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단독] 80년 5월 22일 美 국무부 보고서 “새로운 권력자와 관계 수립해야”, 광주학살 묵인

 

비밀 해제된 미 국무부 문서, “유혈진압 ‘우려’보다 ‘전두환’ 분석이 1순위”... 추가 병력 승인도 명확히 ‘반대’ 안 해

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17-08-23 22:28:59
수정 2017-08-24 08:56:40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5.18 광주 자료사진
5.18 광주 자료사진ⓒ5.18 자료사진
 

미국 국무부가 광주민중항쟁 당시 전두환 군부세력이 유혈 진압을 하는 것을 알면서도 항쟁세력을 지지하는 것으로 비칠 것을 우려해 성명 발표 등으로 명확하게 이를 반대(disapproval)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또 미 국무부는 “질서가 회복되면 새로운 권력자(전두환)와 관계를 수립하겠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당시 미국 정부가 전두환 신군부의 무자비한 유혈 진압을 방관한 채 오히려 ‘새로운 권력자’ 운운하며 이들의 권력 찬탈을 묵인하는 ‘이중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러한 사실은 미 국무부가 광주에서 유혈 진압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다음 날인 1980년 5월 22일, 백악관에서 ‘정책검토회의(PRC)’가 열리기 직전 국무부 관료들이 국무부 장관에게 미리 결정할 사항을 보고한 문서(2008년 5월 비밀해제)에서 드러났다.

기자가 미국 외교안보 연구소인 ‘윌슨센터’의 문서기록(digital archive)을 통해 찾아낸 보고서(Action Memorandum)에 따르면, 당시 미 국무부는 “추후 광범위한 무질서가 발생하는 토대(seed)를 만들지 않기 위해 한국 당국이 최소한의 무력(force)을 사용해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미국 국무부가 광주민중항쟁 당시 교묘하게 유혈 진압을 반대하지 않고 새 권력자 전두환과의 관계 수립에만 골몰한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국무부가 광주민중항쟁 당시 교묘하게 유혈 진압을 반대하지 않고 새 권력자 전두환과의 관계 수립에만 골몰한 사실이 밝혀졌다.ⓒ비밀해제된 미 국무부 문서 캡처

국무부의 이러한 보고는 이미 비밀 해제된 당시 백악관 문서에서 드러났듯이, 실제로 이후 백악관 상황실에서 열린 정책검토회의(PRC)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미국 정부가 당시 전두환 군부 세력의 무력 사용을 그대로 묵인한 것이다.

미 국무부는 또 보고서에서 “우리(미국)가 무질서가 점증하는 이 상황에서 성명 발표는 반정부 세력을 부추긴다는 의미(imply)를 주기 때문에 피하고, 사적이든 공적이든 한국에서 군사적인 진압(crackdown)을 반대한다는 신중하게 조정된(calibrated)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는 구체적인 행동 요령으로 “현시점에서 미국 정부는 다소 ‘로키(low-key, 낮은)’ 자세를 취해야 한다”며 “더 이상 언급하는 것은 한국의 양쪽(군부-항쟁시민)에서 상황을 더 악화(inflame)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질서와 안정이 회복되면 우리의 우려가 담긴 보다 구체적인 표현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전날 미국 국무부가 한국 대사관의 비밀보고를 통해 전두환 군부 세력의 야만적인 유혈 진압 내용을 보고받았음에도, 사태를 그대로 방관한 것이다. 21일 전두환의 계엄군은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들을 향해 집단발포해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전두환 평가와 분석이 백악관 의제 일 순위로 드러나 
미 정부, “군인 동원 유혈사태 우려하면서도 군부대 사용 승인”

미 국무부는 또 “질서가 다시 회복되면, 새로운 권력자(new power holder)와 관계를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국무부는 유혈 사태는 방관한 채, 당시 이미 실권자로 부상한 전두환과의 관계 수립을 모색하고 있었음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미 국무부는 이 보고서에서 같은 날 백악관에서 정보기관 등 전체 주요 고위직 관료가 참가해 열릴 정책검토회의(PRC)에서 정보기관이 평가해야 할 가장 일 순위도 ‘전두환에 관한 평가’를 들었다.

미 국무부는 “특히, 전두환의 군사적 지도력의 의도가 무엇인지, 전두환이 군부에서 지위를 어떻게 보장(secure)하고 있는지”를 가장 먼저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당시 미국 정부가 유혈 진압에 관한 우려보다 실권자로 부상한 전두환에게만 더 관심이 있었음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총 6페이지로 되어 있는 이번에 드러난 이 보고서에서는 미국 정부가 “당시 진압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이 폭동진압 경찰처럼 잘 훈련된 인력이 아니라서 민간인과 충돌할 시 유혈 사태(bloody incidents)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를 이미 하고 있었다는 내용도 밝혀졌다.

하지만 이 보고서에서도 나와 있듯이, 미국 정부는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의 작전 통제 아래에 놓여있던 공수부대 등을 전두환이 광주민중항쟁의 유혈 진압에 사용하는 것을 승인했다.

이 보고서는 “한국(군부)이 두 번이나 군대의 민간인 (진압) 사용을 연합사령부(CFC)에 요청해와 이를 허락했다”고 기술했다. 그러면서 “한국 군부가 추가로 병력 파견을 요청해 온다면, 주한 미국 대사나 주한 미군사량관이 우려(concerns)를 표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군부 세력에 의해 야만적인 민간인 학살 사태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당시 전두환 군부 세력의 추가 병력 승인 요청 가능성에 관해서도 명확하게 ‘반대’하지 않고 단지 ‘우려’만 표시한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