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강제동원 피해자 자녀들이 “당사자 원치 않는 공탁 왜 하나” 물어도 아무 답 못한 재단
고 정창희 할아버지(미쓰비시 중공업 히로시마공장 강제동원 피해자) 장남 정종건 씨가 11일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입주한 건물 1층 로비에서 제3자 변제 공탁에 대한 피해자 측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3.07.11 ⓒ민중의소리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자녀들이 11일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제3자 변제' 공탁 절차를 중단할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일본의 사과와 전범 기업의 배상이 피해 당사자들의 뜻이라며, 정부와 타협 없이 이 뜻을 따르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거듭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안'에 반대하는 이춘식 할아버지의 장남 이창환(67) 씨와 장녀 이고운(64) 씨, 고 정창희 할아버지 장남 정종건(66) 씨는 이날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재단)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당초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안 수용을 거부한 양금덕 할머니의 자녀들도 기자회견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폭우 탓에 광주에서 상경하지 못했다.
정종건 씨는 "아버지의 뜻은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에 사과와 보상을 받는 것이고, 저는 이 뜻을 이어 나가겠다"며 "모래성 같은 일본과의 성을 쌓는다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절규를 무마하려는 정부는 잘못된 것 아닌가.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을 제3자 변제라는 이상한 것으로, 우리 법을 스스로 우습게 만들지 말아야 하며, 우리의 권리를 소멸시키려는 공탁은 전면 무효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씨는 "우리 모두 간절하게 국민 여러분들에게 도와달라고 호소한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외교부가 (피해자) 개개인을 찾아 (제3자 변제안을 수용하라고) 압력을 가하는 게 잘하는 짓인가. 우리가 일본과 싸워야 하는데 어떻게 정부와 싸우게 된단 말인가. 정부는 무시하고, 일본과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이고운 씨는 "지금 아버지는 현 정부에서 공탁을 걸어놓는 것을 철저하게 반대하고 있다"며 "지금 정부에서 하는 건 세계적으로도 맞지 않다. 이렇게 고생 많이 하신 어르신들이 이겼던 재판을 정부에서 무마하며 공탁하는 건 돌아가신 피해자들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창한 씨도 "우리 대법원에서 판결한 그 권리를 정부가 끝까지 보장하고 지켜주길 강력히 원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공탁 추진 과정은 막무가내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본 전범 기업 대신 우리 정부가 배상금을 대신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이 발표된 뒤, 대법원으로부터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 15명 중 생존 피해자 2명과 사망 피해자 유족 2명 등 4명은 이에 반대하는 의사를 명확히 밝힌 바 있다. 피해자 소송대리인은 민법상 '당사자가 허용하지 않을 경우 제3자는 변제할 수 없다'는 조항을 들어 당사자가 거부하는 한 제3자 변제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지만, 정부는 무리하게 공탁 절차를 밀어붙였다. 그 결과 광주지법, 전주비법, 수원지법에서 잇따라 정부의 공탁 신청을 불수리하는 망신을 자초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법원의 불수리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을 진행하는 중이다.
사전에 피해자들에게 공탁과 관련된 제대로 된 설명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창환 씨는 "(외교부가) 자세한 설명도 없이 아버지의 주소를 물어보더니, 공탁 과정에 대해 간단히 말하며 '공탁할 테니 알아서 판단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정종건 씨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안 받았다. 그 다음에 연락받은 건 없다. 문자 메시지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공탁 주최인 재단에 항의 방문하며 '공탁을 그만두라'고 촉구했지만, 재단 측은 아무런 답변도 내놓지 않았다.
피해자 소송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이춘식 어르신 장남분이 가장 처음 질문한 게 '공탁을 왜 하냐'는 것이었다. 아드님은 우리 공공기관이 공탁을 했다는 얘기만 들은 것이지, 왜 하는지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어서 (재단 이사장에) 직접 얼굴 뵙고 물었지만, 답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임 변호사는 "이미 이뤄진 공탁에 대해 당사자가 와서 왜 공탁했는지를 묻는데, 설명조차 못 하는 행정 행위를 왜 하나"라며 "당사자뿐만 아니라 국민에게도 이 절차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어떻게든 채권과 판결을 신속히 없애려고만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절차가 주먹구구식으로, 날림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종건 씨는 재단 측과의 면담에 대해 "이런 모습을 보는 게 답답하다"고 개탄했다.
“ 남소연 기자 ” 응원하기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