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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도 불평등에 대한 세계적인 연구 결과들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나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 등이 그것이다.
세계화가 진전되고 자본 이동이 증가하면서 국제적으로도, 국내적으로도 불평등이 심화되었다고 진보 진영은 판단한다. 피케티를 통해 잘 알려진 세계 불평등 데이터베이스를 보면 실제로 1980년대 이후 불평등이 크게 증가한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개혁이 불평등을 크게 증가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의 증진, 즉 자본 이동성 증가와 해외 직접투자 확대, 교통혁명과 통신혁명을 동반하는 글로벌 공급사슬의 구축으로 전 지구적 차원에서 국가 간 불평등은 크게 감소했다. 해외 직접투자가 활성화되면서 이머징 마켓(신흥시장) 국가들은 해외 직접투자로 인한 생산 이전과 기술 학습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동남아 국가들과 동유럽 국가들의 경제성장은 눈에 띄는 것이었다. 그 결과 경제 지형도 달라진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1990년 미국, 유럽, 일본이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였지만 2019년 47%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세계적인 수준에서 절대 빈곤층은 극적으로 감소했다.
글로벌 공급망(GVC)이 촘촘히 구축되면서 상대적으로 저비용 국가들에서 제품이 생산되자 전 세계적으로 가격 상승 요인이 억제되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되면서 이 흐름은 비약적으로 강화되었고, 동유럽과 동남아도 이에 참여하면서 공급 부문의 가격 상승 압력은 크게 줄었다.
한국, 세계화·개방화로 크게 성공
▲ 21일 부산항 신선대와 감만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는 이머징 마켓뿐 아니라 선진국의 생활비를 크게 낮춰 선진국 저소득 가구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교통혁명, 통신혁명을 동반하는 물류비용 감소로 인해 에너지, 상품, 서비스의 이동 장벽이 제거되면서 값싸고 질 좋은 제품들을 사용할 기회가 확대된 것이다. 중국 제품 없이 한 달 생활하기가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다는 의미다.
지난 1월 발간된 국제통화기금(IMF) 연구진 토론자료에 따르면 1944~2014년 전후 역사에서 한국은 무역(수출입 합계)과 1인당 총생산 평균 성장률이 가장 높은 국가였다. 자유무역, 세계화, 개방화 과정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국가가 한국이라는 의미다.
한국은 미국이 주도한 전후 관세무역 일반협정(GATT) 체제에 진입한 이후 급성장했으며 1994년 이후 중국 개방화가 확대되면서 제2의 도약기를 거쳐 2010년대에는 선진국에 진입한다. 한국은 자유무역과 개방화된 세계 경제의 조건에서 세계시장의 점유율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키면서 모든 신흥국들의 모범사례가 되었다. 이는 한국 사회의 내적 역량과 세계 시장의 개방이라는 조건이 맞물린 결과다.
잘 알려졌듯이 세계화에 대한 불만도 크다. 선진국에서는 블루칼라 노동자계급의 고용 및 소득이 불안정해진 반면 고학력-고숙련 노동에 유리한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이나 첨단산업이 확산되면서 임금노동자 내부의 격차가 확대되었다. 노동절약적-편향적 기술진보의 결과다.
더불어 자산소득자에게 유리한 형태의 사회경제 시스템이 구축되면서 소득-자산불평등이 심화된다. 상위 0.1%, 상위 1%로의 부의 집중이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반세계화, 대안세계화 운동은 이에 대한 글로벌 민중들의 반란이다.
그런데 2010년대 이후 세계화에 대한 저항은 아래로부터가 아니라 중심부 국가의 정책으로 인해 확산되고 있다. 심화되는 지경학적 균열이 그것이다.
2018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제품에 대한 일방적인 관세 부과와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조치가 두 강대국 대립의 전초전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교역-교류 단절 과정에서 필수제 공급에 위기를 느낀 많은 국가들이 수출품 규제를 통해 식량, 보건제품 등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일어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그에 따른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보복은 전 지구적인 에너지, 식량 위기를 심화시켰다.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규칙 기반 질서에 기초한 첨단제품의 무역 및 해외 직접투자 규제는 명시적으로 중국의 성장(경제적, 군사적 고도화)을 견제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되었다. 미국-유럽-일본과 중-러의 진영간 대결이 전략물자(에너지, 식량, 무기, 첨단산업 소재부품)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거래 장벽, 투자 제한, 서비스 이동 억제를 초래하고 있다. 아울러 글로벌 결제시스템의 균열, 달러 본위제로부터의 부분적 이탈도 가속화하고 있다.
진영 간 균열과 상호규제 강화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다자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전략적 경쟁 국가에 대한 미국의 수출제한 조치는 첨단산업 분야에서 탈동조화를 이끌 뿐만 아니라 첨단산업의 기술 확산을 제한함으로써 신흥공업국들이 이 분야에서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억압한다. 진영 간 대립은 전략물자의 수출제한이나 규제를 동반한다. 이는 다시 에너지와 곡물, 첨단산업 핵심소재의 가격을 높여 세계적인 비용 인상형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필수재 가격 상승은 세계 경제에 충격이었지만 지정학적 균열은 그 충격을 항구적인 상태로 만들 수 있다. 글로벌 수준에서 보자면 이는 저발전 국가들과 선진국 저소득층의 실질소득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더불어 글로벌 경제 침체와 기업 수익성 악화의 원인이기도 하다.
수입 원자재 오르고 수출시장 줄어
▲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확대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의 국익은 세계 경제의 블록화와 균열에 있지 않다. 앞서도 보았지만 한국 경제가 급속히 성장한 데는 전후 자유주의 무역체제와 개방 후 중국의 빠른 경제성장이 있었다. 과거에 한국은 조립가공품을 수출했고 현재는 첨단부품과 고부가가치 최종재를 세계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원자재는 수입된 것이며 중간재-최종재는 수출된다. 자체적으로 원자재도 없고 상품시장도 없다는 의미다.
세계 경제의 지경학적 균열과 글로벌 공급망의 교란은 수입·수출 양 측면에서 한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공급망 교란은 원자재의 공급가격을 높이고, 경제의 블록화와 진영 간 균열은 수출시장을 제한한다. 세계경제의 균열 심화는 한국 경제의 잠재력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최근 대중국 수출의 급속한 감소는 코로나19 봉쇄정책으로 인한 중국 경제의 침체가 주된 요인이지만 미중 갈등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에 강하게 동조하면서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다. 과거 정부에서 한국은 미국과 군사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는 동반자 관계를 유지했다. 이는 전략적 모호성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 들어와서는 기조가 완전히 바뀌었다. 윤석열 정부는 안보동맹이 곧 경제동맹이라고 외치며 미국-일본에 치우친 외교를 꾸준히 진행시켜 왔다. 최근 일본에 대한 퍼주기 외교도 그 일환이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법이나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해 한국 정부에 청구서를 날리고 있는데도 현 정부는 한미일 동맹에 맹목적이다. 뚜렷한 실익이 없는데도 윤석열 정부는 진영 간 대립을 확대하는 미국의 전략에 일방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 경제의 미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인지는 제쳐두더라도 한반도 평화에조차 도움이 될지 강한 의문이 든다. 경제와 안보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 남종석 / 전국공공연구노조 정책국장(소셜 코리아 운영위원) ⓒ 남종석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남종석 박사는 전국공공연구노조 정책국장이며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재직중입니다. <소셜 코리아> 운영위원이기도 합니다. 한국 제조업 산업생태계, 지역불균등 발전, 제조업의 탈탄소화와 그린뉴딜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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