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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는 불법일터…정부는 ‘노동자 불법’ 책임만 물었다

 

등록 :2022-07-25 05:00수정 :2022-07-25 07:07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현실
하청은 월급 안주고 문닫기 일쑤
불황 탓하며 상여금 무단 삭감
정부가 ‘특별지원업종’ 지정 뒤
사회보험료 체납도 일상화

노동자 “불법파업 뒤엔 불법업체
조선소 구조적 문제 해결해야”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 앞에서 열린 ‘7.23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희망버스' 문화제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조합원들이 23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 앞에서 열린 ‘7.23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희망버스' 문화제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불법 백화점이라예 불법 백화점. 종일 얘기해도 다 얘기 몬합니다. 에이포(A4) 용지에 싹 다 적어가, 윤석열 대통령한테 보내주이소. 지금 누가 누구한테 불법이라 캅니까.”
 
 <한겨레>가 지난 20~24일 만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열 명 중 한명인 20년 차 도장공 김덕용(53)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하청노동자들이 ‘불법적’이고 ‘극단적’인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조선소에 만연한 ‘하청업체의 불법’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김씨는 “조선소 경력 10년 이하인 사람들도 다 한 번씩은 그런 불법을 겪었을 것”이라며 “조선소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파업 기간 내내 제1 도크(배 만드는 작업장)에서 농성 중인 동료들을 지켰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51일간 파업, 31일간 제1 도크 점거투쟁은 지난 22일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조선하청지회)와 사내협력회사협의회의 극적 합의로 마무리됐다. 조선소 역사상 유례없는 하청노동자들의 ‘위력’ 투쟁은 일상적인 불법을 온몸으로 감내했던 하청노동자들의 누적된 피해의 결과였다.

 

<한겨레>가 만난 조선하청지회 조합원 10명은 모두 하청업체의 ‘불법’으로 ‘권리’를 침해당한 경험이 있었다. 김철민(46·가명)씨가 다니던 하청업체는 지난달 말 폐업했다. 지난 2일 파업 시작 전 임금도 현재까지 받지 못했다. 그는 “원청에선 우리 월급 주라고 기성금을 줬을 텐데, 그걸 갖고 폐업하고 날라삤다”며 “밀린 월급 중 20%만 주고 나머지는 체당금(대지급금)을 신청하라고 해 대출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대지급금은 사업주의 폐업에 따라 노동자가 받지 못한 임금 최종 3개월 치와 3년 치 퇴직금을 국가가 대신 지급하는 제도다. 예외적이고 제한적인 수단으로 사용돼야 하지만, 하청업체들은 대지급금으로 퇴직금을 지급하는 것을 ‘정상’인 듯 행한다. 노동자가 대지급금을 받기 위해선 사업주의 임금체불에 대한 ‘처벌불원서’를 내야 하기 때문에 사업주를 처벌할 수도 없다. 김덕용씨는 “하청업체 대표들이 나랏돈으로 눈먼 돈 챙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보험료 체납도 ‘일상’이 됐다. 2016년 조선업 위기에 따라, 정부는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면서 사회보험료 사업주 부담금을 ‘납부유예’ 시켜줬다. 고용·산재보험료는 현재까지도 납부유예가 유지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2019년부터 건강보험은 올해부터 납부유예가 중단됐지만, 하청업체는 사회보험료를 ‘안 내도 되는 돈’으로 인식했다. 하청업체가 사업자 부담분을 체납하면, 노동자들의 노후 안전망인 국민연금 수급액이 줄어들 수 있다. 조합원 일부는 ‘직업훈련’에 참가한 뒤 임금을 지급받지 못했다. 하청업체들은 일감이 부족해지면 일부 노동자들을 고용노동부의 직업훈련과정에 보낸다. 이때 교육비는 모두 노동부가 지원하지만, 임금은 사업주 부담이다. 조합원 강민성(49·가명)씨는 “우리가 노동청에 확인하고 항의하자 그제서야 임금을 줬다”고 했다.

 

조합원들이 경험한 불법은 숱했다. 특히 상여금 삭감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 과정에서 노동자 동의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는 불법이 횡행했다. 조선소 내 일부 직종은 월 기본급의 550% 수준의 상여금을 받았는데, 2016년 조선업 불황과 맞물려 대부분 삭감됐다. 특히 2017년 이후 최저임금 인상과정에서 상여금을 기본급에 ‘녹이면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자주 발생했다. 강씨는 “일부 원청노동자들이 우리 보고 불법이라고 하는데, 만약 자기들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가만히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사내협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이에 대해 “모든 업체들이 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고, 조선업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지난 21~22일 연이틀 대우조선을 찾아 조선하청지회에 “농성을 해제하면 조선소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22일 타결된 하청노사 사이의 합의에는 임금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 운영과 조선업 하청노동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협의체 가동 내용도 포함됐다. 김형수 조선하청지회장은 24일 <한겨레>와 만나 “티에프와 협의체에서 요구할 내용을 시간을 두고 정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거제/서혜미 기자 ham@hani.co.kr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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