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피씨(SPC)그룹 제빵업체에서 일하던 20대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진 지 8일 만에 또 다른 계열사에서 끼임 사고로 노동자의 손가락이 절단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SPC 상품 불매운동이 거세게 타올랐다.

SPC 불매운동은 단순히 산재 사고 때문만은 아니다. 노동조합이 설립된 이후 그간 SPC 현장의 극악한 노동 현실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산재가 아닌 인재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SPC에서 발생한 산재사고는 2017년 4명에서 2021년 147명으로 늘어났다. 넘어짐·끼임·절단·베임·찔림 등의 사고였다. 5년 사이 35배나 증가한 이유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산재 사고가 2017년 노동조합 설립 이후에야 제대로 신고되기 시작해서다. 그러니 그 이전에도 산재사고는 2021년보다 많았으면 많았지 적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SPC에선 왜 이렇게 산재 사고가 많을까?

SPC는 대기업이란 수식어가 무색하게 주야 맞교대로 근무한다. 주야 맞교대는 벌써 10년 전 노동자의 건강권을 이유로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대기업에선 사라진 근무 형태이다.

특히 저녁 8시부터 아침 8시까지 일하는 야간 근무조는 밤을 샌 새벽녘에 산재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번 두 사고가 모두 새벽 6시와 6시15분에 발생한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이처럼 열악한 노동조건이 알려진 데다 SPC 사측이 20대 노동자의 장례식장에 끼임 사고가 난 바로 그 공장 빵을 전달하면서 불매운동에 기름을 부었다.

불매운동을 통해 알게된 SPC그룹의 실체

현재 불매 대상은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 삼립식품, 쉐이크쉑 등 SPC 계열사 28개 업체의 전품목에 걸쳐 있다. 아울러 가평 휴게소를 비롯해 11개 고속도로 휴게소를 SPC가 운영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들 휴게소 정차거부 운동까지 일고 있다.

불매운동 참가자들은 SPC가 생산한 빵은 ‘노동자의 피로 만든 빵’이라면서 “안 먹는게 아니라 못 먹겠다”고 호소한다.

현재 자발적 불매운동 참가자가 늘어나면서 계열사 중 최대 규모인 파리바게뜨의 매출액은 30% 가량 줄었다.

1948년 을지로에 개업한 빵집 ‘상미당’이 1959년 ‘삼립산업제과’로 법인화한 후 2022년 현재 빵류 제조업 83%를 차지하는 굴지의 ‘제빵왕’이 되기까지 SPC그룹은 노동자의 고혈을 짜내고 또 짜냈다.

전쟁 직후 미군이 준 원조물자를 정부에서 헐값에 매입해 시중에 되파는 방식으로 대한민국 대표 재벌로 성장한 삼성물산 이병철(1910~1987) 회장처럼 SPC그룹 허창성(1914~2003) 창업주도 외세와 정권에 결탁해 기업을 키웠다.

당시 대표적인 원조물자인 밀가루를 헐값에 매입하고, 정부가 추진한 ‘분식장려운동’을 통해 삼립빵의 독점 판매가 이루어졌다.

 

특히 업계 최초로 빵과 호빵을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체계를 갖추면서, 노동자는 저임금, 장시간,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2000년대 베이커리(갓 구워낸 제품을 판매하는 빵집) 시장이 확대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SPC가 크라운베이커리를 누르고 베이커리 업계를 평정한 데는 냉동생지 방식(제빵 재료를 반죽·발효·성형 후 냉동 상태로 유통) 도입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런데 파리바게뜨 영업점이 무분별하게 늘면서 냉동생지 수요가 급증, 이를 만드는 공장에 과부하가 걸리려 잦은 산재사고를 일으켰다. 이번 20대 노동자가 숨진 곳도 일종의 냉동생지 공장이다.

혹자는 양산 빵과 냉동생지로 제빵산업에 획을 그었다고 칭송하지만, 정작 SPC를 ‘제빵왕’으로 만든 것은 노동자가 흘린 피땀의 결실이지 않을까.

노동자의 고혈로 성장한 SPC는 또한 온갖 탈법과 불법을 일삼았다.

2018년 SPC는 노조탈퇴 공작(부당노동행위 위반)으로 162억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 바 있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은 아예 안중에 두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따르면 사업주는 분쇄기 등 노동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는 경우 해당 부위에 덮개를 설치하여야 한다. 그러나 SPC는 거듭된 산재 방지책 요구에도 불구하고 덮개는커녕 끼임 사고가 나도 병원조차 데려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이번 사망사고가 난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만 최근 5년 동안 무려 15명이 끼임 사고를 당했다. 더구나 SPC는 끼임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난 이튿날도 덮개 없이 기계를 재가동함으로써 노동자들은 전날 동료가 죽임을 당한 기계 옆에서 일을 해야 했다.

SPC는 노동 문제 말고도 탈법적인 경영으로 여러차례 문제를 일으켰다. 대표적으로 2012년 허영인 회장이 파리크라상 상표권을 배우자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탈세를 저질러 647억 원의 과징금이 부과되기도 했다.

이처럼 노동자의 고혈을 짜내고, 온갖 불법과 탈세를 서슴지 않는 SPC가 불매운동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개선조치 없이 안하무인으로 일관하는 데는 윤석열 정부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경제정책방향을 보면,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법적 불확실성 신속히 해소’ 과제에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정이 포함됐다. 결국, 산재사고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한 최근 부쩍 강조하는 ‘규제 완화’란 것도 은행의 대출 공급을 늘려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의 숨통을 트이게 하겠다는 정책인 것이고 보면, SPC그룹 같은 불법·탈세 기업에도 금융 혜택을 나눠주겠다는 소리다.

윤석열 정부의 이런 친기업 반노동 행태가 계속되는 한 SPC와 같은 파렴치한 악덕 기업은 끊임없이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