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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에 가장 필요한 자원은 ‘시간’이다. 그러나 2023년에도 여전히 한국 직장인 10명 중 4명은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연일 강조하는 ‘노동시장 약자’나 ‘청년세대’일수록 육아휴직·출산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비중은 더 높았다.
‘있는 육아휴직’도 못 쓰는 이런 상황에서 ‘주 69시간’ 노동이 가능한 노동시간 유연화 제도가 도입되면 출생률은 더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생률(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사오디는 자녀의 수)은 ‘0.7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이자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노동법률단체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은 지난 3일부터 10일까지 전국 만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26일 밝혔다. 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엠브레인퍼블릭이 경제활동인구조사 취업자 기준에 따라 수집된 패널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조사 결과 직장인 45.2%는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답했다.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비중은 ‘비정규직’에서 58.5%, ‘5인 미만 사업장’에서 67.1%, ‘5~30인 미만 사업장’에서 60.3%로 평균보다 높았다. 직급별로는 ‘일반사원’의 55.0%가, 임금수준별로는 ‘월 150만원 미만’의 57.8%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했다. 세대별로는 ‘20대’에서 48.9%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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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직원이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도록 다양한 유형으로 압박했다. 직장인 A씨는 직장갑질119에 “육아휴직 후 복직했는데 급여도 깎였고, 만 6개월이 돼 가는데 특별한 보직도 없다”며 “복귀 시 경황이 없어 당일 실수로 계약 동의를 해버렸는데 6개월 간 깎인 금액이 100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다른 직장인 B씨는 “근속연수에 따라 안식 휴가를 주는 제도가 있는데, 올해부터 육아휴직을 다녀온 직원은 그 제도를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출산휴가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조사 결과 직장인 39.6%는 ‘출산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비정규직’(56.8%), ‘5인 미만 사업장’(62.1%), ‘월 임금 150만원 미만’(55.0%) 등 노동시장 내 약자일수록 출산휴가를 쓰기 어려웠다. 세대별로 보면 ‘20대’에서 45.5%가 ‘출산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고 있다’고 답해 세대 중 가장 높았다.
자녀 등 가족의 긴급한 돌봄이 필요할 때 쓰도록 돼 있는 ‘가족돌봄휴가’도 마찬가지다. 직장인 53.0%는 ‘가족돌봄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답했다. 특히 ‘비정규직’(63.5%), ‘5인 미만 사업장’(67.7%), ‘5~30인 미만 사업장’(67.1%), ‘일반사원’(62.5%)에서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여성’은 58.4%, ‘20대’는 55.1%가 가족돌봄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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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출산휴가처럼 법에 명시된 권리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저출생 해결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장종수 노동법률사무소 ‘돌꽃’ 노무사는 “고용 형태를 불문하고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 일·생활 균형의 기본이 되는 법상 제도 사용마저 눈치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과연 노동자가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의 끝은 결국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선택’에 내몰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직장갑질119는 “주 69시간제는 말할 것도 없고, 주 60시간 일해도 주 5일 내내 밤 11시 퇴근해야 하는데 누가 아이를 낳고 기르겠나”라며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직장인들이 마음 놓고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노동시간을 줄이고, 출산·육아·돌봄휴가를 확대하고, 이를 위반하는 사업주를 강력히 처벌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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