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모든 시군구에 재택의료센터를 한 개 이상 설치하겠다며 방법을 찾는 모양이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시장 논리에 충실한 민간 의료는 움직일 리 없고, 공중보건의사가 농어촌 일차의료의 새로운 모형을 만들어 낼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농어촌 지자체들이 돌봄통합사업에서 의료를 아예 포기해 버리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현실적으로 남은 선택지는 보건지소와 보건진료소가 거의 유일하다. 주로 농어촌 의료취약지에 자리한 이 기관들은 도시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지역 주민들에게는 중요한 생활기반시설이다. 보건지소에서는 공중보건의사가 일차진료를 제공하고, 보건진료소는 간호사 면허가 있는 진료전담공무원이 사전에 정해진 범위 안에서 일차진료를 맡는다.
안타깝게도 이들 기관의 역할은 강화는커녕 계속 축소되어 왔다. 공중보건의사 수는 가파르게 감소 중이고, 의료대란 시기에 현역 입대한 의대생이 많아 앞으로 더 줄어들 예정이다. 공중보건의사들이 첫해에는 지방의료원 등 공공의료기관에서 수련받고, 2~3년 차에는 의료취약지에서 지역의료 전문가로 성장하도록 지원하자는 제안도 나오지만, 실현까지는 갈 길이 멀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의사가 되는 이들의 계급적 기반이 농어촌 의료취약지에서의 삶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집단으로 쏠리는 경향은 더 큰 장벽이다.
보건진료소의 상황 역시 여의치 않다. 전국 1900여 개 보건진료소에는 평균 경력 12년이 넘는 숙련된 보건진료소장들이 일하지만, 이용자는 줄고 기능은 약화하고 있다. 1인 근무 체제라 진료소를 비우고 교육받으러 가거나 환자 집 방문을 나가기도 어렵고, 의학 기술의 발전을 따라잡을 연수 기회도 부족하다. 1980~90년대부터 지역주민들과 호흡을 맞춰온 진료소장들은 은퇴를 앞두고 있는데, 신규 진료소장들의 역할은 예전 같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일각에서는 법적 근거를 갖춘 보건진료소의 역할을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깎아내리기까지 한다.
농어촌의 돌봄통합, 도시와는 다른 길을 찾자
그럼에도 보건지소와 보건진료소의 가능성을 다시 살피는 이유는 명확하다. 달리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교통이 나아지는 속도보다 빠르게 늙어가는 의료취약지 주민들도 살던 곳에서 여생을 보내길 원한다. 의사들이 도무지 가서 살고 일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지역에는 도시와는 다른 방식으로 일상을 꾸려나가는 주민들이 있고, 이들이 바지런한 매일의 노동으로 지역사회를 돌보고 있기에 지역의 삶이 가능하다.
이런 자명한 사실을 굳이 설명까지 해야 하는 건 농어촌 지역보건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재정립하고 적극 활용하기 위한 정책이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하고 오랜 기간 방치되어 왔기 때문이다. 보건진료소를 고령화 시대에 맞게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역보건을 고민하는 이들의 오래된 숙제다. 다만 지역보건기관의 가능성에 대한 적극적인 상상과 기획을 추진해 낼 만한 정치적 동력과 의지가 부족했을 따름이다.
정부가 돌봄통합을 위한 노력을 약속한 지금, 낡은 편견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 농어촌의 주민들도 충분히 민간의료기관을 찾아 나설 수 있다는 말, 보건진료소 대신 응급이송체계를 개선하고 원격의료를 활용하면 된다는 말은 농어촌의 사정에 대한 무지와 오만 위에 서 있다.
몇 년에 한 번 들어오는 대학병원의 의료봉사 버스, 몇 달에 한 번 들어오는 무료 검진 버스는 돌봄통합과 거의 관련이 없다. 농어촌에 필요한 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적인 일차의료다.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만성질환을 돌보고, 퇴원한 환자의 콧줄과 소변줄을 집에 찾아와 돌봐줄, 역량 있는 의료인이 읍면 지역에도 있어야 한다.
의사가 방문해 재택의료를 제공한다면 이상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오지 않을 의사를 기다리다 의료를 포기하는 상황을 방치하고 조장해선 안 된다. 도시에 맞춰진 의료의 양식을 고수하는 대신, 농어촌의 사정과 주민들의 필요에 맞는 일차의료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낡은 핍박과 편견을 넘어 농어촌 의료를 위한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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