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혼모의 선택 (사진=서울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 표 캡처)
최근 오산시에서 20대 친모가 탯줄이 달린 갓난아기를 유기해 숨지게 하는 등 영유아 유기‧살해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영유아 유기‧살인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경기신문은 영유아 유기‧살인 범죄를 유발하는 사회적 구조,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 상‧하로 나눠 짚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태어나자마자 버려지는 아이들…누가 보호해줄까
② '알 권리' vs '잊혀 질 권리'…원치 않는 임신·출산
영유아 유기‧사망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출생통보제’, ‘보호출산제’ 등 제도적 정립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제안한다.
출생통보제는 출산 의료 기관에서 친모와 아이의 정보를 의무적으로 지자체에 통보하는 것으로 법무부는 개정안 입법을 예고했다. 보호출산제는 아이 엄마가 원치 않은 출산으로 신원을 가리고 신고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로 여성가족부에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제도 중 ‘부모를 확인할 수 있는 권리’가 우선인지, ‘원치 않는 출산을 한 개인의 사생활’이 우선인지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 ‘출생통보제’…친부모 알권리는 기본권 해당
법무부는 지난 6월 아동의 출생 등록 권리 보장을 위한 ‘출생통보제’ 도입을 위해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출생통보제가 도입되면 의료기관은 산모의 출산 사실과 아이의 정보를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통보해야 한다.
법무부 관계자는 “부모가 출생 신고를 하지 않아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며 “방치‧유기되는 아이들은 신체적‧정신적‧성적 학대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법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도 2017년부터 비극적인 아동 학대 사건이 반복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출생통보제 도입이 시급하다는 입장과 권고안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정부는 인권위 권고에 2019년 ‘포용국가 아동정책’, 2020년 ‘제2차 아동정책 기본계획’ 등을 통해 출생통보제 도입 계획을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내놓지 못했다.
미혼모, 아동인권단체 등도 출생통보제의 빠른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원치 않게 출생해 입양된 아이도 부모의 기록을 가져야 하고, 성인이 된 뒤에도 친부모를 찾을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수경 민변 아동인권위원회 소속 변호사는 “최근 해외 입양인을 중심으로 친부모를 알 권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고, 유럽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며 “부모를 찾을지 말지는 아이의 권리다. 출생과 동시에 부모가 이 권리를 박탈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출생통보제가 우선 시행되고 보완적 부분에서 보호출산제가 논의돼야 한다”면서 “원치 않은 출산으로 사생활을 침해를 받을 수 있는 산모는 별도 제도를 통해 보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보호출산제’…개인 익명성 보장해 아동 이익 고려
반면, 영유아 유기‧살해 방지를 위해서는 미혼모 등에게 익명성을 보장해 안전한 환경에서 아이가 태어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에 대한 대안이 바로 ‘보호출산제’다. 산모가 상담을 통해 양육을 포기하면 자신의 신원을 감추고 익명으로 아기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현행법으로는 산모가 익명으로 아기의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지난해 8월 대한변호사협회가 발행하는 인권과정의에 실린 논문 ‘아동 이익 최우선 원칙과 보호출산제’는 “산모의 실명 출생신고를 강제해 아이를 유기하는 사례가 있고, 이 중 아이가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논문은 “원치 않은 출산을 한 엄마의 익명성을 보장해 사생활을 보장하고, 태어난 아이를 제도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친부모와 아이의 이익 조화가 도모될 수 있고 길거리 등에 버려지는 아이도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박성민 변호사는 지난 6월 열린 입양특례법·아동복지법 개선 토론회에서 “친부모가 유기해 사망하는 아이들 가운데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보호출산제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적기에 입양이 되지 못해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은 보호출산제를 통해 시설이 아닌 입양이 될 수 있다”며 “입양 가정에서 아이들이 보호된다면 이 제도는 아이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프랑스, 독일, 미국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영유아 유기를 막기 위해 일찌감치 보호출산제를 도입했다. 친부모로부터 유기돼 사망 위험에 놓인 아이를 보호하는 것은 물론 친부모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에 여성가족부도 보호출산제 도입을 위한 검토에 들어갔고, 정치권에서도 보호출산 관련 법안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 법안’을,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의원은 ‘위기 임산부 및 아동 보호, 지원에 관한 특별 법안’을 각각 발의했다.
◇ 제도적 뒷받침 중요하지만…사회적 분위기 우선 개선돼야
한편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등 법률적 제도 외에도 양육 책임을 미혼모에게만 지우는 것이 아닌 사회적 분위기를 개선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아울러 출생신고 절차 간소화, 위기임신 출산 지원 대책 등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정선욱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미혼 가정일 경우 엄마 홀로 임신‧출산을 겪는데 이때 공적 지원체계를 통해 고민 상담과 실질적 도움을 받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그러면 미혼모 등은 출생 기록이 남는 것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영유아 유기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아울러 사회적 인식 개선도 뒤따라 한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부도덕한 행위의 결과로 임신 출산을 바라보면 안 된다”며 “결혼을 해야만 출산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 분위기는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도 “정부는 공적 차원에서 어려움을 겪는 엄마들에게 아이를 혼자 낳아도 걱정 없이 양육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며 “그러나 지원에 대한 정부의 접근성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 경기신문 = 김혜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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