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서울 여의도에서는 2022년 여성혐오 대통령 선거 규탄시위 '샤우트아웃'이 열렸다. 20·30대 여성들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 모여 "우리는 여성혐오에 투표하지 않겠다"며 거대 양당이 내세운 여성가족부 개편, 성폭력 무고죄 신설 공약 등을 비판했다.
'샤우트아웃'은 상설 조직이나 단체는 아니다. 전업 활동가를 두고 있지 않고 조직의 체계도 갖추고 있지 않다. 일종의 '수다 모임'이 집회를 기획했다.
"지난 4일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이수정 교수 영입에 반대하는 차별과 혐오 옹호자들의 시위가 있었어요. 시위 자체보다 의원들이 직접 내려와 그들을 맞이하고 면담해 '청년들의 목소리, 여러분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고 한 것이 충격이었어요. 이 사건을 보고 평소 페미니즘 등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에게 온라인 메신저 단체 대화방을 통해 '너무 화가 난다. 시위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사실 말하면서도 친구들이 하겠다고 할 줄은 몰랐는데 바로 '하자' 는 거예요. 그렇게 준비를 시작했죠."(김주희 27·간호사)
집회 소식을 듣고 온 '익명의 여성들'
일단 시위를 하겠다고 결정하자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고 한다. 재주 있는 이들이 한 명씩 현수막, 포스터 등 집회에 필요한 물품들을 제작하겠다고 나섰고 집회 신고, 음향장비 대여, 집회를 알리기 위한 소셜미디어 계정 생성 등도 며칠 만에 착착 이뤄졌다. 메신저 단체 대화방 등을 통해 시위에 참여할 인원을 더 모았고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집회 참여 희망자들의 의견을 받았다.
김 씨는 각자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들이 집회 결정부터 실행까지 단기간에 할 수 있었던 이유로 2018년 '불편한 용기' 시위 경험을 꼽았다. 김 씨는 "우리는 불편한 용기 시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집회하는 법을 배운 세대라고 생각한다. 화가 굉장히 많이 나는 상황에서 침묵하지 않고 운동의 주체, 시대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주체가 되는 경험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불편한 용기가 주최한 불법촬영 편파수사·편파판결 규탄시위는 '혜화역 시위'로 불리며 총 6차례 개최되는 동안 30만 명 가량의 여성이 참여했다.
집회 참여자들은 집회 소식을 듣고 온 '익명의 여성들'이었다고 한다. 집회를 기획한 김 씨도 이들 중 대다수의 이름과 연락처를 모른다. 김 씨는 "처음 대화방에 모인 인원은 6~8명이었고 이 정도 인원이면 집회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집회에 온 인원은 최소 50명이었다. 집회에 참여한 이들 대부분은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피켓 들고 즉석 발언도 하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샤우트아웃에 함께 참여한 이예은(25·대학생) 씨는 "매번 집회를 열면 이런 식으로 항상 모르는 여성들이 많이 나온다. 화가 난 여성들이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분노의 핵심 '무반응'
이들은 지난 집회 당시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구호를 외쳤지만, 10여분 만에 의원들이 시위자들을 면담한 이수정 교수 영입 반대 집회와는 달리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진행한 시위도 '무반응'으로 끝났다.
어쩌면 이 '무반응'이 이들 '분노'의 핵심이다.
"남초 커뮤니티에서 뭐라고 한 마디 하면 그걸 언론에서 '요즘 네티즌 생각이 이렇다'는 식으로 받아 쓰고 그게 '이슈'가 되니까 정치권에서는 또 여성부 바꾸겠다 등의 공약을 냅니다. 악순환이죠. 이렇게 언론과 정치권이 혐오 발언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그들에게 엄청난 효용감을 준다고 생각해요. 반면 여성들의 말에는 언론도 정치도 늘 무반응입니다."
그리고 '무반응'은 이들을 시위에 나서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이 씨는 "성차별, 여성혐오, 안티페미니즘 발언들은 사방팔방 널려 있다. 그런데 그것이 옳지 않다는 목소리는 아무 곳에도 기록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어딘가에 우리의 목소리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해서 시위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김 씨와 이 씨는 여성가족부 개편, (성폭력) 무고죄 신설 공약 등 '사상 초유의 여성혐오 선거'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번 대선 선거전을 강하게 비판했다.
"정치인들이 청년의 취업 문제, 주거 문제 등을 가리기 위해 여성혐오를 이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굉장히 복잡한 해법이 필요한데 그것을 마련하는 대신 혐오를 이용해 표를 끌어들이고 있는 거죠."
이 씨는 더불어민주당의 '남혐여혐 둘 다 싫어 위원회'에 대해서는 "'남혐'이 뭐죠?"라며 실소했다. 그는 "(해당 위원회는) 혐오의 개념조차 모르는 채로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혐오에 반대하는 여성의 존재
이들은 코로나19 유행이 여성들을 고립시켜 안타깝다고 했다.
"페미니스트들, 여성들에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존재가 있다는 걸 확인하는 건 굉장히 중요해요. 세상이 모두 내가 틀렸다고 하는 듯 보이니까. 그런데 코로나 이후 대면 모임이 축소되고 여성들은 가정에 고립돼 버렸어요. 여성들은 온라인에서 모이는 것도 쉽지 않아요. 혐오 옹호자들에게 쉬운 공격 대상이 되거든요. 많은 여성 커뮤니티들이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게 그 때문이죠."
김 씨는 "반면 코로나 이후 온라인 활동은 많아지면서 온라인에 만연한 여성혐오는 더 힘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이 한층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관된 '무반응', 그리고 코로나로 인한 대면 모임 축소 등 일견 비관적으로 보이는 상황이지만 이들은 희망을 잃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이 씨는 "주변에서 여성 정치, 페미니즘 관련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런 사람을 어디서 찾느냐는 질문을 많이 들어요"라며 아직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지만 혐오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씨는 "앞으로 시위를 이어나갈 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저는 그 질문 자체가 이상해요. 시위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걸 몰라서 그런 질문을 하는 거죠. 질문하는 그 분도 다음 시위에 나올 수 있어요. 우린 언제든지 뛰쳐 나올 수 있어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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