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심사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정부가 개정법률안을 발의하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규정이 동물의 법적 지위를 제고하는 기본조항이 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동물단체를 비롯한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환영하였고, 조속한 법안 통과를 촉구하였다. 그러나 국회는 발의 이후 1년 반이 지나도록 별다른 논의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가, 2023년 4월 4일에야 합의문을 통해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4월 임시국회에서 우선적으로 처리하기로 발표하였고, 이는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그러나 이 요란한 합의 이후 2달이 넘도록 이 개정법률안은 여전히 법안심사조차 시작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환경, 동물, 기후, 생태 등을 고민해온 20여 개 단체들이 모여 '동물은물건이아니다연대'를 구성하고, 지난 5월 30일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동물은물건이아니다연대는 더 이상 국회가 자발적으로 법을 개정한다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국회 양당이 지난 4월 합의하여 대국민 발표까지 하였던 만큼 국회가 신속히 국민과의 약속을 지킬 것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동물은물건이아니다연대 출범 이후 양당 국회의원실을 방문하여 박주민, 이탄희 의원과의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개정법률안의 조속한 법안 통과를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편 시민들과 만나 개정법률안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기 위한 현장 액션도 기획하고 있다.
동물은물건이아니다연대의 활동에 대해 일각에서는 단순히 선언적 의미에 불과한 이 개정법률안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있다. 심대한 의미가 있다. 근본적으로 동물을 물건으로 평가하는 한, 동물 관련 법제들은 현재의 '동물보호법'과 같이 현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규범력, 가치평가, 적용범위, 판단수준을 가지게 된다.
송기헌 의원실이 법무부와 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 3월까지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접수된 사건 4249건 가운데 재판에 넘겨진 피의자는 122명(3%)에 불과하고, 절반 가까이가 불기소되었으며(46.4%), 1372건(32.5%)은 약식명령처분을 받았다. 5년간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입건된 피의자 4221명 중 구속기소된 피의자가 단 4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우리 법체계에서 '동물을 물건으로 보는 규정'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통계적 진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개·고양이 식용금지법'이 제정된다 하더라도, '동물보호법'처럼 무기력한 수준으로 기능하는 데 그치고 말 것이라는 합리적인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개정법률안은 법체계 내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를 정립하게 되며, 다른 동물보호 관련 법령들을 제대로 기능하게 만드는 근본이 되는 것이다.
시민의 생명인식 수준과 동떨어진 법을 수선하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당신에게 묻는다. 밀폐용기에 살아있는 토끼를 넣어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답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당신은 질문에 답변하기보다 질문자를 황당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직한 분노가 섞인 말을 하게 될지 모른다. "이걸 질문이라고 하냐? 당신은 살아있는 생명과 반찬도 구별 못하나?"
이 반문이 향해야 할 곳은 우리 법이다. 황당하게도 현재의 우리 법은 '살아있는 토끼도 물건이기에 넣어도 된다.'고 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황당한 법체계가 우리를 규율하고 우리를 지배하는 현실을 바로잡고자, 우리 '동물은물건이아니다연대'는 이 개정법률안 통과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시민의 지지와 응원이 필요하다. 법이 현실, 시민의 생명인식 수준을 따르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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