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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민보 어제 오늘과 내일

자주민보 어제 오늘과 내일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1/05 [01:00]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자주민보를 창간한 다음달 즉, 2호 표지, 창간하자마자 6.15남북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진행되어 자주민보 기자들은 긴급하게 이를 특집으로 보도하느라 숱한 밤을 세워야 했다. 생에 가장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 자주민보

 

 

지하사무실 습기만큼이나 열기 가득했던 월간 자주민보 창간 시절

 

96년 연대항쟁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도 당시 야당 최고지도자로서 연대인문대를 방문하면서 한총련을 비판하고 진보정치인들이라는 사람들도 청년학생들 비판에만 열을 올리고 ‘한겨레신문’은 물론 ‘말’지와 같은 진보적 언론에서마저 한총련 학생들의 입장은 거의 보도해주지 않고 친북좌익세력으로 매도하는 극우 흐름에 동조해가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어 전국대학생기자연합회 출신 젊은 기자들이 모여 ‘월간 자주민보’의 기치를 들게 되었습니다.


이창기, 장동욱, 백운종, 박준영, 황혁, 나풍자, 이소영, 이철웅, 손지은 등의 젊은 양심가들, 애국의 열혈청춘들이 바로 그 주인공들입니다.
 
99년 8.15 창간준비1호 시작으로 몇 차례 창간준비호를 발간한 후 2000년 5월 창간호를 발간하였는데 초창기에는 청년학생들의 입장을 많이 취재 보도하였고 주된 애독자층도 청년학생들이었습니다.

 

10여명의 기자와 편집위원들 모두 거의 교통비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면서도 지하 사무실에서 마감기사와 거듭하는 퇴고, 편집디자인과 반복 수정, 그렇게 한 달에 한 번 최종편집본을 인쇄소로 넘기느라 얼마나 많은 밤을 세웠는지 모릅니다.


여름 장마철엔 지하 사무실 장판위로 스며올라오는 물을 닦아내야 했고 곰팡이와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야했습니다. 그때 하도 습기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해서 이후 사무실을 얻을 때 비용이 들더라도 지하나 반지하는 적극 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창간하자마자 6.15남북공동선언이 나오게 되어 얼마나 신명이 났는지 모릅니다. 청년학생 중심 편집에서 민족문제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무게중심이 이동했고 발빠른 보도를 위해 2001년부터는 인터넷 자주민보까지 창간하여 월간지와 병행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황선 방북기 ‘어머니 여기도 조국입니다’,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든 쏴라’, ‘통일 참 쉽다.’ 등 10여권의 단행본도 발간하여 많은 청년학생과 독자들에게 북에 대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어떤 책들은 수만권씩 팔리기도 하는 등 그 반향도 뜨거웠습니다.
힘들었지만 정말 행복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 자주민보 1차 구속 사건 때 대책위에서 대응방향을 논의하는 모습     © 통일뉴스 펌

 


1차 구속과 ‘월간 우리’

 

2001년 10월 21일 국정원은 자주민보 발행인과 편집장, 전 편집장 3인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과 체포를 단행했습니다.
결국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위반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지만 3개월만에 모두 보석으로 석방되었습니다.


국정원에서는 북과 연결된 무슨 대단한 배후 조직의 지휘를 받는 언론사로 추정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사무실과 기자들의 주택과 차 안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게 되자 결국 법원에서 보석으로 내보내주었고 재판에서 집행유예형을 선고하였습니다.


2002년 9월 자주민보 1차 구속 사건을 계기로 좀 더 대중적인 언론사로 거듭나기 위해 판형을 ‘말’지 크기로 확대하고 이름도 ‘월간 우리’로 바꾸어 재창간하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책 크기로 자주민보를 제작하다보니 사진 등을 큼직큼직 시원시원하게 편집할 수 없었던 아쉬움을 극복하고 본격적인 시사종합지로 거듭나기 위해 더 많은 제작비용이 들어가는 일이었지만 과감히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생계 등의 여러 이유로 그만 둔 기자들도 있었고 이미경, 김영준, 이명승, 이종출, 박현선, 신형석, 김은숙, 심현실, 정유진, 박미설 등의 기자, 편집인 등이 새로 들어와서 애국의 필봉을 틀어쥐었습니다.


황선 방북기 세번째 책인 ‘서울동무 평양친구’, 시집 ‘일편단심’ ‘칡꽃이 필 때 만난 사람’ 등 단행본도 계속 발간하였습니다.
조직체계도 정비하여 발행인이 전체 자주민보의 대표가 되고 박준영 편집국장, 이명승 재정국장이 각 국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자주민보로 전환

 

원래 구독료만으로는 기자들 교통비도 지급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으며 인쇄비는 따로 재정사업단을 꾸려 금강산관광 대학생모집사업, 대학생기념품사업 등을 통해 급한불을 꺼가는 식으로 유지하다보니 월간지 제작에 따른 인쇄관련 빚이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늘어감에 따라 뭔가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특히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어서 독자들에게 설문조사를 진행, 독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결국 2005년 월간 자주민보는 접고 보조적으로 운영하고 있던 인터넷 자주민보로 중심을 이동하는 조치를 단행하였습니다.

 

마침 인터넷신문 등록법도 만들어져서 인터넷 신문도 언론사로 등록하고 활동할 수 있게 되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조국의 통일을 이루는데 기여하는 언론사”라는 창간목적으로 등록신청하여 “서울, 아00132”이라는 등록번호를 부여받아 인터넷을 통한 언론활동을 전면적으로 전개해오게 된 것입니다.

 

인터넷 자주민보로 전환하면서 월간지 편집디자인을 담당했던 성원들 등은 다른 일을 찾아 떠나게 되었고 인터넷을 강화하기 위해 전문회사에 시스템관리를 맡기게 되면서 시스템을 담당했던 엔지니어도 민주노총 등으로 직장을 옮겼으며 그간 마감 기사 쓰느라 진이 빠지곤 했던 여러 기자들도 기자보다는 단체활동을 해보고 싶다며 정당이나 노조 상근 간사 등으로 많이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장기간 무보수에 따른 어려움도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이 모두 기자들을 필력을 높여주고 재정도 확충해서 기자들에게 최소한의 활동비라도 지급했어야 했던 이창기 대표의 능력과 노력이 부족한 탓이었습니다. 
돌이켜 가장 후회스런 시기가 바로 이 시점입니다. 그때 끝까지 함께 하자고 기자들을 왜 붙잡지 못했을까. 왜 그 시기만 넘기면 다들 훌륭한 기자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지 못했을까. 생각할수록 뼈아픈 후회가 듭니다.


당시엔 자신도 기사 쓰는 일이 너무 힘든 일이어서 그 힘든 일을 계속 하자고 붙잡을 용기가 없었다고 말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한심한 변명임은 아프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번 동지는 죽어도 살아도 영원한 동지라는 가장 기본적인 소양 즉, 동지애만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얼마든지 붙잡을 수 있는 동지들이었습니다. 이창기 대표는 결정적으로 그것이 부족했습니다.

 

결국 이창기, 박준영 기자 둘이서 인터넷 자주민보를 운영해오다가 박준영 기자도 결혼하고 세 자녀를 낳아기르는 과정에 여러 차례 육아휴직을 하는 등 실질적으로 2009년까지 이창기 대표는 홀로 인터넷 자주민보를 운영해오면서도 개인적으로 가게를 운영하여 그간 쌓인 인쇄소 빚은 다 갚았습니다.

 

이때 자주민보에서 가장 집중했던 기사가 정세분석기사였습니다. 2006년 단행된 북의 1차 핵시험 이후 한반도 정세는 긴박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는데 자주민보는 사건이 터진 당일, 늦어도 다음날 오전까지 관련 심층분석기사를 올리는 것을 목표로 활동을 해왔습니다. 황우석사태, 광우병사태 때는 이틀 동안 한 숨도 못자기도 하면서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이창기 대표는 인쇄소 빚을 갚기 위해 돈도 벌면서 자주민보 글을 전담해서 쓰느라 수면 부족 등간에 무리를 주었던지 그때 활동성 간염이 발병하여 지금도 계속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사람을 키우지 못한 덜 떨어진 대표가 바보같이 제 몸 관리마저 실패한 것입니다.

 

당시에 글을 쓰는 기자가 이렇듯 혼자였지만 대신 여러 외부 기고가와 필진을 확보하여 월간 자주민보보다 더욱 다채로운 기사를 올릴 수 있었으며 특히, 매년 진행했던 만주항일유적지 취재도 꾸준히 진행하여 자주민보만의 색깔과 특색을 구축해왔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자주민보의 영향력이 점차 커져갔고 2010년 한성 기자를 필두로, 정설교 객원 만평가, 권말선 시인, 이정섭 기자, 이용섭 전 후원회장 등이 이후 자주민보에 결합하여 더욱 탄력을 받게 되어 점차 조회수와 영향력도 커져갔습니다.


특히 2012년 한호석 소장이 자주민보에 정기적인 연재글을 올리게 되는 등 다른 언론사에서 접하기 힘든 한반도문제 관련 심층기사들이 많이 늘어 국민들뿐만 아니라 증권전문가, 다른 언론사 정세전문 기자, 정치경제연구원 등 여러 전문가들도 한반도 정세를 진단하고 예측하는데 자주민보를 많이 참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이정섭 기자(현 자주민보 대표)가 그 어떤 언론사보다도 북에 대한 속보를 발빠르게 보도하면서 한반도 문제 관련 속보경쟁에서 자주민보가 단연 독보적인 언론사로 부각되게 되었습니다.

 


2차 구속과 자주민보 폐간 소송

 

자주민보의 하루 평균 페이지뷰가 평균 2만건, 접속 아이피가 3000건을 안정적으로 넘어서게 되었던 2012년 2월 공안기관에서 전격적으로 이창기 대표를 구속하고 이후 한성 기자, 정설교 객원만평가를 구속하고, 권말선 시인, 이정섭 현 대표, 이용섭 전 후원회장 등도 기소 불구속 재판에 넘기는 등 모든 자주민보 성원들이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대선을 1년 앞둔 시점에서 진행된 전격적인 탄압으로 자주민보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내몰렸지만 수많은 애독자들의 지지 격려와 이정섭 현 대표의 눈부신 활략으로 오히려 자주민보의 접속자 수는 배로 폭증하였으며 이창기, 한성 기자 등이 구속된 상황에서도 중단 없이 옥중에서 계속 원고를 써내어 감옥 안에서까지 다시 한 번 압수수색을 당하고 그 원고를 컴퓨터에 입력하여 자주민보에 올리는 일을 진행한 권말선 시인 집마저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사상 초유의 공안탄압이 자행되었습니다.

공안탄압이 자행되는 동안, 구속된 정설교 만평가도 옥중에서 계속 만평을 그려 보내오고 있고  정찬희 객원기자, 이성원 후원회장이 새로 결합하여 자주민보의 가시 수가 어느때보다 다채롭고 많아졌으며 접속자 수도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또한 새누리당 심재철 최고위원이 새누리당 회의와 국회 등에서 마이크 앞에 설 때마다 목에 핏대를 세워 자주민보 폐간을 선동하고 블루투데이 인터넷 뉴스 등 보수 언론에서 대대대적 이를 보도하자, 블루유니온이라는 극우보수단체에서 이에 호응하여 자주민보를 폐간시키라는 시위를 연일 박원순 시장이 근무하고 있는 서울 시청 앞에서 벌이며 압박을 가하자 결국 서울시에서 ‘그러면 법원의 판결을 받아보자’며 자주민보 등록취소 소송을 걸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1심, 2심에서 자주민보 등록취소 결정이 났고 현재 자주민보에서는 이에 불복하여 즉각 상고장을 대법원에 제출한 상황입니다.

자주민보측 변호인단에서는 서류만으로 재판의 적법성 여부를 따지는 대법원에서 이 1, 2심 판결이 뒤집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해서 자주민보 성원들은 현재 즉각 제2의 자주민보 창간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마을 아이들이 놀기 좋게 구불구불, 천방지축 송아지 망아지 고삐 기둥으로 튼실하게, 소금땀죽 농부들 선선달콤한 낮잠 위해 너실너실, 마을로 불어닥치는 바람에 강잉하게 맞서는 아! 언제봐도 더없이 정겨우면서도 강인한 마을숲 소나무, 자주민보도 늘 애독자들 곁에서 마을숲 소나무처럼 함께 하겠습니다.     © 자주민보

 

제2 자주민보 창간을 위하여

 

변호인단과 상의한 결과 자주민보 이름을 이어서 쓰는 것과 현재 기사를 다 옮겨가는 것은 또 다른 탄압의 빌미가 될 수 있다고 해서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는 새로운 자주민보2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자주민보는 늘 화를 복으로 만들어내면서 발전해왔습니다.
이번 탄압으로 이미 자주민보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국민들에게 알려졌으며 후원인도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이번 제2의 자주민보 창간으로 더 참신하고 대중적이며 다채로운 자주민보2를 만들어낸다면 이번 탄압은 자주언론 건설에 있어 정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자주민보 애독자 여러분들의 지지와 동참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좋은 제안, 좋은 자료, 좋은 글도 많이 보내주시고 무엇보다 우리 자주민보 필진들이 언론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후원을 더욱 확대해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이대로 가면 멀지 않아 자주민보도 광고수익을 얻을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몇몇 소수의 광고주들에게만 의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광고영업에 치중하기보다는 십시일반 작은 돈이지만 여러 후원인들이 모아주신 후원금을 기본 운영자금으로 삼아왔던 것입니다.

 

현재 자주민보를 운영하는데 기자 취재지원비와 객원필진 원고료, 서버 임대료 등으로 나가는 비용이 매달 3백만원쯤 됩니다. 여기에다가 기자 중 한 사람이라도 재판에 회부되면 변호사비 등으로 목돈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고 해외 취재나 지방 순회취재를 나갈 경우엔 훨씬 더 많은 금액이 들어갑니다.


현재 정기 후원금은 2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부족한 부분은 이창기 전 대표가 따로 직장생활을 해서 받은 월급으로 메꾸어오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까지 후원금으로 메꿔질 수 있다면 이창기 기자도 좀더 자주민보에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며 더 많은 객원필진과 기자를 충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제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어 독자 여러분께 이런 부탁드리는 것이 마음 아프긴 하지만 우리 모두 사생결단으로 독한 마음으로 임하지 않는다면 이 살풍경한 박근혜 정부 공안정국을 헤쳐나가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어 자주민보 애독자 여러분들게 이렇게 간곡히 호소드리는 것입니다.

 

새해엔 자주민보 창간 15주년을 맞이합니다.

홀로 바쁘게 돌아치다보니 10주년 기념식도 치르지 못해서 올 15주년은 애독자들도 모시고 성대하게 치러보려했는데 아쉽게 되었지만 새로운 자주민보2 창간식을 더 멋지게 치르리라 다짐하니 새로운 힘이 불끈불끈 솟습니다.

정말 만 15년의 시간은 자주민보 성원들에게는 더없이 보람넘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바로 나날이 늘고 뜨거워져 왔던 애독자 여러분들의 사랑과 함께 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주민보 애독자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새해엔 더욱 건강하시고 가정에 만복이 깃드시어 늘 행복이 가득하시길 축원드립니다.
[2014년 12월 31일 내곡동에서 이창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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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사람이 오체투지 지렁이 벗들에게

[기고] 쌍용차 해고자 원직복직과 정리해고 법제도 폐지를 위한 2차 오체투지 행진
 
입력 : 2015-01-05  09:08:31   노출 : 2015.01.05  09:40:35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고자. 굴뚝농성 223일차) |media@mediatoday.co.kr 
 

혼자 공장 굴뚝에 오른 지도 벌써 223일째다. 가동이 멈춰져 있는 공장은 밤이 되면 무척이나 어둡고 을씨년스럽다. 까마득한 무인도에라도 버려진 듯 아득할 때가 많다. 가끔 쌍차 공장 굴뚝에 오른 김정욱과 이창근은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낮밤없이 공장이 돌아가는 소리라도 나니 말이다. 가끔 혼자 노래도 불러보고, 아아 하고 말도 해본다. 결코 지지 않으리라는 불길이 가슴에 타고 있어 추위를 견뎌본다. 저 아래 세상이 조금은 모두에게 안전하고 평화롭고, 평등한 세상이 될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

2015년 새해가 밝았다. 작년엔 사회 여기저기 아픔이 많았는데, 올해는 모두에게 조금씩은 희망이 다시 움트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5년 새해의 첫 희망을 만들겠다고 쌍용자동차 해고자들, 기륭전자분회원들, 콜트-콜텍 해고자들, 스타케미칼 해고자들,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 씨엔엠을 이어 투쟁 중인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들, 학교비정규 노동자들, 알바연대 청년들 등이 마음을 모았다고 한다. 1월 7일 아침 9시, 서울 쌍용자동차 구로정비공장 앞에서 오체투지로 다시 국회와 청와대를 향해 간다고 한다. 대개가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을 투쟁해오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1차가 ‘비정규 법제도 전면폐기’ 선포였다면, 2차는 ‘쌍용자동차 해고자 원직복직과 정리해고제 폐지를 위한 오체투지’라고 한다. 

쌍용자동차 지부는 잘 알려진 데로 2009년 77일간의 옥쇄파업을 시작으로 대한문 분향소 투쟁과 몇 번의 단식과 2번의 고공농성을 해야 했다. 회계조작이 밝혀져 정리해고가 잘못 되었다는 고등법원 판결도 받았었다. 대법원은 해당 법리의 오해가 있는지 정도를 판단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명확치 않은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파기환송이라는 형식으로 쌍용자동차 해고자들 뿐만 아니라 온 사회에 찬물을 끼얹었다. ‘해고는 살인이다’고 목이 터져라 외치다 죽어간 26명의 목숨도 부족해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들에게 죽어라 한다. 김정욱과 이창근을 다시 저 하늘굴뚝으로 밀어 올린 것은 그런 대법원의 살인적인 판결이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어떠한가. 2008년 두 명의 여성 노동자가 기륭전자 정문 경비실 옥상에 올라 94일 동안을 굶어야 했다. 세 번의 고공농성과 두 번이나 국회의사당 점거를 했다가 끌려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싸우고도 해결이 안되다 2010년 겨울에야 국회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투쟁을 마무리 했다. 간만에 반가운 소식, 정규직화였다. 온 사회가 내일인양 기뻐했었다. 하지만 그뿐 2013년 12월 30일 기륭 최동열 회장은 회사를 통째로 야반도주 한 후 지금까지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인수 당시 1000억대에 달하던 회사 자산은 모두 빼돌려 6천만 원짜리 껍데기 회사를 만들어 놓았다. 텅빈 사무실을 350일 동안 지키다 지난 연말 5일간의 오체투지로 ‘비정규직 법제도 전면 폐기’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그 방법뿐임을 가르쳐 주었다. 

콜트-콜텍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박영호 사장은 기술과 물량을 중국과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세우곤 빼돌렸다. 조삼모사도 이런 조삼모사가 있을까. 국내 법인은 ‘경영상의 위기’였다. 한진중공업 조남호가 그렇게 필리핀 수빅에 2조원대 조선소를 지어 수주 물량을 빼돌리곤 국내 조선소는 ‘경영상의 위기’로 만들어 정리해고 명분을 삼았다. 2007년이었다. 그후 법정투쟁을 비롯해 공장 앞 천막농성, 15만 4000볼트가 흐르는 송전탑 고공 단식농성 등 목숨을 건 투쟁을 벌여왔다. 박영호 사장 자택, 낙원상가, 국회, 노동청 등에서 항의 집회와 문화제 등을 열어 실태를 알리기 위해 애썼고 미국, 일본, 독일에서 열리는 국제악기 박람회에 총 여섯 번에 이르는 해외 원정투쟁까지 다녀와야 했다. 투쟁 과정에서 한 조합원이 분신을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2014년 6월 12일, 대법원은 더 나아가 ‘현재의 경영상의 위기’뿐만 아니라 ‘미래에 다가올 경영상의 위기’를 까닭으로도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제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미래에 다가올 경영상의 위기’만으로도 언제든지 쫒겨나야 한다. 

한때는 기륭전자 분회원들처럼 우리 스타케미칼 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에 조그마한 희망의 계기를 만들어 보기도 했었다. 스타케미칼 전신인 구 한국합섬이 파산한 후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명백한 경영상의 위기’에도 우리는 어떤 회사로 인수 합병이 되더라도 ‘고용승계’와 ‘노조 승계’와 ‘단체협약 승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 채권은행이었던 산업은행과 싸웠다. 산업은행의 대주주가 정부이니 정부와 맞서 싸웠던 셈이다. 5년이 걸렸다. 그 5년 동안 가장 가까웠던 친구들이 다시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을 온몸으로 밀고가고 있는 기륭전자 분회원들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따내고 스타케미칼로 복직했었다. 그렇게 복직할 수도 있다는 꿈과 가능성을 이 사회에 남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산 너머 산이다. 한국합섬을 인수한 스타케미칼은 1년 8개월 동안 공장을 돌리는 시늉을 하더니 금세 먹튀 자본의 본색을 드러내 공장의 자산을 분할매각하고, 공장을 청산하겠다고 우리들의 목에 다시 칼을 들이대었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도대체 언제 우리가 이 높고 가파르고 외로운 공장 굴뚝 위로 오르고 싶다 했는가. 언제 우리가 이 추운 겨울 땅바닥을 기고 싶다고 했는가.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일자리 하나를 위해 몇 번이나 목숨을 바쳐야 하는 이 못된 세상을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 결론이 우리가 오늘 도달한 결론이다. 근본적으로 사회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제2의 쌍차, 제3의 스타케미칼, 제4의 기륭, 제5의 정리해고자들, 제6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끝없이 양산되고, 그 고통과 아픔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 노동자들이 싸움을 못해서, 싸움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다. 우리는 알고 있다. 각 단위사업장의 투쟁만으론 이긴다 하더라도 언제나 불안정한 삶의 자리일 뿐이다. 이 모든 불안정을 합법화시키고 있는 비정규 악법과 정리해고 악법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은 누구나 다시 길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안다. 

박근혜 정부와 자본가들은 선거가 없는 올해를 기회로 자본에게 유리한 법들을 만들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정규직은 더 해고하기 편하게 하고, 비정규직의 합법 사용 기간은 늘리는 내용이 종합대책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이 법을 만드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는 듯도 하다. 

이 굴뚝 위의 차광호만 김정욱만 이창근만 위험한 게 아니다. 우리 모두의 현재가 위험하다. 우리 모두의 미래가 위험하다. 우리가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그 누구도 우리에게 안전한 삶의 자리를 줄 수 없는 세상이다. 먼저 조직되어 있는 노동자들이 나서야 한다. 이 오체투지에 같이 하면서 선전해야 한다.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서는 임금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임금 조금 올리는데 한 눈 팔려 있는 그 사이에 당신의 일자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칼자루를 자본에게 쥐어주는 법이 저항 없이 통과될 수 있다. 소탐대실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굴뚝은 우리가 잘 지킬 수 있다. 오히려 모두가 이 오체투지 지상군들로 함께 나서주기를 바래본다. 박근혜 정부의 정리해고-비정규직 확대 양산은 오늘보다 수만배는 더 많은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행진에 함께해서 저들만의 안식처인 국회와 정부종합청사와 청와대를 향해 느리지만 거대한 존엄으로 나아갈 때, 우리 굴뚝사람들 역시 안전하게 땅을 밟을 수 있을 것임을 믿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우리가 만들지 않았다. 우리 노동자는 하나다. 오체투지에 나선 노동자나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나 처지가 다르지 않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다시 선전하고 조직하고 연대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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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신년사를 통해 본 북한의 정책방향


<연재> 정창현의 ‘김정은시대 북한읽기’ (70, 최종회)
정창현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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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05  09:5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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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3년 연속 새해 첫날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했다. 올해의 키워드는 예상대로 ‘해방과 당 창건 70주년’이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새해 2015년은 조국해방 일흔돐과 조선로동당창건 일흔돐이 되는 매우 뜻깊은 해”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모두다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최후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총공격전에 떨쳐나서자!》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전체 군대와 인민이 10월의 대축전장을 향하여 힘차게 달려나가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올해 북한의 정책방향이 ‘10월의 대축전장’, 즉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혁명적 대경사’로 맞이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10월에 35년 만에 노동당 7차당대회가 열릴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이를 위해 신년사에서는 ‘정치사상.군사강국’의 강화, 인민생활의 향상, 평화적 환경 마련 등 3가지 과제를 중요하게 거론했다. 북한은 과거 당대회의 선결조선으로 안보문제의 해결(평화협정 체결), 경제건설, 남북관계(통일문제)의 진전 등을 예시한 바 있다.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심화

우선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정치사상.군사강국’의 강화를 위해 노동당의 유일적 영도체계와 당의 유일적 영군체계를 확고히 세우는 한편 ‘군력강화의 4대전략적 노선’과 ‘3대과업’을 철저히 관철할 것을 과제로 제시했다.

김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당 창건 70돌을 맞는 올해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세우는 사업을 끊임없이 심화시켜 전당이 당 중앙과 사상과 숨결도, 발걸음도 같이 하도록 해야한다”며 “모든 당조직들은 당의 노선과 정책관철을 당사업의 주선으로 확고히 틀어쥐고 당정책을 어느 하나도 놓침이 없이 무조건 끝까지 관철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과 ‘당조직들의 기능과 역할’ 강화는 북한이 매년 신년사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내용이다. 다만 올해는 당사업의 ‘인민대중제일주의’와 사상사업 강화를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김 제1위원장은 “모든 당조직과 당일군(간부)들이 세도와 관료주의를 철저히 극복”해 “당사업 전반을 인민대중제일주의로 일관시켜 전당에 인민을 존중하고 인민을 사랑하며 인민에게 의거하는 기풍이 차 넘치게 하고 당 사업의 주되는 힘이 인민생활향상에 돌려지도록 하여야 합니다”라고 제시했다.

2013년 첫 신년사에서 ‘모든 것을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란 구호를 제시한 김 제1위원장이 지난해 “일군을 위하여 인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하여 일군이 있다”라고 강조한 연장선상에서 올해도 간부의 사업방식을 다시 한번 강조한 셈이다. 김 제1위원장이 신년사 후 첫 방문지로 평양의 고아시설인 육아원와 애육원을 선택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한 마디로 김정은 제1위원장 중심의 유일영도체계를 확고히 하면서 ‘세도와 관료주의’ 척결과 간부의 대민 사업자세 변화를 꾸준히 추진해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료주의, 부정부패 등은 과거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된 문제들이고,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더욱 심화됐다는 점에서 얼마나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사상사업과 관련해 김 제1위원장은 “사상사업을 공세적으로 벌려 우리 혁명의 사상진지를 철통같이 다져나가야 합니다”라며 “위대성교양과 김정일애국주의교양, 신념교양, 반제계급교양, 도덕교양” 강화를 주문했다. 유일영도체계 확립에 따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위대성 교양’을 강화하고, 외부의 대북전단 살포와 사상 공세, 해외교류 확대 등에 맞춰 내부 사상교육을 다양화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군력강화의 4대전략적 노선과 3대과업

김정은 제1위원장은 국방분야에 대해서는 “올해의 혁명무력 건설과 국방력 강화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켜 군사강국의 위력을 더 높이 떨쳐야 하겠습니다”라며 ‘군력강화의 4대전략적 노선과 3대과업’ 관철을 촉구했다.

“인민군대에서는 전군에 당의 유일적 령군체계를 확고히 세우며 오중흡7련대칭호쟁취운동과 근위부대운동을 힘있게 벌려 당이 제시한 군력강화의 4대전략적로선과 3대과업을 철저히 관철하여야 합니다.”

여기서 언급된 ‘오증흡7연대칭호쟁취운동’에 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전군 김일성주의화의 요구에 맞게 모든 인민군장병들을 우리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는 총폭탄으로 튼튼히 준비시켜 인민군대를 최고사령관의 친위대, 결사대로 만들기 위한 집단적 혁신운동”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또한 북한에서는 “당의 유일사상체계가 튼튼히 서고 당의 자위적군사사상과 군사로선을 관철하는 투쟁에서 특출한 위훈을 세운 조선인민군 부대, 련합부대들이 수령의 높은 정치적신임에 의하여 근위칭호를 받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두 운동 모두 기본적으로 최고사령관과 당의 노선에 대한 충실성을 판정해 칭호를 주는 것이다. 결국 김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대목은 군내에 유일적 영군체계를 확고히 하고(총정치국의 강화), 두 운동을 통해 인민군대를 최고사령관과 당에 충실한 군대로 만들어 당이 제시한 군력강화 노선과 3대과업을 관철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 제1위원장이 언급한 ‘군력강화의 4대전략적노선’과 ‘3대과업’이란 무엇일까? 북한은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다만 지난 3년 간 김 제1위원장의 발언과 군부대 현지지도를 통해 유추해 볼 수는 있다.

김 제1위원장이 ‘군력강화의 4대전략적 노선과 3대과업’이란 단어를 공개적으로 처음 사용한 것은 지난해 12월 1일 인민군 제963군부대직속 포병중대의 ‘전투정치훈련’을 시찰했을 때이다. 당시 그는 “군력강화의 4대전략적 노선과 3대과업을 철저히 관철하여 모든 인민군 장병들을 진짜배기 싸움꾼들로 준비시키며 최정예 혁명적 강군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야 한다”라고 제시했다.

올해 신년사에 포함된 국방분야의 과제들을 볼 때 여기서 언급된 4대전략적 노선은 1) 전투정치훈련에서 형식주의, 고정격식화 배격 2) 인민군 후방사업의 획기적 전환 3) 노농적위군, 붉은청년근위대의 전투력 강화로 자기 향토를 지킬 수 있는 전민항전 준비 태세 확립 4) 군수생산의 주체화, 현대화, 과학화 등으로 보인다.

다만 김 제1위원장이 지난해 12월 1일 현지시찰 때 “모든 지휘성원들과 군인들이 정치학습에 빠짐없이 성실히 참가함으로써 오직 당이 가리키는 한 방향으로만 총구를 내대고 나아가는 투철한 신념의 소유자, 전위투사들로 준비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는 점에서 위의 4가지 중 하나가 빠지고 유일사상교양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교양사업의 강화가 포함돼 있을 수도 있다.

또한 ‘3대과업’은 신년사에 언급된 ‘수령보위, 제도보위, 인민보위’라고 추정할 수 있다. 다만 ‘군력강화의 3대과업’이란 측면으로 해석한다면 ‘4대전략적 노선’을 추진하는데서 제기되는 3가지 과제라고도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4대전략적 노선’을 1960년대 채택된 ‘4대군사노선’(전인민의 무장화, 전군의 간부화, 전지역의 요새화, 전군의 현대화)으로 해석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은 김정은시대에 들어와 군대가 작전, 전역, 전투, 교전에 있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규정한 ‘군사교리’를 새롭게 만들고, 이를 적용한 훈련을 해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것은 1960년대의 ‘4대군사노선’과는 질적으로 다른 내용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김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훈련내용과 방법을 끊임없이 개선하여 훈련의 질을 높이는데서 전변”을 가져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후방사업(군인의 복지 및 후생)을 ‘사회주의 수호전’이라고 규정하고 있고, 특히 김정은시대에 들어와 군인의 먹거리와 생활환경 개선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올해 신년사에서는 “군인들에게 더 훌륭한 생활조건을 마련해주며 모든 대대, 모든 중대들을 최정예전투대오로, 당중앙위원회의 뜨락과 잇닿아있는 병사들의 정든 고향마을과 고향집으로 꾸려야 합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확립 강조

관심을 보았던 경제개선 조치와 관련된 언급은 올해 신년사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심지어 협동농장에서 시행에 들어간 포전담당책임제도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우리 식 경제관리방법 확립’을 언급해 그동안 시범적, 연구 차원에서 진행됐던 경제개선 방안이 마무리 단계에 있음을 시사했다.

김 제1위원장은 “내각을 비롯한 국가경제지도기관들에서 현실적 요구에 맞는 우리 식 경제관리방법을 확립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내밀어 모든 경제기관, 기업체들이 기업활동을 주동적으로, 창발적으로 해나가도록 하여야 합니다”라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 김 제1위원장은 지난해 5월 30일 당, 국가, 군대기관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우리 식 경제관리방법을 확립할데 대하여〉)에서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은 과학기술과 생산경영관리를 경합하고 과학기술의 힘으로 경제를 발전시켜나가는 혁신적인 관리방법으로 되어야 합니다”라며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핵심내용으로 제시했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공장, 기업소, 협동단체들이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주의적 소유에 기초하여 실제적인 경영권을 가지고 기업활동을 창발적으로 하여 당과 국가앞에 지닌 임무를 수행하며 근로자들이 생산과 관리에서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게 하는 기업관리방법입니다. 기업체들에서는 또한 제품개발권과 품질관리권, 인재관리권을 행사하여 지식경제시대의 요구에 맞게 새기술, 새제품을 적극 개발하고 제품의 질을 개선하여 기업체의 경쟁력을 높이며 과학자, 기술자들과 근로자들을 최첨단돌파전의 주인으로 내세워 기업체가 새기술의 적극적인 수요자, 창조자가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과학기술과 생산의 밀착이고 지식경제에로 나가는 길입니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해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에서 직장과 작업반․분조단위로 근로자들의 담당책임제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근로자들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이미 북한은 협동농장에서 포전담당책임제를 전면 실시해 식량증산에 큰 효과를 본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이 지난해 목표로 했던 식량 생산 600만톤에는 미달했지만 가뭄 등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 2013년보다 증산을 이룬 것도 포전담당책임제 도입이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김 제1위원장은 ‘5.30담화’에서 “경제지도일군들은 물론 모든 일군들이 고난의 행군시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경제문제와 인민생활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자신을 깊이 반성해보아야 한다”며 “일군들이 낡은 틀과 격식에서 벗어나 경제관리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혁신적으로 풀어나가 것”을 주문했다.

올해 신년사에 경제개선조치들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우리 식 경제관리방법’확립을 언급함으로써 앞으로 경제관리 개선을 위한 후속조치들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2002년 사회주의경제관리개선 조치(7.1조치)처럼 종합적인 조치가 한꺼번에 발표되는 것이 아니라 분야별로, 여건이 마련되는 사안부터 순차적으로 도입해 시행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과제로는 농산과 축산, 수산을 3대 축으로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식생활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것과 중앙과 지방 경공업공장에서 생산을 정상화하는 문제가 주요하게 다뤄졌다.

김 제1위원장은 대외경제와 관련해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구를 언급하며 “경제개발구 개발사업을 적극 밀고 나가야 한다”고 경제특구 정책의 지속성을 확인했다. 금강산 특구를 특별히 언급한 것은 금강산관광 재개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표현으로 보인다.

평화적 환경 조성과 최고위급회담 언급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처음으로 최고위급회담(남북정상회담)을 직접 언급하며 “북남 사이 대화와 협상, 교류와 접촉을 활발히 하여 북남관계에서 대전환, 대변혁을 가져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전반적으로 지난해 내놓은 ‘중대제안’, ‘특별제안’, 황병서 총정치국장 등 ‘측근 3인방’의 인천방문 시 발언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김 제1위원장은 “남조선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립장이라면 중단된 고위급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문별회담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라며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최고지도자가 직접 2013년 11월 박근혜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언급에 화답하며,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한 ‘대통로’란 발언이 정상회담을 의미한다는 점을 공식 확인한 것이다. 정상회담까지 언급하며 박근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남북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한 셈이다.

김 제1위원장이 강력하게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히고, 박근혜 정부도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1월중에 남북고위급접촉(회담)이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회담이 잘 될 경우 이산가족상봉과 금강산관광 재개에 돌파구에 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 신년사에는 지난해 2월 남북고위급회담 이후 한미합동군사연습과 한미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오히려 갈등이 격화됐던 경험이 반영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곳곳에 단서 조항이 붙어 있다.

우선 김 제1위원장은 “남조선당국은 외세와 함께 벌리는 무모한 군사연습을 비롯한 모든 전쟁책동을 그만두어야 하며 조선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는 길로 발길을 돌려야 합니다”라며 남북관계 개선 위해서는 긴장 완화와 평화적 환경 마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고위급회담을 언급하면서도 분위기와 환경 마련을 거론했다.

지난해처럼 한미합동연습이 강화되고, 대북전단 살포가 계속된다면 언제든지 남북 간 합의가 뒤집어 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북한이 체제의 안정과 경제난 완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남북대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평가를 하고 있지만 북한은 올해 당대회 개최를 염두를 두고 남북관계 개선에 일정한 성과를 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한은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다양한 대화를 공세적으로 제의하며 유연한 태도로 실제 성과를 내려는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정부는 10월 4일 북한 ‘측근3인방’의 방한을 계기로 12월 중순경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기로 외교안보라인에서 의견이 모아진 듯하다.

그러나 남북대화에 임하는 남북 간 동상이몽의 간격이 워낙 커 금강산관광 재개라는 시험대를 통과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 외교라인의 갈등과 무능력, 대북강경파의 견제 등으로 상반기 안에 북미대화와 6자회담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할 경우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지난해와 같이 혼란스럽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화가 열린다고 해도 실타래처럼 꼬인 남북관계가 진전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낙관적이지 않다. 일단 대북전단 살포 중지와 금강산관광 재개가 변수다. 2월 안으로 두 가지 문제(소통로)에 진전이 있어야 대통로로 이어지는 국면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신년사에서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한 것에 대해 “최고지도자의 육성으로 남북관계 대전환의 지름길이 제시된 천금과 같은 기회를 놓침이 없이 남측이 결단을 내려야 교착상태가 타개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국내외 냉전구조를 깨는 결단을 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 같다. 설사 지난해 말 남북 간에 모종의 접촉이 있었고, 그 접촉에서 남북정상회담 문제가 논의됐다고 하더라도 지난해 잃어버린 1년의 시간을 벌충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한 것이 아닐까. 지난해보다 대화와 교류가 활성화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대전환을 기대하기에는 구조적 제약이 너무 크게 다가온다.

※ 2013년 5월 〈김정은시대 북한 읽기〉란 연재제목으로 첫 기사가 나간 후 70회가 됐습니다. 김정은체제가 출범한 지 3년이 지나면서 김정은시대 북한의 정책노선도 상당히 구체화 되었고, 사회시스템도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것 잡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연재를 끝낼 시기가 됐다는 판단입니다. 그동안 연재에 보내주신 과분한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올해부터는 다른 내용과 형식의 기사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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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단원고 2학년 교실은…

[포토스케치] 2015년, 단원고 2학년 교실은…

오열하는 어머니, 사진 속 웃음으로 화답하는 아이들

손문상 화백 2015.01.04 08:4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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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남쪽 너른 창에 햇볕 한가득 부서지고 있다. 어두운 계단을 올라 들어온 이승의 교실은 부서진 햇살이 아이의 책상 위에 소복소복 내려 쌓여 천상인 듯 평화롭고 한없이 고요했다. 그 고요 속에 가라앉은 아이들 책상 하나하나 마다 작은 꽃들이 별처럼 반짝였다. 그 꽃잎 주위로 그리움으로 쓰다듬은 애절한 사랑의 손길이 작은 종이에 조각 글로 넘쳤고 책상 위 사진 속 아이들이 웃음으로 화답하고 있었다.
    
2015년 1월 3일 오후, 안산 단원고 2학년 각반 교실에 한낮 풍경은 이곳이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곳임을 말하고 있었다. 아이의 생일을 맞아 이날 교실을 찾은 2학년 7반 손찬우 군의 어머니가 찬우 군의 책상 옆에서 오열을 하고 있다. 
 
▲손찬우 군 어머니의 뒷모습ⓒ프레시안(손문상)

▲손찬우 군 어머니의 뒷모습ⓒ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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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왕’ 영웅이라고? “비정규직 노예처럼 부리는 곳”

MBN 신년기획 ‘희망 일구는 소영웅’ 첫편 청소업체 구자관 대표 구설
 
입력 : 2015-01-03  18:07:38   노출 : 2015.01.03  19:03:54
김유리 기자 | yu100@mediatoday.co.kr   
 

MBN이 소영웅을 찾는 신년기획에서 첫 번째 영웅으로 내세운 구자관 대표의 청소업체 삼구아이엔씨가 사실상 소속 환경미화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탄압했다는 증언이 나와 구설에 올랐다.

MBN은 지난 2일 <“아줌마라고 부르지 마세요”…‘청소왕’ 구자관 대표>라는 기사에서 “청소부 1만7000여명과 함께 청소기업 왕국을 만들고 있는 ‘청소왕’ 구자관씨”라고 구 대표를 소개했다.

MBN은 “우리 사회에 존경받는 영웅이 별로 없는데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찾기 위해 우리 주변에서 묵묵히 일하며 희망을 일구는 소영웅을 신년기획으로 취재했다”라며 구 대표를 소개한 꼭지 취지를 밝혔다.

MBN은 청소업체 삼구에 대해 “청소 대행기업 대부분이 계약직 사원을 고용하는 상황에서 모든 직원의 정규직 채용을 고집하며 심지어 명함까지 주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수익 대부분을 직원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정해진 월급만 받는 어찌 보면 바보 같은 사장”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실제 삼구에 소속돼 일했거나 일하고 있는 환경미화 노동자들은 구 대표에게 붙은 ‘청소왕’ ‘영웅’이라는 수식어에 어리둥절한 반응이었다.

삼구는 서울여대에서 2013년 11월까지 약 9년 동안 청소 등 시설 관리 업무 계약을 맺었다. 당시 서울여대에서 근무했던 환경미화 노동자 A는 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비정규직을 그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사람을 어떻게 ‘영웅’으로 미화할 수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언론 등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설립되기 직전 환경미화 노동자들은 하루 8시간 이상을 일 했고 월급으로 최저임금에 못미치는 63만원을 받았다.

   
▲ MBN 방송화면 캡쳐.
 

 

A는 “1년 단위로 매년 계약을 갱신했고 연차도 쉬는 토요일에 쓰라고 해 연차를 쓰기는커녕 연차수당도 한번 제대로 못 받아 봤다”며 “작업화를 한 번 사줘봤나, 심지어 청소에 필요한 걸레도 지급하지 않아 기숙사를 나가는 학생들이 버리는 천으로 걸레를 대신했다”고 말했다.

A는 또 “회식 때에도 비싸다고 맥주도 먹지 못하게 했고 고기도 정해진 양 이상을 시키지 못하게 했다”며 “비정규직에게 밥이나 한 끼 제대로 사주고 그런 말을 했으면 억울하진 않겠다”고 강조했다.

고용도 불안했다. 그는 “마음에 안 드는 환경미화원은 그냥 자르기도 했다”며 “‘까만 봉투 해고’가 가장 유명하고 어이없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까만 봉투 해고’는 연말에 사측에서 소속 환경미화 노동자의 작업복을 까만 봉투에 담아오라고 해서 연초 출근해서 자신의 작업복이 없어지면 비로소 해고라는 걸 알게 되는 식이다.

A는 “당시 소장의 비위인지 삼구 기업 차원의 비위인지를 다 가려낼 수는 없지만 연차를 못쓰게 하는 게 소장 개인 차원에서 가능한 일이겠느냐”며 “기업에서 소장을 내려 보냈으면 소장의 그 비위까지 관리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삼구는 2014년부터 이화여대 청소 용역 업체로 계약을 맺고 운영 중이다. 이화여대에서 고용 업체를 바꿔가며 8년째 일하고 있다는 환경미화 노동자인 B씨는 “현재 삼구에서 일하고 있는데 1년 단위로 계약이 갱신되는 상황은 변한 게 없다”고 말했다.

B는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서 4대 보험, 퇴직금 등을 인정받았고 이전 청소용역 업체의 단체협약을 그대로 승계해 삼구에서도 4대 보험 등이 인정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MBN에 출연한 구자관 삼구아이엔씨 대표
 

회사에서 명함을 지급하는 것은 인정했다. 그러나 B는 “회사에서 개인당 몇장씩 해주기는 하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며 “그런게 다 낭비고 그럴 여유가 있으면 환경미화 노동자에게 필요한 걸 하나 더 해주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

A는 “회사와 명함 업체의 친분 때문에 해준 것으로 안다”며 “그럴 돈이면 청소 도구나 제대로 사주는 게 낫다”고 일침을 가했다.

삼구 소속으로 현재 이대 용역업체를 맡고 있는 박미용 소장은 소속 환경미화 노동자의 근로 조건에 대해 “정규직”이라고 말했으나 “지난해 1월 이화여대와 청소용역 계약을 한 후 노동자와는 6월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했고 올해는 계약서 재서명 없이 고용이 승계됐다. 근로계약서에는 1년 단위로 돼 있고 자동 갱신되는 형태”라고 인정했다. 사실상 계약조건이 1년 단위로 갱신되는 비정규 계약직이다.

이에 대해 김윤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조직차장은 “청소 대행업체가 원청과 계약해지가 될 경우 소속 직원이 자동으로 해고 되는 수순에서 청소 대행업체 직원의 정규직화는 어불성설이고 특히 삼구는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고 있어 정규직이라고 볼 수 없다”며 “4대보험·퇴직금 등은 노조와 사측의 단체협약을 통해 쟁취한 것으로 대행업체가 정규직 조건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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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사업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MB 발언은 비겁한 변명”

 

4대강조사위원회 박창근 교수 "4대강 사업의 재앙, 점점 드러날 것"

옥기원 기자 ok@vop.co.kr 발행시간 2015-01-02 18:01:21 최종수정 2015-01-02 18:48:16
 
정부의 4대강 조사 결과 못 믿는다.
26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4대강복원범국민대책위원회와 4대강조사위원회가 국무조정실 4대강조사평가위 조사결과에 대한 시민사회의 분석 및 평가 기자회견을 열고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교수가 4대강사업 조사·평가 결과에 대한 수자원 분야 분석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4대강 사업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발언은 사업 이후 나타난 총체적 부실을 감추기 위한 변명입니다.”

박창근 카톨릭관동대 교수(토목공학)는 2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 사업 공과를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발언에 대해 책임 회피성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사업이 완료된 지 2년도 지나지 않아 보 안전성, 녹조 및 수질악화, 홍수감소 효과 미비 등의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이 지적들은 4대강 사업 이전부터 환경전문가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제기돼 왔고요. 곳곳에서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4대강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는데 10년 뒤에 평가할 일이라는 발언 자체가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닌가요?”

박창근 교수는 한반도 대운하가 언급되던 지난 2008년 전국 2500여명의 대학교수들과 ‘운하반대교수모임’을 결성해, 이후 4대강 사업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들을 지적해왔다. 이 같은 활동을 통해 박 교수는 지난 2008년에 한국환경기자클럽이 선정하는 ‘올해의 환경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새해 첫날 새누리당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과 관련해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자리에서 이 전 대통령은 “물 공사는 10년이 하자 보수 기간”이라면서 “약간의 문제들이 발견됐지만, 앞으로 모두 하자 보수하면 된다”며 시간을 더 두고 4대강 사업의 공과를 평가해야 한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이에 김무성 대표를 포함한 새누리당 지도부는 “역대 정권이 더 많은 돈을 들여 정비하려던 사업을 (지난 정권 때) 20조원을 들여 해냈다”며 사업의 불가피성에 공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녹조라떼 손에 든 비리덩어리 이명박'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가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과 원자력 발전, CJ그룹 비자금 등에 대한 검찰 수사 지시를 촉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한해 6000억 유지관리가 약간의 하자 보수?”

박 교수는 “4대강 사업은 실패한 토건 사업의 전형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환경적 재앙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전혀 실효성 없는 사업으로 기록될 거라는 것이 박 교수의 주장이다.

“4대강 사업 이후 발생한 부작용을 치유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비용만 한 해 6000억원 정도가 들 것으로 예상합니다. 환경부 수질개선비용이 빠져 있어서, 이같은 비용이 더해지면 유지관리비는 더 높아집니다. 사업에 있어서 편익은 없고 지출만 있는, 말 그대로 전혀 경제성이 없는 사업이에요.”

박 교수는 보 안전성뿐만 아니라 4대강 사업의 목적 중 하나였던 홍수감소 효과도 미비하다고 주장했다.

“보 밑으로 형성된 물길을 따라 물이 위로 솟구치는 ’파이핑 현상’으로 보 밑을 바치는 모래가 급속도로 유출되고 있습니다. 적절한 유지보수가 없다면 함안·합천보 등이 기울거나, 무너질 수 있어요. 또 국무조정실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보 구간에서 홍수저감에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홍수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어요. 당초 사업의 목적성을 상실한 졸속 공사를 10년 뒤에 평가하자는 말은 현재 드러난 총제적 부실을 입막음 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합니다.”

[화보]“하늘에서 본 낙동강, 700리 강물이 썩고 있다”
4대강 사업으로 상류에서 하류까지 낙동강이 녹색의 썩은 물로 변해가고 있다. 낙동강복원 부산시민운동본부가 지난 6월 항공촬영한 낙동강 사진을 언론에 공개했다. 사진은 낙동강 박진교를 거쳐 내려가는 강물의 모습. 녹조현상이 심각하다.ⓒ낙동강복원부산시민운동본부

‘죽음의 공간’ 4대강...“후속작업 중단하고 책임자 처벌해야”

박 교수는 4대강 사업 이후 사업이 진행된 전역에서 멸종위기야생동물이 사라지는 등 생태 파괴가 심각하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가 참여하는 4대강조사위원회는 국무조정실 4대강조사평가위원회 발표 이후인 지난 26일 성명을 통해 “획일적 준설 등으로 생물 서식지가 줄어들었고, 장기적으로 생물 다양성이 감소하고 있다”며 4대강 사업을 생태계 측면에서 전혀 쓸모 없는 사업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위원회는 “4대강 사업의 목표가 가뭄해소, 홍수저감, 수질개선, 수생태계 복원이었지만 사업 이후 수질 악화, 수생태계 생물다양성 감소라는 결과를 초래했고, 홍수저감과 가뭄해소의 타당성도 확인받지 못했다”며 “4대강 사업이 진행된 전 구간의 생태계가 회복 불능한 상태에 접어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의 작년 10월 발표에 따르면 4대강 사업 전후 환경평가 등을 비교해 본 결과 사업이 진행된 일대에서 담비와 하늘다람쥐, 물범 등 보호 포유류들이 발견되지 않았다. 또 사업이전 41종 이상 발견되던 보호 조류 역시 2013년도에는 21종만 발견되고 있다.

박 교수는 “수질악화나 녹조 등의 문제는 4대강 사업 이전에도 이미 많은 전문가가 예견해 왔다”며 “현재 환경전문가들이 생태계 파괴와 홍수 효과의 미비 등의 문제를 하나같이 지적하고 있는 만큼 4대강 사업의 비효율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명확해 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4대강 사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영주댐 공사 등 남은 4대강 사업과 지천 정비사업 등의 후속 사업의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4대강 사업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수습하기 위한 4대강 후속대책이 4대강 사업의 문제점들을 가리는 악순환이 될 것이라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또 박 교수는 불투명한 사업추진과정과 실패한 사업목적 등을 감안해 국정조사 같은 특단의 조치를 통해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대강 사업 피해 실태 사진들
2일 오전 서울 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진행된 '4대강사업 문제해결을 위한 범국민 기자회견'을 통해 4대강 시민조사 결과 발표와 4대강 건설사 비리, 불법, 담합 수사를 촉구했다.ⓒ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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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폭발물 던진 고3, 그래도 용서하고자

 

[통일콘서트 부상자 이재봉 교수가 보내는 편지] 신은미씨도 테러범도 종편방송 피해자

15.01.03 19:19l최종 업데이트 15.01.03 21:20l

 

 

2014년 말미 전북 익산 신동성당에서 일어나 신은미·황선 통일콘서트 테러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폭발물에 의해 화상 피해를 입은 이재봉 원광대 교수는 테러범을 용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익산 통일콘서트를 준비한 당사자였던 이 교수가 편지를 보내와 싣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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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미씨의 토크 콘서트 현장에서 있던 테러 당시 사진.
ⓒ 오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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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엔 폭력과 독재 대신 평화와 민주를 맞이하게 되길 기원합니다. 

저는 지난해 12월 10일 전북 익산 신동성당에서 열린 '신은미·황선 통일토크 콘서트'에서 고등학생 A군이 던진 폭발물에 의해 화상을 입었습니다. 제가 테러를 당하자 많은 분들이 걱정하며 격려해 주셔서 언젠가는 경과를 알려드려야겠다고 맘먹고 있었습니다.

마침 지난해 마지막 날 밤 A군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보수 지향적이 되었다는 사연을 곁들이며 저를 포함한 피해자들에게 사과했습니다. 2주 전에 제가 면회하면서 던진 질문에 대한 보충 답변이지요. 여러분의 고견을 구할 겸 새해 인사 삼아 그 동안에 있었던 일을 보고합니다.

테러 피해의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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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4년 12월 10일 오후 전북 익산에서 열린 신은미·황선 통일 토크콘서트의 진행요원으로 참석했다 폭발물 테러로 화상을 입은 곽아무개씨가 자신의 심경을 밝히고 있다.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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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드린 대로 저는 지난 12월 10일 신은미·황선 통일토크 콘서트에서 폭발물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유일한 피해자도 아니고 가장 큰 부상자도 아니지만, 언론에 의해 가장 널리 알려진 피해자가 되었지요. 

아래위 옷뿐만 아니라 머리카락에 불이 붙고 양쪽 신발에까지 구멍이 뚫릴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얼굴과 무릎의 상처는 이제 거의 아물었고 손목에서도 며칠 전부터 새살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큰 통증은 없지만 목욕이나 샤워는커녕 세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몹시 불편하군요. 이틀에 한 번 꼴로 병원에 가며 귀중한 시간과 돈을 허비해야 하는 것은 더욱 괴롭고요.

가장 크게 신체적 피해를 입은 사람은 서울에서 내려온 행사 진행자였습니다. 테러범이 폭발물질이 든 그릇에 불을 붙여 무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발견하고 내려치느라 특히 얼굴을 크게 다쳤습니다. 신은미씨와 황선씨에겐 생명의 은인인 셈인데, 시간이 지나도 얼굴 일부는 완전히 복구되기 어려울 것 같다는군요. 성당을 빌리도록 주선해준 한 원로신부는 불편한 몸으로 빨리 피신하지 못해 유독가스를 많이 들이켜 한 동안 호흡 곤란을 겪었고요. 

신체적으로 해를 입은 사람은 저를 포함해 이렇게 셋입니다. 셋이 앉은 자리가 각각 떨어져 있었는데도 직간접적으로 행사를 주관한 사람들만 골라 다쳤으니 불행 중 천만다행이지요. 물론 그 자리에 참석한 200여 명 모두 얼마나 큰 심리적 충격을 받았겠습니까만, 일반 청중 가운데 신체적으로 다친 사람은 없으니 그야말로 하느님이 보우하사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날은 행사 이틀 전 제가 <오마이뉴스>에 올린 글을 보고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과 경비를 들여 참석했던 사람들의 피해를 일일이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긴 합니다.(관련기사: 신은미씨 옵니다...뉴라이트와 탈북자 분들도 오세요)

테러범과의 면회 및 부모와의 만남

이틀 뒤 폭발물을 던진 A군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익산경찰서에 10여 차례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통화가 되지 않아 면회를 포기했는데, 그날 저녁 A군의 부모가 제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부모는 제 치료비를 부담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부모에게 대충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다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반성과 사과이지 돈이 아닙니다. 진보적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권력도 금력도 완력도 없지만, 극우세력이나 폭력을 옹호 지지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이 확실하게 지니고 있는 게 있습니다. 도덕성과 양심이지요. 치료비를 조건으로 합의를 추진하지 마세요."

일 주일 뒤 익산경찰서 유치장에서 테러범 A군을 만났습니다. 앳된 모습의 조그만 체구가 고3 같지도 않더군요. 얼굴과 팔다리에 화상을 입은 직후 응급실에 실려가 병상에 누워 있을 때 테러범이 '1996년생'이라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주위에서는 "탈북자인가 보다" 했지만, 저는 잘못된 정보라 생각하고 무시했습니다. 

그렇게 응급치료를 받고 병원을 나서는 길에 테러범이 고교 3년생이라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1996년생 18세 고등학생이 정치 테러를...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성당 앞에서 방해 시위를 하던 60~70대 어르신들에게 당했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말이죠.

익산경찰서 면회실의 두꺼운 유리벽 건너편 학생에게 먼저 다음과 같이 말을 건넸습니다. 

"자네 참 대단하군. 요즘 대학생들조차 진학이나 취업 때문에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거나 못하는데 고등학생이 사회 문제에 그렇게 큰 관심을 갖다니 말이야. 자네나 나나 우리 사회를 좀 더 살기 좋게 만들어보자는 목표는 비슷하겠네. 그러나 방법이 크게 다르군. 난 비폭력적 방법으로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데 자네는 폭력으로 사회를 바꾸려 하니까. 

사회의 부정과 비리에 대처하는 가장 훌륭한 길은 비폭력 저항일세. 두 번째 좋은 방법은 폭력으로라도 맞서는 것이고. 세 번째는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든 저항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일세. 무관심하거나 무지해서 저항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용기가 부족하거나 비굴해서 저항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 자네는 세 번째 부류의 젊은이들보다 훨씬 낫다는 뜻일세. 그런데 내가 추구하는 비폭력 방법과 자네가 저지른 폭력적 방법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지 앞으로 차분하게 잘 생각해보게."

저는 20여 년 전 미국의 대학원에서 평화학과 비폭력정치학을 배우면서부터 모든 종류의 폭력을 거부해 왔습니다. 연년생 두 아들을 키우면서 가벼운 손찌검이라도 한 번 해본 적 없지요. 그러기에 행사 당일 두어 시간 전부터 성당 입구에 이른바 '애국' 어르신들이 모이기 시작한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카톡과 페북 등을 통해 급히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어르신들이 어떠한 시비를 걸더라도 대응하지 말라고요. 혹시 때리면 그냥 맞고 들어가라고 부탁했습니다.

A군에게 언제부터 북한이나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가졌는지 물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교회에서 탈북자 선교사의 강연을 듣고 나서부터라고 하더군요. 교회에서 사랑이 아니라 증오를 배운 셈이랄까요? 크게 나무랐습니다. 

"이 사람아, 예수님의 가장 큰 가르침 가운데 하나가 원수도 사랑하라는 것 아닌가. 그런데 교회 다닌다는 사람이 그렇게 끔찍한 폭력을 저질러?"

사실 테러 직후 실려 간 응급실에서 테러범이 18세 고3이라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손양원 목사였습니다. 1948년 여수·순천 지역에서 일어난 '항쟁' 또는 '반란' 과정에서 자신의 고등학생 아들 둘을 때려죽인 좌파 청년이 사형에 처해지기 직전 구출해 양아들로 삼아 목사로 키운 분이죠. 

20여 년 전 손양원 목사의 딸이자 죽은 두 아들의 누나가 쓴 수기를 읽고, "이 분이 과연 인간일까?" 하는 경외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A군을 만나면서 바로 그 분이 생각났습니다. 그 때 좌파 청년이 우파에게 저지른 살인 행위를 용서하고 그 살인범을 자신의 아들로 삼은 목회자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흉내 내어 우파 청년이 저지른 테러를 용서하면서 제 학생으로 삼아보는 게 어떨까 하는 발상을 품은 것이지요. 겨우 2도 화상을 입은 제 자신과 두 아들을 한꺼번에 잃은 아버지를 비교한다는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합니다만.

그래서 그 학생을 만나기 전 제 집을 찾아온 부모에게 위 사연을 들려주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요즘 '애국'한다는 사람들은 아드님의 테러를 옹호하고 지지하며 '지사'나 '열사' 칭호를 붙인다는군요. 경찰서 앞에 100여 명씩 모여 '석방'과 '불구속 수사'를 외치고, 모금운동을 전개하며, 앞으로 해외유학까지 시켜줄 계획이라는 소문도 들립니다. 그러면 아드님이 지금은 테러 초년생으로 폭발물질을 던졌지만 다음엔 테러 왕초가 되어 기관총까지 쏘아댈 수 있지 않겠어요? 저는 아드님에게 그런 물질적 지원은 조금도 하지 못하겠지만 아드님을 포용해 진보 쪽으로든 보수 쪽으로든 비폭력 운동가로 이끌어보고 싶습니다." 

부모가 동의하더군요.

종편방송 왜곡보도의 폐해

그 학생에게 두 번째 질문을 던졌습니다. 

"자네가 죽이고자 했던 신은미씨가 쓴 책을 단 한 페이지라도 읽어보거나 그녀가 이전에 한 강연을 단 한 대목이라도 직접 들어본 적이 있는가?" 
"죽이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인터넷 게시판에 미리 알리지 않았는가. '신은미가 폭사 당했다고 들리면 난줄 알아라'고 말이야. 아무튼 신은미씨를 어떻게 알았는가?" 
"TV뉴스를 보고 알았어요."

테러범 A군도 종편방송 왜곡보도의 희생자였습니다. 그 학생뿐만 아니라 신은미씨의 강연을 반대하거나 방해한 사람들 가운데 그녀의 글 한 쪽이라도 직접 읽거나 강연 한 대목이라도 제대로 들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묘사했다는 종편방송의 악의적 왜곡보도에 온 사회가 휘둘린 것이지요. 

저는 지난 6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항소심에서 전문가 증언을 한 것과 관련해 극우언론의 왜곡과 그에 기초한 새누리당 국회의원의 비난을 생생하게 겪어본 터라 그 왜곡을 바로잡고자 <프레시안>에 '이재봉의 법정증언'이라는 칼럼을 연재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와 비슷하게 왜곡 및 비방을 당한 신은미씨가 계획된 강연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말렸습니다. 자신이 '종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 아니냐며 종편방송을 비롯한 극우언론의 왜곡과 억지 그리고 횡포에 굴복하지 말고 소신껏 강연하라고 부추긴 것이었지요.

이런 취지로 저는 신은미씨를 익산으로 초청했습니다. 사회과학대학장 사표까지 내며 원광대에서의 행사를 추진한 이유이고요. 극우언론의 왜곡보도에 휘둘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생각과 시각이 다르다고 강연을 반대하고 방해하는 자체가 억지고 횡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녀가 2012년 <오마이뉴스>에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라는 제목으로 매주 1~2회 연재하던 글은 매회 수십만 명이 읽었습니다. 그 연재를 엮어 2013년 출판된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우수문학 도서'로 선정되었습니다. 통일부는 그 책을 홍보하는 동영상 프로그램을 만들어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고요. 2014년 4월 전국을 순회하며 강연을 펼칠 때는 조금이라도 문제가 되기는커녕 인기가 하늘로 치솟을 듯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 10월엔 <한국기자협회>, <PD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공동으로 수여하는 '통일언론상 특별상'을 받았습니다. 

진보 또는 '친북좌빨'로 불리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그 뒤의 이명박 정권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고요. 바로 지금의 박근혜 정권에서 생긴 일입니다. 지난 4월 강연과 12월 강연의 내용은 비슷하거나 똑같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형식적으로 4월엔 혼자 했는데 12월엔 통합진보당과 관련된 황선씨와 같이 했다는 점이요, 시기적으로 12월은 박근혜 정권이 어쩌면 최대 위기에 몰려 그 돌파구가 필요한 때였다는 점이지요.

세월호 참사를 통해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온 극우언론인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교묘하게 고의적으로 왜곡보도를 일삼아왔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보수 정치인들은 정권을 지키기 위해 극우언론의 왜곡보도를 활용해왔고요. 그런데 지식인들까지 이러한 왜곡보도에 놀아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예를 들어, 익산에서 테러가 일어난 며칠 뒤 한 점잖은 종교인이 "웬 재미교포 극좌(極左) 성향의 여성이 종북(從北) 콘서트를 한다고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였습니다"는 문장을 포함한 이메일을 보냈더군요. 거의 매일 수만 명을 상대로 이메일을 보내는 터라 책도 많이 읽고 글깨나 쓰는 어르신 같은데, '극좌'라는 말의 뜻도 모르고 신은미씨의 글을 몇 줄이라도 읽어보지 않은 듯 함부로 글을 쓴 것이지요. 일부 지식인들마저 종편방송을 비롯한 극우언론의 왜곡보도를 진실로 보고 믿는 것일까요? 글쓰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확인해볼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겸비했을 텐데 말이죠.

그 학생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네고 면회를 끝냈습니다. 

"자네가 죽이려고 했거나 죽이고 싶도록 증오했던 신은미씨를 늦게나마 제대로 알아보게. 자네가 원하고 자네 변호사나 부모님이 허락하신다면 다음에 그녀가 쓴 책 한 권 갖다 줄 테니 잘 읽어보게."

마침 그 학생이 2주 후 제게 보낸 편지엔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말이 나오는군요. 한 대목을 소개합니다. 

"제 취미는 독서입니다. 한 달 책값만 10만 원이 훌쩍 넘어갈 때도 있는데, 안 그래도 책 안 읽는 나라에서 도서정가제니 부가세니 붙여버리는데 좋을 리가 없지요. 그런데도 나라가 이 모양이니 저 모양이니 투덜대는 사람들에게 반응해서 '우리나라가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데 왜 우리나라를 욕하느냐' 반문하면 .....(중략) 그 이전부터 제 주변에 제대로 된 사람을 끼고 살지 못해서 제 마음은 병들어 있던 건지도 모릅니다"

신은미씨와 테러범의 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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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지난 2014년 12월 11일 오후 '신은미-황선 통일토크콘서트 관련 입장발표' 기자회견이 예정된 서울 정동 금속노조 사무실앞에서 "신은미 구속" 등의 구호를 외치며 건물진입 시도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는 등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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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종편방송을 비롯한 극우언론의 왜곡과 횡포에 따른 폐해가 너무 큽니다. 온 사회가 '종북' 논란에 휩싸인 것도, 많은 사람들이 신은미씨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녀의 강연을 반대하거나 방해한 것도, 고등학생이 그녀를 대상으로 정치 테러를 저지른 것도, 지식인조차 그녀를 '극좌'와 '종북'으로 매도한 것도... 모두 종편방송의 교묘하고 악의적인 왜곡보도에서 비롯된 것들이죠.

그러기에 저는 그 때 행사 진행자들이나 참석자들 일부가 '테러 피해자 모임'을 만드는 것엔 반대했습니다. 테러범도 왜곡보도의 피해자인데 그에게 무슨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였습니다. 게다가 신은미씨와 그 행사를 주관했던 사람들이 아무런 잘못이 없고 옳다고 하더라도, 역시 극우언론의 왜곡보도에 따라 그 행사가 테러에 의해서라도 중단된 게 고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테니까요.

신은미씨는 1월 9일까지 두 번의 출국정지 기간 연장 속에서 세 번의 경찰 조사를 받았는데 곧 강제로 출국 당하거나 불구속 기소가 될 것 같습니다. 경찰이 그녀의 책 앞표지부터 뒤표지까지 아무리 샅샅이 살펴봐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잡아들일 내용이 없고, 강연 내용을 뒤져봐도 잘못이 없으며, 미국 내에서 지인들과 통화한 기록까지 털어도 시비를 걸 게 없으니,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처벌하려는 움직임도 있는 모양입니다. 관광비자로 입국해 강연하며 돈을 벌었다는 것이지요. 

그래도 며칠 전엔 그녀가 글에서든 강연에서든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묘사한 적이 없다고 용기 있게 공표했습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지시를 받거나 눈치를 보며 무슨 꼬투리로라도 처벌해야 하는 경찰을 비난하기보다는 독재정권의 하수인으로 생고생하는 그들에게 동정을 보내야겠지요. 아무튼 그녀는 조카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고국을 방문했다가 결혼식 참석은커녕 가족들로부터도 왕따 당한 채 피신해 있습니다. 미국에서 남편이 운영하는 사업체엔 요즘 온갖 비방과 협박 전화가 걸려와 직원들이 정상적으로 근무하기 어려울 정도랍니다. 종편방송의 왜곡보도가 초래한 결과가 이렇게 끔찍한 것이지요.

한편, 테러범을 용서하고 비폭력 운동가로 이끌고 싶다는 제 의견에 반대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를 용인하면 모방범죄가 잇따르기 쉽다고 우려하며 무거운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또한 저보다 훨씬 큰 화상을 입은 사람의 처지나 엄청난 충격을 받은 사람들의 심정도 헤아려야겠지만, 다음과 같은 점도 고려해야겠고요. 

제가 선처를 호소하지 않더라도, 청와대와 극우언론은 그 학생이 처벌 받도록 가만 놔둘 것 같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테러에 대해서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종북' 콘서트라고 확고하게 단정해 버렸잖아요. 게다가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그 학생을 '우국청년'으로 치켜세웠습니다. '애국' 단체들에서는 최고의 변호사를 선임하기 위해 상당한 돈을 모아놨다고 하고요. 경찰이 그 학생을 위로하며 봐주기 조사를 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담당 검찰 역시 합의와 선처 호소를 바라는 모양이고요.

두가지 조건

물론 제가 선처를 호소하거나 용서하는 데는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재판 과정을 통해 테러에 대한 진상이 제대로 밝혀져야 합니다. 무슨 일에서든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는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둘째는 사법부라도 독재를 견제하며 폭력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사회 분위기를 막아야 합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민족과 국경을 초월해 평등하게 살면서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받는다는 공산주의의 이상과 목표가 바람직하더라도, 공산주의를 반대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폭력과 독재를 정당화하거나 미화하기 때문 아닌가요. 
 

기사 관련 사진
▲  이재봉 교수

'통일 대박'을 외치고 평화통일을 바란다면서도 북한을 증오하도록 이끄는 것은 위선이요, 반공을 국시로 삼듯 하면서도 다양성을 부인하고 독재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공산주의를 닮아가는 것은 모순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테러범을 어찌해야 할까요?

여러분의 고견을 기대하며 새해 인사를 마칩니다. 
감사하며 이재봉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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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토관 얼어 계기판 먹통된 뒤 기수 올리다가…”

등록 : 2015.01.02 19:07수정 : 2015.01.0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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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인도네시아 인근 자바해에 추락해 사라진 에어아시아 8501편의 항공기인 에어버스 320-200(등록부호 PK-AXC)이 2011년 8월7일 싱가포르 창이공항의 활주로를 달리고 있다. 이 항공기는 에어아시아의 상징인 빨간색을 칠하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수라바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등 단거리를 비행했다. 에어버스 320 시리즈는 지난 11월말까지 6000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 기종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토요판] 뉴스분석, 왜?
에어아시아 추락 시나리오

▶ 지난 12월28일 새벽, 한국인 세 명을 포함한 승객과 승무원 162명을 태운 에어아시아 여객기 8501편이 인도네시아 자바해 해상으로 추락했습니다.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현대의 항공기는 웬만한 악천후에도 끄떡없다는 게 항공 전문가들의 말입니다. ‘항공재난은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에서 온다.’ 아직은 단정하기 이르지만, 2009년 악천후 속에서 대서양에 추락한 ‘에어프랑스 447’ 사고가 떠오릅니다. 이번 사고의 한 시나리오를 추적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수라바야는 자카르타를 잇는 인구 300만명의 제2의 도시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그렇듯이 이 도시 사람들도 싱가포르에 가서 노동을 하고 업무를 보고 때로는 관광을 한다. 28일 새벽 5시35분에 출발하는 에어아시아(QZ) 8501편에 탄 승객 155명 가운데 149명이 인도네시아 사람이었다. 한국인이 3명, 싱가포르인, 말레이시아인, 영국인이 각각 1명이었다. 인도네시아인 이리얀토 기장과 프랑스인 부기장, 5명의 승무원과 엔지니어를 포함해 모두 162명이 새벽 비행기에 탔다.

 

 

난기류 때문에 우회로를 선택했다면

 

이륙한 에어아시아 8501은 유럽의 항공기제작사 ‘에어버스’가 만든 ‘A(에어버스)320’ 시리즈 중 하나였다. 미국의 항공제작사 ‘보잉’의 737과 함께 주로 대륙 내 중·단거리 구간을 운항하는 기종으로, 에어버스 누리집에 따르면 2014년 11월 기준으로 6331대가 주문돼 6092대가 운항 중인 ‘베스트셀러’다.

 

에어아시아 8501은 이날도 바지런히 날았다. 항공정보 웹사이트인 ‘플라이트레이더24’를 보면, 등록부호 PK-AXC의 이 항공기는 저가항공의 젊은 이미지를 상징하는 빨간색 도색을 하고 수라바야, 자카르타, 쿠알라룸푸르 등 동남아시아 자바해 연안의 도시를 쉼없이 돌아다녔다. 사고 전날인 27일만 하더라도 새벽 5시53분 수라바야를 출발해 쿠알라룸푸르를 갔다 왔고 다시 수라바야를 기점으로 자카르타, 쿠알라룸푸르의 왕복 비행을 완수했다. 총 여섯 번의 비행이었다. 한 시간 안팎 연착하고 40여분 만에 승객을 내리고 태우는 등 저가항공의 특성인 빡빡한 스케줄을 완수했지만, 자바해에 짙게 깔린 검은 구름을 보기까지 이 빨간 비행기는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28일 오전 6시12분 이리얀토 기장은 상공의 먹구름 때문에 왼쪽으로 기수를 틀고 운항고도를 해발 3만2000피트(9754m)에서 3만8000피트(11,582m)로 올리겠다며 인도네시아 관제탑에 항로 변경을 요청한다. 그러나 관제탑은 해당 고도에 다른 항공기가 운항 중이라고 답한다. 이것이 마지막 교신이었다. 2분 뒤 관제탑은 왼쪽으로 7마일(11㎞)을 비행해 3만4000피트(10,363m)에 진입하라고 안내한다.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6시16분만 해도 8501은 관제탑 레이더에서 개미처럼 북진하고 있었다. 2분 뒤인 6시18분, 비행기는 레이더에서 사라진다. 7시30분 싱가포르 창이공항, 인도네시아 노동자와 여행객들을 내려주기로 되어 있던 빨간 비행기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원래 이번 사고는 지난해 3월 일어난 말레이시아항공(MH) 370 실종사건을 연상케 했다. 뚜렷한 이유 없이 레이더망에서 사라진 말레이시아항공 370은 아직까지도 항공기로 확증될 만한 잔해가 발견되지 않아 항공사고 최대의 미스터리로 떠올랐다. 에어아시아 8501도 수수께끼의 심연 속으로 빨려드는 듯했다. 그러나 이틀 뒤인 30일 인도네시아 중부 칼리만탄 해안에서 약 170㎞ 떨어진 바다에서 기체 잔해가 발견되면서, 사고의 원인을 두고 여러 가지 추정이 나오고 있다.

 

맨 먼저 드는 의문은 왜 인도네시아 관제탑이 사고기의 항로 변경을 재빨리 승인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2분 뒤에야 우회항로를 제안한 건 너무 늦은 것인가. 그러나 항공전문가들은 낯선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보통 적란운이나 먹구름, 태풍 등 기상현상이 예상되면 항공기는 정규항로를 이탈하여 우회로를 선택한다. 조종사는 관제탑에서 전달하는 기상정보와 비행기에 부착된 웨더레이더(레이더를 통해 기상현상을 감지하는 장치)가 주는 정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위험지대를 피해 간다. 고도를 높여 구름 위로 지나가거나 아예 에둘러 가는 게 일반적이다. 사고기도 정규항로 왼쪽의 고지대로 우회하는 항로를 요청했다. 근처에 형성됐던 것으로 보이는 두께 5~10㎞의 적란운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게 인도네시아 현지 언론들의 추측이다.

 

하지만 항공 교통량이 많으면 우회로도 붐빈다. 사고 당시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이 3만8000피트(11,582m) 상공에서 운항하는 등 주변 항공기만 5대였다. 대도시 국제공항 주변에서는 이보다 더 많은 항공기가 정체하기 때문에 낯선 일은 아니다. 에어아시아가 관제탑의 우회항로 불승인 뒤에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다수 항공전문가는 설사 항공기에 호의적이지 않은 기상지대를 통과하더라도 치명적이진 않다고 말한다. 비행기를 타본 사람이라면 터뷸런스(난기류)를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경우다. 기장은 속도를 낮추고 기류의 흐름을 탄다. 덜컹거림 때문에 승객들은 불안해하지만 기장에게는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타고 가는 것과 비슷하다. 한 국내항공사의 한 기장은 “터뷸런스가 나타나면 권장속도로 속도를 줄인다. 엔진이나 날개의 장치를 켜서 계측장치가 얼지 않도록 조심히 통과한다”고 말했다.

 

그럼, 문제는 에어아시아 8501이 어떤 과정을 거쳐 추락에 이르렀느냐다. 항공기가 어떤 기상현상에 직면했고, 항로 변경을 승인받지 못한 이리얀토 기장이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그리고 어떻게 항공기가 ‘공기역학적 실속’(aerodynamic stall·비행기가 양력을 상실한 상태)에 빠져들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사고기가 악천후로 인해 물리적 충격을 받았을 가능성이다. 항공기는 생각보다 자주 번개를 맞는다. 지금까지도 1963년 12월 팬암 214 여객기(보잉 701-121)가 번개에 맞은 사고는 항공재난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당시 메릴랜드 상공을 날고 있던 기체의 날개를 번개가 직접 때리자, 날개 하단의 연료탱크가 폭발했다. 조종사는 “메이데이”(비행기 위급상황시 조난신호)를 외쳤지만, 항공기는 이내 추락했고, 탑승객 전원인 81명이 숨졌다. 이 사고로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미국 상공을 운항하는 민항기에 낙뢰사고를 방지하는 방전장치의 부착을 의무화했고, 지금은 세계의 거의 모든 민항기가 번개의 위험 없이 운항한다. 번개의 고압전류는 날개와 꼬리 뒷부분에 있는 방전장치를 통해 밖으로 배출된다. 그을음조차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자카르타 찍고 쿠알라룸푸르 찍고…
바지런히 날던 저가항공
기장 “왼쪽으로 상승하겠다”
관제탑에 요청하고 사라져
‘미스터리의 6분’은 블랙박스에

 

시속 700~800㎞로 돌진하는 항공기
조종사의 감각은 부품에 달렸다
속도·고도 측정하는 ‘피토관’
얇게 얼어도 계기판은 엉망 된다
‘에어프랑스 447’ 사고의 재판인가

 

기체 머리 부분에 장착돼 속도, 고도를 측정하는 피토관. 2009년 에어프랑스 447 추락사고 이후 악천후 때 얇게 끼는 얼음 문제로 논란이 되어왔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피토관 착빙은 에어버스의 중대 관심사”

 

이렇듯 악천후가 직접적으로 항공기를 떨어뜨리진 않는다. 웬만한 적란운이나 난기류 등 위험지대를 통과해도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현대 항공기는 추락할 정도로 물리적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미국 뉴스전문채널 <시엔엔>(CNN)의 기상전문가 캐런 매기니스도 지난달 29일 에어아시아 8501이 기상 악화로 추락했을 가능성에 대해 “터뷸런스 때문에 항공기가 추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터뷸런스에 대처하는 기장의 조처가 추락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일부 항공전문가들은 2009년 대서양에 추락해 228명의 사망자를 낸 에어프랑스(AF) 447 사고를 환기시킨다. 에어프랑스 447은 이번 사고기와 가장 비슷한 환경과 조건에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프랑스 파리로 가고 있었다. 항공기 기체는 에어버스에서 만든 A330이었으며, 사고 당시 천둥과 번개가 치는 적도의 난기류에 있었다. 재앙은 가장 사소한 곳에서 시작됐다. 1986년 고무패킹 하나가 얼어서 폭발로 이어진 우주선 챌린저호처럼 작은 부품의 오작동이 걷잡을 수 없는 재난으로 이어졌다.

 

문제의 부품은 ‘피토관’(pitot tube)이라 불리는, 1m도 되지 않는 작은 계측장치다. 항공기 동체 앞부분에 장착되는 피토관은 자신을 통과하는 기체의 압력을 측정해 항공기의 속도와 고도 등을 산출한다. 그런데 높은 습도와 낮은 온도(주로 높은 고도의 상공)에서는 피토관에 ‘크리스털 아이스’라는 얇은 얼음이 낄 수 있다. 이때 피토관은 제구실을 못하게 되고, 조종석 계기판에는 오류 덩어리 정보가 뜬다. 항공기 속도와 고도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기민하게 대처하려고 해도, 창밖엔 드넓게 펼쳐진 하늘뿐이라서 제대로 된 공간과 속도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조종사들에게는 목숨을 건 난제로 다가오는 것이다. 국제민간조종사협회(IFALPA)의 사고조사관으로 일하는 신동훈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 안전실장이 30일 말했다.

 

“일반적으로 오버스피드가 나오면(항공기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표시되면) 기장은 마치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처럼 기수를 높이고 파워를 빼서 속도를 줄일 겁니다. 반대의 경우에는 기수를 낮추고 파워를 넣어서 속도를 높이겠지요. 에어프랑스 447처럼 오버스피드가 아닌데도 계기판에 잘못된 정보가 뜨면 조종사는 잘못된 대응을 하게 되는 거지요.”

 

시속 700~800㎞ 이상으로 전진하는 두어평의 좁은 조종실에서 기장과 부기장은 빠르게 지나가는 기체 외부의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시속 100㎞로 달리는 자동차 운전자와는 아주 다르다. 돌풍, 낙뢰, 난기류,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장애물. 인간 지각으로는 파악이 불가능하다. 조종석 계기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잘못된 계기판 정보는 치명적인 사고를 부른다.

 

에어프랑스 447 사고가 일어난 뒤 유럽항공안전국(EASA)은 피토관 교체와 개선을 지시했다. 에어버스는 2009년부터 A330과 A340에 들어가는 해당 모델의 피토관 교체를 하고 있지만, 기술적 논란은 아직도 여전하다. 유럽항공안전국은 지난 10월에도 피토관과 관련한 기존 조처가 높은 고도에서의 착빙현상을 완전 방지하는 데는 미흡하다며 추가 개선 조처를 지시했다. 이번에 추락한 에어아시아 8501에 피토관과 관련한 수리가 이뤄졌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 경제주간지 <포브스>의 항공 칼럼니스트 존 골리아는 “피토관의 착빙현상은 에어프랑스 447 사고 이후 에어버스 항공기의 중대한 관심사가 되어왔다”고 말했다.

 

2011년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두 건의 항공사고가 피토관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09년 6월 홍콩에서 일본 도쿄로 향하는 노스웨스트항공은 3만9000피트(11,887m) 상공에서 폭우를 만나면서 갑자기 속도계가 이상을 일으킨다. 자동운항장치가 꺼지고 경고신호가 울리는 가운데 조종사들은 직접 조종대를 잡아 기체의 중심과 속도를 잡는 데 성공해 무사히 도쿄에 착륙했다. 2009년 5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브라질 상파울루로 향하던 탐(TAM)항공 8091편의 계기판에도 갑작스런 감속과 고도 저하가 표시됐지만, 조종사는 대체장치를 활용해 아무 사고 없이 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조종사는 왜 기수를 올렸나?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1일 조사당국에서 일하는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에어아시아 8501이 추락 직전에 믿기 어려울 만큼 가파른 경사로 급상승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레이더 분석 결과, 이런 경사도는 에어버스 320의 설계 한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왜 이리얀토 기장은 항공기의 기수를 비정상적으로 올렸을까. 피토관의 착빙에 따른 계기판 오류가 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 이런 급기동의 원인을 파악하는 게 에어아시아 8501의 추락 원인을 밝혀내는 핵심적인 열쇠다. 항공전문가들은 예단하기 곤란하다면서도 악천후 때 발생할 수 있는 항공기의 결함, 조종사가 취할 수 있는 여러 시나리오에 대해 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행기는 항공사고를 거치면서 최첨단 기술로 무장했다. 항공전문가들은 요즈음의 항공재난은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의 문제로 발생한다고 말한다. 8501의 추락 원인은 조종사들이 관제기관과 웨더레이더의 기상정보를 얼마나 잘 판단해 최악의 위험지대를 벗어나는 항로를 짰느냐, 그리고 만약 계기판에 문제가 생겨 자동운항장치가 무용지물이 됐을 경우 컴퓨터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얼마나 잘 항공기를 기동했느냐의 여부로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 에어아시아가 빠져든 악천후에서는 많은 실전 경험과 연습이 조종사의 기민한 판단과 침착한 대처 능력을 결정한다고 항공전문가들은 말한다.

 

에어아시아 8501의 블랙박스에는 이리얀토 기장이 관제기관과 마지막 교신을 한 6시12분부터 항공기가 레이더에서 사라진 6시18분까지 조종실에서 부기장 등과 나눈 대화가 기록됐을 것으로 보인다. 블랙박스를 찾아내면 미스터리가 어느 정도 풀릴 것이다. 인도네시아 수색당국은 2일 오후까지 기체 일부와 주검 16구를 수습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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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하자보수만? MB의 끝나지 않은 착각

 
조홍섭 2015. 01. 02
조회수 2385 추천수 0
 

국무조정실 조사위 “성과” 주장한 홍수저감과 물 확보 실질 효과 의문
하천관리예산 4대강 뒤 곱절로 되레 늘어, 국정조사 통해 근본 대책 필요

 

4r0.jpg» 12월23일 세종문회회관에서 국무조정실 4대강 사업 조사평가위원회가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신소영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새해 첫날 4대강 사업에 대해 “하자보수만 하면 된다”고 감싸고 나서면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국무총리실 4대강 조사 평가위원회가 연말에 서둘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문제를 털고 가려던 정부의 구도가 어긋나게 됐다. 
 
정부 여당과 보수언론이 조사결과를 보는 시각은 친이계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이 29일 <평화방송>에서 한 발언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것까지 못 받아들이면 영원히 논란은 끝나지 않는다. 큰 틀에서는 성공한 사업이고 부분적으로 보완해야 될 것이 있다.”
 
과연 그럴까. 4대강 사업의 핵심 쟁점은 홍수 저감, 가뭄 대비, 수질 개선, 생태계 회복이다. 이 가운데 조사위 스스로 “생태가 고려되지 않았다” “보와 준설이 수질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라고 인정했으니 뒤의 두 개는 논외로 치자. 조사위가 “결론적으로 4대강 사업은 일정부분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한 근거는 이수와 치수였다.

 

rain_46263_91920_ed.jpg» 4대강과 1996~2005년 사이 국토 단위 면적당 침수피해액이 높은 지역을 표시한 지도(왼쪽)와 가뭄이 심한 지역 지도. 4대강 사업은 홍수와 가뭄이 심한 어느 지역과도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자료=국토해양부 
 
먼저 조사위는 “4대강 주변 홍수위험지역의 93.7%에서 위험도가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이제 우리는 홍수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까. 이명박 대통령은 그렇게 믿는 것 같다. 그는 “4대강 사업을 마치면 해마다 나던 4조원의 홍수 피해가 사라질 것”이라고 국민 앞에서 큰소리친 바 있다. 1일 이 전대통령을 만난 김무성 대표도 ‘김대중 정부가 43조, 노무현 정부가 87조원을 들여 막으려던 홍수재해를 이명박 정부는 22조원으로 끝냈다’고 맞장구쳤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한 두 해만 지나면 거짓임이 들통날 것이 뻔하다. 왜냐하면 애초 홍수피해가 큰 곳은 동해안과 남해안, 경기 북부, 영남 내륙 등이지 4대강 주변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침수피해는 정비가 거의 끝난 4대강과 주변 지류에서 제방이 무너져 발생한 것이 아니라, 주로 태풍 경로나 태백산맥 등 지형적 영향을 받는 곳에서 지천이 범람하고 도심에 고인 물을 제때 퍼내지 못해 일어났다.
 
4r2.jpg» 낙동강 합천 창녕보. 이수와 치수 목적을 동시에 달성한다는 개념 자체가 처음부터 논란을 불렀고 대운하를 염두에 두었다는 의혹을 샀다. 사진=김태형 기자

 

처음부터 홍수전문가들은 4대강 사업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물을 가두고(이수) 물을 빼 홍수를 다스리는(치수) 정반대 기능을 보 하나로 하겠다는 기본 구상을 보고서였다. 물을 쓰려고 가둬놓으면 홍수에 약하고, 홍수에 대비하려고 물을 빼놓으면 쓸 물이 없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조사위는 애초 보에 홍수조절능력이 없다고 인정했다. 다목적댐처럼 대량의 물을 가둘 수 없기 때문이다. 홍수가 나면 수문을 열어 물을 빨리 소통시키는 게 고작이다. 
 
보 자체는 홍수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을 조사위도 인정했다. 강 안에 거대한 구조물을 앉혀놓았으니 물이 빠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4대강의 홍수위가 낮아진 것은 오로지 강바닥을 대대적으로 파냈기 때문이다. 홍수 때 수문이 고장을 일으켜 제대로 안 열리거나 강바닥에 토사가 쌓인다면 홍수위험은 당연히 커진다. 이런 점들에 비춰 볼 때 4대강 사업의 치수효과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비논리적이다.
 
다음 이수문제. 가뭄에 대비해 13억t의 용수를 확보하겠다던 4대강 사업에서 실제로 쓸 수 있는 물은 10%인 1억3000만t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번 조사로 드러났다. 강을 일련의 저수지로 만들면서 확보한 물을 4대강 본류 이외의 가뭄지역에 보내려면 모터를 돌려 퍼올릴 수밖에 없다. 
 
조사위가 보완대책으로 제시한 그런 내용의 ‘용수공급체계’가 실제로 만들어진다면 아마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물지게를 지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물은 무겁다. 상수도건 하수도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려보내는 이유다. 
 
가뭄은 강변이 아닌 고지대나 섬에서 주로 발생한다. 강이 흐르는 가장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에너지를 써가며 물을 보내는 것이 난센스라는 건 전문가가 아니라도 안다. 
 
조사위도 물이 꼭 필요한 곳에 보를 막지 않은 사실을 “보의 위치 선정 기준과 과정을 확인하지 못했다”라고 에둘러 인정했다. 성과 운운할 일이 아닌 것이다.
 
4r1.jpg» 국무조정실의 조사평가위가 끝난 뒤 같은 자리에서 환경단체들이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신소영 기자

 

조사위는 정치적, 사법적 판단은 빼고 과학적인 부분만 평가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주요한 과학적 평가 결과는 사업을 하기 전에 비판적 전문가와 시민사회가 이미 지적한 것들이다. ‘물그릇’을 늘린다고 수질이 좋아지지 않는다. 고인 물은 썩는다. 홍수 피해지역은 4대강변이 아니다, 보 때문에 홍수위험이 커진다, 같은 보로 이수와 치수를 동시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많은 물을 가둬 어디에 어떻게 쓸 거냐…등등. 
 
과학이라기보다는 상식에 가까운 얘기들이다. 정작 과학 이외의 정치적, 경제적 분야에 대한 평가가 필요했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처음부터 배제됐다.
 
정부의 하천관리예산은 4대강 사업 뒤 곱절로 늘어 약 6000억원에 이른다. 국무조정실은 곧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열고 이번 조사를 바탕으로 보강과 후속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아무 구실도 못하는 4대강 보에 또 얼마나 많은 예산이 들어갈지 모른다. 
 
그러니 이명박 전대통령이 2007년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이래 8년째, 지긋지긋해도 ‘4대강’은 새해에도 붙들고 씨름해야 할 우리의 숙제인 것이다. 국정조사를 통해 잘못을 철저히 밝혀내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근본 설계가 잘못됐는데 마무리가 제대로 안 돼 하는 하자보수로 끝낼 일은 더욱 아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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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모든 형식 대화 열려있다"

통일부, "모든 형식 대화 열려있다"(추가) 고위당국자 "지금은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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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02  12:3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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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부는 2일 “이미 제의한 제2차 고위급 접촉과 통준위 차원의 대화를 포함하여 남북 간 관심사항을 논의할 수 있는 모든 형식의 대화가 열려있다”고 다시 한번 정부 입장을 확인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새해 첫날부터 남북 양측이 다양한 수준의 대화 의지를 서로 밝히며 입장을 주고받는 가운데 통일부는 2일 “이미 제의한 제2차 고위급 접촉과 통준위 차원의 대화를 포함하여 남북 간 관심사항을 논의할 수 있는 모든 형식의 대화가 열려있다”고 다시 한번 정부 입장을 확인했다.

통일부 고위당국자도 이날 오후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지금은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화 형식은 북측이 고르라는 메시지다.

임병철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전날 북측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통준위 차원의 1월중 대화 제의에 대한 언급없이 ‘고위급접촉 재개’와 ‘부문별회담’ 등을 거론한 데 대해 “우리 정부는 남북 간 모든 관심사항에 대해서 실질적이고 허심탄회한 논의를 하기 위해서라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북한과 대화를 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통준위 차원의 대화제의가 사실상 묵살된 것 아니냐는 일부 분석과 수정제의를 할 생각이 없는지를 묻는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는 “정부는 남북대화의 필요성과 의지를 충분히 밝혔다”며 “현 상황에서 특별히 추가적인 수정제의를 할 생각은 현재로서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통준위 부위원장 자격으로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 부장 앞으로 통지문을 보내 1월 중 남북대화를 제안한 데 이어 김 제1위원장의 신년사가 발표된 1일 오후 “우리 정부는 가까운 시일 내에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남북 당국 간 대화가 개최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정부는 지난해 10월 제2차 남북고위급접촉을 제안해 놓은 상태다.

통일부 고위당국자도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대화하는 게 중요하다. 북한이 안을 주면 거기에 맞출 수도 있는 것”이라고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했다.

그는 1일 오후 류길재 장관이 당국자간 회담 제안을 한 것과 관련해서도 “연말에 우리가 회담 제의했고 회담 제의에 의해서 (북이) 화답한 것으로 보고 우리가 조금 더 북의 징후를 남북관계 개선 쪽으로 끌고 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오후에 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통준위 대화, 고위급 접촉, 당국간 대화 등 어느 것 하나 매듭지어진 것이 없어서 교통정리는 불기피한 것으로 보인다.

임 대변인은 지난해 제안한 고위급접촉에 대해 북측에서 응답을 해 오면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대답했다.

다만 북측이 신년사에서 대화재개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군사훈련 중단 등의 요구에 대해서는 “한미 군사훈련 중단 등 북한의 일방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원칙에 입각하여 대응할 것”이며, “한미 군사훈련에 대해 현재로서는 정부가 미리 말할 것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당국간 회담 의제에 대해 고위당국자는 “단순히 만나자는 것이 아니고 상호간에 관심사”를 논의하자는 것이라며 “정상회담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최고위급 대화’까지 있기 때문에 다 올려놓고 이야기해 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정치군사 문제’에 관한 협의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데 컨센서스가 있다”며 생사확인, 서신교환, 수시 상봉을 추진하겠다고 말하고, “북이 받아주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적극적 입장을 보였다.

정부는 남북 당국 간 회담이 성사되면 그동안 북측에 충분히 설명할 기회를 갖지 못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등에 대해 설명하고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납득시켜 남북관계를 풀겠다는 구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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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새해맞이 명절 분위기 흥성

(사진)북, 새해맞이 명절 분위기 흥성
 
기념품상점. 유희장. 음식점 북적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1/03 [07:54]  최종편집: ⓒ 자주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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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동포들이 새해 명절을 맞이해 설렘으로 흥성거리는 모습이라고 연합뉴스를 비롯한 주요 언론들이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지난 2일 조선중앙통신을 인용 1일 전국의 음식점과 기념품 매장에 새해 명절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고 보도한 내용을 전했다.

 

이 신문은 평양의 대표적인 음식점인 옥류관과 청류관 등을 찾는 주민들은 가족들과 함께 고기쟁반국수신선로메기탕떡국을 즐겼다.”면서 일부 주민들은 추운 날씨에도 길거리 야외 매대에서 꽈배기군밤솜사탕 등을 즐겼다.”고 전하며 명절 분위기를 소개했다.

 

신문은 함흥시의 신흥관사리원시의 경암각 등에서는 주민들이 지방 특산 음식을 즐기며 기쁨을 나눴다고 밝혀 북녘 동포들은 평양 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신년을 맞아 흥성 거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녘 동포들은 우편엽서·연하장 등을 파는 평양 축하장기념품 상점을 찾아 하루 종일 붐볐다.

 

상점에서 연하장 한 묶음을 산 한 여성은 "청천강계단식 발전소 건설장에 있는 동무들에게 보낼 것"이라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고 상점 직원 안윤옥 씨는 "새해를 맞아 새로 나온 축하장(연하장)만 15종이나 된다"며 "인민야외빙상장 야경마식령스키장 전경 등을 담은 축하장이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또한 릉라곱등어(돌고래)관을 찾은 청소년 학생들은 화려한 돌고래 쇼를 보며 새해를 맞았다고 조선중앙TV가 전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태양궁전과 선대지도자들의 동상이 있는 만수대 언덕에는 주민들의 참배의 발길이 이어졌다.

 

한편 새해 자정에는 평양 김일성 광장 맞은편 대동강변에서 새해 축포 야회가 약 15분 정도 진행 됐으며 수많은 평양 시민들이 불꽃놀이를 즐기며 새해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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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으로 지어진 청계천, 시청, 동대문…그 결과는?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1/03 09:58
  • 수정일
    2015/01/03 09:5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작은것이 아름답다]도시‧① 욕망

 
김영준 건축가 2015.01.02 16:51:08
 
건축이나 도시 공간의 작업을 하다 보면 설계 기준이라는 것을 활용하게 된다. 설계 행위는 예술이나 문화이기 이전에 일상의 삶을 담아야 하므로 그만큼 적절한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설계 기준은 규모, 속도, 길이, 폭의 단위 치수에서부터 구조, 냉난방, 조명, 단열, 환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정비되어 있다. 또한 기준은 삶의 조건이나 기후의 차이가 반영되어야 하므로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게 규정되어 있다.
 
한동안 호화 논란을 빚었던 공공 건축물의 과다한 모습도 따지고 보면 기준이 잘못되어 있거나 혹은 기준을 잘못 적용한 데서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기획 초기 단계에서 집무실 크기, 1인당 소요면적, 적정한 공유 면적이 얼마나 되는지 사용 인원에 맞춰 빈틈없이 예측하고 검토해서 정확한 기준이 적용됐어야 할 일이었다.  
 
▲ 현실은 불편한 도시 공간의 구축물이 경쟁하는 환경이다. 너무 많은 엘이디 조명으로 도시 곳곳이 번쩍이고, 가로마다 기괴한 장식의 난간과 가로등이 어지럽다. 삶은 사라지고 과시 욕망만이 발견된다. ⓒ전재원

▲ 현실은 불편한 도시 공간의 구축물이 경쟁하는 환경이다. 너무 많은 엘이디 조명으로 도시 곳곳이 번쩍이고, 가로마다 기괴한 장식의 난간과 가로등이 어지럽다. 삶은 사라지고 과시 욕망만이 발견된다. ⓒ전재원

 
 
흔히 말하는 엔지니어링 기준도 문제가 있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구조의 기준이 지나치게 많이 잡혀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철제 속성을 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변형 이전 값에서 강도의 기준을 정했다는 것이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다른 나라보다 훨씬 강화된 기준이다. 그리고 냉방이나 난방 기준, 조도 기준도 과하다는 느낌이 있다. 온도를 낮추고, 형광등을 하나씩 끄고, 변기통에 벽돌을 하나 넣는 일도 사용자의 선택이 아니라 설계 기준부터 정비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지나친 기준이 만들어내는 과잉 투자는 어쨌든 피해야 할 일이다. 
 
치수나 통계로 체감할 수 있는 설계 기준을 넘어서 미의 기준, 기대의 기준, 가치의 기준도 있다. 무릇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환경은 누군가 판단을 내려 구축하는 것이고, 그 판단에는 여러 단계의 결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결국 공간 환경은 개인이 하는 창조 작업이라기보다는 사회의 복잡한 체계에서 이뤄지는 삶의 창작이다. 따라서 다양한 구성원이 공감할 수 있도록 낱낱이 설계의 기준이 마련되고 활용되어야 한다.
 
사실 아름다워야 하고, 감동 있어야 하고, 효율성이 있어야 하는 여러 가지 판단의 설계 기준은 정확히 재단하기 어려운 변수이다. 아니 매우 많고 다양한 기준이 뒤따르는 변수이다. 그러기 때문에 일정 부분 불합리한 결론이 쌓이기 쉽다. 많은 사람이 일에 끼어들다 보면 불특정한 책임 소재로 흐를 개연성도 많다. 사회에서 공유되는 기준이 낱낱이 정비되어야 하고, 수많은 도시 제어 수단이 작동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교통, 전기, 통신, 안내, 안전 시설물의 상호 관계를 꼼꼼히 검토하고 서로 연계하여 적절히 단순하게 만들어주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도시 공간의 과다한 욕구를 관계성으로 통합하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전재원

▲ 교통, 전기, 통신, 안내, 안전 시설물의 상호 관계를 꼼꼼히 검토하고 서로 연계하여 적절히 단순하게 만들어주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도시 공간의 과다한 욕구를 관계성으로 통합하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전재원

 
 
그러나 현실은 불편한 도시 공간의 구축물이 경쟁하는 환경이다. 너무 많은 엘이디 조명으로 도시 곳곳이 번쩍이고, 가로마다 기괴한 장식의 난간과 가로등이 어지럽다. 삶은 사라지고 과시 욕망만이 발견된다. 도대체 누가 어떤 경로로 무슨 생각으로 무엇을 위해 만들었을까. 이들 도시 공간 시설을 좀 더 근사하게 기품 있게 절제 속에서 만드는 방안은 없을까. 이 사람들을 사회 구성원의 공감 속에서 좀 더 나은 결과로 만드는 방안은 없을까. 몇 가지 명제 속에서 도시 공간 설계의 기준을 생각해본다. 
 
첫째는 장소성이라는 명제이다. 도시 공간의 시설은 항상 장소성을 지향하여 설계되어야 한다. 장소성은 공간적 배경만이 아니라 인문, 역사, 사회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하나의 설계가 복제되어 도시 공간 곳곳을 점령하는 전략이 아니라 장소에 따라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한동안 서울에서는 디자인을 화두로 도시 모습을 일대 혁신하려는 욕망과 함께 청계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서울시청, 오페라 하우스 같은 도시의 상징들이 넘쳐났다. 오랜 논쟁 속에서 결과들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같은 전략의 같은 결과물이 복제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비록 용도도 다르고 겉모양도 다르지만 시대의 인식, 사회의 영향, 도시의 배려, 삶의 터전으로서 전략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저 조형의 차별화만이 만능 해법처럼 보인다. 장소성이라는 개념에 근거한 가치의 기준이 공유되었어야 했다.  
 
대개는 '이상 모델'을 그대로 도시에 옮겨심으려는 자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 도시를 한 번에 바꿔버리려는 과시 욕망에서 비롯된다. 작은 곳부터, 오래 생각하고, 길게 바라보고, 천천히 바꾸어 가야 한다. 그래야 삶이 묻어 들고 사회의 공감이 반영되고 시대 과제가 구현된다. 디자인으로 정리하는 일이라기보다 장소를 만드는 일이라는 인식이 우선해야 한다. 
 
둘째는 관계성이라는 명제다. 도시 공간은 갈래가 다른 여러 분야의 요구가 복합된 곳이다. 효율이 중시되어야 하고, 안전해야 하며, 불특정 대상에게 공평해야 한다. 때로는 멋지기도 해야 한다. 서로 다른 욕구가 충돌하기 쉬운 지점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한 쪽의 비중만이 강조될 수 없기에 서로 다른 결론이 경쟁하는 과다한 집적의 공간이 되어간다. 
 
모더니즘 시대 뒤로 문제의 해결안을 절대적이기보다는 관계적인 줄기에서 찾아보려는 시도가 힘을 얻게 되었다. 개별 사안의 독자 결론보다는 연계 속에서 좀 더 나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도시 공간에서도 단독 조형물보다는 여러 요구를 연계한 복수의 불규칙한 다른 종류의 새로운 해결안을 찾고 있다. 조경, 인프라, 건축, 도시의 다양한 관점이 통합하는 형태를 지향하고 있다. 
 
도시 공간의 시설은 당연히 다양한 욕구를 적절히 제어하고 조정하는 자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교통, 전기, 통신, 안내, 안전 시설물의 상호 관계를 꼼꼼히 검토하고 서로 연계하여 적절히 단순하게 만들어주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도시 공간의 과다한 욕구를 관계성으로 통합하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셋째는 시스템이라는 명제다. 좋은 공간을 만드는 일은 결국은 제도를 넘어 사람이 하는 일이다. 좋은 생각 바른 생각으로 도시 공간의 과제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선정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도시 공간의 시설은 작업의 분산만큼 사람의 선정도 분산되어 있다. 좋은 사람이 일하게 하는 유연한 제도와 탄력 있는 운영이 필수다. 
 
ⓒ전재원

ⓒ전재원  

 
 
좋은 도시는 이런 작업을 총괄하는 제도를 갖추고 있다. 예컨대 런던, 바르셀로나, 베를린, 암스테르담에서는 '도시 건축가'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되어 있다. 그러나 같은 제도 아래에서도 어떤 사람이 어느 때 하느냐에 따라 커다란 차이를 만든다. 결국, 좋은 사람을 선택하는 시스템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남미 어느 도시인가를 설명하는 책자에는 도시를 파괴한 주범으로 지진과 허리케인과 함께 전임 시장들을 꼽는 문장이 있다. 결국은 사람의 문제다. 지금의 시대에 우리 도시 공간의 중요한 과제는 무엇인지, 우리가 도시 공간에 어떠한 삶을 담아야 하는지,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을 선정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그것이 '시스템'으로 정비되어야 한다.  
 
건축과 도시 공간은 시대의 거울이라고 한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도시 환경은 미래만 바라볼 수도 없고, 과거 굴레에만 매달릴 필요도 없다는 얘기이다.  
 
건축가 렘 콜하스가 쓴 <정신착란의 뉴욕>이라는 책이 있다. 20세기 대표 도시가 된 뉴욕의 모습이 역사 시기마다 상업적 욕망에 충실한 결과라는 사실을 규명한 책이다. 수많은 욕망이 충돌되면서 법제 기준으로 결국 지금의 뉴욕을 만들었다고 얘기한다.  
 
도시 에너지는 물론 욕망에서 시작된다. 다만 이들 욕망을 제어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너무 지나치지 않게 너무 모자라지 않게 사회의 욕망을 제어하는 일, 그것이 도시 공간을 만들어가는 우리의 기본자세여야 하는 셈이다. 
 
* 월간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199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 생태환경문화 월간지입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한 이야기와 정보를 전합니다. 생태 감성을 깨우는 녹색생활문화운동과 지구의 원시림을 지키는 재생종이운동을 일굽니다. 달마다 '작아의 날'을 정해 즐거운 변화를 만드는 환경운동을 펼칩니다. 자연의 흐름을 담은 우리말 달이름과 우리말을 살려 쓰려 노력합니다. (☞ <작은것이 아름답다>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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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노엄 촘스키 교수 김어준, 주진우 두 언론인을 위한 청원에 동참

인텔뉴스, 2014년 정보관련 10대 빅뉴스 보도
 
정상추 | 2015-01-02 12:47:4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MIT 노엄 촘스키 교수 김어준, 주진우 두 언론인을 위한 청원에 동참
-뉴스프로에 보내진 노엄 촘스키 교수의 메시지
-두 언론인에 대한 명예훼손 기소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공격

김어준, 주진우 두 언론인을 위한 청원문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되었다.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MIT의 노엄 촘스키 교수로부터 기꺼이 청원문에 서명한다는 메세지와 함께 이 두 언론인을 지지한다는 연대성명이 뉴스프로에 보내져, 아래와 같이 공유한다.

청원문 바로가기 ☞ http://bit.ly/1zz1sYM

번역 감수: 임옥

▲노엄촘스키 교수

Thanks for sending the petition. Glad to sign. It is doubtless a very serious matter. And thanks very much for the greetings. Short statement follows
South Korea’s democratic revolution was an inspiration to the world. Regrettably, some of its achievements are being undermined. The prosecution of the two journalists Choo Chinwoo and Kim Oujoon for defamation is a serious attack on freedom of press. I would like to join those who are calling on the judicial system to reject this serious attack on the democratic rights that have been won by courageous struggle.

Noam Chomsky

청원문을 보내주어 감사합니다. 기꺼이 서명합니다. 이는 의심할 나위없이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안부인사 대단히 감사합니다. 짧은 연대 메시지 아래 보내드립니다.
한국의 민주혁명은 전세계에 굉장한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성취들이 현재 훼손되고 있습니다. 주진우와 김어준, 이 두 언론인들에 대해 명예훼손 기소는 언론 자유에 대한 심각한 공격입니다. 나는 용기있는 투쟁을 통해 쟁취한 민주 권리에 대한 공격을 즉각 중단할 것을 사법부에 호소하고 있는 이들과 뜻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노엄 촘스키

 


 

인텔뉴스, 2014년 정보관련 10대 빅뉴스 보도
-10위를 기록한 국정원 선거개입 부정부패
-정보의 수장이 정치와 경제 부정에 깊이 개입

세계 각 정보부의 소식을 다루는 전문 매체인 ‘인텔뉴스’가 2014년도 정보관련 10대 빅뉴스를 보도하며 10위를 기록한 국정원 선거개입 부정과 국정원장의 적극적인 개입 그리고 경제 부정에도 깊이 관여하여 뇌물수수와 정치개입혐의로 수간된 사실을 상세히 알렸다. 그리고 북한의 부패정권과 진배없는 한국의 공직자 부정을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인텔뉴스는 3위로 ‘US, Cuba, exchange alleged spies as part of rapprochement-미국과 쿠바, 관계회복의 일환으로 간첩혐의자들을 교환하다.’, 2위로 ‘NSA spy leaks continue to cause diplomatic headaches for Washington.-미국 국가 안보국 정보 누설, 지속적으로 워싱턴의 외교적 두통거리가 되다.’, 1위로 ‘Western spy agencies refocus on Russia.-서방 정보기관들 러시아에 재집중하다.’를 각각 선정하였다.

1988년 미국에서 설립된 인텔뉴스는 두 명의 정보전문가가 운영하는 블로그 뉴스로 전문가와 학계연구자 등을 위해 전 세계의 첩보와 간첩에 관한 이슈들을 전문적으로 분석 보도하는 이 분야에서는 영향력이 있는 블로그 뉴스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전하는 인텔뉴스 기사의 관련부분 번역이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1wDAkpu

Year in Review: The 10 Biggest Spy-Related Stories of 2014
2014년 리뷰 : 2014년 정보활동 관련 10대 빅뉴스

DECEMBER 29, 2014 BY INTELNEWS
By J. FITSANAKIS and I. ALLEN | intelNews.org

10. South Korean ex-spy chief jailed for bribery and political interference. Much of the world’s media has focused on the seemingly endless stream of lunatic antics by the corrupt government of North Korea. But corruption is also prevalent south of the 38th parallel. The year 2014 saw the disgraceful imprisonment of Won Sei-hoon, who headed South Korea’s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NIS) from 2008 to 2013. Last September, a court in Seoul heard that Won ordered a group of NIS officers to “flood the Internet” with messages accusing South Korean liberal election candidates of being “North Korean sympathizers”. Prosecutors alleged that Won initiated the Internet-based psychological operation because he was convinced that “leftist adherents of North Korea” were on their way to “regaining power” in the South. A few months earlier, Won had been sentenced to prison for accepting bribes in return for helping a private company acquire government contracts.

한국의 前국정원장이 뇌물과 정치개입혐의로 수감됐다. 많은 세계언론이 북한의 부패정권에 의한 끝이 없어 보이는 광적이고 터무니없는 행동에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38선 이남에서도 부패는 만연하다. 올 2014년에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의 국가정보기관(NIS)의 수장이었던 원세훈의 불명예스러운 구속이 있었다. 지난 9월, 서울의 한 법원은 원세훈이 국정원 팀에게 한국의 진보진영 대선 후보자들을 “북한 동조자들”로 비방하는 메시지로 “인터넷을 넘쳐나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검찰은 원세훈이 “좌익 북한 추종자들이” 한국에서 “세력을 회복하는” 중에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인터넷 기반의 심리작전을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이보다 몇달 앞서서 원세훈은 한 사기업이 정부계약을 수주하게 도와주는 대가로 뇌물을 수뢰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3. US, Cuba, exchange alleged spies as part of rapprochement.

미국과 쿠바, 관계회복의 일환으로 간첩혐의자들을 교환하다.

2. NSA spy leaks continue to cause diplomatic headaches for Washington.

미국 국가 안보국 정보 누설, 지속적으로 워싱턴의 외교적 두통거리가 되다.

1. Western spy agencies refocus on Russia.

서방 정보기관들 러시아에 재집중하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9&table=c_sangchu&uid=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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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공화국 13년차? 한국신문들 신년호에 담긴 비밀코드

 
삼성공화국 13년차? 한국신문들 신년호에 담긴 비밀코드
[한국신문 팔불취] 일간지 신년호 1면 광고 삼성전자가 매년 게재, 10년간 광고집행액 1조 5617억원 … “삼성은 한국 언론의 밥줄, 조현아가 이현아였다면?”
 
입력 : 2015-01-02  10:02:51   노출 : 2015.01.02  10:30:30
윤성한 논설위원 | gayajun@mediatoday.co.kr    
 
   
2015년 1월 1일 신년호 종합일간지 1면 하단은 모두 삼성전자의 광고가 차지했다. 
 

올해도 전국단위종합일간지 신년호 1면 하단 광고는 삼성전자의 차지였다. 2003년부터 13번째다. 한국의 신문은 삼성전자가 밥줄이다. 광고대행사인 제일기획이 매년 펴내는 ‘광고연감’ 통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광고비지출 순위에서 SK텔레콤을 2위로 밀어낸 2003년부터 1위 광고주 자리를 놓친 적이 없다. 삼성은 언론사의 최대광고주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지출한 광고비를 총합해보니 무려 1조 5617억원에 달했다. 2위인 SK텔레콤과 비교해봐도 5,600여억원 차이가 난다. 

   
제일기획이 매년 발간하는 광고연감 데이터를 활용하여, 삼성전자와 다른 대기업 광고비 지출을 비교해보았다.
 

이래서 한국의 언론들은 삼성을 비판하기 쉽지 않다. 만약 '땅콩회항'의 주인공인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한진가의 조씨가 아니라 삼성가의 이씨였다면, 구속되는 상황까지 언론들이 여론을 만들어 갔을까? 2014년 신문 신년호 1면을 보고 들었던 짧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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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병제만이 강군을 만들고 민주주의에 부합할까?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1/02 03:24
  • 수정일
    2015/01/02 03:2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게시됨: 업데이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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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 병영에서 터진 각종 끔찍한 사고들은 그 원인을 찾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당연한 여론을 불러 일으킨 것에 이어(문제는 현 정부 수준이 그런 최소한의 요구조차 제대로 반영할지 의심스럽다는 참담함이겠지만) 어쩌면 보다 근본적으로 징병제 자체가 문제가 아니냐 하는 논의마저 다시 일어나게 한 듯하다. 이 글에서는 모처로부터의 권유에 따라 내 트위터에 올렸던 글들을 정리하여 일정한 나이에 도달한 성인 남성(이스라엘과 같이 여성도 포함인 경우도 있음)이 원칙적으로 일정 기간 군대를 가야하는 (현재 우리나라가 유지하고 있는) 징병제(徵兵制)와 직업군인들만으로 군대를 구성하는 (현재 미국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인) 모병제(募兵制)의 장단점을 서양사의 맥락에서 한번 살펴 보기로 한다.

징병제의 기원이라면 무엇보다도 고대 그리스의 중장보병제(重裝步兵制)부터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 것 같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도시(폴리스)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부담으로 무기와 갑옷을 마련했다. 이들은 평소에는 농사를 짓던 평범한 농부였으나, 외적이 쳐들어 오면 중장보병으로 변신해서 자신들의 집과 가족, 고향을 지켰다. 이렇게 전사와 농민을 겸한 이 고대 그리스의 중장보병은 밀집방진(密集方陣)을 이루어 적과 싸웠는데 내가 싸우다 무너지면 내 곁에서 싸우는 내 동료, 내 이웃도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는 상황에 대한 인식은 이들을 끈끈하게 전우애로 뭉치게 했고 나아가 내가 내 힘으로, 내 돈으로 마련한 장비로 내 고장을 지킨다는 자부심은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가 꽃피게 되는 토양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고대 그리스의 중장보병은 전제군주가 다스리는 페르시아제국과의 페르시아 전쟁에서 용병들로 이루어진 페르시아제국군을 마라톤과 플라타이아의 육전에서 물리침으로써 이런 (고대) 시민군의 우수성에 대한 신화가 퍼져 나가게 되는 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중장보병의 장비를 갖추기 위한 적지 않은 비용이 결국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자작농 수준에서 고대 민주주의의 기반을 제한하였었는데 역시 페르시아 전쟁 중의 살라미스 해전에서 좀 더 가난한 시민들까지 수병(水兵)으로 참전하게 되고 이들을 위한 국가의 보조금의 지급까지 이루어지자 이제 고대 그리스, 그 중에서도 가장 번영했던 도시국가 아테네에서는 모든 성년 남성 시민들(안타깝게도 고대 민주주의에서는 여성, 미성년자, 외국인은 투표권이 없었다)이 함께 무기를 들고 싸우면서 일하고(응?) 같이 민주주의를 가꿔 나가는 고대 그리스의 최전성기가 꽃피게 되었다(기원 전 5세기 중엽).

자율적인 시민들이 모두 평등하게 군대를 가고 그들은 평소에는 농사짓고 일하다가 자유와 내 고장을 지키기 위해 같이 무기를 들었으며 이런 중장보병/수병들은 강제로 끌려오거나 돈에 팔려온 전제 국가의 군대나 용병보다 암만 숫자상으로는 딸린다 하더라도 투지와 동기부여에서 앞설 수밖에 없으니 전쟁을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이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바로 시민군의 정당화근거였고 나아가 근대로 와서도 국민개병제(國民皆兵制), 징병제의 이론적 바탕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중장보병, 시민군 무패의 신화는 고대 그리스에서조차 역사적으로 항상 타당성이 입증된 것이었나? 이런 자율적 시민군의 용병에 대한 우월성의 근거로 들어지는 이 페르시아 전쟁의 신화는 그 후 그리스 도시국가 간의 전쟁인 펠레폰네소스 전쟁에서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가장 민주적이던 아테네는 군국주의 스파르타한테 패하고 만다. (얼마 전 트위터스피어에서 어느 보수적인 트위터리안이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중 가장 민주주의가 발달한 이 아테네가 당연히 군국주의적 정치 체제를 가졌던 스파르타를 이겼으리라고 착각했다가 대망신을 당한 바 있다.) 그리고 이 스파르타도 다른 그리스 도시국가 테베에게 패하여 패권은 테베로 넘어 갔다가 그리스 북쪽의 마케도니아왕국의 전제군주 필립포스왕에 의해 그리스 도시국가 전체가 정복되고 만다. 자율시민군과 민주주의가 용병과 전제주의를 반드시 이긴다는 것은 페르시아 전쟁에서만 효과를 발휘한 것이었고, 싸움은 그냥 싸움 잘하는 군대가 이기는 것이었음이 페르시아 전쟁 직후의 그리스의 사정이 생생히 보여 준 셈이라고나 할까. 심지어 그리스군 중 일부는 페르시아 제국 내의 내전에 용병으로 가담해서 불과 1만명의 군대로 페르시아 전역을 짓밟고서 나름 유유히 빠져 나온 일도 있었으니(크세노폰) 용병보다는 시민군이 좋다는 것도 고대 그리스의 이런 사정을 살펴 보면 글쎄 예전의 유행어처럼 "그때 그때 달라요"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군 옹호론자들이 고대 그리스의 몰락에서 물러날 이들이었으면 오늘날까지 징병제가 이어 지게끔하는 신화가 안 만들어졌을 것이다. 시민군, 중무장 보병의 신화는 고전 고대에서 또 하나의 강력한 역사적 지지 근거를 찾으니 이는 물론 고대 로마 공화정이다. 기원전 6세기 초부터 시작했다는 고대 로마 공화정 역시 자작농 기반의 중장보병 시민군들에 크게 의지를 했고 고대 로마 공화정이 이탈리아 반도를 한땀 한땀 통일해 가는 과정과 그 로마군을 이룬 평민들이 귀족들과 계급투쟁을 해가며 공화정을 더욱 평등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은 거의 겹쳤으니 고대 그리스와 거의 동시대에 진행된 이러한 고대 로마공화정의 사례는 마키아벨리나 프랑스대혁명기 혁명가 등 후대의 국민개병제 옹호론자들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고대 로마공화정의 이들 중장보병 시민군은 기원 전 3세기부터 기원 전 2세기까지 세 차례에 걸친 카르타고와의 포에니전쟁에서 절정의 모습을 보여 준다. 강력한 해군국인 카르타고를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육전 같이 선상에서 싸울 수 있게 한 까마귀란 도구를 이용하고 또 전함들이 격침되어 갈 때 (우리로 치면 꼭 예전에 노사모가 돼지 저금통 모금하듯이) 시민들이 전함 건조비를 모아서 이겼었던 로마인들이라니 마키아벨리부터 시오노 나나미 선생님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위인, 작가들이 고대 로마에 끊임없이 감동할 만한 이유가 바로 이 포에니전쟁이라고 할만하다. 또한 한니발이란 걸출한 명장을 그야말로 갖바치 세 명이 모여도 제갈량보다 낫다는 정신으로 뭉친 로마군들이 물리친 제2차 포에니전쟁도 길이길이 시민군/징병제 옹호론자들이 인용할만한 역사적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런 3차에 걸친 포에니전쟁의 승리 후 로마는 카르타고를 꺾고 지중해세계를 제패했으나 바로 그 성공이 그 후의 백여년 간 계속된 공화정 말기 대혼란의 원인이 되었고 그 와중에 징병제 옹호론자들은 그들의 주장이 옳았음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역사적 증거를 찾았다고 보여진다. 즉 포에니전쟁의 결과 로마 귀족들의 토지겸병(土地兼倂)이 진행되고 로마가 정복한 영토들로부터 쏟아져 들어 온 노예 노동력을 활용한 대규모 농장들과의 경쟁에서 자작농(自作農)들이 밀려나면서, 그 자작농에 기반을 둔 시민군/중장보병제에도 위기가 닥치면서 고대 로마 공화정 자체도 뿌리째 흔들리게 되었다.

아울러 그 해법으로 나온 마리우스 이래의 모병제 스타일의 군대는 결국 이렇게 군대를 모집해 먹이고 장비를 갖춰줄 수 있는 몇몇 유력자들의 손에 로마 공화정의 운명이 맡겨지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 유력자들(마리우스, 술라, 크랏수스,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간 지긋지긋한 100여년 간의 내전 끝에 결국 공화정이 무너지고 내전의 최종승자인.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가 제정(帝政) 즉 로마 제국의 문을 열게 된다. 즉 거칠게 말해서 징병제의 붕괴는 로마 공화정의 붕괴를 가져 왔고 1인 독재에 세습제가 결합된 제정으로 이어지고 말았으니 징병제 옹호론자들은 지금도 징병제가 공화정과 민주주의를 지키고 공동체 시민들 간의 평등을 촉진한다는 강력한 역사적인 징병제 지지 근거를 로마공화정이 제정으로 변질되어 가는 전개 과정에서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역시 시민군이 용병보다 더 우수하다는 류의 주장은 로마가 제국으로 바뀐 후에도 팍스 로마나 즉 로마제국 하의 평화가 로마군의 힘에 의해 200여년 간 유지된 것을 보면 근거가 그렇게 튼튼하지 못함이 고대 그리스의 사례에 이어 고대 로마의 사례에서도 다시금 확인된 것이 아닌가 싶다. 즉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서도 로마제국이 가장 번영했다고 기술한 이른바 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 즉 오현제(五賢帝) 시대가 서기 1세기 후반부터 2세기 후반까지 이어졌다. 이때 비록 공화정은 무너졌고, 시민군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지만 로마제국은 직업군인제로 유럽에서는 영국에서부터 라인강에서 다뉴브강으로 이어진 기나긴 방어선 및 아시아에서는 지금의 이라크에 있는 유프라테스강까지 미치는 대제국을 유지하였다.

서양사에서 징병제/모병제 간의 논란은 로마제국이 게르만족 대이동으로 망하고 중세. 천년의 이른바 암흑시대(정말 그랬느냐는 호이징가 같은 학자의 주장대로 논란이 있지만)를 거쳐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기에 고전 고대 부활의 움직임이 일어나며 다시 등장하게 된다. 그 중심에는 시민군 옹호론자인 이탈리아 도시국가 피렌체의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가 있다.

마키아벨리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식으로 통속적으로 이해된 소위 마키아벨리즘으로 500년 넘게 이어지는 악명을 얻었지만 그의 사상은 정치와 도덕을 분리해 정치적인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숙고하게 하였다는 것에 그 근대적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의 사상 중 주로 시대상-15세기말, 16세기초의 이태리 르네상스기-을 반영한 부분 중의 하나는 시민군 양성론 겸 용병 혐오론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는 어찌 보면 고대 그리스와 비슷하게 도시국가들(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나폴리 등) 간의 쟁패가 이뤄지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용병대장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자신의 군대를 거느리고서는 이들 도시국가들 간의 싸움을 대신 해주고 있었음. 예컨대 피렌체가 자신의 속국인 피사가 반란을 일으켰다 싶으면 꼭 심부름센터에 전화해서 심부름 시키듯이 자신들이 계약한 용병대를 불러내서 그들을 써서 반란을 진압하는 식이다.

그런데 여기서 도시국가와 용병대장 사이에서는 후대에 주류(主流) 경제학에서 얘기하는 이른바 대리인 비용 문제가 발생한다. 즉 도시국가 피렌체로서야 속국 피사의 반란을 진압하는 게 최우선이지만 용병대장이야 계약상 의무는 다 하지만 자신이 거느린 용병 부대를 가능한 한 다치지 않게 하면서, 즉 그 전력(戰力)을 계속 보존하면서 오랫동안 용병대장 노릇을 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기 마련. 그래서 실제 피사의 반란 진압에 있어서도 용병대장이 급료가 적다느니 지원이 부족하다느니 핑계를 대면서 전쟁을 질질 끌었고; 이 피사의 반란은 용병대에 무력을 의존하고 있던 피렌체공화국 정부의 무능함을 만천하에 폭로한 예가 되었었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용병대장들은 예를 들어 자기네끼리 각각 도시국가에서 의뢰를 받아 전투를 할 경우엔 심지어 단 한 명도 전투에서 안 죽고 싸우는 시늉만 한 예도 있었다고(그 '전투'에서는 사고로 한 명이 딱 죽었다고 함) 개탄하기도 했었음.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비롯해서 고전 고대의 역사를 나름 깊이 공부했던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국방을 용병에게 외주를 준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프랑스와 스페인, 독일 신성로마제국 같은 외세의 개입을 불러와 이탈리아의 상황을 참담하게 만들었다고 인식하고 이러한 상황의 타개는 군사적으로는 이런 용병대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나 고대 로마 공화정처럼 자유로운 시민들로 구성된 시민군을 양성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이유로 마키아벨리는 (물론 다른 면에서도 그 매력에 흠뻑 빠졌지만)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서자; 체사레 보르자가 자신에게 반기를 든 용병대장들을 처단했을 때 이탈리아를 좀먹는 자들을 없앴다는 취지로 발표하자 그야말로 열광했었다. 마키아벨리는 이론적으로만 시민군을 주창한 것이 아니라 피렌체 공화국 제2서기관으로 있을 때에는 아예 시민군조직에 나서기까지 했었다. 그가 조직한 시민군이 처음 대오를 갖춰 훈련하는(?) 날을 가리켜 시오노 나나미는 마키아벨리의 생애를 다룬 그녀의 책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에서 마키아벨리의 삶 중 제일 행복한 날이었을 것 같다고까지 했었다.

그러나 일전에도 썼듯이 마키아벨리는 군사지휘관으로서는 영 소질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가 조직한 피렌체 공화국의 시민군도 외세를 등에 업은 참주(僭主)가문 메디치가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즉 뭐랄까 시민군이란 것이 민주주의나 공화국의 정신에는 분명 부합하지만 싸우는데 이골이 난 프로들인 용병들하고 말하자면 평소에 다른 일을 하던 일반인들인 아마추어 시민군들이 서로 맞붙으면 이 르네상스 시기에도 마키아벨리의 그런 시민군의 이상론과는 달리 실제 용병부대에 깨지고 말았던 것이다.

하여간 르네상스기에 마키아벨리가 이렇게 다시 정식화한 시민군/국민개병제/징병제 옹호론은 마키아벨리 생전에 출판되어 그에게 어느 정도 상업적 성공을 안겨 준 [전술론]에서 제대로 전개 되었다는데 이런 시민군 옹호론은 북아메리카 대륙의 영국령 즉 후일의 미국으로 건너가 토머스 제퍼슨과 같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런 자작농들이 중심이 된 민병대(militia)야말로 민주주의의 바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심취하게 되었다고 하며 실제 미국 독립전쟁 당시에 대륙군 사령관이었고 독립 후 초대 대통령이 되는 조지 워싱턴은 아예 민병대 지휘관 출신으로 프렌치 인디언 전쟁부터 입신양명했으니 미국이야말로 어찌 보면 건국부터 시민군/국민개병제/징병제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됨을 믿었던 이들이 중심이 되어 세운 말하자면 진정한 유격대국가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근대에 들어와 징병제를 대세로 만든 결정적 계기는 프랑스대혁명. 자유, 평등, 박애의 기치 아래 이 세상에 존재해온 모든 불의와 부정과 적폐를 이성의 힘으로 다 때려부수겠다는 장쾌한 청사진을 제시한 이 프랑스대혁명은 당연히 유럽대륙 전체에서 구체제(앙샹 레짐)에 동정적이던 외세의 군사적 개입을 불러왔다. 마악 태어난 프랑스공화국에 제대로 된 군대가 있을 리 없었고 결국 장비도 제대로 못갖춘 거지꼴인 채로 혁명정신만은 충만한 국민군이었는데 아아 정말 놀랍게도 프랑스혁명군은 유럽대륙 각국 군들을 거의 모조리 쳐부순다.

뭐랄까 왕이나 황제가 소집해 억지로 끌려나온 구체제가 지배하는 나라의 군인들이랑 비록 거지꼴일망정 공화국 시민들이 내 자유를 지키겠다고 뛰쳐 나온 군인들이랑 붙어서 후자가 완전히 전자를 무찔러 버린 것. 괴테는 프랑스혁명군의 첫 승리인 발미 전투를 두고서 역사가 새로 만들어지는 중이란 취지로 말했다던데 정말로 그러했다.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등등 유럽 열강들의 군대는 프랑스혁명군 나중에 나폴레옹의 대육군 앞에 그저 추풍낙엽이었다. 공병장교 루제 드 릴이 작곡했으나 프랑스 남부 항구도시 마르세이유에서부터 혁명을 구출하기 위해 모인 군인들이 우렁차게 불러제끼며 파리까지 진군해 와 '라 마르세이예즈'가 되었다는 프랑스국가처럼 근 30년 가까이 프랑스군은 유럽을 휩쓸었다. 프랑스혁명군/대육군 보다 더 국민군/징병제의 우수성을 잘 보여주는 예는 없었던 것 같았다. 프랑스혁명이 불러일으킨 자유/평등/박애의 정신과 민족주의가 결합하니까 정말 어마어마하고 가공할 파괴력을 보여준 것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게 나폴레옹 전쟁 말기쯤으로 가니까 유럽 전역에서 말하자면 반면교사 격으로 민족주의가 확산되면서 프랑스 말고 다른 유럽국가들에서도 이런 국민개병제에 바탕을 둔 국민군들이 출현하기 시작했고 19세기 후반 이태리와 독일이 뒤늦게 통일될 무렵쯤에는. 민족주의적 열정에 감염된 각국의 국민군들로 유럽 대륙이 가득 차기에 이르렀고 드디어 지금으로부터 백년 전인 1914년에는 이렇게 대치하던 각국의 징병제 하의 국민군들이 부딪히는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인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제1차 세계대전 특히 서부전선에서 3년 넘게 계속된 참호전에서 한세대의 유럽 젊은이들이 포연 속에 사라지고 나서야, 민족주의라는 것이, 국민개병제라는 것이 실은 사람 목숨을 갈아 넣는 허울좋은 미친 짓이라는 것이 백일하에 폭로되고 만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불과 20년만에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시즘이란 이념의 광풍을 통해 유럽이 또 한 번 잿더미가 되고 말자 이제 민족주의, 이념 과잉, 애국심 뭐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나름의 분위기가 적어도 (서)유럽(아니면 미국 아들 부시 대통령 때 국방장관을 지낸 럼스펠드의 표현대로라면 Old Europe) 차원에서는 어느 정도 형성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런 유럽을 말하자면 바로 잿더미서 구출해 줬던 미국에선 여전히 국민개병제/징병제가 20세기에 들어 와서도 상당 기간 동안 큰 비판 없이 나름대로 유지되었다. 이게 좀 흥미로운 게 미국 독립전쟁이야 민병대에 의지한 면이 있었다고 하겠지만 실은 미국은 19세기 중엽의 남북전쟁이란 끔찍한 내전을 겪으며 징병제란 것이 생사람 잡는 짓이라는 것을 지긋지긋하게 집단 체험을 하기는 했었고, 특히 미국 남부로 진격한 북군 셔먼 장군의 작전은 뒷날 일본군이 중일전쟁 때 했다던 삼광작전(三光作戰)을 방불케 하는, 그야말로 적의 민간인과 산업시설마저 초토화시키는 무시무시한 작전이었다.

이러한 내전을 직접 겪고 나서도 말하자면 툭툭 털어 버리고 (논란이 없지는 않았지만) 국가통합을 이루어낸 미국의 힘이란 것은 뭐랄까 그저 가공하다고 할 수밖에 없을 듯싶다. 그리고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및 제2차 세계대전에 호출되어 (이건 뭐 데우스 엑스마키나라. 해야 하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몇 년 간 영불 연합군과 독일군이 지리하게 참호전으로 맞서던 서부전선을 단칼에 정리해 힌덴부르크선이라는 독일 방어선을 와르르 무너지게 하질 않나, 제2차 세계대전 중 태평양 전쟁에서는 초기 일본 연합함대가 불과 몇 척의 항공모함을 가진 걸 두고 우리 항공모함을 전세계에서 제일 많이 갖고 있음하고 자랑하던 것을 전쟁 말기로 가면 미국은 항모 50척씩을 척척 생산해 낸다든지 버마에서 일본군이 정글전을 하려고 하니 정글을 모조리 밀어 도로를 만들어 버렸으니, 미국의 압도적 산업생산력과 이로 뒷받침되는 미국의 무력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고 하겠다.

양차 세계대전 후의 한국전쟁에서도 미군은 사실 이런 불패의 신화랄까 이런 걸 계속 이어간 셈이고 말하자면 세계의 보안관 내지 소방수 역할을 한 셈인데 1954년 프랑스가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베트민에게 패해 인도차이나 반도의 지배권을 포기하게 되는 시점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은 자신들이 이 전쟁을 떠맡게 되고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져서 남북전쟁이란 내전을 겪고도 유지했던 징병제란 이슈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듯 싶다.

뭔가 눈에 씌인듯이 당시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은 베트남에서 식민지에 대항하는 독립운동 세력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와 반공의 대결 프레임으로만 인도차이나 반도를 바라 봤다. 실은 미국이 공산권 지도자라 할지라도 예컨대 충분히 반소적일 수 있는 예를 유고슬라비아의 티토와 같은 경우로 겪고 나서도, 그리고 중국에서 공산당의 모택동이 아닌 장개석의 국부에 베팅했다가 폭망한 경험이 있음에도 호지명이란 베트남 독립운동가를 그저 공산주의 지도자란 틀로만 바라본 큰 실책을 한 것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중국과 베트남이 결코 선린관계가 아니었다는 것도 간과한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철저히 실패한 다음에야 이제 자진해서 자신들에게 군사 기지를 내어주며 접근하는 통일 베트남을 지켜보고 있다. 어쩌면 이런 일은 베트남전쟁이란 참혹함을 겪지 않고도 몇십 년 전에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 아니었을까 싶다.

징병제 찬반론 얘기한다고 시작한 글이니(쿨럭;) 다시 그 얘기로 돌아가면 이런 미국의 월남전 삽질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조금 멀게 잡으면 1954년 제네바 회담에서의 정치적 타협을 거부한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부터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놀랍게도 미국을 베트남전의 수렁으로 몰아넣은 가장 큰 책임자는 케네디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민주당 출신으로 미국 진보의 화신이며 심지어 그런 그가 못마땅한 이른바 군산복합체의 음모에 의하여 암살당했다는 음모론이 지금까지 떠도는 안타까운 대통령 존 F. 케네디이지만 그의 재임시부터 미국이 월남전의 수렁에 본격적으로 빠지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케네디 대통령 암살 직전에 그가 월남의 독재자 고딘디엠을 제거하는 것에 동의한 건 월남의 정정(政情)을 지극히 불안하게 만들었고, 결국 케네디 다음 대통령인 존슨 때의 통킹만 사건 후 미국은 본격적으로 월남전에 개입하게 된다.

그러나 특히 베트콩의 구정 대공세 이후로 미국에서는 반전 여론이 높아졌고 심지어 징병을 기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훗날 미 대통령이 되는 빌 클린턴은 징집영장을 불태웠고 조지 W 부시는 주방위군으로 복무해서 조부와 부친의 빽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시달렸으며, 민주당 대선 후보였고 현재 국무장관인 존 케리는 퍼플 하트 훈장을 받은 참전용사였으나 제대 후 반전운동에 뛰어드는가 하면 합참의장과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은 당시 부당하게 집행된 징병제가 미국민들의 단결을 해쳤다는 취지로 자서전에서 개탄하기에 이른다. 결국 미국이 북베트남과 파리 강화협정을 체결하고 미군을 베트남에서 철수시킨 후에 닉슨 대통령 재임 중 미국은 사실상 징병제를 폐지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발전했고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가진 나라인 세계 최강국 미국이 징병제를 없앤 것이다.

여태까지 살펴 본 역사적 사례들을 살펴 보면, 징병제를 옹호해 온 가장 강력한 두 가지 근거가 징병제가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강력한 군대를 만든다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 이 두 가지 주장 모두에 대한 또 하나의, 그것도 극히 최근의, 강력한 반례가 생긴 셈이라 하겠다. 미국 민주주의는 징병제를 폐지하고 나서 위기에 처하기는커녕 대통령을 탄핵해서 끌어 내렸고(닉슨), 탄핵시도를 하는가 하면(클린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뽑아서 여전히 민주주의가 만개하고 있음을 세계에 과시 중이다. 미국의 군사력도 여전히 세계 최강이어서 보스니아 내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전쟁에서 유감없이-_-; 과시되었고 소련과의 냉전도 승리로 마무리하였다.

주마간산 격으로 살펴 봤지만 이렇게 역사를 살펴 보아도 징병제라는 것이 모병제(募兵制)에 비하여 반드시 군의 전력 강화라든지 사회통합,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는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군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터져나온 이 시점은 어찌 보면 우리 사회도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만 여겨졌던 징병제를 다른 나라와 시대처럼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순간이 된 것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마침 지난 대선 때 민주당 후보였고 차기 대선에서도 이미 유력 주자로 거론 중이신 문재인 새정치연합 전 비대위원께서 앞으로 모병제로 가야한다는 취지의 언급을 하셨다니 어찌 보면 이로 인해 논의의 물꼬가 터질 수도 있을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다. 모쪼록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군을 모두 강하게 만들 수 있는 방향으로 징병제와 모병제 관련 논의가 전개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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