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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언 칼럼] 양적완화축소와 신흥국경제

[이채언 칼럼] 양적완화축소와 신흥국경제
 
 
 
이채언 경제학 교수
기사입력: 2014/02/13 [10:01]  최종편집: ⓒ 자주민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양적완화축소(Tapering)에 대한 거짓 기사가 난무하고 있다. 신흥국통화의 가치폭락, 환율의 급등은 신흥국경제를 결코 해치거나 망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달러경제권에만 재앙이 되고 있다. 왜 그런가? 신흥국에 투자했던 금융자본이 지난 1년 수익이 10% 남짓인데 신흥국 밖으로 탈출하기위해 달러로 환전하면 급등한 환율 때문에 본전만 겨우 건지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진국 언론이 지금 난리를 피우고 있다. 환율을 안정시키지 못하면 신흥국경제가 당장 거덜 날 것처럼 엉터리 분석을 쏟아낸다. 그러나 정작 거덜 나는 것은 엉터리 언론, 엉터리 경제학자, 엉터리 금융전문가들이고 신흥국에 핫머니를 투자해온 금융자본이다. 
 

 
1997년 IMF 요구를 거부했다면?
 
우 리나라도 1997년 IMF사태 때 환율이 아무리 급등해도 그대로 방치했더라면 지난날 IMF와 치욕스런 이면합의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환율이 계속 오르자 초청도 받지 않은 IMF가 한국으로 와서는 돈을 빌려줄 테니 환율을 안정시켜라. 환율을 안정시킨 뒤 우리와의 몇 가지 비밀약속만 지키면 문제없다고 타일렀다. 노동시장 유연화, 공기업 민영화, 정부규제 철폐, 금융업 대외개방 등 종래부터 자기들이 요구해온 신자유주의정책을 약속하면 당장 현금을 조달해주겠다고 했다. 당시 우리가 IMF의 요구를 거부하고 환율급등을 그대로 방치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채권자인 선진국 금융자본도 엄청나게 타격받았겠지만 국내경제도 사실은 엄청난 파괴를 당했을 것이다. 
 
우 리나라 원유재고가 그 당시 40여 일분 밖에 못 되었는데 원유를 수입하려면 우리나라의 신용이 이미 바닥에 떨어졌으므로 원유 제공국에서는 외상거래를 해줄 수 없다는 이유로 달러현금만 요구했을 것이다. 달러현금을 융통하려 들면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한국이 자기들에게 비협조적이었다는 이유로 달러융통을 거절하면서 한국정부를 목조여 올 것이다. 한국정부는 원유수입을 대폭 축소하거나 국내석유가격을 대폭 올려 내국인들의 석유소비를 억제해야 할 것이다. 모든 방면에 걸친 내핍생활을 강조해야 할 것이고 허리띠 졸라매기 운동을 전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국제금융자본은 한국정부를 독재정부로 규정하고 친미적 시민세력들을 부추겨 민주화운동을 지원할 것이다. 그쯤엔 군부가 미국에 비협조적이었던 정부를 하루아침에 전복시킬 구실이 주어질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사정은 IMF 당시보다도 더 사정이 어렵다. 1997년 당시에는 원유재고를 6개월분 이상을 비축하지 못하도록 강제했지만 1997년의 IMF밀약은 우리나라 원유재고를 최고 3개월분을 넘지 않도록 강요하고 있다. 3개월분이기 때문에 평균적인 재고는 1.5개월에 불과하다.
 
그 런데 지금의 신흥국들은 이번 미국의 양적완화축소에 직면해서 환율급등을 방임하고 있다. 환율상승을 막기 위해 국내금리를 올리면 기업의 줄도산이 초래될 것이고 그때에 가서 달러가 신흥국으로 되들어가 그곳의 자산들을 헐값으로 매집할 기회가 주어질 텐데 지금은 국내산업의 보호를 위해 금리도 올리지 않는다. 그러면 ‘달러현금을 더 이상 융통해 주지 않을 텐데 수입상품에 대한 대금결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여기서는 우려하지만 이제 그들은 달러 없이도 수입상품에 대한 대금결제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상해협력기구(SCO)체제에 옵저버 자격으로라도 참여한 나라들은 자국통화로도 대금결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자본의 국내진출이 국격?
 
오 히려 이젠 신흥국에서 빠져나온 달러가 갈 곳을 잃어버렸다는 게 더 큰 문제이다. 미국 자본시장이 양적완화축소의 직접적 영향으로 지금의 신흥국보다도 활기를 더 잃고 있다. 그렇다고 다시 신흥국으로 되돌아가려고 해도 지금은 자산가치가 환율급등으로 너무 올라가 있다. 지난 6월 미국 연준의 양적완화축소 소문이 한때 나돌았을 때 이번처럼 신흥국에서 빠져나온 달러는 미국으로는 되돌아가지 않고 중국으로 주로 유입되는 현상을 보였다. 이를 본 중국정부가 그때부터 더 이상의 달러유입을 방어하기 위한 법적조치를 모색했다. 그래서 지난해 12월 중국정부는 더 이상 정부차원에서의 공식적인 달러매입은 않는다고 선언했다. 달러거래가 시중의 민간인들끼리만 이루어지도록 허용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민간인들끼리의 달러거래마저 법으로 금지할 것을 검토 중이다. 
 
중 국과 러시아는 금융자본의 성격을 제대로 꿰뚫고 있다. 가령 한국에 달러가 아무리 많이 유입되어도 그 달러는 한국경제에 백해무익하다. 언제라도 조그마한 변수만 생기면 한국을 이탈할 핫머니이기 때문에 늘 달러준비금을 현금으로 비축해두지 않으면 환율급등을 피할 수 없고 그것을 방어하려 들면 그땐 너무 늦다. IMF가 요구하는 부당한 조건들을 수용해야하기 때문이다. 3천억 달러에 이르는 달러현금을 언제라도 인출 가능한 형태로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수입대금의 결제 같은 것에는 한 푼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당장 사용하지도 못하는 그런 달러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높은 투기수익을 거두어가도록 정부는 달러유치를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고율의 수익이 보장되는 가스, 전력, 통신, 철도, 항만, 공항 등에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할 뿐 아니라 언제라도 주식을 팔고 나갈 수 있도록 안정된 환율을 보장해주고 있다. 서구에서 교육받은 돌팔이 경제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외국 금융자본이 한국에 투자하러 들어오는 것은 한국의 국격이 그만큼 올라갔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선전하는가하면 정부의 신자유주의정책을 부추기고 합리화하는 데 열을 올린다. 서구에서 교육받았다는 이른바 한국의 경제전문가들의 지적수준이 실제로는 신흥국의 토종 경제학자들만도 못한 수준임이 이번에 드러나고 있다.
 
소멸되고 있는 달러체제
 
이 제는 저들이 호되게 당할 차례가 되었다. 양적완화축소로 신흥국 환율이 급등하자 달러경제권은 지금 큰 낭패에 직면했다. 미국 금융자본은 연방정부에 대해서는 채무한도를 정해 더 이상 빌려주지 않으면서 자기들 금융기관에 대해서만은 2009년 이후 매년 1조 달러씩 공여해 왔다. 지난 금융위기 때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최소 23.7조 달러에 이르는 손실을 감추기 위해서는 최소 23.7조 달러의 이자지급액에 해당하는 금액만은 어딘가에서 매꾸어야 했기 때문이다. 양적완화란 이름으로 그들이 보유한 쓰레기 유가증서들을 중앙은행이 현금과 맞바꾸어줌으로서 공으로 돈을 사실상 퍼준 것이다. 연방정부에 대해서는 한 푼도 안 빌려주면서 자기들 금융자본에 대해서는 1조 달러씩이나 공으로 넘겨주다니? 대중들의 정당한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스스로 양적완화를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달러체제의 그동안의 약점을 고스란히 노출시키게 되었다. 
 
신 흥국시장에서는 결정적으로 한국을 비롯한 달러경제권 국가의 제조업이 가격경쟁력을 잃게 되었고 더 이상 수출위주 정책을 추진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거시경제의 펀더멘털이 달러경제권에서는 다시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명상을 입게 되었다. 달러체제 자체가 급격히 사라질지 모른다(이는 미 연방정부의 소멸도 초래할 수 있다) 그것을 대신할 새로운 질서 즉, 자국통화/상대국통화에 의한 결제체제는 이미 지구촌의 절반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달러체제를 밀어내고 금년 중에 정착할 것이다.
 
<진보정치 6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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