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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민영화 하면 요금 할인된다고? 거짓말~

 

[주장]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과 경쟁력 강화, 아무 관계 없어

13.12.11 12:22l최종 업데이트 13.12.11 12:22l
정은균(jek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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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연혜 철도공사 사장 "민영화 논란 종지부" 코레일 이사회가 '수서 고속철도 주식회사 설립 및 출자계획'을 의결한 지난 10일 오전 서울 중구 코레일 서울사옥 기자실에서 최연혜 철도공사 사장이 수서발 KTX 법인 및 철도파업 관련 발표한 뒤 승강기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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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전 한국철도공사(아래 코레일)가 수서발 케이티엑스(KTX) 자회사 법인 설립과 출자 계획 의결을 강행했다. 최연혜 코레일 사장은 의결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코레일 이사 12명이 '수서 고속철도 주식회사 설립 및 출자계획'을 전원 동의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최 사장은 새로 생길 '수서 고속철도 주식회사'를 코레일의 계열사로 규정했다. 노조나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민영화가 아니라 코레일 계열사의 하나로 경쟁력 강화와 효율성 증대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는 논리를 강조한 것이다.

 

2015년에 개통할 예정인 수서발 고속철도는 강남 수서역에서 출발한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기존 경부선과는 별개 노선으로 운영된다. 코레일의 이번 결정은 그 노선을 운영하는 계열사를 새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코레일이 모회사, '수서 고속철도 주식회사'는 자회사가 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코레일은 '자회사'를 '계열사'라고 하면서 경쟁력 강화와 효율성 증대를 외친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자회사는 모회사를 보충하는 역할을 갖는 게 일반적이다. 모회사의 사업 부문을 일부 보충하거나, 모회사의 사업과 관련한 부문에 진출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기여하는 게 자회사의 설립 목적이다. 하지만 지금 코레일은 '어미' 회사와 경쟁하는 '자식' 회사를 만드는, 유례 없는 실험을 강행하고 있다.

 

이 '역사적인' 실험의 추진 근거는 앞서 밝힌 경쟁력 강화와 효율성 증대다. 과연 그럴까. 최근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 객원 연구위원이 쓴 책 <철도의 눈물>(후마니타스)을 통해 이 문제들을 살펴보자.

 

경쟁이 시작되면 값이 싸진다?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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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철도노동조합이 수서발 KTX 운영회사 설립 이사회 개최 중단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한 지난 9일, 서울 중구 서울역 열차 승강장에 무궁화호 한 대가 도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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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경쟁 시작 1만5000원이 싸집니다!'

 

국토부가 누리집에 띄웠던 수서발 케이티엑스 민영화 선전 문구 중 하나다. 지하철 안내 전광판이나 고속도로·국도의 교통 안내판에서는 케이티엑스 민영화가 20% 요금 할인을 가져온다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1만5000원'과 '20%'의 진실은 무엇일까.

 

박 연구위원이 쓴 <철도의 눈물>에 따르면, 이 '1만5000원'은 서울-부산 구간을 기준으로 산출된 것이다. 2012년 5월 현재 서울-부산 간 케이티엑스 평일 요금은 5만3300원이다. 이 금액에서 1만5000원을 할인하면 3만8300원이 나온다. 할인율이 28%나 된다. 국토부는 초기에 이 20% 요금 할인을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가 입찰에 참가하는 민간기업에 제시한 사업제안서는 할인 기준 10%에 참여 업체가 1% 인하할 때마다 10점씩, 15% 한계까지 최대 50점의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바뀌어 버린다. 사업에 참여한 민간 기업이 최대 할인율 15%를 적용해도 할인액은 7995원에 불과하게 된다.

 

정부의 사업제안서에는 또 다른 진실이 숨어 있다. 사업제안서에 잡혀 있는 경부선과 호남선의 운행 횟수는 각각 27회와 24회로 비슷하다. 그런데 경부선은 현재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하는 노선이지만 호남선은 이용객이 경부선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수서발 케이티엑스가 정부의 예측 수요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호남선 승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인구 동향이나 추세는 정체기를 지나 하락세로 진입하고 있다. 지방분권화도 미미하다. 이런 점 등을 고려할 때, 호남선 이용 인구가 경부선 이용객 수준으로 증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박 연구위원은 '호남선 이용객의 증가를 전제로 한 사업 분석은 수서발 케이티엑스 민영화안에 꿰맞추기 위한 비상적인 전망'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수서발 KTX, 출발은 '경쟁'과 상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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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철도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코레일 서울사옥 앞에서 수서발 KTX 운영회사 설립 이사회 개최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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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발 케이티엑스가 기존 경부선 노선과 진정으로 경쟁하려면 노선이 똑같아야 한다. 하지만 신규 철도 노선 건설에 드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고려하면 이런 경쟁 체제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수서발 케이티엑스가 모회사인 코레일이 운영하는 일반철도의 적자 노선을 똑같이 나눠 경영하는 방식, 적자 노선만 운영하는 또 다른 공사를 만들어 기존 공사와 경쟁하게 하는 방식 등도 비교적 공정한 경쟁을 위한 최소한의 시스템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경쟁 시스템은 철도 네크워크의 특성을 교란시키는 비효율적 체제일 뿐이다.

 

애초에 수서발 케이티엑스 노선은 경쟁 시스템과는 무관하게 탄생했다. 박 연구위원은 한국 철도의 비효율이 수도권 중심의 철도 네트워크에 있다고 분석한다. 케이티엑스 수익의 80%, 수송량의 70%가 수도권 이용객이라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이러한 수도권 집중은 서울-금천 구간의 고속선과 일반선이 만나는 지점을 병목 구간으로 만들었다. 이 구간의 선로 포화상태로 철도가 제 기능을 담당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겨난 것이다. 호남선이나 전라선·장항선 등의 비수익 노선도 선로 용량의 한계로 열차 증편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열차 이용의 편의성이 떨어져 승객들이 열차를 외면하는 악순환이 펼쳐지게 됐다.

 

이런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선택된 것이 바로 수서-평택 고속철도 노선 신설이었다. 병목 현상이 일어나는 열차 체증 구간을 우회함으로써 철도의 선로 용량을 확대하기 위해 수서발 케이티엑스가 도입된 것이다. 철도 이용객의 범위를 서울 동남부와 수도권 동부 지역 등으로 확대하고, 서울역에 집중되는 승객을 분산함으로써 열차 좌석의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박 연구위원은 수서발 케이티엑스 개통이 용량 한계로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던 한국 철도에 최소한의 완결적 네트워크를 마련해 철도 발전의 전기가 될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평가한다.

 

그런데도 정부와 코레일은 그 최초의 목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상황을 호도하고 있다. 고속철도는 한 나라의 철도 산업에서 핵심 부문이다. 철도 산업에서는 민영화나 경쟁 시스템이 결코 효율적이지 못했다. 그 나라의 철도 산업을 대표하는 공기업이 독점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세계적인 '표준'이자 철도 산업의 역사였다.

 

민영화 8년 만에 '재국유화'한 영국, 왜?

 

근대화 초기의 철도 산업을 보면 민간 자본이 철도를 부설하고 운영하면서 생긴 호환성의 문제와 경쟁 구간에서의 수익 하락 등 비효율성이 심각했다. 경쟁이 효율성이 아니라 오히려 비효율성을 증대하는 요인이 된 것이다. 각국 정부는 이런 비효율성의 문제를 철도 국유화 정책과 철도 산업의 국가독점체제를 통해 극복했다.

 

네트워크 산업인 철도에서는 경쟁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최초 시작 시점을 전후로 투자돼야 하는 엄청난 비용을 고려할 때 다수의 민간기업이 뛰어들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노선·운행·시설 등을 여러 기업이 다양하게 관리해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철도 산업이 국가 독점적인 체제로 유지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철도 산업의 특성을 무시하고 경쟁 체제를 도입한 나라가 영국이었다. 영국의 철도 민영화 실패 사례는 세계적으로 이미 유명하다. 영국 철도 산업은 하나의 국영철도회사가 20개로 쪼개지면서 민영화의 길을 걷게 됐다. 하지만 민영화가 이룩한 '업적'은 10년에 걸쳐 요금이 최대 90% 올랐다는 사실뿐이었다. 효율성 증진 경쟁이 아니라 요금 인상 경쟁에 나선 결과다.

 

영국은 1년간 통근 열차 요금이 우리나라에는 120만 원인데 영국에서는 840만 원에 달하는 구간도 있다고 한다. 영국은 민영화 8년만인 2002년에 재국유화의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여전히 민영화의 여파로 다른 유럽 국가보다 30% 이상의 높은 요금과 낮은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철도나 지하철·고속도로와 같은 국가 기간 산업은 전 국민이 이용객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주의료원 사태를 두고 언급한 '착한 적자'를 감수할 수도 있는 분야인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정부는 온통 이윤과 경쟁 그리고 효율성의 늪에 빠져 공공 부문 민영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경쟁을 통해 진정으로 효율성이 증대되는 것도 아니다.

 

민간사업자가 뛰어든 지하철 신분당선의 현재 기본 요금 1750원은 내년 1월 1일부터 1950원으로 인상된다. 지난 4월, 정부가 밝힌 기본 요금 인상의 근거는 딱 하나였다. 민간사업자가 손해를 보고 있으니 요금 인상을 통해 손해분을 보전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민자 서울지하철 9호선은 2009~2011년 사이에 서울시의 혈세 715억 원이 지원됐다. 그런데도 그들은 기본 요금 50% 인상을 시도했다. 그 9호선에 출자한 외국계 투자기업 맥쿼리는 6년간 연 13%의 고수익률을 올리고 '먹튀'했다.

 

인천공항철도는 2007년 개통 이후 승객 수가 예상의 7%에 불과해 '혈세 먹는 하마'로 전락해 버렸다. 인천공항철도는 결국 2009년에 코레일에 매각됐다. 이 사업에 참여한 재벌 회사 현대건설은 이미 '먹튀'한 뒤였다.

 

'민영화, 국인에 역행'이라던 최연혜 코레일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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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지난 2012년 1월 31일 <조선일보>에 실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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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은 '경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시스템을 경쟁과 효율성으로 치장해 도입했다. 경쟁과 효율성 만능주의에 빠진 우리 사회의 본질을 제대로 포착한 전략이다. 그들이 '1만5000원'의 '진실' 이면에 담겨 있는 거짓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 이유다.

 

'민영화=경쟁=효율성'의 등식은 하나의 신화다. 수서발 케이티엑스를 민간 경쟁 체제로 강변하는 정부의 논리는 궤변일 뿐이다. 철도노조의 주장이 아니다. 불과 1년 전, "국가 기간 교통망인 고속철도에 민간 참여라는 극단적 방법까지 동원해 경쟁을 도입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며 "국민 편의와 국가경제는 파탄에 이를 것"이라고 밝힌 최연혜 코레일 사장의 말이다. '전 한국철도대학 총장'이라는 직함으로 쓴 글에서였다.

 

'전 한국철도대학 총장'과 '현 코레일 사장'의 차이 때문일까. 그런 최 사장이 약 2년 사이에 표변해 자신의 원래 생각과 180도 다른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어찌 보면 자신의 제자들도 포함돼 있을 철도노조 조합원 5941명을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직위해제하는 일까지 저질렀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다. 한국의 철도가 앞으로 얼마나 더 눈물을 흘려야 하나. 최 사장이 당시 펼친 "국익에 역행하는 고속철도 민간개방"의 논리를 하루빨리 되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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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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