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02년부터 2023년 사이 여러 정부기관에서 조사관으로, 또 총괄과장과 사무국장 등으로 일했다. 위원회에는 경찰과 검찰, 그리고 행안부, 국토부 등 다양한 행정부처의 공무원이 파견되어 민간에서 채용된 조사관들과 함께 근무하곤 했다. 특히 검찰에서는 일선 수사관뿐만 아니라 부장급 검사들도 다수 파견되었다. 그런 인연으로 검찰 출신 인사들과 함께 근무하던 어느 날이다.
그날은 월요일 아침이기에 여느 때처럼 예정된 주간회의가 열렸다. 그런데 내 옆자리의 모 부장검사의 표정이 다른 날과 달랐다. 평소엔 회의가 시작하기 전, 주말 동안 있었던 소소한 이야기를 주제로 유쾌한 분위기를 이끌던 그가 이날은 약간 불편한 표정으로 뭔가를 읽고 있었다.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제야 검사는 자신이 몰두하던 누런 대봉투 속 자료를 덮으며 말했다.
형사사건 무죄는 ‘검사 경고’, 정치사건 무죄는 ‘문제 없음’
자료는 그날 아침에 우편으로 받은 ‘검찰총장 경고장’이라고 했다. 파견 오기 전, 자신이 과거 기소했던 사건이 무죄 선고된 데 대해 검찰총장이 경고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나는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검찰에 그런 제도가 다 있었어요?” 물었더니 부장검사는 “아니, 그럼 검사가 아무 사건이나 막 기소하는 줄 아셨냐?”며 웃었다. 그러면서 “모르는 사람들은 검사가 함부로 기소하는 줄 아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큰일 납니다. 기소했다가 재판에서 무죄 나오면 불이익이 보통 아닙니다”라며 다시금 강조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온 말이 충격적이었다. 부장검사는 웃으며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건도 물론 있어요. 기소 했는데 무죄가 나와도 아무 상관없는 사건도 있지요.” 나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아 “그런 사건도 있나요?” 되물었다. 그러자 부장검사는 “정치적인 사건의 기소”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랬다. 어쩌면 내가 익히 짐작하고 있던 사실일지 모르지만 현직 부장검사의 입을 통해 ‘새삼스럽게’ 듣게 된 진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 형사사건과 달리 정치적인 이유로 누군가를 기소하는 경우 설령 무죄가 나와도 기소 검사에게 일체 책임을 묻지 않는 관행이 검찰에 존재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동안 짐작한 하고 있던 의혹이 사실이었다니, 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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