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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웃고, 이럴 때 토닥이고, 이럴 때 함께 나아가는 것이 진보다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이럴 때 웃고, 이럴 때 토닥이고, 이럴 때 함께 나아가는 것이 진보다

  • 이완배 기자 peopleseye@naver.com 
  •  2022-03-14 07: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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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쉬운 대선이었다. 무엇보다 위대했던 촛불혁명의 성과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한 채 수구 세력에게 정권을 넘긴 것은 뼈아프다.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될 것이고 시장주의가 판칠 것이다. 혐오의 정치는 더 확산될 것이다. 이 예상이 현실화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쉬웠던 대선인 만큼 수많은 평가와 반성이 뒤따르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감히 이런 평가에 동참할 식견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우리 모두 진정성을 가지고 치열하게 반성함으로써 더 나은 진보를 위한 건실한 새 여정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윤석열 당선인이 이끌 정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주부터로 미루자. 다만 미리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나는 윤석열 정권에게 “혐오의 정치를 멈춰달라”거나 “화합의 정치를 보여달라”고 주문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그가 이끌 정권이 과거보다 나은 보수 정권이 되리라는 기대도 전~혀 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 기대감이 쥐뿔도 없다는 이야기다.

    나는 향후 5년이 진보진영에게 지난한 투쟁의 과정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게 되라고 주문을 거는 게 절대 아니다. 그들의 역사, 그들의 정체성, 그들의 계급적 특성, 그리고 ‘그들’의 도움 위에 정권을 잡은 윤석열 당선인의 성향을 종합해 볼 때 그럴 가능성이 너무 높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형식적으로라도 “윤석열 당선인, 부디 배제와 혐오를 멈추고 화합의 정치를 이끌어달라”는 주문을 하지 않을 참이다.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다. 그리고 나는 안 될 일에 별 미련을 두는 성격이 아니다. 그런 형식적 당부를 할 시간에 다가올 5년의 새로운 투쟁을 단단하게 준비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훨씬 좋다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하기도 했다.

     

    함께 걷는 걸음의 위대함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 독일을 대표하는 막스플랑크 연구소 소속 진화생물학자 맨프레드 밀린스키(Manfred Milinski)가 1987년 <네이처>에 기고한 논문에서 밝힌 큰가시고기 실험에 관한 이야기다.

    민물 생선인 큰가시고기는 우리나라에도 많이 사는 물고기다. 그런데 이들은 생물학자들에게 여러 면에서 큰 관심을 끈다. 무엇보다 이들은 무척 똑똑하다. 다른 물고기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한 뒤 자신에게 유리한 행동을 결정할 정도로 주변 관찰력도 뛰어나다. 그래서 생물학자들은 큰가시고기를 ‘천재 물고기’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들이 집단생활을 할 때 특이한 현상이 하나 관찰된다. 큰가시고기는 무리를 지어서 앞으로 나아가다가 앞에서 이상신호가 감지되면 진행을 멈춘다. 그 이상신호가 천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사고로 숨진 김용균씨(24)를 추모하는 촛불집회에서 진행 한 참석자가 눈물을 흘리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김철수 기자

    이때 큰가시고기 무리 중 하나가 맨 선두에 나서 정찰을 시작한다. 선두에 선 정찰병이 별 이상이 없으면 나머지 물고기들도 안심하고 전진을 계속한다.

    아무 것도 아닌 행동 같지만, 이는 사실 매우 놀라운 광경이다. 정찰대의 역할을 맡은 물고기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로 이타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는데, 이 정찰병이 왜 그런 이타심을 발현하는지가 밀린스키의 관심이었다.

    밀린스키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길쭉한 수조 안에 큰가시고기 한 마리를 넣었다. 그리고 전진하는 방향에 유리로 칸을 막은 뒤 반대편에 포식자를 집어넣었다. 큰가시고기는 육안으로 이상신호(포식자의 존재)를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다.

    이 상태에서 큰가시고기가 있는 쪽 수조 옆에 거울을 하나 설치한다. 설치하는 방법이 두 가지인데 ①번 거울은 수조와 평행하게 설치돼 있다. 이 장치에서 큰가시고기는 정체불명의 이상신호를 확인하기 위해 아주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나아가는 모습이 매우 신중했다. 아주 조금 앞으로 나아간 뒤 잠시 멈추고, 또 아주 조금 나아간 뒤 잠시 멈추는 모습을 반복했다.

    이때 큰가시고기가 거울을 본다면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큰가시고기는 그것이 자신임을 모른다. 자기와 비슷하게 생긴 동료가 자기와 똑같은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큰가시고기는 앞으로 나아갈 때 옆 동료(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의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한 것이다. 동료가 자기 옆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 용기를 내 다시 몇 센티를 전진한다.

    반면 ②번 거울은 수조와 비스듬히 설치했다. 이렇게 하면 큰가시고기가 앞으로 나아갈 때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이 점점 뒤로 쳐지게 된다. 그런데 이 장치에서 큰가시고기는 ①번 수조의 큰가시고기보다 더 멀리 나아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자기는 앞으로 나아가는데, 옆 동료(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가 동행하지 않고 뒤로 숨었기 때문이다. 이러면 큰가시고기는 이상신호에 다가갈 용기를 잃고 전진을 멈춘다. 이 실험을 큰가시고기가 동료에게 말하는 바는 이것이다.

    “내가 딛는 한 걸음만큼 당신도 한 걸음을 내디뎌 주세요. 그러면 나는 용기를 얻어 한 걸음 더 나아갈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뒷걸음질을 친다면, 나도 더 이상 용기를 낼 수 없어요. 우리 함께 걸음을 맞춰 앞으로 나아가자고요.”

     

    함께 걷는 걸음으로 역사는 진보한다


    보수는 과거의 것을 지키려 하고, 진보는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려 한다. 이 말은, 진보는 숙명적으로 모험을 좋아하고 용맹스러워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동물은 생활 반경에서 일부러 벗어나지 않는다. 철새처럼 엄청난 거리를 이동하는 동물도 있지만, 그 엄청난 이동거리 역시 그들이 정한 생활 반경의 일부일 뿐이다. 아무리 이동을 즐기는 철새라 하더라도 “올해에는 평소 가보지 않은 곳으로 한번 가볼까?” 뭐 이러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인류 역시 동물이기에 생활 반경을 지키려는 습성이 있다. 하지만 인류는 그 어떤 동물과도 다르기에 그 생활 반경을 벗어나려는 도전정신도 가지고 있다. 바로 이것이 보수와 진보를 가른다.

    미국 뉴욕 대학교 스턴 경영대학원 사회심리학과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 교수는 “도전 욕구가 더 강한 사람은 진보적 성향을 갖고,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은 보수적 성향을 갖는다”고 정의한다. 다시 말하지만 진보는 숙명적으로 용감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 용맹성은 어디서 나올까? 단언컨대 나는 험난한 길을 함께 걷는 동지들의 존재에 그 힘의 원천이 있다고 믿는다. 혼자서는 절대 그 무서운 길을 걸을 수 없다. 큰가시고기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길을 걸을 때 우리는 더 멀리, 더 새로운 곳으로 전진할 수 있다.

    아주 험난한 5년의 여정이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는 편하게 그 길을 걸어왔던가? 슬플 수도 있고, 지칠 수도 있는데, 용맹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게 바로 진보의 본질이라 나는 믿는다. 이럴 때일수록 더 웃고, 이럴 때일수록 서로를 더 토닥이자. 이럴 때 서로를 믿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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