택배기사에게 떠넘기고 있는 셈이다. 분류인력 운영은 인력 충원과 관리부터 인건비 지급, 고용·산재보험 가입 등을 모두 대리점이 맡아 처리하고 있다.
한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 소장은 “분류인력 한 명당 월평균 180만원의 비용이 들어가는데, 실제 본사(CJ대한통운)가 지원하는 금액은 140~150만원 정도다. 매달 30~40만원 정도를 대리점에서 부담하고 있는 상황”며 “대리점에 분류인력 고용과 운영 등을 모두 떠넘긴 것도 모자라 분류인력 비용 일부까지 전가하고 있다. 사실상 본사는 사회적합의 이행과 관련해 아무것도 하는 게 없다”고 비판했다.
CJ대한통운이 일부 분류인력비용을 지급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집화수수료를 차감해 오히려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택배기사의 배송이 물건 전달의 마지막 단계라면, 집화는 배송의 시작 단계다. 판매자가 물건을 최종 소비자에게 배송하기 위해 택배사에게 물건을 전달하는데, 택배사 입장에선 이를 집화로 보는 것이다.
집화는 일종의 영업이다. 택배기사가 쇼핑몰 등의 거래처를 만들어 고정적으로 택배 물량을 확보하는 것을 말한다. 통상 집화를 많이 하는 택배기사는 상대적으로 배송을 적게 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배송 위주로 수익을 올리는 택배기사는 아예 집화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집화는 본사가 직접 거래처와 계약을 체결해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대리점과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들에 의해 이뤄진다. 관련 통계가 공개돼 있진 않지만, 대리점과 택배기사들이 개별적인 영업을 통해 확보하는 택배 물량이 CJ대한통운 전체 물량의 약 80%에 달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집화 단가 차감이 택배기사들의 수익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집화를 통한 수익은 택배기사가 거래처로부터 물량을 받아오는 단가에 따라 결정된다. 일일 발생하는 택배 물량이 많은 거래처일수록 택배 단가는 낮아진다. 반대로 물량이 적으면 단가는 높아지는 식이다.
택배기사는 집화 단가 구간마다 정해진 수수료율을 적용받는다. CJ대한통운의 ‘2022년 집화수수료 TABLE'을 살펴보면 ▲1,600~1,699원까지는 14% ▲1,700~1,999원까지 15% ▲2,000~2,099원까지 16% ▲2,100~2,199원까지 17% ▲2,200~2,299까지 19% ▲2,300~2,399원까지 20% ▲2,400~2,499원까지 21% ▲2,500~2,599원까지 23%..... ▲9,000원 이상 39%의 집화수수율을 적용한다.
택배업계와 택배노조의 설명을 종합하면 CJ대한통운은 지난 9월부터 ‘사회적합의 이행에 따른 비용 지출’ 명목으로 집화 단가를 건당 57원씩 차감했다. CJ대한통운의 집하단가 차감은 택배기사에게 돌아가는 집하수수료를 감소시킨다.
택배기사 A씨가 거래처인 B쇼핑몰에서 건당 2,500원에 집화를 해 왔다고 가정해 보자. 기존에 A씨가 받아야 하는 집화수수료는 23%인 건당 575원이다. 하지만 CJ대한통운이 집화 단가를 57원 차감함에 따라 A씨가 가져온 택배의 집화 단가는 2,443원이 된다.
집화 단가가 줄며 A씨가 받게 될 집화 수수료율이 23%에서 21%로 줄어든다. 결국 수수료는 575원에서 62원 줄어든 513원이 된다. 하루 100건을 집화하는 택배기사라면 하루 6,200원, 월 10만원 이상의 수입이 줄어드는 꼴이다.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 관계자는 “CJ대한통운은 택배비 인상 이후 분류인력비용 명목으로 일부 비용을 지급하고 있지만, 택배기사들의 집화수수료까지 건드려 자신들의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다”면서 “결국 56원을 주고 62원을 떼가는 셈이다. 택배비를 인상해 택배사들의 배만 불리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CJ대한통운은 사회적합의로 인해 택배비를 인상한 올해 2분기부터 영업이익이 급증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164억원 정도였다. 하지만 택배비를 인상한 2분기 영업이익은 525억원으로 3배 이상 급증했다. 또 집화 단가를 차감한 3분기에는 영업이익이 624억원까지 증가했다.
이 관계자는 “집화 위주로 수익을 올리던 택배기사들의 수익은 택배비 인상 이후 되려 월 100만원 이상 감소하기도 했다”면서 “택배비 인상으로 경쟁사에 거래처까지 빼앗기면서, 대리점 운영에 대한 어려움을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CJ대한통운 측은 이 같은 문제 제기에 대해 답변을 피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답변 드릴 수 있는 내용이 없다”면서 “회사는 내년 1월 사회적 합의의 완전한 이행을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택배기사들의 분노도 극에 달했다.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는 23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한 결과 조합원 93.6%가 찬성하며 총파업을 가결했다. 이에 따라 택배노조는 오는 28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택배노조 “CJ대한통운이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해 맺은 사회적 합의’를 돈벌이에 이용하고 있다”면서 “택배요금을 인상하고 택배노동자들의 수수료를 삭감하면서 자신들의 배만 채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는 이번 총파업을 통해 ‘택배비 인상금액의 공정한 분배’ 외에도 ▲ 30년간 단 한 번도 인상 안 한 급지 수수료 인상 ▲ 노예계약서인 부속합의서 철회 ▲ 산업재해 유발하는 저상탑차 대책 마련 ▲ 노동조합 인정 등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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