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천하에 독립한 제일 큰 산은 오직 한 백두산이시니"

<홍암나철 100주기⑦> 만주로 망명한 대종교 총본사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6.08.25  22:17:41
페이스북 트위터

 

홍암 나철 100주기 연재에 부쳐

홍암 나철과 대종교, 항일무장투쟁 외에 우리 사회에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과 민족종교지만 우리가 결코 지나칠 수 없는 큰 인물과 중요한 종교다.

국조 단군과 국시 홍익인간, 국기 단기, 국전 개천절을 재정립한 홍암 나철과 대종교는 우리의 미래를 가리키는 나침판과도 같다. 서일, 김좌진의 청산리대첩을 비롯한 항일무장세력의 본거지로 10만의 순교자를 낸 것은 물론 주시경, 이극로, 신채호, 박은식 등 국어와 국사 운동의 출발도 홍암 나철과 대종교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과정에서 국망도존(國亡道存, 나라는 망해도 정신은 살아있다) 기치 아래 외교, 테러, 교육, 종교, 무장투쟁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싸웠고, 마침내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내놓았다.

1916년 추석인 음력 8월 대보름, 홍암 나철이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서 순교한 지 100주기, 독립운동의 아버지이자 국학의 스승, 민족종교의 중흥자인 그의 발자취를 따라 벌교에서 서울, 도쿄를 거쳐 화룡, 영안, 밀산 등을 순례했다.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군국주의화, 미국의 노골적 패권 재구축이 맞부딪치고 있는 격변의 시기에 홍암 나철의 삶과 죽음을 재조명할 이유는 충분하다. 구월산 삼성사에서 이 순례를 마무리할 수 있길 바란다.

아울러 이번 기획취재에 도움을 주신 국내외의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필자 주

<연재 기사>

“아비를 만나랴거든 공부를 통하야 한울길로 오라”
<홍암 나철 100주기 ①> 도제사언문을 찾아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지만 몸통이 중요하다”
<홍암 나철 100주기 ②> [인터뷰]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

“제일 위대한, 제일 억울하게 묻혀 있는 인물”
<홍암 나철 100주기 ③> 기념관 준공 서두르는 벌교 생가

일본 황궁 앞에서 단식투쟁 벌인 조선 선비
<홍암 나철 100주기 ④> 일사와 도동기를 찾아서


“700년간 닫힌 신교의 교문이 다시 열리어”
<홍암 나철 100주기 ⑤> 을사5적 처단투쟁과 단군교 중광

“내가 신의가 없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자”
<홍암나철 100주기⑥> [인터뷰] 최윤수 대종교 삼일원 원장

 

   
▲ 홍암 나철과 대종교는 태백산(백두산)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8월 21일 백두산 북파로 올라 마주한 천지.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망국과 맞물려 갓 출범한 대종교가 일제 무단통치의 등쌀에 베겨내지 못하고 1914년 5월 13일 총본사를 옮겨간 곳은 만주 백두산 북록(北麓)이다.

1909년 음력 정월 대보름 단군교를 중광한 홍암 나철은 1910년 7월 30일 대종교로 개칭하고 이듬해 평양을 거쳐 두만강을 건너 백두산까지 순례하고 일찌감치 백두산 북록 청파호(청호촌)를 점찍어 두었다.

홍암 나철은 당시 “천하에 독립한 제일 큰 산은 오직 한 백두산이시니 이 산은 곧 우리 천조(天祖)산이시며 천산이시며 상산(上山)이시며 제석산이시며 삼신산이시오 이 산신령은 곧 한울을 열으신 큰 신령 임검이시라”라고 백두산을 예찬했다.

“화장해서 고래를 가져다가 여기다 모셨다”

   
▲ 청호촌에서 3종사 묘역 방향으로 바라볼 때 공장 굴뚝 인근에 대종교가 설립한 청일학교와 총본사 고경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최삼룡 문학평론가(왼쪽)가 이경선 청호촌 서기(오른쪽) 등 청호촌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조선족 문학평론가 최삼룡(78) 선생과 오랫동안 중국에서 취재해온 조천현 티브이조선 대표와 함께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용성진 청호촌을 찾은 6월 22일은 비가 내렸다. 연길시에서 택시로 100위안(한화 약 1만 6천원)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화룡에서 10년간 교편을 잡은 적이 있는 최삼룡 선생은 청호촌 이경선 서기(촌장)와도 금방 말문을 텄다. 최 선생의 아들과 이 서기의 사위가 연변대 박사과정을 함께한 막역지우였던 것.

이경선 서기는 “역사연구소 강룡원 선생이 사망됐는데, 서일이라는 분을 찾아서 여기를 많이 다녔다”며 “서일의 묘지를 찾았다”고 회고했다. 대종교 3종사인 홍암 나철과 백포 서일, 무원 김교헌의 묘가 청호촌에서 바라보이는 청호종산에 모셔져 있다.

이경선 서기와 마을 주민들은 대종교 3종사 묘비가 새롭게 발견된 일, 단군 초상을 모신 집이 있었던 일 등을 회고했지만 정확한 연도와 구체적 사실까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강룡원 선생과 한 직장에 근무하기도 했던 최삼룡 문학평론가는 “강룡원 선생이 초기에 고생 많았다. 반성문 숱하게 썼다”며 “문화대혁명 전에는 ‘종교’ 한 마디면 무조건 반동이다. 항일이고 뭐고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경선 서기도 “화룡 공안들이 여기 와서는 누구 왔나 암암리에 조사하고, 누구를 데려왔다면 그 사람 조사하고”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따라서 3종사묘역은 한동안 완전히 잊혀지다시피 했고, 지금은 비석과 묘비가 재단장됐지만 역시 구체적 사실들을 제대로 알고 있는 마을 주민은 없는 형편이다. 그나마 3종사묘역에 묻힌 유골함(고래함)을 민가에서 보관하다 이장했다는 증언은 주목된다.

“화장해서 고래(유골)를 가져다가 여기다 모셨다.”

“밀산도 가보니까 없지. (백포 서일의) 고래라도 찾겠다고 다녔는데 못 찾았다.”

“석문철이라고, 고래함이야 그 집에서 허근천이라고 이분이 여기에 있으면서 단군상을 모셨다. 초상화. 고래는 그런데 통해서 거기다 보관했다가. 딴 데다 어디 보관할 데 없으니 여기와 보관했다가 묻고...어디서 사망됐는지 그 고래를 여기 갖다고 보관했다가 저기다(3종사묘역에) 묻어.”

“나도 모르는데 우리 형님이 이런 걸 잘 아시는데, 울 할아버지가 말하는 게 라철 선생이랑 고래함 모실 때 한국 아들(사람들) 마차에다 하룻밤 싣고 와서 거기다 모셨다는 거다. 올림픽 횃불 들듯 인계해서 모셨다고 하더라.”

“청명날에 우리 갔다. 강룡권 선생이 편지 써서. 비석은 없고, 어간에 금이 갔더구만. 노인들 데리고 갔는데 그걸 두드려보니까 고래가 있다. 개인들이 비석 뽑아 집돌로 썼다. 맞추니 맞지. 와서 물로 씻고 먹으로 쓰고 하니까.”

“청파호라는 그런 게 적힌 게 있었다. 시 통전부에서 가져가 보라고 해서 찾은 거다. 그 거이 와서 서일의 묘지를 찾았다.”

“처음에는 비석문에다가 다 썼는디, 이전 사람들이 이런 걸 모르니까 비석인 줄 모르고 더러는 없어졌다.”

대략 종합해보면 문화대혁명 이전까지 이 마을에는 단군 천진(초상화)를 모신 가정이 있었고, 흩어진 비석들을 발견해 삼종사묘역을 재정비했지만 무원 김교헌 묘비는 찾지 못했다. 그리고 분명치 않지만 백포 서일로 추정되는 유골함(고래함)을 작고한 석문철 씨 집에 모셨다가 안장한 것으로 보인다.

‘올림픽 성화 봉송’ 방불케 한 홍암 장례식

   
▲ 홍암 나철 대종사 묘. 묘비에는 한자로 ‘대종교 대종사 홍암 라선생 신해지장’(大倧敎大宗師弘巖羅先生神骸之藏)이라 적혀있다. 한국 선양회가 사진과 안내문 등을 부착해뒀지만 최근 중국 당국에서 모두 철거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홍암 나철의 경우는 구월산 삼성사에서 순교한 뒤 ‘올림픽 성화 봉송’을 방불케 하는 과정을 거쳐 공개리에 안장했다. 1916년 음력 8월 15일(이하 음력 기준) 순교한 홍암 유해는 24일 서울 남대문역에 도착해 25일 남도본사에서 영결식을 치른 뒤 9월 17일 남대문역에서 백두산으로 향했다. 22일 청진에 도착했고, 25일 용정촌에서 추모예식을 거행했다. 10월 6일 청호에 도착, 총본사 수도실에 모셔졌으며, 11월 19일 총본사 추모예식을 치른 뒤 11월 20일 봉장식(奉藏式)을 거행했다.

2대 도사교(교주)인 무원 김교헌은 1923년 11월 18일 영안 총본사 수도실에서 56세를 일기로 서거했고 “종사의 장례는 유촉(遺囑)에 의하여 영안현 황기둔에서 화장식을 거행한 후 홍암신형의 유해 봉장지인 화룡현 청파호에 유해를 봉장하고”라는 기록에서 보듯 역시 곧바로 안장된 것으로 보인다.

대종교 항일무장투쟁 책임자인 백포 서일 종사는 1921년 9월 8일 밀산에서 서거해 그곳에서 장례식을 거행하고 묻혔다가 1927년 4월 3일 청파호에 이장, 안장됐다. “개천 4380년(1923년) 계해 정월 15일에...밀산현 대흥동에 있는 백포종사 묘소에 원, 방, 각의 목책을 건립하고 또한 제전(祭田)을 구입하여 향사비(享祀費) 에 충당케 하다”(대종교중광60년사)라는 기록도 있다.

   
▲ 원분옥 할머니가 유골함을 집에 모셨던 일을 증언하고 있다. 왼쪽은 원 할머니 아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스물 다섯살에 이 마을에 시집와서 살고 있다는 원분옥(85) 할머니는 “이 기(이 곳이) 석문철이 집”이라며 “저 우에 어드메에 모셨다가 또 떨겨 와서 여기를 가져다가 뒀다가 저기 갖다 모셨다”고 지금은 작고한 석문철 집에 유골함을 모셨다고 증언했다.

또한 “따로 따로 있는 것, 비석이 있더만. 비석이. 그래 그 비석이 번져져서 땅에 묻히고 어데 가고 그래 그 세 곳을 파서 한 군데다 모셨지”라며 “우리가 (산에)가서 열고 뼈를 봤지”라고 말했다. 아마도 비석을 발견해 묘역을 재정비할 때의 일로 추정된다.

2011~2012년 사이 현지조사를 진행한 임찬경 당시 국학연구소 연구원은 「대종교 성지 청파호 연구」를 통해 “1960년대 후반에 시작된 문화대혁명의 회오리 속에서 누구도 대종교를 거론할 수 없는 등의 시대적 상황에 묻혀 삼종사묘역조차도 무성한 수풀에 덮이고 말았다”고 기록했다.

특히 “구술에 의하면, 1989년 초 연변역사연구소(소장 강용권)에서 보낸 서신을 화룡현 통전부에서 받아 청호촌이 소속된 용성향으로 내려 보냈는데, 그 내용은 청호촌에 삼종사의 무덤이 있다는데 찾을 수 있겠는지를 문의하는 것이었다고 한다”며 이를 계기로 3종사 비석과 묘비를 재확인했다고 적었다.

“삼종사 무덤 근처에서 1개 그리고 근처 개인들의 묘지에서 제단으로 사용하던 비석 1개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 비석의 문구를 확인하니, 하나는 홍암 나철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백포 서일의 것이었다고 한다... 비석 기단의 아래를 들추니 그 밑에 화장하여 넣은 것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김교헌의 비석은...끝내 찾지 못하여, 연변주정부에서 새로 제작하여 보내와 세운 것이라고 한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대종교

   
▲ 홍암 나철과 백포 서일, 무원 김교헌, 이른바 '대종교 3종사'의 묘역. 화룡시인민정부가 1991년 9월 1일 ‘화룡시 문화유물 보호단위’로 공포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3종사 묘역에서 바라본 대종교 총본사터. 나무에 가려 굴뚝이 잘 보이지 않는다. 같은 방향으로 백두산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홍암 나철은 1914년 왜 만주 화룡 청파호(청호촌)로 대종교 총본사를 옮기고 자신의 묘를 이곳에 쓰도록 했을까?

박영석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대종교 총본사를 청파호로 옮긴 이유에 대해 △일제의 탄압을 피하고, △항일운동의 거점을 구축하며, △포교 영역을 확대하기 위한 것으로 파악했다.

임찬경 인하대 교수는 “백두산과 불과 100㎞ 밖에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지역이고, 동포들이 많은 연길, 용정과 가까우면서도 접근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지역”이라며 “용정에 일제의 간도총영사관이 있었고 두도구(頭道溝)에 분소가 있는데, 화룡지역까지는 (일제가) 안 들어갔다”고 지리적 이점을 설명했다.

홍암과 대종교 교우들의 백두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야 두말할 나위 없었을 것이고, 홍암에게 도를 전수해준 백봉신사 집단의 본거지가 백두산이라는 점도 염두에 둘만한 사안이다.

「삼일신고」와 「대종교포명서」 등을 전해준 백봉신사 집단은 백두산에서 우리 전통 천신교를 단군교로 중광했음을 발포했고, 포명서에서 “우형(愚兄) 등 13인이 태백산(지금 백두산) 대숭전에서 본교 대종사 백봉신형을 배알하고”라고 밝혀 백두산에 대숭전이 있었고, “태백산 대숭전 동무 고경각에서 13인이 같이 서명함”이라고 명시해 고경각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고경각은 대종교 도사교(교주)가 집무하는 곳이다.

   
▲ 백두산 소천지(은환호). 문화대혁명 시기 많은 종교시설들이 철거됐지만 지금도 도교시설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모든 종교시설이 철거된 가운데 백두산 소천지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약왕전.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한 전통수련 관계자는 백봉신사 집단이 백두산 소천지 일대를 근거지로 했을 것이란 추정을 전해줬다.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백두산 너머 첫 마을인 내도산에 자리잡은 ‘천불교’가 대종교라는 일부 전문가의 해석도 있다. ‘왜놈들에게 천벌을 내리고 조선민족에게는 복을 내려달라고 백두산천기에 빌면서 그것을 신앙으로 하는’ 천불교 신도들은 소천지에 ‘덩덕궁’이라는 99칸 절간을 지어놓고 1년에 두 번씩 찾아가 기도드렸다고 한다.

실제로 오랫동안 이 지역을 취재해온 조천현 대표는 “문화대혁명 시기 소천지 일대에 세워진 많은 종교시설들이 헐리는 것을 직접 보았다는 사람을 만나 증언을 들었다”고 확인했다. 소천지에는 많은 종교시설이 헐렸지만 지금도 도교시설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대종교가 처음으로 화룡 일대로 진출한 1910년 11월 무렵, 총본사에서 파견한 박창익(난파 박찬익의 이명) 시교사가 안중근 의사의 큰아버지인 안태진이 기부한 청호마을 가옥에 시교당을 마련해 포교에 나서고 있었던 상황도 연관이 있었을 것이다.

홍암 나철은 1911년 “7월 21일 고적 및 영적 답사차로 서울을 출발하여 강화.평양을 거쳐 천산 북록 청파호에 이르”(대종교중광60년사)렀고, 1912년 음력 10월 3일 개천절에는 청파호 시교당에 천여 명이 모여 개천대경절일을 지낼 정도로 자리를 잡아갔다.

조창용은 『백농실기』에서 “(10월) 3일 바람 불고 춥다. 이 날은 개천대경절일이다. 일직부터 시교당 안에 머물렀다. 천궁은 건축되고 수리되어 그 모습이 새로워졌다. 여러 곳의 교우 형재자매를 합하여 7백여 명이 모였다. 먼 곳으로부터 3백여 명이 와 있다....첫째 천진전, 둘째, 천궁, 셋째 수도실, 넷째 경배실, 다섯째 자매경배실, 여섯째 학도창가실, 일곱째 전강실, 여덟째 전무사무실, 아홉째 외교교접실 등이다. 교궁이 아주 넓고 확 트였다...그 날의 광경 중 기뻐하며 박수친 것을 헤아릴 수 없다. 그 자리에서 즉시 봉교한 사람이 백여 명이다. 밤에는 화등 천여 개를 높이 걸고 학생들의 노래 부름과 예원들 서로의 놀이와 오락에 밤을 새우다“라고 일기 형식으로 적었다.

실제로 1909년 음력 1월 15일 단군교가 중광한 뒤 총본사가 서울 북부 재동에서 원동, 중니동, 자문동, 상마동으로 한 해에만 네 차례나 옮겨다닐 정도로 상황은 열악했지만 이듬해인 1910년 6월 29일 교우실태 조사 결과 서울 2,748명, 지방 18,791명, 계 21,539명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일제는 탄압의 방법으로 박멸을 기도하여 소위 사내총독 암살의혹을 일으켜 수백명의 중진급 교도들을 불법 체포하여 악랄하게 고문, 악형을 가하고 심지어 사형 또 불구 폐인까지 만드는” 정도였고, “‘종교인은 자유가 없다’하고 교주이하 중요간부의 사생활과 출입 거조(擧措)를 물샐 틈 없이 감시하고 또 헌병․경찰을 미행시켜 자유를 속박하는가 하면 교우들의 가두검색이 혹심하고 특히 쟁송이 있을 시는 종교인은 불문곡직하고 패소처분하는 학대를 자행”했다.

따라서 1914년 5월 13일 마침내 총본사를 화룡 청호촌으로 옮기고 백두산을 중심으로 4도교구를 설치했다. “대종사께서 교의 본거를 백두산록으로 옮겨 포교운동이 자못 활발하여서 지금까지 동북만주 일에 흩어져 있던 독립전선이 흡연히 이리로 귀일되어 종교는 그 정신적 지주와 구심점이”됐다는 것이다.(대종교중광60년사)

<1914년 설치한 대종교 교구>

 

교구

소재지

책임자

관할지역

총본사

화룡

홍암 나철

총괄

동도교구

왕청

백포 서일

동만 일대와 노령.연해주

서도교구

상해

신규식 이동영

남만부터 산해관까지

북도교구

소학령

이상설

북만주 일대

남도교구

경성

강우(호석)

한반도 전역

외도교구

 

 

중국 일본 구미

* 자료 - 『대종교중광60년사』를 근거로 재작성.

백두산과 발해 수도, 그리고 부여주족론

   
▲ 청호촌에 있던 대종교 총본사가 옮겨간 발해의 수도였던 영안시 소재 '상경 용천부'(동경성). 대종교의 '대륙사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만주에서 급격히 교세를 불려가는 대종교를 일제가 가만히 두고 볼 리 없다. 조선총독부는 1915년 8월 16일 총독부령 제83호 「포교규칙」을 공포하고 그해 10월 1일 「조선총독부 고시 제 253호」를 발포해 대종교를 불법종교로 규정했다.

이에 홍암 나철은 1916년 음력 8월 대보름 많은 유서를 남긴 채 30만 교도들에게 호소하며 스스로 숨을 멈췄다. 홍암은 유언장 「유계장사칠조」(遺誡葬事七條)를 통해서도 “반도의 땅에 지금 이 몸을 묻을 곳이 없다”고 밝혔고, “타고 남은 유해를 거두어 싸서 반드시 조상(祖上)의 아래 즉 총본사 가까운 곳에 묻을 것”이라고 유언을 남겼다.

홍암을 비롯한 3종사 묘역은 서남쪽 아래 총본사터와 더 멀리는 백두산을 바라보도록 봉분의 방향이 자리잡았다.

또한 화룡 청파호에 멀지 않은 곳에 고려성으로 불리웠던 곳은 발해의 ‘중경 현덕부’가 있었던 곳으로 나중에 일제의 발굴조사로 드러났고, 이후 대종교 총본사는 영안의 발해 ‘상경 용천부’(동경성)터로 옮겨간다. 대종교의 대륙사관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후 북만주 독립운동단체들이 1925년 1월 목릉현에서 통합을 논의한 회의는 부여족통일회의(扶餘族統一會議)로 명명됐고, 그 결과 신민부가 탄생했다.

임찬경 교수는 “당시 대종교 역사관에 의하면 우리 민족을 단군에서 부여로 계승되고 고구려, 발해, 여진으로 계승됐고, 이같은 역사체계가 대륙사관”이라며 단재 신채호가 1908년 「독사신론」에서 부여주족론(夫餘主族論)을 폈다고 강조했다. 배달겨레의 주류가 부여족이라는 인식이다.

청일학교, 독립군 사관 양성 기지

   
▲ 청호촌에 있는 500년 이상 됐다는 비슬나무. 최근년에 벼락을 맞았지만 살아남았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2000년에 '화룡시 룡성진 청호기독교활동점'이 들어서서 포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지금도 조선족 가구만 거주하는 청호촌은 1937년 일제가 집단부락을 건설하면서 산재호(散在戶)들을 집단호로 이주시키고 바둑판 같은 정사각형 마을을 만들어 외부는 흙벽과 해자로 철저히 차단하고 네 방면으로 문을 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흙벽이 사라졌고, 해자 바깥 쪽으로도 집들이 들어서 있다. 마을 주민들이 500년 이상된 것으로 알고 있는 ‘비슬나무’는 최근년에 벼락을 맞기도 했지만 여전히 든든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  청호촌의 역사를 정리한 31쪽 분량의 「청호촌 촌사」(이경식, 1999) 표지.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그러나 이곳 역시 기독교의 바람은 피할 수 없는 듯 2000년에 ‘화룡시 용성진 청호기독교활동점’이 들어었고 여전도사는 마을 할머니들을 이곳에 불러모아 함께 점심을 나누고 있었다.

이경선 청호촌 서기는 청호촌의 역사를 정리한 31쪽 분량의 「청호촌 촌사」(이경식, 1999)를 자신의 집으로 안내해 보여줬다.

이 자료에는 함북 길주에서 현주일 일가가 1895년 처음으로 청파호에 이주 정착했고 “1910년에는 현대 교육 체계를 갖춘 청일학교(淸一學校)가 건립 되었다. 이 학교는 형식상에서 단군교를 교수하는 학교인 것 같았으나 실질은 종교를 방패로 내세우고 독립군 사관을 양성하는 기지였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또한 “이 학교 건립에 라철(羅喆) 선생의 역할이 컸었다고 한다...청일 학교 교장에는 라중식(羅仲植)(1910-1912), 교무에는 라철(羅喆), 서일(徐一 ), 계화(桂和), 박찬익(朴贊翊), 백순(白純), 박상환(朴尙煥), 김원시(金元時), 남세구(南世柩), 현천묵(玄天黙) 씨 였다(이 자료는 광산 김씨 김성수씨가 제공 하였음)”는 기록도 보인다. (朴尙煥은 朴祥煥의 오기-필자 주)

사드 여파로 한국 선양회가 세운 안내판 철거돼

   
▲ 3종사 묘역 입구.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3종사 묘역 입구에 한국 선양회에서 세운 안내판들. 사드 여파로 중국 당국에 의해 모두 철거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청일학교 자리는 청호촌에서 큰 도로 건너편 삼종사묘역 방향으로 바라볼 때 공장 굴뚝이 보이는 곳으로, 대종교 총본사 고경각도 바로 이곳에 함께 자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3종사묘역으로 가는 길은 질척거렸지만 입구에서 ‘대한민국 (사)나철선생(항일지사) 선양사업회’가 세운 안내판이 반겨주었고, 오는 11월 2일 벌교 기념관에서 열릴 ‘홍암나철선생100주년기념관 준공식 및 개천대제 추모문화행사’ 안내판도 눈에 띄었다.

‘화룡시 문화유물 보호단위’가 건립한 ‘반일지사무덤’ 표지석은 화룡시인민정부가 1991년 9월 1일 공포했음을 밝히고 있으며, 이들의 공적을 뒷면에 간략히 새겼다.

“반일지사 라철 서일 김교헌은 20세기 전반기에 동북지구에서 한때 화룡시 청파호를 기지로 반일계몽운동과 반일교육활동을 진행하였다. 그들은 민중의 반일의식을 높이고 인민의 반일사상각오를 높이기 위하여 많은 일들을 하였으며 반일무장투쟁을 준비하고 전개함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놀았다. 서일이 령도한 《북로군정서》소속의 반일무장부대와 《국민회》소속의 반일무장부대가 1920년 10월 화룡지구에서 협공작전을 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청산리전투》는 일본침략군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으며 반일운동이 깊이 있게 전개되도록 힘있게 추동하였다”

‘대종교 대종사 홍암 라선생 신해지장’(大倧敎大宗師弘巖羅先生神骸之藏)이라 한자로 적힌 비석 앞에서 3종사에 재배를 올리고 공장 굴뚝 방향으로 옛 총본사터를 더듬었다. 저 멀리 어딘가에 백두산 자락이 보일 것만 같아 두리번거렸지만 흐린 안개만 시야를 가릴 뿐이었다.

그러나 지난 8월 9일 3종사묘역을 다녀온 양현수 선양사업회 회장은 “지난 5월 25일 우리가 세운 안내판을 중국에서 싹 치워버렸고 영사문제가 생기면 골치 아프다고 ‘참배하지 말라’고 했다”며 “사드 문제가 한중관계의 큰 걸림돌이라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앞서, 보성군은 중국 화룡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사업비를 보내서 화룡시에서 3종사묘역으로 가는 도로를 확장하고 주차장까지 만들기로 협의됐지만 사드 문제로 보성군 부군수와 양현수 회장 등의 방중이 무산돼 7월 20일로 예정됐던 자매결연은 취소됐다.

만주의 겨울 돌위에서의 72일간 단식 기도

1909년 대종교를 중광한 뒤 1914년 화룡 청파호로 총본사를 옮기고 1916년 구월산 삼성사에서 순교하기까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홍암 나철의 종교적 수행이다.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은 “1909년 대종교를 중광해서 1916년 돌아가실 때까지 8년 동안을 수행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수행을 통해서 생을 마감했다”며 “중광 이전의 관료주의 모습에서 중광 이후의 모습은 철저하게 수행주의의 모습”이라고 규정했다.

   
▲ 1916년 음력 8월 초 닷새, 경성역을 출발해 구월산 삼성산으로 향하던 홍암은 사리원역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손에 단주를 쥐고 있다. [사진출처 - 대종교]

조준희 국학인물연구소 소장은 “유서 중에 중광가에 보면 여러 정황상 수련을 암시하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며 “남은 사진 3장 모두 단주를 쥐고 있는 모습인데 삼일신고독법에 나오는 수련법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짚었다.

「삼일신고」에 부기된 ‘삼일신고독법’에는 “모든 사특한 생각을 끊고, 삼백 예순 여섯 알의 박달나무 단주를 쥐고 한 마음으로 읽되, 원문 삼백 예순 여섯 자로 된 진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단주에 맞춰 일관할지니라”라고 명기돼 ‘단주’가 중요한 수행도구임을 알 수 있다.

신철호 전 대종교 삼일원장은 홍암 나철이 무송(撫松)의 산에서 “만주의 그 추운 겨울 눈 내리는 아래 돌위에 앉으시어 72일 간을 단식 기도”했다는 백강(白崗) 조경한(趙擎韓)의 증언을 『한국중흥종교 교조론: 홍암 나철 대종사』에 기록했다.

홍암의 72일 단식 기도는 예수의 광야에서의 40일 금식 기도에 비교하더라도 엄청난 고행이 아닐 수 없다. “도리어 홍암 선생은 불그레하신 얼굴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고 있어서 마치 신령님이 눈 내리는 산에 내려와 앉아 계신 듯 하였다. 이 엄청난 광경이 소문으로 퍼지자 수십에서 수백 명에 이르는 한국사람과 중국사람들이 몰려와서 그 앞에 죽 엎드려 백두산신령님이 내려오셨다고 절을 해대면서...”

또한 괴질로 죽어가는 단촌마을에서 ‘以身代命’ 네 글자를 집 문기둥마다 써붙여 하룻밤에 41명의 환자를 고친 이적(異蹟)은 홍암 자신이 중광가에서 확인하기도 했다.

물론, 대종교의 지감, 조식, 금촉 삼법수련과 홍암 나철의 수행, 이적 등에 대해서는 더 깊은 연구와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다.

(추가, 26일 09:00)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인구 증가만큼 생활여건도 최악으로 바뀌는 ‘제주’

‘땅값 상승률은 전국 최고, 그러나 도민 소득은 제자리’
 
임병도 | 2016-08-27 09:17:2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제주도는 지난 2013년 인구 60만 명을 돌파했고, 제주도청 앞에서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제주도청 방송 캡처

 

지난 2013년 8월 13일 제주도청에는 ‘제주 인구 60만 시대 개막’ 기념행사가 개최됐습니다. 당시 우근민 도지사는 “전문가들이 2020년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인구 60만 시대 개막이 7년 이상 앞당겨졌다”면서 “인구 60만 시대는 인구증가의 의미를 넘어 제주의 경제사회적 규모가 커지고 자립경제의 바탕이 확보되면서 앞으로 제주경제 성장에 필요한 밑거름이 마련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2021년 제주인구 70만 시대도 앞당겨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근민 지사의 말처럼 제주 인구는 2021년이면 70만 명이 넘을 듯합니다. 이미 2016년에 65만 명이 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 지사의 주장처럼 인구 증가가 경제 성장과 지역발전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고 있을까요?

인구가 늘어난 만큼 제주도민의 생활 여건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각종 통계로 살펴봤습니다.


‘인구가 증가했더니 쓰레기 발생량과 범죄율도 높아져’

제주인구증가에따른생활폐기물발생량및성폭력범죄발생건수

2005년 제주도 1일 생활폐기물 발생량은 643.6톤이었습니다. 2014년은 976.2톤으로 무려 51.7%가 증가했습니다. 전국 생활폐기물 발생증가율과 비교하면 제주도 증가율은 17배가 높습니다.

요새 제주도 마트에 가면 물건을 담아갈 수 있도록 비치된 빈 박스를 더는 제공하지 않겠다는 곳이 나옵니다. 쓰레기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2014년 전국의 쓰레기 매립률은 15.7%로 2005년과 비교해 12.5%P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고립된 섬인 제주는 오히려 매립률이 7.5%P 증가하면서 제주 전역이 쓰레기 처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범죄율도 높아졌습니다. 진선미 국회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인구 당 4대 강력범죄 발생건수’가 제일 높은 곳이 제주였습니다.

성폭력 범죄 발생 건수도 2011년 259건, 2012년 285건, 2013년 495건, 2014년 370건, 2015년 437건으로 최근 5년 사이 30% 넘게 증가했습니다.

‘만 13세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 발생 비율 1위’, ‘만 15세 이하 청소년 성범죄 발생 비율 1위’, ‘성범죄 재범률 전국 2위’ 제주의 모습을 보면 아이들과 여성이 안전하게 살기 좋은 땅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인구 증가와 함께 교통 문제도 심각해져’

제주인구증간에따른자동차등록대수와교통사고

제주의 자동차 등록대수를 보면 2005년 21만 대, 2010년 25만 대였습니다. 5년 동안 4만 대가 증가했던 자동차는 2015년 43만 대로 2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렌터카도 2010년 1만4천 대에서 2016년 2만9천 대로 늘어났습니다.

자동차 등록대수가 늘어나면서 교통사고도 증가했습니다. 2010년 3,617건이었던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2015년 4,645건이나 발생했습니다.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부상자를 보면 2010년 982.6명에서 2014년 1,145.5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제주공항이나 우도 등 관광객이 몰리는 곳은 주말이나 연휴가 되면 극심한 교통체증을 빚으면서 이 지역 도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시내 곳곳에는 주차장이 부족해 불법주차가 기승을 부리며, 출퇴근 시간이 아닌 평일 낮에도 교통 혼잡과 정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원희룡 도지사는 지난 7월 ‘△차량총량관리의 법제화 검토 △간선도로 일방통행제 검토 △대중교통 우선차로제 실시 △공영버스 공기업 전환 △도시형 신교통수단 도입 검토’ 등을 포함한 제주교통혁신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트램 도입은 2012년 우근민 도지사 시절 추진하다 포기했다는 점을 미루어 쉽게 도입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땅값 상승률은 전국 최고, 그러나 도민 소득은 제자리’

제주인구증가에따른표준공시지가변화

2015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전국 표준지 공시지가를 보면 제주지역 땅값 상승률은 9.20%였고, 2016년은 서귀포시 19.63%, 제주시 19.15%로 전국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2010년 0.43%, 2011년 1.06%, 2012년 2.80%, 2013년 2.01%, 2014년 2.98%와 비교하면 10배 이상 급상승했습니다.

2016년 5월 제주지역 건축허가를 보면 1297동 50만7111㎡로 지난 해 같은 기간 975동 34만4649㎡ 대비 면적기준으로 47.1%가 증가했습니다. 지난 해에 대규모 아파트 분양이 완료됐지만, 단독주택이나 연립주택, 상업용 건축물의 건축허가는 계속 늘어나고 있어 제주의 땅값은 계속 오를 전망입니다.

제주 땅값이 올라 부동산 가격은 상승했지만, 제주도민들의 소득은 많이 증가하지는 않았습니다. 제주도민의 1인당 개인 소득은 2005년 1,074만 원에서 2014년 1,567만 원으로 45% 증가했지만, 전국 증가율 47%보다 낮았습니다.

도민 소득의 증가율보다 제주 땅값이 높다는 말은 소득만으로는 집을 구입하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제주 도내 청년들의 임금이 낮다는 점을 본다면 미래 세대의 주택 구입은 점점 힘들어질 것입니다.


‘통계의 위험보다 더 무서운 장밋빛 계획들’

연도별제주의주요통계-min

2013년 제주는 “2021년 상주인구 70만 시대”를 준비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발표했던 계획을 보면 이주민을 위한 지원 정책 등에 초점을 맞춰져 있습니다. 이주민들이 정착하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인구가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제주의 현실적인 여러 가지 문제점을 사전에 예측하고 대비했어야 합니다.

원희룡 도정은 인구 100만 명을 기준으로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주도가 인구 65만 명에도 각종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는데, 과연 인구 100만 명 시대를 대비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단순히 통계나 숫자만으로 제주에서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통계가 말하고 있는 경고를 무시한다면 실제 체감하는 생활 여건은 더 나빠질 수가 있습니다. 지금 제주도는 발전과 증가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쉼을 가져야 할 시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주인구60만시대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131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명박씨, 당신이 물고기 씨를 말렸습니다

 
[4대강 청문회 열자] 빼앗긴 어부의 삶... 이제 낙동강 '저주'를 풀어주세요

16.08.27 11:39 | 글:정수근쪽지보내기|편집:손지은쪽지보내기

4대강 사업, 그 뒤 5년. 멀쩡했던 강이 죽고 있습니다. 1000만 명 식수원인 낙동강 죽은 물고기 뱃속에 기생충이 가득합니다. 비단결 금강 썩은 펄 속에 시궁창 깔따구와 실지렁이가 드글거립니다. 혈세 22조원을 들인 사업의 기막힌 진실. '4대강 청문회'가 열리도록 '좋은기사 원고료 주기'와 '서명운동'에 적극적인 동참을 바랍니다. 이번 탐사보도는 환경운동연합, 대한하천학회, 불교환경연대,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공동 주최하고 충남연구원이 후원합니다. 4대강 특별취재팀의 활동은 페이스북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이명박씨, 어제(26일) 낙동강에서 한 어부의 배를 탔습니다.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녹색강. 당장 물속에서 녹색 괴물이 튀어나올 것같이 을씨년스러웠습니다.   

"에게~ 대체 이게 뮙니까?"

김해 내수면어업회 회장인 어부 박남용씨(68)가 자망을 걷자 김종술 기자가 혀를 찼습니다. 3일전에 쳐놓은 자망에는 물고기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7개 한 묶음으로 이루어진 통발엔 새우 몇 마리와 동자개 치어 몇 마리만 올라올 뿐이었습니다. 

"이빨이 몽당 빠져버릴 것 같다니까..."
 
▲ 김해시 대동면 앞 낙동강에서 어민이 통발 7개를 건져 올렸다. 빈 통발에는 좁쌀만한 고기뿐이다. 어민은 "4대강 사업 후 물고기가 씨가 말랐다"고 말했다. ⓒ 정대희

통발을 걷어올리는 박남용씨의 어깨는 축 쳐져 있었습니다. 아주 어릴 때 공주에서 이곳 김해 대동으로 와 50년 넘게 조업을 해온 베테랑 어부의 눈에 눈물인지 빗물인지, 물기가 맺혔습니다.  

"녹조가 말도 못하게 피고, 강바닥이 썩은 뻘로 뒤덮혀 있지. 고기가 살 수가 있겠나. 낙동강이 죽어버린 것이여. 4대강 사업 때문에. 이명박을 생각하면 이가 갈려서 이빨이 몽땅 빠져버릴 것 같다니까요. 나, 원 참~"  

4대강 탐사보도팀은 물고기 씨가 마른 낙동강의 모습을 어부의 배 위에서 생생하게 페이스북 라이브 생중계를 했습니다. 
 
▲ 김해시 대동면 앞 낙동강 배 위에서 <오마이뉴스> 4대강 현장 탐사보도팀이 페이스북 라이브를 하고 있는 모습. ⓒ 정대희

배를 몰고 있던 유점길씨(71)에게 마이크를 돌렸습니다. 

- 언제부터 물고기 수가 줄었나요? 
"4대강 사업 이후부터죠. 물이 썩어서 물고기도 살 수 없어요."

- 얼마나 줄었나요? 
"99%. 이젠 낙동강에 그물 던지는 어부가 거의 없어요. 기름값도 안나옵니다."

- 잡히는 어종도 변했나요? 
"잡히는 물고기가 있나요? 없어요, 없어... 변할 것도 별로 없습니다."

이명박씨, 낙동강 어부의 탄식이 들리시나요? 

지역경제 살리기? 지역경제 죽이기!

부산경남 내수면어업회 어부들의 총 수는 488명이라 합니다. 이중 지금도 낙동강에서 물질을 하는 어부는 두 손으로 꼽을 정도랍니다. 4대강 사업으로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당신의 약속은 휴지조각이었습니다. 아니, 강도 죽이고 몇 대째 이어온 삶의 터전도 앗아갔습니다.  

4대강 사업 이전에 이곳에서 잘 잡히던 물고기는 잉어, 붕어, 메기, 장어였답니다. 이걸 잡아서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고 집 사줘서 결혼도 시켰답니다. 하지만 물고기 씨가 마른 강에서 그나마 잡히는 어종은 베스나 블루길 같은 외래어종뿐이라고 합니다. 생계가 막막해진 것입니다. 

선착장으로 돌아온 어부들은 이구동성으로 4대강 사업을 성토했습니다. 4대강 사업 전의 기대는 물거품으로 돌아와 더욱 분노가 커진 것입니다. 

"4대강사업 기간부터 지난 7년 동안 정부가 해준 보상이라곤 4대강사업 기간 휴업 보상 390만원에 4대강사업 후 3년 회복기간 보상이라 해서 300만원 남짓 준 것이 전부입니다."

황금어장의 물고기 씨를 말렸다
 
▲ 김해시 대동면 앞 낙동강 배 위에서 어민이 3일 전 쳐놓은 통발 7개를 건져올렸으나 시장에 내다 팔 고기는 한 마리도 없었다. ⓒ 정대희

내수면어업회 한희섭 사무국장의 말입니다. 그 옆에서 어부 조형국씨(65)가 말을 보탭니다. 

"그 보상, 아무것도 아니지요. 4대강사업 전에는 한번 나가면 70~80만 원 벌이는 했는데, 그 돈은 몇 번만 조업을 나가도 벌 수 있는 돈인데 그걸 보상이라고 주니 참 기가 막혀 살 수가 없습니다. 이곳은 예전에는 황금어장이었어요. 재첩해도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섬진강 재첩, 그게 재첩입니까? 이곳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어요." 

답답한 어민들은 이런 억울한 사정을 들어주지 않은 수자원공사와 국토부를 향해 선상시위도 세 차례나 벌였답니다. 수자원공사와 국토부를 찾아간 것도 수십 번입니다. 

"찾아가도 만나주지고 않고 외면하기 일쑤입니다. 정말 막막합니다." 

이것이 낙동강의 현실입니다. 낙동강은 지금 거대한 물저장소일 뿐입니다. 그것도 녹조라떼 가득한 거대한 시궁창 말입니다. 강바닥은 썩은 펄입니다. 그 펄 속에는 실지렁이 같은 4급수 오염 지표종들만 득실거릴 뿐입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물고기를 비롯한 수생물이 살 수가 있겠습니까.  

"하루빨리 보를 없애야 합니다. 하굿둑도 터야 합니다. 그래야 물고기가 살고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방법뿐입니다. 안 그러면 모두 죽습니다. 우린 죽어요."

조씨는 손짓발짓을 해가며 절규했습니다.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이명박씨, 낙동강은 1300만 시도민의 식수원입니다. 맹독성물질이 창궐하는 녹조와 실지렁이 득실거리는 강바닥 무엇보다 물고기도 살 수 없는 이런 낙동강의 강물을 정수해서 우리가 먹고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수치상 안전하다고 하지만, 물고기도 살 수 없는 강물이 과연 안전할까요?

어민들의 주장처럼 하루빨리 낙동강 보를 없애든가 보의 수문을 상시개방해야 합니다. 그래야 물고기도 살고, 어민들도 살고, 우리도 살 수 있습니다. 

이명박씨, 4대강에 울퍼지는 당신에 대한 저주
 
▲ 김해시 대동면 앞 낙동강 위에 배가 떠 있는 모습 ⓒ 정대희

이명박씨, 이날 빈 그물을 걷은 박남용 씨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습니다. 쇳소리가 났습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목소리가 잠깐 쉰 게 아니었습니다. 그가 원래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것은 4대강 사업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사실 4대강 사업 초기에는 꿈에 부풀어 있었답니다. 4대강 공사 기간인 2년간의 휴업을 누구보다 잘 참고 견뎠답니다. 그러나 그건 헛된 망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답니다. 2012년 4대강 보가 만들어지고 난 다음부터 잡히는 물고기가 점점 줄어들었답니다. 

위기의식을 느낀 그는 동료 어부들과 함께 국토부를 찾아가 따졌습니다. 시위도 했습니다. 돌아오는 것은 냉대뿐이었습니다. 그런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2013년 10월 24일 스트레스로 인한 뇌출혈로 쓰러졌답니다. 다행히 뇌출혈은 치료는 했지만 그날부터 목소리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어부가 '4대강 독립군 특별취재단'을 만나 처음으로 내지른 말은 이명박, 당신에 대한 저주였습니다. 쇳소리는 비바람치는 녹조의 강으로 퍼졌습니다. 

이명박씨, 이제 당신이 낙동강에 쏟아부은 '저주'를 풀어주세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말씀 드립니다. 환경운동연합, 불교환경연대, 대한하천학회,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은 지난 23일부터 '4대강 청문회를 열자'는 제목의 탐사기획보도는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현장 탐사보도의 마지막 날입니다. 많은 분들이 4대강 독립군에게 '좋은 기사 원고료'로 응원을 해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서명운동에 동참을 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영주댐과 내성천의 현장 탐사 보도도 이어집니다. 9월 중순까지 기획 기사를 통해 4대강 사업의 폐해를 낱낱이 보여드리겠습니다. '좋은 기사 원고료 주기' 목표액 3000만원, '4대강 청문회 서명운동' 10만 명이 될 때까지 힘을 모아 주십시오. 지치지 않고 4대강 독립군들이 4대강을 회복시킬 수 있을 때까지 마음을 모아주십시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역시 ‘국뻥부’ SLBM 실전배치까지 3~4년 걸린다더니

‘전문가들은 수차례 경고했던 북한의 SLBM’
 
임병도 | 2016-08-26 09:14:1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북한이 8월 25일 공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 모습 ⓒ북한 조선중앙TV 캡처

 

지난 8월 25일 북한조선중앙TV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이날 영상은 24일 실시한 SLBM 시험 발사 장면이었습니다. 북한이 시험 발사 바로 다음 날 다각도로 촬영된 영상을 공개했다는 점은 SLBM 시험 발사가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을 알리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북한이 시험 발사에 성공한 SLBM을 보면 고도 50km 상공에서의 속도가 음속의 10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문가들은 한반도에 배치 예정인 사드는 SLBM 요격 시험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요격에 실패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에 따르면 문근식 한국국방안보포럼 대외협력국장은 “재돌입전투부 명중 정확도가 작전적 요구에 완전히 도달했다는 것은 이번 발사시험에서 비행뿐 아니라 실제 잠수함 명중시험까지 했다는 의미인데, 북한 입장에서는 실전배치만 남은 단계”라며 “북한은 연내 SLBM 실전배치도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SLBM 실전배치까지 3~4년 걸린다더니’

북한SLBM실전배치-min

 

▲군당국은 2015년 5월에는 북한이 SLBM 실전 배치까지는 최소 5년이상 걸린다고 밝혔다. ⓒTV조선 캡처

 

2015년 5월 TV조선은 군 당국이 북한의 SLBM 발사 시험에 진전이 있었지만, 아직 초기 단계여서 실전 배치하려면 최소 5~6년은 걸린다고 보도했습니다.

2016년 4월 24일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4월 23일 있었던 북한의 SLBM 시험발사에 대해 “북한은 현재 SLBM 개발을 서두르고 있으며 수중 사출능력 등에서 일부 기술적 진전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면서 “기존 SLBM 보유국 개발 경과를 감안할 때 북한이 SLBM 전력화에 3∼4년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문 대변인은 ‘북한이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경우 그보다 이른 시기에 전력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 달 만에 북한이 SLBM을 연내 배치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방부가 제대로 정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큰소리 뻥뻥 쳤던 한민구 국방부 장관’
 

한민구SLMB시험우려할만한상황아니다

 

▲2015년 5월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북한의 SLBM 시험이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고 밝혔다. ⓒ뉴시스 캡처

 

2015년 5월 11일 당시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당대표 회의실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만났습니다. 문 대표는 한 장관에게 “우리 군의 미사일 방어체계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보도에 국민들이 걱정이 크다”라며 북한의 SLBM 실전 배치 시간이나 군의 대응 체계 등을 질문했습니다.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우리 군의 킬체인(Kill Chain)이나 KAMD(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가 무력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지만 우리 군이 갖추고 있는 전력과 발전방향을 고려하면 국민들이 우려할 상황이 아니다”고 답변했습니다.

당시 한 장관은 “북한에 대해 도발을 즉각 중단할 것과 만약 도발하면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2016년 8월 북한의 SLBM 시험 발사 성공과 연내 실전 배치 가능성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수차례 경고했던 북한의 SLBM’

38northSLBM-min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38노스에서 북한의 SLBM 시험 발사에 대해 성공적인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38노스 캡처

 

국방부는 북한의 SLBM 시험 발사가 있을 때마다 실패했다는 주장만 되풀이했습니다. 2016년 4월에는 비행거리가 최소 사거리에 미치지 못했다고 했으며 5월에도 공중폭발했다면서 북한의 SLBM 기술을 폄하했습니다.

국방부가 북한의 SLBM 기술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을 때 외국 전문가들은 북한의 기술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면서 오히려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한국은 SLBM을 장착할 대형 잠수함이 없기에 우려할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해외 매체들은 북한의 신형 잠수함 모습이 담긴 위성사진 등을 공개하면서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신포조선소잠수함-min

 

▲북한 신포조선소의 잠수함 위성 사진 모습 ⓒ38north 캡처

 

한반도 사드 배치가 결정되면서 가장 이득을 본 곳은 북한입니다. 한국 국방연구원이 펴낸 ‘2015 안보전망 보고서’를 보면 ‘‘미국이 북한 위협을 근거로 MD 체제를 강화하거나 한반도 내 사드를 배치할 경우, 중국은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중시해 대북 지원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으며 한 · 미 · 일 남방 삼각 대 북 · 중 · 러 북방 삼각 간 갈등구도가 형성될 전망이다.’라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사드 배치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측이 내세우는 것이 확실한 ‘안보’입니다. 하지만 제대로된 북한의 정보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국방부와 박근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강력 대응하겠다’,‘우려할만한 상황이 아니다’라는 말뿐입니다.

우리는 이미 한국전쟁이 벌어지기 전 ‘점심은 개성에서 저녁은 평양에서 먹겠다’는 큰소리만 치는 국방 수뇌부의 무능함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가 SLBM도 요격할 수 있다는 말도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북한SLBM발사영상-min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130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북, 8.24 잠수함탄도탄(SLBM)동영상 분석-완벽한 사출과 점화

북, 8.24 잠수함탄도탄(SLBM)동영상 분석-완벽한 사출과 점화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8/26 [01:38]  최종편집: ⓒ 자주시보
 
 

 

 

25일 낮 북은 24일 발사한 잠수함탄도탄(SLBM) 시험 발사 성공 동영상을 전격 공개하였다. 북이 전에도 동영상을 공개한 적은 있지만 몇 개월 후에 공개했었는데 이번에는 단 하루만에 공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잠수함 탄도탄 발사 장면은 방송인의 해설 없이 발사폭음 등을 그대로 들려주는 방식으로 동영상을 만들어 공개했다.

 

'한 번 직접 보라,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라는 의미로 공개한 영상이 아닌가 싶다.

 

이번 동영상에서는 북극성을 기중기를 이용해 잠수함에 탑재하는 모습도 공개하였다. 본지 추리대로  동영상에 등장하는 그 잠수함 마스트에 발사관을 설치하고 그 속으로 탑재하고 있었다. 크기를 보았을 때 3발은 좀 무리인 것으로 보였다. 한 발이나 두발 정도 탑재할 수 있는 잠수함이었다.

 

따라서 실전용 잠수함은 한호석 소장의 추리대로 따로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어렵게 개발한 잠수함 탄도탄을 달랑 한 두 발 탑재하고 가서 쏘고 오는 것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한발 쏘는 잠수함 기술이 있다면 잠수함 크기만 키우면 10발 스무발짜리는 쉽게 만들 수 있다. 잠수함 제작 기술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여러 각도에서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 사출과 점화가 아주 매끄럽게 잘 연결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안정적인 자세를 보여주었으며 비상시에도 무시무시한 고체연료 불꽃을 마구 내뿜으며 팍팍 가속역을 높여 순식간에 구름을 뚫고 우주공간으로 비상하였다.

 

특히 고각발사를 위해 거의 수직으로 발사하였다. 중국의 잠수함 탄도탄 쥐랑이나 미국의 트라이던트 미사일의 경우 45도보도 약간 높은 각도로 발사한다. 이는 사출과 점화시 미사일 폭발할 경우 그 잔해로 잠수함이 손상되는 일을 최대한 피하자는 의도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북도 초기 북극성 1호 발사 때는 그렇게 사선 각도로 쏘았다. 하지만 최근 발사한 북극성 잠수함 탄도탄은 모두 거의 수직에 가깝게 쏘았다. 이는 폭발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자신감이 있거나 설령 폭발한다고 해도 폭발 잔해가 잠수함에 닿기 전에 피신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깊은 곳에서 발사할 기술이 있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 일반적 탄도미사일 궤적     ©자주시보

 

▲ 요격 회피를 위해 변형 포물선 궤적을 그리는 최신 대륙간탄도미사일  궤적, 사진은 러시아의 SLBM 예이다. ©자주시보

 

그러면 수직 발사가 왜 필요한가.

상대의 요격을 피하고 최대한 빠른 시간에 상대를 타격하기 위해서라고 추정된다. 수직으로 쏘아야 최단거리로 우주공간에 진입하게 되어 초기 상승 단계 요격을 어렵게 할 수 있을 것이며 수직상승을 하게 되면 어느 방향으로 날아갈지를 위성으로도 계산하지 못해 어느 지역 요격 미사일을 가동할지 판단이 어려울 것이다.

 

▲ 탄도미사일 대기권 재돌입체 시험결과를 보며 만족한 미소를 짓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 재돌입체가 대기권과 마찰열로 녹아깎이면서 기화열을 이용하여 온도를 낮추는데 표면이 고르게 깎여야만 안정적인 비행이 가능하고 또 특정부분만 집중적으로 깎여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매우 고난도 기술이다.    ©자주시보

 

과거처럼 대칭형 포물선 비행을 하면 요격이 아주 쉽다. 올라가는 각도와 속도를 알면 언제 어디를 지나 어디로 떨어질지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신형 탄도미사일들은 일단 최대한 빨리 수직으로 우주공간으로 올라간 다음 불규칙한 카오스적 비행으로 상대 요격레이더를 교란 시킨 후 임으의 순간 방향을 잡고 목표로 돌진한다. 특히 가능한한 높이 올라 중력가속도도 최대한 활용하면서 내리꽂히기 때문에 그 목표돌진속도가 마하 30까지도 나온다. 당연히 대기권 재돌입시 총격과 발열이 극심하기 때문에 이 재돌입체를 잘 만드는 기술이 있어야만 이런 미사일을 개발할 수가 있는 것이다. 북이 지난번에 재돌입체 기술을 시험을 통해 공개한 것은 그런 기술을 확보하고 있음을 과시한 것이다.

 

실제 국방부에서도 이번 북극성은 고각으로 최대한 우주공간으로 높이 올라가 사거리 500KM를 비행하며 일본 배타적경제수역에 착탄했다며 미사일탄두의 대기권재돌입에도 성공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하였다.

 

▲ 이스타항공 김재현 부기장이 24일 새벽 북이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던 당시 비상하는 북 미사일을 촬영한 동영상 화면 갈무리    ©자주시보

 

그리고 실제로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우주공간으로 올라가는 북의 북극성 미사일의 비행궤적을 당시 이천 부근을 날던 이스타항공 소속 김재현 부기장이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유튜브에 올려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북의 북극성은 요격까지 매우 어려운 세계 최강, 최첨단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인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석태 “이젠 협상으로 될 일 아냐…특별법 개정‧특검이 답”

 

더민주 초선, 세월호 특조위‧유가족과 간담회.. “‘최선’, 결과로 보여 달라”
김미란 기자  |  balnews21@gmail.com
 

 
   
▲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들이 25일 서울 광화문 광장을 찾아 세월호 특조위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 송현석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서울 광화문 광장을 찾은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에게 이젠 협상이 아닌 세월호 특별법 개정과 특검 의결을 위해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다.

더민주 초선의원 40여명은 25일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정부여당에 특조위의 조사기간 보장과 진상규명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광화문 광장까지 도보로 이동해 유가족들과 세월호 특조위를 만났다. <관련기사 ☞ 더민주 초선의원들 “朴대통령, 세월호 진상규명 약속 지켜야”>

이날 간담회 자리에서 유가족과 특조위원들은 초선 의원들의 결의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도, ‘여소야대’ 국면에서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좀 처럼 의지를 보이지 않는 야당에 대한 적지 않은 실망감을 표하기도 했다.

단원고 2학년 5반 고 오준형 군의 엄마 임영애씨는 “‘최선을 다하겠다’, ‘함께하겠다’는 그 말로 2년 6개월 가까이 버텼지만 특조위는 강제 종료되고, 유가족들은 또 단식을 하고 있다.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며 막막한 심경을 토로했다.

임씨는 “희생된 304명의 아이들은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그 아이들이 죽었다. 피해자 부모들이 가해자가 된 이 마당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은 이제 들리지 않는다”며 국회의원들에게 “일 해 달라. 저희 말에 응답 해 달라. 제발 살려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저희도 그만하고 싶다. 하지만 엄마인데, 내 자식이 왜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뭐라도 해야하지 않나”며 “저희 맘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셔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 말을 결과로 보여 달라”고 당부했다.

   
▲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을 찾은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세월호 특조위 관계자들과 단식농성 중인 유가족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세월호 특조위와 유가족들은 농성장을 찾은 더민주 초선의원들에게 “세월호 특별법 개정에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다. Ⓒ 송현석

세월호 특조위원들은 이날 ‘세월호 특별법 개정’과 ‘특검 의결’을 강조했다.

이석태 위원장은 “세월호 특조위가 단식을 시작할 때 무기한이라고 했지만 사실 9월 이전까지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거라 기대했다”면서 “하지만 8월도 다 지나고 있고, 냉정히 따지면 이젠 협상으로 될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정부의 강제종료 조치로 2개월을 손해 봤고, 지금도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하며, “12월까지 활동기간을 보장 받는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특별법 개정만이 답”이라고 강조했다.

권영빈 진상규명 소위원장도 “지난 19대 때도 특조위 조사활동기간 보장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농해수위와 원내대표간 핑퐁게임을 하다 끝났다. 그 모습이 지금 재현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젠 국회가 특검 의결, 특별법 개정을 위해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세월호 문제를 대하는 야당 지도부의 태도를 꼬집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종운 안전사회 소위원장은 “지금의 야당이 원래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 때의 목적과 취지를 유지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며 “19대 때 힘들게 싸워 만들어낸 특별법을 지키려는 의지가 20대 국회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박 위원장은 “지금 현재의 특조위의 생존이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 현재의 특조위가 없어진다 치자, 그럼 특별법 개정을 통해 내년에 또 다른 특조위를 만들어서라도 진상규명을 하겠다는 의지를 야당이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결과를 말을 해줘야 여당이 경각심을 가질 것 아니겠냐”고 지적하며 “야당이 세월호 문제 해결을 위한 확실한 의지를 가지고 일치단결 해달라”고 주문했다.

 

[관련기사]

 
김미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하늘에서 본 낙동강 참사, 3분 3초 동영상

 
[4대강 청문회를 열자] 드론으로 찍은 '독조의 강'

16.08.25 18:34 | 글:김병기쪽지보내기|영상:이희훈쪽지보내기|편집:김예지쪽지보내기

4대강 사업, 그 뒤 5년. 멀쩡했던 강이 죽고 있습니다. 1000만 명 식수원인 낙동강 죽은 물고기 뱃속에 기생충이 가득합니다. 비단결 금강 썩은 펄 속에 시궁창 깔따구와 실지렁이가 드글거립니다. 혈세 22조원을 들인 사업의 기막힌 진실. '4대강 청문회'가 열리도록 '좋은기사 원고료 주기'와 '서명운동'에 적극적인 동참을 바랍니다. 이번 탐사보도는 환경운동연합, 대한하천학회, 불교환경연대,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공동 주최하고 충남연구원이 후원합니다. 4대강 특별취재팀의 활동은 페이스북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이명박씨, 안녕하세요.

오늘은 아주 특별한 영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하늘에서 본 낙동강의 모습입니다. 1300만명의 영남인들이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젖줄입니다. 3분3초, 잠깐만 시간을 내어 주세요. '녹조는 물이 맑아진 증거'라고 억지를 부린 당신도 분명 좋아할 겁니다. 
 

이명박씨, 강은 무슨 색깔인줄 아시나요? 하늘빛입니다. 맑은 강은 하늘을 닮습니다. 투명하게 몸을 하늘빛으로 색칠합니다. 거짓말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도화지에 강의 색깔을 흰색으로, 때로는 파란색으로 칠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4대강 특별탐사 보도팀이 찍은 드론 영상을 보셨나요? 짙은 녹색입니다. 마이크로시스틴이라는 독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는 '독조의 강'입니다. 이 강을 바라보고 자란 아이들은 앞으로 무슨 색깔로 강을 색칠을 할까요? 정말 끔찍합니다. 우리들의 아이들을 위해서도 4대강을 하루빨리 회복시켜야 합니다. 

당신을 4대강 청문회에 세우려고 취재를 시작한 탐사보도팀은 24일 오후 금강 취재 일정을 마치고 낙동강 달성보 하류 3km지점인 박석진교로 갔습니다. 지금 '세계 명문대학 조정축제'가 열리는 장소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수 킬로미터의 낙동강 거대한 강폭을 꽉 채운 녹조를 보았습니다. 숨이 막혔습니다. 녹색강이 한 몸뚱이로 웅크려 있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명박씨, 녹조로 쑥대밭 된 4대강을 세계 만방에 홍보하려고 작정을 한 겁니까? 다음날(25일) 오전에 찾아간 세계조정축제 현장에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수자원공사의 모터보트 2대가 녹색강을 휘젖자, 녹색 빛이 약간 옅어졌습니다. 그 다음 조정 선수들이 투입돼 세계 축제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만든 녹조가 그래도 부끄러웠나 봅니다.      

오늘부터 '4대강 독립군'은 본격적으로 낙동강 탐사를 시작합니다. 바쁘시더라도 오마이뉴스 페이스북에 실시간으로 올리는 현장 기사를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청문회에 선다면 참고할만한 풍부한 자료와 생생한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전세계로 페이스북 실시간 라이브 중계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께도 부탁드립니다. 금강을 지켜온 김종술 기자와 낙동강을 지켜온 정수근 기자를 응원하는 '좋은 기사 원고료'에 적극 참여해 주십시오. 목표액 3000만 원을 달성한다면 해외 취재를 통해 죽어가는 4대강의 대안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청와대도, 국회도 열지 못하는 '4대강 청문회'를 열려면 10만인 서명운동으로 여론을 만들어야 합니다. 환경운동연합 등이 진행하는 서명운동에도 적극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이전 기사 보기] 4대강 청문회를 열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미 전문가들 “북한, 사드 무력화 입증”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08/25 10:09
  • 수정일
    2016/08/25 10:0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분석] ‘사드’ 무용지물 증명한 북한의 잠수함탄도미사일(SLBM) 발사
 
김원식 | 2016-08-25 08:58:0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분석] ‘사드’ 무용지물 증명한 북한의 잠수함탄도미사일(SLBM) 발사
한미 전문가, “북한 SLBM 발사로 사드 무용성과 억제 능력 과시”

ⓒ민중의소리

북한이 24일 오전 동해상으로 잠수함탄도미사일(SLBM) 발사 시험이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면서 한국에 배치 예정인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무용론이 더욱 확산하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SLBM을 장착한 북한의 잠수함이 사드 레이더의 탐지 거리를 벗어난 공해상에서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사드 포대가 이를 사전에 탐지 및 요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 전략사령부는 24일, “북한이 발사한 SLBM이 동해상으로 대략 300마일 이상을 날아가 일본 공해상(방공식별구역) 근처에 떨어졌다”고 밝혔다. 한국 합동참모본부도 “북한이 발사한 SLBM이 약 500km를 비행했다”며 “지난 수차례 시험발사에 비해 기술적으로 진전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SLBM은 초기 개발단계에서 300여㎞를 비행하면 성공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합참은 북한이 이번에 발사한 SLBM은 사실상 성공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북한은 예상보다 빠른, 이르면 내년 초에 SLBM을 실전 배치할 수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SLBM은 사실상 사전에 탐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사드의 배치 필요성이 커졌다고 주장하지만, 수중에서 은밀하게 기동하는 잠수함이 사드 레이더의 탐지 범위인 120도를 넘어선 공해상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면 사드는 탐지와 요격이 불가능한 무용지물이 된다. 북한이 한국의 사드 배치 무력화를 노리고 이번에 SLBM 시험 발사를 강행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이다.

북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모습ⓒ뉴시스

한미 전문가들 “북한, 사드 무력화 입증”
북한, SLBM 이르면 내년초 배치 가능성

이에 관해 북한 핵과 미사일 등 비확산 분야 전문가인 제프리 루이스는 “북한의 이번 SLBM 발사는 사드 레이더의 범위인 120도를 넘어서는 뛰어난 대응 능력(countermeasure)을 보여 준 것”이라며 “북한은 잠수함이 사드 레이더를 벗어나는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해 사드(배치)의 무력화를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루이스는 “(그동안) 북한은 살보 발사(salvo launches, 여러 개 미사일을 동시에 발사). 사드 요격 미사일보다 속도가 빠르게 장거리 미사일의 고각 발사, 그리고 잠수함 미사일 발사 등 대응 능력을 증명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의 이러한 의도는 자부심(pride) 표출을 비롯해 여러 의도가 있겠지만, 간단한(simple) 전략만으로도 (미국의) 미사일방어(MD)를 분쇄(defeat)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의 SLBM 발사 시험에 관해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북한의 이번 SLBM 발사 시험은 사드 무력화 시도를 넘어, 본질적으로 2차 공격 능력을 갖추고 한국보다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있는 미군 기지나 미 본토에 대한 억제 능력을 갖추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대표는 “이러한 상황에서 사드나 SM-3가 더 필요하다는 주장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드 유용성 문제에 관해서도 “간단히 말해서 사드 레이더 탐지 범위 밖에서 발사되는 SLBM은 물론, 사드의 요격 고도 범위(40~150km)를 벗어나는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도 (사드가) 못 잡는 것 아니냐”며 사드 도입 필요성을 일축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이번 SLBM 시험 발사 성공으로 “전후방을 다 탐지할 수 있는 360도의 탐지와 요격 능력을 구비했다고 하더라도 SLBM이 자세 각도를 낮춰서 낮은 고도로 발사할 경우, 요격은 힘들다”는 의견도 개진하고 있다. 또 일부는 “북한이 SLBM 발사에 성공함에 따라 우리 군은 앞으로 지상 킬체인 뿐 아니라, ‘수중 킬체인’까지 구축해야 한다”며 “SLBM을 탑재한 북한 잠수함을 들키지 않고 장시간 추적하려면 물속에서 1~2개월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잠항 능력이 뛰어난 핵추진 잠수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그만큼 현재 논의되고 있는 사드 배치가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해서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민중의소리’ 24일 자에 게재된 필자의 기사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1&table=newyork&uid=149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종북몰이 명예훼손 승소 재미 동포 린다 리 씨 인터뷰

종북몰이 명예훼손 승소 재미 동포 린다 리 씨 인터뷰
 
 
 
뉴스프로 
기사입력: 2016/08/25 [01:40]  최종편집: ⓒ 자주시보
 
 

 개인 승리 아닌 재미동포 승리라 생각
– 정의는 그냥 주어지지 않아

                                                                          2016/08/22

                                                                                                편집부

 

▲ 세월호 시위 중인 린다 리 씨     © 뉴스프로

 

2년간의 재판 과정 후에 종북몰이에 대한 명예 훼손 소송에서 린다 리 씨가 승소했다. 당시 한국 보수 언론들이 해외 민주화 단체 회원들의 신상을 털고 종북몰이한 것에 대해 많은 동포들의 분노가 대단했다. 그래서 이 재판 결과는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재판 승소 소식을 접한 후 뉴스프로는 린다 리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세한 심경을 전한다.

 

1. 재판이 시작된 후 2년이 지나 마침내 미시 USA를 종북이라고 매도한 보수 인터넷 매체 발행인과 기자들이 벌금형을 받았다. 그동안 그리고 지금 심정은 어떠한가?

 

린다: 2년간의 지루한 싸움이 끝났다. 4건의 소송 모두 승소해서 기쁘다. 쉬운 싸움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이렇게 오래 걸릴지는 몰랐다. 블루투데이 측에서 자꾸 여러 가지 트집을 잡아서 재판이 계속 연기됐고, 도중에 담당 검사와 판사가 바뀌어서 내용을 다시 보내기도 했다. 내가 대표해서 소송을 했지만 나의 승리가 아니라, 재외동포들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2년간의 변호비용에도 못 미치는 가벼운 손해배상 판결은 앞으로도 재발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쉽다. 

 


2. 소송을 위해 재외 동포들의 십시일반으로 후원을 해 준 것으로 알고 있다. 후원해 주신 분들께 드릴 말씀이 있다면 한마디 부탁한다.

 

린다: 승소 소식이 언론 보도를 통해 나간 어제 소송비용을 후원해 주신 분들께 이메일과 MissyUSA, 페이스북 등을 통해 다음과 같이 감사 인사를 드렸다.

 

“길고도 지루한 싸움이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2년 만에 여러분께 승리의 소식을 전합니다. 여러분들께서 함께해 주시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정의가, 진실이, 그리고 함께하면 이긴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이길 수 있었고, 함께 해 주셔서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3. 린다 리 씨 사건 당시는 세월호 시위가 미국에서 점점 거세게 확산되고 있었고, 많은 해외 민주화 운동 단체 회원들의 신상이 털리는 일이 있었다. 왜 보수언론의 타깃이 되었다고 생각하나?

 

린다: 미주 37개 도시에서 세월호 시위가 열릴 정도로 해외에서 세월호 시위는 뜨거웠다. 주로 30, 40대의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이 MissyUSA 사이트를 통해서 자발적으로 모였다. 그중에는 전부터 시민운동을 해온 분들도 있었겠지만, 어느 단체소속이 아닌 엄마, 아빠 개인으로 모였다.

 

그런 자발적인 모임을 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몇몇 핵심이라 생각하는 사람을 지목해서 ‘종북’으로 몰고 신상을 털면 두려워서 그만둘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린 부모이기에 그만둘 수가 없었다.

 

 

4. 소송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린다: 두 가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첫 번째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이 저조해질 무렵, 소송으로 인해 오히려 해외에서의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고 지역 간의 연대가 더욱 돈독해졌다. 그리고, 두 번째는 십시일반으로 소송비를 모아 겨우 소송을 시작했는데, 해외에 살기 때문에 공탁금을 내지 않으면 소송이 기각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하마터면 소송을 포기할 뻔한 것이다. 하지만, 소식을 들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공탁금을 마련해서 소송을 재개할 수 있었다.

 

 

5. 린다 리 씨 승소는 큰 의미가 있으며, 근거 없이 종북이라 보도할 경우 언론매체는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해외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동포들에게 어떤 말을 해 주고 싶은가?

 

린다: 내가 소송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다. 정부에 대해 비판을 하면 북한을 추종하지 않아도 ‘종북’으로 몰아가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특히, 해외에 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해도 어찌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그간 재외동포들에 대한 ‘종북몰이’가 도를 넘을 정도로 지나쳤다고 본다.

 

그래서, 그것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선 누군가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선례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외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재외동포들은 늘 조국인 대한민국이 잘되기만을 바라며 몸은 멀리 해외에서 살고 있지만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해서 시위도 하고, 서명운동도 하는 것이다. 이런 애국심에서 나온 행동을 ‘종북’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6. 린다 씨가 보는 한국의 민주화는 어떤 상태인가?

 

린다: 고등학교 때 이민 와서 30년째 미국에서 살고 있다. 미국도 완전한 민주주의를 이루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는 나의 눈으로 보기에는 대한민국은 지난 8년간 민주주의가 급속도로 후퇴해서 내가 한국에서 살던 70, 80년대 수준으로까지 되돌아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특히, 언론은 거의 미개한 수준인 것 같다. 언론은 국민에게 사실을 보도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대한민국의 대다수 언론의 왜곡, 편파 보도를 보면 정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7. 미 시민권자 아이들에게 이번 소송에서 이긴 엄마로서 해 줄 말이 있다면 어떤 말이 있나?

 

린다: 언젠가부터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우리 엄마는 ‘activist(활동가)’라고 소개한다. 정의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불의를 보고 참지 않고 그에 맞서 싸워야만 얻을 수 있다는 걸 이번 소송을 통해 아이들이 깨달았길 바란다.

 

 

8.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어떤 활동을 할 예정인가?

 

린다: 사실 아무런 활동도 하고 싶지 않다. 아니,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사실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어떤 계획을 하며 활동하지는 않는다. 그저 그때그때 마음이 가장 쓰이는 곳에 생각보다 행동을 먼저 하게 된다.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은 한국에 THAAD 를 배치하는 것에 반대하는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그 이유는 지금 그것을 반대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두고두고 못난 조상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시민권자로서 내가 내는 세금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깨뜨리고 군비경쟁을 가속화 하는 데 쓰이는걸 원치 않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성주에서 난리치고 여기로 온다니" '사드 불똥' 튄 김천, 분노한 시민들

 

[현장] 야유받은 이철우 의원... 시장·시의원은 삭발

16.08.24 21:50l최종 업데이트 16.08.24 23:22l

 

 

▲ 김천 학생들의 외침 "한반도 사드 반대한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방어를 위해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배치 제3후보지로 김천 인근이 거론되자, 24일 오후 경북 김천 삼락동 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사드배치 결사 반대 범시민투쟁 결의대회'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하는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유성호
▲ 사드 반대 김천 시민들 "이 땅에 사드 한 발도 못 들어온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방어를 위해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배치 제3후보지로 김천 인근이 거론되자, 24일 오후 경북 김천 삼락동 김천종합운동장에서 시민들이 '사드배치 결사 반대 범시민투쟁 결의대회'를 열어 사드 배치 반대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성호


사드 불똥이 튄 김천시민들의 분노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정부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이른바 제3후보지로 김천과 인접한 성주 롯데 골프장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24일 김천시민들이 처음으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날 오후 6부터 김천종합운동장에 모인 8천여 명의 성난 민심에 답하기 위해 시의원들을 중심으로 꾸려진 김천사드배치반대투쟁위원회(아래 투쟁위) 공동위원장들은 즉석에서 삭발했고, 시장도 머리를 깎았다. 

투쟁위 수석공동위원장을 맡은 김세운 김천시의회 부의장은 "사드가 피해가 없다면 왜 가장 최적지라고 발표했던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하나"면서 "우리 김천에 사드 배치는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외쳤다. 

성주의 사드 배치를 사실상 남의 이야기로 생각해왔던 지역의 민심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박희주 시의원(무소속)은 "성주에 사드가 유치된다고 했을 때 불구경했지 않나"라면서 "우리 집에 불똥 튀니까 불 꺼달라는 셈 아닌가"라고 자성론을 제기했다. 박 시의원은 "두 번 반성하지 말고 후회 없는 김천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성주 먹기 싫다고 뱉은 음식 김천 먹을 수 있나"
▲ 삭발하는 박보생 김천시장 '사드 결사 반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방어를 위해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배치 제3후보지로 김천 인근이 거론되자, 24일 오후 경북 김천 삼락동 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사드배치 결사 반대 범시민투쟁 결의대회'에 박보생 김천시장(가운데)을 비롯한 공동위원장들이 사드 배치 반대를 요구하며 삭발하고 있다. 이날 박 시장은 "4만 5천 성주군민이 막아서 성주군민이 먹기 싫다고 뱉은 음식 김천시민이 먹을 수 있나"며 "14만이 넘는 여러분이 단결한다면 어떻게든 시민에게 피해를 주는 사드 배치 반대하겠다"고 투쟁 의지를 밝혔다.ⓒ 유성호
▲ 김천 시민들의 야유에 급히 자리 떠나는 이철우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이 24일 오후 경북 김천 삼락동 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사드배치 결사 반대 범시민투쟁 결의대회'에 참석해 인사말 도중 시민들의 야유가 이어지자 급히 자리를 떠나고 있다. 이날 김 의원은 "절대 국회의원 한 번 더 하기 위해서 연연하지 않는다"며 "나라가 잘 되도록 하고 김천이 절대 손해보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유성호
박우도 투쟁위 공동위원장도 울먹이며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호소했다. 그는 "내 자식도 소중한데 남의 자식이라고 안 소중하지는 않다"면서 "우리 자손들에게 이런 위험한 걸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박보생 김천시장은 예정에 없던 삭발을 감행했다. 박 시장은 "성주군민이 먹기 싫다고 뱉은 음식을 김천시민이 먹을 수 있나"라면서 "여러분이 단결한다면 시민에게 피해를 주는 사드 배치를 결사반대하겠다"고 약속하며 그 자리에서 삭발을 하겠다고 나섰다. 박 시장이 삭발하자 투쟁위 위원장들도 덩달아 삭발했다.  

박 시장과 투쟁위원장들의 삭발을 하는 사이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이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무대 옆에 등장했다. 이 의원이 오후 7시께 무대에 오르자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하고 흥분한 일부 주민들은 욕설을 퍼부으며 물병을 던지기까지 했다. 

사드 배치에 찬성한다고 밝혔던 이 의원은 이날만큼은 납작 엎드리는 모양새였다. 그는 "이렇게까지 국방정책이 흔들리는 나라,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 "대한민국도 지키고 우리 김천도 확실히 지키겠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저는 사드 배치와 관련해 오래전부터 주민 설득이 되고 충분한 이해가 가고 난 다음에 배치지역을 발표하도록 했다"면서 "어제도 국방부 장관에게 제3후보지 반드시 주민들이 오케이(OK)할 때 그때 발표해야 한다고 얘기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의원을 향해 주민들은 "이철우 내려와", "집에 가" 등을 외치며 야유를 보냈다. 

주민들 '사드 배치 안돼'... "김천이 반대하면 또 어디로 옮길 거냐"
▲ "김천 시민 위협하는 사드 배치 반대한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방어를 위해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배치 제3후보지로 김천 인근이 거론되자, 24일 오후 경북 김천 삼락동 김천종합운동장에서 시민들이 '사드배치 결사 반대 범시민투쟁 결의대회'를 열어 사드 배치 반대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성호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사드 배치를 철회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구미를 떠나 김천으로 이사를 왔다는 김민희(42)씨는 "구미는 공장도 많고 해서 공기도 맑고 공원도 많은 곳에서 아이들과 즐겁게 살기 위해 이사를 왔는데 이곳으로 사드가 온다니 저희로서는 통탄스럽다"고 말했다. 

혁신도시인 율곡동에 살고 있다는 김아무개(33)씨와 신아무개(36)씨는 "사드가 김천 근처에 배치된다고 해서 당혹스럽다"면서 "우리는 사드가 김천에만 들어오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민들은 김항곤 성주군수를 향해 원망스럽고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농소면에서 자두와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다는 차해수씨는 "골프장에서 우리 집까지는 약 3.5km에 불과하다"며 "성주에서 난리치고 이곳으로 온다니 상당히 황당하고 불안하다"고 말했다.

사금분(61)씨는 "농소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았다"며 "성주군수가 왜 김천 인근에 사드를 배치하도록 요구했는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정부의 행태가 더 웃긴다. (사드를) 성주에 결정했으면 끝까지 하든지 주민들이 반대한다고 다른 곳으로 옮기고... 김천이 반대하면 또 어디로 옮길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투쟁위는 사드 배치 결의문을 발표했다. 투쟁위는 결의문을 통해 ▲ 김천시민의 안전과 생존권을 위협하는 제3후보지 사드 배치 요청 결사 반대 ▲ 시민 동의 없고 행정절차 무시한 원칙과 일관성 없이 행동하는 국방부의 각성 ▲ 지역 갈등 초래하며 김천시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사드배치를 끝까지 막아내자고 호소했다. 

한편 김천 투쟁위는 25일부터 매일 오후 7시부터 율곡동 안산공원에서 촛불집회를 열기로 하고 한 달 동안 집회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또 SNS를 통해 3000여 명이 넘게 모였다며 '김천 사드 반대'가 아닌 '대한민국 사드 배치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기로 했다.
태그:사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북, 동해에서 SLBM 1발 발사..500km 비행

북, 동해에서 SLBM 1발 발사..500km 비행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6.08.24  09:48:44
페이스북 트위터
   
▲ 북한이 24일 SLBM 1발을 시험 발사했다. 사진은 지난 4월 '콜드런치'에 성공했던 모습. [자료사진-통일뉴스]

한.미가 22일 연합군사연습 ‘을지프리덤가디언’에 돌입한 가운데, 북한이 24일 새벽 5시 30분께 함경남도 신포 인근 동해상에서 잠수함을 이용해 탄도미사일(SLBM) 1발을 발사했다. 

24일 합동참모본부(합참)는 “SLBM은 500㎞를 비행해 지난 수 차례 시험발사에 비해 진전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 한미가 정밀 분석 중에 있다”고 밝혔다. 미국 전략사령부는 미사일이 ‘KN-11(북한의 SLBM ’북극성‘의 미국식 명칭)’로 보인다고 확인했다. 

대니얼 핑크스톤 미국 트로이대 교수는 24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어느 누구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거리 550마일(885km)인 고체연료 장착 SLBM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괌 미군 기지를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봤다. 

북한은 지난 4월 수중사출에서 로켓점화로 이어지는 ‘콜드런칭’ 성공에 이어 이번 발사를 통해 비행거리 확보에도 성공했다. 실전배치 수준에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SLBM 발사 의도와 관련, 24일 합참은 “한미연합연습을 빌미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려는 무력시위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이날 오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정부는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북한이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하고 유엔 안보리결의를 위반하면서 핵실험, 탄도미사일 발사 등 연이은 도발을 지속한데 이어, 또다시 SLBM 발사를 감행한 데 대해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 정권이 계속 주민들의 극심한 민생고는 외면한 채, 오로지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만 추구한다면 더욱 엄중한 제재와 외교적 고립만 초래함으로써, 오히려 자멸을 재촉할 뿐이라는 것을 속히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미국 국무부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북한의 발사를 규정하면서 “강하게 비난한다”고 밝혔다. “이 도발적인 행동에 책임을 지우기 위해 유엔 무대에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한중일 외교장관회의 참석차 2013년 취임 이후 처음으로 방일 중인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24일 도쿄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세가 더 복잡해져 긴장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각국이 자제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24일 <NHK>에 따르면, 일본 방위성은 북한 미사일이 일본 방공식별구역(JADIZ) 안쪽 해상에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지난 3일 북한이 발사했던 중거리미사일 ‘노동(사거리 1,300km)’도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 떨어진 바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북한의 잠수함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일본 방공식별구역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라며 “일본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자 지역 평화와 안정을 현저하게 해치는 용서 못할 폭거”라 비난했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 한국 등 국제사회와 긴밀하게 연계하여 유엔 무대를 포함하여 의연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북한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지난 22일자 성명을 통해 “조선인민군 1차타격연합부대들이 ‘을지프리덤가디언’ 합동군사연습에 투입된 모든 적공격집단들에 선제적인 보복타격을 가할 수 있게 항시적인 결전태세를 견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추가, 11:48)

 

[관련기사]

 
이광길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101살에도 환자 돌보는 내가 뜸 효능 본보기”

“101살에도 환자 돌보는 내가 뜸 효능 본보기”

이길우 2016. 08. 24
조회수 5383 추천수 0
 
   ‘침뜸 교육시설을 설립 허가’ 대법판결 받은 김남수옹
 “어떤 운동도 안하고 약 안 먹고 오직 하루 3번 뜸
 고효율의 생활의학…의료에 내 것 네 것 어디 있나”
 
978ca622-df04-4b57-aee9-99520568ff63.jpg 
 
“올 들어서부터 환자의 이야기가 잘 안 들려. 그래서 생각했어. 아! 이게 늙은 거구나.” 
 올해 101살의 구당 김남수옹의 얘기다. 백수를 넘기고야 신체 노화를 실감했다니 그는 분명 특별한 인간이다. 청력은 감퇴했지만 그는 여전히 정력적으로 환자를 돌본다. 3시간 정도만 자고도 하루 종일 건강하게 움직인다. 또래의 친구는 없다.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닌 탓이다. 그런 특별한 건강이 그를 침과 뜸의 세계적 전도사로 만들었다. “난 어떤 운동도 안 해. 약이나 보양식도 안 먹어. 오직 하루 한번 내 몸에 뜸을 뜨지.”
 대법원도 그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최근 김옹이 침뜸 교육시설을 설립할 수 있도록 당국이 허가해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2011년 온라인 교육을 허용한 데 이어 오프라인 교육도 허용한 셈이다. 
 
 귀 잘 안 들려 노화 실감…“난 전과 43범“
 지난 19일 서울 청량리에 있는 구당 침술원에서 만난 김옹은 여전히 환하고 활기찬 목소리로 뜸을 전도했다.
 “제자들이 나를 전과 43범이라고 해. 그동안 경찰과 검찰에 고발당한 것이 43번이기 때문이야.”
 그가 뜸을 중시하는 이유는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호에 ‘뜸 구’(灸) 자가 있는 이유다. “뜸은 생명의 보물이야. 이 이상 되는 치료법이 없어. 침은 한의사가 뜸의 효과를 빨리 보려고 놓는 것이야. 뜸은 남녀노소, 서양, 동양인을 불문하고 모두에게 효과가 있어.”
 그는 뜸을 살갗에 올려놓고 태워 약 60~70도의 열로 가벼운 화상을 입히면 경혈을 자극해 생겨나는 특수한 물질이 건강을 가져온다고 말한다. “예부터 우리 조상은 몸에 병이 생기면 크게 뜸을 떴어. 그리고 고름을 줄줄 흐르게 만들었어. 일부러 고름을 내는 거야. 고름을 많이 내려고 고약도 붙이곤 했어. 고름은 백혈구의 시체들이야. 상처가 생기면 그 상처에 침투하는 균을 죽이려고 백혈구를 파견하고, 그 백혈구가 균들과 치열하게 싸워서 죽은 사체들이 고름인 거지. 수비대 격인 이 고름이 몸에 흡수돼 피를 만드는 원료가 되고, 오장육부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만들어.” 김옹은 이 고름을 이종 단백질이라고 했다.
 “내가 전파하려는 무극보양뜸은 아주 독특한 의학이야. 왜냐하면 질병의 예방·치료·건강 증진이라는 세 가지 효과가 한꺼번에 생기기 때문이야. 부작용 없는 자연치유 의학이고, 입원비나 약값 걱정 없는 저비용 고효율의 생활의학인 셈이야.”
 그는 한 줌의 뜸쑥과 거기에 불을 붙일 향 하나면 족하다고 했다. 그가 추천하는 뜸쑥은 3년 이상 묵은 것으로 담황색을 띠며 촉감이 부드럽고, 섬유가 가늘고 고우며, 잡물이 없이 잘 건조된 것이다. 이런 쑥일수록 타는 속도가 빨라 덜 뜨겁고 자극을 완화한다고 한다.
 김옹은 뜸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을 사용하던 원시인들이 염증으로 고통받다가, 우연히 불똥이 떨어져, 처음엔 뜨거움으로 기겁했으나 통증이 서서히 가시는 희한한 경험을 했을 거야. 그 뒤 어딘가 염증이 생기면 자발적으로 불똥을 환부에 얹어 놓고 치료되는 경험을 하며 뜸이 생긴 거야.”
 그는 “뜸맛을 알아야 한다”고도 했다. “처음엔 찌르는 것 같은 뜨거움이 느껴지지만, 그 뜨거움을 참으면 한순간 섬뜩한 냉감과 함께 온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어. 독특한 열감이 뜸자리 깊은 곳까지 파고들며 몸 전체를 온온하게 만들지.” 
 
 고향 돌아와 무료 진료…“최근엔 새로운 방법 써”
 그는 남자는 12곳에, 여자는 13곳에 뜸을 놓으면 큰 효과를 본다고 일러준다. 하지만 굳이 모든 곳에 뜸을 뜰 필요는 없다. 혼자서 손이 닿는 곳에 매일 뜨는 게 중요하다. 
 김옹은 “인간의 꿈은 건강하게 천수를 다 하고 사는 것이야. 병이 없어야 해. 생로병사가 아닌 생로사여야 해. 뜸은 그런 길을 가게 만들어. 바로 내가 그 본보기이잖아?”  
 그는 한학과 침구학을 아버지(김서중)로부터 배웠다. 그의 형(김기수)도 유명한 ‘침쟁이’였다. 형은 “맥도 모르면서 대통에서 침을 빼지 말라”고 했다. 함부로 치료를 하지 말라는 뜻이다. 또 “의사는 무당질을 해서라도 병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의료인의 길을 가르쳐준 것이다. 
 김옹은 지난해 10월 고향인 전남 장성군 서삼면 금계리에 무극보양뜸센터를 열고 평일에는 매일 15명의 예약환자를, 토·일요일에는 20명을 선착순으로 무료 진료를 하고 있다. 
 “이제 침과 뜸은 개인이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국가가 나서야 합니다. 의료행위에 내 것, 네 것이 어디 있나요? 이제 하나가 돼야 합니다.” 그동안 그의 의료행위에 거부감을 보여온 한의사들을 의식해 하는 말이다.
 “아직 아픈 데는 없어. 건강한 나를 보고 사람들이 찾아와. 최근엔 새로운 방법을 쓰고 있지.”
 그는 장성군의 모든 면을 찾아다니며 무료로 뜸자리를 찍어주는 활동도 하고 있다. 지난 3개월 동안 서삼면의 141명에게 뜸자리를 알려줬다. 정말 고집스럽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박원순 공작문건은 청와대 보고용”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6/08/24 10:18
  • 수정일
    2016/08/24 10:1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예상대로 국정원은 ‘박원순 시장 제압 문건’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 국정원 관계자들은 모두 국정원에서 작성한 보고서가 맞다고 했다. 그중 하나는 1주일에 1건꼴로 청와대까지 올라가던 ‘특상 보고서’ 형식과 같다고 했다.
정희상 기자  |  minju518@sisain.co.kr
 

 

 

“박원순 공작문건은 청와대 보고용”

‘박원순 제압 문건’이 진짜인 15가지 이유

검찰, 새로운 증거 나왔으니 다시 수사해야

 

 

<시사IN> 제464호 ‘전 국정원 직원들의 자백, 박원순 공작’ 기사에 대해 국정원은 8월2일 보도자료를 냈다. “박원순 시장 관련 문건이 국정원이 작성한 것이라고 보도한 내용은 전혀 사실무근입니다. 검찰에서는 2013년 10월4일 박원순 시장 관련 문건을 다른 국정원 문건과 비교하여 문서감정을 실시한 결과, 동일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는 등의 이유로 불기소 처분한 바 있습니다.”

<시사IN> 보도 내용 가운데 쟁점은 2013년 5월15일 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에서 공개한 2건의 ‘박원순 시장 제압 문건’이다. 두 가지 문건은 각각 A4 용지 5쪽짜리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운영 실태 및 대응 방향’과 1쪽짜리 ‘좌파의 등록금 주장 허구성 전파로 파상 공세 차단’이라는 제목이다.

당시 민주당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국정원 전·현직 직원 9명을 국정원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을 수사한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이 맡았다. 검찰은 수사 착수 5개월 만인 2013년 10월7일 국정원이 보내온 문건과 양식이 다르다며 이 사건을 각하 처분했다. 10월17일 검찰 수사팀이 트위터를 전담하던 국정원 심리전단 5팀 소속 직원 3명을 전격 체포하기 열흘 전이었다. 윤석열 팀장은 이 체포 이후 수사에서 배제되었다. 그리고 10월21일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 팀장은 수사 외압 의혹을 폭로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  
ⓒ연합뉴스

당시 검찰 수사와 관련해 황교안 법무부 장관-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 라인은 수사팀과 의견을 달리했다. 각하 처분을 설명하며 이진한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문건이 아닌데 내용이 뭐 있겠어요? 문건도 아니라니까 내용도 아니지. (국정원이) 자기네 문건이 아니라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수사 상황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는 “수사팀도 국정원 문건으로 의심했다. 그때 댓글이나 트위터 등 수사도 벅찬 상황이라 수사를 더 확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실상 고발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는 취지로 각하 처분을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검찰, 새로운 증거 나왔으니 다시 수사해야 참조). 당시 남재준 국정원장은 수사 대상인 국정원 직원들에게 검찰에서 일절 진술하지 말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윤석열 팀장은 국정감사장에서 “(남 원장) 직권남용죄가 될 수 있다”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 수사팀은 댓글과 트위터 수사를 하기에도 벅찬 상황이라 각하 처분을 내렸다는 게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국정원은 지금도 검찰의 각하 처분을 ‘방패’로 삼고 있다. 검찰 뒤에 숨은 국정원의 해명이 맞을까? <시사IN>은 문건 작성 시기에 국정원에 근무했던 고위 간부를 포함한 복수의 전직 직원들을 접촉했다. 이 문서를 직접 보여주며 정밀 검증을 했다. 취재 결과 이 문건은 국정원에서 작성했다는 일치된 증언을 확보했다(‘박원순 제압 문건’이 진짜인 15가지 이유 참조).

  논란이 된 ‘박원순 시장 제압 문건’에 대해 전 국정원 관계자들은 국정원의 문서 작성 양식과 글자체 및 글자 크기가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참고 표시와 글자체, 부호 등도 국정원에서 쓰는 것이라고 했다.  
논란이 된 ‘박원순 시장 제압 문건’에 대해 전 국정원 관계자들은 국정원의 문서 작성 양식과 글자체 및 글자 크기가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참고 표시와 글자체, 부호 등도 국정원에서 쓰는 것이라고 했다.

먼저 국정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전 국정원 관계자는 “박원순 문건은 두 종류다. 모두 국내정보 파트인 2차장실 산하 국익전략실에서 작성된 것이다. 원세훈 원장이 당시 국익전략실 신○○ 실장에게 특별 지시해 작성한 보고서가 맞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국정원 간부 출신은 문서의 규격과 양식이 국정원 문건임을 입증한다고 증언했다. “국정원 내부 문서 작성 양식과 글자체 및 글자 크기가 정확히 일치한다. 암호화된 배포선을 사용하는 정부기관은 국정원밖에 없다. 또 보고서 제목은 19폰트, 내용은 14~15폰트 신명조체 글씨를 내부 보고서에 사용하는 곳도 국정원이다. 참고 표시와 글자체, 부호 등도 국정원에서 쓰는 것이다. 내가 국정원 안에서 이런 양식의 보고서를 수없이 작성해봤고 유출 문제를 조사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정확히 안다.” 이 관계자는 두 문서의 차이와 관련해 의미 있는 증언을 했다. 그는 이어 “5장짜리 ‘서울시장 좌편향 관련 문건’은 ‘특상 보고서’ 형식이다. 1주일에 1건꼴로 생산돼 청와대까지 올라가는 보고서 양식이다. 이런 특상 보고서는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에게 올라가고 국정원장이 대통령을 독대할 때 가져가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5장짜리 보고서 내용 중 ‘감사원과 행안부 감사를 통해 시정 촉구’라는 대목과 ‘검찰·경찰 사정활동 강화’라는 조치가 있는데, 이런 내용을 쓸 수 있는 정부기관은 청와대와 국정원밖에 없다. 이 문서는 국정원에서 작성한 것이 확실하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 말대로 5장짜리 보고서와 1장짜리 보고서에는 양식 차이가 있다. 1장짜리에는 작성자 이름과 휴대전화 정보가 상세히 기재되어 있지만, 5장짜리 문서에는 생산라인 ‘2-1’(옛 국내정보분석국장)과 배포라인 ‘0-0’(국정원장), ‘2-0’(국정원 2차장), ‘3-0’(국정원 3차장)만 표기되어 있다.

1장짜리 ‘반값등록금 문건’에 대해서 또 다른 국정원 전 관계자는 “이 문건은 원내에서 ‘B상보’라 부른다. 1장짜리로 간단하게 작성하는 보고서로 매일 생산된다. 국정원 내부에서만 알 수 있는 작성 부서와 이름, 연락처, 배포선 암호 숫자 등이 구체적으로 명기돼 있어 원장에게 보고가 올라가는 단계의 문서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참여정부 말기부터 국정원에서는 문건 작성자 실명제가 도입되었다고 한다. 상부에서 호출할 경우 즉각 응대할 내선번호와 휴대전화 번호가 보고서에 기재되기 시작한 것이다. 국정원 IO(정보관)가 작성해서 보고하는 내부 문서는 국정원 내에 설치된 언론기관과 유사한 ‘편집부’를 거친다. 문건에 기재된 작성자 내선번호와 휴대전화 번호를 통해 문서 내용을 편집부에서 확인해 최종 완성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1장짜리가 내부용이라면, 5장짜리는 청와대에 보고되는 형식이라는 것이다. 사정기관의 현직 관계자는 “나도 국정원이 작성한 문건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는데, 박원순 문건(5장짜리) 역시 국정원 문건 양식이다. 국정원 문건은 톱시크릿이라고 해서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보고된다”라고 말했다. 전 국정원 관계자도 “보고서 양식을 보면 먼저 ‘개요’가 나오고 다음에 ‘실태 및 문제점’, 마지막으로 ‘대응 방향’이 나온다. 이런 형태의 문서 양식은 국정원에서만 쓴다. 대응 방향 대신 ‘조치 방향’ ‘조치 방안’ 등을 번갈아 사용하기도 한다”라고 증언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09년 2월 국정원장 임명장을 받고 이명박 대통령과 걸어 나오고 있는 원세훈 국정원장(사진 왼쪽).  
ⓒ연합뉴스
2009년 2월 국정원장 임명장을 받고 이명박 대통령과 걸어 나오고 있는 원세훈 국정원장(사진 왼쪽).

그는 이어 검찰이 박원순 문건을 다른 국정원 문건과 비교해 문서감정을 실시한 결과, 동일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발표한 정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검찰이 국정원 문서가 보관된 내곡동 전산 서버를 직접 들여다보고 대조 확인했더라면 국정원 문건이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수사팀은 국정원의 비협조로 문건에 적시된 추○○, 함○○, 조○○ 등을 소환 조사하지 못했다. 또 이에 앞서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과 관련해서도 법원의 영장을 받아 국정원 압수수색에 나섰지만 남재준 원장은 국정원 메인 컴퓨터인 슈퍼컴퓨터에 대한 압수수색을 불허했다. 국정원은 검찰이 자료 제출을 요구하자 로마자 표기법이 담긴 엉뚱한 문서를 건네기도 했다.

원세훈 원장 시절 간부를 지낸 또 다른 전 국정원 관계자는 박원순 문서를 검토한 뒤 “문서에 기재된 내용과 형식 모두 원세훈 원장 시절 국정원에서 실제 이뤄진 것이 확실하다. 간부회의 때마다 원세훈 원장으로부터 귀가 따갑게 들었던 내용이 대부분 망라돼 있다. 문서 작성자로 기재된 국익전략실장 신○○ 산하 사회팀장 추○○, 사회팀 과장 함○○, 작성자 과원 조○○ 등은 실제 당시 해당 부서에서 근무했고 지금도 국정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외부에서 이를 가짜로 만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국정원 전 관계자들은 “당시 대외적으로 국정원 작성 문서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처음부터 심각한 보안 누설 사태로 간주해 문서 유출자를 색출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라고 증언했다. 당시 감찰 상황을 잘 아는 국정원 전 관계자의 증언이다. “2013년 5월 이 문서가 <한겨레>에 폭로되고, 진선미 의원이 문서 작성자로 전화번호까지 나온 조○○ 휴대전화에 전화를 걸어 신원을 확인했다. 이 같은 사실이 국정원 수뇌부에 보고됐다. 남재준 원장이 직접 나서서 박원순 문건 유출자를 색출하도록 특별 지시를 내렸다.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포함한 고강도 감찰 조사가 진행됐다.” 또 다른 국정원 전 관계자의 증언이다. “국정원 안에서도 ‘박원순 제압 문건’이 내부에서 나간 문서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았다. 2013년 5월 문건 유출자 색출 과정에서 가장 의심받은 간부가 원세훈 원장 시절 의전비서관을 지낸 ㄱ 처장이었다. 그 무렵 ㄱ 처장은 동료들에게 ‘감찰실에서 문건 유출자로 나를 지목해 강도 높게 추궁하는 바람에 죽는 줄 알았다’라고 고충을 토로한 적도 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13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장을 수여한 뒤 남재준 국정원장(사진 오른쪽)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3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장을 수여한 뒤 남재준 국정원장(사진 오른쪽)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또 다른 국정원 전 관계자는 “당시 남재준 원장은 이 문건 유출을 계기로 직원들의 휴대전화 번호가 노출되는 바람에 국정원 직원들이 쓰던 휴대전화를 순차적으로 바꾸게 했다. 주로 ○○문화사나 ○○연구소 등 국정원 대외용 법인 명의로 개통한 011, 017, 019 등 2G 폰을 썼는데, 그때부터 일부 직원들이 스마트폰으로 바꾸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진선미 의원은 “당시 문건 작성자로 기재된 조○○씨의 019 휴대전화로 전화해 통화했는데, 그 뒤로 조씨 전화번호가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복수의 전 국정원 관계자들은, 2013년 5월 박원순 문건에 대한 고발이 이뤄지자 국정원과 청와대가 ‘꼬리 자르기’ 조처를 취했다고 증언했다. 국정원 전 관계자의 증언이다. “박원순 문건에 대한 검찰 조사가 시작되자 국정원에서는 문건 작성 책임자인 추○○씨를 자택 대기발령 조치했다. 추씨는 문건이 폭로되던 2013년 5월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 행정관으로 파견 나가 있었다. 추씨는 약 5개월 동안 서울 송파구에 있는 아파트 자택에 대기발령으로 칩거했다. 급여는 100% 받았다. 그해 10월 검찰이 각하 처분을 내린 뒤 대기발령이 풀렸다. 그 뒤 2014년 이병기 신임 원장이 취임하며 2급이던 추씨는 1급으로 승진했다. 현재 국정원 2차장실 산하 국내정보수집국장으로 영전했다.” 추○○ 국장은 박근혜 인수위원회를 거쳐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파견근무를 했다. 현재 그가 맡은 국내정보수집국장은 정부 각 부처 및 언론, 법조, 시민사회단체를 담당하는 국정원 국내정보 파트 IO들을 총괄하는 자리다.

허위 문서라더니 내부에서는 유출자 색출?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명박 정권 때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박원순 공작’이 실행 중이라고 믿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공작 문건 작성자로 기재된 추씨가 국내파트 정보 수집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국정원 전 관계자는 “추○○ 국장은 경북고와 육사를 나와 골수 TK 세력으로 분류되는데, 현재 국정원 내에서 TK 핵심 실세 3인방으로 꼽힌다. 그를 국내정보 수집 파트 총괄 수장 자리에 앉혀두고 있다는 것은 박원순 시장 제압 문건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주면서 더 잘하라고 격려하는 뜻으로 비칠 소지가 다분하다”라고 말했다.

<시사IN>이 국정원에 추 국장의 대기발령 여부와 승진 여부에 대해 묻자, 국정원은 “추 국장의 인사 조치 내용에 대해서 확인해줄 수 없음을 양해해주기 바란다”라고 밝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박근혜대통령이 참 나쁜 대통령인 이유

임기를 1년여 남겨 놓은 상태에서 대통령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김용택 | 2016-08-24 09:08:4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정치란 무엇입니까.”
“백성의 양식이 넉넉하고, 국방력이 튼튼하면서 백성이 믿을 수 있도록 해야 잘하는 정치다.”
“어쩔 수 없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버린다면 맨 먼저 무엇을 버릴까요.”
“군대를 버려야지”
“나머지 두 가지 중에서 어쩔 수 없이 하나를 버린다면 무엇이 먼저입니까.”
“차라리 양식을 버려야지…”

공자와 훗날 노나라 재상이 된 자공과의 대화 중에 나오는 얘기다.

경제나 국방보다 신뢰가 더 중요하다는 게 공자의 가르침이다. 공자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정치를 공부하면 신뢰가 정치의 기초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공약을 보면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 차 있다. 주권자인 국민이 놀림감이 되고 있는 정치, 거짓말 하는 대통령으로 그 피해가 고스란히 주권자들에게 돌아가지만,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은 여전히 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신뢰를 잃은 대통령,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고집과 불통으로 국민들로 부터 비난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대통령… 2007년 수구언론은 “박근혜불가론”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 민생의 기초인 경제 등에 대한 식견이 부족하다”
△“내용은 별로 없으면서 ‘이미지 정치’만 한다” 
△‘박정희 후광’과 ‘유신공주’라는 비판 
△정치지도자라기보다는 연예인 같은 인기 
△정수장학회 등 재산 의혹 
△스킨십이 부족한 박근혜식 정치 
△물러서지 않는 고집 
△베일에 가린 사생활 
△비정상적인 개인 성장사…

임기를 1년여 남겨 놓은 상태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공자의 ‘경제와 국방력 그리고 신뢰 중 마지막까지 버려서 안 된다던 신뢰를 박근혜 대통령은 잃지 않고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나쁜 대통령인 이유를 보자.

첫째, 박근혜는 출발부터 거짓말로 시작했다. 당선이 된 후에도 주인인 국민 속이기를 밥 먹듯이 하고 있다.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씩 주겠다는 약속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공약을 실천할 의지가 없이 당선되고 보자는 마음에서 거짓공약을 제시해 노인들을 속인 것이다. 반값등록금, 고교무상교육확대실시, 맞춤형 보육 서비스, 취업스팩타파, 아이돌봄 서비스공약은 지켜지고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주권자인 국민을 속인 대통령이다.

둘째, 주권자인 국민을 무시한 독선적인 정치를 하고 있다. 지난 11일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등 새 지도부를 초청 오찬에 나온 송로버섯메뉴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들은 찜통더위에 누진전기료가 무서워 선풍기로 여름을 나고 있는데 멸종위기로 금지된 상어지느러미 샥스핀 요리는 무엇을 말하는가? 4,16세월호 참사를 외면하는 대통령, 옷값이 얼마인지 몰라도 1년 동안 공식 석상에 입고 나온 옷만 무려 122벌이다. 국민들은 살기 바빠 허덕이는데 나들이 하듯 외교는 국민들을 위한 정치인가?

셋째, 헌법을 파괴하고 있다. 우리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라고 명시해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정부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닦아 놓은 6.15선언과 10. 4 남북공동 선언 정신을 무시하고 개성공단 폐쇄 그리고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해 평화가 아닌 남북 간의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넷째, 국회를 무시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3권분립에 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까지 국회동의조차 얻지 않은 부도덕한 고위 공직자를 임명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국민의 뜻을 하늘처럼 받들겠다’면서, 고위공직자를 하나같이 탈세, 위장전입, 다운 계약서, 병력미필, 땅투기, 논문표절, 이중국적, 성추행, 뇌물수수, 법인카드 유용, 증여세 탈세… 경력자를 임명하고 있다. 부패한 관리들을 등용해 어떻게 민주주의 국가, 국민이 행복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인가?

다섯째,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역사를 거꾸로 돌리겠다고 한다. 헌법에 명시한 4.19정신을 폐기하고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이승만을 건국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역사교육을 강화한다더니 유신시대 관료를 등용하고, 유신을 찬양한 뉴라이트성향의 역사학자들이 만든 국정교과서로 2세 국민들을 가르치겠다는 게 역사 바로 세우기인가? 북한과 이슬람국가 몇몇 나라만 시행하고 있는 국정교과서제로 어떻게 나라를 사랑하는 2세 국민을 기르겠다는 것인가?

“저는 단 한 번도 국민과의 약속을 가벼이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습니다”

이런 약속을 했던 박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지고 있는가? ‘국민통합’, ‘정치쇄신’, ‘일자리와 경제민주화’를 실천하고 있다면 믿을 사람이 있는가?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나눠주겠다며 ‘노동시장유연화’로 일자리를 빼앗는 노동개혁을 주장하는 박근혜. 3포시대, 5포세대도 모자라 7포세대 라는 청년들 한탄의 소리…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한 게 작금의 대한민국이다. 직장인 10명 중 9명이 이민 가고 싶다는 나라를 만든 박근혜와 새누리당. 가계부채 1,000조 원을 두고 어떻게 국민통합과 경제민주화를 말할 수 있겠는가?

임기 일 년여를 남겨 놓고 그가 한 약속. ‘국회의원 면책특권 제한, 불체포특권 폐지, 기초단체장의원의 정당공천 폐지, 골목상권보호, 채무불이행자 신용회복지원, 사내하도급근로자 보호, 최저임금근로감독강화, 비정규직 차별철폐…’아는 약속은 지켜지고 있는가? 4대강 살리기로 4급수로 전락한 식수를 먹는 경상도 유권자들, 박대통령을 지지했던 성주 군민들… 이명박과 박근혜, 새누리당을 지지했던 그들의 마음은 지금쯤 어떨까?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396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충돌을 부르는 UFG

[UFG를 막아라] 3. 충돌을 부르는 UFG
 
 
 
우리사회연구소 곽동기 상임연구원 
기사입력: 2016/08/24 [01:45]  최종편집: ⓒ 자주시보
 
 

미국과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결에 모든 것을 올인한 분위기입니다.

 

박 대통령은 8월 22일, 청와대에서 을지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위협인 만큼 이에 대응하는 우리의 훈련도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실전 같은 훈련이 돼야 하겠습니다.”라고 발언하였습니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게 된 것은 박근혜 정부가 미국과 함께 오로지 대북적대정책으로 북한을 정치군사외교적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연장선상에서 이번 을지프리덤가디언(UFG)연습을 “실전같은 훈련”으로 주문하였습니다.

 

이는 마치도 북한을 군사적으로 응징하기를 학수고대하는 듯한 발언입니다. 왜 그럴까요?

 

1. 이미 도를 넘은 대북전쟁태세

 

미국은 8월 6일, B-1B 초음속 전략폭격기를 10년만에 괌에 재배치했습니다. B-1B는 최대 비행 속도가 마하 1.25(약 시속 1500km)로 B-52 보다 1.5배 가량 빠르다고 합니다. B-1B는 핵탄두를 탑재한 공대지 정밀유도폭탄 20~30발을 실을 수 있어 한반도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군 폭격 전력을 한층 강화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게다가 미국은 8월 8일 미국은 B-2 스텔스 폭격기 3대를 미주리 화이트먼 공군기지에서 괌 앤더슨 공군기지로 전진배치했습니다. B-2 스텔스 폭격기는 항속거리가 1만 km에 달하고 레이더에 아주 작은 점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대륙간탄도미사일과 더불어 핵선제타격수단으로 꼽히는 기종입니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B-2는 공대지미사일과 정밀유도폭탄 80발과 핵폭탄 16발을 목표물에 투하할 수 있어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전략무기 중 하나다. 미국은 지난 3월 한반도 긴장국면에서 B-2 3대를 괌 기지에 전진배치하며 대북 무력시위를 벌인 바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핵무기공격이 가능한 핵잠수함 8~9척을 한반도와 일본에 인접한 태평양지역에 전진 배치했고, 이 중 4~5척은 특정 목표물을 즉각 타격할 수 있는 비상대기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한국군 역시 북한압박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최근 서해 5도 인근 갈도에 122㎜ 방사포 4문을 배치하자 군은 이를 통한 기습도발 가능성이 있다며 8월 4일 이순진 합참의장이 연평도에 있는 해병대 연평부대와 해군 고속정 전진기지를 현장점검, 지도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합참의장은 “적의 사소한 움직임에도 철저히 대비하고 적 도발 시에는 도발의 근원을 확실하게 제거해 전우들이 목숨 바쳐 지켜 낸 서북해역을 사수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북한의 방사포가 4개 부대도 아니고 4문을 배치하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서해함대도 아니고 합참의장이 움직이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행보입니다. 이는 사실상 군 수뇌부가 제2의 연평도 포격전까지 내다보고 군사대응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연평도 해병대를 점검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특전사는 북한의 기습도발을 억제한다며 특수전사령부의 기습도발작전을 공개하기도 하였습니다. 8월 6일, <MBC>는 특전사의 동해안 침투 해상훈련을 공개하며 은밀하게 이동해 침투에 성공하기 위해 5km 해변 구보와 3.6km 맨몸 수영, 7.2km 오리발 수영을 2시간 이내에 완료하는 체력단련을 매일 반복하고 생존 수영과 수중 장애물 제거와 파괴 등 고강도 훈련이 이어진다고 보도하였습니다.

 

특전사 대원들이 은밀하게 기습상륙할 곳이 대한민국 동해안은 아닐 것입니다. 이는 명백히 대북기습침투훈련입니다. 북한이 기습도발할 우려가 있다고 하면서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특전사의 기습침투훈련을 내보내는 것은 앞뒤가 바뀌어도 한참 바뀐 것입니다. 만일 입장 바꿔 북한군 특전사들이 북한에서 대남침투훈련을 했다면 지금쯤 한국의 분위기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특전사는 오늘도 북한의 도발위험이 갈수록 고조된다며 훈련의 구슬땀을 흘린다고 하였습니다. 특전사가 대북침투훈련을 언론에 공개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도발위험이 고조된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8월 20일, 군은 비무장지대에서 북한의 1.45cm 고사총 탄환으로 추정되는 궤적이 레이더에서 발견된 지 1년이 되었다며 역대 최대 규모의 포격 훈련을 실시했습니다. 최전방 포병 부대가 모두 참가했고, 300대가 넘는 화포가 동원된 이번 훈련에서는 무인 항공기를 동원해 실시간으로 적 피해 상황을 파악하면서 2차 사격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지난 연평도 포격전 때 북한군이 썼던 방식을 벤치마킹한 것입니다. UFG연습을 이틀 앞두고 무력시위를 벌이는 것은 UFG연습을 “실전훈련”으로 벌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집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2. 사드가 부른 일촉즉발의 위험

 

아마도 한미연합군은 이 모든 압박이 지난 8월 3일, 북한이 사상 최초로 탄도미사일을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에 떨어뜨린 데에 따른 대응이라고 입을 모을 수 있습니다. 합동참모본부의 발표를 따른다면 북한은 8월 3일 오전 07시50분께 황해남도 은율군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노동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해 1발은 상공에서 폭발했으며 나머지 1발의 비행 거리는 1000km 내외로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 내에 떨어졌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였다고 해서 자위대가 나서는 것도 아니고 박근혜 정부가 분기탱천에서 나서는 것도 이상한 모양새입니다. 이미 한미일 3각 군사공조가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북한은 비행거리 1000km급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미국과 박근혜 정부가 사드 한반도 배치를 공식화한 데 따른 물리적 대응이라고 나설 수 있습니다. 북한은 실제로 미국이 사드 배치 부지를 결정한다면 물리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일본 인근에 탄도미사일을 떨어뜨린 것은 태평양사령부에 대한 타격능력을 과시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흐름은 한미당국이 사드 한반도 배치를 공식화하자 북한이 노동미사일을 일본 배타적 경제수역에 떨어뜨려 괌 뿐만 아니라 태평양사령부의 타격능력을 과시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미국과 박근혜 정부는 “감히 우리 일본을 건드려”라고 분기탱천하며 UFG연습을 앞두고 온갖 군사적 압박에 나서는 모습입니다.

 

결국 이는 모두 사드 한반도 배치가 불러온 일촉즉발의 위험입니다.

 

3. 국지적 충돌의 확대 위험성 

 

북한이 핵탄두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는 지금은 미국의 치밀한 대북전쟁계획이 실행되어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대신 대북억제력이 갈수록 약해지는 미국이 다급한 마음에 무리수를 두게 되고, 그러한 미국의 무리수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번져 미국과 박근혜 정부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 무리수는 바로 사드 한반도 배치입니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할 목적으로 사드를 한국에 배치해야겠는데, 이를 드러내놓고 말할 배짱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미국은 북한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사드를 배치한다는 논리를 끌어들여 대북압박의 정치적 목적까지 한탕에 해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급부로 한미연합군의 대북전략전술은 완전히 뒤죽박죽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미국의 대북접근법은 “전략적 인내”입니다. 그런데 지금 연일 대북무력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오바마행정부는 사드 한반도 배치를 공언한 순간 “전략적 인내”를 걷어치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사드의 대상으로 지목된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완전히 복원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사드배치’의 압박과 달리 군사전략적으로는 오히려 미국이 후퇴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을 발사하기도 전에 먼저 파괴하겠다는 종전의 ‘맞춤형 억제전략’에서 북한이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이를 “사드”로 요격한다는 것으로 쏘기 전 파괴에서 쏘면 파괴하는 것으로 전략적 후퇴를 한 것입니다. 미국의 대북전략에 일관성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이에 더해 미국이 사드배치의 명분으로 북한을 지목한 이상 북한은 앞으로 대미대응태세에 나설 명분을 얻어 버렸습니다. 탄도미사일을 일본 배타적 경제수역 내로 발사한 것은 대표적 사례입니다. 미국은 유엔안보리에 회부하고자 하였으나 중국의 반대로 채택조차 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미국과 박근혜 정부가 입만 열면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입에 올리는 것처럼, 북한의 대응수위는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상승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바마행정부가 동북아에서 일사분란한 대응태세를 갖추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면 할수록 그 반대급부로 워싱턴의 태평양사령부의 통제력은 약해질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휴전선 최전방의 부대들에게 “선조치, 후보고”하라는 위험천만한 명령을 내려놓고 있는 것처럼, 오바마행정부도 백악관이 태평양사령부를 통제하지 못하고, 태평양사령부의 의견대로 백악관이 우왕좌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여러 패권국가들은 패권이 위기에 봉착할 때 군부의 입김을 통제하지 못해 “지는 전쟁”에 뛰어들었습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나, 히틀러의 소련원정, 일제의 진주만 공습은 모두, 그들의 지역패권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군부의 강경입장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오늘날 미국이 동북아시아를 효율적으로 통제하지 못하고 미국의 패권이 차츰 저물고 있는 상황에서 UFG 연습을 앞두고 우발적 충돌의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끝>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