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정윤회 파동과 비슷한 ‘우병우 사건’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하고 임명한 1호 특별감찰관에 대해 청와대가 사실상 하명 수사 지시를 내렸다. 이슈를 ‘우병우 비리 혐의’에서 감찰 유출 의혹’으로 전환하려는 것이다.

김은지·이상원 기자 webmaster@sisain.co.kr  2016년 08월 29일 월요일 제467호

8월19일 오후 1시, 특별감찰관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의 한 건물 앞에 취재기자 10여 명이 진을 쳤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는 이날 연차휴가를 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다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약 없이 특별감찰관실 입구를 서성였다. 이날 오전 9시 대통령비서실 김성우 홍보수석이 브리핑을 했다. “특별감찰관이 감찰 내용을 특정 언론에 유출하는 것은 중대한 위법이고, 국기를 흔드는 일이 반복되어선 안 되기 때문에, 어떤 감찰 내용이 특정 언론에 왜 어떻게 유출됐는지 밝혀져야 한다.” 사실상 이석수 특별감찰관에 대한 검찰 수사를 지시하는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직접 임명한 1호 특별감찰관을 청와대가 사실상 내치는 꼴이 되었다. 보수와 진보 언론 가릴 것 없이 궁중 권력다툼으로 해석한다. 우병우-이석수 갈등은 MBC 보도로 표면화되었다. 대통령비서실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특별감찰 활동 만기일인 8월19일을 사흘 앞둔 8월16일, MBC <뉴스데스크>는 ‘[단독] 이석수 특별감찰관, 감찰 상황 누설 정황 포착’이라는 리포트를 내보냈다. “우 수석에 대한 감찰을 진행 중인 이 특별감찰관이 특정 언론사에 감찰 상황을 누설한 정황을 담은 SNS가 입수됐다”라는 내용이었다. 감찰 내용의 외부 누설을 금지하는 특별감찰법을 어겼다는 지적도 곁들였다.

  <div align = 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8월18일 우병우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감찰하는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8월18일 우병우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감찰하는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튿날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SNS를 통해 언론과 접촉하거나 기밀을 누설한 사실이 없다”라고 반박했다. 야권에서는 ‘우병우 감싸기가 시작되었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도 같은 날 비대위 회의에서 “특별감찰관을 흔드는 음모가 아닌가. SNS 대화 내용 누출 경위도 이상하다. 타인의 대화 내용을 제3자가 유포하면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위반이다. 도청 아니면 해킹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라고 말했다.

통비법 위반 논란이 일자, MBC는 보도 경위를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혔다. 8월17일 MBC <뉴스데스크>는 입수한 문건을 공개했다. “모 언론사 기자가 이 특별감찰관과 전화 통화한 내용이라며, 회사에 보고한 것이 SNS를 통해 외부에 유출되었다”라는 내용이었다. 해킹 논란은 한풀 사그라졌지만, 첫 리포트와는 사실관계가 다소 다른 내용이었다. 또 MBC는 “경찰에 자료를 달라고 하면 딴소리를 하니 어떻게 되어가는지 좀 찔러보라” “다음 주부터 본인과 가족에게 갈 건데, 소명하라고. 지금 이게 감찰 대상이 되느냐, 뭐 전부 이런 식인데 버틸 수도 있다”와 같은 이 특별감찰관의 발언을 자세하게 내보냈다. 그가 감찰 내용을 유출했다는 근거였다.

하지만 해당 문건의 전체를 보면 맥락이 다르다는 것을 <한겨레> <경향신문>과 같은 진보 언론뿐만 아니라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도 지적한다(<조선일보>는 문건 속 대화 당사자가 소속된 언론사로 지목받고 있다). 해당 문건은 오히려 우 수석에 대한 감찰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경찰을 언급한 부분도 앞뒤 말을 보면 “경찰에 자료 좀 달라고 하면 하늘 쳐다보고 딴소리하고 그래. 하하하. 경찰은 민정 눈치 보는 건데” “민정에서 목을 비틀어놨는지 꼼짝도 못한다”라며 감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는 것이다. 해당 문건에는 대놓고 우 수석의 힘이 세다는 이 특별감찰관의 말도 나온다. “감찰 개시한다고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대통령께 잘 말씀드리라’고 하면서 ‘이거(우 수석 사퇴 등 문제) 어떻게 돼요?’ 했더니 한숨만 푹푹 쉬더라” “우가 아직도 힘이 있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째려보면 까라면 까니깐.”

  <div align = 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8월8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 우병우 민정수석(왼쪽에서 두 번째).  
ⓒ연합뉴스
8월8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 우병우 민정수석(왼쪽에서 두 번째).

특정 언론의 취재 활동이 타사로 흘러 들어간 경위 자체가 미묘하고, 이 특별감찰관 스스로 우 수석의 영향력이 검·경·청와대까지 미친다고 말한 속내가 드러나는 상황이 되자 ‘우병우 지키기’에 대한 의혹은 더욱 짙어졌다. 특별감찰관 활동을 방해하는 조직적 움직임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MBC 보도 이후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수석에 대한 감찰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할 거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 특별감찰관이 반격에 나섰다. 8월18일 이 특별감찰관은 대검찰청에 우 수석에 대한 수사 의뢰를 했다. 우 수석이 의경으로 복무하는 장남을 ‘꽃보직’ 운전병이 될 수 있도록 경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과 가족회사 ㈜정강의 회삿돈을 개인적으로 썼다는 의혹이다.

이 특별감찰관의 반격 바로 다음 날, 이번에는 청와대가 전면에 나선 것이다. ‘위법’ ‘국기문란’과 같은 센 단어를 앞세운 이석수 특별감찰관에 대한 ‘디스’였다. 이미 이 특별감찰관은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의 고발을 당한 터라, 검찰 수사 개시 형식까지 갖춰진 상태였다. 청와대는 의혹의 당사자인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검찰을 비롯한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이 검찰에 수사 의뢰까지 당한 유례없는 상황이 펼쳐졌지만, 이에 대해서는 ‘노코멘트’였다.

권력다툼의 결론은 예상 가능하다. 전례 때문이다. 2014년 11월28일 ‘VIP 측근(정윤회) 동향’ 문건이 폭로되자, 정윤회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라는 논란이 증폭되었다. 사흘 뒤 12월1일 박 대통령은 직접 “문건을 외부에 유출하게 된 것은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 문란 행위다”라고 발언했다. 같은 날 검찰은 문건 유출 수사를 착수했다. ‘국정 농단 의혹’은 사라지고, 문건 유출로 국면이 바뀌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기소된 조응천 전 대통령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은 1·2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정권으로서는 스캔들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셈이었다.

2014년 ‘정윤회 파동’ 때와 비슷한 양상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금배지를 단 조응천 의원은 8월19일 같은 당 민주주의회복 태스크포스 소속 의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녹취록 공개 과정을 보면 특별감찰관의 감찰 결과를 사전에 알고 이를 ‘물타기’하려는 기획과 실행이 있었다는 강한 의심이 든다. 청와대의 입장은 우 수석을 구하기 위한 ‘찍어내기’를 시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조 의원은 “이 정부 들어와서 매년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그때마다 청와대에서는 ‘국기 문란’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서 기시감을 느낀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의 방침을 박 대통령의 ‘워딩’으로 보기도 했다.

물론 정윤회 파문 때와 다른 점은 있다. 여당 내에서도 한목소리가 나오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8월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찰이 현직 민정수석을 상대로 수사를 벌이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 우 수석은 대통령과 정부에 주는 부담감을 고려해 자연인 상태에서 자신의 결백을 다투는 것이 옳다”라고 썼다. 8월19일 보수 언론 또한 잇따라 “靑 ‘李특감 공격’은 본말 뒤집는 ‘우병우 감싸기(<문화일보>)” “우병우 문제, 순리대로 풀어야 한다(<중앙일보>)” “그래도 우 수석 감싸는 靑과 친박들 지금 제정신인가(<조선일보>)”라며 우 수석의 사퇴를 촉구했다. 정권 말 거대한 내부 균열이 시작됐다.

 
 
<저작권자 ⓒ 시사IN (http://www.sisai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돈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학생들의 목숨을 바꾸겠다는 인간들…

아이들 건강보다 무엇이 더 중한데?
 
돈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학생들의 목숨을 바꾸겠다는 인간들…
 
김용택 | 2016-08-30 08:11:2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세상 돌아가는 꼴이 무섭다. 이데올로기 전쟁도 그렇지만 이데올로기보다 무서운 자본이라는 괴물들이 벌이는 전쟁에 소비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전쟁무기를 만들고 원유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전쟁 그리고 원자력으로 혹은 의약품으로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벌이는 놀이(?)는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대량생산을 위해 방부제와 항생제로 키워내는 농수축산물은 공중파를 통해 소비자를 마취시키고 GMO(유전자변형식품)로 인류의 먹거리를 황폐화시키는 자본의 음모는 인류의 삶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인간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고 이익을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다는 사특한 자본의 상업주의가 인간의 건강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자본의 음모. 행생제와 방부제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의 미각을 혼란시키는 식품첨가물은 인간의 먹거리를 오염시켜 사람들의 건강을 위기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최근 청소년들이 즐겨 먹는다는 악마의 우유를 보면 이런 먹거리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오죽하면 카페인함량이 너무 높아 ‘악마의 우유’라는 별명까지 붙었을까?

아이들이 입에 달고 사는 과자는 어떨까? 어느 건강 전문가는 ‘아이들에게 과자를 먹이느니 차라리 담배를 권해라’고 했다.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먹는 아이스크림이며 초콜릿, 햄버거… 와 같은 가공식품이 얼마나 인간의 몸을 파괴시키는지는 여기서 새삼스럽게 얘기조차 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다. 양심적인 과학자들의 자기고백을 통해 시시때때로 경고를 하고 있지만, 자본의 입맛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의 마취는 깨어날 줄 모른다.

과자뿐만 아니다. 우리나라를 일컬어 ‘GMO 천국’이라고 한다.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식자재 중 유전자 변형식품인지 아닌지 구별조차 못한다. 그 이유는 국민들의 건강을 지켜야할 정부가 식품 중 유전자변형식품이라는 표시하는 어떤 조치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급식비리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지만 GMO 식자재는 학교급식으로 납품되어 청소년들의 건강을 좀먹고 있는 게 현실이다.

먹거리뿐만 아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학교운동장에 깔려 있는 우레탄은 ‘놀이시설’과 달리 정기검사에 관한 법적 조항조차 없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운동장에는 납 성분이 35배 가량이 나온 우레탄트랙이 있는가 하면 ‘납 범벅’ 우레탄트랙을 뜯어낸 곳에 다시 우레탄트랙을 깔려고 시도하는 학교까지 있다. 오마이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병설 유치원이 있는 초등학교의 경우 어린이놀이시설에 있는 우레탄에 대해서는 정기검사를 받아야 하지만, 운동장에 깔린 똑같은 우레탄에 대해서는 안전 정기검사에 대한 법적 규정이 아예 없어 정기검사를 받지 않아도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경쟁교육이 한계상황을 넘고 있다. ‘연간 2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자살하고 청소년의 40퍼센트가 한 번쯤 자살을 생각해 보았으며,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가 ‘성적·진학문제가 절반을 넘는 사회’라는 것이 최근 언론의 보도다. 경쟁교육을 지켜보는 부모들의 마음은 어떨까? “우리아이는 경쟁보다 사람만드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할까? 아니면 “무한경쟁속에 아이들을 내몰아 학대”하고 있을까?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자동차처럼 우리사회의 교육경쟁은 이미 위기의 한계를 넘고 있다.

전교조 참교육연구소가 교사 1,463명, 중·고등학생 154명, 학부모 1,2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90퍼센트에 이르는 교사·학부모·학생이 ‘학교 교육의 위기’라고 답했다. 중고등학교 교사들의 80퍼센트 이상이, 초등학교 교사의 경우 무려 68.3퍼센트가 수업진행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학부모의 76.9퍼센트가 대학서열에 의한 과도한 입시경쟁을 교육위기의 주범이라고 응답했다.

교육이 상품이라면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 학교, 교육부에 박수라도 치고 싶다. 그런데 학교가 무너졌다는 게 언젠데 아직도 학교는 옛날 그대로다. 왜 아이들 먹거리 속에 든 식품첨가물이 인체에 얼마나 유해한지 가르쳐 주지 않는가? 쓰레기 같은 과자를 골라먹을 수 있는 안목은 왜 길러주지 않을까? 자기건강을 지키기 위해 유전자 변형식품이 인체에 얼마나 나쁜지 공부 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을까? 수업시간에 점심시간에 먹은 학교급식의 먹거리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과정을 한번 쯤 조사 발표라도 하면 안 될까?

개학하기 바쁘게 식중독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다. 학교급식 식자재 비리로 영양사들이 몰매를 맞고 있는가 하면 전국 3,000여 개 학교에 영양사들이 16억 상당의 상품권이나 포인트를 받았다는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이 어떻게 조용하기를 바랄까 만은 지금 학교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참담하다. 경쟁교육에 먹거리 문제 그리고 식자재 비리와 식품 첨가물…

돈과 학생들의 목숨을 바꾸겠다는 인간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는 사악한 자본의 논리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경쟁교육에 매몰된 학부모들… 공부도 좋지만, 우리 아이들의 먹거리부터 챙기는 게 순서가 아닐까요?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399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사생결단식' 유경근 위원장 어머니 이세자씨 "젊은이들에게 미안"

"손녀는 죽고 아들은 단식, 늙은이 속 타들어갑니다"

[인터뷰] '사생결단식' 유경근 위원장 어머니 이세자씨 "젊은이들에게 미안"

16.08.29 20:27l최종 업데이트 16.08.29 20:27l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참사로 숨진 고 유예은(단원고)양의 할머니 이세자(73)씨가 29일 광화문광장에서 팻말을 든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23일부터 시위를 시작한 이씨는 '사생결단' 단식을 벌이고 있는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29일 오후 3시 30분, 서울 광화문광장. 짙은 주름의 할머니가 사람들이 지나는 횡단보도 복판에서 자기 몸보다 큰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노란 팻말 끝에는 "이 늙은 부모 마음 타들어갑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손녀를 구하러 간 국가는 구경만 하다 버리고 가고, 국회는 특조위 하나 못 지켜서 내 아들은 죽음을 건 단식. 이 늙은 부모마음 타들어갑니다."

팻말을 든 이세자(73) 할머니의 손녀는 세월호 참사로 숨진 고 유예은(단원고)양이다. 할머니는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며 '사생결단' 단식에 나선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같은 시각 유 위원장은 건너편 광화문광장 농성장에서 13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아들이 (내가) 밖에 다니는 걸 싫어해" 대중 앞에 서는 걸 꺼렸지만, 이 할머니는 아들이 단식을 시작한 이후인 23일부터 매일 광화문광장, 더불어민주당 당사 등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

이 할머니에게 말을 건네자, 그는 대뜸 "젊은 사람들에게 진짜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우리 노인네들이 잘못 살아서, 그게 누적돼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잖나"라고 말한 이 할머니의 목소리가 잠시 잠겼다. 목을 추스른 이 할머니가 말을 이어갔다.

"내가 왜 여기 서 있는 줄 알아요? 나 젊었을 때 노동자들 죽어 나간 일들, 그리고 장준하 사건이고, 한성호 침몰사건이고 듣기만 했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나랑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며 나 하나, 내 새끼만 편하면 되는 줄 알고 살았어요. 

이번(2012년 대선)에도 셋째 아들(유 위원장은 첫째 아들)이 '박근혜 후보 찍지 말라'고 그랬는데, 우리 아저씨(남편)랑 투표장 앞에서 '그래도 불쌍하잖아'라며 박근혜 후보 찍었어요. 그래서 얼마나…. 우리 아들한테도 '단식 그만하라' 이런 소리도 못해요. 내가 어떻게 무슨 자격으로…. 이런 상황이라 저는 사실 할 말이 없네요."

인터뷰를 하는 동안, 대학생 2명이 손에 물을 든 채 이 할머니에게 말을 걸어왔다.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학생들에게 이 할머니는 또 "젊은 사람들에게 죄송하다. 우리가 이런 사회를 물려줘서"라며 고개를 숙였다. 

추미애 만난 할머니 "난 죽어도 되지만, 우리 아들은 꼭..."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이 13일째 진행되고 있는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신임대표가 단식 중인 유가족들을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세월호 희생자 고 유예은양의 할머니를 만나 위로 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이날 이 할머니를 만난 시각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취임 첫날 광화문광장을 찾기 1시간 전이었다. 아들 유 위원장이 단식을 시작한 이유는 "무기력한 야당"을 탓하기 위해서다(관련기사 : 무기력한 야당의 약속 파기, 예은 아빠 "진상규명 막히면..."). 

추 의원의 방문 소식을 알리자, 이 할머니는 "정말 야당답게, 야당답게 좀 강하게 나가서 일을 해야지, 왜 그렇게 눈치만 보고 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얼마 전, 동조단식에 나선 한 더민주 의원이 '국회 선진화법 때문에 문제해결이 어렵다'라고 말해서, 제가 버럭 소리를 냈어요. 그럼 세월호에 탄 304명은 법대로 해서 죽였어요? 어디서 법을 따져요. 야당은 여소야대가 된 걸 알긴 아나요? 왜 국민들이 밀어줬는지 알긴 아나요? 그 의원이 '정권교체'를 이야기해서 제가 또 그랬어요. 그렇게 수더분하게, 회색빛으로 정치하면서 어떻게 정권교체 생각을 해요? 지금 봐서는 지지를 얻기는커녕 다 깎이게 생겼어요."

잠시 목소리를 가라앉힌 이 할머니는 추 대표를 향해 "자꾸 여당에 끌려다니지 말고, 그냥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이 원하는 것을 이뤄 달라"라고 호소했다.

이 할머니와 인터뷰를 마친 뒤, 곧이어 추 대표가 광화문광장을 찾았다. 분향소를 찾아 제단에 국화꽃을 올린 추 대표는, 이어 유 위원장을 비롯한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을 벌이고 있는 농성장을 찾아 "단식을 멈춰 달라"라고 요청했다. 추 대표는 "당 원내 차원에 머물던 세월호 대책위를 당대표 지휘 아래로 옮기고, 최고위원 한 분을 정해 지휘하도록 하겠다. 야3당과의 공조도 잘 이뤄 국회 차원의 대책이 서도록 하겠다"라며 이 같이 말했다.  

이에 유 위원장은 "저희의 요구사항에는 세월호 특조위 활동기간을 보장하기 위한 특별법 개정안 통과도 있다. 조금 더 기다릴 수 있다"라며 단식을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전했다. 유 위원장은 "추 대표와 더민주를 못 믿어서가 아니다. 오늘 이렇게 의지를 밝혀줬으니 당 차원의 노력을 믿는다"라며 "그 의지를 믿고,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앞으로 이야기를 나눠보자. 아직 튼튼하다. 걱정 않으셔도 된다"라고 정중히 거절했다.

농성장에서 일어난 추 의원은 동조 단식을 벌이고 있는 시민들을 만난 뒤, 여전히 팻말을 들고 서 있는 이 할머니를 찾아 포옹을 나눴다. 이 할머니는 "나는 죽어도 되니, 우리 아들은 꼭 살려 달라"라며 울먹였다.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이 13일째 진행되고 있는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신임대표가 단식 중인 유가족들을 방문해 세월호 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앞서 인터뷰에서 이 할머니가 한 말이 떠올랐다. 

"엄마로써는 아들이 걱정되지만, 아들이 정말 원하는 길이 정의로운 길이잖아요. 엄마에게 '단식 그만해라' 이런 소리할 자격은 없어요. 그저 단식하는 동안 관리 잘해서, 자기가 원하는 게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아들이 하는 일이 한 사람 개인의 행복이 아니라, 이 나라 전체 행복을 위한 것임을 알기 때문에, 지금은 뒤에서 적극 지원해주고 싶어요. 

어떨 땐 이런 생각도 들어요. 만약에 아들이 돈이 부족해 활동을 못한다고 그러면, 내 장기라도 팔아서 뒷돈을 마련해주고 싶다고요. 제 목숨이라도 걸고 싶다고요. 그동안 아들이 하는 일, 내가 많이 못 도와줬거든요. 너무 미안하고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야당 절대 강세지역 김천혁신도시에서 열린 사드 반대 촛불

 
국방부는 8월 25일 낮에 김천혁신도시에 위치한 한국도로교통공사와 한국전력기술공사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급작스럽게 사드 옹호 교육을 실시했다. 그러나 혁신도시에서 반대 시위는 더 커지
고 있다.
  1. 성주군이 국방부에 제3부지안 검토를 공식 요청하면서 김천이 사드레이더 영향권에 들어가게 되면서 촉발된 김천 지역주민들의 사드배치 반대 시위가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8월 28일 일요일 김천혁신도시 안산공원에서 열린 사드 반대 촛불집회에는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800 여명 이상이 참가했다. 농소면 주민들과 김천 다른 곳에서도 집회에 참가했지만, 절대다수는 김천혁신도시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참가한 젊은 부부들이었다. 

    김천혁신도시가 위치한 율곡동은 인구가 1만 3천 명(행정자치부 통계 8월 현재)인데 김천혁신도시의 유권자 성향을 보면 야당이 압도적인곳이다. 새누리당 일색인 TK지역에서 지난 총선에서 수도권 투표성향을 보여준 TK 지역내의 야권 절대 우위 지역으로 사드 배치 반대 시위도 반 새누리당 정서가 아주 강한 수도권 이주 주민들이 이끌고 있다.

    김천혁신도시가 속한 김천시 율곡동 투표구는 20대 총선 결과, 선거인 7천429명 가운데 4천481명이 투표에 참여해 53%의 투표율을 보인 가운데 정당투표에서 새누리당 28.7%(1천269표), 더불어민주당 25.5%(1천131표), 국민의당 27.4%(1천215표) 순으로 나타났다.

    새누리 28.7% vs 야당 52.9% (더불어민주당 25.5% +27.4%) 로 야당 절대 우세지역으로 앞으로도 혁신도시 이주민들의 투표 성향은 크게 바뀌지 않을것이고 인근 남면과 농소면 지역 그리고 김천 구 시가지역으로 투표성향이 바뀔것같다고 주민들이 전했다.

    기자가 집회 전에 김천혁신도시를 둘러보았을 때 혁신도시 지역의 사드배치 반대 분위기가 대단한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혁신도시 내에 있는 KTX 김천(구미)역 앞부터 시작해 곳곳에 사드 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파트 베란다 곳곳에 걸린 “사드 반대” 현수막이었다. 

    최근 전입신고한 한 탈북자가 붙였다고 전해지는 사드배치 찬성 현수막은 거의 철거되고 남아있는것도 주민들에 의해 훼손된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오늘 김천 혁신도시 집회에서는 성주로 시집온 지 1년 됐다는 새댁 우미애씨의 지원 발언도 있었다. 또한 농소면에서 온 주민들은 박근혜를 찍어주었더니 사드를 가져와서 주민들을 죽이려 한다며 울분을 토해내며 사드배치에 대해 갈팡질팡하는 지역출신 국회의원 이철우에 대해서도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제3지역 (성주 롯데스카이 골프장) 사드 배치를 빨리 추진하라는 성주군 출신 이완영 국회의원과 졸지에 사드 배치 폭탄을 맞게 된 김천 지역 출신 국회의원 이철우의 사드 배치 원점 재검토 요구로 새누리당 출신 두 국회의원간의 싸움도 새로운 국면을 맞고있다.

    집회를 마치며 주최 측은 29일부터 열리는 김천시청 앞 촛불 집회 참가를 호소하며 집회를 마무리했다.
  2. 사드배치 관련 일관성 없는 발언으로 정지적 곤경에 빠진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
  3. '그때 그때 달라요'…이철우 의원의 오락가락 사드 배치
     
    ·
    3 DAYS AGO
     
     
  4. 2007년 9월 20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첫 삽을 뜬 김천혁신도시는 현재 한국도로공사부터 한국건설관리공사, 교통안전공단,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농림축산검역본부, 국립종자원, 한국전력기술(주), 조달품질원 및 교육원, 우정사업조달사무소,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대한법률구조공단, 기상청 기상통신소 등 12개 기관이 이전 완료한 상태다. 

    김천지역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지방 분권화를 위해 만든 김천의 미래인 김천혁신도시를 박근혜가 죽인다" 는 말이 떠돌고 있으며 박보생 김천시장 김천시의원들의 새누리당 탈당을 요구했으며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의 삭발과 새누리당 탈당까지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5. 김천 혁신도시 아파트 단지들 베란다 곳곳에 걸린 “사드 반대” 현수막이 특히 인상적이다
  6. 최근 전입신고한 한 탈북자가 달았다는 사드유치 찬성 현수막이 찢겨져 있다.
  7. 종북척결 이라고 쓴 1톤 화물트럭이 혁신도시내에서 돌아 다니고 있다.
  8.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낙동강의 'MB 싱크홀', 함안보가 위태롭다

 
[4대강 청문회를 열자] 4대강 사업으로 국격 높인다더니...

16.08.28 19:57 | 글:이철재쪽지보내기|편집:박정훈쪽지보내기

4대강 사업, 그 뒤 5년. 멀쩡했던 강이 죽고 있습니다. 1000만 명 식수원인 낙동강 죽은 물고기 뱃속에 기생충이 가득합니다. 비단결 금강 썩은 펄 속에 시궁창 깔따구와 실지렁이가 드글거립니다. 혈세 22조원을 들인 사업의 기막힌 진실. '4대강 청문회'가 열리도록 '좋은기사 원고료 주기'와 '서명운동'에 적극적인 동참을 바랍니다. 이번 탐사보도는 환경운동연합, 대한하천학회, 불교환경연대,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공동 주최하고 충남연구원이 후원합니다. 4대강 특별취재팀의 활동은 페이스북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이명박씨는 재임 기간 유난히 '국격'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4대강 사업을 통해 국격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토부 장관을 지낸 권도엽씨도 "4대강 사업은 단순한 공사가 아니라 국격을 높이는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당신들 말처럼 4대강 사업이 정말 국격을 높였을까요?

건설사 CEO 출신인 만큼 이명박씨 본인이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대한민국이 '건설강국'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시공 품질 관리, 다시 말해 정밀 시공과 그에 대한 품질관리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보'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건설강국 코리아'아 아닌 '졸속날림 코리아'를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 창녕함안보는 2012년 6월 준공됐지만, 이후에도 거듭 보강공사를 벌여왔다. ⓒ 이철재

우선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4대강에 세워진 16개의 콘크리트 인공구조물을 '보'라고 하지만, 실상은 '대형댐'입니다. 국제대댐위원회(ICOLD) 대형댐 기준을 평생 건설업계에 몸담았고, 1990년대 붕괴된 연천댐을 직접 관리한 이명박씨가 모를 리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댐을 '보'라고 불렀던 것은 댐이 갖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회피하기 위한 꼼수였죠.

2011년 10월 '4대강 새물결 맞이행사'에서 이명박씨는 4대강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장면을 공영방송을 동원해 생중계까지 했고, 거의 모든 언론이 4대강이 새롭게 태어났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당신이 연출한 '억지 쇼'가 끝난 뒤 황당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4대강 사업의 핵심으로 건설된 보에서 물이 줄줄 세는 모습이 확인된 것입니다.

창녕함안보, 물속에 아파트 8~9층 높이의 MB 싱크홀

이를 두고 당신의 '아바타'들은 '물 비침 현상'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별일 아니다'. '보강 공사하면 문제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참으로 '웃픈(웃기면서 슬픈)' 상황이었습니다. "물이 세면 누수지 무슨 물 비침이냐"는 국제적 하천 전문가인 한스 베른하르트 교수(독일 칼스루헤 대학)의 지적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국제적으로 국격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망신을 당한 꼴입니다.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공사 전 진행해야 하는 수리모형실험을 공사 중에 하는 등 졸속 계획과 그에 따른 날림 공사로 벌어진 현상이었습니다. 또한 당신의 임기 안에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365일 24시간 공사를 하다 보니 정밀 시공이 될 수 없었습니다. 풍수기, 혹서기, 혹한기는 공사를 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지만, 당신과 '이명박 아바타'들에게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 가톨릭관동대 박창근 교수팀은 창녕함안보 하류에서 에코사운딩 장비로 수심 변화를 측정했다. ⓒ 이철재

4대강 특별취재팀은 지난 26일 오전 낙동강 창녕함안보를 찾았습니다. "원래 문제가 많았다"는 것이 현장에서 에코사운딩이라는 장비로 수심 변화를 측정하고 있는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교수의 지적입니다. 함안보는 2012년 준공했지만, 심각한 상태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공사를 했기에 이런 상태가 된 것일까요?

함안보 하류 물받이공(보 시설 보호를 위한 콘크리트 구조물) 앞에는 아파트 8~9층 높이에 해당하는 23m의 구덩이가 파였습니다. 원래 수심 6m까지 고려하면 29m로서, 길이 700m, 너비 300m에 이릅니다. 함안보의 수문을 열었을 때, 물의 힘에 의해 바닥이 파여 나가는 현상, 즉 세굴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이런 내용은 감사원과 총리실 산하 4대강조사평가위원회에서도 지적됐습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처장은 "쉽게 말해 물속에 싱크홀이 생긴 것"이라 말합니다. 이른바 'MB 싱크홀'의 탄생입니다. 국토부 및 수공 등도 이러한 상황을 알고 4~5차례 보강 공사를 했습니다. 더 이상의 세굴을 방지하기 위해 사석을 투입하기도 하고, 콘크리트 이불이라 할 수 있는 SPF(섬유 매트리스) 공법을 도입하기도 했죠. 

지난해 5월에는 평균 무게 3톤에 달하는 바위 6만여 개를 물속으로 넣기도 했습니다. 야산 하나를 통째로 캐서 투입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습니다. 보강 공사가 이것으로 끝일까요? 불행한 것은 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박창근 교수는 "올해 비가 얼마 오지 않아 그렇지 조금 큰 비가 오면 바위들도 유실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함안보, 재시공하거나 철거하거나
 
▲ 박창근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2015년 창녕함안보 보강 공사에는 평균 3톤에 달하는 바위 6만 여개가 투입됐다고 한다. ⓒ 이철재

함안보 상류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상류에는 깊이 15m 가량의 '깔대기' 모양의 물속 싱크홀이 생겼다는 것이 박창근 교수의 조사 결과였습니다. 상류 싱크홀은 모래가 하류로 빠져나가면서 생기는 현상, 즉 파이핑 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지적입니다. 이를 두고 4대강조사평가위원회에서는 '용솟음 현상'이라 말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함안보의 현재 상태가 결코 안전할 수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함안보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징조들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박창근 교수는 "함안보가 당장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부실 징조가 여러 곳에서 보인다, 큰 홍수가 왔을 때 보가 밀리거나 주저앉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박재현 인제대 교수는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면서 "공학적 측면에서 (위험)징조들이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함안보는)사상누각과 비슷한 상태"라는 진단입니다. 박재현 교수는 함안보를 보강해도 문제가 계속 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왜냐면 설계 자체가 부실했기에 말입니다.

이어 "보 기능을 계속 유지하려면 재시공 수준으로 하지 않으면 힘들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없앨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습니다. 함안보를 재시공하려면 수천억 원의 혈세를 다시 투입해야 하는데, 이를 고려하면 철거하는 것이 더 낫다는 입장입니다.
 
▲ 창녕함안보 하류에는 최대 깊이 23m의 세굴 현상이 발생했고, 그에 따른 보강 공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 이철재

이런 부실은 앞서도 언급했지만, 설계부실 때문입니다. 더 근본적인 것은 이명박씨의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은 4대강 사업을 본인의 임기 내 완공하려고, 합리적 문제 지적은 '반대를 위한 반대'로 몰아 세웠습니다. '좌파들의 상투적인 전술'이라는 색깔론까지 들고 나왔습니다. 이러한 비상식과 자신만을 위한 욕망이 4대강을 망쳤고 대한민국을 망쳤습니다.

상황이 이러기에 4대강 청문회에 당신을 모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4대강 사업에 대해 '셀프 칭찬'으로 일관하지 말고 국민을 우롱한 책임과, 혈세를 낭비한 책임을 청문회를 통해 스스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더 큰 우를 범하지 않는 길이기도 합니다.

4대강 독립군은 4대강 사업 완공 이후 만 4년 동안 어떤 피해가 있는지 온몸으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우리 강이 어찌 썩은 저수지처럼 망가졌는지 갑갑한 심정입니다. 4대강 독립군은 우리 강이 진정으로 독립(Free)할 때까지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에 따른 도움을 요청합니다. 독립군 활동자금을 보내 주십시오. 그리고 4대강 청문회 청원에 서명해 주십시오.

우리 강의 독립을 위해서 말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와 평화공존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08/29 08:37
  • 수정일
    2016/08/29 08:3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칼럼>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 원장
전현준  |  tongil@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6.08.29  00:17:07
페이스북 트위터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정세가 한반도 날씨만큼이나 급변하고 있다. ‘떠오르는 태양’인 중국의 굴기를 두고 이를 제어하려는 미국과 일본의 몸부림은 7월 8일 갑작스런 남한 내 사드(THAAD) 배치로 나타났다. 4강으로 둘러싸여 생존을 위해서는 신중한 대외정책을 구사해야 할 남한이 갑자기 사드를 배치한 것은 의외였다.

‘배신당한’ 중국이 아직까지는 문화적 수단을 통해 남한을 옥죄이고 있지만 언젠가는 경제적 수단을, 최악의 경우 군사적 수단까지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남한의 ‘배신’을 제어하지 못하면 미국, 일본은 물론,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몽골, 미얀마 등 수 많은 약소국들이 중국에 대들 것이 뻔하기 때문에 중국은 ‘시범케이스’로 남한을 굴복시키려 할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가까워서 군사적 압박을 강하게 받는 것 외에 경제력의 25% 정도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남한으로서는 큰 압박이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사드문제가 이렇게 빨리 시슈화 될 줄 몰랐다. 남한은 사드배치 문제를 카드로 미·중 등거리 외교를 통해 최대한의 국익을 창출하리라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동북아 정세는 남한 내 사드배치 문제를 중심으로 ‘한·미·일 대(對)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우리로서는 반드시 피해야 할 국제정치적 역학구도이지만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 경천동지할 사건이 벌어졌다. 8월 24일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의 ‘완벽한’ 성공이 그것이다. 그 동안 네 차례의 SLBM 실험 결과에 대해 군사전문가들은 실전배치까지는 4~5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북한은 그러한 예측을 ‘조롱하듯이’ 빗나가게 만들었다.

바다의 어느 곳에서든 미군시설을 공격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북한의 지대지 미사일 방어를 위해 도입하기로 한 사드 배치는 배치이유를 상실하게 되었다. 남한은 물론 미국, 일본 등도 대북 군사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 환경이 발생했다. 아마도 미국과 일본은 보다 더 공세적인 대북 군사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남한, 미국, 일본 등은 북한의 SLBM 방어를 위해 사드는 물론 이지스함, 핵잠수함 등을 한반도 주변에 배치할 것이고 중국과 러시아는 이를 견제하기 위해 경제적, 군사적 수단을 강화할 것이다. 남한은 이러한 군비경쟁의 파고 속으로 자의건 타의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2016년 국방비는 38조원에 이르렀지만 향후 국방비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드 1기로는 한반도를 방어할 수없기 때문에 2~3기는 더 구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중국은 남한, 미국, 일본의 군사력 증강에 맞서 중국·러시아 간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사드를 무력화할 수 있는 미사일은 물론, 항공모함을 포함한 이지스함, 각종 스텔스 폭격기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 틈새에서 북한은 북한대로 최첨단 군비 개발에 나설 것이고 이것은 또한 남한의 군비증강을 촉발시킬 것이다. 악순환의 ‘판도라 상자’가 열린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UN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이 고리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시 전쟁의 참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중국과 일본은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이 많은 국가들이었다. 우리에 대한 외침이 1,000여회 정도가 있었는데 중국과 일본이 500회씩 반분하고 있다. 1592년 임진왜란, 1894년 청일전쟁 때처럼 우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한반도를 두고 중국과 일본 간에 언제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 물론 아직 중국이 그럴만한 힘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우’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을 우리는 유념해야 한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이미 마음속으로는 한반도를 중국 영토내에 편입시켜 놓고 있다. 일본은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북한의 도발을 빌미로 언제든 한반도를 선제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은 최악의 경우에 일본편을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1905년 미국은 한반도를 자신의 보호막 밖으로 밀어낸 전력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헌팅턴(S. Huntinton)은 일찌감치 한국을 중국 중심의 중화문명권으로 편입시켜 놓았다.

정책당국자들은 우리민족의 안보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깊이 있고 신속하게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조선시대까지 주로 중국에 편승(bandwagoning)해서 안보를 유지했다. 중국과의 ‘조공책봉 외교’를 통해 우리의 삶의 터전을 지켜왔다. 이로 인해 중원의 중국이 약화되면 우리는 상상도 못할 피해를 봐야 했다.

물적 피해는 물론 인적 피해는 참담한 지경이었다. 특히 여성들의 피해가 극심하여 ‘환향년’, ‘성노예’ 등의 용어가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지경이다. 우리의 안보를 지켜주겠다던 일제가 패망하면서 우리 민족은 분단되고 말았다. 지금은 미국에게 편승하여 안보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역사적 교훈은 우리 민족의 안보는 우리 민족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 스스로 안보를 지키려면 민족의 단합이 첫째 조건이다. 민족분열은 필연적으로 외세를 불러들여 오게 된다. 남북분단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외세가 우리 민족을 농락하고 있는가?

따라서 민족통일은 필수이다. 통일이 되면 통일국가의 국력은 독일, 프랑스, 영국, 터어키, 이란 등에 버금가는 국가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통일은 쉽지 않은 과제이다. 당장 통일하기에는 남북한이 너무 멀리 벌어져 버렸다. 그 간극을 좁히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방해세력도 너무 많다.

남북 간 전쟁을 피하는 길은 남북한 평화공존이다. 현실적으로 ‘북한 붕괴 및 흡수’나 ‘남한 적화’는 불가능하다. 혹자는 최근 고위탈북자가 증가한 것을 두고 북한붕괴가 임박하여 곧 통일이 올 것처럼 진단하지만 ‘연목구어’이다. 1990년대 이후 김정민, 고영환, 현성일, 황장엽, 장승길, 성혜랑, 이한영 등 최고위층 및 로얄패밀리까지 탈북했지만 유일체제는 건재하고 있다.

북한체제가 건재한 이유는 강한 통제로 대안세력이 없는 것도 한몫 하지만 6.25전쟁으로 인한 ‘미국 공포심’과 이후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 등으로 인해 ‘미국 공포심’이 ‘김정은 공포심’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승냥이 공포심’은 남한의 ‘빨갱이 공포심’을 추월한다.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북한붕괴를 정말 원한다면’ 미국과 남한의 대북 정책 전환을 통해 북한의 ‘대미공포심’을 약화시키는 것이 필수이다. 그리고 남한체제의 북한체제에 대한 절대적 우위로 인해 북한의 ‘적화통일’또한 불가능하다. 북한도 ‘정말 적화통일을 원한다면’ 대남 정책 전환을 통해 남한의 ‘빨갱이 공포증’을 약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두 가지 모두 기대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북한은 SLBM까지 보유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 안보문제에 대해서는 한숨 돌렸을 것이다. 남한으로서는 비록 북한이 핵무기와 SLBM을 보유했다손 치더라도 한미연합전력으로 얼마든지 제어해 낼 수 있다. 안보적 균형이 어느 정도 달성된 상황에서 남북한이 해야 할 일은 어느 강대국의 논리에도 놀아나지 않는 민족자주적 평화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민족자주라고 해서 주변국과 완전히 결별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남북한이 직접 만나 상호 평화공존을 약속하고 이것을 남북한이 주변국에 설명하여 동의를 얻어 내는 것이다. 특히 남북한이 ‘북한 핵개발 중지’와 ‘남한 한미합동군사훈련 중지’를 합의하고 이것을 주변국으로부터 추인을 받는 것이다.

기존의 ‘2+4 체제’이지만 하수상한 정세하에서 남북한이 외세에 의한 전쟁을 예방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임으로써 한반도 평화를 유지해보자는 일개 학자의 외침이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 원장)

   
 

1953년생으로서 전남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북한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통일연구원에서 22년간 재직한 북한전문가이다.
2006년 북한연구학회장 재직 시 북한연구의 총결산서인 ‘북한학총서’ 10권을 발간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 동안 통일부 자문위원, NSC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고려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민화협,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였다.
현재는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는 「김정일 리더쉽 연구」, 「김정일 정권의 통치엘리트」, 「북한 체제의 내구력 평가」, 『북한이해의 길잡이』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무명전사정신 되새긴 김승교 열사 1주기 추모제와 추도식

무명전사정신 되새긴 김승교 열사 1주기 추모제와 추도식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08/29 [03:4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7일 고려대 민주광장에서 진행된 고 김승교 자주통일열사 1주기 추모문화제 노래패 우리나라 추모공연     © 자주시보

 

▲ 27일 고려대 민주광장에서 진행된 고 김승교 자주통일열사 1주기 추모문화제가 모교 고려대학교 민주광장에서 많은 추모객들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 27일 고려대 민주광장에서 진행된 고 김승교 자주통일열사 1주기 추모문화제에서 추모의 편지를 낭독하는 아내 황정화 변호사     © 자주시보

 

▲ 27일 고려대 민주광장에서 진행된 고 김승교 자주통일열사 1주기 추모문화제에서 대학 동지인 손병희 가수가 '쿠바를 떠나며'를 열창하고 있다     © 자주시보

 

▲ 27일 고려대 민주광장에서 진행된 고 김승교 자주통일열사 1주기 추모문화제에서 박성환 가수가 노래 '개울'을 열창하자 추모객들이 핸드폰 불빛을 밝히며 함께 뜨겁게 호응하고 있다.     © 자주시보

 

▲ 김승교 열사 1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이정희 대표와 최창준 전 민주노동당 통일위원장 등 김승교 열사의 벗들    © 자주시보

 

27일 고 김승교 자주통일열사 1주기 추모문화제가 모교 고려대학교 민주광장에서 많은 추모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민족민주운동진영의 원로인사, 동료 변호사, 대학 동료, 관계단체 성원들과 김승교 변호사가 그토록 아꼈던 청년학생들과 많은 아이들까지 참여하였다.

 

추모문화제는 그의 생의 마지막 투병과정에 남긴 유지를 형상화한 극과 노래 그리고 유가족들, 동지들의 편지 낭독 등으로 진행되었다.

 

무대에 나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김승교 열사의 열열한 자주통일 실현을 위한 헌신적인 삶을 추억하고 그가 늘 강조했던 무명전사정신을 이어받아 하루라도 조국의 통일을 앞당겨 그의 염원을 꽃피우자고 호소하였다.

 

▲ 28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진행한 김승교 열사 1주기 추도식      © 자주시보

 

▲ 28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진행한 김승교 열사 1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많은 지인들    © 자주시보

 

▲ 28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진행한 김승교 열사 1주기 추도식장 앞에 쓰러지면서 기어이 보랏빛 꽃을 피워올린 무릇꽃     © 자주시보

 

▲ 28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진행한 김승교 열사 1주기 추도식에 추모객들에게 뜨거운 인사를 전하는 아내 황정화 변호사     © 자주시보

 

28일 일요일엔 마석 모란공원 김승교 열사 묘소에서 1주기 추도식을 진행하였다.

 

김승교 열사가 그토록 강화하고자 혼신을 다했던 통합진보당의 색깔과 똑같은 보랏빛 무릇꽃이 지천으로 피어난 마석 모란공원 김승교 열사 묘지에 아내 황정화 변호사 등 가족과 그가 몸담았던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민권연대 성원들, 이정희 전 대표를 비롯한 통합진보당 관계자들, 청년학생들 등 많은 이들이 참석하여 그 묘소에 헌화와 예를 올리고 다시 한 번 김승교 열사의 뜨거운 삶을 되돌아보며 내년 대선승리로 조국통일의 돌파구를 기어이 열어나가겠다는 각오와 결의를 다졌다.

 

특히 통합진보당의 중요 간부였던 김창현 전 울산 동구청장이 참석하여 "김승교 열사는 인권변호사이자, 열렬한 통일운동가였고 민중이 주인된 새날을 개척하는 혁명가였다"며 그의 뜻을 이어 모두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새날을 하루빨리 안아오자고 호소하였다.

 

아내 황정화 변호사는 추도사 중에 "팥죽과 콩국수를 좋아했던 남편이 늘 곁에 있는 것만 같아 영영 떠났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내가 잘 해주지 못해 그렇게 일찍 간 것 같다. 너무나 괴롭고 힘든 나날들이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격려해주고 얘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김승교 변호사가 살아있다면 바쁜 동지들의 시간을 내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렸겠지만 주변 사람들의 위로가 지금은 너무나 큰 힘이 되고 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며 눈물젖은 인사말을 전했다.

 

추도식 참석자들은 김승교 열사의 뜻을 이어 자주통일 조국 건설을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하며 엄숙히 예를 올렸다.

 

▲ 김창현 전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 동구청장의 추도사  모습    © 자주시보

 

▲ 28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진행한 김승교 열사 1주기 추도식에서 결의의 구호를 외치는 추모객들     © 자주시보

 

▲ 아이들도 김승교 열사를 추모하는지 하얀 망초꽃 묶음을 들었다. © 자주시보

 

▲ 추도식을 마치고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윤기진, 황선 씨 둘째 윤겨레 어린이가 고모랑, 사촌 동생이랑 승교 삼촌 묘지 잔디를 쓸어만지며 "또 올께요"라고 몇번이나 인사를 하는 모습, 김승교 열사는 유난히 동지들의 아이들을 예뻐하였다. 하기에 동지들은 김승교 열사의 자녀들을 또한 잘 자라도록 깊은 관심을 돌린다. 보기 드문 김승교 열사와 벗들의 뜨거운 동지애를 이것만 봐도 잘 느낄 수 있다.     © 자주시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피고인 이필립 최후 진술서

피고인 이필립 최후 진술서

 

6년전쯤 대구경찰청 보안2과 류형태 경장과 그 일행8명이 한 달 간격으로 서너차례씩 출장조사를 하러 서울 남대문경찰서신촌홍제동 골방조사실로 아침9시쯤 불러 하루에 여섯일곱시간씩 조서작성을 할 때만해도 별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지요그런데 3년전 서울경찰청 보안2과 유재명 경사 일행 10여명이 가택압수수색영장을 가지고 창천동 5층 전셋집 내 방을 아침 8시쯤 급습하여 발칵 뒤집어 놓을 때조금은 문제가 되는가 싶었습니다그러나 기본적으로 저는 지금 이 법정에서 다뤄지는 문제들이 제가 형사처벌을 받아야 할 정도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하지 않습니다왜냐하면 저는 선량한 민주시민이고 언론운동가평범한 사람으로 한글학회 특별회원언론연대민언련 등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는 늙은 언론인으로 살고 있는 3남매의 아버지로 가난하지만 성실히 못된 짓 하지 않고 그런대로 열심히 살아갈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1심 판결이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집행유예 2년으로 내려졌을 때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요고무 찬양을 했으면 얼마나 북조선을 유익하게 했고도움이 됐으며우리 사회에는 얼마나 큰 피해가 났다는 것인지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저는 아직도 뭘 위반하고 위법행위를 했는지감을 못 잡고 있는 얼간이처럼 여짓껏 분명하고 뚜렷한 범법행위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 있습니다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자는 것이외세로부터 벗어나 자주적인 나라가 되기를 소망한 것이 그토록 죄가 된다는 것인지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서 우리 민족끼리 외세의 간섭과 주장을 벗어나고 거부하면서자주 자립 자유 민주주의를 실현하면서 분단 71년을 지내야 하는 한 핏줄 한겨레 한민족이 어떻게 하면 서로 돕고 대화하고 서로 부둥켜안고전쟁하지 말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는 그런 기사 그런 내용을 골라가며 퍼 올리는 것도 잘못이라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차라리 당분간은 북한 기사는 건들지도 말고 겉돌면서 평화통일 이야기는 섞지도 하지도 말면서 살다가 죽어야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습니다얼마를 더 살다가 세상 떠나려고 금강산도 한 번 못 가본 늙은이가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못 벗어나서 쩔쩔매다가 쓸쓸이 세상을 떠났다고 하면 얼마나 불쌍한 일이 될 지요피고인 최후진술에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이제 남북이 갈라진지 일흔 한 해가 됐으니모든 것 내려놓고 우리민족끼리 다정다감한 이야기나 덕담은 눈치 보지 말고 허물없이 서로 나누는 사이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평화통일에 밑거름이 되고 민족자주통일에 도움이 되는 민간교류부터 자유롭게 이루어지고개성공단도 원상회복되고 금강산관광도 다시 풀려서 죽기 전에 한번 다녀왔으면 소원이 하나 줄어들 것 같습니다.

 

끝으로 증인 신학림 미디어오늘 사장은 언론운동진영의 평생 동지로서 지금도 언론활동을 하고 있는 쟁쟁한 투사요 현역 언론인입니다여러 면을 참조하시고 감안하셔서 슬기롭고 지혜로운 판결을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고맙습니다이만 마치겠습니다.

 

2016년 826일 피고인 이필립.

 

 

 

<댓글> : 귀뚜리(트윗터)와 얼굴 숲(훼이스북)에 827일에 올린글.

 

 

[이필립 2심 네번째 공판소식] : 증인 신학림 미디어오늘 대표의 발언피고인 최후진술변호인 이광철 변론이 끝나고선고는 1014일 금요일 14시 서관 제303호로 결정없어졌어야 하는 국가보안법(고무찬양 등)이 아직도 가슴아프게 하네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백악관 앞에서 ‘사드 말고 평화! 사드 말고 남북대화!’

 
 

백악관 앞에서 ‘사드 말고 평화! 사드 말고 남북대화!’
-미주 동포 ‘성주 사드 반대 전국 촛불대회’ 연대 시위
-미주 양심수후원회, 가톨릭워커 등 참가
-지난 7월부터 5번째 시위, 외신들 취재 열기도

이하로 대기자

DC3

백악관 앞에서 사드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미주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회원들과 ‘Catholic Worker’ 활동가들.

성주에서 시작된 사드 반대 촛불이 대구 경북 등 전국 50여 곳에서 타오른 8월 26일(금) 사드 배치의 중심 미국 백악관 앞에서도 고국의 상주 군민들을 지지하는 미주 동포들과 미국 시민단체의 사드 반대 연대시위가 열렸다.

수은주가 90도 후반까지 치솟는 맹렬한 폭염 속에도 백악관 앞에서 열린 이번 연대 시위에는 ‘미주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와 현지 반전 평화단체 가톨릭 워커(Catholic Worker) 회원 등 2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주말을 맞아 전 세계에서 백악관을 찾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열띤 홍보전을 펼쳤다.

이들의 열띤 홍보전에 관광객들을 지대한 관심을 표명했고 참가자들은 이들에게 사드 배치와 한미군사훈련(UFG, 을지 프리덤 가디언)으로 인한 한반도 전쟁위기에 대한 설명과 함께 유인물을 배포하며 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날 시위에는 이번 시위에는 가톨릭 워커의 아트 래핀(Art Laffin)씨와 함께 제주 해군 기지 반대투쟁에 참여한 바 있는 같은 단체의 샌프란시스코 지부 회원 루크 한센(Luke Hansen)씨 외 10여 명의 반전 평화 활동가들이 참여하였으며 이라크의 루다우 통신사(Ludaw News Agency) 및 지역 대학(Suffolk County Community College) 신문사 관계자 등이 취재를 벌였다.

루다우 통신의 이마드(Imad) 씨는 이라크, 터키, 쿠르드 족 내부의 친미 세력들을 배후 조종하여 이 지역에 전쟁과 민간인 대량학살을 일으켰던 장본인 미국을 규탄하는 한편 최근 미국이 한반도에서 조성하고 있는 전쟁 위기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지속적인 취재 및 정보 교환 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미국의 중남미 민중 정권에 대한 체제 전복 테러 및 내전 개입에 대하여 비판 활동을 펼쳐온 루크 한센 씨는 <작계 5015>의 내용이 미국이 그동안 니카라구아,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쿠바 등 국가들에 자행해온 불법적 침략행위의 종합 백화점이라고 일일이 열거하며 규탄하기도 했다.

또한 일부 파키스탄 출신 행인은 배너를 들고 시위대에 동참하는 등 외국인들의 참여 열기도 뜨거웠다.

DC1

사드 반대 시위를 취재하고 있는 루다우 통신의 이마드(Imad) 씨

이날 시위에 참가한 양심수 후원회의 워싱턴 DC 거주의 앤지 김(Angie Kim, 여 미주 양심수후원회 워싱턴 DC 지부 회원) 씨는 “미국과 그 하부 동맹인 박근혜 정권은 사상 최대의 한미군사훈련을 벌이며 한반도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 가운데 북의 SLBM (핵잠수함미사일발사) 실험 성공으로 사드가 무용지물임이 입증되었다”며 “미국 예산에 사드 한국 배치에 관한 예산은 책정되지 않아 실질적으로 사드 한국 배치에 소요되는 비용마저 한국 국민들의 고혈로 충당이 되지 않나 생각되는데 과연 이렇게 국민들의 혈세를 한반도 전쟁놀음에 사용해도 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김 씨는 “사드 반대 없이 정권교체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허상”이라며 “미국은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정권을 세우려 할 것이고 새로 들어서는 한국 정권이 친 사드 정권인지, 반 사드 정권인지가 한반도 평화와 민주주의에 있어 중요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양심수 후원회 LA 지부 회장은 “성주군민들이 다 들고 일어났는데도 야당은 사드반대 당론조차 못 정하고 여소야대 정국에서도 여전히 새누리 이 중대 노릇만 하면서 정권교체 타령만 하고 있으니 한숨만 나온다”며 “믿을 건 분노하고 단결된 민중의 힘뿐임을 성주군민들의 투쟁에서 다시 한 번 느낀다”고 말했다.

‘미주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의 이번 시위는 한반도 사드 배치 발표 이후 5번째 시위로 특히 성주 군민들의 시위 이후 성주 군민들과 연대의 뜻을 강력하게 표하며 연대 시위를 벌여나가고 있다.

DC2

사드반대 유인물을 관심 있게 읽어보고 있는 현지인

‘미주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는 지난 7월 15일 백악관 앞 시위 이후 펜타곤, 백악관 등을 오가며 시위를 벌여왔다.

‘미주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는 지난 13일에 열린 사드반대 연대 시위에도 “민족 대단결 연석회의로 싸드 배치 막아내자” 라는 구호가 쓰인 배너를 들고 참여하는 등 지속적인 사드반대 투쟁을 전개해 오고 있다.

‘미주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는 올 2월부터 ‘한반도 전쟁 반대 및 평화협정 100일 투쟁’을 이어왔으며 이후 키리졸브, 천안함 6주기, 탄저균, 핵정상회담 반대 투쟁을 이어 오던 중 한반도 사드 배치 발표 후 사드 배치 반대 투쟁으로 전환하여 현지 반전단체들과 강력한 연대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이 연대 투쟁에는 미국의 ‘Catholic Worker’, ‘Answer Coalition’, ‘Code Pink’, PSL , 코리아 연대, 미 녹색당 등이 사안에 따라 꾸준히 참여하는 등 국제적 연대도 넓혀지고 있다.

[저작권자: 뉴스프로, 기사전문 혹은 일부를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십시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나눔에 나중은 없다, 바로 지금 당장

나눔에 나중은 없다, 바로 지금 당장

황창연 신부 2016. 08. 25
조회수 933 추천수 0
 
q1.jpg» 기업 이윤을 사장부터 말단직원까지 똑같이 나누는 그래비티 페이먼트 회사 직원들.
 
지금은 ‘서울 디지털 산업단지’라는 화려한 이름으로 탈바꿈한 구로공단은 1960년대 수많은 노동자들이 땀과 눈물로 청춘을 바쳤던 한국 수출 산업의 현장입니다.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건강을 잃으며 밤낮없이 일하는 노동자를 대변하여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 열사가 목숨을 내걸고 말했습니다.
“더 이상은 이렇게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살 수 없다.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해달라.”
그때 경영자들과 정치인들은 뭐라고 했나요?
“지금은 우선 나라가 잘살아야 하니, 노동자에게는 나중에 돈 벌면 나눠줄게.”
‘나중에, 나중에……’라며 미루는 동안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비참해졌지만 정부는 기업 중심 정책을 밀고 나갔고, 노동자의 땀과 눈물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지금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촛불은 불을 나눠도 빛이 약해지지 않는다
 
2016년 8월 현재, 우리나라 시간당 최저임금은 6,030원입니다. 한국과 경제 규모가 비슷한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1만 원, 우리보다 조금 잘사는 프랑스는 1만 1,000원, 독일은 1만 2,000원입니다. 미국은 모든 주마다 최저임금제가 다르게 실시되는데, 뉴욕의 경우 2016년 현재 시간당 9달러인 최저임금을 2019년까지 15달러(약 1만 7,000원)로 인상할 것을 최종 결정했습니다.
시간당 최저임금이 6,030원이면 100만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한 달을 살라는 뜻입니다. 여유 있는 삶은 고사하고 입에 풀칠하기도 힘겹습니다. 재벌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비축하고 있으면서 노동자들을 위한 지출은 외면합니다. 가진 자들은 애초부터 노동자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 마음이 없어 보입니다.
 
다 같이 잘살아야 합니다. 거대기업 몇 개만 잘된다고 국민 전체가 잘사는 것이 아닙니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 개의 촛불로 많은 촛불에 불을 붙여도 처음 촛불 빛은 약해지지 않는다.”
나눈다고 해서 적어지거나 소멸되지 않는다는 뜻이고, 오히려 빛을 나눔으로써 세상은 더 환해진다는 뜻입니다.
 
부자들의 세금으로 모든 국민이 혜택을 누리는 곳이 북유럽 국가들입니다. 독일의 경우 최저임금을 올리니까 노동자들이 소비를 많이 하고, 기업은 물건이 잘 팔려 자본 회전이 잘되니 나라 경제 여건도 덩달아 좋아졌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와는 정반대입니다. 경기 흐름이 좋지 않을 거라는 예상으로 임금을 동결하고 돈을 풀지 않으니 노동자들은 쓸 돈이 없고, 소비를 안 하니 경제가 활력을 잃고, 기업은 물건을 팔 수 없어 도산 위기에 처하는 악순환을 거듭합니다. 탈무드의 촛불 이야기가 주는 교훈을 너나없이 되씹어야 할 오늘입니다.
 
지금까지 돈 쓴 일 중에서 제일 잘한 일
 
댄프라이스.png» 그래비티 페이먼츠 CEO인 댄 프라이스.
기업 이윤을 사장부터 말단직원까지 똑같이 나누는 회사가 있습니다. 미국 시애틀에 있는 그래비티 페이먼츠(GravityPayments)라는 이름의 신용카드 결제 서비스를 하는 기업입니다. 창업자이며 CEO인 댄 프라이스는 서른 살이던 2015년 전 직원의 최저 연봉을 7만 달러로 맞추기 위해 자신의 연봉을 100만 달러에서 90퍼센트 삭감하여 10만 달러로 하고, 나머지 90만 달러는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로 했습니다.
 프라이스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2011년 어느 날, 댄 프라이스가 휴식시간에 직원 한 명과 나눈 대화가 발단이었습니다. 댄 프라이스는 직원에게 인사말로 잘 지내느냐고 물었습니다. 당시 연봉이 3만 5,000달러였던 이 직원은 사장 면전에서 퉁명스럽게 대꾸하더랍니다.
“내 연봉을 당신이 다 빼앗아가서 행복하지 않아요.”
뜻밖의 말에 충격을 받은 그는 자신의 회사부터 소득 불균형 문제를 바로잡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는 연봉을 많이 올려줄수록 직원들이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매년 평균 15퍼센트씩 연봉을 인상했습니다.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행복해하는 직원들에게 댄 프라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자본가인 내가 시장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껏 제가 돈 쓴 일 중 제일 잘한 일입니다.”
댄 프라이스는 직원들을 돈 주고 부리는 소모품으로 여기지 않고, 함께 행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평등을 넘어서 미래를 함께하는 공생의 관계였던 것입니다.
평균연봉 4만 8,000달러에서 최저연봉 7만 달러로 직원들의 임금을 올린 그래비티 페이먼츠 회사는 1년이 지난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일부에서는 악담을 퍼부으며 망할 거라고 했는데, 고객은 55퍼센트 증가했고 수익은 350만 달러에서 650만 달러로 늘어났으며, 높은 임금 덕분에 직원들은 회사가 있는 시애틀이나 근교로 이사 와서 통근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최고경영자의 나누겠다는 결심으로 모두 다 잘사는 세상을 실현한 것입니다.
우리가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선진국의 기업문화에서 인간존중 사상이 상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혁명에서부터 시작한 민주주의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인들의 열망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적 가치를 가장 근본적으로 일깨워주었고 그때부터 모두가 존중받아야 할 존재이며, 서로를 아끼고 가진 것을 나눠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줄기차게 믿어왔던 것입니다.
05479297_P_0.JPG» 인간이 자연과 함께 공존하며 자급자족하는 공동체를 꿈꾸는, 강원도 평창 성 필립보 생태마을의 대표 황창연 신부가 생태마을의 황토방에서 발효시키고 있는 메주들 사이에서 환히 웃고 있다.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제가 살고 있는 평창 성 필립보 생태마을에는 40여 명의 직원이 함께 일합니다. 월급을 주는 원칙을 제가 정했는데 최저와 최고의 월급 차이가 두 배 이상 넘지 않습니다. 가령 관리책임자 월급이 500만 원이면 신입사원 첫 월급은 250만 원이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그래서인지 서로 위화감 없이 평화롭게 일들을 합니다. 생태마을 직원들은 그간의 수고에 대한 포상 차원에서 3년에 한 번 보너스로 단체 해외여행도 합니다.
나중에, 더 잘살게 되면……. 이런 핑계로 미뤄서는 언제까지고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없습니다. 나부터 오늘 당장 주변을 돌아보며 나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바로 시작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친일청산’ 제대로 됐더라면 박근혜, 대통령 못됐을 것”

 

[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83]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이영광 기자  |  kwang3830@hanmail.net
 

지난해 독립언론 <뉴스타파>에서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친일파 후손들의 삶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4부작 ‘친일과 망각’을 방송했다. 당시 유튜브 조회 수 13만 회를 넘길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이에 부응해서일까? 1년이 지난 8월 7일 이 다큐멘터리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책에는 방송에서 담지 못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다큐멘터리가 평면적이었다면 책은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출간 뒷이야기가 궁금하여 지난 22일 서울 정동에 위치한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심인보 기자를 만났다.

심 기자는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기대 이상으로 책이 잘 팔리고 있다”면서 “지난해 방송을 했을 때 상당히 많은 분이 보셨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못 보신 분이 많은 것 같고 방송을 보셨던 분이라도 책과 다큐멘터리는 다르다고 생각하셔서 책을 사시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고 반응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다큐멘터리가 책으로 출간되는 건 이례적이다. 이에 심 기자는 “뉴스타파는 초창기부터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취재나 작업을 여러 번 해왔는데 그것들을 제대로 기록으로 남겨두지 못했다는 생각이 있었다. ‘친일과 망각’을 할 때는 처음부터 출판을 염두에 두고 기록을 충실히 하자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더불어 심 기자는 “과거 70년 전에 역사가 뒤틀렸고 그로 인해 우리 사회에 셀 수 없이 많은 부정적인 효과가 누적되고, 그게 누적되어 만들어진 구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고통 받고 있다”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70년 전으로 돌아가 그걸 바로잡을 수는 물론 없지만 적어도 잊지는 말자”는 메시지를 책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다음은 심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뉴스타파> 심인보 기자 ⓒ 이영광

- 지난해 방송된 다큐멘터리 ‘친일과 망각’을 1년이 지난 8월에 책으로 출간하셨어요. 열흘 정도 지났는데 반응은 어때요?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기대 이상으로 책이 잘 팔리고 있어요. 대형 온라인 서점에서 정치 사회 분야 5위권에 들어가는 정도입니다. 지난해 방송을 했을 때 상당히 많은 분이 보셨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못 보신 분이 많은가 봐요. 그리고 방송을 보셨던 분이라도 책과 다큐멘터리는 다르다고 생각하셔서 책을 사시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친일’은 일부 엘리트가.. ‘망각’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 주위에서는 뭐라고 하나요?

“자영업 하는 제 중학교 동창이 책을 사서 읽고 하는 말이 이래요. ‘제목의 뜻을 생각해 봤는데 친일은 그걸 할 기회조차 엘리트들만 가져서 일부 엘리트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망각은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 같다.’고 해요. 제목을 지을 때 그런 의미까지 담은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면 저 자신보다 더 의미심장한 해석을 하더라고요.

그리고 책을 읽고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지 물어요. 그래서 민족문제연구소에 후원하라고 했어요. 다음 날 물어보니 후원을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지난해에도 방송을 통해 그런 메시지를 내보내긴 했지만, 친일파가 청산되지 않아 역사가 비뚤어지고 가치가 전도된 것에 대한 분노나 울분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고 그런 부분 때문에 저희 책에 반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책은 처음부터 생각한 건가요?

“뉴스타파는 초창기부터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취재나 작업을 여러 번 해왔는데 그것들을 제대로 기록으로 남겨두지 못했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2013년과 올해 보도했던 조세도피처 연속 보도나 2014년에 했던 원전 마피아 같은 보도요. 이런 것들을 책으로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동안은 취재할 때 너무 힘들기도 하고 취재가 끝나면 곧이어 다른 프로젝트를 해야 하니까 못했어요. 그래서 ‘친일과 망각’을 할 때는 처음부터 출판을 염두에 두고 기록을 충실히 하자는 공감대가 저희 사이에 있었어요. 사실 책은 지난해 말까지 출간하는 게 목표였어요. 그러나 1년이 지나 나오게 됐는데 그건 김용진 대표의 책임이 큽니다(웃음),”

- 그냥 취재하는 것과 출간을 염두에 두고 취재하는 건 다를 것 같아요.

“많이 다르더라고요. 저는 처음부터 방송기자였고 그렇기 때문에 취재를 할 때 항상 화면을 먼저 생각하거든요. 방송에서는 아무리 팩트가 의미 있어도 그림이 약한 부분은 비중이 줄어들고 팩트는 덜 중요해도 그림이 좋으면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책은 그림에 구애받음이 없잖아요.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충분히 쓸 수 있고 제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부분은 그에 맞춰 쓸 수 있죠. 책을 쓴다는 게 훨씬 제약이 적고 자유롭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겠더라고요. 처음이라 아쉬움이 있는데 다음에 한 번 더 책을 쓰면 더 잘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다큐멘터리와 책의 차이점 중 하나는 책엔 배경까지 설명할 수 있다는 것 같아요.

“맞아요. 다큐멘터리는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림과 소리를 먼저 생각하거든요. 책은 그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게 하나 있죠. 또 하나 다큐멘터리, 동영상을 만들 때는 시청자를 상당히 수동적인 존재로 가정해서 쉽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저는 KBS 출신인데, KBS 같은 경우는 공영방송인 만큼 더더욱 그래요. 처음 입사해서 교육받을 때 ‘네 리포트를 중학교 2학년이 봐서 이해할 수 있겠냐 없겠냐? 만약에 이해를 못 한다면 네가 리포트를 잘못 쓴 거다.’라고 얘기할 정도거든요. 물론 뉴스타파에 온 뒤에는 그런 부분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졌지만 그래도 다큐멘터리는 수동적인 시청자를 전제로 만들기 때문에 제약이 많아요.

그러나 책은 그보다는 훨씬 더 능동적이고 배경지식이 많은 독자를 전제로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정도 이야기를 해도 책의 독자들은 더 잘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책이라는 장르가 훨씬 더 표현의 범위가 넓고 제약이 적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 <친일과 망각> 표지

“‘친일청산’ 제대로 됐더라면 박근혜, 대통령 못됐을 것”
“재벌위주 경제구조‧보수일색 정치 구도.. 친일 미청산 산물”

- 들어가기를 보니 ‘만약’이란 가정에 대한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친일 청산이 안 된 나비효과가 지금까지도 있다는 것 다시금 느낄 수 있는 대목 같아요.

“그렇죠. 책에도 그 얘기가 나오지만, 친일 청산이 제대로 되었더라면 당장 현재 대통령은 박근혜 씨가 아니겠죠.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만주군 경력이 있기 때문에 합당한 정도의 친일청산이 이뤄졌다면 사형까지는 아니겠지만, 공민권이 박탈되었든지 아니면 최소한 해방된 한국의 군대에서 고위 장교를 지낼 수는 없었겠죠.

그런데 이런 건 오히려 지엽 말단적인 얘기일 수 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저희가 지난 프로그램에서도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가치가 전도된 것이죠. 민족과 사회 공동체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한 사람들, 이분들은 물론 당대에는 보상받기 어렵겠다는 걸 상당 부분 알고 감수했을 거라고 봐요, 하지만 해방된 조국에서 자기 후손들이 제대로 못 배우고 못 먹고 못 입으며 어렵게 살리라고는 그분들도 생각 못 했을 거예요. 거꾸로 민족을 배신하고 외세에 빌 빌붙었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은 계속해서 잘 나가고 권력을 차지하고 있죠. 이런 현실에서 만약 우리 공동체가 미래에 다시 위기에 처한다면 누가 선뜻 희생하려고 나설까요.

현실적인 문제도 있어요. 지금 이 나라의 현실에서 누가 과연 권력을 가지고 있고 사회자원을 차지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 이것 역시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지금 형성돼있는 재벌 위주의 경제구조라든지 보수 일색의 정치 구조라든지 이 모든 것들이 친일 청산이라는 첫 단추가 잘 못 끼워지면서 여기까지 온 것으로 생각합니다.”

“친일청산 열망.. 반민특위 습격‧프락치 사건 일으켜 좌절시켜”

- 제헌 의회에서 제정되었던 ‘반민족 행위 처벌’의 과정과 그로 인한 반민특위 구성에서 해체까지가 책에 나오잖아요. 그걸 조사하시면서 느끼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저희 책에 1948년 당시 의회 속기록에서 발췌한 의원들의 발언이 나옵니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었을 당시에야 친일파 청산에 대한 민중적인 의지가 매우 높았습니다. 그러나 미군정 때문에 친일 청산이 되지 않았고 그 상태로 3년이 그냥 흘러가 버렸어요. 48년 의회 속기록을 보면 그 3년이라는 간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일 청산에 대한 열망이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또 한 가지 그 당시에 의회를 수립하기 위한 총선거가 있었는데 그 총선거에 지금으로 봤을 때 왼쪽에 있거나 중도에 있는 사람들이 대거 불참해서 보수 일색의 의회가 꾸려졌습니다. 그런데 그 보수 일색의 의회에서조차 친일청산이라는 대의에 대해서 그 누구도 딴지를 걸 수 없는 분위기가 있었던 거예요. 이건 우리 민족이 갖고 있던 친일파 청산에 대한 열망이 엄청 높았다는 걸 입증하는 거로 생각해요.

그런데 그렇게 높았던 친일청산에 대한 열망을 반민특위를 습격하고 프락치 사건을 일으키는 등 정치적으로 공격하면서 완전히 좌절시킨 것이잖아요, 정말로 저는 이 장면이, 이승만 대통령의 여러 가지 과오 가운데서도 민족사적으로 보면 한두 손가락에 안에 드는 과오가 아닐까 생각해요, 피눈물 나는 장면인 것 같아요.”

   

“친일파 청산, 역사적 책무 완수 못해.. 왜곡된 역사의식 키워”

- 후손들에게 편지를 보내셨잖아요.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했겠지만 실제로 답장을 받으셨을 땐 착잡하셨을 것 같아요.

“‘그렇게 오래된 일을 나에게 왜 묻느냐?’는 반응이 가장 많았어요. 그 정도는 당연히 있을 수 있는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서 ‘우리 할아버지 정말 훌륭한 분이다. 당신이 몰라서 그런 거고 우리 할아버지를 친일파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진보정권의 정치적인 의도에 따른 공격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앞서 하셨던 질문과 이어지는 건데 우리가 친일 청산을 해야 했던 시점에 못했기 때문에 이들이 왜곡된 역사의식을 가지고도 그동안 아무 문제없이 살아올 수 있었던 거죠. 아무도 그 사람에게 ‘너희 할아버지가 친일파로 민족을 배신한 사람이었어’라고 얘기를 안 해준 거예요. 제대로 된 사회였다면 그들에게 사회나 학교 혹은 정부가 공식적인 작업을 통해서라도 얘기를 해줬어야 해요. 그래서 그들도 그 사실을 깊이 알고 자기의 정체성에 대해서, 물론 본인이 죄를 지은 건 아니지만, 자신의 개인사와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했어야 해요.

그런데 그런 고민 전혀 없이 ‘우리 조상은 훌륭한 분이고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여기까지 왔고 모두 나와 내 집안이 잘나서 그런 거다’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너무 부끄러운 일이고 비극적인 일인 거죠. 우리 사회가 주어진 역사적인 책무를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해서 씁쓸했어요.”

- 방송이 나간 후 연락이 온 경우도 있나요?

“네. 저희 책 에필로그에도 나오는데 의외로 취재 과정에서는 저희 취재에 반감을 표시했던 분들이 방송 전체를 보시고는 우호적인 반응으로 바뀐 분도 계세요. 자기들도 잘 몰랐고 우리 사회에서 친일파 청산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방송을 보니 자기들도 그런 부분을 의식하고 역사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반응도 있었어요. 화를 낸 분은 없었어요. 왜냐면 화나신 분들은 아예 방송을 안 봤거나 봤어도 연락을 아예 안 하지 않았을까요. 어쨌든 여러 피드백을 받았는데 피드백만 놓고 보면 저희 방송의 의도를 어느 정도는 이해해 주지 않았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친일과 망각’으로 수상도 많이 하셨잖아요.

“네 감사하게도 여러 상을 받았습니다. 하나하나 모두 소중한 상이지만 특히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주는 임종국 상을 받은 게 정말 기뻤어요. 임종국 선생은 아무도 감히 친일에 대해 얘기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 깊은 망각의 어둠을 깨뜨린 분이에요. 혼자서 촛불 하나 들고서. 어찌 보면 우리 민족 전체가 해야 했을 일을 혼자서 감당하신 분이죠.

정부가 친일·반민족 행위 진상규명을 하거나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임종국 선생의 선구적인 작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고요, 비교하기는 민망하지만 저희가 지난해 했던 작업 같은 것 역시 임종국 선생님께 전적으로 빚지고 있죠. 그런 분의 이름을 걸고 주는 상을 받게 돼서 정말 기뻤습니다. 평생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 얼마 전 문인협회가 친일파인 춘원 이광수와 육당 최남선 문학상을 제정하기도 했다가 철회하는 일이 있었잖아요. 문인협회 이사장은 선대의 친일을 사죄한 문효치 씨잖아요, 심경이 복잡했을 것 같은데.

“문효치 이사장 같은 경우에 저희가 찾아가 인터뷰를 했을 때도 뭔가 내면세계가 복잡한 것 같더라고요, 시인이라서 그런지. 조상의 친일에 대해 그냥 심플하게 사죄하는 게 아니고 사죄가 나오기까지 이 분의 내면에서 굉장히 많은 고민과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지난해 저희 카메라 앞에서 사죄했는데 이 분이 갑자기 공인된 친일파인 춘원과 육당의 문학상을 제정한다고 해서 저희도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이걸 가지고 따로 문 이사장에게 연락을 해보거나 하진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분의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 수는 없어요.

다만 문인협회 입장을 보면 ‘공과 과는 따로 얘기해야 하고 문학적인 공이 있기 때문에 상을 제정하는 것은 온당하다’인 것 같은데 그런 입장은 이미 이쪽 연구를 하시는 분들 사이에서 오래전에 논박된 입장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 10대 궤변 가운데 두 번째가 바로 ‘공과론’이에요. 저는 당연히 문인협회의 결정이 원칙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 이사장이 사죄 이후 왜 그 같은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서는 취재 보지 않아서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친일 미청산으로 인한 전도된 역사…취재 이어갈 것”

- ‘친일과 망각’에 대한 후속 보도를 계획하는 게 있나요?

“올해는 저희가 ‘훈장과 권력’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했잖아요. 거기에 제가 참여한 건 아니지만, 박중석 선배는 참여했거든요. 박 선배 말로는 작년에 친일파 후손을 추적했던 작업과 이번에 훈장을 받은 친일파를 찾아내는 작업에서 겹치는 것도 상당히 많았고 새롭게 발견한 것도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취재 결과들이 모두 친일파와 그 후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로 뉴스타파 안에 쌓이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것을 바탕으로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해 전도된 역사, 뒤집힌 가치 등에 대한 취재는 앞으로도 계속해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친일과 망각’이 전하는 메시지.. 뒤틀린 역사 잊지 말자는 것”

-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잊지 말자는 거죠. 과거 70년 전에 역사가 뒤틀렸고 그로 인해 우리 사회에 셀 수 없이 많은 부정적인 효과가 누적되고, 그게 누적되어 만들어진 구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고통받고 있잖아요. 물론 타임머신을 타고 70년 전으로 돌아가 그걸 바로잡을 수는 물론 없어요. 그러나 적어도 잊지는 말아야죠. 기억하고 있어야만 바로 잡을 기회가 생기니까요.”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세요.

“저희 뉴스타파가 ‘친일과 망각’, ‘훈장과 권력’ 등의 프로젝트를 계속 해왔잖아요. 그 이유는 우선 저희가 왜곡된 근현대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다른 언론보다 조금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겠죠.

 

그런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 주신 것은 역시 후원회원들이세요. 진실의 수호자들이신 뉴스타파의 3만 9천 후원 회원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 앞으로도 뉴스타파가 근현대사를 바로잡기 위한 작업을 계속해 나갈 텐데 거기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관련기사]

이영광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노무현 얘기에 울컥하던 당원들 집권 위해 '탄핵' 추미애도 끌어안다

 

당심·민심 압승으로 더민주 대표 당선, 대선 경선관리·중도층 공략이 숙제

16.08.27 21:41l최종 업데이트 16.08.27 21:49l
▲ "축하해요" "고마워요" 추미애의 인사법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신임 당대표로 선출된 추미애 후보가 축하인사 건넨 유은혜 후보를 와락 껴안고 있다. ⓒ 남소연
반전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8.27전당대회에서 추미애 의원이 새 당대표로 당선됐다. 당 주류의 지원을 받은 추 신임대표는 대의원, 권리당원 득표에서 모두 과반 이상을 확보했고, 일반당원과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45%의 지지를 받아 최종 54% 득표로 김상곤 후보(22%)와 이종걸 후보(24%)를 압도했다. 당심과 민심 모두의 선택을 받은 결과다.  

추 대표의 당선으로 당 주류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이날 당대표뿐 아니라 여성(양향자), 청년(김병관) 등 부분최고위원 역시 주류 측 인사가 당선됐고, 호선으로 뽑힌 5명의 권역별 최고위원 대부분 주류 측 인사로 채워졌다. 결과적으로 주류가 주도권을 확보하며 당은 안정되겠지만, 내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당의 역동성이 떨어지는 숙제를 안게 됐다. 

'주류 지도부', 대의원 압도한 권리당원 힘

애초 이번 전당대회는 뚜렷한 변수가 없는 경선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지난 총선에서 야권 분열로 참패할 것이라는 예측을 깨고 더민주가 원내 1당이 되면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안정됐고, 대다수 비주류 인사들이 국민의당으로 떠난 상태였다. 예비경선에서 유력 주자였던 송영길 의원이 컷오프 되며 파장이 일었지만 '추미애 대세론'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번 경선에서 확인된 것은 권리당원의 '힘'이다. 모든 경선에서 다수의 권리당원 지지를 확보한 후보들이 당선됐고, 서울시당위원장과 여성최고위원의 경우 대의원 득표가 많았던 후보가 권리당원 득표에서 뒤처지며 종합득표에서 역전을 당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지난해 연말 대거 입당한 온라인 당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결정적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추 대표 역시 권리당원 투표에서 61.6%를 득표했다. 역시 당 주류 후보로 분류됐던 김상곤 후보는 20.2%, 비주류 결집을 노렸던 이종걸 후보는 18%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권리당원 가운데 문재인 전 대표 지지 성향이 뚜렷한 온라인 당원들이 당 주류와 보조를 맞춘 추 대표에게 확실한 지지를 보냈다는 게 당 안팎의 분석이다. 

하지만 이러한 온라인 당원의 선택은 추 대표의 이력을 살펴보면 쉽게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한 추 대표는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을 맡았다. 2003년 노 전 대통령 당선자 시절에는 특사로 미국과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후 열린우리당이 창당하고 민주당에 남은 추 대표는 지난 2004년 3월 노 전 대통령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탄핵안 가결 후 여론의 역풍이 불자 추 대표는 속죄 의미로 '삼보일배'를 했고, 그해 총선에서 민주당은 참패했다. 이로 인해 노 전 대통령 지지층과는 씻기 어려운 앙금이 생겼다.
▲ 5선 추미애, 더민주 당대표 당선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신임 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추 대표는 2008년 18대 총선으로 국회에 복귀하기 전부터 이 부분에 대해 지속적으로 사과나 유감을 표명했지만, 이번 전대에서 다른 후보들은 이 지점을 적극 공략했다. 당시 탄핵에 반대하는 대학교수 모임을 이끌었던 김상곤 후보는 "당대표는 순간에 오판과 독선으로 당을 망칠 수 있다, 그런 전력을 가진 분이 당대표를 제대로 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고, 이종걸 후보도 "탄핵에 가담한 리더가 어찌 당대표를 맡을 수 있겠나"라고 공세를 폈다. 

그러나 지난해 문재인 대표가 추 대표를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기용하면서 이러한 약점을 상쇄할 기회를 얻게 됐다. 안철수 의원 등 비주류의 탈당 러시 속에서 추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문 전 대표 옆을 지켰고, 이후에도 국민의당을 겨냥해 "분열주의자"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대립각을 보였다. 당의 핵심관계자는 "추 의원의 당권 도전 준비는 최고위원 때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추 대표는 경선 과정에서도 "노 전 대통령에게 진 빚, 당 대표가 돼 대선 승리로 갚겠다"라며 주류에 어필했고, 친노·친문 성향의 당원들도 그런 추 대표에게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었다. 추미애 캠프의 관계자는 "친노·친문이 추 대표를 선택한 게 아니라 당원들이 선택한 것"이라며 "경선 내내 친문이라는 공격을 받았지만, 경선을 통해 드러난 당심과 민심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권은 안정됐지만 대선후보 경선은?

그러나 전대에서 표출된 다수 당원의 절대적 지지는 앞으로 추미애 지도부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당대표, 부문최고위원, 권역별최고위원 경선 모두에서 주류의 지지를 받은 후보들이 당선되면서 내년 대선 경선 결과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문재인 전 대표에 기운 당심이 확인된 상황에서 다른 후보들이 경선에 도전할 수 있겠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당의 한 관계자는 주류 중심의 지도부 구성을 놓고 "아무리 공정한 룰을 만들더라도 구도 자체가 너무 원사이드(일방적)하다는 것이 나타났기 때문에 유력 대선 주자들의 입지가 극도로 좁아졌다"며 "이런 측면에서 대선후보 경선의 '공정성' 문제를 피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문 후보에게 '경선 페널티'를 줘야 공정하다는 얘기가 나올 판"이라고 덧붙였다.

주류 내부에서도 추미애 지도부의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친문 성향의 한 초선의원은 "추 대표가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경선룰을 만들 리는 만무하지만, 어떤 룰을 내놓더라도 보수언론이나 당 밖에서 불공정 시비를 걸며 흔들 수 있다"라며 "그러면 문 전 대표가 경선을 통과하더라도 본선 경쟁력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축하해요" "고마워요" 추미애의 인사법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신임 당대표로 선출된 추미애 후보가 축하인사 건넨 유은혜 후보를 와락 껴안고 있다. 오른쪽은 아쉽게 탈락한 김상곤 이종걸 후보. ⓒ 남소연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당이 또 한 번 갈라지는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비주류 의원은 "이 당에 조금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발붙일 수 없다는 걸 확인한 느낌"이라며 "대선후보 경선마저 이런 식으로 간다면 정권교체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정해진 패배를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추 대표 역시 이러한 우려를 의식하는 모습이다. 그는 당대표 수락연설에서 김부겸, 박원순, 손학규,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등 당의 유력 대선후보들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공정한 대선경선, 반드시 중심잡고 지키겠다, 모두 함께 모셔서 공정하고 깨끗한 경선, 우리 정당사에 길이 남을 역동적인 경선을 우리 함께 만들어내자"라고 말했다. 

차가운 더민주, 뜨겁게 변할까?

추 대표가 '강한 야당'을 강조하면서 정부여당을 향한 더민주의 자세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그동안 김종인 대표는 여야가 충돌하는 각종 현안에서도 '중도 노선'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추 대표가 전대 캠페인에서 "2012년 대선은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가 개입한 관권선거"라고 주장하며 '선명성'을 강조한 만큼 보다 강경한 대여투쟁 노선으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추 대표는 이날 수락연설에서도 "대통령이 국민이 가라는 길을 외면하고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호히 맞서겠다"라며 "고난과 어떠한 탄압이 있더라도 그 길을 가야 선명하고 강한 야당이 되는 것 아니냐, 그래야 수권정당 가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세월호 특별법 개정, 사드 배치,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청문회, 신임 장관 청문회 등에서 여야 대치가 날카로워질 전망이다.  

추 대표가 이러한 강경 기조로 나올 경우 기존의 중도 노선을 지켜야 한다는 당내 목소리와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물러난 김종인 대표는 전당대회 인사말에서 "종전의 낡은 정당문화를 버리고 민의를 수용하는 새로운 정당이 될 때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고, 집권의 길이 열릴 것"이라며 새 지도부의 강경 기조에 우회적인 반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한 핵심당직자는 "추 대표가 기존의 노선을 180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각종 현안에는 이미 우상호 원내대표가 주도권을 쥐고 결정해 온 만큼 두 사람 사이의 의견 조율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추 대표 역시 강경 일변도로 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라며 "선명히 맞설 것은 맞서고 타협할 것은 타협하는 모습을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백두산역사평화기행을 다녀와서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6/08/28 08:54
  • 수정일
    2016/08/28 08:5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동아시아 상생을 꿈꾸며<기행문> 백두산역사평화기행을 다녀와서
이재원  |  tongil@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승인 2016.08.26  14:03:25
페이스북 트위터

이재원 (부산 동아중학교 3학년)
 

모든 것이 만주에서 시작되었고 만주에서 끝을 맺었다

   
▲ 지난 19~23일 끝없이 펼쳐진 만주벌판을 버스를 이용해 달렸다. 사진은 백두산에서 내려다본 숲의 바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우리가 여행을 떠난 곳은 중국 중에서도 동북3성(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 지역이다. 대련을 시작으로 여순, 단동, 집안, 통화, 이도백하, 백두산, 용정, 화룡, 연길, 목단강에 이르는 이번 여행은 그야말로 남만주 지역을 횡단하는 대여정이었다.

우리 민족은 이곳을 만주땅, 그리운 만주벌판이라고 불러왔다. 바로 이 땅에서 단군이 조선을 세웠고, 고주몽이 고구려를 세운 것이다. 불과 백 년 전에는 독립군들이 일본 제국주의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모든 것이 만주에서 시작되었고 만주에서 끝을 맺었다.

그리고 만주의 중요성은 오늘날 다시 부각되고 있다. 우리는 단순히 우리의 옛 역사를 찾기 위해 만주를 찾은 것은 아니었다. 흘러간 역사를 통해 지금의 우리를 확인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본격적인 얘기에 앞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해봐야 한다. 이것은 한민족만의 문제가 아니요, 일본과 중국 등 동아시아 모든 국가들이 가져야 할 고민인 것이다. 현재 동아시아는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다. 그 분쟁은 단순한 영토분쟁이 아니라 역사분쟁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선 서로의 이해관계도 중요하지만 역사에 대한 반성과 이해가 더더욱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는 전혀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 일본은 걸핏하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교과서를 왜곡한다. 중국은 동북공정, 서남공정, 서북공정 등 소수민족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역사의식은 매우 형편없는 수준이다.

자기네 역사를 기피하는 민족은 영원히 그 생명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고로, 동아시아 3국(한ㆍ중ㆍ일)이 진정한 이웃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이러한 역사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첫날, 두 가지 분노를 느끼다

   
▲ 19일 대련에 도착한 기행단은 여순감옥을 첫 행선지로 택했다. 4박 5일동안 우리 일행을 안내해 준 이경옥 선생이 안중근 의사가 갇혀있던 독방을 가리키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우리가 처음 향한 곳은 여순감옥이었다. 여순감옥에서 안중근 의사, 이회영 선생, 신채호 선생이 돌아가셨다. 그리고 수많은 항일투사들이 돌아가셨다.

안중근 의사는 일본관동법원에서 재판을 받으면서도 항상 떳떳했다. “나는 한 개인의 자격으로 이등박문을 쏜 것이 아니라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서 적국의 수상을 암살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테러범이 아닌 만국공법상의 전쟁포로로 대해져야 한다.” 안중근은 죽는 그 순간까지 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다. 안중근은 개인의 자격이 아닌 대한 독립군의 자격으로 전쟁을 한 것이다. 안중근의 재판을 지켜보던 기자는 이렇게 평가했다. “안중근의 논리 정연한 언변에 이등박문이 한낱 파렴치한 늙은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 여순감옥은 안중근 의사의 감옥생활과 순국 장면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안중근이 감옥에서 집필하다가 빠른 사형집행으로 마저 쓰지 못한 <동양평화론>이란 책이 있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에서 동아시아의 평화, 한-중-일이 진정한 이웃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었다. 나는 이 서슬퍼런 여순감옥의 창살을 어루만지며 이제는 우리가, 그의 뜻을 이어가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순감옥에서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채 우리는 일본관동법원으로 향했다. 바로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은 역사적인 현장인 것이다.

일본은 만주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집요한 노력을 해왔다. 가장 먼저 한 것이 역사연구. 일본은 전문가들을 보내 이 지역의 역사를 철저히 연구했다. 그들이 주목했던 것은 발해사. 발해가 가장 일본과 활발한 교류를 했기 때문이었다. 고구려 유적은 물론이요, 수많은 유적을 답사했다.

우리는 기억한다. 일본이 조선을 병탄할 때, 조선과 일본은 하나이기 때문에 합쳐져야 한다는 내선일체론을 말이다. 일본은 만주를 점령할 때에도 똑같은 방법을 썼다. 그것이 바로 만선사관(滿鮮史觀)이다. 만주와 조선은 하나의 역사공동체라는 것이다. 물론 만주와 조선은 떼놓을 수 없는 관계이지만 그것이 침략의 용도로 쓰였다는 점에서 일본의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1931년 9월 18일 일본은 철저한 역사연구를 마친 뒤 만주를 침략한다. 만선사관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이것이 바로 ‘만주사변’ 혹은 ‘9.18사변’이다. 아직도 만주는 이 비극을 기억하기 위해 9월 18일 9시 18분이 되면 사이렌을 울린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초콜릿을 사먹으면서 연인들에게 고백하는 그 밸런타인데이가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밸런타인데이는 기억하지만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은 기억하지 못한다. 이것이 역사에 대한 망각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대중의 자각이 절실히 필요하다.

첫날부터 나는 두 가지 분노를 느꼈다. 첫째는 일제의 만행에 대한 뼈저린 분노였으며 둘째는 한국의 무지와 망각에 대한 분노였다. 나는 이 두 가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는 한 동아시아의 평화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만주의 해는 빨리 졌다. 나는 분노를 삭이며 잠에 들었다.

“태왕 할아버지, 평안하십니까?”

   
▲ 광개토호태왕비. 4면이 유리로 둘러쌓여 있고, 내부에서 사진 촬영은 금지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고구려 환도산성에서 기행단이 포즈를 취했다. [사진제공 - 박종만]

우리가 둘째날 향한 곳은 고구려 유적지였다. 환도산성, 광개토태왕비, 태왕릉, 장군총을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환도산성은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의 방어성이다. 평소에는 국내성에 머무르다가 국가적 위기가 생기면 환도산성으로 가서 항전하는 것이다. 환도산성(丸都山城)은 ‘알맹이도시’라는 뜻이다. 풀어 해석하면 중심도시, 그야말로 환도산성은 고구려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수천 년의 세월을 견딘 채 환도산성은 견고히 남아 있었다. 구불구불한 산등성이를 따라 환도산성의 성벽이 줄을 이었다. 나는 산성의 성돌 하나하나를 소중히 살폈다. 고국원왕의 원한이 내 몸 속으로 밀려드는 듯했다.

솔직히 나는 환도산성 아래 산성하 고분군을 기대했으나 공사가 한창이어서 들어가보지 못했다. 환도산성을 포함한 집안 지역의 고구려 유적지들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광개토태왕비는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태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령스러운 비석이다. 414년에 세워졌으니까 1600년 동안 부서지지 않고 그 자리에 우뚝 서있는 것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우리의 민족성과 어찌 이리 닮았을꼬.

   
▲ 장군총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아직도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사진제공 - 박종만]
   
▲ 태왕릉은 많이 훼손됐지만 위엄은 여전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태왕비에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태왕의 무덤인 태왕릉이 있다. 시간이 흘러감에 많이 훼손되었지만 그래도 태왕릉의 위엄은 여전했다. 한 변이 66m에 달하니 과연 광개토태왕의 무덤다웠다. 나는 태왕릉의 돌방 앞에서 말했다. “태왕 할아버지, 평안하십니까?” 그리고 조용히 돌아섰다.

장군총의 주인에 관해선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장수왕의 무덤이라는 설, 시조묘라는 설, 고국원왕의 무덤이라는 설 등 다양한 설이 혼재하고 있는 것이다. 장군총의 무덤이 정확히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고구려의 신령스러운 곳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고구려 무덤 중 가장 잘 보존이 되어있는 장군총. 그만큼 공들여 쌓았다는 뜻일 수도 있고 그나마 외침을 덜 받은 것일까?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장군총이 기리기리 보존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민족통일의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 나는 부디 천지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산신령께 빌었다. 전날까지 내리던 비가 그쳐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높였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셋째날이 밝았다. 우리는 드디어 여행의 궁극적 목표, 백두산으로 향하게 되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으로 향하는 것이다.

환웅이 내려왔다는 태백산이 바로 백두산일까? 단군과 백두산은 무슨 연관이 있을까? 백두산에 호랑이가 살까? 나는 상상력을 발휘해가며 백두산의 모습을 상상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백두산의 천지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부디 천지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산신령께 빌었다.

굽이굽이 길을 봉고차로 올라가는데 그 밑으로 펼쳐지는 절경은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정상에 다다랐을 때 짙은 안개가 펼쳐져 있었다. 나는 내심 천지를 못 볼까봐 마음을 졸였다. 그러나 우리가 올라가니 안개가 걷히는 것이 아닌가!

   
▲ 천지를 보는 순간 나는 3일 간의 여정으로 인한 피로가 모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사진 - 이재원]
   
▲ 장엄한 백두산을 배경으로 장백폭포가 흰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다. [사진 - 이재원]

천지를 보는 순간 나는 3일 간의 여정으로 인한 피로가 모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또 다른 세계였다. 천지는 어머니같은 존재였고, 우주였고, 만물의 근원이었다.

천지 물이 유일하게 흘러들어가는 곳이 장백폭포다. 그 장백폭포가 흘러 흘러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으로 흘러갈 것이다. 그 강들이 또 서해바다, 동해바다, 오호츠크 해로 흘러갈 것이다.

우리네 마음도 저 천지로부터 흘러내려오는 강물처럼 변치 않고 흘러가면 좋을 텐데……. 백두산은 말하고 있었다. 민족통일의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저 선 만 넘으면 바로 북한 땅인데

   
▲ 용정 명동촌의 윤동주 생가는 잘 복원돼 관람객들을 맞고 있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어머님,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두만강을 건너면 윤동주가 그리워했던 북간도가 나온다. 다른 이들에게 두만강은 그저 보통의 강일 수 있겠지만 우리 민족에겐 슬픔과 애환이 섞인 역사적인 강이다. 우리는 그 ‘눈물 젖은 두만강’으로 향하고 있었다.

두만강 다리는 주황색 부분과 파란색 부분이 있는데, 주황색 부분은 중국 땅이고 파란 색 부분은 북한 땅이라고 한다. 국경이라는 것이 이렇게 우습던 것이었나? 고작 선 몇 개 긋고 국경선이라고 적어 놓은 걸 국경이라고 하다니……. 저 선 만 넘으면 바로 북한 땅인데. 나는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도문대교가 가로놓여 있다. 왼쪽 주황색 부분은 중국 도문시에 속하고 먼쪽 파란색 부분은 북한 남양시에 속한다. 오른쪽 두 번째가 필자.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참 맑았다. 안중근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말한다. “안중근 의사는 아직 춤추며 노래 부르지 않으셨다. 민족통일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대한독립을 이루는 길이다.”

4박 5일 백두산 평화기행은 나에겐 매우 큰 경험이 되었다. 그것은 인식의 변화, 사물을 바라보는 눈의 변화였다.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고구려의 기상과 자부심, 독립전쟁사의 위대함과 참혹함, 민족통일에 대한 염원, 민족의 의미 등 다양한 것들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알찬 여행이었다.

여행은 여행을 떠나기 전의 준비과정과 여행, 그리고 여행이 끝난 후 정리하는 모든 과정을 통틀어서 말하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도 여행의 한부분이다.

내일의 하늘은 오늘의 하늘보다는 더욱 화창하기를

   
▲ 용정 시내에 자리한 간도일본총영사관 옛터. 지금은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간도일본총영사관 옛터의 지하고문실. 당시의 상태를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동아시아의 평화는 우리가 반드시 이뤄야 할 숙제이다. 갈등과 분열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모색할 때인 것이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한-중-일의 역사의식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동아시아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한-중-일은 공동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패권주의를 버리고 대국이면 대국처럼 행동해야 한다. 더 이상 동북공정 같은 유치한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은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진정어린 속죄를 해야 한다. 이것은 역사적인 문제 이전에 인간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역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철저한 역사교육을 통해 역사의식을 고취시켜야 한다. 이것은 국수주의가 아니다. 우리의 생존과 동아시아 평화가 달린 문제이다.(한국은 동아시아평화의 중요한 열쇠를 가지고 있다. 남북통일이 동아시아 평회에 지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부디 동아시아에 하루빨리 평화가 오기를 바란다. 내일의 하늘은 오늘의 하늘보다는 더욱 화창하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동아시아의 상생을 꿈꾸며 2016. 8. 25

* 여행을 함께한 분들, 그리고 저를 믿어준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재원의 다른기사 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대한민국 어디에도 미국사드 필요없다”

‘성주촛불’ 50일 앞두고 전국 57곳에 펼쳐진 사드반대 평화촛불
▲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의 제안으로 진행된 50지역 촛불문화제 왼쪽부터 서울, 성주, 제주.

“성주에서 시작된 촛불이 전국으로 번져 서울과 제주까지 닿았습니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미국사드는 필요없다’는 성주의 외침이 별이 되어 빛나고 있습니다.” 이재동 성주촛불 진행자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성주에서 사드철회 촛불이 타오른 지 45일째, 전국으로 퍼진 촛불은 서울, 인천, 대전, 대구, 부산, 울산, 광주를 거쳐 제주의 밤하늘까지 밝혔다.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의 제안에 따라 26일 57개 지역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린 것. 특히 이날 성주촛불 상황이 곳곳마다 생중계돼 성주의 외침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 성주 촛불문화제 [사진출처 성주투쟁위]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성주포대가 최적지라던 정부가 ‘제3부지’를 내세운 것은 스스로 자기 주장의 허구성을 드러낸 것”이라며 “오늘의 촛불은 한미 당국에 맞서 온몸을 던져 싸우고 있는 성주와 김천 주민들에게 힘을 주고, 사드 한국배치 반대행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겠다는 다짐의 촛불”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 서울을 비롯한 인천, 대전, 광주, 대전, 대구, 부산, 울산등 광역시에 촛불이 타올랐다.

제3지대로 거론된 김천에선 롯데골프장 아래 농소면사무소 앞에 500여명이 모였다. 대구와 영주, 안동, 포항, 구미, 고령 등 대구·경북의 8개 지역에서도 촛불이 타올랐다.

매주 촛불을 밝혀오던 부산과 울산은 이날도 촛불을 밝혔다. 창원을 비롯한 마산, 진해, 김해, 양산, 밀양, 진주, 남해, 통영, 사천, 거창, 거제까지 경남은 가장 많은 촛불이 빛났다.

광주를 정점으로 무안, 나주, 목포, 순천, 여수, 영암, 광양, 화순, 완도, 장흥, 보성까지 전남에 쏟아진 폭우도 사드반대의 촛불을 끄진 못했다.

미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으로 알려진 제주 강정마을에도 ‘사드 반대’의 봉화가 올랐다. 제주도에까지 사드반대 촛불문화제가 진행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성주군민들은 뜨겁게 환호했다.

▲ 강정마을이 있는 제주도에도 촛불이 밝혀졌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icon김천으로 번지는 ‘사드반대’ 촛불icon성주군민들 “우리는 까아~딱 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건국절 논란…‘박정희가 짱이다’ 결론 정하고 논리 만들어”

 

[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82] 심용환 역사&교육연구소 소장

이영광 기자  |  kwang3830@hanmail.net

 

 

지난 15일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올해를 ‘광복 71주년이자 건국 68주년’이라고 발언해 논란이 일었다. 새누리당은 이에 더해 건국절 법제화를 추진하면서 논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사실 건국절 논란이나 법 제정 발의는 처음이 아니다. 건국절 주장은 2006년부터 꾸준히 있었고 18대에서 법도 발의됐다. 그러나 번번이 여론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고 말았다. 더구나 20대 국회는 여소야대다. 야당의 찬성이 없으면 법 통과는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건국절을 꺼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역사전쟁> 저자인 심용환 역사&교육연구소 소장을 지난 22일 분당선 한티역 근처 커피숍에서 만났다.

심 소장은 건국절을 꺼낸 이유를 “4.13총선 이후에 정부의 힘이 많이 빠진 상태에서 남은 동안 자신들의 이슈를 달성해야 하는데 하나하나가 걸리는 상황이다. 때문에 그 상황을 피하기 위한 사회적 논쟁거리로 이슈를 옮겨 붙게 하려고 건국절을 들고 나왔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나라의 3요소는 국민, 주권, 영토인데 1948년에야 다 갖춰졌고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은 때도 이때다”라는 보수층의 주장에 심 소장은 “이들은 ‘박정희가 짱이다’는 결론을 정하고 결론을 지키기 위해 논리를 만드는 거다. 그래서 처음부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반대편에 진을 빼기 위해 그때그때 논리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독립운동을 한 것과 나라를 세운 건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전희경 새누리당 의원의 주장에 대해서 심 소장은 카이로 회담 전에 당시 임시정부의 주석과 외무상이었던 김구와 조소앙이 장제스를 만나 조선의 즉각 독립을 요청한 예를 들어 “구분이 안 된다. 충칭 임시정부가 없었으면 카이로 회담의 의결 사항이 나올 수 없고 그러면 포츠담이나 모스크바 의결 사항은 없는 건데 왜 독립운동사와 우리나라 정부수립의 연관성이 없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통령이 안중근 의사의 순국 장소를 뤼순이 아닌 하얼빈으로 말해 역사 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에 심 소장은 “헷갈릴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발언하는 자리라면 그 발언에 대해 문장을 검토하는 팀들이 있을 텐데 이들이 얼마나 우리나라 역사에 무지하고 역사의식이 없으면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냐는 거다”라고 한탄했다.

   
▲ 심용환 역사&교육연구소 소장 ⓒ 이영광 기자

다음은 심용환 역사&교육연구소 소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박정희’ 결론 두고 거꾸로 이야기 만드니 ‘건국절’ 무리한 오류 등장”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광복절에서 건국절을 언급해서 다시 논란인데 어떻게 보고 계세요?

“저는 건국절 논란이 커지게 된 게 안 커졌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요. 왜냐면 이게 작년 국정교과서 때처럼 이 이슈가 전면에 다뤄지는 상황이면 좋겠는데 그것이라기보다는 사드 등 4.13총선 이후에 정부의 힘이 많이 빠진 상태에서 남은 기간 자신들의 이슈를 달성해야 하는데 하나하나가 걸리는 상황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 상황을 피하기 위한 사회적 논쟁거리로 이슈를 옮겨 붙게 하는 거죠. 그래서 건국절을 들고 나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모든 이슈에 대해 건별로 대응하며 자칫 사드 문제라든지 박근혜 정부가 하려는 일을 저지해야 하는 데 노선이 흐트러뜨리는 것 같아 조금은 지혜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면 조만간 국정교과서가 나올 거고 건국절을 얘기하냐 아니냐의 말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문제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먼저 들어요.

의도예요. 너무 집요해요. 일련의 과정을 보면 어떻게 해서라도 이 얘기를 해 나아가고 관철시키고 싶은 거죠. 최소한 교과서를 못 뜯어고치더라도 자기 지지층만큼은 이렇게 사고하도록 하고 싶어 하는 전략적이고 의도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게 있어요. 보통 건국절 얘기라면 이들이 친일파기 때문에 한다거나 독재를 했기 때문이라는 게 틀린 얘기는 아니에요. 그러나 이 사람들 사고는 거꾸로 들어가는 거예요. 이들은 ‘박정희가 짱이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박정희 유산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려면 그전에 누군가가 자유민주주의 기초를 만들어야 할 것 아니에요. 그래서 이승만이 등장하는 거죠.

사실 이 사람들은 박정희라는 그들이 정해놓은 결론을 두고 거꾸로 이야기를 만드니 무리한 논리적 오류로서 건국절이 등장하게 된 것이거든요. 그래서 이 시점에 건국절이 나온 건 정치적이죠. 이들은 어떤 수를 쓰더라도 집요하게 관철 시키려고 하는 사람이죠. 오직 자신들의 존립 근거를 얘기하기 위해서 거꾸로 가는 걸 이해해야죠.”

   
▲ 1975년 9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로서 모국을 방문한 브라질 동포 67명과 청와대에서 만나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선물받은 브라질산 火石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뉴시스>

- 우병우 민정수석 사건도 포함된다고 보시는 거네요.

“네. 맞아요. 우 수석 외에도 논쟁점을 비틀기 위해 하는 거죠. 국정교과서는 만들어질 거고 그럼 관철하면 돼요. 근데 이 난국을 돌파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는 뭐가 있냐는 부분에서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당 대표, 그리고 8.15 경축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건국 68주년’이라고 했잖아요. 전 의심이 된다는 거죠. 연말에 해도 되는 걸 왜 이 시점에 했냐면 논란이 가열화가 될 것은 뻔한 거고 야권은 이 문제에 대해 예민하잖아요. 그래서 이슈를 덮기 좋다는 거죠.”

“국민‧주권‧영토 다 갖춰야 건국? 일제 조선총독부 다 있었는데?”

- 건국절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나라의 3요소는 국민, 주권, 영토인데 1948년에야 다 갖춰졌고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은 때도 이때다”라는 주장인데.

“앞서도 말했지만, 이들은 결론을 정하고 결론을 지키기 위해 논리를 만드는 거예요. 이들은 애초 이렇게 주장한 적이 없어요. 첫째로 전제하고 싶은 건 건국절이라는 당위성을 밀어붙이기는 하는데 그때그때 논리를 만들어내는 거예요. 이것도 그럴싸하잖아요. 국민, 주권, 영토가 있는 게 국가라는 건 틀린 말은 아니에요. 그러나 이 사람들이 건국절 이야기를 할 때 이런 주장을 한 게 아니에요, 그때마다 논란이 되면 그에 맞춰서 논리를 만들어내는 거예요. 그래서 반대편의 진을 빼는 거죠. 왜냐면 이들은 자기들 논리를 주장하고 싶어서 하나 툭 던지지만, 여기에 맞서 싸우려면 몇 배의 논리로 공격해야 해요. 전형적인 지치게 하기 전략이죠.

일제시대를 예로 들어볼게요. 일제는 을사조약 전후에 한일 의정서나 정미 7조약 등 외견상으로 보면 적법한 절차를 통해 우리나라를 인수했어요. 그 이후 국민, 주권, 영토를 일본이 다 가지고 있었어요.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이 사람은 일제시대가 우리 역사의 정통적 시간이란 걸 보장해주는 말밖에 안 되잖아요.

왜냐면 조선왕조와 고려왕조가 존재했듯이 일제시대때는 일본의 조선총독부가 우리나라의 국민, 주권 영토를 정하고 있었잖아요. 그럼 이들의 입장에서는 일제시대가 하나의 정통적 시간이고 독립운동은 아니라는 얘기밖에 더 되나요? 그리고 미국이 독립 혁명을 다 하고 나서 건국했잖아요, 그렇다고 우리가 미국의 건국 날짜부터 배우는 건 아니에요. 어떤 나라가 물리적으로 세워지기 전에 역사의 단계적 과정이 있죠, 이런 걸 보더라도 이게 다 있어야 건국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작위적인 주장이죠.”

   
▲ 17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간담회에서 이정현 대표, 정진석 원내대표, 심재철 의원이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심재철 국회부의장은 이날 “우리나라의 생일은 1948년 8월 15일”이라며 건국절 법제화를 주장했다. <사진제공=뉴시스>

- 해방 이후 건국 준비위원회(이하 건준)이 존재했는데.

“건준은 있어요. 1944년 여운형이 만든 건국동맹을 확대한 단체죠. 이 단체가 조선 총독부와 협상을 해서 일본이 물러난 다음에 어떻게 우리나라를 운영할 것인지 합의를 봤어요. 여기서 중요한 건 독립운동사를 보면 임시정부가 모든 역할을 다하지는 않았어요. 1919년 임시정부를 만들었고 1920년대 초반까지는 독립운동사의 최고 기관 노릇을 했고 다시 1940년대에 최고 기관 노릇을 했죠. 하지만 임시정부는 중국에 있었고 전체 독립운동을 총괄하지 않았고 지역마다 독립운동의 자율성이 있었던 거죠. 그러니 해방이 되었을 때 김구 선생 등은 당연히 임시정부의 정통을 주장하면서 임시정부의 귀환을 강조하지만, 임시정부에 속하지 않은 민족주의자들 혹은 좌파나 중도파들은 또 다른 형태로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시도를 할 수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건준이 존재한 것 자체가 임시정부나 독립운동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만큼 독립운동사가 넓고 컸다는 거예요. 보수층에서 말하는 건국과 관계없어요.

다만, 우리가 보통 임시정부를 얘기하는 이유는 3.1운동의 결과로 우린 대한민국을 세웠는데 ‘민’은 국민주권이잖아요. 그래서 임시정부가 정통성을 갖는 거죠.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할 때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설명해야 되잖아요. 정통성이 두 가지인데 헌법 전문을 보면 ‘유구한 역사’라는 말이 나와요. 이건 1차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바뀐 거예요. 그게 뭐냐면 고조선 이래 우리 역사가 내려왔다는 자부심이에요. 그리고 기미 3.1운동을 계승하고 그 결과로 가장 확실히 표현되는 임시정부가 적합하니 헌법에서 임시정부를 쓰는 거죠.”

“임정 없었으면 카이로 회담 의결 못나와…독립운동사‧정부수립 직접적 연관성”

- 건국일을 1948년 8월 15일로 했을 때 문제가 되는 건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이잖아요. 하지만 전희경 새누리당 의원은 “독립운동을 한 것과 나라를 세운 건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구분이 안 되는 거예요. 간단히 말할게요. 먼저 1943년 카이로 회담이 있어요. 그때 최초로 ‘적절한 과정을 거쳐서 조선을 독립시키겠다’는 말이 나와요. 그러나 그전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 장제스에게 당시 주석과 외무상인 김구와 조소앙이 면담을 신청해서 조선의 즉각적 독립을 끌어내 달라는 강력한 요청을 해요. 아마 장제스 개인적 입장에서는 소위 말하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동아시아 영향력을 계산했을 거예요. 장제스가 루스벨트, 처칠과 회담을 하죠. 루스벨트는 조선에 대해 관심이 없었고 처칠은 부정적이었어요. 그러나 설득해서 장제스의 원래 주장은 임시정부 주장처럼 즉각적 독립이었는데 적절한 시기에 독립시키겠다고 타협을 본 거예요.

그럼 이 배경에 카이로 회담을 했기 때문에 1945년 포츠담회담 의결 사항을 확인해주고 해방 이후 12월에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를 통해서 정부수립을 구체화 시켜준 거예요. 충칭 임시정부가 없었으면 카이로 회담의 의결 사항이 나올 수 없고 그러면 포츠담이나 모스크바 의결 사항은 없는 거예요. 독립운동사와 우리나라 정부수립이 왜 연관성이 없어요? 직접적 연관성이 있는 거죠.

두 번째 우리나라 제헌 헌법 이후 내려오는 헌법이 있죠. 보통 사람들은 1948년 제헌 헌법으로 알고 있어요. 그러나 1948년 7월 17일 제정된 유진오 박사의 제헌헌법은 1919년 임시헌법, 1940년 충칭 임시정부가 얘기한 삼균주의 같은 것의 내용을 계승한 게 오늘날까지 쭉 온 거예요.”

   
▲ 전희경 새누리당 의원 <사진제공=뉴시스>

- 1919년을 건국으로 하면 5000년 역사가 유지되지만 1948년을 건국절로 할 경우 5천년 역사가 사라지고 신생국가가 된다던데.

“일본은 우리나라를 식민지할 때 아프리카 빈 땅 가서 깃발 꽂는 것처럼 한 게 아니에요.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아편전쟁에 의한 난징조약이라든지 일본 가서 빼리 제독이 총 쏜 다음에도 미·일 화친 조약과 미·일 통상조약을 맺어요. 이게 국제법적 전통이거든요. 왜냐면 전 세계열강이 경쟁을 하니 제국주의라도 절차와 형식을 만들 수밖에 없는 거예요. 우리나라를 일본이 식민지할 때 어떻게 했냐면 잘 알다시피 을사조약과 한일병합 조약이 유명한데 그전에도 많은 조약을 맺잖아요. 일본이 합법적으로 조선왕조를 먹었다는 걸 입증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3.1운동 전 1915년에 대동단결선언이라는 게 있어요. 그게 뭐냐면 베이징에 있는 우리나라 독립 운동가들이 모여서 주장한 게 1910년 우리나라가 말한 게 아니라 대한제국이 넘어간 건 민권의 시작이라는 거예요. 그전까지는 우리나라가 군주정이잖아요. 그러나 일본에 의해 조선이 망했어요. 그러면서 조선이 일본의 나라가 된 게 아니라 군 주권이 망하면서 이제 민권의 시대가 열렸다는 거예요. 독립운동가들이 아주 창의적인 생각을 한 거예요. 3.1운동 때 ‘대한제국 만세’나 ‘고종황제 만세’ 안 하잖아요.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건 충격적인 사건이에요. 그러면서 임시정부가 만들어져서 이어지는 거죠.

중요한 건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 우리나라가 먼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라고 일본을 미국이 국제사회에 데뷔시킬 때라는지. 그때 우리는 피해 받은 게 있으니 미국에 요구를 해서 받아낸다든지 혹은 우리가 일본과 국교 수립할 때에도 우리는 피해보상을 받아 내야잖아요. 그때 우리는 법률적 근거를 제시해야죠. 그때 제시했던 것이 ‘우리는 조선왕조가 망한 후 임시정부가 있었다’는 거예요. 때문에 임시정부의 법적 근거를 인정하라는 근거 속에서 임시정부를 계승한 정부기 때문에 우리가 정통 정부로서 일본에게 배상을 받으려고 한다는 협상을 이승만 정부가 계속했어요.

그리고 미국이나 일본과 협상할 때 신생국가가 아니라는 걸 증명 해야지 식민지 때나 2차 세계 대전의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잖아요, 최소 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보상받아야 할 것 아니에요. 법적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거냐는 거죠. 임시정부부터 이어진다는 법적 정통성을 이야기해야 이어지는 거고 그렇게 했거든요. 그걸 미국과 일본이 안 받아 주긴 했지만요. 이승만 정부는 일본의 배상이라든지 미국과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임시정부의 법적 근거성에 의존해서 설명했어요. 왜냐면 우리가 국제법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게 임시정부밖에 없어요. 임시정부는 국민당 정부가 공인을 해줬고 공인은 안 했지만 영국이나 미국이 조사하거든요. 그걸 토대로 이승만 정부가 밀어붙인 거죠.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 본인이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었고 김구 주석 때는 임시정부 특사였단 말이에요. 건국의 아버지께서 임시정부 인사였다는 사실을 무시하니 앞뒤가 안 맞는 거죠.”

“대통령 ‘하얼빈’ 발언…보좌진들 얼마나 역사 무지하면..”

- 헌법에 보면 우리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도시죠. 그런데 1948년을 건국으로 하면 북한은 우리 영토가 아닌 게 되잖아요.

“맞아요. UN총회에서 남북한 총선거를 결의해서 입국했지만, 북한은 못 가봐요. 남한만을 실사한 후 UN 소총을 열고 가능 지역에서 선거하는 걸로 해요. 가능 지역은 38선 이남 지역이죠. 지역에서 선거해서 정부가 수립됐고 그 결과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상태에서 UN이 합법적 정부로 인정을 해주잖아요. 그것만 강조하면 38선 이남만 우리 땅이죠. 그럼 통일신라만큼도 못해요. 통일신라는 대동강 이남이거든요.”

- 헌법을 부정하는 거죠.

“맞아요. 헌법 1~9차 개정의 특징이 뭐냐면 3.1 운동만 얘기하는데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이 꼭 있어요. 그게 뭐냐면 우리 민족은 고조선부터 시작해서 내려온 나라라는 거예요. 영어 의미로 우리나라 건국절은 개천절이에요. 즉 우리는 단군부터 개국 되어 지금까지 내려온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이라는 건데 1948년을 건국으로 얘기하면 단군왕검을 무시하는 거죠. 고조선은 역사적으로 실존했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지만 단군은 신화라고 쳐도 주몽이나 이성계 등을 무시하는 거죠.

제가 왜 계속 1차부터 9차까지를 강조하냐면 중간에는 박정희 대통령도 있었고 전두환도 있었고 그 앞에 이승만 대통령도 있었잖아요, 소위 말하는 독재정권 시절에도 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라든지 기미 3.1운동을 건든 적이 없어요. 다만 거기에 ‘~와 5.16’이나 ‘~와 5공’이란 식으로 붙이죠. 그들은 그들이 강조하고 싶은 이승만, 박정희의 뜻조차도 위배라는 거예요. 왜냐면 이승만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강조한 사람이고 박정희는 그들의 식인 5.16군사 혁명의 정당성을 3.1운동과 4.19에서 찾았거든요. 그런데 오늘날 건국절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승만과 박정희하고도 상관없는 주장을 하는 거예요.”

   
▲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 보수층이 건국절을 주장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지금은 그때를 살아본 사람이 없어요. 무슨 얘기냐면 그때를 경험한 사람이 살아 있기 때문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은 이런 이야기 못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생존자들이 사라지고 기억에 의존하는 시대가 되었거든요. 이제는 기록과 기억이 중요하죠. 군대 가보면 매주 3시간씩 정신교육이라는 걸 시켜요. 한국전쟁 때 있었던 사건을 굉장히 극우적 입장으로 가르쳐요. 증언자들이 사라지는 시대에 기억을 조작해서 왜곡된 기억을 사실인 것처럼 만들려는 거죠.”

- 건국절 논란도 있지만, 박 대통령이 안중근 의사의 순국 장소를 뤼순이 아닌 하얼빈으로 말해 역사 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어요.

“좀 충격적이었어요. 하지만 헷갈릴 수 있어요. 근데 문제는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발언하는 자리라면 그 발언에 대해 문장을 검토하는 팀들이 있을 것 아니에요. 이들이 얼마나 우리나라 역사에 무지하고 역사의식이 없으면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냐는 거죠. 건국절도 마찬가지죠. 뭘 좀 알고 얘기하든지요.”

 

[관련기사]

이영광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