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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토관 얼어 계기판 먹통된 뒤 기수 올리다가…”

등록 : 2015.01.02 19:07수정 : 2015.01.0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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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인도네시아 인근 자바해에 추락해 사라진 에어아시아 8501편의 항공기인 에어버스 320-200(등록부호 PK-AXC)이 2011년 8월7일 싱가포르 창이공항의 활주로를 달리고 있다. 이 항공기는 에어아시아의 상징인 빨간색을 칠하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수라바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등 단거리를 비행했다. 에어버스 320 시리즈는 지난 11월말까지 6000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 기종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토요판] 뉴스분석, 왜?
에어아시아 추락 시나리오

▶ 지난 12월28일 새벽, 한국인 세 명을 포함한 승객과 승무원 162명을 태운 에어아시아 여객기 8501편이 인도네시아 자바해 해상으로 추락했습니다.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현대의 항공기는 웬만한 악천후에도 끄떡없다는 게 항공 전문가들의 말입니다. ‘항공재난은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에서 온다.’ 아직은 단정하기 이르지만, 2009년 악천후 속에서 대서양에 추락한 ‘에어프랑스 447’ 사고가 떠오릅니다. 이번 사고의 한 시나리오를 추적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수라바야는 자카르타를 잇는 인구 300만명의 제2의 도시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그렇듯이 이 도시 사람들도 싱가포르에 가서 노동을 하고 업무를 보고 때로는 관광을 한다. 28일 새벽 5시35분에 출발하는 에어아시아(QZ) 8501편에 탄 승객 155명 가운데 149명이 인도네시아 사람이었다. 한국인이 3명, 싱가포르인, 말레이시아인, 영국인이 각각 1명이었다. 인도네시아인 이리얀토 기장과 프랑스인 부기장, 5명의 승무원과 엔지니어를 포함해 모두 162명이 새벽 비행기에 탔다.

 

 

난기류 때문에 우회로를 선택했다면

 

이륙한 에어아시아 8501은 유럽의 항공기제작사 ‘에어버스’가 만든 ‘A(에어버스)320’ 시리즈 중 하나였다. 미국의 항공제작사 ‘보잉’의 737과 함께 주로 대륙 내 중·단거리 구간을 운항하는 기종으로, 에어버스 누리집에 따르면 2014년 11월 기준으로 6331대가 주문돼 6092대가 운항 중인 ‘베스트셀러’다.

 

에어아시아 8501은 이날도 바지런히 날았다. 항공정보 웹사이트인 ‘플라이트레이더24’를 보면, 등록부호 PK-AXC의 이 항공기는 저가항공의 젊은 이미지를 상징하는 빨간색 도색을 하고 수라바야, 자카르타, 쿠알라룸푸르 등 동남아시아 자바해 연안의 도시를 쉼없이 돌아다녔다. 사고 전날인 27일만 하더라도 새벽 5시53분 수라바야를 출발해 쿠알라룸푸르를 갔다 왔고 다시 수라바야를 기점으로 자카르타, 쿠알라룸푸르의 왕복 비행을 완수했다. 총 여섯 번의 비행이었다. 한 시간 안팎 연착하고 40여분 만에 승객을 내리고 태우는 등 저가항공의 특성인 빡빡한 스케줄을 완수했지만, 자바해에 짙게 깔린 검은 구름을 보기까지 이 빨간 비행기는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28일 오전 6시12분 이리얀토 기장은 상공의 먹구름 때문에 왼쪽으로 기수를 틀고 운항고도를 해발 3만2000피트(9754m)에서 3만8000피트(11,582m)로 올리겠다며 인도네시아 관제탑에 항로 변경을 요청한다. 그러나 관제탑은 해당 고도에 다른 항공기가 운항 중이라고 답한다. 이것이 마지막 교신이었다. 2분 뒤 관제탑은 왼쪽으로 7마일(11㎞)을 비행해 3만4000피트(10,363m)에 진입하라고 안내한다.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6시16분만 해도 8501은 관제탑 레이더에서 개미처럼 북진하고 있었다. 2분 뒤인 6시18분, 비행기는 레이더에서 사라진다. 7시30분 싱가포르 창이공항, 인도네시아 노동자와 여행객들을 내려주기로 되어 있던 빨간 비행기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원래 이번 사고는 지난해 3월 일어난 말레이시아항공(MH) 370 실종사건을 연상케 했다. 뚜렷한 이유 없이 레이더망에서 사라진 말레이시아항공 370은 아직까지도 항공기로 확증될 만한 잔해가 발견되지 않아 항공사고 최대의 미스터리로 떠올랐다. 에어아시아 8501도 수수께끼의 심연 속으로 빨려드는 듯했다. 그러나 이틀 뒤인 30일 인도네시아 중부 칼리만탄 해안에서 약 170㎞ 떨어진 바다에서 기체 잔해가 발견되면서, 사고의 원인을 두고 여러 가지 추정이 나오고 있다.

 

맨 먼저 드는 의문은 왜 인도네시아 관제탑이 사고기의 항로 변경을 재빨리 승인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2분 뒤에야 우회항로를 제안한 건 너무 늦은 것인가. 그러나 항공전문가들은 낯선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보통 적란운이나 먹구름, 태풍 등 기상현상이 예상되면 항공기는 정규항로를 이탈하여 우회로를 선택한다. 조종사는 관제탑에서 전달하는 기상정보와 비행기에 부착된 웨더레이더(레이더를 통해 기상현상을 감지하는 장치)가 주는 정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위험지대를 피해 간다. 고도를 높여 구름 위로 지나가거나 아예 에둘러 가는 게 일반적이다. 사고기도 정규항로 왼쪽의 고지대로 우회하는 항로를 요청했다. 근처에 형성됐던 것으로 보이는 두께 5~10㎞의 적란운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게 인도네시아 현지 언론들의 추측이다.

 

하지만 항공 교통량이 많으면 우회로도 붐빈다. 사고 당시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이 3만8000피트(11,582m) 상공에서 운항하는 등 주변 항공기만 5대였다. 대도시 국제공항 주변에서는 이보다 더 많은 항공기가 정체하기 때문에 낯선 일은 아니다. 에어아시아가 관제탑의 우회항로 불승인 뒤에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다수 항공전문가는 설사 항공기에 호의적이지 않은 기상지대를 통과하더라도 치명적이진 않다고 말한다. 비행기를 타본 사람이라면 터뷸런스(난기류)를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경우다. 기장은 속도를 낮추고 기류의 흐름을 탄다. 덜컹거림 때문에 승객들은 불안해하지만 기장에게는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타고 가는 것과 비슷하다. 한 국내항공사의 한 기장은 “터뷸런스가 나타나면 권장속도로 속도를 줄인다. 엔진이나 날개의 장치를 켜서 계측장치가 얼지 않도록 조심히 통과한다”고 말했다.

 

그럼, 문제는 에어아시아 8501이 어떤 과정을 거쳐 추락에 이르렀느냐다. 항공기가 어떤 기상현상에 직면했고, 항로 변경을 승인받지 못한 이리얀토 기장이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그리고 어떻게 항공기가 ‘공기역학적 실속’(aerodynamic stall·비행기가 양력을 상실한 상태)에 빠져들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사고기가 악천후로 인해 물리적 충격을 받았을 가능성이다. 항공기는 생각보다 자주 번개를 맞는다. 지금까지도 1963년 12월 팬암 214 여객기(보잉 701-121)가 번개에 맞은 사고는 항공재난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당시 메릴랜드 상공을 날고 있던 기체의 날개를 번개가 직접 때리자, 날개 하단의 연료탱크가 폭발했다. 조종사는 “메이데이”(비행기 위급상황시 조난신호)를 외쳤지만, 항공기는 이내 추락했고, 탑승객 전원인 81명이 숨졌다. 이 사고로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미국 상공을 운항하는 민항기에 낙뢰사고를 방지하는 방전장치의 부착을 의무화했고, 지금은 세계의 거의 모든 민항기가 번개의 위험 없이 운항한다. 번개의 고압전류는 날개와 꼬리 뒷부분에 있는 방전장치를 통해 밖으로 배출된다. 그을음조차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자카르타 찍고 쿠알라룸푸르 찍고…
바지런히 날던 저가항공
기장 “왼쪽으로 상승하겠다”
관제탑에 요청하고 사라져
‘미스터리의 6분’은 블랙박스에

 

시속 700~800㎞로 돌진하는 항공기
조종사의 감각은 부품에 달렸다
속도·고도 측정하는 ‘피토관’
얇게 얼어도 계기판은 엉망 된다
‘에어프랑스 447’ 사고의 재판인가

 

기체 머리 부분에 장착돼 속도, 고도를 측정하는 피토관. 2009년 에어프랑스 447 추락사고 이후 악천후 때 얇게 끼는 얼음 문제로 논란이 되어왔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피토관 착빙은 에어버스의 중대 관심사”

 

이렇듯 악천후가 직접적으로 항공기를 떨어뜨리진 않는다. 웬만한 적란운이나 난기류 등 위험지대를 통과해도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현대 항공기는 추락할 정도로 물리적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미국 뉴스전문채널 <시엔엔>(CNN)의 기상전문가 캐런 매기니스도 지난달 29일 에어아시아 8501이 기상 악화로 추락했을 가능성에 대해 “터뷸런스 때문에 항공기가 추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터뷸런스에 대처하는 기장의 조처가 추락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일부 항공전문가들은 2009년 대서양에 추락해 228명의 사망자를 낸 에어프랑스(AF) 447 사고를 환기시킨다. 에어프랑스 447은 이번 사고기와 가장 비슷한 환경과 조건에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프랑스 파리로 가고 있었다. 항공기 기체는 에어버스에서 만든 A330이었으며, 사고 당시 천둥과 번개가 치는 적도의 난기류에 있었다. 재앙은 가장 사소한 곳에서 시작됐다. 1986년 고무패킹 하나가 얼어서 폭발로 이어진 우주선 챌린저호처럼 작은 부품의 오작동이 걷잡을 수 없는 재난으로 이어졌다.

 

문제의 부품은 ‘피토관’(pitot tube)이라 불리는, 1m도 되지 않는 작은 계측장치다. 항공기 동체 앞부분에 장착되는 피토관은 자신을 통과하는 기체의 압력을 측정해 항공기의 속도와 고도 등을 산출한다. 그런데 높은 습도와 낮은 온도(주로 높은 고도의 상공)에서는 피토관에 ‘크리스털 아이스’라는 얇은 얼음이 낄 수 있다. 이때 피토관은 제구실을 못하게 되고, 조종석 계기판에는 오류 덩어리 정보가 뜬다. 항공기 속도와 고도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기민하게 대처하려고 해도, 창밖엔 드넓게 펼쳐진 하늘뿐이라서 제대로 된 공간과 속도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조종사들에게는 목숨을 건 난제로 다가오는 것이다. 국제민간조종사협회(IFALPA)의 사고조사관으로 일하는 신동훈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 안전실장이 30일 말했다.

 

“일반적으로 오버스피드가 나오면(항공기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표시되면) 기장은 마치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처럼 기수를 높이고 파워를 빼서 속도를 줄일 겁니다. 반대의 경우에는 기수를 낮추고 파워를 넣어서 속도를 높이겠지요. 에어프랑스 447처럼 오버스피드가 아닌데도 계기판에 잘못된 정보가 뜨면 조종사는 잘못된 대응을 하게 되는 거지요.”

 

시속 700~800㎞ 이상으로 전진하는 두어평의 좁은 조종실에서 기장과 부기장은 빠르게 지나가는 기체 외부의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시속 100㎞로 달리는 자동차 운전자와는 아주 다르다. 돌풍, 낙뢰, 난기류,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장애물. 인간 지각으로는 파악이 불가능하다. 조종석 계기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잘못된 계기판 정보는 치명적인 사고를 부른다.

 

에어프랑스 447 사고가 일어난 뒤 유럽항공안전국(EASA)은 피토관 교체와 개선을 지시했다. 에어버스는 2009년부터 A330과 A340에 들어가는 해당 모델의 피토관 교체를 하고 있지만, 기술적 논란은 아직도 여전하다. 유럽항공안전국은 지난 10월에도 피토관과 관련한 기존 조처가 높은 고도에서의 착빙현상을 완전 방지하는 데는 미흡하다며 추가 개선 조처를 지시했다. 이번에 추락한 에어아시아 8501에 피토관과 관련한 수리가 이뤄졌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 경제주간지 <포브스>의 항공 칼럼니스트 존 골리아는 “피토관의 착빙현상은 에어프랑스 447 사고 이후 에어버스 항공기의 중대한 관심사가 되어왔다”고 말했다.

 

2011년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두 건의 항공사고가 피토관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09년 6월 홍콩에서 일본 도쿄로 향하는 노스웨스트항공은 3만9000피트(11,887m) 상공에서 폭우를 만나면서 갑자기 속도계가 이상을 일으킨다. 자동운항장치가 꺼지고 경고신호가 울리는 가운데 조종사들은 직접 조종대를 잡아 기체의 중심과 속도를 잡는 데 성공해 무사히 도쿄에 착륙했다. 2009년 5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브라질 상파울루로 향하던 탐(TAM)항공 8091편의 계기판에도 갑작스런 감속과 고도 저하가 표시됐지만, 조종사는 대체장치를 활용해 아무 사고 없이 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조종사는 왜 기수를 올렸나?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1일 조사당국에서 일하는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에어아시아 8501이 추락 직전에 믿기 어려울 만큼 가파른 경사로 급상승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레이더 분석 결과, 이런 경사도는 에어버스 320의 설계 한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왜 이리얀토 기장은 항공기의 기수를 비정상적으로 올렸을까. 피토관의 착빙에 따른 계기판 오류가 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 이런 급기동의 원인을 파악하는 게 에어아시아 8501의 추락 원인을 밝혀내는 핵심적인 열쇠다. 항공전문가들은 예단하기 곤란하다면서도 악천후 때 발생할 수 있는 항공기의 결함, 조종사가 취할 수 있는 여러 시나리오에 대해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행기는 항공사고를 거치면서 최첨단 기술로 무장했다. 항공전문가들은 요즈음의 항공재난은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의 문제로 발생한다고 말한다. 8501의 추락 원인은 조종사들이 관제기관과 웨더레이더의 기상정보를 얼마나 잘 판단해 최악의 위험지대를 벗어나는 항로를 짰느냐, 그리고 만약 계기판에 문제가 생겨 자동운항장치가 무용지물이 됐을 경우 컴퓨터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얼마나 잘 항공기를 기동했느냐의 여부로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 에어아시아가 빠져든 악천후에서는 많은 실전 경험과 연습이 조종사의 기민한 판단과 침착한 대처 능력을 결정한다고 항공전문가들은 말한다.

 

에어아시아 8501의 블랙박스에는 이리얀토 기장이 관제기관과 마지막 교신을 한 6시12분부터 항공기가 레이더에서 사라진 6시18분까지 조종실에서 부기장 등과 나눈 대화가 기록됐을 것으로 보인다. 블랙박스를 찾아내면 미스터리가 어느 정도 풀릴 것이다. 인도네시아 수색당국은 2일 오후까지 기체 일부와 주검 16구를 수습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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