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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 결정 이후 한반도 미래는?

<지상중계> 제31회 통일전략포럼 요약
곽태환  |  thkwak3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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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9.16  13:3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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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환 (전 통일연구원 원장)

 

   
▲ LA통일전략연구협의회는 지난 8일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제이제이 그랜드호텔(JJ Grand Hotel)에서 제31회 통일전략포럼을 진행했다.[사진제공-통일전략포럼]

LA통일전략연구협의회(회장 곽태환)는 지난 8일 오후 6시 30분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제이제이 그랜드호텔(JJ Grand Hotel)에서 제31회 통일전략포럼을 진행했다. 이날 3시간 동안 진행된 포럼은 “사드 배치 결정 이후 한반도 미래”란 주제로 패널리스트로 오인동 박사(재미 의사/통일운동가), 민경석 박사(클레어먼트 대학원 대학교 종교학과교수), 안태형 박사(LA통일전략연구협의회 수석연구위원), 이태선 선생(재미동포 경제인) 등이 참석하였고 곽태환 박사(전 통일연구원 원장)의 진행과 사회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이번 포럼 진행 중에 북한의 제5차 핵 탄두실험 소식을 급보로 접하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제5차 핵실험 관련하여 첫 번째 학술 토론회였다고 생각한다.

지금 한반도 정세는 2016년 초에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단.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로 유엔결의 2270호가 채택되었고 국제사회의 초강경의 대북제재로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진전되고 있다. 여기에다 한미 정부의 7월 8일 사드(THAAD) 한반도 배치 결정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격렬하게 반대하여 왔으며 특히 중국은 이미 보복조치를 가시화되고 있으며, 국내적으로 국론분열이 더 심화되고 있으며 동북아 안보정세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이번 포럼의 목적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국정부가 사드 배치 결정을 강행할 것인지? 철회할 것인지? 혹은 제3의 대안을 모색할 것인지? 등 사드 배치 결정과 관련된 많은 과제들을 논의하기 위해 남가주 한인사회 지성인들을 모시고 보수와 진보 지성인들이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하여 상호 의견을 나누면서 한인동포들의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었다.

   
▲ 통일전략포럼 참가자들. [사진제공-통일전략포럼]

"현시점에 사드가 실전 배치된다면 한반도 비핵화, 평화체제 구축에 가시밭길"

본 토론회 내용을 간단하여 핵심요점만 정리하였다.

첫째로, 사드 배치 결정의 배경과 문제점을 간단히 검토하였다. 한미 정부가 제시한 사드 배치 결정의 안보논리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방어목적”이며 제3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고 “자위권 차원”에서 결정하였다고 한다. 안보논리에 대한 찬반론이 격렬하게 제시되었다. 토론자들이 한미 입장과 북한 입장(아래 요약문 참조)을 잘 정리하였다.

둘째로, 사드 배치 결정은 단순한 안보논리로 결정되었기에 구체적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의 의미를 집중적으로 토론하였다. 구체적인 질문은 북한이 핵전쟁을 하겠다는 의도가 있는가? 만약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대남 공격하면 핵전쟁이 아닌가? 그러면 이것은 북한의 자멸행위가 아닌가? 북한이 핵전쟁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 사드의 실효성 문제도 제기되어 사드 1포대(48개 미사일)가 100개 미사일이 동시에 날아오는 것을 어떻게 요격할 수 있는가? 등을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셋째로, 사드 배치 결정의 국제정치적 시각에서 아래 토픽들을 논의하였다. 1)동북아 안보지형의 불균형, 2)중.러의 대북제재의 약화, 3)미국의 MD 방어체계의 편입(?), 4)박근혜 정부의 ‘조건부 사드배치론’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의 반응 등을 논의하였다.

넷째로, 이번 라오스 한미정상회담(9.6)에서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력을 통해 대북 억제력을 유지해 나가로 합의한 것은 미국의 핵우산을 제공하는 의미가 있어 북한이 핵미사일 사용을 억지하게 되면 구태여 사드를 배치할 필요성이 있는가?에 대한 토론과 논의도 있었다.

한반도 미래에 관련하여 사드 실전배치와 남북관계와 한반도 통일비전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한반도가 미.중 경쟁 속에서 한반도 미래는 미중간 핵심이익이 교차하는 지역으로 남게 될 경우에 전쟁의 위험이 증대될 수 있으며 현시점에 사드가 실전 배치된다면 한반도 비핵화, 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통일로 가는 길은 점점 더 가시밭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는데 많은 참석자들이 우려를 표시하였다.

끝으로, 참석자들의 다양한 견해차이로 본 포럼에서 합의를 도출할 수 없었던 것은 유감이나 여러 가지 견해를 들을 수 있는 포럼이 된 것은 주최 측의 입장에서 큰 성과로 생각한다. 본 포럼은 한반도 미래전략연구원과 한반도 중립화 통일협의회와 공동개최 하였다.

다음으로, 패널 참석자들의 발제 요지를 간단하게 소개한다.

   
▲ 포럼에 나선 사회자와 발제자들. [사진제공-통일전략포럼]

안태형, “사드 한반도 배치에 대한 한국과 미국정부의 입장”

1) 사드 배치에 대한 한국정부 입장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사드 배치는 나날이 고조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국가적 안위와 국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내린 자위적 방어조치”이며 “사드가 제3국을 목표로 할 이유도 없고, 실익도 없으며, 그렇게 할 어떤 의도나 계획도”없고 “북한의 핵 위협이 제거되면 자연스럽게 사드 배치의 필요성도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도 “우리 국가의 안위와 국민 생명을 담보로 한 북한의 핵위협이 지금 이 사드 문제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한미 공동발표문에 따르면 양국은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한미동맹의 군사력을 보호하기 위한 자위권 차원의 방어조치로써”사드 배치를 결정했다. 국방부도 사드 배치는 “증대되는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국가 안위를 지키기”위한 것으로 “미국의 MD체제 참여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2) 사드 배치에 대한 미국정부 입장

조쉬 어니스트 백악관 홍보비서는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동맹국들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에 사드를 설치”하기로 했으며 “사드는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에 대한 방어용 미사일”이라고 주장했다. 벤 로즈 국가안보 부보좌관도 “사드는 중국을 향한 것이 아니라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존 커비 국무부 대변인도 “사드의 한국 배치는 계속되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며 “사드는 순전히 방어적인 무기체제”라고 주장했다. 국방부도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대량학살무기와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조치의 일환으로 사드를 주한미군에 배치하기로 합의결정”했으며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만 대응하고 제3국을 목표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라오스 한미 정상회담 기자회견 발표문에서 사드는 “순수한 방어 체제로써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3) 정리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공식입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사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이며, 제3국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둘째, 사드는 순전히 자위권 차원의 방어조치이다. 셋째, 사드는 미국의 MD체계에 편입하거나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많은 문제제기와 비판에 대해서도 한국과 미국정부는 계속 같은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한편, 이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의 미묘한 입장차이가 MD에 대한 언급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한국은 사드 배치가 미국의 MD에 참여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미국은 이에 대한 확실한 입장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이태선, “사드 배치에 대한 북한의 입장”

북측의 관점에서 사드 배치 문제를 들여다보고 북측의 주장을 윤색하여 소개해 볼까 한다. 북측의 주장을 보면 사드 배치는 주한미군의 보호용이며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우위를 추구하는 미국의 정책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사드 배치는 철저히 미국의 국익을 위하여 배치하는 것이라 본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한 것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드 배치는 명백히 남북 간에 평화와 안정이 아닌 반목과 대결을 부채질하고 한반도와 그 주변지역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더욱 격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드는 대륙간탄도미사일과 같이 고도로 날아가는 미사일을 요격하는 체계이다. 이것이 남한에 배치되게 되면 먼 거리에서 진행되는 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초기에 탐지할 수 있다. 따라서 사드가 대한민국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북측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를 감시추적하고 군사적으로 제압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이익 실현에 필요한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사드의 남한배치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중국과 러시아의 변화다. 양국은 사드 배치결정을 계기로 대한민국을 동반자가 아니라 미국의 앞잡이로, 유사시에는 군사적 타격 대상으로까지 여기게 되고 한미일 군사동맹화 그리고 한미 연합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UFG)에 대해서도 강력히 반대해 나섰다.

한편 북중관계는 일시적인 불편한 관계를 시정하고 전통적인 친선협조관계를 공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 반미노선을 취하고 있는 러시아는 북의 SLBM 발사성공을 오히려 찬양한다. 그것은 북의 전략로켓의 과녁이 공동의 적인 미국임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런 즉 북러관계가 전면적으로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 때문에 사드 배치는 대북제재의 약화를 의미한다. 더 나아가 중국의 대한민국에 대한 잠재적 경제 보복까지 감안한다면 대한민국이 사드 배치로 얻는 국익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또한 사드 배치가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부정적이다. 민족내부 문제, 남북관계 문제에 한미동맹을 내세워 사드를 끌어 들이는 것은 결코 민족의 이익에 부합 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일제식민지 역사와 70년 민족분단의 역사를 돌이켜 본다면 자명한 일이다.

우리에게는 지난 시기 7.4 남북공동성명을 비롯하여 남북정상이 합의한 6.15 공동 선언과 10.4 선언 등 민족이 나아갈 길을 밝혀준 좋은 합의문들이 있다. 내년 대선에서는 그 선언들을 존중하고 실천할 수 있는 인물이 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로 선출되길 기대해 본다.

민경석, “사드 토론의 전제로서 주체적 민족통일의 지평과 관점”

사드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문제는 그보다도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어떤 관점에서, 누구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모든 사건의 대응 방법이나 정책 수립은 어떤 관점에서, 어떤 지평에서, 누구의 이익을 위해 대응하고 정책을 수립하느냐에 달려있다. 관점과 지평에 따라 사건의 분석도, 해결방법도, 접근법도, 모두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 국내외에서 일고 있는 토론과 논쟁의 배후에는 모든 토론과 논쟁의 전제가 되는 관점, 지평, 이념의 차이가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예를 들어보자. 국민대학교의 박휘락 교수는 최근의 논문에서 자율성-안보 교환 모델을 이용하여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비대칭 동맹관계에서 약소국인 한국은 자율성을 어느 정도 희생하고 그 대신 안보를 택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이라고 주장하면서 중국보다는 미국을 선택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박휘락 교수 논문의 관점은 안보의 관점이고 그 지평은 약소국은 결국 강대국의 보호를 받기 위해 자율성을 희생하는 수밖에 없다는 현실주의적, 숙명론적 지평이다. 그렇다면 그 안보는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인가? 물론 우리의 국익을 위한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국익은 오직 미국과의 동맹 속에서만 가능한 그런 국익이요 따라서 미국의 세계지배의 전략 안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국익에 항상 예속되는 국익이다. 이것이 과연 우리 민족 전체의 독자적 국익과 일치하는가 하는 문제는 논쟁의 여지가 너무나 크다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관점과 지평을 달리하여 생각해 보자. 우리의 진정한 안보는 분단된 우리의 민족적 역량, 즉 북의 노동력과 천연자원, 남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남과 북의 창조적 두뇌, 이 모든 것을 하나로 합쳐서 통일된 한민족의 자주적 역량을 배양하는데 있다고 우리의 관점을 바꿔 보자. 또 우리의 지평을 바꿔 미국의 세계지배도 이제 종말을 고하고 21세기의 세계는 다중심적 세계 (polycentric world)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런 세계에서는 약소국들의 선택의 여지도 증가할 것이라고 가정해 보자. 
    
이러한 새로운 관점과 지평에서 사드 문제를 본다면 대응의 방법도 달라질 수 있다. 새로운 관점이라고 해서 안보의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안보 문제도 민족 통일의 맥락 속에서 재검토하게 되고, 우리가 추구하는 안보가 민족 통일을 재촉하는가. 또는 더욱 지연시키는가? 민족의 분단과 분열을 더욱 부추기는가. 그렇지 않으면 분단과 분열을 해소하여 통일에로 가는 길을 단축시키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드 문제는 사드의 효율성, 비용문제 등등을 떠나서 그 자체로 한반도의 긴장을 더 증가시키고 미국의 세계 지배전략의 한 부분으로 한민족 전체를 삽입시키는 것이기에 이것은 민족 통일과 자주성의 입장에서 저지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 주체적 민족통일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의 지평도 바뀔 수 있다.  현재의 많은 논쟁이 미국과의 동맹과 중국과의 동반자 관계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따라서 어느 편을 들어야 하느냐 문제로 축소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꼭 한쪽을 택해야 되나? 두 강대국에 대해 주체적 독립성을 지킬 수는 없을까? 지금 남한의 경제력은 북한의 20배도 훨씬 넘는다.  또 지난 몇 십 년 동안 남한은 북한보다 네 배가 넘는 국방비를 지출하면서 무력을 증강시켜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만으로는 부족해서 꼭 미국의 사드를 도입해야 되는가? 이 기회에 자주 국방의 이상도 실천할 때가 되지 않았나? 세계 11대 경제대국이 된 지금 우리는 항상 강대국의 선처와 은총에 우리의 국운을 맡기고자 하는 사대주의 근성과 약소국의 패배주의적 숙명론을 이 기회에 청산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강대국에도 “아니요”할 줄 알아야 한다.

오인동, “북의 핵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토론 있어야”

사드 배치 결정으로 야기된 이 문제에 대한 내실 있는 토론을 위해 곽태환 대표께서 제시한 1)사드 실전 배치 강행,  2)사드 배치 결정 철회,  3)사드 실전 배치의 유보론/연기론 (통일뉴스 8.2 참조)에 대한 생각을 토론회에서 간단히 말하고 이에 대해 우리 겨레 앞에 전개되고 있는 이 새로운 정세와 판세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2016년 초 북은 4차 핵(수소탄) 시험에 이어 인공위성 발사 시위를 했다. 과거 북의 핵시험이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유엔안보리가 5차례의 대북제재 결의를 채택 실행해 왔다. 유엔결의 2270호는 최고 강도 대북제재 결의로, 미국의 주도로 채택되어 지난 3월부터 실행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북은 연이어 여러 차례의 잠수함 발사 미사일과 탄도 미사일 발사 시위를 했다. 그러자 7월에 미국이 남녘의 성주에 사드 배치를 결정하자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와 국민들의 합세의 기운이 늘어가고 있다. 이와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가 결연히 반발하고 있다.

지난 40년 북은 미국에 평화협정을 요구해 왔으나 거부되었고, 미국은 북에 선 혁폐기를 요구했으나 거부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번에 중국이 북핵 폐기와 평화협정 동시 협상을 제안하자 미국은 찬성 의사를 표했다. 그러나 북은 거부했다. 이제 북핵은 평화협정과는 관계가 없다며 비핵화 협상은 미국이나 세계 핵 군축 문제와 더불어서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대북제재 6개월째에 들어섰다. 남 정부는 북 관료들의 탈북이 늘고 북 정권 안에서의 고위관료 숙청도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알리고 있다.

그러면 전에 없던 이런 북과 미국의 대결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갈 것일까? 정전 뒤 남에 미군이 주둔한 채였지만 주로 남북 간의 반목과 대결상태가 계속되다가 1990년대부터는 북의 핵개발 의혹으로 북미간의 문제로 부각되어 1994년 북미 기본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2002년 말에 파기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6자회담이 이뤄져 협상이 진행되던 중 2008년 말에 중단되었다.

남과 북은 어느 길로 갈 것인가? 그리고 이제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대결구도가 시작했지만 곧 미.일과 중.러의 대결 국면으로 판세가 전이될 것이다. 이러한 정세가 남북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즉 이러한 판세에서 남이나 북이 어떠한 행보를 택하느냐에 따라 우리 겨레의 앞날은 결정 될 것이다, 말하자면 남과 북이 함께할 것인지? 아니면 남이나 북이 미.일이나 중.러 중 각기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남북이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지에 따라 동아시아 내지는 패권국들의 세계 판도 또한 새로이 결정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북의 핵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나 대안에 대한 토론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남에서는 거의 모두 북핵 폐기를 얘기하는 듯도 하지만 한편 국민들의 67% 즉 2/3가 자체 핵무장 주장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고로 북핵이 폐기되어야 할 이유에 대한 토론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평화체제 문제에 있어서 북미 사이가 되어야 할 것인지 남과 북 사이의 평화체제가 바람직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에 대한 토론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사드의 성능 등에 대한 기본 자료는 지금도 완성을 위한 개발을 하고 있는 증이어서 많은 부분이 미국의 비밀로 되어 있으나 전문가들의 수많은 글로 우리는 그런 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첫 머리에 얘기한 대로 곽태환 대표께서 제시하신 3개 사항에 대한 토론에 이어 위에 말한 근본 문제인 핵과 평화 문제에 대한 토론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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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지하초염수로 질 높은 소금 생산

[심층분석] 북, 지하초염수로 질 높은 소금 생산
 
 
 
nk투데이 김혜민 기자 
기사입력: 2016/09/17 [02:21]  최종편집: ⓒ 자주시보
 
 

 최근 북한이 우리나라에 없는 것으로 공인되어 왔던 지하초염수를 찾아내고 수 천톤의 소금을 생산해냈다.

지난 5월 24일 노컷뉴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선인민군이 운영하는 평안남도 귀성제염소를 현지지도하여 지하초염수에 의한 소금생산 실태를 파악했다고 보도했다.

이 제염소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로 지난해부터 지하초염수로 소금 생산을 시작했으며, 올해 3월 초부터 현재(5월 말)까지 150여 정보의 염전에서 7000여 톤(t)의 소금을 생산했다고 한다.

2개월 반 동안 정보당 소금 45 톤(t) 정도를 생산한 것이다.

▲ 지난 5월 맛좋고 영양가가 높으며 생산단가도 싸게 먹히는 지하초염수 염전에서 기쁜 웃음을 터트리는 김정은위원장     ©통일뉴스

 

이 정도의 생산력이라면 지하초염수로 연간 정보당 소금 200여 톤(t)을 생산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식품연구원이 2011년 발표한 '고품질 천일염의 생산 및 가공 유통 기술개발' 논문에 따르면 2009년 한국은 정보당 90여 톤(총 염전 3,809정보에서 377,480톤)을 생산했다.

즉, 북한이 지하초염수를 통해 2009년 한국통계에 비해 정보당 2배 이상의 소금을 생산한 셈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귀성제염소에서 "인민군대에서 지하초염수에 의한 소금생산방법을 받아들여 적은 면적의 소금밭에서 많은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너무 기뻐 잠이 오지 않았다"며 현지지도를 온 취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지하초염수로 소금을 생산하면 바닷물에 의한 방법에 비해 약 3배 정도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염전 면적은 30% 정도이고 노동력도 줄일 수 있어 생산 원가가 낮아진다. 

▲ 지하초염수를 직접 손으로 받아 맛을 보는 김정은 위원장     ©통일뉴스

 

지하초염수란?

지하초염수는 바닷물보다 염분 농도가 수배나 높은 지하수로, 지하수 1L에 들어있는 광물질함량이 50g이상인 고농도의 소금생산원료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바닷물의 염도가 3.1%~3.8%로 바닷물 1L당 최대 39g정도의 소금을 얻을 수 있다.

지하초염수는 바닷물보다 많은 양의 소금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하초염수로 생산한 소금은 맛이 좋고 칼륨, 요오드 함유량이 많으며 중금속 함유량이 적어 건강증진 및 식료품 생산, 화장품 등 생활필수품 생산에 이용가치가 높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소금생산 주기와 소금생산면적도 단축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바다물에서 소금을 얻어내자면 저수지, 예비증발지(제1증발지), 증발지(제2증발지), 결정지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지하초염수에 의한 소금생산이 바닷물에 비하여 농도가 높은 지하초염수를 이용하기 때문에 증발면적을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어 증발지 1곳과 결정지만 있어도 소금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지하초염수는 그 경제적 가치가 대단히 큰 부존자원인 셈이다.

북한은 현재 지하초염수에 의한 소금생산기술이 개발도입됨으로써 소금생산지의 범위가 지하초염수가 분포매장되어 있는 전국의 해안지대에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하초염수로 인한 소금생산방법은 세계적으로 상용화된 소금생산법이 아니다.

현재 전 세계 소금의 70%를 암염(과거 바다였다가 육지가 된 지역에 소금이 굳어서 만들어진 소금광산)을 캐내어 얻고 있으며 나머지는 주로 바닷물을 원료로 해서 생산하고 있다.

사해, 카스피해 등에 염호(소금호수)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곳에서 소금이 대량생산되지 않는다.

중국 등의 일부지역에서는 북한의 지하초염수 생산법과 유사하게 1킬로미터 넘게 지하우물에서 염수를 끌어올려 소금을 생산하고 있지만, 수공업적 방법으로 소규모 진행되고 있다.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지하초염수는 땅 속 수십 미터 밑에 존재하며, 밀물에 의해 간석지에 스며든 바닷물이 건조한 기후조건의 영향을 받아 증발농축되는 과정이 오랜 기간동안 반복하여 서서히 땅속에 스며들어 생긴 것이라고 한다.

즉, 지하초염수는 중국 등 일부지역의 염수우물(1킬로미터)보다 훨씬 매장깊이가 얕고 간석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그 양이 많아 소금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2012년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북한의 새로운 소금생산방법이 "여러해동안 지질학계에서 계속돼 온 지하초염수의 존재여부와 관련된 논의에 종지부를 찍고 우리나라(북한) 자연부원(천연자원) 목록을 또 하나 늘인 귀중한 성과"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지하초염수 연구 역사

북한이 지하초염수에 의한 소금생산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8월 서해안 제염소에서 처음으로 지하초염수를 채취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2012년 3월 북한의 대형제염소(30㎢)인 황해남도 연백제염소에서 지하초염수로 인한 소금 생산을 본격화했다.

북한에서는 지하초염수를 탐사하는 속도를 최대한 높일 수 있도록 물리탐사기구가 제작되고 지하초염수를 개발하는 기술, 지하초염수 자원의 형성과정과 분포특징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는 연구성과 등을 자체로 완성했다.

그리고 2014년 10대 최우수 발명가를 소개하면서 '지하초염수에 의한 소금생산방법'을 발전시킨 김태욱 조선인민군 군관을 두 번째 발명가로 꼽기도 하는 등 이 연구를 꾸준히 진척시켜왔다.

북한이 향후 지하초염수로 소금을 자체수급하게 된다면 북한 내 소금생산뿐 아니라 세계 소금 생산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소금의 효용

일반적으로 소금은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될 물질로 알려져 있다.

소금은 동물에게 체내 삼투압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꼭 섭취해야 할 물질로 된다.

소금이 결핍되면 단기적인 경우 소화액의 분비가 부족하여 식욕감퇴가, 장기적인 경우에는 전신 무력, 권태, 피로나 정신불안 등이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보니 고대사회에서 소금을 화폐로 쓰이기도 했었고 소금이 산출되는 해안, 염호나 암염이 있는 장소는 교역의 중심이 되었으며 내륙의 경우 금보다도 더 가치있는 물질로 여겨지기도 했다.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소금을 매우 귀중하게 여겨왔다.

한반도는 산악지형이 많아 과거부터 소금이 귀해 국가 차원에서 소금을 제조 판매하고 중요한 재정세원으로 여겼다.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었을 때 나라에서 구호물자를 백성에게 풀곤 했는데, 이때 굶주리던 백성들에게 가장 요긴한 물자는 쌀이나 보리 같은 식품이 아니라 소금이었다는 기록이 전해져 내려올 정도다.

현대사회에 들어와 소금은 산업 여러 분야에 꼭 필요한 중요한 공업원료로도 되었다.

한국에서 소비되는 15%만의 소금이 식품 용도로, 나머지 85%가 모두 화학 공업, 일반 공업 및 산업용으로 사용될 정도로 소금은 현대산업에 꼭 필요한 원료다.

특히 소금을 전기분해하면 나트륨 기(Na)와 염소 기(CI)가 나오는데 이것을 통해 여러 화학제품이 제조되고 있다.

소금은 중화제, 비누나 세제 원료로 쓰이는 가성소다(Caustic Soda), 유리, 플라스틱 제조에 쓰이는 소다회(Soda Ash), 염산, 플라스틱(PVC), 농약, 화약 등의 원료, 수돗물 소독, 락스 제조에 쓰이는 소독제, 항공유(jet oil) 정제 시 수분 제거, 정수용, 피혁공업, 사료제조, 염색, 색소공업, 식육 부산물 처리, 제설용, 아이스크림 제조 등 다양한 곳에 쓰이고 있는 것이다.

소금이 식품, 산업 전반적으로 중요하다보니 한국에는 소금산업진흥법이 제정되어 있기도 하다.

 

소금의 수급

한반도에는 지금까지 암염, 지하 염수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한국과 북한 모두 주로 서해 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해왔다.

그러나 서해 염전만으로는 다양한 산업에 쓰이는 소금의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 한국의 경우 많은 량의 소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고품질 천일염의 생산 및 가공 유통 기술개발' 논문에 따르면 한국은 2007년 소금 총 수요량 중 85%(약 300만 톤)을 호주, 중국 등에서 수입했다.

현재 국내 천일염의 인기가 늘면서 산업규모가 커졌고 이로 인해 국내 소금의 비중이 늘어나긴 했지만, 한국은 아직까지 소금을 자체적으로 100% 수급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식품연구원, '고품질 천일염의 생산 및 가공 유통 기술개발', 2011
조선의 오늘, '경제적효과성이 매우 큰 지하초염수에 의한 소금생산방법', 2016년 6월 27일
조선신보 평양지국, '지하수로 소금생산,' 2012년 5월 16일
대한염업조합, '천일염 생산과정'
KDI 경제정보센터, "경제교육 2009년 5월호" – '소금산업-친환경ㆍ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변신을 꿈꾼다!'

원문은 NK TECH에 있습니다. 

http://www.nktech.net/inform/nkt_briefing/nkt_briefing_v.jsp

 김혜민 기자  NKtoday21@gmail.com    ⓒNK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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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는 사라지고 '버섯구름' 어른대는 한반도

 

[위기의 한반도] 16년 전과 180도 달라진 한반도의 추석

16.09.16 19:42l최종 업데이트 16.09.16 19:4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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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0년 6월 처음으로 남북한 정상이 만났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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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윗날만 같아라"는 말이 있다. 추석이면 여름 내내 땀을 흘려 거둔 오곡백과로 음식을 장만해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배불리 먹으니, 날마다 한가위면 좋겠다는 속담에는 해마다 춘궁기 보릿고개를 겪은 민중의 소박한 소망이 담겨 있다.

분단 70년을 넘긴 갈등과 긴장의 남북관계에서도 '한가윗날만 같아라' 했던 때가 있었다.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그해 추석이 그랬다. 그해 추석은 9월12일(화)이었다. 주5일근무제가 시행되기 전이어서 추석 앞뒤로 하루씩 쉬어 나흘 연휴였다. 차량용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이다. '민족 대이동'이라고 부를 만큼 1천만 명이 고향을 찾는 복잡한 연휴에, 예고에 없던 북한의 '스파이 대장'과 인민군 대장이 서울을 찾은 것이다.

추석 전날인 9월 11일 오전 10시쯤 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를 비롯해 박재경 총정치국 부총국장, 림동옥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등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단 8명이 서울-평양 직항로를 통해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김용순은 노동당 통일전선부와 대외연락부를 십수년간 지휘하며 대남공작-협상-경협을 모두 담당하는 '스파이 총책'이다. 림동옥 부부장은 대남사업만 30~40년을 담당한 대남공작의 산증인이었다. 두 사람 다 몇 해 뒤에 고인이 되었다.

16년 전 추석, 북한 '스파이 대장'의 갑작스런 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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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0년 9월 13일 오후 김용순 노동당비서 일행이 경주 불국사를 방문해 다보탑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맨 오른쪽이 림동옥 당 부부장.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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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련한 스파이 대장들은 남북 핫라인(직통전화)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라며 "북남 화해와 협력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방문하겠다"고 연락해왔다. 갑작스레 북측 스파이 대장 일행을 맞이하게 된 남쪽 호떡집(국정원)에선 불이 났다. 

당시 국정원장은 임동원, 북한담당 3차장은 김보현, 대북전략국장은 서영교였다. 제주도가 고향인 김보현 차장은 예매한 귀성 비행기 티켓을 취소해야 했다. 대구가 고향인 서영교 국장도 마찬가지였다. 양영식 통일부차관과 김보현 차장이 김포공항에서 이들을 영접했다. 귀성을 준비하던 통일부 출입기자들도 발이 묶였다.

박재경 대장이 함께 온 목적은 놀랍게도 인민군 장병들이 채취한 '칠보산 송이'를 평양을 방문한 남측 인사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박재경이 가져온 송이는 1인당 10kg 들이 300명분(3t)으로 당시 가격으로 9억 원 분량이었다. 

 

 

 

 

박재경은 6월 정상회담 대표단과 8월 언론사 방북단 등 267명과 전직 대통령과 각 정당 및 정부 요인들에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는 "소금물에 담갔다가 구워먹거나 참기름에 볶아 먹는 것이 좋은데, 참기름이 많으면 송이의 향이 줄어들어 좋지 않다"고 요리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이 모든 것은 김정일의 지시였다. 실제로 박재경은 서울에서 송이 전달식만 갖고 6시간만에 평양으로 돌아갔다. 더 놀라운 사실은 박재경이 1968년 1월21일 '청와대를 까고 박정희의 멱을 따러' 남파된 인민군 124군 부대원 31명 중에서 유일한 원대 복귀자였다는 점이다. 이는 함께 특공훈련을 받은 전우이자 생포된 유일한 생존자인 김신조를 통해 확인되었다.

김정일은 왜 아버지(김일성)가 박정희의 모가지를 떼어오라고 보낸 특공대원 박재경에게 굳이 송이선물을 들려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낸 것일까?(김정일은 2007년 10월 2차 정상회담 때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칠보산 송이 4t을 평양에서 선물했다). 김정일이 죽어서 그 속을 알 수는 없지만, 국정원은 그것을 김정일이 남북 정상회담을 하면서 남쪽과 손을 잡는 쪽으로 변화를 작심한 징후로 파악했다. 김보현 차장은 당시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김정일은 한계 상황에 직면한 북한을 끌고 나가기 위해서 남쪽과 손을 잡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작심하고, 맨 먼저 북한 체제의 버팀목인 군부를 '변화의 공범'으로 동참시켰다. 김정일은 김대중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군부에 술을 따르게 했다. 이어 김일철 인민무력부장(국방장관)을 남쪽에 보내 군부도 변화의 공범으로 만들고, 그 다음에는 대남 공작팀을 보내 (북조선을 도와줄 만큼) 남조선이 잘사는지를 보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군부의 최고위급인 조명록 차수를 미합중국에 보내 클린턴 대통령을 예방하게 했다."

주도면밀한 국정원의 '장난'과 계면공략 심리전

이 모든 것이 2000년 추석을 전후해 이뤄진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들이다. 특히 대남 공작팀의 남행은 남북관계는 물론, 북한이 어렵게 선택한 변화라는 물길의 분수령이었다. 국정원은 김정일의 작심과 군부의 동의(공범)로 이끌어낸 변화의 흐름을 타려고 몇 가지 '장난'을 쳤다. 역시 당시 '비보도'를 전제로 김보현 차장이 들려준 얘기로 처음 공개하는 비화이다.

"김용순이 왔을 때도 변화의 흐름을 타려고 일부러 공군특별기에 태웠다. 공군기는 민항기보다 고도가 낮다. 시간도 30~40분이 더 걸린다. 우리는 산야와 도로를 일부러 다 보여주었다. 경주에 갈 때도 대구에 내려서 고속도로의 밀린 차량도 보여주고, 들판에 퍼런 산도 보여주고, 올 때는 비행기의 고도를 더 낮춰 일부러 한 바퀴를 돌려서 서울 야경을 자세히 보여주었다. 북한은 전력 사정이 어렵기 때문에 보고 놀라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서 김용순에게 간간이 어떠냐고 물어봤다. 김용순은 '좋은데요', '잘 됐는데요'라고 단답형으로만 대답했다. 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김용순은 분명히 김정일에게 본 대로 보고했을 것이다. '남쪽에 기대면 살 것'이라고 보고하도록 장난을 친 것이다. 김일철이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장난은 '애드 립'이 아니었다. 사전에 치밀하게 계산되고 기획된 심리전의 일환이었다. 당시 김대중 정부 국정원(대북전략기획국)이 마련한 '대북포용정책의 전략적 보완방안 검토'(대외비) 문건에는 김정일과 군부를 개혁-개방으로 이끌어내고 변화의 흐름에 태우기 위한 방안들이 담겨 있다. 이 대외비 문건에서 제시한 '전략적 보완방안'의 일부는 나중에 실제 대북정책으로 입안-시행되었는 바 ▲2002년 월드컵 남북한 분산 개최 ▲미전향장기수와 국군포로의 맞교환 ▲이산가족면회소 설치와 재북 이산가족 송금허용을 위한 적십자회담, 국회회담 등 준당국 회담 추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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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권층과 주민간의 틈새를 조장하기 위한 계면공략(界面攻略) 심리전을 전개하는 내용이 담긴 국정원의 ‘대북포용정책의 전략적 보완방안 검토’(대외비) 문건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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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보완방안' 중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계면공략도(界面攻略圖)를 제시한 가운데, "북한 집권층과 주민 간의 틈새를 벌리는 계면공략 심리전을 전개한다"는 대목이다. 계면공략 심리전은 ▲일반주민에게는 "기아와 억압의 탈출구는 한국뿐"임을 전파하고 ▲중간권력층에게는 "통일 또는 체제변화 시에도 기득권 보장 혹은 더 나은 전망"을 제공하고 ▲권력 핵심에게는 "경고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한 마디로 북한에 개혁-개방이라는 '독이 든 사과'를 먹이는 전략이다.

부전승(不戰勝)이 백전백승(百戰百勝)보다 상위의 계책

병법에서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고의 전략으로 친다. 곧, 부전승(不戰勝)이 백전백승(百戰百勝)보다 상위의 계책이다. CIA 교범에서 포섭공작의 네 가지 요소는 MICE, 즉 돈(Money), 이념(Ideology), 타협(Compromise), 자존심(Ego)이다. 그러나 첩보공작의 세계에서 최고의 공작은 MICE에 의해 '통제받는(controlled)' 공작보다 조종되지만 조종되고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는 유형의 공작이다. 즉, 북한에 부지불식 간에 '독이 든 사과'를 먹여 천천히 개혁-개방으로 이끄는 것이 최고의 국가공작이다.

국정원이 대북포용정책, 즉 햇볕정책을 국가공작으로 뒷받침한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적어도 북한 핵실험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에 '독이 든 사과'를 줘서 천천히 개혁-개방으로 이끌려는 국정원의 대북전략은 노무현 정부 집권 초기의 대북송금 특검으로 동력을 상실했다. 그런 가운데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이 터졌다. 이는 노무현 정부의 책임이라기보다는 9.19공동성명에도 불구하고 대북 금융제재를 강행한 부시 행정부의 BDA(방코델타아시아은행) 봉쇄에 대한 반발의 성격이 컸다. 노무현 정부가 임기 말에 뒤늦게 추진한 2차 정상회담의 성과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무용지물이 되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전임자인 클린턴의 정책을 부정하는 ABC(Anything But Clinton) 노선을 고수했다. 이를 흉내 낸 이명박 대통령이 6.15 공동선언 및 10.4 선언 이행 거부, 금강산 관광 중단 등 ABR(Anything But Roh) 노선을 취한 가운데 6자회담이 표류하자 북한은 2009년 5월 2차 핵실험으로 대응했다. 이어 남북대화가 실종된 가운데 한반도는 천안함 폭침(2010. 3)과 5.24 대북제재 조치, 그리고 연평도 포격(2010. 11) 등 휴전 이후 최악의 안보 불안 사태가 야기되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말기이자 박근혜 당선인 시절인 2013년 2월 북한은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내걸고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북한과 차관급-고위급 회담을 가졌으나 관계 회복에는 실패했다. 박 대통령은 '통일대박론'을 설파해 통일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부풀리더니, 2016년 1월 4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2월에 개성공단 폐쇄라는 초강수로 맞섰다. 그리고 마침내 제 발등까지 찍으며 북한을 옥죄는 봉쇄 정책을 펼친 지 7개월만인 9월 9일 북한의 제5차 핵실험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다.

북한의 제1~5차 핵실험 비교


송이는 사라지고 '버섯구름' 어른거리는 '말폭탄' 난무하는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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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장소) 1차(1번 갱도) 2차(2번 갱도) 3차(2번 갱도) 4차(2번 갱도) 5차(2번 갱도) 일시 '06. 10. 9. '09. 5. 25. '13. 2. 12. '16. 1. 6. '16. 9. 9 진도(위력) 3.9Mb(1Kt 이하) 4.5Mb(수Kt) 4.9Mb(6~7Kt) 4.8Mb(약6Kt) 5.0Mb(약10Kt) 평가 핵폭발 성공 폭발위력 향상 부분적 성공  핵폭발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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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3월 공개한 장면으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핵탄두 기폭장치 추정 물체 앞에서 핵무기 연구 부문 과학자, 기술자들을 만나 지도하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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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이로써 핵무기 고도화의 9부 능선을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북한을 제외한 마지막 핵실험 국가는 1998년 인도(5회)와 파키스탄(6회)으로 알려졌다). 이 모든 것은 외교와 대화를 단절한 미국과 한국이 각각 대북 적대시 정책과 봉쇄 정책을 펼친 기간에 벌어진 일이다. 북한 붕괴론에 기댄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대화를 배제한 이른바 '이명박근혜 정부'의 강경책은 사실상 파탄이 났다.

서구 과학자로서는 유일하게 2010년까지 영변 핵시설을 둘러본 핵전문가인 시그프리드 해커 박사의 얘기다. 그는 최근 북한 전문매체 '38노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번 핵실험은 제재를 통해 북한을 굴복시키려고 하는 시도나 중국이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기다리는 정책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면서 "미국이 현재의 정책 경로를 지속하는 한 북한은 위험한 핵무기 확대를 계속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북한의 핵물질 생산과 핵무기 고도화를 억제할 어떤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남북한의 국정 책임자들이 쏟아낸 '말폭탄'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남북한은 파탄난 정책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기 위해서라도 더 강경한 공세와 제재를 가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수렁에 빠져 있다. 한반도는 '한가윗날만 같아라' 했던 때에서 16년 만에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실제로 군 당국은 제4차 핵실험 당시 '김정은 참수작전'을 공개하더니 이번에는 "북한의 핵사용 징후 포착되면 평양을 지도상에서 드러낼 것"이라며 평양을 일정한 구역으로 나눠 선제공격하는 '대량응징보복' 작전개념을 전격 공개했다. 박 대통령이 북한의 핵심 권력층과 간부, 그리고 주민을 분리하는 대북 전략을 공언하고 "김정은의 정신상태는 통제불능"이라고 공격하자, 북한은 박 대통령을 그려 넣은 사격용 과녁을 공개하며 말폭탄을 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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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일 밤 조기 귀국해 청와대에서 열린 안보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일부터 시작된 러시아, 중국, 라오스 순방을 마치고 9일 오후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박 대통령은 애초 이날 밤 11시께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북한의 5차 핵실험 감행으로 일정을 3시간30분가량 앞당겨 저녁 7시30분께 도착했다. 2016.9.9 [청와대 제공=연합뉴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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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뉴욕타임스>의 막스 피셔는 '북한은 미친 게 아니라 너무나 합리적이다'이라는 칼럼에서 "북한을 매우 위험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한반도를 전쟁에 준하는 상태로 유지함으로써만 자신이 생존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북한의 합리성"이라며 이렇게 비판했다.

"일부 분석가들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가까이에 있는 미군 기지와 한국의 항구들을 우선 타격하고 그 다음 미국 본토에 대한 미사일 발사로 위협하면서 미국의 침공을 저지하도록 고안되었다고 믿는다. 북한이 아직은 이러한 능력을 보유하지 못했지만 분석가들은 향후 10년 이내에 그러한 능력을 가지게 될 것으로 본다. 바로 이것이 절망이론으로 알려진 북한 합리성의 최절정이다(This is the culmination of North Korea's rationality, in something known as desperation theory)."

사실 심리전이든 냉전이든 열전(熱戰)이든, 전쟁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 정권과 주민의 분리 전략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해야지 빈 깡통을 요란하게 울리면서 할 일이 아니다. 또한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대북 심리전을 펼치면 국정원은 할 일이 없다. 그 무엇보다도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국정원의 '장난'도 남북 간에 대화채널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남북한 사이에는 지금 아무런 대화채널이 없다. 그것이 비극이다. 아직은 '말폭탄' 수준이지만, 송이가 사라진 한반도에 언제 '버섯구름'이 피어오를지 모를 암울한 추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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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안 된다면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서도 안 되는 것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09/16 13:11
  • 수정일
    2016/09/16 13:1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지진 걱정 없는 서울에 핵발전소를 짓자!

조성화 2016. 09. 15
조회수 427 추천수 0
 

화로 환경 읽기 12. <동경핵발전소>

핵발전 유치한 도쿄도지사, 핵발전 옹호할수록 빠져드는 딜레마 풍자

서울에서 안 된다면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서도 안 되는 것, 교훈 줘

 

05416981_P_0.JPG» 지난해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고리원자력발전소 신고리 3·4호기 앞에 상륙해 신고리 5·6호기 추가 건설 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원자력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수도권에는 원전을 세우면 안 되고 씀씀이가 적은 울주에는 왜 되나. 울주/ 김봉규 선인기자 bong9@hani.co.kr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은 핵발전소를 건설하기에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핵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입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첫째냉각수로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물이 있어야 한다둘째에너지 소비 지역과 생산 지역의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셋째지질학적인 안정성이 확보돼야 한다넷째만에 하나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에 따른 피해가 작아야 한다

 

냉각수는 충분하다

 

그렇다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은 핵발전소를 건설하기에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고 있다먼저냉각수를 보면 100만㎾급 원전 한 기를 돌리기 위해서는 매초 70톤 정도의 물이 필요한데한강은 초당 평균 600톤 정도의 물이 흐르기 때문에 핵발전소 한두기 정도를 가동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강의 유량이 풍부하다는 것은 이미 지난 4대강 사업의 타당성 평가에서도 밝혀진 바 있다당시 평가를 보아도 한강은 상시로 산업용 화물선 및 여객선 운항이 가능할 정도로 유량이 풍부하다심지어 4대강 사업 이후 오히려 유량이 줄어들어 녹조가 자주 발생하는 요즘에도 핵발전소를 가동하기에 부족함 없는 양의 물이 흐른다.

 

05381382_P_0.JPG» 한강은 유량이 줄어 녹조가 발생할 때도 핵발전소를 가동하기에 충분한 물이 흐른다. 지난해 녹조로 초록빛으로 물든 팔당호 모습.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송전 손실 제로

 

둘째만약 서울에 핵발전소를 건설하면 외부로부터 전기를 끌어올 필요가 없기 때문에 송전에 따른 에너지 손실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현재 우리나라에서 송전 과정에서 손실되는 에너지의 양은 전체 생산량의 30%에 달한다이러한 송전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 초 고전압으로 송전하고 있고이로 인해 고압 송전탑 주변 주민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송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곳에서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는 것이다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도 에너지 자급률은 5%에도 미치지 못하는(2013년 기준) 서울에 핵발전소를 건설하면 서울의 에너지 자급률이 올라갈 뿐만 아니라 더 효율적으로 핵발전소를 운영할 수 있다

 

또한 핵발전소를 건설하는 곳에 국가에서 제공해 주는 다양한 지원과 편의시설은 추가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이다따라서 서울은 많은 시민과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음에도 건설이 강행될 것으로 예상하는 핵발전소를 유치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전력자급률_2013_1.jpg

 

전력자급률.jpg» 전국 시도의 전력자급률. 자료=이수경,"서울 강남, 그들만의 특권"<물바람숲>

 

지질학적 안전성 확보

 

셋째서울은 핵발전소를 운영하기에 지질학적으로 안전하다. 12일 핵발전소가 밀집한 경북 경주에서 기상청 관측 이래 최대인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은 양산단층대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서울에는 이제껏 별다른 지진이 발생하지도 않았고 단층대가 지나지도 않는다.

 

설사 지진이 발생한다 해도 진도 6.5까지 견디도록 건설되고 있는 핵발전소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이미 한국수력원자력에서는 약 20쪽에 달하는 홍보자료를 통해 핵발전소가 지진에 얼마나 안전한지를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ear.jpg» 9월12일 경북 경주시에서 관측 사상 최고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 한수원은 원전의 내진설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이러한 자료들을 토대로 볼 때서울은 지질학적으로 핵발전소를 건설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무엇보다 이미 서울에 핵발전소보다도 낮은 내진 기준(규모 5.7~6.3)으로 건설되고 있는 도시철도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심지어 1~4호선은 내진 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서울이 핵발전소를 건설하기에 지질학적으로 얼마나 안전한 곳인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2004년 1월에는 서울대학교 교수 63명이 서울 관악산에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을 만들자는 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을 정도로 서울의 지질학적 안전성은 이미 전문가들의 검증을 충분하게 거쳤다(■ 관련 기사관악산에 핵폐기장 만들자던 사람에게 원전안전 맡길 수 있나, “지나친 공포? 우리에겐 스스로 조심할 권리가 있다”). 

 

당시 성명에 서명한 63명의 교수 중에 황우석 전 수의대 교수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다소 의아하지만어느 한 분야에서 정통한 전문가는 다른 분야에서도 혜안을 갖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gang2.jpg»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서울대 터 안 관악산에 유치하는 제안서를 발표하는 강창순 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오른쪽). 왼쪽 끝에 황우석 전 수의대 교수가 보인다.

 

핵발전소는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

 

핵발전소가 얼마나 안전한 발전 시설인지를 이 글을 통해서 다시 제시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다앞선 지질학적인 안전성을 포함해서핵발전소가 그 이외의 사고에 대해서도 충분히 안전하다는 것은 정부와 최고의 전문가들이 항상 강조하는 부분이다

 

한국수력원자력 누리집 홍보센터에 접속해 보면 알수록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 원자력지진에도 안전한 핵발전소원자력 30년사 꿈꾸는 에너지 아름다운 미래” 등과 같은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지6.jpg» 단단한 암반 위에 건설하기 때문에 핵발전소는 안전하다고 한다. 한수원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고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공 조직이며수많은 전문가가 일하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에서 홍보하고 있는 내용인 만큼 우리가 그 내용에 의구심을 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홍보자료들이 핵발전의 긍정적인 면에 치우쳐 있고방사성폐기물 처리 문제나 폐원자로의 처리 문제 등이 충실하게 다뤄지지 못한 것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지만 어떤 자료든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차원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정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러한 자료들을 꼼꼼하게 읽어보면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건이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건은 우리나라에서는 발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말 그대로 남의 나라 일일 뿐이다다소 편파적인 자료를 읽는 데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자료들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영화 <동경핵발전소>

 

앞선 필자의 글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가아마 내용이 다소 엉뚱하다고 생각하거나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필자에게 만약 서울에 핵발전소가 설치된다면?” 이라는 질문을 하게끔 한 영화가 바로 <동경핵발전소>이다

 

도지사.jpg» 영화 <동경핵발전소>에서 도쿄에 핵발전소를 유치하자고 주장하는 도지사.

 

이 영화는 도쿄 도지사 텐마(야쿠쇼 코지)가 도쿄도청 주요 보직자들과 기획회의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이 회의에서 도지사는 일본 수도 도쿄에 핵발전소를 유치하겠다는 선언을 한다더욱이 그 위치는 도청 바로 앞 공원이다

 

이 갑작스러운 선언에 회의에 참여한 여러 보직자가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며 반발하지만도지사 텐마의 논리적인(?) 설득에 참가자들은 하나둘 수긍해 간다보직자들은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도지사의 주장을 반박해 보려고 하지만 만년 적자인 도쿄 재정 문제 해결청년 일자리 창출핵발전소 유치 지역 지원금 활용과 같은 확실한 경제적 효과 앞에서 점차 할 말을 잃어 간다

 

동경핵발전소.jpg» 도쿄에 핵발전소를 유치해야 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도지사.

 

또한 핵발전소를 도쿄에 건설하게 되면 도쿄 시민이 강하게 반발할 것이라는 의견에 대해서 도지사는 정색하며 원전 건설에 따른 위험은 시골이나 도쿄나 똑같이 감수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한다

 

자승자박의 논리

 

도쿄 도지사가 핵발전소를 유치하자는 논리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러한 논리들이 현재 핵발전을 찬성하며 주도하는 진영의 논리라는 것이다

 

핵발전이 정말 그렇게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며경제적이라면 그러한 발전소는 멀리 외딴 지역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소비가 집중된 도심 지역에 위치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핵발전의 안정성친환경성경제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핵발전소의 입지는 대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현실의 경우 핵발전소는 대도시 주변에 절대로 건설되지 않는다이렇게 <동경핵발전소>는 핵발전을 옹호하면 할수록 빠져들게 되는 딜레마적 상황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서울 시장이 한강 변에 핵발전소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한다면 서울 시민들과 관련 정치인들은 이를 막기 위해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할 것이다핵발전소는 서울에 건설되면 절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왜 서울에는 안 되는 것이 울진월성영광고리에서는 되는 것일까

 

얼마 전부터 서울에서는 원전 하나 줄이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에너지 소비량을 줄여서 우리나라의 원전을 하나 줄여보겠다는 것이 운동의 주요 골자이다이 운동이 정치적으로 보여주기식 활동이 아니라 진짜 원전 줄이기 운동이 되려면서울에 전기를 보내려고 지금도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는 지역을 위해 더욱 실질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서울에서 안 된다면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서도 안 되는 것이다

 

05626738_P_0.JPG» 서울시가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의 하나로지난 8월11일 원전하나줄이기 정보센터에서 개최한 ‘2016년 여름 붕어빵 캠프’에 참여한 가족이 25개 자치구의 에너지 소비 현황을 실시간 다양한 색상으로 알려 주는 ‘서울에너지 나무’를 보고 있다. 에너지 소비량이 높은 지역은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장수선 인턴기자

 

에너지 수급난 등을 이유로 타 지역에서 원전이 계속 운행되고새롭게 건설되는 것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 서울을 위해 에너지를 생산하느라 고생 많았지만이왕 운영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운영해 주시고가능하면 몇 기 더 건설해서 에너지를 생산해 주십시오서울에 핵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이 여러모로 타당하지만 그렇게 하기는 왠지 찝찝하니 서울에는 건설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은 이 영화가 개봉된 지 7년이 지난 2011년에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를 겪었다만약 일본 시민과 정치인들이 이 영화에 조금만 더 관심을 보였다면그래서 노후 원전부터 줄여나가는 방법을 선택했다면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겪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도 과거 일본이 갔던 길을 그대로 걷고 있다인적이 드문 먼 곳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해안가에 설치된 핵발전소는 안전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조성화/ 환경과교육연구소 대표수원시 기후변화체험교육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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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시대, 선조시대보다 나아진 게 뭐란 말인가

박근혜 시대, 선조시대보다 나아진 게 뭐란 말인가
 
[조선역사 에세이] - 38 정여립의 ‘대동계’와 이석기의 ‘알오(RO)’
 
김갑수 | 2016-09-16 10:11:0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정여립의 ‘대동계’와 이석기의 ‘알오(RO)’
- 박근혜 시대, 선조시대보다 나아진 게 뭐란 말인가


역사에는 숱한 비극이 있었고, 그 비극 속에는 으레 비운의 주인공이 있게 마련이다. 임진왜란 3년 전인 1589년에 발발한 기축옥사는 조선시대 최대의 비극적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 비극적 사건의 소용돌이에는 정여립(鄭汝立, 1546∼1589)이라는 희귀한 비운의 주인공이 자리 잡고 있었다.

▲KBS1 ‘역사스페셜’ 방송 화면 캡처

43세에 죽은 정여립은 최소한 그가 죽기 6년 전까지는 당대 최고 수준의 엘리트로 살았다. 전라도 전주에서 군수, 첨정(종4품)을 지낸 정희중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24세 때인 1570년(선조 3년)에 과거 문과에 급제했다. 그는 1583년 예조좌랑(정6품)이 되었고, 이듬해 청요직인 홍문관 수찬(정5품)에 등용되었다.

무엇보다도 정여립은 당대의 최고 중요 인물이었던 이이(李珥)와 성혼(成渾) 등으로부터 각별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이이가 영수 격으로 있던 서인 편을 이탈하여 동인의 편에 가담한다. 그리고 이 석연치 않은 당파 변경은 그의 비운을 촉발하는 동기가 되었다.

정여립은 군주(선조)가 자기의 당파 변경을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자 홀연히 관직을 내던지고 전라도로 낙향해 버린다. 이후 그가 전라도에서 벌인 일은 ‘대동계’라는 이름의 무사 결사체를 조직하여 활동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모반죄로 고발당하여 도망했다가 관군의 포위를 받게 되자 자결해 버렸다.

이와 달리 서인 편에서 기획적으로 정여립을 유인하여 죽이고는 자결한 것으로 보고함으로써 그의 모반을 기정사실화하려 한 음모였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정여립의 관직 사퇴와 갑작스런 죽음은 둘 다 매우 이례적이고도 의문스러운 일이었다. 또한 이것은 그만큼 그의 성정과 인격이 직정적이고 비범했음을 짐작케 한다.

정여립은 분명히 ‘비범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대동계라는 이름 자체에서도 모종의 변혁 지향이 읽히는 데다, 그는 ‘천하는 공공의 물건(天下公物)’이며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될 수 있다(何事非君)’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전자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때 왕촉(王燭)의 것이고 후자는 맹자(孟子)의 것이지만, 당시 보수적인 왕조국가였던 조선의 권력자들로서 정여립의 생각은 ‘불온하기 짝이 없는 망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정여립을 선구적인 혁명 사상가로 인정한다. 그렇긴 해도 당대로서 그는 불온하기 짝이 없는 모반 인물이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여립이 직접 조직하여 활성화한 대동계는 결사체로서 ‘실체’였다는 점이다.

“여립이 본디 발호(跋扈)하는 뜻이 있었는데 억누름이 심하게 되자 배반하려는 모의를 더욱 펴게 되었다. 이에 강학(講學)을 가탁하여 무뢰배를 불러 모았는데, 무사와 승도(僧徒)들도 그 가운데 섞여 있었다. 여립은 서적을 중국에서 사다가 무리들과 강설(講說)하였고, 국가에 장차 임진왜변(壬辰倭變)이 있을 것을 알고 때를 타고 갑자기 일어나려 하였다. 그리하여 대동계(大同禊)를 만들어…(후략)” (선조수정실록 23권, 선조 22년(1589년) 10월 1일 자 기사 발췌)

이로부터 420년이 지난 2013년, 대한민국에서는 현직 국회의원 이석기가 정권으로부터 불온한 인물로 낙인찍히는 일이 빚어진다. 이석기는 친일 행적을 보인 음악가에 의해 작곡된 ‘애국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가 하면, ‘종북보다 종미가 더 문제’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또한 이석기는 ‘숭미’의 행적을 보인 한 부도덕한 인사의 장관 임용을 저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무도한 권력일지라도 이런 것들만으로는 그를 잡아 가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 프락치를 사서 가공해낸 것이 이른바 ‘알오(RO, Revolution Organization))’라는 결사체였다. 그러나 알오는 실체가 없다는 것이 사법기관에 의해 최종 판정되기에 이른다.

2014년 이석기 내란음모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문제의 지하혁명조직 RO의 존재 자체가 미지수이며 검찰이 내놓은 증거들로는 이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들로는 RO의 결성 시기와 과정, 조직 체계, 회합 참석자 130여명의 가입 여부 등의 활동 내역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RO가 존재하고 이 의원 등이 그 구성원이라고 판단한 1심 재판부의 판결을 ‘사실을 오인한 것’이라고 신랄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검찰 공소사실의 핵심증거인 제보자 이 모 씨의 진술에 대해서도 ‘말단 세포원이었던 이 씨가 조직의 다른 구성원이나 체계는 알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회합 참석자들이 RO의 구성원이라는 이 씨의 진술, 그리고 RO의 성격, 구성원 및 조직 체계 등에 대한 설명은 개인적인 의견 내지 추측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것은 알오의 비실체성을 명백히 천명한 것이다. 420년 전 정여립은 제거되었고 오늘의 이석기는 격리되어 있다. 그런데 두 사건은 비슷한 것 같지만 판이하게 다른 면도 있다. 정여립의 대동계는 실체가 있었지만 이석기의 알오에는 실체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이석기는 9년 장기형에 7년 자격정지형을 선고 받았다. 그렇다면 오늘의 박근혜 시대는 어떠한 시대인지를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의 박근혜 시대는, 조선을 안다고 하는 오늘의 사람들이, 조선의 역사 중에서도 가장 경멸해마지 않는 선조시대보다 과연 나아진 것이 뭐란 말인가?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4&table=c_booking&uid=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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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5차 핵실험과 미국과 중국의 중요 일간지

북 5차 핵실험과 미국과 중국의 중요 일간지
 
 
 
정설교 화백
기사입력: 2016/09/16 [01:3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언론이 대통령을 만든다   © 정설교 화백

 

▲   언론이 대통령을 만든다  © 정설교 화백

 

▲  대중적인 인기와 지지  케네디 대통령   © 정설교 화백

 

 

▲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환호하는 닉슨    © 정설교 화백

 

미국은 역사 앞에서 한반도 분단에 대한 주된 책임자이다. - 브루킹스 연구소 그레고리 헨더슨-

 

"한반도 분단의 주된 책임자는 미국이다.  따라서 미국과 북한과의 화해가 필수적이다북한과 대화의 통로를 여는 일이나 4강의 보장을 얻어내는 일에도 미국이 앞장서서 솔선수범해야 된다."

 - 출처미 브래들리대학교 황인관 교수 -

 

한국의 안보위기는 분단에 있으며 분단에 의한 북미 갈등에 의한 것이다.  핵무기 비확산과 관련된 북한의  핵개발 문제만을 중심에 놓고 한반도를 이해할 수 없다. 현재 수소폭탄 시대에 한반도는  전쟁직전의 평화상태로 북미 두 나라는 서로 핵 선제공격으로 지구상에서 그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호전적이다.

 

미국의 가장 권위있는 언론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의 국민들에게 가장 긴요한 국제관계의 정보를 제공하고 실질적으로 미국의 대통령은 언론이 만들고 있다.

 

최근 그런 미국의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일간지가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정책 실패를 지적하고 북은 매우 이성적이라 평가하고 북과 교류에 나서라고 충고하고 있다.  

 

대화와 교류는  긴장을 해소하여 전쟁을 막을 수 있다. 하기에 전쟁보다는 대화와 교류에 미국의 바른 운명이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 오바마 행정부는 이들 일간지의 충고를 심사숙고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으며  세계패권국이라면 무엇보다 전쟁보다는 평화를 선택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최근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하여 중국 책임론을 거론하는 미국에 대해 "북핵의 핵심은 중국이 아닌 미국" 이라며 중국의 책임론을 부정하고 미국에게 북핵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대북제재로 북한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으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없으며 북미 사이의 대화와 협상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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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에 시달리는 '개성공단 협력기업' 사장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6/09/16 10:38
  • 수정일
    2016/09/16 10:3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조삼환(에프알티코리아)·정종탁(홍진패션)·박용만(녹색섬유) 사장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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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9.16  02:3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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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년째 섬유업에 종사하고 있는 조삼환 에프알티코리아 대표는 1년전 개성공단 임가공에 뛰어들어 경영상태가 다소 호전되나 싶더니 그만 주저 앉고 말았다며 개성공단 전면중단 조치에 깊은 유감을 표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올해 환갑이다. 32년째 섬유업을 하고 있는데, 중국에 들어갔다가 힘들어서 다시 국내로 들어와 실패도 경험했다. 작년에 개성공단 협력기업으로 임가공을 하면서 간신히 자리잡나 했더니 이렇게 됐다. 이제 재기하는 게 가능할까?”

지난 12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개성공단근로자협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조삼환 에프알티코리아 대표이사는 “오늘도 추석 전에 자금 좀 해달라는 거래업체의 전화를 받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 이후 피해실태를 조사하는 과정에 입주기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누락된 후 응급실에 입원해 혈관에 염증이 생기는 혈관염증 진단을 받았다. 지금은 목발 없이는 걷지 못하는 상태다.

지입차로 운행하던 용달 기사도 없이 지금은 짐을 싣고 내리는 일까지 직접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건강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같은 날 함께 만난 정종탁 홍진패션 대표이사도 나을 것 없는 사정이다.

지난 2009년부터 개성공단에 원부자재를 보내 남성복을 임가공한 후 국내업체에 납품해 온 정 대표는 연매출 35억원 규모로 안정적인 사업을 운영해 왔으나 지난 2월 10일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중단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개성공단을 제외한 국내외 생산기지가 전혀 없었던 탓이다. 개성공단 중단 이후 겪고 있는 자금난을 타개하기 위해 아내의 암진단보상금까지 끌어다 썼으나 보람도 없이 지난 4월부터는 제품 생산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조삼환 대표와 정종탁 대표는 현재 개성공단 입주기업에 임가공을 맡긴 1차 협력업체 49개사를 회원사로 하는 개성공단협력기업협의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개성공단 협력업체는 이들 1차 협력업체에 원부자재를 납품한 업체들을 포함하면 5,000여 곳에 달하는 규모다.

추석 연휴 전날인 13일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 사옥에서 만난 박용만 녹색섬유 대표는 “25년 만에 몸살이 걸려서 링거를 꼽고 누워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며, 약속시간이 꽤 지나서야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신경쇠약이나 우울증으로 병원 출입하지 않는 사장들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들의 근황을 전했다.

2013년 3월 잠정 중단 이후 6개월 만에 들어간 공장에서 상한 식자재와 변색·탈색된 원부자재, 녹슨 기계를 정비해야 했던 ‘숨막히는’ 과정을 경험한 박 대표는 이번엔 최소 3~4년 공장에 못 들어 갈 수 있다는 각오를 하고 있지만 머릿속은 무척 복잡한 듯 했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고통은 지난 2월 10일 설 명절 연휴가 끝나는 날 시작됐다.

기억은 서로 조금씩 달랐지만 그날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끔찍한 그 날의 일에 대해 말할 때는 몸서리를 쳤다.

잊지 못할 2.10 개성공단 전면중단, 그리고 추방

   
▲ 정종탁 홍진패션 대표는 개성공단 임가공을 통해 연매출 35억원의 견실한 기업을 운영했으나 지난 2.10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로 직격탄을 맞아 지금은 사실상 생산 중단 상태에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통일뉴스 : 지난 설 연휴가 끝나던 2월 10일 오후 5시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중단을 발표하자 북측은 다음 날 오전 10시(이하 평양시간) 개성공단 폐쇄와 군사통제구역 선포로 맞대응하고 같은 날 오후 5시까지 남측 인원 전원 추방, 공단 내 남측 자산의 동결을 선언했다. 당시 직접 겪었던 일들을 중심으로 상황을 설명해 달라.

■ 정종탁 : 2월 10일 오후 5시에 통일부에서 개성공단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지 않나. 그리고는 회사별로 차량 1대와 인원 두 명씩 허가를 내주어서 다음 날 공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에 들어갔다가 12시쯤 싣고 나올 사람들은 다 그렇게 나왔다. 그런데 북측에서 뭐라고 했느냐하면 11일 5시 30분(서울시간)까지는 남측 인원과 장비 모두 다 철수를 하라고 했다.

11일 5시 30분까지는 정상적으로 개성공단에서 나올 수 있었고 5시 30분 이후에는 못 나왔다. 마지막 차량이 물건을 다 싣고 북측 세관검사까지 마치고 나서 대기하고 있던 중 북측에서 폐쇄명령이 떨어지면서 이미 실었던 짐을 북측 세관 앞에 다 부려놓고 빈차로 내려왔다.

■ 조삼환 : 그러니까 우리나라(남측)에서 10일 오후 5시 전면중단 발표하고 24시간이 지나서 저쪽(북측)에서 폐쇄명령을 내렸다고 하더라.

나도 11일 오전 11시에 들어갔다가 5시 30분 막차로 나오던 중 물건을 다 뺐기고 (북측)세관에서 내리라고 해서 짐 하나 못 건지고 몸만 내려왔는데...뭐 30분 전에 나간 사람은 물건을 가지고 내려갔지만 5시 30분에서 조금 늦은 사람들은 실었던 물건도 다 내려놓고 내려왔어야 하니까 참기 힘들 만큼 어려운 심정이었다. 난 그날 밤 12시 5분에 나왔다.

1톤 탑차 트럭 하나에 꽉 실었다가 통과를 못 했다. 시간이 늦어지면 벌금이라도 낼 생각으로 마지막 한 봉지라도 싣고 내려오려고 했다가 그렇게 됐다. 원부자재, 완성품들인데 대략 1억5천만 원 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다.

당시 북측 세관 검사는 오후 5시(평양시간)에 끝났고, 이때까지 대기 중이던 트럭은 싣고 온 짐을 각자 공장에 다시 갖다 놓고 오라는 북측 세관의 지시에 따라 저녁 8시까지 작업을 마치고 북측에서 확인이 끝날 때까지 대기하다가 밤 11시께 개성에서 출발해 자정이 넘어서야 통일대교를 넘어 돌아올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 세관원 등과 다툼도 심하게 벌였지만 사실상 추방 명령이 내려진 가운데 짐이 있으면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결국 그 지시를 이행하느라고 시간이 지체된 것이다.

■ 박용만 : 2월 11일 오전 11시까지 대기하고 오후 2시까지는 나오라는 정부 지침이 있었다.

입·출경에 각각 30분씩 걸리는 걸 감안하면 실제 작업시간은 2시간 밖에 안 되는 상황이었다.

또 각 회사별로 차량 2대, 인원 4명에서 차량 1대, 인원 2명으로 줄이는 바람에 아침도 거르고 도라산에 집결한 작업자들이 점심 끼니도 거른 채 상차 작업을 했다.

그런데 북측에서 금형 같은 것은 싣고 나오지 못하게 해서 다시 내려놓고 하는 해프닝이 곳곳에서 벌어지면서 밤 8~9시가 다 되어서야 공단에서 나오게 됐다.

그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끼니를 거른 사람들이 짐도 못 싣고 자정이 다 되어서야 일산에 도착해 밤새 홧술 마시느라고 집에도 못 들어갔다고 하더라.

개성 협력업체로 피해 확산, 별도 대책 필요

개성공단 전면 중단으로부터 215일을 넘긴 지금까지 정부는 조속한 경영정상화를 목표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호언해왔다.

9월 4일까지 정부의 지원대책 중 고정자산에 대한 경협보험금(112개사 중 93개사, 2,705억원(약 86%))과 투자 및 유동자산 피해에 대한 지원금(95개사, 1,062억원(55%)) 등 총 3,767억원(74%)가 지급되었다.

피해지원이 정상을 되찾는 듯한 착시를 일으키는 지표이지만, 입주기업의 직접적인 피해는 물론이고 협력업체들의 2차, 3차 피해가 갈수록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입주기업 중심으로 구성된 개성공단비대위는 최소한 정부가 피해조사를 거쳐 인정한 7,749억원이라도 전액 지원해야 원부자재 등을 납품한 후 피해를 당하고 있는 협력업체와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며, 피해 확산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예비비와 내년 예산에 즉각 반영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 조삼환 에프알티코리아 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통일뉴스 : 개성공단과의 인연, 전면 중단으로 인한 피해 규모, 현황 등을 설명해 달라.

■ 조 : 개성공단 입주기업에 임가공을 한 지 1년 조금 넘는 시점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 개성에서 일이 좀 되나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일을 당한 거다. 그동안은 개성공단의 특수성도 있고 해서 적응하는 기간도 필요했고 새로운 거래선도 확보되는 과도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기반을 잡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지금 더 어렵다.

□ 임가공 규모는 얼마나 되었나.

■ 시즌별로 차이가 있지만 인테리어 쪽이어서 커텐, 이불, 카펫 같은 경우 성수기인 가을에는 월 1억원 정도 매출을 올렸다. 여름에는 월 5천만 원 미만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 손실규모는.

■ 실제는 3억 원 정도인데, 손실 규모를 세관 통과 서류 기준으로 하라는 정부 방침 때문에 제대로 신고를 하지 못하고 1억 8백만 원 신고를 했다.

통일부에서 촉박한 시간 안에 신고를 하라고 종용하는 바람에 졸속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원단이 1만 야드가 들어간 경우라고 하더라도 납부해야 할 세금을 줄이기 위해 세관에는 5천 야드만 반출했다고 신고한 경우가 태반이다. 실제 들어간 수량의 50~60%, 금액기준으로는 50%미만으로 신고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보면 된다.

실제 원단 1마의 시세는 4,000~5000원씩 하지만 통관서류에는 0.2~0.3달러(200~300원)씩 되어 있는 실정이다.

내 경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입주기업에서 원단 1마에 0.2~0.3달러씩 계산해서 1천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으로 피해신고한 것을 다시 정정해서 늦게나마 신고한 것이다.

특히 협력업체들은 피해 신고를 입주기업들이 했기 때문에 이런 사정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 정 : 우리 회사의 경우 두 곳의 입주기업들을 통해 각각 2억6,000만원과 6,300만원의 유동자산 피해가 확인됐지만 이 기업들이 정부로부터 확인된 피해액의 70%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았는지 소식도 없고 입금도 없다.

통일부에서 입주기업만 상대하고 협력업체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잘 알 수도 없었지만 최근 조사한 결과 정부로부터 피해지원금을 받은 입주기업 중 납품받은 원부자재 대금을 협력업체에 정상적으로 지급한 곳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 조 :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피해금액으로 신고한 유동자산은 협력기업들 것이다. 그런데 정작 협력기업들은 얼마가 지원이 나왔는지를 알 수가 없다. 일부 기업들은 30%만 받아라, 40%에서 정리하자며 협상을 제의하는 경우도 있다. 왜 협력기업이 응당 받아야 할 돈을 가지고 자기들이 흥정을 들어오나.

너무 억울해서 유동자산뿐만 아니라 설비에 대해서도 추석이 지난 후 자체적으로 실태조사를 별도로 하려고 한다. 협력업체 중에는 원활한 임가공생산을 위해 기술지원을 포함해서 무상임대설비를 입주기업에게 제공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다.

한 군데에서 3억7천만원 정도의 기계를 10분의 1정도 피해액으로 인정받은 사례는 있다.

□ 협력업체들의 요구를 다시 한 번 정리해 달라.

■ 조 : 통일부가 책임을 지고 협력업체의 피해에 대해서는 입주기업들에게 미루지 말고 직접 처리해야 한다. 싸움 벌어지는 것 밖에 안 된다. 통일부는 입주기업에 대한 피해지원액을 협력업체가 요청했을 때 열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정종탁 홍진패션 대표가 협력기업협의회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정 : 처음엔 입주기업과의 채권·채무 금액에 상응하는 운영자금 2~3억 원만 대출해 달라는 민원을 이곳저곳에 제기했으나 다 법적 근거가 없다며 거절당했다. 그 후에는 협력업체에 들어와야 할 지원금을 입주기업을 거치지 않고 직접 수령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민원을 제기했으나 그마저 묵살 당했다.

상환조건 달지 않고, 기회비용에 대한 배상까지 해줘야 

정부가 유동자산 피해에 대한 지원금을 입주기업에 지급하면서 협력업체와의 민형사상 책임을 정부에 묻지 않는다는 확약서를 받는 것이 또 다른 쟁점이 되고 있는 가운데, 박용만 녹색섬유 대표는 아직 확약서를 쓰지는 않았으나 9월 24일까지 명시한 기한에 맞춰 지원금 신청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 박 : 기업 간 거래에 정부가 개입하는데 찬성할 수 없다. 정부가 개입하면 기업이 스스로 융통성있게 처리할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없애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입주기업과 협력업체는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우려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는 있다. 입주기업들이 협력업체에 지불해야 할 돈은 당연히 주어야 하는 것이다.

피해신고 5억 7,000만원을 피해신고하고 정부가 1억6,000만원을 인정해 그 중 70%인 1억 1,000만원을 주겠다는데 확약서 때문에 아직 신청을 하지는 않았다.

입주기업의 궁색한 형편을 악용해서 받은 확약서의 법률적 효력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9월 24일까지 기한을 명시한 것은 유효하다는 의견이 있어서 기한내 지원금 신청을 고민하고 있다.

   
▲ 박용만 녹색섬유 대표. [통일뉴스 자료사진]

박 대표는 기업들의 피해 실태와 정부의 지원 또는 보상에 대해 기자의 질문이 집중되자 정부가 제시한 프레임에 갇힌 것이라며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고 자신의 주장을 이어갔다.

■ 입주기업들이 겪고 있는 피해는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지금 정부가 피해지원 대책 등으로 내놓는 것은 과거에 한정된 것이다.

대부분 언론 보도 역시 ‘개성공단에 두고 온 유동자산과 고정자산을 합친 ‘유형자산’에 피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합리적 기준으로 인정하는 틀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당장 개성공단에 두고 온 물건(시설, 설비 등)에 대한 피해에 대해 대출 전환을 하고 일부 유동자산 피해에 대해서는 삼일회계법인이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해 인정한 금액의 70%를 확약서를 써줘 가면서 받는 것은 입주기업의 입장에서는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이 입은 피해는 100% 보상해야 하고 상환을 전제로 하면 안 된다. 개성공단 재가동시 입주기업들이 다시 들어가려는 마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조치이다.

또 현재 개성공단 기업들이 치러야 하는 고용유지비용과 대출금 확대 및 이에 따른 이자 부담, 일반 관리비 증가, 사업복원을 위한 위험 회피 비용 등에 대해서도 고민이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 투입된 매몰비용과 달리 미래 기대 수익에 미친 피해는 거론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구체적으로 현재의 피해, 미래 꽃피지 못한 기회비용에 대한 계산을 한다면.

■ 판례를 보면 1년 매출을 실질 손해에 대한 합당한 보상으로 보는 경우도 있고, 3년 치 이익을 합산해서 기회비용의 상실로 보는 경우도 있더라.

우리의 경우, 개성공단에서 순수하게 올린 연매출이 25억 원이었다. 이자비용까지 포함해 월 3,000만원을 웃도는 적자가 발생해 연간 5억 원을 넘는 피해액의 4년 총액, 3년간의 순이익도 비슷한 규모로 계산된다.

공교롭게도 대부분의 입주기업들이 2008년부터 실질적으로 가동을 해서 2013년까지는 엄청난 손실을 보았다. 6년간 많은 적자를 본 후 2014~2015년에 흑자 전환을 했다.

그래서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면서 2012년, 2014~2015년을 기준년도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2005년 10월 개성공단에 입주, 4층짜리 1,200평 건물의 건물에 4명의 상주 주재원과 3명의 출퇴근 근로자, 350명의 북측 근로자가 함께 일했던 녹색섬유는 124개 개성공단 입주기업 중 가장 평균적인 기업이라며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이야기하던 박 대표는 기업 손실에 대해서는 망신이라며 구체적으로 밝히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또 아픈 사람처럼 보일까 걱정된다며, 끝내 자신의 모습이 찍히는 걸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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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선체인양, 진상규명 보고서 차례상에 못올려"

 

[현장] 광화문 416분향소에서 세월호 유가족-시민 한가위 합동차례 열려

16.09.15 20:38l최종 업데이트 16.09.15 20:3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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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광화문 세월호 분향소 '가족-시민 한가위 합동차례'에 참석해, 외아들 고 오영석군 등 희생자 영정 앞에 국화를 헌화 중인 유가족 권미화씨.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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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유)가족분들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제가... 위로가 될까 싶어 왔는데... 오히려 제가 힘을 얻고 갑니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 김성묵(40·남)씨는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세월호 마지막 탈출자'로 알려진 김씨는 2014년 4월 16일, 사업차 제주로 향하다 사고를 당했다. 여전히 쉽사리 잠들지 못하고 술과 약에 의존해 버티고 있다는 그는,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가방에 조은화·허다윤·박영인·남현철 등 미수습자 학생들의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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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 생존자 김성묵(40·남)씨는 지난 2일 4·16 세월호 특조위 3차 청문회에 참석해 발언하기도 했다.
ⓒ TBS제공,오마이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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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참석한 세월호 참사 생존자 김성묵(40·남)씨는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가방에 조은화·허다윤·박영인·남현철 등 미수습자 학생들의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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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2일 4·16 세월호 특조위 3차 청문회에 참석해 "사고 당시 '아저씨 우리 어떻게 해요'라고 묻는 아이에게 아무런 답변을 못 했다. 871일간 (유족)부모님들 눈을 쳐다보지 못했던 게 그 때문"이라며 눈물을 참아내던 그였다. 생존자 김씨는 15일 오후 4시께 서울 광화문광장 분향소에서 열린 '가족-시민 한가위 합동차례'에 참석했다.

참사 발생 후 세 번째 추석이지만 세월호는 여전히 인양되지 않았고, 미수습자 9명도 그대로다. 이런 가운데 광화문416광장에서 단식 농성 중인 4.16연대와 세월호 특조위는 추석 당일 15일 오후 4시 20분께부터 분향소 앞에서 한가위 합동차례를 지냈다. 경기 안산에서 온 유가족, 단식 중인 이석태 특조위원장 등 30여 명이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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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을 맞아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월호 분향소 앞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한가위 합동차례가 열렸다. 사진은 발언하고 있는 유가족 권미화씨.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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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재학 중이던 외아들 오영석군을 잃은 권미화씨는 이날 마이크를 잡고 "(참사)이전의 명절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다른 이들은 같은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왔다"며 "부모들이 직접 음식 해서 아이들 방(희생자 분향소)에 놓기는 어려운데, 상차림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울음 탓에 자주 말이 끊긴 권씨는 이어 국회에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촉구했다. "20대 국회에서만은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 냄새 나는 곳이 되길 바란다", "아직 세월호에 사람이 있고, 아이들 기다리는 부모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아픈 마음 어루만져주셔서 고맙다"며 인사하는 권씨에게 청중은 박수와 함께 "힘내세요" 응원을 보냈다.

'동조단식' 신부 "함께 있는 게 제 몫"... 이석태 "특조위호 지키겠다"

 
합동차례는 약 한 시간 정도 짤막하게 진행됐다. 4·16가족협의회 유가족(권미화씨)와 박래군 4·16연대 상임위원, 이석태 특조위 위원장 등이 돌아가며 한가위 인사말을 나눈 뒤 광화문 광장 희생자 분향소에 가서 순서대로 분향·참배하는 식이었다.

이날 합동차례에는 시민 100여 명도 참석했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세균 정의당 의원 등 정치인들도 있었다. 분향소 희생 학생 영정들 앞에 밤과 대추, 배와 사과 등 추석 차례상이 차려졌지만, 4·16연대와 세월호 특조위 관계자들이 단식농성 중인 상황을 고려해 음식 나눔은 하지 않았다.

다시 단식에 들어간 이석태 위원장(63)도 이날 참석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과 미수습자들을 위해 묵념하며 고개를 숙였다. 7월27일 특조위가 "정부는 특조위 조사활동 기간을 보장하라", "세월호 특별법을 개정하라"고 요구하며 릴레이 단식 농성에 나선 지 51일째였다. 이 위원장은 낮은 목소리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제가) 특조위로서 어떤 차례상을 준비해야 할까(...). 희생자들이 바라온, 세월호 선체의 온전한 인양과 참사 진상규명을 해서 보고서를 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특조위 능력 부족, 또 정부의 지원 미비로 인해 차례상을 차려드릴 게 없어 매우 참담한 심정입니다. 특조위호가 침몰할 분위기라 지키려고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참사 진상 규명의 밀알이 되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족들을 돕겠다며 앞서 15일간 동조 단식을 했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나승구 신부도 이날 광화문을 찾았다. 그는 "(유)가족들에게 드릴 말씀이 없다, 늘 말로만 위로하는 것 같아 드릴 말씀도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나 신부는 이어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이 제 몫인 것 같다, 함께 있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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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을 맞아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월호 분향소 앞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한가위 합동차례가 열렸다. 헌화하는 유가족.시민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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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을 맞아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월호 분향소 앞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한가위 합동차례가 열렸다. 손혜원 의원이 유족 권미화씨를 위로하는 모습.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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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차례는 이후 특조위원장·유가족·시민들이 순서대로 희생자 분향소에 헌화한 뒤 참배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날 "유가족들을 응원하려, 또 '잊지 않겠다'는 제 초심을 기억하려고" 남편과 함께 광화문에 왔다는 이근하(42·충남 천안)씨는 정치인들을 향한 따끔한 한마디를 남기기도 했다. 다음은 이씨의 말이다.

"총선 때 야당에 힘 실어준 건 국민 목소리를 들으라는 의미였어요. 그런데 세월호 특별법 관련한 모습을 보면, 야당은 의지가 전혀 없어 보입니다. 다수 야당이 의지만 있으면, 정세균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해서라도 진행하면 국민 지지를 얻을 텐데... 광화문 광장에 얼굴 비칠게 아니라, 국회에서 부디 제 할 일을 했으면 합니다."

추석 연휴 기간인 14일(수)부터 18일(일)까지 서울 중구 광화문광장에서는 매일 오후 4시 16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다채로운 가족-시민 행사가 열린다. 16일(금)에는 한가위 풍물 한마당과 17일(토) 전래놀이 한마당, 18일(일) 세월호 특조위 특별강연회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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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교예 예술'

북한, 예술로 읽다(8)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교예 예술'
▲ 조영합작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중에서 (사진 유튜브 켑처)

2012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북한(김광훈)과 영국, 벨기에의 감독이 합작으로 만든 로맨틱 코미디 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Comrade Kim Goes Flying)를 특별 상영했다. 시골의 한 여성 광부가 평양에서 교예 예술인이 되는 꿈을 이룬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북측의 수준 높은 교예, 특히 공중 곡예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2012년 8월 토론토국제영화제 초청 등 해외에서도 널리 상영이 되어 북측의 교예예술을 소개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북측에서도 추석은 민족 명절로 성묘를 다니고 휴가를 즐길 수 있다. 차례는 지내지 않지만 송편을 만들고 민속놀이를 즐기는 모습은 남북이 모두 한결같다. 나들이를 하는 경우에는 놀이동산과 공연 관람이 대표적인데,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2012년 개장한 ‘능라인민유원지’와 ‘평양교예극장’이다.

평양 능라유원지에서는 1,400석 규모의 ‘곱등어(돌고래)관’이 단연 인기. 7m를 뛰어 오르고, 공을 몰고, 훌라후프를 돌리기도 하던 곱등어가 싱크로나이즈 선수들과 수중무용을 하는 장면에서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북측에서는 이것을 ‘곱등어 교예’라고 칭하고 있다.

“주체 교예예술의 창조기지”라 불리는 ‘평양교예극장’은 서울의 명동거리와 비견되는 광복거리에 있다. 이곳에는 세계 최정상의 교예단인 ‘평양교예단’이 상주하고 있다. 1962년 12월 평양 대동강변에서 1,800석 규모 문을 연 교예극장은 이후 1989년 4월 3,500석의 규모로 이곳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5개의 큰 건물들로 구성된 이곳에서는 체력교예뿐만 아니라 수중교예, 동물교예, 빙상교예 등 각종 교예를 진행 할 수 있는 구조이다. 2010년 7월 극장을 방문한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로 2011년 10월 18일 재오픈 했다.

국립평양교예단(고혁철 단장)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6월 10일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따라 ‘조선국립곡예단’이라는 명칭으로 200명의 단원을 모아 창단, 2개월 만에 첫 공연을 가졌다. 1971년 4월에는 ‘국립교예단’으로, 1972년 3월에는 ‘평양교예단’으로 개칭이 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김정일 위원장의 직접적인 지도와 후원으로 ‘모란봉교예단’과 함께 북한을 대표하는 교예단으로 성장한 ‘평양교예단’은 1,500여 명의 단원을 보유한 독보적 위치에 올라섰다. 총 1,000여 편을 상회하는 작품을 창작 공연한 교예단은 세계 대회를 휩쓸며 ‘교예 예술의 본보기’가 돼왔다. 

▲ 교예《춘향전》 중에서 (사진 유튜브 켑처)

1980년대의 경우 1981년 11월 프랑스 Louis Merlin국제공중곡예대회를 비롯하여 11개의 세계대회에서 1위와 3개의 금상, 20개의 금메달, 2개의 최고상을 수상했다. 2002년 1월 모나코에서 열린 제29차 몬테카를로 국제교예축전에서 ‘다각비행’으로 금상을 받았는데, 이때의 ‘공중 뒤로 4회전’ 기술은 여성 최초의 시연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2010년 1월 로마 골덴 씨르쿠스 국제교예축전 최고상(고대로마원형극장 금상) 수상, 2010년 11월 중국 무한국제교예축전 최고상(금학상) 수상, 2015년 2월 스페인 피게레스 국제교예축전 최고상(금코끼리상) 수상, 2015년 9월 러시아 세계교예예술축전 최고상 수상 등 북측의 교예는 서커스계의 3대 국제 경연인 모나코 몬테카를로 대회와 러시아 세계교예예술축전, 스페인 피게레스 국제교예축전을 모두 석권했다.

평양교예극장을 전용극장으로 주 5회의 정기공연을 하고 있는 평양교예단의 대표적 작품은 '널뛰기' '전회비행' '날아다니는 처녀들' '공중철봉비행'과 요술 '사과풍년' '신기한 힘' '우산재주' 등이다. 이중 ‘4바퀴 돌아잡기’와 ‘몸을 펴고 3바퀴 돌아잡기’ 등의 고난도 기술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공중 5회전 돌기’ 등 공중 곡예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1972년과 1982년 '국기훈장 제1급'을 받았고, 1977년에는 최고훈장인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99년 12월 통일농구대회에서 소규모(단원 14명)로 막간 공연을 선보인 후 2000년 6월 4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내한공연에서는 자타 공인하는 북측 최고의 교예배우인 인민배우 김유식을 단장으로 공연단 62명과 관현악단 15명, 연출가와 기술진 등 총 102명이 참가해 절찬을 받은 바 있다.

▲ 교예《춘향전》 중에서 (사진 유튜브 켑처)

북측 교예계를 양분하는 또 다른 교예단은 ‘조선인민군교예단’으로 1989년 2월에 설립이 됐다. 1982년 군 종합예술단체인 조선인민군협주단에 신설된 교예부가 승격 독립한 것으로 ‘모란봉교예단’이란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조선인민국 총정치국 선전부 소속의 300명 가까운 단원들이 평양 모란봉 구역에 있는 전용극장인, ‘모란봉교예극장‘이라고도 불리는 1,800석 규모의 ’조선인민군교예극장‘에서 상설 공연을 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 시절 금강산문화회관에서 상설 공연을 한 교예 단체이기도 하다. 북측 정부가 이곳을 거점으로 북측 교예를 ‘태양의 서커스’를 뛰어 넘는 세계적인 아트 서커스 상품으로 만들어 세계 순회공연을 기획하기도 했다.

이렇듯 북측 교예가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에 있으며, 그 핵심에 ‘평양교예학원’이 있다. 1952년 현재의 평양예술단 소속 양성반을 전신으로 1956년 8월 ‘곡예학교’로, 1959년 9월 ‘평양곡예전문학원’으로 명명되다가, 1972년 6월15일 ‘평양곡예학교’로 정식 설립됐고, 1976년 3월 1기 졸업생이 첫 졸업공연을 가졌다.

1992년 9월 학원으로 승격해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학원은 창립 당시 3년제였으나 1978년 3월 4년제로 확대됐다가 1989년 3월부터 6년제가 되었고, 학생 수도 60명에서 80명으로 늘어났다. 교육은 실기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학원은 1989년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계기로 만경대구역 광복거리에 세워진 평양교예극장 내에 있다.

북측에서 교예는 서커스나 곡예, 마술이 지닌 단순한 오락성을 넘어서 사회주의적 문학예술의 한 장르로 분류된다. 북측에서 발행한 ‘문학예술사전’에 따르면 “교예는 육체운동을 형상수단으로 하여 인간의 체험과 정서, 지향 등을 반영함으로써 사회교양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교예가 사람들에게 건전한 사상과 슬기, 용맹과 의지를 키워주고 그들을 명랑하고 쾌활하게 만들어 주는 고상한 예술로 되고 있습니다”라는 김정일 위원장의 평가가 교예에 대한 북측의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북측에서는 교예의 역사를 기원전 무덤의 벽화에서 찾고 있는데, 고구려 팔청리 무덤에서 발견된 마상곡예를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다. 호선무, 금환, 새미놀이, 땅재주, 법고놀이 등과 중세 시대의 사당패의 무동쌓기, 광대의 줄타기, 마상재 등을 꼽고 있다. 이러한 교예 유산을 기초로 한 북측의 교예는 그래서 민족 정서를 살린 종목들이 특히 많으며, 배경 음악도 민족 고유의 명곡과 민요들을 편곡하여 사용하고 있고, 복장도 한복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민속놀이를 교예화한 ‘밧줄타기’ ‘널뛰기’ ‘2인 그네’ 등이 대표작이며, 마상곡예의 전통을 계승한 ‘말타기’ ‘말춤추기’ 등이 유명하다.

▲ 교예《춘향전》 중에서 (사진 유튜브 켑처)

북측 교예의 명인들도 다수인데, 교예 연출가인 인민 예술가인 박소운, 눈 가리고 공중 4회전을 한 세계교예선수권 보유자이자 지도자인 인민배우 김상남, 교예 부문 첫 인민배우였던 김봉애, 서울 공연에서 공중 그네를 보여준 길은혜, 선반공 출신으로 노력영웅에까지 오른 인민배우 김택성 등이 그들이다. 젊은 층에서는 단연 ‘하늘을 나는 처녀’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최경화가 유명하다.

2002년 모테카를로 대회 금상 수상으로 세계무대에 깜작 데뷔한 최경화(34)는 2007년 10월 중국 허베이(河北)성에서 열린 제11차 우차오(吳僑) 국제서커스예술축제에 참가해 공중곡예 '뒤로 4회전 돌아잡기'라는 고난도 연기를 소화해 최고상인 ‘금사자상’을 수상해 세계 최고의 여성 공중곡예사로서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최경화는 평양시 락낭구역 정백동에서 평범한 노동자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평양보통강소학교(당시 보통강인민학교) 시절 체육무용 소조원으로 활동하던 그녀는, 소학교 3학년 시절 평양교예학원 예비 과정 선발대회에서 구역 대표로 선발됐다. 9살의 어린 나이로 교예학원에 입학한 최경화는 악바리 근성으로 어려운 과정을 이겨내고, 중학반을 거쳐 꿈에 그리던 평양교예학원 공중학과에 진학한다.

졸업 후 평양교예단에 들어간 그녀는 인민예술가인 김재근이 창작한 “다각비행” ‘4회전 돌기’에 자원해, 자그마치 5년간을 하루 6시간 이상의 고된 훈련을 이겨내고 마침내 ‘공중에서 뒤로 돌아 4회전 돌아잡기’에 성공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로 똘똘 뭉친 “다각비행” 8인조의 값진 성과였다. 당시 세계적으로 이 기술을 할 수 있는 여성은 그녀가 유일했다. 최 씨는 그 공을 인정받아 2005년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다.

민족의 명절인 추석, 평양 능라도 민족씨름경기장에서 ‘대황소상 전국 민족씨름 경기’의 번외 경기로 남북 친선 대회가 열리고, 평양교예단이 서울에서 추석 특별공연을 하는 날이 조만간 꼭 오리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 교예《춘향전》 중에서 (사진 유튜브 켑처)

 

조영합작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 https://www.youtube.com/watch?v=J6VQbagojN0

교예 《춘향전》 https://www.youtube.com/watch?v=IJJxxIF6Z4g

 

* 이철주 편집기획위원 10년 넘게 남북 사회문화교류 영역에서 활동해 온 문화기획자다. 금강산가극단 내한공연 제작, 평양조선국립미술관 내한전 합의, 사할린 남북 해외 청소년 평화미술전 주관, 조선무용50년-북녘의 명무, 철원노동당사 DMZ평화음악회, 조선학교 중등교육 70주년 기념 꽃송이콘서트 등을 제작했다. 현재는 남북합동음악회와 평화미술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철주 편집기획위원  news@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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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한가한 소리 마라, 국감이 기다린다

등록 :2016-09-15 12:05수정 :2016-09-15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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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국회 국정감사 풍경. 상임위별로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동안 피감기관 공무원들이 국회 본관 복도에서 생중계를 보며 답변자료를 준비하느라 북적이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2014년 국회 국정감사 풍경. 상임위별로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동안 피감기관 공무원들이 국회 본관 복도에서 생중계를 보며 답변자료를 준비하느라 북적이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정치BAR-보좌관Z의 여의도 일기

의원이 언론에 대서특필되면
‘에이스’로 평가받는 직업
카페인 흡입하며 날밤 새우지만
실적 낮으면 ‘비명횡사’하기도
찬바람이 분다. 국회에 은행 열매 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하면, 보좌관들의 표정이 굳어지고 눈에 힘이 들어간다. 비로소 국정감사(이하 국감)의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제헌헌법에 도입됐던 국감이 1972년 유신헌법에 의해 폐지됐다 88년 본격 부활되고 28년째를 맞는다. 나는 이 중 8번의 국감을 연속해서 치렀고 이제 9번째 국감을 치를 참이다.

 

국감은 국회가 대정부 견제·감시 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맘껏 뽐낼 수 있는 기회다. 더 구체적으로는 개별 국회의원이 언론의 집중과 관심을 받으며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다. 이를 위해 한껏 피치를 올려 한 건 터뜨리려 혈안이 된다. 스포트라이트의 집중 포화를 받아 대중적 인기를 얻고 이를 발판 삼아 정치적 위상을 높일 수도 있다. 실제 법제사법위원회의 ‘박남매’(박지원·박영선)가 보여준 저격수의 강한 인상도 국감을 활용한 결과이다.

 

국회에 갓 입성한 초선 의원들은 경험이 짧다. 고작 10명이 안 되는 의원실 조직을 가지고 비대한 행정부 조직, 그것도 여러 개 기관의 문제점을 파헤치려니 답답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영감(보좌진이 국회의원을 부를 때 쓰는 은어)의 이름으로 제대로 한 건 터뜨려줄 수 있는 보좌진이 있다면 안심할 수 있을 터이다.

 

어차피 ‘Z’의 익명에 숨었으니 털어놓는다. 어디 가서 떠들 일은 아니지만, 나는 ‘에이스’다. 국감 잘한다고 동료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러나 에이스라는 평가엔 만만찮은 부담이 뒤따른다.

 

보좌관이 에이스냐 아니냐에 대한 평가는 일단 국감 기간 동안 신문 1면에 몇 번이나 영감의 이름이 등장했는지, 지상파 뉴스에 영감의 얼굴이 몇번이나 나오는지로 갈린다. 시민단체들이 선정한 의정활동 우수 의원 명단에 올라, 연말 의정보고서에 근사하게 몇줄 써넣어 지역구에 뿌릴 수도 있다. 상임위를 같이해 보면 어느 의원실에 ‘선수’가 있는지 대번에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국회 개원 시기에 이어 국감도 선수들의 활발한 이직이 이뤄지는 시즌이다. 국감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단칼에 비명횡사다. 20여일간의 국감을 정신없이 보내고 나면 냉혹한 평가가 기다리고 있다. 의원들은 선거 때 도와줘서 데리고 왔더니 정책에는 도움이 안 된다며 보좌관들을 내보내기도 하고, 일 잘한다고 해서 뽑아왔더니 잘못된 선택이었다며 다른 자리를 알아보라고 떠밀기도 한다. 물론, 국감용으로 뽑혀왔다가 운이 좋게 영감과 정치적 동반자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추석 직후 국감이 치러지기 때문에 보좌진에게 추석이란 명절은 그림의 떡이다. 8월 휴가를 떠나며 각 피감기관들에 요구 자료 리스트를 보내놓는데, 이 자료가 들어오면 확인하고 재차 보완할 점을 요구해야 한다. 피감기관과 실랑이를 벌이다 보면 추석을 전후로 막바지 자료들이 배달된다. 추석 연휴 동안 국감 때 쓸 자료들을 정리하기 위해 막바지 검토를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추석 명절은 기껏해야 하루 정도 쉰다. 우리 가족도 이제 이런 삶에 익숙해졌는지, 이젠 아예 나를 제쳐두고 추석 연휴 계획을 짠다.

 

국감 때 분주한 건 보좌관들만이 아니다. 대기업 대관업무를 하는 이들도 눈에 불을 켜고 국회를 누빈다. 어느 상임위에서 회장님이나 임원을 증인으로 불러들이지 않는지 바짝 긴장하고 주시한다. 이들로선 국감 기간이야말로, 그동안 보좌관들에게 밥을 사며 인맥 형성에 공을 들인 것이 평가받는 시기다. 간혹 어떤 보좌관들은 대관업무를 하는 이들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처음부터 증인으로 세울 생각이 없었으면서도 미리 증인 목록에 넣어놨다가 부탁을 받으면 빼주는 식으로 짜고 치기도 한다. 순수하게 인간적 호의일 수도 있고, 어떤 조건이나 대가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반면, 증인 신청을 무기 삼아 좀체 막기 어려운 대기업의 횡포를 막아내는 ‘우수 사례’도 있다. 지난해 한 기업이 국내 쌀 도정업에 진출하려다가, 회사 대표를 증인 목록에서 빼내기 위해 물러선 적이 있다. (그러나 이 기업은 국감이 끝난 뒤 도정업 진출을 재추진했다.)

 

국감은 대학 때 시험기간과 비슷하다. 일주일에 사흘은 집에 가지 못하고 이틀 정도는 날을 새우기도 한다. 나는 몇년 전부터 국감철이 되면 카페인이 다량 함유된 음료수를 두 박스 준비한다. 어떤 보좌관은 국감 때 이 음료를 즐겨 마시다 중독이 된 탓인지 나중엔 1년 내내 마시기도 했다. 추석이 끝나고 나면, 나는 다시 이 음료를 주문하게 될 것이다.

 

자칭타칭 ‘국감 에이스’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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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치유, 쓰는 사람에 따라 얼마나 폭력적인지…”

 

[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87] ‘위안부’ 문제 다룬 소설 <한 명> 김숨 작가이영광 기자  |  kwang3830@hanmail.net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청년 이한열의 운동화 복원과정을 그린 <L의 운동화>의 김 숨 작가가 이번에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처절한 삶을 소설화 한 신작 <한 명>을 출간했다.

소설 <한 명>은 ‘위안부’ 피해자로 정부에 등록된 생존자가 단 한 명 남은 시점에 등록되지 않은 ‘위안부’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출간까지의 뒷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12일 서대문역 근처 커피숍에서 김 숨 작가를 만났다.

김 작가는 <한 명> 집필 계기와 관련해 “신고한 ‘위안부’ 피해자보다 신고하지 않은 피해자의 숫자가 훨씬 많은데 여전히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가는 분이 어딘가에 계시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였다”고 밝혔다.

소설은 줄곧 주인공을 ‘그녀’로 표현하다 마지막에 ‘풍길’이란 이름을 등장 시킨다.

그 이유에 대해 김 작가는 “소설 속 주인공인 ‘그녀’는 13살 때, 납치를 당해 만주 위안소로 끌려가는 순간 영혼과 육체를 강탈당한다. 소설 <한 명>은 ‘나’라는 실존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서 ‘그녀’가 잊고 있던 13살 이전, 고향에서 부모님과 친구들이 불러주던 ‘그녀’의 이름을 찾아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김 숨 작가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소설 <한 명> 김숨 작가 ⓒ 이영광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 순간적 아닌 지속적인 것”

- 소설 <한 명>, 지난 8월 초에 출간되었는데, 반응은 어떤가요?

“‘위안부’ 문제에 평소 관심이 있으셨던 분들이 많이 읽어주시는 것 같아요. 고등학생들의 반응이 무엇보다 고맙고 뜻깊게 다가왔어요. 청소년 기자들과 만나 <한 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갖는 그들의 관심과 애정에 감탄했어요. 피해자들의 증손녀뻘 되는 그들이, 손녀뻘 되는 나보다 더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저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어요. 그들의 관심이 순간적인 게 아니라 지속적인 것에 안도했죠.”

- 주위에서 책을 읽고 뭐라고 하나요?

“‘쓰기 힘들었겠다’거나 ‘애썼다’ 같은 말씀을 주로 해주셨어요. 읽기도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썼으니, 쓰는 동안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은 일들과 살아 돌아온 이후에 그분들께 주어진 삶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끔찍하고 고통스러웠잖아요. 하지만 그 말들이 이상하게 제게 위로가 되고, 든든한 힘이 되었어요.”

-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는 아픈 역사로 지금도 해결되지 않았어요. <한 명>을 쓰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제 중편 <뿌리 이야기>에 ‘위안부’ 피해자가 지나가는 인물로 등장해요. 잠깐의 등장이었지만, 제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인물이었어요. 그 소설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을 때 언젠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다는 고백을 했어요. 바람은 있었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결코 만만한 소재는 아니잖아요. 써지지 않으면 쓸 수 없겠구나 싶었는데, 작년에 ‘한 명’이라는 제목이 오면서 소설이 써지기 시작했어요.”

- ‘위안부’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제가 관심을 갖는 대상 중 하나가 ‘노인’이예요. 노인들에게 시선이 가요. 그들의 표정, 행동, 말들에 흥미를 느껴요. 영감을 받기도 하고요. 현재 생존해 계시는 ‘위안부’ 피해자들은 노인들이세요. 정주하신 못한 삶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는데, ‘위안부’ 피해자 대부분이 열대여섯 살 이후로, 정주하지 못하고 뿌리 뽑힌 삶을 살아오셨어요.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피해자들에게 시선이 갔던 것 같아요.”

- ‘위안부’ 문제를 처음 접했을 때 어땠나요?

“막연하면서도, 그분들이 죄인처럼 숨어서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 친할머니나 외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가 아니어서, ‘위안부’ 피해자들이 저와 먼 분들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분들의 증언들을 읽으면서 그분들이 제 아주 가까이에서 살고 계셨다는 것과 제 친할머니나 외할머니를 대신해 ‘위안부’로 동원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위안부’ 피해 사실 숨길 수밖에 없었던 분들의 ‘입’이 되어 주고자…”

- <한 명>은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하지 않은 할머님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는데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위안부’ 피해자 신고를 하고, 역사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증언하시는 피해자분들을 보면 존경스러워요. 그런데 살아 돌아온 많은 피해자들이 끝까지 가족에게조차 말하지 못한 채 가슴 속에 한으로 품고 살다 돌아가신 걸고 알고 있어요. 그런 분들의 내면을 그리고 싶었고, 수면 아래에서 숨죽이고 있는 그분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싶었어요. 소설로라도, 자신이 피해자라고 떳떳하게 말씀하시는 못하는 분들의 ‘입’이 되어 주고 싶은 마음이 제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하죠.”

- 소설 속에서는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하지 않은 분이 한 명인데, 실제로는 더 있을 것 같아요.

“여전히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가는 분이 어딘가에 계시지 않을까 생각해요.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보다 신고하지 않은 피해자의 숫자가 훨씬 더 많으니까요. 그리고 그분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끝끝내 말하지 못한 채, 사과의 어떤 말도 듣지 못한 채, 피해자임에도 도리어 죄인처럼 살다가 돌아가셨죠.”

-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요.

“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현재의 삶을 이해하는 것도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분들이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고 계신지 그려 보이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현재의 오늘의 삶이 여전히 과거의 영향을 받고 있으니까요.”

-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야 해서 취재도 많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증언집들과 관련 기사를 찾아 읽고, 관련 영상 자료들을 찾아보았어요. 제가 구할 수 있는 자료들은 거의 구해서 읽고, 본 것 같아요. 하지만 ‘위안부’ 피해자분들을 찾아뵙지는 않았어요.”

- 왜 안 만났죠? 직접 만나 증언을 듣는 것도 의미 있었을 텐데.

“일종의 거리 두기를 한 것인데, 한 분의 경험에 갇히는 것을 우려했던 것 같아요. 할머니들을 찾아뵙고 ‘할머니께서 겪은 일들을 소설로 쓰고 싶으니 저에게 좀 들려주세요’라는 말을 할 엄두가 나지 않기도 했어요.”

“소설 <한 명>,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자들이 남긴 증언”

- 현재 살아계신 분이 적지만 그래도 여러 분을 만나시면 되지 않을까요?

“현재 생존해 계시는 ‘위안부’ 피해자분들은, 그분들이 하실 수 있는 증언을 수십 수백 차례 하셨어요. 그분들이 들려주실 수 있는 이야기들을 충분히 들려주셨다고 생각해요. 돌아가신 분들이 남긴 증언들도 제게는 중요했고요.”

- 증언집을 읽으며 느끼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제가 너무 몰랐다는 반성을 절로 하게 되더라고요. 증언집에 실린 내용들이 상상을 초월해 놀랐어요. 피해자분들이 증언하는 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증언 작업을 꾸준히 해오신 분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들고요.”

- 힘드셨을 것 같은데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은 무엇이었어요?

“불임의 몸이 되어 돌아온 피해자분들이 많으세요. 대개의 여자에게는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평범한 삶이 그분들께는 주어지지 않았어요. 평범한 삶을 간절히 바라고, 바라는 대목을 읽을 때 가슴이 아팠어요.”

- 소설에서 주인공을 ‘그녀’로 표현하다 마지막에 ‘풍길’이란 이름을 등장시켰는데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연재할 때만 해도, 주인공은 물론 다른 소녀들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퇴고하는 과정에서 이름을 부여하게 되었어요. 소설 속 주인공인 그녀는 13살 때, 납치를 당해 만주 위안소로 끌려가는 순간 영혼과 육체를 강탈당해요. 저는 <한 명>이 ‘나’라는 실존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잊고 있던 13살 이전 고향에서 부모님과 친구들이 불러주던 태초의 이름을 찾아주고 싶었어요.”

“위안소의 소녀들이 가장 그리워했던 존재.. 엄마”

-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과 여동생의 대화에서 ‘뭘 갖고 싶냐’는 여동생의 물음에 주인공은 대답을 못 하지만 여동생이 잠들었을 때 “엄마, 엄마가 갖고 싶어”라고 말하는데 왜 엄마가 갖고 싶다고 했을까요?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증언을 읽다 보면, 위안소 시절 죽어서라도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했어요. 어떻게든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자는 약속을 서로 하기도 했고요. 위안소의 소녀들에 가장 그리운 존재는 엄마였던 것 같아요. 살아서 돌아온 그녀들을 가장 따뜻하게 보듬어준 존재가 엄마였던 것 같고요.”

- 소설에서 각주가 많은 건 거의 드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증언집을 참고로 해서 그런가요?

“저의 소설적인 상상력만으로는 쓸 수 없고, 써서는 안 되는 소설이었어요.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진실과 사실에 근거해야만 했어요.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증언들을 소설 안으로 끌어오기로 했어요. 그분들의 증언이 제게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소설을 끌고 나가는 데 큰 힘이 되었어요. 출처를 정확히 밝히는 게 피해자분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어요.”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최근 공식 출범한 '화해치유재단'에 일본 정부가 이달 중으로 10억 엔(약 111억 원)을 집행한다며 외교부가 발표한 다음 날인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연남동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서 길원옥(왼쪽), 김복동 할머니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화해와 치유, 쓰는 사람에 따라 얼마나 폭력적인지…”

-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 면전에서 우리 정부 주도로 출범한 ‘화해 치유 재단’에 10억엔을 송금했다는 이유로 소녀상 철거를 압박하면서 이면합의 의혹이 또다시 불거졌어요.

 

“화해와 치유가 굉장히 좋은 낱말이잖아요. 그러나 좋은 낱말을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쓰느냐에 따라 폭력적인 낱말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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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사랑해요" 한복소녀는 눈물을 쏟았다

 

[현장] 추석 연휴 첫 날에 열린 1128번째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

16.09.14 17:03l최종 업데이트 16.09.14 17:40l

 

▲ 한국 정부가 이 할머니의 손 잡아줄 수 없나요? 추석 연휴 첫날인 14일 서울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맞은편에서 열린 1248번째 수요시위에 참여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이날 시위 사회를 맡은 김동희 정대협 사무처장(오른쪽)의 부축을 받으며 일본대사관을 향해 쓴소리를 하고 있다. ⓒ 남소연
▲ 한복 입고 수요시위 참가한 초등학생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초등학교 6학년생 최유리양이 14일 서울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맞은편에서 열린 수요시위에 참가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길원옥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있다. ⓒ 남소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초등학교 6학년생 최유리양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길원옥 할머니 앞에 섰다. 

유리양은 "일본에서 할머니들을 데려갔는데, 할머니는 원하지 않았지만 굉장히 많은 일을 겪으셨다"라고 말했다. 이어 울먹이는 목소리로 "일본이 사죄하지 않으니까, 너무 속상하다. 할머니들이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할머니 사랑해요"라고 말했다. 두 할머니는 유리양의 손을 꼭 잡았다. 주변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유리양은 이날 오전 경기도 성남시에서 광역버스를 탔다. 행선지는 할머니·할아버지집이 아닌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이었다. 유리양은 발언 후 기자에게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부끄러웠지만, 할머니들한테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돼 발언을 했다"라고 말했다. 
▲ 부축받으며 발걸음 내딛는 김복동 할머니 추석 연휴 첫날인 14일 서울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맞은편에서 열린 1248번째 수요시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김복동 할머니가 참여하고 있다. 발언에 나선 김복동 할머니가 부축을 받으며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 남소연
▲ 김복동 할머니, 일본대사관 향해 쓴소리 추석 연휴 첫날인 14일 서울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맞은편에서 열린 1248번째 수요시위에 참여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이날 시위 사회를 맡은 김동희 정대협 사무처장(왼쪽)의 부축을 받으며 일본대사관을 향해 쓴소리를 하고 있다. ⓒ 남소연
▲ 추석 연휴에도 변함없이, 김복동 할머니... 추석 연휴 첫날인 14일 서울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맞은편에서 열린 1248번째 수요시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참여하고 있다. 할머니의 오른편에 "10억엔을 받고 끝내는 것은 정부가 할머니들을 팔아넘기는 것 밖에 안된다"고 적힌 노란 피켓이 보인다. ⓒ 남소연
14일 1248번째 수요시위가 열렸다. 추석 연휴 첫날인데도 200여 명의 시민들이 김복동·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하기 위해 나왔다. 아이와 함께 나온 가족들이 눈에 띄었다.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이민호(39)씨는 가족과 함께 수요시위에 참석했다. 19개월 된 아이는 평화의 소녀상 옆에 앉아 놀았다. 이씨는 "직장인이라 수요시위에 참석할 수 없었는데 마침 추석 연휴 때라 참석할 수 있었다"면서 "여행을 가는 것보다 수요시위에 참석하는 게 아이에게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나왔다"라고 밝혔다.
▲ 오늘도 변함없이 자리지킨 길원옥 할머니 추석 연휴 첫날인 14일 서울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맞은편에서 열린 1248번째 수요시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가 참여하고 있다.ⓒ 남소연
▲ "이제 저희들이 하겠습니다" 노란나비 14일 서울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맞은편에서 열린 1248번째 수요시위 현장에 노란나비가 내걸려 있다. 평화를 상징하는 노란날개에 "할머니들의 꽃은 지지 않았습니다" "이젠 저희들이 하겠습니다" 문구가 보인다. ⓒ 남소연
▲ 초등학생들도 "진심으로 사과하세요" 추석 연휴 첫날인 14일 서울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맞은편에서 열린 1248번째 수요시위에 참여한 초등학생들이 "진심으로 사과하세요"라고 적힌 노란 피켓을 들고 있다. ⓒ 남소연
서울 서초구에 사는 김도영(39)씨는 9살·7살 딸과 1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평화의 소녀상을 찾았다. 그는 "아이들이 이곳에서 위안부 문제와 같은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알게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중학생 이종현군은 학교 선생님과 이곳을 찾았다. 종현군은 "학교에서 신문 스크랩 활동을 하다가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우리나라 정부가 아닌 것 같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도 우리나라 국민인데, 정부가 할머니들을 위해 일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저라도 할머니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친구들과 위안부 문제를 얘기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복동 할머니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를 팔아먹었다"
▲ 김복동 할머니의 깊은 주름 추석 연휴 첫날인 14일 서울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맞은편에서 열린 1248번째 수요시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참여하고 있다.ⓒ 남소연
수요시위에서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반대에도 지난해 12월 일본과 한 합의를 밀어붙이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거센 비판이 나왔다. 지난 7일 한일정상회담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평화의 소녀상 이전을 요구했지만, 박 대통령은 명확한 반대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김복동(90) 할머니는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를 팔아먹었다"면서 "(정부가) 일본과 (위안부 문제를) 타협하려면 우리들 앞에 먼저 와야 한다. 우리도 할 말이 있다, (정부는) 자기네들끼리 숙덕거려 '소녀상을 철거하고 다시는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고 하려는 것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김 할머니는 "일본은 배상금이 아니라 위로금으로 10억 엔을 내놓는다고 한다, 위로금을 받겠다고 이때까지 싸우고 있는 게 아니다, 1000억 원을 줘도 받지 않겠다"면서 "모든 것이 해결된 후에 사죄를 받아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가 산산조각을 내놓았다"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일본대사관을 향해 "우리들은 일본이 진실로 사죄하기 전에는 언제까지나 싸울 것이다, 아베 (총리)한테 잘 전해라"며 "박근혜 정부에게 준 돈(10억 엔)과 관련해, 우리는 한 푼도 손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라이브 인터뷰에 응한 길원옥 할머니 추석 연휴 첫날인 14일 서울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맞은편에서 열린 1248번째 수요시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길원옥 할머니가 참여하고 있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오른쪽)가 길원옥 할머니를 인터뷰하며 스마트폰으로 라이브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 남소연
▲ 노란 팔찌 옆에 보라 팔찌 추석 연휴 첫날인 14일 서울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맞은편에서 열린 1248번째 수요시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왼쪽 손)가 참여하고 있다. 길원옥 할머니의 오른 편에서 스마트폰으로 라이브방송중인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오른쪽)의 손에는 보라색 팔찌가 둘러져있다. 1991년 8월 14일은 고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위안부 증언한 날이며, 현재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로 삼고 있다. ⓒ 남소연
▲ 할머니들 배웅한 고등학생 추석 연휴 첫날인 14일 서울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맞은편에서 열린 1248번째 수요시위에 참여한 길원옥·김복동 할머니가 이날 시위에 참여한 안양 신성고등학교 학생들과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는 "(추석 연휴 때) 아직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할머니들을 생각했으면 좋겠다"며 "아직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여성이 그곳으로 끌려갔는지 잘 모른다, 긴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은 갈 길이 멀다, 제대로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윤 대표는 "정부는 한일합의로 피해자에게 폭력적 가해를 저질렀다"며 "범죄자를 은폐하고 지우면서 시대의 지우개를 자처하는 한국 정부에 그 책임을 묻고, 정부가 피해자와 국민에게 사죄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한국 정부가 이 할머니의 손 잡아줄 수 없나요? 추석 연휴 첫날인 14일 서울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맞은편에서 열린 1248번째 수요시위에 참여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이날 시위 사회를 맡은 김동희 정대협 사무처장(오른쪽)의 부축을 받으며 일본대사관을 향해 쓴소리를 하고 있다. ⓒ 남소연
▲ 어깨 내어준 길원옥 할머니 "수고했어 오늘도" 추석 연휴 첫날인 14일 서울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맞은편에서 열린 1248번째 수요시위에 참여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차량에 올라탄 김동희 정대협 사무처장(왼쪽)에게 어깨를 내어주고 있다. 김 처장은 이날 수요시위에서도 변함없이 사회를 맡아 수고했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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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전화위복의 북부수해복구전투 본격 가동

북, 전화위복의 북부수해복구전투 본격 가동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9/15 [05:0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북 언론들이 북부지역 홍수피해 극복 전투에 주민들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선전활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자주시보

 

13일 북 중앙텔레비죤 방송에서 북의 온 주민들이 해방 후 가장 혹심한 피해를 끼친 북부지역 홍수 피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새로운 사회주의 선경을 만들어가기 위한 전투에 온 주민들이 떨쳐일어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특히 5차 핵시험 성공으로 받아 않은 조선민족의 긍지와 자긍심을 북부징역 홍수피해 극복의 힘으로 전환시켜가고 있는 북 주민들의 열의를 적극 소개하였다.

 

▲ 회령지역 주민들이 홍수로 무너진 제방을 다시 쌓는 작업을 정력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자주시보
▲ 수해복구현장에서 선전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만수대예술단     © 자주시보

 

▲ 낙원연합기업소에서 신속히 제작하여 북부지역 수해복구현장으로 보내주고 있는 대형 굴착기     © 자주시보

 

방송에서는 회령지구 주민들이 떨쳐나서서 제방을 정비하는 모습, 세포지구 축산기지를 건설하던 북 주민들도 결의대회를 열고 홍수피해극복을 위한 전투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 낙원연합기업소 사람들이 신속하게 여러대의 굴착기를 생산하여 신속하게 북부지역으로 보내주는 모습, 만수대예술단 성원들도 떨쳐나서 홍수피해극복 전투 현장에서 힘을 북돋아주는 선전공연을 힘있게 전개하는 모습 등을 보도하였다.

 

북 조선노동당은 현재 진행 중인 여명거리건설, 세포지구 축산기지 건설장 등 200일전투 주요 건설장의 건설을 일시 중단하고 그 모든 역량을 북부지역홍수피해 극복에 투입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추위가 닥치기 전에 모든 북부지역 주민들이 살림집에 들어갈 수 있게 하겠다고 전 국력을 동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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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FP, ‘북 홍수 피해 14만명 긴급 구호’ 개시

WFP, ‘북 홍수 피해 14만명 긴급 구호’ 개시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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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9.14  12:3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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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수 피해를 입은 함경북도의 한 마을. [사진출처-WFP]

세계식량계획(WFP)이 13일, 태풍과 홍수 피해를 입은 북한 주민 14만명을 대상으로 긴급구호에 착수했다고 평양발로 발표했다. 

WFP는 지금 이재민들에게 시급한 것은 쉼터와 오염되지 않은 물, 보건 서비스, 식량과 영양 지원이라고 밝혔다. 4만 4천명을 대상으로 7일치의 영양비스켓, 30일치의 콩을 즉시 배급했다. 9만 6천명에 대한 구호도 추가로 실시했다고 알렸다.  

달린 타이모(Darlene Tymo) WFP 평양사무소장은 “모든 마을이 홍수에 휩쓸렸다”고 전했다. 북한 주민들은 부엌과 생활도구, 가축 등을 모두 잃었다. 농작물 수확기 직전에 홍수가 덮쳤다는 점도 지적했다.

“북한 북부는 조만간 온도가 영하 25도까지 떨어지는 겨울이 닥친다”며 “주민들이 가장 혹독한 겨울을 헤쳐나갈 수 있게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WFP는 취약계층인 어린이와 여성 구호를 위해 당장 120만 달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내년 8월까지 계속 지원하려면 2,100만 달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CNN>은 13일, 1945년 이후 북부 지역에 가장 큰 비가 내렸다는 북한 측 보도를 전했다. 브래들리 윌리엄스 홍콩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북한 정부가 공개적으로 지원을 호소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논평했다.

국제적십자사 대표단을 이끌고 지난 6~9일 함경북도 현지를 방문한 크리스 스테인스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홍수가 모든 것을 쓸고 갔음을 목격했다며, 시급한 것은 쉼터 건설이라고 지적했다. 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10월말 이전까지 이재민들이 거주할 쉼터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8월 29일부터 9월 2일까지 태풍 ‘라이언록’이 몰고온 폭우로 두만강이 범람하면서 함경북도 무산, 회령 등에서 133명이 사망하고 395명이 실종됐다. 가옥 3만 5,500세대가 파손됐으며, 14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유엔총회에 참석하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도 유엔 인도지원기구 관계자들과 만나 구호 문제를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13일 <워싱턴포스트>는 “지난주 핵실험으로 국제적 규탄에 직면한 때, 북한이 국제사회에 도와달라고 하기에는 불편한 입장에 처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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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을 쓰러트린 물대포의 수압은 얼마나 되었나?

백남기 농민을 쓰러트린 물대포의 수압은 얼마나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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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9/14 [12:26]  최종편집: ⓒ 자주시보
 
 

 

 


백남기 농민을 쓰러트린 물대포의 수압은 얼마나 되었나?

 2016-09-13


2016년 9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백남기 농민 살인진압에 관한 청문회에서 전산유체역학 전문가 노현석씨가 증언하고 있다.


노씨는 백남기 농민이 “제일 큰 상용차 엔진을 돌릴 수 있는 힘보다 더 큰 위력으로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친 것”이라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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