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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 유자광이 '말 갈아탈까' 고민하는 친박에게

 

제2 유자광 될 수 있는 기회 남아... 결정적 순간에 '세상' 택해야

16.12.24 11:05l최종 업데이트 16.12.24 11:05l

 

 

세월호 침몰을 나 몰라라 했던 박근혜 정권이 2년 만인 지금, 망망대해에서 급격히 침몰하고 있다. 새누리당 비박 집단은 배에서 나올 채비를 하고 있다. 이것은 배신도 아니고 변절도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국민들이 박 대통령을 버렸으므로, 그것은 도의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김기춘·우병우와 이정현을 비롯한 새누리당 친박은 아직도 망상에서 못 헤어나고 있다. 선장과 선박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 박근혜 선장은 구명조끼 하나만 발견되면 제일 먼저 껴입고 홀로 바다로 뛰어들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100만 촛불이 출렁거리며 위협을 가하는 상황 속에서도, 선장에 대한 알량한 의리를 못 버리고 있다. 잘못하면 촛불에 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하는 걸까. 하긴, 침몰 중인 선박에서 언제라도 물을 묻힐 수 있으니, 촛불의 화기가 무섭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촛불에 타 죽지 않더라도 바닷속으로 수장될 게 뻔하다. 어느 쪽이든 그들의 미래는 확실하다. 

 

대다수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시국도 시국이지만, 생계도 불확실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불확실한 미래로 근심하는 속에서도, 그들만큼은 확실한 미래를 갖고 있다. 그대로 있으면 죽을 게 뻔하다는 의미에서 그들의 미래는 너무나도 확실하다. 

지금 그들이 '확실한 미래'를 '불확실한 미래'로 바꾸는 방법은, 달리 말해 대다수 사람들의 틈 속에 섞여 목숨과 명예를 조금이라도 보존하는 방법은 1506년 9월 18일(실록상의 음력 날짜는 9월 2일)에 간신 유자광이 했던 일을 본받는 것이다. 

유자광은 조선 세조(수양대군) 때 두각을 보이기 시작해 예종·성종·연산군 시대는 물론 중종시대 초반까지 부귀영화를 누린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역사 발전이나 사회 발전에는 공로를 세우지 못했다. 그저 남을 음해하는 방법으로 권세를 누린 인물이다. 그래서 누가 봐도 간신이었다.  

유자광은 서얼 출신이라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없어, 처음에는 왕실 호위병인 갑사로 세상에 나왔다. '청와대' 경호부대 소속이었던 것이다. 1467년(세조 집권 13년), 휴가를 받아 고향 남원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북방에서 이시애의 반란이 일어났다. 
 

 조선시대 궁궐 경호부대의 수문장 교대의식을 재현하는 모습. 경복궁 흥례문 앞.
▲  조선시대 궁궐 경호부대의 수문장 교대의식을 재현하는 모습. 경복궁 흥례문 앞.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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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중심부에 40년 산 유자광

이때 유자광은 호위병 신분인데도 과감한 행동을 했다. 세조에게 직접 상소문을 올려, 자신을 출전시켜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병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자원하면 북방 전투현장에 배치될 수 있었다. 그래서 바로 위의 상관한테 요청해도 됐을 일을, 유자광은 굳이 임금한테 건의했다.

이 일을 계기로 세조에게 신임을 받고 승진한 이래로, 유자광은 세조시대는 물론이고 세조의 아들인 예종·성종과 손자인 연산군 때까지 계속해서 부귀영화를 누렸다. 그리고 세상의 질시와 비판을 받는 속에서도 항상 권력의 중심부에 있었다.  

이 과정에서 유자광은 권세를 할 목적으로 질 낮은 행동을 많이 했다. 세조가 죽은 직후에는 멀쩡한 청년 장군인 남이를 역모죄로 몰면서 정국을 주도했고, 연산군 때는 신진 유림파(사림파)의 정신적 지주인 김종직이 청년 시절에 쓴 수필을 문제 삼아 공안 사건을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수많은 선비들이 목숨을 잃거나 귀양을 떠났다. 그 유명한 무오사화다. 

세조 시대에서 연산군 시대까지 약 40년 동안 유자광은 가끔 정치적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지만, 머리가 좋고 공안사건 조작의 귀재였기 때문에 세조와 그 아들과 손자의 신임을 받으며 정권 중심부에서 권세를 지킬 수 있었다. 

이렇게 임금에게 잘 보이고 신임을 받는 방법으로 세상살이를 하던 유자광이 1506년 9월 18일에는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했다. 임금을 배신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연산군의 무서운 폭정과 음란한 사생활 때문에 백성들은 물론이고 신하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팽배해가던 1506년, 그래서 연산군 정권이 서서히 가라앉던 1506년. 이때 유자광은 남들보다 먼저 그 선박에서 나오기로 결심했다. 

16세기 문신인 이정형의 <동각잡기>에 따르면, 눈치 빠른 유자광은 1506년 9월에 박원종이 주도하는 쿠데타 계획에까지 가담했다. 그의 머리와 능력을 아는 쿠데타 지도부가 먼저 제안을 했다. 왕을 배신하고 함께할 용의가 있느냐고 제안한 것이다. 

제안을 받은 유자광은 고민을 오래 하지 않았다. 아주 신속하게 대답을 내놓았다. 왕을 배반하겠다고 응답한 것이다. 신속히 반응한 것을 보면, 제안을 받고 답변을 하기까지의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여론의 움직임이나 '대통령 지지율', '새누리당 지지율' 등을 떠올리며 쿠데타의 성공 가능성을 나름대로 계산했을 것이다. 

유자광의 출생 연도는 정확히 모른다. 그래서 1506년에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왕실 호위병으로 있다가 권력 중심부에 들어간 지 약 40년이 지난 뒤였으므로, 1506년 당시에는 나이가 꽤 들었을 것이다. 김기춘보다는 적었을 수 있고, 이정현과는 비슷했을 수 있고, 우병우보다는 많았을 것이다.  

'친박' 유자광이 쿠데타 모의에 가담했으니, 쿠데타 멤버 중에서 이 사실을 늦게 통보 받은 사람들은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선지 쿠데타 지도부는 그에게 다시 한 번 다짐을 받았다. <동각잡기>에 따르면, 지도부는 유자광에게 "만약에 숨어버리거나 머뭇거리면 때려죽이겠습니다"라고 위협했다. 이렇게 기분 나쁜 경고를 받고도, 유자광은 걱정 말고 자기를 믿으라고 안심시켰다.  

그런 뒤에 그는 쿠데타 당일인 9월 18일 연산군을 몰아내는 데 앞장섰다. 군복까지 입고 말에 올라탄 그는 궁궐 대문을 장악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쿠데타 시작 전부터 경복궁 광화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오늘날 촛불집회의 열기가 활활 타오르는 광화문 앞에서 510년 전의 유자광은 주인을 배반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촛불집회 때의 광화문. 유자광은 광화문 앞에서 쿠데타군을 도왔다.
▲  촛불집회 때의 광화문. 유자광은 광화문 앞에서 쿠데타군을 도왔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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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순간에 폭군 대신 세상 택한 유자광

정상적인 경우라면 연산군의 몰락과 함께 사형을 당했을 유자광은 막판에 선택을 잘한 덕분에 일등공신의 반열에 올라섰다. 처벌을 받아도 시원찮았을 인물이 도리어 공신이 되어 새로운 정권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유자광은 연산군이 몰락하고 중종이 왕이 된 뒤에 권력투쟁에서 밀려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중종이 왕이 된 지 6년 뒤의 일이다. 그렇지만 유배 전까지 유자광은 중종 정권의 공신이 되어 연산군 시대를 청산하는 데에 가담했다. 

그랬기 때문에 유자광은 연산군 정권의 공범이라는 악명을 조금은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세상의 부정적 평판도 희석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조금은 덜한 악당이 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끝까지 연산군에 대한 알량한 의리를 지켰다면, 1506년에 죽었을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악랄한 간신 혹은 악당으로 역사에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가 자기 목숨과 명예를 조금이라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결정적 순간에 폭군 대신 세상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김기춘·우병우와 이정현 등의 친박이 지금 와서 박근혜를 배신한다고 그들의 죄악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제라도 뉘우치고 박근혜를 몰아내는 데 가담한다면 그들의 처지와 명예가 조금은 보존될 수 있을 것이다. 유자광 식으로 표현하면, 촛불을 들고 청와대 정문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촛불의 열기를 청와대 경내로 몰아넣는 일에 협조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침몰 중이지만 아직 바닥에 가라앉지는 않았다. 궁궐 대문이 아직 열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제2의 유자광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아직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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