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비평연재 <좋은데, 싫었습니다>(좋싫)는 주류의 담론에 대항하는 저항의 언어조차 어쩌면 '당위'라는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닌지 질문합니다. 그저 이것'만'이 옳고, 이것은 '반드시' 좋아해야 하고,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대해야 한다는 절대적이고 당위적인 언어들이 정말로 대안과 저항의 언어가 될 수 있는지 묻습니다.[편집자말] |
얼마 전 전치형 교수의 한겨레 칼럼 〈이동의 명령, 이동의 권리〉를 읽으면서 리처드 D. 앨틱이 쓴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들과 사상>을 생각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진보'는 기술의 진보와 함께 다가왔다. 오스카 와일드를 하루 만에 톱스타로 만들 수 있었고, 그의 죽음은 하루 만에 영국 전역으로 알려졌다.
사람과 소식을 빨리 실어 나르는 기술은, 볼 필요 없었던 더 많은 인간을 목도하게 했고, 알 필요 없었던 더 많은 소식을 맞닥뜨리게 했고, 평온한 봉건제를 무너뜨렸고, 사람들의 코앞에 민주주의를 메다꽂았다. 빅토리아 시대의 노동운동과 계급의 변화는 그 기술의 진보와 발을 함께한다. 그리고 언제나 진보는 기술의 속도와 함께 도달했다.
소위 '진보' 정권이 저물고 '보수' 정권이 들어섰다고 하는데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은 여하의 문제를 제쳐두고 기술의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최선이라는 점에서만큼은 누구보다도 진보적이다. 속도전의 정점에 선 공약들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늘 이 지면에서는 윤석열 당선인의 '멋진' 공약들을 몇 가지만 함께 훑어보면 좋겠다.
근로시간 유연화
기술의 진보를 '하드캐리'하는 것은 언제나 노동 착취였다. 엥겔스가 <영국 노동계급의 처지>를 쓸 만큼 심각한 노동 착취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산업혁명의 찬란한 빛이 이루어졌겠는가. 기술이 진보하길 누구보다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그 기술을 통해 돈을 긁어모을 수 있는 이들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윤 당선인은 선거운동 기간 주 120시간 노동 같은 말로 '빨리 가는 세상'을 단언해 왔다.
이미 우리가 사는 세상의 시계는 압도적으로 빠르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시키고, 40분이면 집 앞까지 음식을 배달해 준다. 술을 마시고 속이 쓰린 다음 날 아침, 혼자 괴로워서 바닥을 기며 해장국을 끓이며 울지 않아도 된다. 어디 음식뿐인가. 요리 재료, 생일 선물, 내일 당장 입어야 할 옷, 세상 모든 것들이 돈만 내면 언제든 코앞에 준비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 120시간 노동이 가능해진다? 생각만으로도 환상적이다. 주 120시간이면 주 5일제 노동자는 24시간 내내 하루도 쉬지 않을 수 있다. B마트도 밤 12시엔 멈추지만, 그런 신데렐라 같은 생활을 할 필요가 없다. 120시간을 7일로 나누면 하루 17시간.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일하겠다고 한 게 벌써 136년 전이니, 이젠 120시간으로 돌아갈 때도 되었을 수 있다.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감원 연수원에 마련된 당선인 집무실에서 티타임을 갖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136년 전 유행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따르고 있어서야 어떻게 달려가는 기술의 속도에 노동이 발맞출 수 있단 말인가. 거기다가 윤 당선인이 얘기하는 근로시간 유연화는 '노사의 자율적 합의'에 따라서 이뤄지게 되어 있다. 굳이 5인 미만 사업장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많은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기조차 쉽지 않지만 어떻게든 '자율적' 합의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조합 조직실에서 마주하는 많은 사업장은 흥미롭고 다이내믹한 '자율적' 합의를 하고 찾아온다. 실명이 다 드러나는 사내 투표 시스템을 통해 노동조건이 낮아지는 근로계약에 서명하기도 하고, 사내 인사팀이 직접 서명 용지를 들고 다니며 휴가를 없애는 조항에 동의하는 서명을 하지 않으면 인사 불이익이 발생할 거라고 유·무형으로 협박을 해대기도 한다.
물론 그런 일이 어디 있을까. 윤 당선인이 말하는 '자율적'에는 노동자가 자율적으로 서명을 했다는 전제가 있을 것이다. 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 있다면 고소를 하면 된다. 많은 노동자들에게 해고는 가깝고 법은 멀지만, 그래도 윤 당선인은 다를 것이다. 검사 출신 새 대통령인데 어디 불법을 용인하겠는가. 주 120시간도 어디까지나 법의 테두리에 맞게 엄정히 집행될 터이니, 빠르고도 깔끔한 새 세계가 벌써 기대되는 바다.
노조의 불법 행위
윤 당선인이 선거운동을 하는 내내 전국택배노동조합은 CJ대한통운 본사를 점거하고 있었다. 택배노동자들은 도합 64일 동안 파업을 했다. 그중 19일은 본사를 점거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택배노조와 협상해야 할 당사자인 CJ대한통운이 교섭에 나서지 않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이미 판정한 바 있지만, 윤 당선인은 2월 10일 중노위 판정과는 무관하게 검사다운 단호한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사용자든 노조든 법 위반 부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다뤄야 한다"라고 말이다. 같은 날 윤 당선인의 선대본부 대변인이 택배노동자들의 점거 농성을 "떼법과 몽니"라고 표현한 점에 비춰보면 엄정하게 다루겠다는 윤 당선인의 마음이 100% 읽힌다.
주 120시간 노동은 '노사의 자율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점거농성에는 '노사의 자율적 합의'가 적용되지 않는 이유도 물론 충분히 알 법하다. 기술의 진보에는 점거농성이 필요하지 않다. 세상에는 수많은 점거농성들이 있었지만, 그 점거농성들만 없었다면 얼마나 세계는 더 빨라졌을까. 점거농성을 하는 이들은 기술의 발전을 위해 갈려나가지 않겠다는 말을 전신으로 천명하고 있는 자들이다.
▲ 2022년 2월 19일 열린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 사회적 합의 이행을 위한 집중 촛불' ⓒ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모든 사람들에게 욕을 들입다 얻어먹었던 택배노조의 CJ대한통운 곤지암 메가허브터미널 점거가 전형적이다. 곤지암 허브터미널 안에 있는 물건들은 빨리 나가서 누군가에게 도착해야 했고, 택배노조는 물건들의 속도와 사람들의 편의를 '인질 삼아서' 갈려나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얼마 전 장애인들의 지하철 시위와 비슷한 맥락이다. 사람들의 발걸음을 인질 삼아서 살아가겠다고 최선을 다했다. 그 사이에 오갔을 더 많은 물자, 더 발전했을 기술, 더 나아졌을 세상을 생각해보라.
법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지켜야 하겠지만, 법 해석이라는 게 존재하는 이유는 법도 법 나름이기 때문이다. CJ대한통운은 원래 하기로 했던 노정합의를 부속계약서로 뒤집어 엎어 버렸지만, 합의는 '법'의 문제는 아니다. 점거농성이 더욱 엄정하게 법으로 처벌받아야 하는 이유는 이렇듯 세상이 앞으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이유와 비슷하다. 세상의 시계를 더 빨리 굴리기 위해선, 속도를 인질 삼는 일부터 집어치우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민간 주도 괜찮은 일자리 창출
걸핏하면 공공 영역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하는 인간들은 정확하게 자신이 공산주의자라고 밝힐 필요가 있다. 공공에 떠맡겨 버리면 당연히 속도가 느려진다. 공무원들이 느리다고 그렇게 욕을 해대는 사람들에게, 윤 당선인은 당연한 세상의 이치를 알려주고 있다. 속도가 느려지면 경쟁에서 뒤처진다. 뒤처지다 보면 쥐도 새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괜찮은 일자리'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임금을 안정적으로 많이 받고, 해고 위협에 불안하지 않고, 직장에서 괴롭힘 당하지 않고, 과로에 시달리지 않는 일자리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말해왔듯 세상의 속도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야기를 다르게 할 수 있다.
더 빠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즐겁게 야근을 하고, 자기 자신을 극기하며 발전시켜서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고, 그 성취를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고, 그렇게 기업도 노동자도 함께 성장하는 '빠른' 사회 속에서라면, 거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도 당연히 괜찮은 일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공공 주도 일자리 따위로는 느낄 수 없는 강렬한 경쟁과 자기성취의 쾌감이 120시간도 거뜬히 버틸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지역별 최저임금, 비정규직 노사협의 등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멋진 공약들이 있지만, 이 세 가지만 살펴보아도 윤 당선인의 5년 동안 얼마나 세상이 빨라질지 기대가 된다. 아마 SF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압도적인 기술들이 5년이 지나면 다 이뤄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기술의 생김새는 그 기술을 구상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라, 아무래도 천천히 같이 가는 기술보다는 앞으로 혼자 빨리 가는 기술들이 많이 나오겠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기술의 진보란 속도의 진보에 다름 아니지 않겠는가.
▲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학생회관에 있는 취업 게시판. 2020.9.16 ⓒ 연합뉴스
한 가지 문제가 있긴 하다. 느린 사람들이 바로 그 경우다. 솔직히 걸음도 느리고 생각도 느린 나는, 약간 자신은 없다. 어쩌면 그 세상에 내가 살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그렇지만 어디 일이 다 그렇게 쉽게 돌아가겠나. 원래 큰일을 하다 보면 부수적 피해는 있을 수밖에 없다. 빠르지 않으면 도태되는 게 당연하다. 남들이랑 발걸음 맞추면 빨리 못 간다. 지금 눈앞에 버스가 들어오면 뛰어야지, 심지어 그 버스가 내 뒤를 쫓아오면 미친 듯이 뛰어야지. 빨리 가는 게 최우선인데, 어떻게 같이 간담?
나는 그렇다 쳐도, 같은 나라의 같은 시대를 살아가게 될 여러분은 5년 뒤에도 건강하게 빠른 세계를 만끽할 수 있는 속도를 살아가시길 기원한다. 다만 나랑 속도가 비슷한 사람들은, 다른 해결책을 찾아봐야 할 수도 있다. 함께 걸어가는 속도를 만들 싸움의 기회란 언제든 또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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