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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전쟁이건 3일전쟁이건 전쟁을 막을 생각을 해야지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5/01/10 [11:42]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중앙일보의 '북 7일전쟁' 관련 보도     ©자주민보

 

 

8일 중앙일보에서 북의 7일전쟁 시나리오를 소식통의 말을 인용 보도하면서 요즘 논란이 되고 있다. 3일전쟁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개입을 막기 위한 핵전쟁 계획까지 포함한 속전속결 통일대전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하여 올해 정말 전쟁이 나겠는지를 묻는 질문도 부쩍 늘었다. 이에 공개적인 필자의 대답은 전쟁은 안 난다는 것이다.

 

이유는 이미 미국이 쉽게 이길 수 없는 무력을 북이 보유했기 때문이다. 친미사대주의 극우세력들은 북이 무조건 남침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실제 한반도전쟁은 미국의 의도가 결정적이다. 어디 한반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중동지역의 전쟁, 우크라이나 사태 등 세계 모든 크고 작은 전쟁에는 다 미국이 개입되어 있다.

 

결국 미국이 마음먹으면 전쟁은 언제든 터진다. 하지만 미국도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면 쉽게 결정내리지 못할 것이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미국이 북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능력을 인정한 조건이기에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아예 대북공격계획을 미국이 폐기한 것은 아니다. 미국이 뭔가 비장의 카드를 준비하여 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면 한반도 전쟁은 필연적이다. 특히 미국은 북이 더 완전하고 공식적인 핵보유국이 되기 전에 제압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정세가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군사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 견제론을 내세워 한반도 주변 태평양무력을 야금야금 대대적으로 증강해가고 있는 미국의 행보에는 사실 우려의 시선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자주민보에서도 전쟁위험성을 경고하고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기사를 계속 올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수치적으로 따진다면 결코 높은 것은 아니다. 다만 전쟁이라는 것이 너무나 심각한 일이기 때문에 단 1%의 가능성도 우리는 경계해야 하며 보다 근본적인 예방책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그 예방책으로 남측도 북을 압도하는 무력을 확보하는 것이며 다른 것으로는 6.15와 10.4선언에 따라 북과 관계개선을 이루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전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도 감히 덤빌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린 북의 군사력을 능가할 정도로 국군을 키운다는 것은 우리 세금을 다 쏟아부어도 불가능하다.

결국 6.15와 10.4선언 이행만이 답이다.

 

곧 2월만 와도 키리졸브 한미합동 군사훈련에 따른 전쟁가능성이 언론에 또 도배가 될 것이다.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고 대북경협주는 물론이고 코스피가 또 요동을 치게 될 것이며 경제도 여러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무엇때문에 70년 넘게 이런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

부디 언론도 정부도 전쟁가능성 타령 좀 그만하고 근본적이고 항구적인 평화통일의 방도를 찾아 실행에 옮기는 일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통일만 이루면 바로 한반도는 유라시아와 태평양을 잇는 중심국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며 독일과 일본을 능가하는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하게 된다는 것은 세계 경제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가 갈수록 악화되어 가는 조건이라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이제는 통일 외에는 답이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오직 분단으로 이득을 보는 세력이 있다면 뻑하면 종북타령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위기를 넘겨왔던 한 줌도 안 되는 반북수구정치세력들 뿐이다.

그런데 갈수록 나라에 반북 종북타령 소리만 울려나오고 있으니 어찌 한탄스럽지 않겠는가.

정말 이 나라 제정신을 가진 언론인과 정치인이 그렇게도 없단 말인가!  

 

국민들은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땅을 떠날 수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국민들은 어떻게든 이 나라에서 자식들 키우며 살아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그런 정치인들을 심판할 것이며 그에 편승한 언론인 지식인들에게도 국민의 버림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똑똑히 깨닫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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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한미군사연습 중지하면 핵시험 중지"


"9일 미국에 메세지 전달", "언제든지 마주 앉을 준비돼"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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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10  20: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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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9일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임시 중지하면 핵실험을 임시 중지할 수 있다'고 미국 측에 제안한 것으로 10일 밝혀졌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0일자 '보도'를 통해 "최근 공화국 정부는 우리 민족의 분열 70년이 되는 새해 2015년에 온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려는 염원으로부터 미국 정부에 조선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중대조치를 제안하였다"며 이같이 전했다.

'보도'는 "공화국 정부의 제안을 담은 메세지가 지난 9일 해당 경로를 통하여 미국 측에 전달되었다"면서 "메세지에서는 미국이 올해에 남조선과 그 주변에서 합동군사연습을 임시 중지하는 것으로써 조선반도의 긴장 완화에 기여할 것을 제기하고 이 경우 우리도 미국이 우려하는 핵시험을 임시 중지하는 화답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는 데 대하여 밝혔다"고 알렸다.

아울러 "미국이 이 문제와 관련한 대화를 필요로 한다면 우리는 미국과 언제든지 마주앉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입장도 표명하였다"고 보도했다. '한미연합군사연습-핵실험 임시 중지'를 의제로 하여, 북.미 직접대화를 제안한 셈이다.

'보도'는 "미국이 해마다 남조선과 그 주변에서 벌여놓고 있는 합동군사연습들이 우리 만을 겨냥한 것이라면 우리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며 "지금이야말로 미국이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용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공을 넘겼다.

이에 앞서, 북한은 7일자 국방위원회 정책국 성명을 통해, '소니 픽쳐스 해킹 사건'을 명분으로 한 오바마 미 행정부의 대북 제재 행정명령 발동을 비난하면서 "미국은 이 기회에 조선반도에서 전쟁위험을 조성하는 무모한 모든 적대행위를 무조건 중지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한편, 오는 16~17일에는 싱가포르에서 북.미 '1.5 트랙(반관반민)' 대화가 열린다. 북한 측 6자회담 단장인 리용호 외무성 부상이 참석할지가 관심사다. 미국 측에서는 스티븐 보즈워스 전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조지프 디트라니 전 국가정보국(DNI) 비확산센터 소장, 리언 시걸 미국 사회과학원 동북아안보협력프로젝트 국장 등이 참석한다.

<조선중앙통신사 보도>

조선중앙통신사는 10일 다음과 같은 보도를 발표하였다.

최근 공화국정부는 우리 민족의 분렬 70년이 되는 새해 2015년에 온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나가려는 념원으로부터 미국정부에 조선반도에서 전쟁위험을 제거하고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적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중대조치를 제안하였다.

남조선에서 해마다 그칠사이없이 벌어지는 대규모전쟁연습들은 조선반도의 긴장을 격화시키고 우리 민족의 머리우에 핵전쟁의 위험을 몰아오는 주되는 화근이다.

상대방을 반대하는 전쟁연습이 벌어지는 살벌한 분위기속에서 신의있는 대화가 이루어질수 없고 조선반도에서 긴장완화와 안정에 대하여 말할수 없다는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다.

미국은 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과 무분별한 침략전쟁에 매달리지 말고 대담하게 정책전환을 해야 할것이다.

뜻깊은 올해를 조선반도에서 합동군사연습이 없는 해로 만들수 있다면 조선의 통일과 나아가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화해와 신뢰를 마련하는데 커다란 기여로 될것이다.

공화국정부의 제안을 담은 메쎄지가 지난 9일 해당경로를 통하여 미국측에 전달되였다.

메쎄지에서는 미국이 올해에 남조선과 그 주변에서 합동군사연습을 림시중지하는것으로써 조선반도의 긴장완화에 기여할것을 제기하고 이 경우 우리도 미국이 우려하는 핵시험을 림시중지하는 화답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는데 대하여 밝히였다.

또한 미국이 이 문제와 관련한 대화를 필요로 한다면 우리는 미국과 언제든지 마주앉을 준비가 되여있다는 립장도 표명하였다.

미국이 해마다 남조선과 그 주변에서 벌려놓고있는 합동군사연습들이 우리만을 겨냥한것이라면 우리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못할 리유가 없을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미국이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용단을 내려야 할 때이다.

주체104(2015)년 1월 10일
평 양(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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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신호등의 여유와 더불어 사는 삶

 
2015. 01. 09
조회수 42 추천수 0
 

a사진(김영윤).jpg

 지금부터 몇 십년전 독일의 북부 도시 브레멘에서 유학할 때의 일이다일요일 오전 집에서 좀 멀리 떨어진 교회를 가는 길이었다조금 늦게 출발한 지라 조급한 마음이 일었다가는 도중에는 여러 신호등을 만나게 된다빨간색 신호등에서 파란불을 기다리다 노란색 신호가 들어오자마자 출발했다다섯살 딸이 화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아빠 노란색에서 출발하면 안 돼그러면 사고나.” “응 아빠가 바빠서···” “그래도 안돼,노란색은 다른 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호해 주는 신호야그건 약속이야.” 딸아이는 아빠가 지켜야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속상해서인지 울기 시작했다가까스로 달랬다.

  

  남과 더불어 사는 것을 가르치는 곳

 

  그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유치원으로 딸아이를 데리러 갔다학교 강의가 끝나 집으로 가기 전에 내가 아이를 데리러 가기로 약속했던 것이다점심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오수를 즐기고 있는 시간 캐톨릭 교회 소속인 유치원을 들어섰다인사를 하는 나를 유치원 선생이 알아보고 반갑게 맞는다아이를 기다리는 사이 유치원 선생님의 입에서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다지난 일요일 노란색 신호등에서 차를 출발시켰다는 이야기를 딸아이가 했다는 것이다그냥 그 때 그랬었느냐?”는 정도로 아이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차에 묻는 물음이려니 생각했다별 부담없이 그랬었다고 했는데그 것 때문에 딸이 울었다는 이야기도 자기가 알고 있다고 한다나는 딸아이가 어떻게 그런 것을 대단하게 여기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그 때 그 유치원 선생님의 말은 참으로 멋진 것이었다지금까지도 잊지않고 나를 흔든다. “유치원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더불어 사는 것인지를 가장 먼저 배우는 곳이죠교통 신호를 지키는 것은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먼저 지켜야 할 중요한 약속이니까요.” 나는 순간 멍했다그 선생님은 노란색 신호등에는 약속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여유가 포함되어 있다는 말까지 곁들인다.

 

신호예측 출발금지라는 팻말    

 

 이 이야기를 생각할 때마다 지금도 나는 우리 사회와 많이 비교하게 된다우리에겐 그런 여유가 없는 것 같다모르긴 몰라도 신호등이 있는 곳에 심심찮게 신호예측 출발금지라는 팻말이 붙은 곳은 아마 한국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그만큼 다들 급하다여유가 없으니 남을 위한 배려가 존재하지 않는다어릴 때 배워야 할 더불어 사는 삶은 우리에겐 존재하지 않는다우리 유치원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삶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남을 제치고 경쟁에 이기기 위해 처절한 싸움이 시작되는 곳이 되어버렸다온갖 학습지를 해야 하고초등학교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한글을 깨우쳐야 하는 필수코스다다들 그러니 모두들 그럴 수밖에 없다유치원에서 영어를 배우는 아이들을 대견하게 보는 사회가 우리 사회다학원이나 마찬가지다유치원이 공교육이 되었으나각종 명목의 부담을 준다독일 가정은 부모의 아이들에 대한 소위 밥상머리 교육이 의외로 엄격하고 철저하다집에서 엄마 아빠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을 한마디로 말하면 더불어 사는 방법과 약속의 지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 혼자만 잘나야 한다는 것은 없다식당에서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녀도 아이 기죽인다고 아무 말도 못하는 사회가 한국이다미안하지만 독일에서는 생각조차할 수 없는 일이다우리 사회의 민낯을 여지없이 전 세계에 드러냈던 조현아의 땅콩 회항” 사건도 구태여 말하자면 어릴 때 배워야 했던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지 못한 탓이다내가 존재하고,내가 가진 지위는 상대와 주위가 있기 때문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가정도 학교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했다아니 그럴 시간이 없었다모두들 너무 바쁘게 살 수밖에 없으니까윤일병 사건도 이와 전혀 다를 바 없다나와 다른 생각은 바로 틀린 생각으로 받아들이다그래서 인정하지도 묵과하지도 않는다우리 사회의 많은 청소년들이 본데없이 과격하고 버릇없는 것은 어릴 때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않고 지식만을 강요했기 때문이 아닐까그들이 여유를 갖게 하지 못한 잘못이 우리 기성세대에 있다.

 

 상대의 삶을 인정하는 것이 더불어 삶   

 

더불어 삶은 상대의 삶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인정은 이해가 그 바탕이다이해하지 않으면 인정도 없다이해는 나의 입장이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다시각(視角)을 바꾸는 것이다바뀌어지는 것이 아닌 의도적인 바꿈이다무엇을 이해한다는 것은 한 가지 표현 방식에서 다른 표현 방식으로의 변환이다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인정이 가능하다인정이야말로 인간의 공동적상호적 존재를 특징짓는 개념이다헤겔은 인정을 "타자에게 있으면서 자기에게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칸트는 그것을 '도덕적 인격의 존중'이라고까지 했다얼마나 고상한 말인가남북한이 서로를 바라보는 입장도 마찬가지가 되어야 한다우월적 입장이 아닌 북한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인정이다역지사지의 입장이 되어야 남북관계의 개선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2015년은 우리 모두 노란색 신호등의 여유와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의 해가 되길 기원해 본다.

 

**이 칼럼은 남북 물류포럼과 공동으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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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를 ‘박물관’에만 모셔두면 세상은 삭막하다

 
 
[서평] <The left> 유럽좌파의 역사
 
耽讀  | 등록:2015-01-10 09:21:42 | 최종:2015-01-10 09:38:5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대한민국은 과연 진보시대를 경험했던 적이 있는가? 보수세력은 김대중 ·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권’이라 몰아붙였다. ‘잃어버린 10년’으로 이름붙인 김대중 · 노무현 정부가 정말 좌파정권인가?

두 정부가 추진한 경제정책을 살펴보면 ‘좌파’라 명명한 것은 실로 좌파를 모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두 정부는 자유주의정부에 가까웠고, 개혁주의를 더 시행했을 뿐이다. 이제 개혁주의 정부가 끝나고 보수정권이 들어섰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지방의회뿐만 아니라 국회까지 보수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보수주의 시대에 ‘좌파’를 떠올린다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는 다양성 사회다. 사상과 이념이 획일화된 민주주의는 진보할 수 없다. 정치지형이 보수주의로 획일화될 때 사회진영과 시민진영은 더욱 더 보수와 반대되는 좌파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이 진보진영 몰락과 좌파종식을 외치는 이 때에 제프 일리가 쓴 <The left>는 우리 사회에 새로운 희망을 던져준다. 방대한 분량(1010쪽), 엄청난 책값(50,000원)이라는 무게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특히 인민, 사회학이 힘을 잃어버린 이때 단순하고, 표피적인 책 읽기가 유행 하는 이때 이런 두깨와 책값은 1980년대 치열한 사상 싸움과 정치투쟁을 경험했던 이들도 접하기 버거운 책이다.

하지만 진정 민주주의와 인민주권, 다양성이 지배하는 사회구성을 원한다면 긴 호흡을 가지고 <The left>를 한 장씩 음미하면서 읽어보자. 이 책을 통해 1848년 혁명 실패 이후부터 2003년에 이르는 유럽 좌파를 만남으로써 좌파라는 이유만으로 정죄받는 우리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에릭 홉스봄 <The left>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역사가의 학식과 분석을 1968년 학생 급진파의 참여의식과 결합하면서 제프 일리는 민주주의 희망 선언이자, 150년 동안 민주주의에 현실성을 부여해온 좌파운동을 상대로 기나긴 애도의 작별인사를 했다. 1848년 이후 유럽의 역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숙고와 열정을 두루 담아 집필한, 여러 나라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이 개괄서를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The left> - 추천평)
 
사상서 중에 이토록 오랜 시기와 광범위한 분량, 여러 나라를 두루 아우른 책은 별로 없다. 그래도 좌파를 정치지형 안에 뿌리내리게 한 지역은 유럽 외에는 별로 없다.

150년 유럽 사상과 정치 지형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말이다. <The left>는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1848년 혁명이 패배한 직후인 1860년대부터 1차대전이 발발하는 1914년까지로 산업자본주의가 유럽 경제에 뿌리 내리고 팽창하는 가운데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여 정치조직을 만들어가는 좌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2부는 1914~23년이다. 역사 이래 가장 참혹한 전쟁 중 하나인 1차 대전은 새로운 공산주의 운동의 등장을 요구한다. 3부는 1920년대 중반부터 1956년까지로 대공황과 파시즘 및 레지스탕스가 남긴 유산을 통하여 의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세워 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4부는 좌파의 새로운 정치를 만들고자 했던 신사회운동을 다루는데 이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저자의 바람이기도 하다. 저자는 책에 대하여 이렇게 평한다.
 
이 책은 묘비명이 아니며 지난 과거를 그리워하는 향수의 몸짓도 아니다. 이 책은 몇 가지 중요한 이야기들이 잘못 전달될 때일수록 역사가 중요하다는 확신의 소산이다. 망각에 맞선 기억의 투쟁이라는 말은 요즘 글쟁이들의 상투적인 표현이 되어버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의 힘이 약해지지는 않는다. 1990년대 동안 새로운 기억상실증들로 인해 몇 가지 없어서는 안 될 역사가 지워져버렸다. 모름지기 좌파의 역사는 인간의 잠재력을 제한하고 왜곡하며, 공격하고 억압하고, 때로는 심지어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하는 불평등의 체제에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이 역사는 분명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본문 14-15쪽)
 
그는 좌파의 종식과 몰락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좌파 탄생을 원하고 있으며 화석화된 좌파가 아니라 인민과 인간을 위한 진정한 좌파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좌파는 국왕 거부권 폐지, 단원제 입법부, 선출에 의한 사법부 구성, 권력분립을 주장했다. 행정부보다 입법부가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 실현을 위하여 1인 1표의 민주적 참정권 등을 채택하는 강력한 민주주의적 입장을 쟁취하기를 원했다. 한 인민이 민주질서 중심에 자리 잡기를 원했다.
 
하지만 좌파는 현실사회주의 몰락에서 보여주듯이 스스로 권력집단이 되었고, 인민을 그 계급대상에서 제외시킴으로써 사회주의의 종언을 고한다. 특히 '여성문제'에 관한 사회주의는 민주주의 자체의 핵심인 참정권과 관련하여 최악의 모습을 드러냈다. 노동계급 남성들은 투표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회주의 정당들은 여성의 투표권에는 관심이 없었다.

1968년이 남긴 다른 두 가지 유산은 좌파의 미래에 대해 훨씬 더 중요했다. 하나는 의회 외부 정치의 부활이다 ― 직접행동, 공동체 조직화, 참여의 이상, 소규모 비관료적 형태들, 풀뿌리에 대한 강조, 일상생활과 정치의 일치. 다른 하나는 1970년대 동안 가장 창조적인 의회 외부 저항이었던 페미니즘과 새로운 여성운동의 부상이다.(본문 661)
 
대한민국 정치지형에도 보수시대가 열렸다. 아직도 보수주의자들은 모든 영역에서 보수화를 꿈꾸고 있다. 아니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진보와 좌파라는 정치지형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잃어버린 10년은 결코 진보와 좌파시대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좌파정권'이라는 단 하나의 말로 좌파가 꿈꾸는 직접행동, 공동체성 회복, 참여정치, 여성주의, 분배를 통한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가기를 거부한다.

평등 자유 연대라는 이상을 완전히 실현하기는 어렵겠지만 우리는 이를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특히 획일화된 사상을 강요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좌파는 몰락했다고 박물관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사상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담지 못하는 영역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 문제점을 해결하는 중요한 사상이다.

<THE left> 이런 의미에서 좌파에 대한 심층서는 아니지만 화석화 위기에 빠져버린 우리 사회의 사상에 새로운 도전을 안겨주는 책임은 분명하다. 좌파를 박물관에만 존재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그 순간 우리 사회는 삭막함을 넘어 호흡할 수 없기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는 결국 죽은 사회가 아닌가?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3589&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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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은 누구? 검사시절 맥주병으로 기자 머리 쳐 구설

등록 : 2015.01.09 21:05수정 : 2015.01.1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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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신임 청와대 민정수석. 2010년 7월 15일 수원지검장 시절. 한겨레 자료사진

 

9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벌어진 ‘항명 사퇴’의 주인공인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은 경북 의성이 고향으로, 경북고를 나온 정통 티케이(TK) 출신이다. 또 연세대를 나와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서울지검 공안1부장과 대검 공안 1·3과장 등을 지낸 전형적인 ‘공안통’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말 ‘정윤회씨 국정개입’ 문건 파문이 불거진 이후, 청와대는 김 실장의 총괄 아래 공안검사 출신의 김 수석이 상황 관리를 맡고 특수통인 우병우 민정비서관이 직접 특별감찰 등을 이끄는 방식으로 대처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춘-김영한-우병우 등의 라인 3명이 모두 검찰 출신이어서, 박 대통령의 ‘가이드라인’ 발언 등 검찰 수사에 대한 직간접적 영향력 행사에 이들이 개입한 게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문건 유출 파문의 한 당사자인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지난달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에 문서 유출 관련 보고서를 전한 뒤 김영한 수석에게도 문서 수거가 시급하다고 전했는데, 김 수석이 ‘무고죄가 될 수 있다’는 반응만 보였다”며 분통을 터뜨린 바 있다.

 

이 때문에 이날 야당은 김 수석의 사퇴 배경에 대해 ‘민정수석실이 문건 유출자 중 한 명인 한아무개 경위를 회유했다는 의혹 등을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김 수석이 출석해 부인하면 될 일이고, 김기춘 실장도 그의 출석을 지시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의 사퇴가 여야 합의를 무시해 대통령을 위기에 몰아넣고, 김 실장의 진퇴마저 위협하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사전 각본으로 보기도 어렵다.

 

법조계에선 자기주장이 매우 뚜렷하고 개성이 강한 그의 성격이 이번 ‘항명 사퇴’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민정수석 임명 직후 김 수석은 1990년대 초 검사 시절 술자리를 함께한 검찰 출입기자의 머리를 맥주병으로 내리친 전력이 공개되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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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7일 전쟁계획? 그 아찔한 기사 ‘재탕·신뢰성’ 논란

중앙일보 1면 머리기사 “지난 9월 기사 내용과 유사”, 북한군 고위 탈북자 신뢰성 여부도 논란…군 당국 부인· 국방부 출입기자들 보도 안해· 중앙 기자 “노코멘트”
 
입력 : 2015-01-09  14:38:56   노출 : 2015.01.10  08:41:12
 
윤성한 논설위원 | gayajun@mediatoday.co.kr   

중앙일보가 8일 1면 머리기사로 단독 보도한 「김정은 7일 전쟁 작계(작전계획) 만들었다」가 논란이 되고 있다.

해당 기사의 내용이 중앙일보의 주말판 신문인 중앙선데이 작년 9월 기사 내용과 유사한 점이 있는데다, 기사 핵심 내용의 정보출처로 거론된 “최근 탈북한 북한군 고위관계자”의 존재여부도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군 당국과 국방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또한 군 당국은 해당 기사에서 우리 군이 입수한 것으로 거론된 북한군의 ‘신작전계획’의 입수를 공식 부인했다.

중앙일보는 군 정보 당국자와 또다른 정부 당국자 등 복수의 군소식통을 통해 확인한 사안이라며, 북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7일 안에 끝내는 속전속결식 작전계획을 세웠으며 우리 군이 탈북군인을 통해 입수, 이를 반영해 우리 군사작전계획을 수정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2012년 8월 25일 북한 중앙군사위원회 간부 전원과 군단장급 이상이 참석한 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 이 같은 신작전계획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가 보도한 신작전계획의 골자는 북한군이 기습남침하거나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 핵과 비사일 등 비대칭 전력을 초반에 사용, 미군이 본격 개입하기 전인 7일 안에 남한을 점령한다는 내용이다. 

   
중앙일보 2014년 1월 8일 머리기사
 

이 보도에 앞서 지난해 9월 20일 중앙 선데이는 「북 무인기 남침 루트 따라 내려온 건 김정은의 2015 통일대전 위한 정찰」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안보당국이 파악한 북한의 2015 통일대전 요강에 따르면, 북한군은 전면전 3~5일내 한반도 완전장악을 목표로 한다”면서 “미군의 증원은 핵미사일로 차단한다는 게 북한군의 계획”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중앙선데이는 당시 북한군 침투 루트를 그린 지도 등과 함께 북한이 “서해기습상륙, 문산광덕산 루트로 수도권 3각 공격”할 것이라는 등의 내용을 포함 전면 2면을 할애, 북한군의 기습공격 계획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중앙일보의 8일자 보도에 대해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8일 오전 기자 브리핑에서 “북한의 작전계획을 입수한 바는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또한 “북한은 과거부터 단기 속결전 위주로 작전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중앙일보의 보도가 새로운 소식이 아니라는 뜻을 표명했다. 

다른 군 고위 관계자도 중앙일보의 해당 보도에 대해 “새로운 내용도 없고, 정보원의 신뢰도도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의 ‘속전속결’작전이란 건 인터넷만 검색해보면 쏟아져 나올 정도로 전혀 새롭지 않은 소식”이라며 “7일 전쟁이 아니라 북한이 3일전쟁 계획 등 각종 속전속결 계획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기사에서 정보원으로 등장하는 최근 탈북한 북한군 고위인사에 대해 “‘최근’이 현시점에서 어느 정도의 과거를 뜻하는 지 모르겠으나, ‘신군사계획’이 승인됐다는 2012년 8월 15일 이후 당 중앙군사위원회에 참석할 정도의 고위 북한군 인사가 탈북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며 “그 정도급의 고위급 군인사가 탈북했다면 이미 알려지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중앙선데이 2014년 9월 20일 기사
 

국방부 출입 기자들도 관련 보도를 하지 않는 분위기로 모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출입기자들과 소속 언론사들은 대부분 중앙일보의 해당 단독 기사를 받지 않았다. 9일자 조간신문에서도 중앙일보의 관련 후속기사 이외, 다른 종합일간신문들이 해당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한 일간지 출입기자는 “중앙일보가 어떻게 취재했는지 모르겠지만, 군내에서는 신작전계획을 입수한 바도 없고, 그것으로 인해 작전을 변경한 일은 더욱 없다고 확인했다”며 “속전속결계획과 비대칭무기전술을 북한군이 구사할 계획이란 기사 내용의 골자는 지난 9월 중앙선데이의 보도를 재탕한 것이나 다름없는 보도”라고 말했다. 

또 다른 언론사의 출입기자도 “6.25때도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됐다. 북한군의 ‘속전속결’계획은 전혀 새로운 이야기라며, 군 내부 등 여러 군데 확인취재를 해보았지만, 북한의 신작전계획을 입증하는 문서를 입수한 바도 없고, 그 이유로 작전계획을 변경한 바도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중앙일보 기사에 언급된 최근 탈북한 북한군 고위 인사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국 연변에 가면 자신이 북한군 장성출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수백 명이 넘는다고 한다”면서 “그들에게 핵실험 도면이나 최소한 실험 장소의 흙이라도 가져와 보라고 했지만 관련 증거를 가져온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면서 “중앙일보가 취재한 내용이니 뭐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신작전계획을 전달한 탈북한 북한군 고위 인사라고 표현된 존재가 정말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일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방부를 출입했던 한 방송기자도 “한미연합훈련의 주된 목적만 보더라도, 북한군의 ‘속전속결’계획을 대비한 RSOI 즉 한미연합전시증원 훈련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며 “그래서 속전속결계획 그 자체로는 사실 뉴스거리가 못 된다”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대북 관련 정보는 기본적으로 그 진위여부의 판단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부 당국이 어떤 사실을 알고 있다는 자체가 상대방에게는 중요한 정보가 되기때문에 군 당국이 북한의 ‘신작전계획’을 공식 부인했다고 해서 해당기사의 관련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해당기사를 작성한 중앙일보 정용수 기자는 해당 논란에 대해 “노코멘트”라며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의 대남위협을 부각하는 ‘전언성’ 기사가 분단 70주기를 맞이해 제기되고 있는 남북 당국 대화 움직임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 이런 류의 기사는 오히려 북한 입장에서 나쁘지 않은 기사”라며 “남측여론이 자신들의 군사력을 ‘과대평가’하는 분위기를 만들면, 북한의 협상력을 높이는 기제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정 대표는 “이런 기사가 국내에선 대북강경여론을 자극하고, 한미연합훈련을 앞둔 군 당국에 부담을 줘서, 훈련 수위를 높히거나 훈련내용을 과도하게 공개할 경우, 남북대화 움직임을 꼬이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1995년 평화통일과 남북 화해 협력을 위한 보도 제작 준칙 제정 작업에 참여했던 6.15공동선언 남측위원회 언론본부 공동상임대표인 정일용 연합뉴스 국제뉴스 기획위원은 “우리언론의 대북보도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사실을 확인해서 그대로 쓰는 것”이라며 “MB정권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돼, 교류나 대북 직접 취재가 어려운 현실이기에 기자들이 오히려 더욱 신중하게 정보원과 관련정보의 사실여부를 점검·확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평화통일과 남북 화해 협력을 위한 보도 제작 준칙

ㅁ 전 문 (前 文)

분단된 조국의 통일은 온 겨레의 염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언론은 남북관계 및 통일문제 보도·제작에서 화해와 신뢰 분위기 조성에 기여하기보다는 불신과 대결의식을 조장함으로써 반통일적 언론이라는 오명을 씻어내지 못했다. 이같은 반성 위에서 한국기자협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및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등 언론 3단체는 해방과 분단 50주년을 맞아 우리 언론이 통일언론으로 거듭나기 위한 다짐으로 공동의 보도·제작 규범을 제시한다. 우리는 '7·4 남북공동성명'과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정신에 따라 먼저 남과 북의 평화공존과 민족동질성 회복에 힘쓰며, 민족공동의 이익을 증진하고 궁극적으로 남과 북이 단결하여 자주적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도록 노력한다.

ㅁ 총강

1. 우리는 대한민국(약칭:한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약칭:조선)으로 나누어진 남과 북의 현실을 인정하며, 상호존중과 평화통일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상대방의 국명과 호칭을 있는 그대로 사용함을 원칙으로 한다.

2. 우리는 냉전시대에 형성된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보도·제작함으로써 남북 사이의 공감대를 넓혀 나간다.

3. 우리는 남북관계 보도·제작에서 언론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가로막는 법적·제도적 장애를 타파한다.

4. 우리는 남과 북의 우수한 민족문화 유산을 공유하고 민족의 공동번영을 추구할 수 있는 기사 및 프로그램 개발에 힘쓴다.

5. 우리는 통일문제에 관한 사회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공정하게 반영하여 민주적인 여론형성에 기여한다.

ㅁ 보도실천요강

1. 남북 긴장해소 노력 : 남북간의 평화를 저해할 수 있는 군비증강 등 제반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며, 남북간 긴장 및 불의의 사고 발생시 신속하고 평화적인 해결을 이끌어 내는 데 초점을 맞춰 보도한다.

2. 인물 호칭·직책 존중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물에 대한 호칭은 대한민국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성명 다음에 직책을 붙여 호칭한다.

3. 관급자료 보도 유의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관급 보도자료의 무절제한 인용·전재를 피하고 최대한 확인절차를 거쳐서 보도한다.

4. 내외통신 인용 책임 : 내외통신 자료는 관급 보도자료 가운데 하나이므로 내외통신 자료를 전적으로 인용한 보도라 할 지라도 그 책임은 이를 보도한 기자에게 있다는 점에 유의한다.

*국정원이 운영하던 내외통신은 연합뉴스로 흡수 폐지되었다

5. 외신보도 신중 인용 : 외신을 활용한 특정세력의 목적성 여론조성을 경계하며, 제3국이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외신보도는 인용하지 않는다.

6. 1차 자료 적극 활용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신문·방송·통신 보도와 잡지 등 1차자료에서 보도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은 적극 활용한다.

7. 각종 추측보도 지양 : 국내외 관계자들이 무책임하게 유포하는 각종 설은 보도하지 않는다. 다만 취재원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

8. 사진·화면 사용 절제 : 해당기사와 무관한 자극적인 화면이나 사진을 사용하지 않으며, 냉전과 대결의 시각보다 남북간 화해와 협력을 이끌어 내는 데 노력한다.

9. 희화적인 소재 지양 : 남북간 언어, 문화, 생활의 차이와 상호 이질감을 우리의 잣대로 평가하거나 보도에 희화적 소재로 삼지 않는다.

10. 망명자의 증언 취사 : 망명자의 증언은 그로부터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기사화하도록 한다. 전언이나 추정 등을 기사화해야 할 경우는 '전언', '추정' 등을 명기한다.

ㅁ 제작실천요강

1. 정보제공 적극 편성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련 프로그램 편성시 형식적·소극적 편성에서 벗어나 다큐멘터리·드라마·오락물 등 각 장르별로 적극 편성하며, 남북 관련 긴급 혹은 특집프로그램 편성시 정치적 의도가 없는지 특히 유의한다.

2. 통일지향 가치 추구 : 기획, 출연자 선정, 편집 등의 제작과정에서 민족동질성 회복, 화해·공존공영의 증진, 통일의 촉진이 구현되도록 적극성을 갖고 제작에 임한다. 프로그램 제작시 여러 가치가 충돌할 경우 인간 존엄성 존중, 민족이익 수호, 민족화해 증진 등의 가치를 판단의 우선가치로 삼는다.

3. 냉전시대 관행 탈피 : 냉전시대에 형성된 내면적 자기검열, 습관화된 분단의식, 누적된 선입견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또 냉전의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요·가곡·드라마·영화 등의 방송을 피하며, 갈등을 조장하는 불필요한 화면을 사용하지 않는다.

4. 상업·선정주의 경계 : 상업주의와 선정주의를 경계하며, 안일하고 편의적인 제작태도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나아가 현재의 모든 방송행위가 미래의 통일민족문화와 직결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프로그램 제작에 임한다.

5. 다원주의 가치반영 : 사회적 가치나 의견 등의 메시지를 시청취자에게 전달할 때는 제작진이 단정적 결론을 내리기보다 시청취자가 듣고 보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위해서 통일과 관련된 다양한 의견을 가능한 한 가감없이 프로그램에 반영하도록 노력한다.

6. 보도활용 제작 신중 : 국내외 매체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련 보도를 근거로 가십·꽁트 프로그램을 제작할 경우 보도의 정확성, 취재원의 신뢰도, 보도 이면에 게재되어 있을 수 있는 정치적 의도 등을 충분히 검증한 뒤 방송하며, 무분별하게 인용하여 민족화합을 저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프로그램화하지 않는다.

7. 생활문화 적극 소개 : 정치적 통합을 넘어서는 남북 주민간의 사회·문화적 통합이 진정한 최종적 통일임을 인식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민들의 생활과 문화를 프로그램 소재로 적극 채택한다.

8. 능동적인 자료 접근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프로그램 제작시 정보의 편중성·부족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제작진 스스로 노력한다. 1차자료를 적극 활용하고, 각 분야 연구자 등 폭넓은 인적자원 확보에 각자가 능동적으로 힘쓴다.

9. 남북차이 이해 노력 : 언어·문화·생활·관습·가치관 등에서의 남북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노력하며, 가능한 한 이 차이들을 희화적 소재로 삼지 않도록 한다.

10. 남북 동질성의 부각 : 남북의 차이점보다는 같은 점을, 과거보다는 미래를 부각시킴으로써 미래지향적·통일지향적 방향으로 프로그램 제작에 힘쓴다.

1995. 8. 15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한국기자협회·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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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시지 받으면...' '만평 테러' 프랑스, 추모문자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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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간지 <오주르디 엉 프랑스(Aujourd’hui en France)> 8일자 전면. "그들이 자유를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라는 제목 아래, 사람들이 "Je suis Charlie(내가 샤를리이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사진이 실렸다.
ⓒ 오주르디엉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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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9일 오후 8시 24분]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 있는 시사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편집국이 테러를 당해 직원과 경찰 등 12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은 1961년 6월 18일 28명의 사망자를 낸 스트라스부르그-파리 기차 폭발 테러 사건 이후 최근 50년 사이에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테러로 기록됐다. 이 살벌한 테러가 일어난 지 하루가 지난 8일 오전 10시 30분, 거리의 신문 가판대에는 이미 모든 일간지가 동이 난 상태였다. 겨우 몇 개 남아 있는 일간지 <오주르디엉프랑스(Aujourd'hui en France)>만 살 수 있었다.

8일 아침에 열어본 메일 상자에서는 누군가가 검정색 바탕에 흰색의 커다란 글자로 "Je suis Charlie(나는 샤를리다)"라고 쓴 메일을 보내왔다. 그 아래에는 "Please send on, and on, and on…(다른 사람에게 전송해주세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나는 샤를리다"는 7일 저녁 프랑스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열린 추모집회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던 글귀였다. 파리 레퓌블릭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한 50대의 한 중년 여성은 한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샤를리 에브도>를 공격한 것은 우리 모두를 공격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8일 오전에 파리 근교로 나갈 약속이 있어서 지하철에서 고속지하철을 환승하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구내 방송이 나왔다.

"어제 테러로 숨진 희상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오늘 12시에 모든 지하철이 운행을 중단하고 1분 묵념을 하겠습니다."

정오에는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 수많은 인파가 모여 성당의 종소리에 맞춰 1분 묵념을 했고, 프랑스의 모든 공공장소에서도 같은 묵념이 이루어졌다. 오후 다시 파리로 들어오는 지하철 안에서 핸드폰이 울린다. 친하게 지내는 프랑스 친구가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 테러는 도무지 인정할 수 없습니다. 12명의 희생자를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가장 커다란 체인망을 형성합시다. 이 문자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1분 동안 묵념한 후 본인의 이름을 기입한 후 지인들에게 보냅시다."

이어서 43명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나도 맨 끝에 이름을 쓴 후 지인들에게 전송했다. 여지껏 25년간 프랑스에 살면서 이런 식으로 자발적인 행동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80세 노장' 볼렝스키 등 유명 만평가 4명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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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간지 <오주르디 엉 프랑스(Aujourd’hui en France)> 8일자에 실린 캬뷰의 사진과 만화
ⓒ 오주르디엉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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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테러로 희생된 12명 중에 4명은 프랑스인들에게 친숙한 유명 만평가들이다. 75세의 노령에도 단발머리에 항상 소년 같은 미소를 머금었던 캬뷔(Cabu)는 반(反)군사주의자, 반인종주의자, 반종교주의자, 반보수주의자였다. 캬뷔는 1973년에 '보프(Beauf, beau-frere, 처남·처형이라는 뜻의 축약어)라는 캐릭터를 창조하는데, 이 인물은 지극한 애국주의자이며 알코올중독자, 마초, 인종주의자인 프랑스 중산층을 신랄하게 비판하기 위해서이다.

이 신조어는 1985년에 사전에도 실릴 만큼 유명해졌고, 아직까지도 많은 프랑스인들이 즐겨 쓰는 용어다. 보프가 유명하게 된 이유를 캬뷔는 "바보 짓은 보편적인 것이고 모든 이들은 보프가 갖고 있는 단점을 일부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전혀 보프가 아니고 오직 타인만이 보프라고 생각하고 즐기기 때문이다. 내 그림의 목적은 사람들을 웃게 하는 것이기에 그것으로 만족한다"라고 설명했다.

여자들의 나체 그림으로 유명한 볼렝스키(Wolinski)는 80세의 노장이다. 캬뷔와 함께 영원한 소년의 이미지를 주는 그는 캬뷔와 마찬가지로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유력한 바보보다는 현명한 낙오자가 되는 게 낫다"라고 주장한 볼렝스키는 주간지 <마치(Match)>에도 글과 만평을 게재했는데, 좌파 성향을 주장하는 그는 우파 신문인 <피가로>와는 인연 맺기를 거절했다. 그는 2005년에 앙굴렘 BD 페스티발에서 그랑프리를 받았고 2012년에 프랑스에서 '볼렝스키, 50년의 데셍'이라는 전시회를 가진 노장 만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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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나체에 자신의 서명이 들어간 그림을 들고 있는 볼렝스키(1월 9일자 <르몽드>)
ⓒ 르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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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7세의 샤르브(Charb)는 2009년부터 <샤를리 에브도>의 출판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는 만평가이다. 확실한 무종교주의자를 주장하는 그는 모든 종교에 비난의 화살을 던졌고, 마호메트를 비판하는 만평 때문에 이슬람 단체로부터 살해위협을 받고 있어 2012년부터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난 보복이 두렵지 않다. 난 아이들도 없고, 아내도 없으며, 차도 없고, 빚도 없다. 잘난 척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난 무릎 끓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는 것을 선택하겠다."

그는 테러가 일어난 날 발행된 신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만평을 실었다. 마치 다가올 테러를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프랑스에 아직도 테러가 일어나지 않고 있네." 
"기다려봐. 새해 인사는 1월 말까지 하도록 되어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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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간지 <오주르디 엉 프랑스(Aujourd’hui en France)> 8일자에 실린 샤르브의 사진과 만화
ⓒ 오주르디엉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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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 만화는 민주화의 증언이다"라고 한 티뉴스(Tignous)는 57세로 자본주의자들을 혐오하고 사르코지를 신랄하게 풍자하는가 하면, 극단적인 종교인들에게 혹심한 비평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최고의 데셍에 대해 "독자를 웃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데셍이 최고의 데셍이고, 이 데셍 앞에서 독자들은 일종의 수치심을 느낀다. 어려운 상황 앞에서 웃었다는 수치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세계의 자유를 위해 형성된 만평가들의 협회인 '카투닝포피스(Cartooning for Peace)'의 멤버였던 티뉴스는 "납치를 예방하는" 혹은 "살해를 방해하는" 그림을 그리기를 원했다. "만약에 내게 이런 힘이 있다면 난 잠자지 않고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릴 것이다"라고 말한 그는 결국 자신의 그림으로 인해 이번 테러의 희생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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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간지 <오주르디 엉 프랑스(Aujourd’hui en France)> 8일자에 실린 티뉴스의 사진과 만화
ⓒ 오주르디엉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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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 에브도> 특별호 100만 부 발행 예정 

많은 프랑스인들에게 가족과 같이 익숙한 이들 만화가들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프랑스인들에게 마치 가족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테러리스트들은 <샤를리 에브도> 다음 호 준비를 위해 주간회의를 열고 있던 사무실에 갑자기 들이닥쳐 12명의 희생자를 내었다.

신문의 주요 멤버들이 사라진 현재, 당장 다음 주 수요일에 신문이 발간될 수 있을까. 많은 프랑스인들은 신문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언론의 자유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이고 언론의 자유를 겨냥한 테러리스트에게 굴복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신문을 지속적으로 발간하는 것이다.

결국 다음 주 수요일에도 <샤를리 에브도>가 발행될 예정으로 밝혀졌다. 일간지 <리베라시옹> 사무실에서 모든 기자들이 참가하여 발행될 다음 주 특별호는 100만 부가 발행될 예정인데, 평소에 발행되는 6만 부의 17배에 이르는 숫자이다. 7일 테러가 난 이후 <샤를리 에브도>는 순식간에 모두 판매됐다. 

8일 저녁에도 파리의 레퓌블릭 광장에서 다시 추모집회가 열렸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은 촛불을 켜고 "나는 샤를리다" 피켓을 들었다. 오후 8시를 기해서 에펠탑의 조명도 꺼짐으로써 추모집회에 합세하였다. 파리에서 에펠탑의 조명이 꺼지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덧붙이는 글 | 한경미 시민기자는 프랑스에 있는 오마이뉴스 해외통신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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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많던 옥수수는 누가 다 먹었나, 사람? 자동차!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1/09 13:25
  • 수정일
    2015/01/09 13:2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김찬국 2015. 01. 08
조회수 353 추천수 0
 

환경상식 톺아보기-바이오연료는 얼마나 친환경적인가

중형차 한 대 채울 바이오에탄올 만들려면 한 사람 1년 먹을 옥수수 들어
바이오연료 생산과정에 드는 전체 에너지 고려해야, 친환경 기술에 성찰 필요

 

bio1.jpg» 화석연료보다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대체연료로 옥수수 등을 이용한 바이오연료가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다. 미국 아이오와 주의 바이오에탄올 생산시설. 옥수수로 자동차 연료인 바이오에탄올을 생산한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한겨레>가 연말에 보도한 ‘2014년 환경 이슈 10가지 열쇠말’ 중 하나로 소개한 가로림만 조력발전사업 백지화는 환경을 생각하는 이들이 신재생에너지로 알려진 조력발전을 반대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2014년 10월6일 환경부가 가로림만 갯벌 훼손, 멸종위기종 점박이물범의 서식지 보호, 지역주민의 반대 등을 고려하여 가로림만 조력발전 사업의 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한 것이다. 
 
글쓴이가 교양강좌에서 만나는 대학생 중에는 초중등학교에서 배운 ‘신재생에너지’는 환경에 좋은 것인데, 조력발전이나 오늘 살펴볼 바이오연료 등에 대한 우려가 왜 존재하는지 묻는 이들이 있다. 난 이들에게 공짜 점심이 없는 것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지급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을 지급해야 하는지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다. 
 
술 빚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바이오에탄올 제조 가능

 

바이오에탄올과 바이오디젤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지만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는 이들도 있다. 바이오연료는 석유를 대체할 수 있고 온실가스 배출도 적다고 알려져 주목받았다. 
 
바이오연료 중 바이오에탄올은 주로 옥수수와 사탕수수 등 곡물에서 에탄올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얻고, 바이오디젤은 콩이나 유채씨, 열대야자 등에서 기름을 얻어 이를 디젤로 변환하는 방식으로 얻는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옥수수뿐 아니라 우리가 발효하여 술을 담글 수 있는 것이라면 대부분 에탄올을 얻을 수 있다. 와인을 만드는 포도, 막걸리를 만드는 쌀, 매실주를 만드는 매실 등에서도 에탄올을 얻을 수 있다. 다만, 효율이나 경제성 등을 고려하여 미국에서는 주로 옥수수를 사용하고 브라질에서는 주로 사탕수수를 사용하는 것이다. 
 
광합성의 산물로 만들어진 녹말이나 당을 발효시켜 에탄올을 만든 다음 휘발유 대신 쓰는 것이다. 그래서 온실가스 배출도 적어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바이오연료에 대해 최근에는 적극적인 지지 못지않게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석유보다 탄소 배출 많은 바이오연료 
 
바이오에탄올은 화석연료를 태울 때보다 이산화탄소를 20%가량 적게 배출하기 때문에 휘발유를 대체하는 연료로 사용된다. 경유를 대체하는 바이오디젤(B100)은 석유에 비해 배출되는 탄소의 양이 4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한다.1)
 
bio2.jpg» 미국 미시간 주 어느 주유소의 주유기 계기판. 무연휘발유(오른쪽 2종)와 바이오에탄올을 15%, 30%, 85% 혼합한 휘발유(왼쪽 3종)를 함께 판매한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하지만 이것은 이미 수확된 옥수수, 콩, 기름야자 등만 고려했을 때의 수치일 뿐, 어떻게 재배되어 어떤 과정을 통해 바이오연료가 되는지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옥수수로 바이오에탄올을 만들 때, 이산화탄소를 고정하여 생산된 광합성 산물인 옥수수의 일부(알갱이)만 사용한다. 그러나 옥수수를 갈아 발효시키고 이를 증류하여 에탄올을 얻는 등의 과정에 많은 양의 에너지를 투입해야만 한다.  
 
bio0.jpg» 곡물 등으로 만드는 1세대 바이오연료는 광합성으로 저장된 이산화탄소의 일부(옥수수 알갱이)만 에탄올로 변환한다. 또한 변환 과정에서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림=<Ethanol Producer Magazine>
  
그뿐 아니라 바이오연료의 원료가 되는 작물을 재배하는 과정에서 인도네시아와 브라질 등의 열대우림이 파괴되기도 한다. 2008년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바이오연료를 생산하는 과정과 바이오연료의 원료가 되는 작물을 재배하면서 생태계가 파괴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일부 바이오연료는 사실상 석유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할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를 실었다.2)
 
미네소타대학교 등의 연구진이 참여한 이 연구는 산림훼손과 자연녹지 파괴 등 바이오연료 생산으로 인해 배출되는 탄소량이 바이오연료로 인한 온실가스 감축 규모의 17~420배에 이른다고 추정하였다.
 
최근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이 기름야자 재배지로 바뀌기도 하였다. 바이오디젤을 만들기 위해 기름야자유 1톤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약 33톤 배출되는데 이는 석유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열 배에 이르는 양이다.3)
 
대규모 플랜테이션을 만들지 않고 바이오연료의 작물을 기존 작물 재배지에서 기르면 된다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식량용 작물의 가격이 상승하는 또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미국에서 바이오에탄올을 사용하면 누군가는 굶주린다
 
기억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2006년 후반기 이후 2008년 전반기까지 약 2년간 세계 식량가격이 급격히 상승하였다. 이러한 식량 가격 폭등은 그 이후 상당기간 동안 세계 각국의 정치, 경제, 사회를 불안하게 하였다. 당시의 식량 가격 상승은 복합적인 이유로 발생하였지만 미국 등에서 곡물을 원료로 하는 바이오연료의 생산을 늘린 것이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4)
 
bio3.jpg» 국제 식량가격의 상승은 국제기구 등의 구호식량으로 살아가는 아프리카 난민들의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옥수수 가격이 두 배로 뛰면 때로는 이들의 식량이 절반으로 줄어들기도 한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이 기간 동안 옥수수를 비롯한 주요 곡물 가격이 약 2배 상승하였다. 그 영향은 육류, 우유, 식용유를 비롯한 관련 산업으로 번져 식료품 가격도 뛰게 되었다. 
 
세계 식량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될 정도로 바이오에탄올의 생산에는 많은 양의 옥수수가 소비된다. 예컨대 국산 중형차 한 대의 연료통을 가득 채울 정도의 바이오에탄올(약 72ℓ)을 생산하려면 옥수수 약 200kg이 필요한데, 이는 한 사람이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세계 바이오 에탄올 생산이 2000년부터 2008년의 기간 동안 200억ℓ에서 656억ℓ로 세 배 증가하였고, 같은 기간 동안 미국의 바이오 에탄올 생산량은 63억ℓ에서 350억ℓ로 다섯 배 이상 증가하였다.5) 2005년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미국 휘발유 소비의 2%를 대체하기 위해 당시 미국 옥수수 생산량의 13%를 에탄올 생산에 사용하였는데, 어떤 이가 자동차를 타기 위해 다른 이의 굶주림이 심해지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바이오에탄올이 부른 ‘아랍의 봄’
 
이 이야기는 2010년 12월 이래 2011년까지 이어진 ‘아랍의 봄’으로 연결된다.6) 바이오에탄올 생산이 늘어나 이집트 등지에서 시위가 일어났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사진5]Jasmine_Revolution_Avenue_Bouguiba(Tunesien).jpg

 

[사진6]Moroccan_protests.jpg»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와 미국의 바이오에탄올 생산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튀니지(위)와 모로코를 비롯하여 아랍의 봄을 겪은 중동 및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식량의 대부분을 수입하는 나라였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2012년 미국 터프츠대학교 연구진은 미국의 바이오에탄올 생산량 확대가 개발도상국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면서, 옥수수를 순수입하는 개발도상국 전체가 2005~2010년 기간 동안 추가로 지출한 비용(손실)이 바이오에탄올 생산을 2004년 수준으로 유지하였을 때에 비해 미화 66억 달러가량이라고 추정하였다.7)

 

이 중 남미의 멕시코를 비롯하여 이집트(7.3억 달러), 알제리(3.3억 달러) 등 상위 10개 옥수수 순수입 개발도상국은 대부분 ‘아랍의 봄’ 시기에 식료품 가격 상승과 이로 인한 사회불안을 심각하게 겪었다.8)

bio6.jpg» 미국의 바이오에탄올 생산 확대로 인한 옥수수 순수입 개발도상국(상위 10개국)의 추가 비용(2005~2010년) 
 

바이오연료,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바이오연료는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비판과 식량을 연료로 사용한다는 비판을 함께 받고 있다. 물론 새로운 가능성도 있다. 
 
옥수수와 같은 식용작물을 사용하는 1세대 바이오연료의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2세대 바이오연료인 셀룰로오스 에탄올이다. 식물 세포벽을 구성하는 물질인 셀룰로오스를 분해하면 포도당을 얻을 수 있고 여기서 에탄올을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동안 방치하거나 태워버렸던 잎, 줄기, 뿌리 같은 식물 조직 모두에 셀룰로오스가 있다. 옥수수 알갱이에서만 에탄올을 생산하면 면적 4000㎡에서 에탄올 약 1450ℓ를 생산할 수 있지만, 옥수수 줄기, 속, 껍질의 셀룰로오스를 모두 활용하면 약 3000ℓ의 에탄올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분명 바이오연료를 얻기 위해 식물을 재배할 땅과 물, 그리고 재배에 필요한 에너지가 막대하게 소비된다는 점은 피할 수 없다. 최근 미세조류를 이용하여 바이오디젤을 생산하는 3세대 바이오연료에 대한 연구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각국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상용화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도 하지 않은 바이오연료의 힘을 빼기 위해서가 아니다. 바이오연료에 대한 이러한 검토와 성찰은 우리의 삶에 대한 또 다른 논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동차를 타기 위해 (옥수수로 바이오에탄올을 만들어) 누군가의 식량을 뺏는 것은 바람직한가? 인도네시아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훼손하면서까지 바이오디젤을 만드는 열대야자 나무를 재배해야 하나?
 
이렇게 조금만 더 생각하면 내가 오늘 모는 자동차와 사용하는 에너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것이 자동차와 사람이 옥수수를 놓고 경쟁하는 시대에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상식’이다. 
 
이건 비단 바이오에탄올 뿐 아니라 (화력발전이나 원자력발전으로 전기를 주로 생산하는 우리나라에서 달리게 될) 전기자동차, (많은 양의 희귀금속 등을 포함하여 만든 대규모 충전기를 사용하는) 하이브리드자동차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는 성찰이다.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에너지를 쓰면 (또는 쓰지 않으면) 지구가 더 살기 좋아질까?”라는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던져보자는 의미이다.

 

bio7.jpg»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옥수수가 재배 가능한 마지막 농작물이라는 설정이다.
 
작년 말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에는 광활한 옥수수밭이 나온다. 그 영화를 보며 미래의 어느 시점에 경작할 수 있는 작물이 옥수수밖에 없다면, 적어도 그 옥수수로 자동차 연료를 만들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21세기에 우리는 누군가의 먹을거리로 자동차의 연료를 만든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고. 
 
김찬국/ 한국교원대학교 환경교육과 교수·환경과공해연구회 회원
 

1) U.S. Department of Energy. http://www.afdc.energy.gov/fuels/biodiesel_benefits.html (B100의 경우임: 바이오디젤을 20% 섞어 사용하는 B20의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약 15% 줄인다.) 

2) Joseph Fargione, Jason Hill, David Tilman, Stephen Polasky & Peter Hawthorne (2008). Land Clearing and the Biofuel Carbon Debt. Science 319(5867), 1235-1238.   

3)  Eric Holt-Gim?nez & Isabella Kenfield (2008). When Renewable Isn’t Sustainable: Agrofuels and the Inconvenient Truths Behind the 2007 US Energy Independence and Security Act. Institute for Food and Development Policy.

4)  바이오연료의 확산이 식량가격 급등의 원인 중 하나라는 데는 전반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Sciences)는 11개 보고서를 조합해서 2007~2008년 식량가격 급등의 20~40%가 세계적인 바이오에탄올의 확산 때문이라고 보았다. National Research Council (2011). Renewable Fuel Standard: Potential Economic and Environmental Effects of US Biofuel Policy. The National Academies Press. 

5) Renewable Fuel Association http://ethanolrfa.org/ http://www.kalrez.net/apps/autofocus/a8/biofuel.html 

6) 아랍의 봄은 2010년 12월 이래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를 의미한다. 당시 알제리, 이집트, 리비아, 모로코, 튀니지, 이란 등 북아프리카와 중동 국가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으며, 이중 튀니지와 이집트에서의 반정부 시위는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 

7) Timothy A. Wise (2012). The Cost to Developing Countries of US Corn Ethanol Expansion. Global Development and Environment Institute, Tufts University. 

8)    Timothy A. Wise & Marie Brill (2012). Fueling the Food Crisis: The Cost to Developing Countries of US Corn Ethanol Expansion. ActionAid International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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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 신은미씨 강제출국 당할 수도

 
 
러시아인 대북전문가 “신 씨에게 표현의 자유를 가질 권리 있어”
 
정상추 | 2015-01-09 11:05:3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워싱턴포스트, 신은미씨 강제출국 당할 수도 
-러시아인 대북전문가 “신 씨에게 표현의 자유를 가질 권리 있어”
-러시아인 대북전문가 “국보법 빨리 폐지될 수록 좋아”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지 워싱턴포스트가 8일 재미동포인 신은미씨가 강제출국 당할 수 있음을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수차례 북한을 방문하며 북한에 대한 좋은 점들을 강연해오던 신은미씨가 최근 종북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보수단체의 고발을 받고 검찰의 조사를 받아왔다는 사실과 조시를 받던 지난 3주 동안은 출국이 금지된 상태였음을 아울러 보도했다.

지난 2011년 북한을 처음 방문한 이래 그 후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하고 오마이뉴스에 방문기를 실어 큰 호응을 얻었으며 그 방문기를 근거로 쓴 신 씨의 저서는 2013년 문체부의 추천도서로 선정됐다가 최근에 삭제된 사실을 보도한 이 기사는 자신이 ‘”마녀사냥”의 대상이 됐다’며 자신이 ‘보수 언론들이 한 허위보도의 희생자’라는 신 씨의 말을 인용한다. 이 기사에 따르면, 검찰은 강제출국과 아울러 앞으로 5년간 입국금지를 법무부에 요청했다.

아울러 이 기사는 대북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씨가 신 씨의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으나 신 씨가 자신의 생각을 말할 표현의 자유를 가진다고 말하며, 시대에 뒤진 국가보안법은 빨리 폐지될수록 좋다고 말했다고 전하고, 국가보안법은 국제 엠네스티로부터도 끊임 없이 비판을 받아왔음을 보도한다. 기사는 한편 신 씨와 함께 강연회를 진행한 황선씨에 대해서는 검찰이 같은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요청했음을 전한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워싱턴포스트 기사의 전문번역이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wapo.st/1xWpO3K

American set to be deported from South Korea for pro-North views
미국시민 친북 견해로 한국에서 강제출국 예정

By Anna Fifield,Yoonjung Seo January 8 at 3:59 AM

Shin Eun-mi walks towards the presidential office in central Seoul, South Korea to ask for a meeting with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on Dec. 5, 2014. ShinEun-mi caused controversy on a chat show over alleged pro-North Korean remarks. (Yonhap/Via European Pressphoto Agency) 2014년 12월 5일 신은미씨가 박근혜 대통령과의 만남을 요구하며 한국의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청와대를 향해 걷고 있다. 신은미씨가 친북 발언을 했다는 주장으로 토크쇼에 대한 논란이 빚어졌다.

TOKYO – A Korean-American woman who traveled around South Korea saying complimentary things about North Korea could be deported as soon as Friday. Authorities in Seoul have accused her of violating the country’s anti-communist national security law.

도쿄- 한국 전국을 순회하며 북한의 좋은 점들을 이야기해온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빠르면 금요일 강제출국울 당할 수 있다. 한국 당국은 이 여성이 반공을 기초로 한 한국의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가 있다고 말했다.

The bizarre case has elicited furious reactions from conservatives and North Korean defectors, and raised questions about freedom of speech in the democratic South.

이 이상한 사건은 보수주의자들과 탈북자들로부터 격분에 찬 반응을 자아냈고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Shin Eun-mi, a 54-year-old classical singer from Los Angeles, was banned from leaving South Korea for the last three weeks while being investigated for breaching the decades-old National Security Act, which prohibits “aiding the enemy.”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54세의 성악가인 신은미씨가 “이적행위”를 금하는, 수십년된 국가보안법을 어겼는지에 대한 조사를 받는 지난 3주 동안 한국에서 출국이 금지됐었다.

After the travel ban expired on Thursday, prosecutors asked the justice ministry to deport for Shin back to the United States and to ban her from returning for five years. She arrived in Seoul on a tourist visa in November.

목요일 출국금지가 만료된 후, 검찰은 법무부에 신 씨를 강제출국시키고 앞으로 5년 동안 한국에 입국하는 것을 금지시켜줄 것을 요청했다.

A spokesman for the prosecutors’ office said that even if a foreign citizen had not been charged with a crime, they could still be deported for being dangerous to public safety.

검찰측 대변인은 외국시민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공공의 안전에 해가 된다면 강제출국을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Shin, who denies allegations that she is pro-Pyongyang, said she was the subject of a “witch hunt.”

자신이 친북인사라는 주장을 부인하는 신 씨는 자신이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었다고 말했다.

“The prosecutors asked me about the content of the talking event, my books, postings and my lectures in the U.S. in a great detail,” said Shin, who was born in South Korea but moved to the United States to pursue a master’s degree. “I told them that I am the victim of false reporting by conservative media outlets.”

“검찰이 강연회의 내용, 내가 쓴 책들, 내가 포스팅한 글들, 그리고 미국내에서의 내 강연에 대해 자세히 심문했다”고 한국에서 출생하고 석사학위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갔던 신 씨가 말했다. “나는 보수 언론들이 한 허위보도의 희생자라고 그들에게 말했다.”

The case relates to Shin’s lectures in South Korea in which she talked about her repeated trips to North Korea. The North technically remains an enemy of the South as the Korean War ended in 1953 in an armistice, not a peace treaty.

이 사건은 신 씨가 여러차례에 걸친 북한 방문에 대해 이야기하던 한국에서의 신 씨의 강연들과 연관된다. 한국전쟁이 1953년 평화협정이 아니라 휴전으로 끝났기 때문에 북한은 사실상 여전히 한국의 적으로 남아 있다.

“I wish to live my life helping North Korea by opening a youth center in the North,” Shin said during a lecture last month in Iksan, which was abruptly brought to a stop when an 18-year-old high school senior threw a handmade bomb at the speaker. Three people were injured.

“북한에 청소년센터를 세워 북한을 돕는 삶을 살고 싶다”고 신 씨가 지난달 익산시의 강연에서 말했고, 이 강연은 18세의 고교 3년생이 자신이 만든 폭발물을 연사에게 던지면서 갑자기 증단됐다. 3명이 부상을 입었다.

Conservative groups have protested — verbally — at similar talks Shin has given, calling her a North Korean sympathizer.

보수단체들은 신 씨가 했던 다른 강연장들에서 신 씨를 종북이라 부르며 시위를 벌여왔다.

Shin and her husband first visited North Korea in 2011, and after her second trip in 2012, she gained a huge following with her travel reports by “an ordinary middle-aged woman”for Ohmynews, a news Web site run by “citizen reporters.”

신 씨와 그녀의 남편은 2011년 최초로 북한을 방문했고, 2012년의 두번째 방문 이후 “시민 기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뉴스 사이트인 오마이뉴스에 “평범한 아줌마”의 여행 보고서를 실으며 큰 인기를 얻었다.

In her postings, Shin had portrayed a positive view of life in North Korea, talking about a “warm hearted, pretty and lovely” waitress she met at a hotel and luxurious restaurants in Pyongyang that were not just for communist party members and foreign visitors, but for everybody, she said.

자신의 게시글에서 신 씨는 호텔에서 만난 “마음이 따뜻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종업원, 그리고 공산당원과 외국인 여행객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평양 소재 고급 음식점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북한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묘사했다.

Her book — “A Korean-American Ajumma Goes to North Korea,” using the Korean word for a middle-aged married woman — was included on the culture ministry’s recommended reading list in 2013, but has recently been removed.

결혼한 중년여성을 뜻하는 한국어 단어를 이용해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라고 이름 붙인 그녀의 책은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추천 도서에 포함됐으나 최근에 삭제됐다.

Andrei Lankov, a Russian expert on North Korea who lives in Seoul, defended Shin’s right to free speech, even if he did not agree with her.

서울에 살고 있는 러시아인 대북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씨는 그녀의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신 씨에게 표현의 자유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옹호했다.

“The ideas of Mrs Shin might be naive, and occasionally used by rather nasty forces, but she should have right to say what she thinks,” Lankov said.

“신 씨의 생각은 좀 천진할지도 모르고 간혹 악의적인 세력들에 의해서 이용되기도 하지만 그녀에겐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말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고 란코프씨는 말했다.

The National Security Law, written in 1948 after the division of the Korean peninsula, should have been scrapped years ago, he said.

한반도의 분할 이후 1948년에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수년전에 폐지됐어야 한다고 그가 말했다.

“One should remember that the Communist parties remained operational in most Western democracies in the days of the Cold War, even though their connections with the Soviet intelligence and their dependency of the not-so-secret Soviet subsidies was a common knowledge,” he said. “The sooner this law is repealed, the better.”

“그들이 비록 소련 정보국과 연결되어 있었고, 대단한 비밀이 아니던 소련의 보조금에 의존했던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냉전시대에도 대부분의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산당이 활동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이법은 빨리 폐지될 수록 좋다.”

The law has also been sharply criticized by Amnesty International, which in 2012 issued a report saying that the act had been used to undermine “citizens’ enjoyment of the right to freedom of expression and association”.

이 법은, 또한 2012년 “시민들의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즐길 권리”를 훼손하는 데 이 법이 이용돼왔다는 보고서를 발간한 국제 앰네스티에 의해서 심하게 비판을 받아왔다.

Shin had been on the road talking about North Korea with Hwang Sun, a left wing activist and the former deputy spokeswoman for the Democratic Labor Party, a now-defunct political organization that was considered by the authorities to be “anti-state.”

신 씨는 좌파 활동가이자 이제는 없어진 정치 조직이며 당국에 의해 “반국가적”이라 여겨지는 민주노동당의 전 부대변인인 황선씨와 함께 북한에 대한 토크쇼를 진행해오고 있었다.

Prosecutors also asked for an arrest warrant for Hwang, a 40-year-old South Korean citizen, for the same offenses. Hwang became the subject of controversy when it emerged that she gave birth in Pyongyang by cesarean section on October 10, 2005, the anniversary of the founding of North Korea’s communist Workers’ Party.

검찰은 같은 혐의로 40세의 한국인 황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또한 요청했다. 황 씨는 2005년 10월 10일 북한의 노동당 기념일 행사일에 평양에서 제왕절개에 의해 아이를 나은 것이 밝혀지며 논란의 대상이 됐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9&table=c_sangchu&uid=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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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는 드릴게"…한국 시사만화가의 행운?

"살려는 드릴게"…한국 시사만화가의 행운?

[기자의 눈] 프랑스 언론사 테러와 시사만화가들의 죽음을 보며

 
손문상 화백 2015.01.09 10:02:31

 

 
“그 손모가지를 자르고 싶다.”, “불 싸질러 죽이고 싶다.”
 
간혹 격 떨어지게 내 이름으로 한자풀이도 한다. 
 
“문상이 문상(問喪)가고 싶다.” 
 
25년간 시사만화를 그리며 고마운 격려의 말을 제외하고 들어왔던 많은 비난의 말 중에 비교적 점잖은 것으로 기억나는 몇 가지다. 최근엔 국가원수를 모독하고 명예를 훼손했다고 고발도 당했다. 이런 피드백이 만성이 돼서 시사만화가 누구나 아무렇지 않다면 새빨간 거짓말일 것이다. 가끔씩 듣는 심하다 싶은 댓글에는 쓰라린 내상을 입는다. 그러다 이내 훌훌 털고 직업적 숙명임을 받아들인다.  
 
시사만화가들은 보수 진보를 떠나 오늘 한국의 언론환경에서 불편한 존재가 된지 오래다. 조중동을 비롯한 우리 사회 주류신문에는 어느새 대부분 시사만화가 없다. 십여 년 사이 일이다. 비판과 풍자의 칼날은 언론 그 자신에게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 역시 <프레시안>에 있기 전 여러 신문사를 거쳤다. 아마도 시사만화 작가가 풍자와 비평에 관해 다른 방식으로 욕먹기를 즐기거나, 그 언론 사주와 동일한 비판정신(?)을 갖고 있다면 지금보다 시사만화는 더 많은 매체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한민국에서 저널리즘이 고전적으로 내게 가르쳐준 비판방식을 고집하며 아직까지 시사만화를 그리고 있다는 행운에 늘 감사하고 있다. 무수한 언어폭력이 가해지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살려는 드릴게!”   
 
여기 시사만화를 그리다 암살과 테러를 당한 두 죽음이 있다.  
 
▲ 이스라엘의 반 팔레스타인 정책에 놀아나는 아랍 세계 지도층을 비판한 나지 앙 알리의 만평. 이를 지켜보는 꼬마 한잘라가 보인다. ⓒ칼디르 알 알리

▲ 이스라엘의 반 팔레스타인 정책에 놀아나는 아랍 세계 지도층을 비판한 나지 앙 알리의 만평. 이를 지켜보는 꼬마 한잘라가 보인다. ⓒ칼디르 알 알리  

 
 
 
1987년 런던 첼시의 이브닝 가에서 총격으로 암살당한 팔레스타인의 양심이자 지성인 시사만화가 나지 알 알리(Naji Al Ali)의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그제 2015년 1월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중심가 주간지 <샤를리 엡도> 사무실에서 무참히 희생된 시사만화가 4명 스테판 샤르보니에(Stéphane Charbonnier), 카뷔(Cabu), 볼린스키(Wolinski), 티그누스(Tignous)의 죽음이다. 이들은 성역 없는 풍자와 비판으로 표현의 자유를 목숨처럼 아니, 목숨으로 바꾼 이들이다. 개인적으로는 2012년 프랑스 르모쥬에서 열린 ‘세계시사만화축제’에서 인사를 나눈 이들이다. 
 
▲나지 알 아리ⓒ칼리드 알 알리

▲나지 알 아리ⓒ칼리드 알 알리  

뒷짐을 진 채 언제나 만평 속을 응시하는 꼬마 캐릭터 ‘한잘라’로 유명한 만평작가 나지 알 알리는 팔레스타인인으로 무슬림이다. 그가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부터 레바논, 쿠웨이트를 거쳐 영국으로 망명하기까지 성역 없이 비판해온 것은 이스라엘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뿐만이 아니었다. 아라파트를 비롯한 팔레스타인과 아랍세계 지도층들의 부패와 반민중적 정책에도 치명적인 날카로운 펜을 들었다. 종교적 근본주의자와 극단주의도 풍자와 비판에서 예외가 없었다.  
 
 
실제로 나지 알 알리는 아라파트의 팔레스타인판 용비어천가를 쓴 터키출신 여성작가문제를 조롱한 만평을 그린 후 협박전화를 받았고, 3일 뒤 출근길 거리에서 암살당했다. 물론 아라파트 일파의 짓인지 혹은 평소 수없이 암살의 위협을 암시한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소행인지 오늘까지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다. 
 
 
이번 프랑스 <샤를리 엡도> 테러도 과거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저지른 테러의 악몽을 되살린다. 1995년 파리의 지하철역에 폭탄을 터뜨려 8명이 사망하고 119명이 부상당한 생미셸 역 사건과 2012년 남부도시 툴루즈에서 알카에다 연계조직에 몸담았던 모하메드 메라가 총기를 난사해 4명의 유대인 학생들과 3명의 프랑스 군인을 사살한 사건 등이다.  
 
20세기 이후 유럽사회는 식민지의 이슬람 유입인구가 2,3세대로 늘면서 프랑스만 해도 무슬림은 전체 인구의 7.7%에 이른다. 그만큼 프랑스 사회의 주요 의제와 문화적 담론들이 큰 이슈가 되어 있다. 당장 이들의 죽음으로 프랑스 사회에서 르펜이 이끄는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이 가장 큰 반사이익을 볼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유럽 전역에서 나오고 있다. 프랑스의 중요한 사회문제이나 여전히 일상의 차별과 사회적 약자인 이슬람 이민사회를 증오의 대상으로 설정해 세력을 확장하는 극우주의 정당은 과거 나치의 모델을 연상시킨다.
 
샤르보니에르는 평소 이슬람종교도 성역에 두지 않았지만 테러와 살해 협박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그들(이슬람 극단주의자)은 프랑스 이슬람교도를 대표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여기에 조응하는 프랑스의 보편적 이슬람 사회의 발 빠른 반응도 보인다. 보르도 지역의 이슬람지도자 ‘타레크 오우브로우’는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 후 “우리는 지금 전쟁행위를 보고 있는 것"이라며 9·11 테러에 빗대 무슬림에게 이번 테러를 비난하는 시위에 합류할 것을 촉구했다. 
 
나지 알 알리나 <샤를리 엡도>의 편집국에서 살해된 4명의 시사만화가들의 죽음도 표현의 자유나 시민사회의 비판을 수용할 수 없는 극단주의자들의 방식이다. 이슬람이나 기독교 등 모든 종교적 근본주의나 좌우의 정치적 극단주의는 무한대처럼 서로 멀지만 실상은 가까이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거울이다. 결국 극단주의의 문제지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사회라면 테러가 일어났다 해서 혐오와 증오를 더욱 부추기거나 또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라 가르치진 않는다. 그렇다고 테러에 굴복할 것을 용납하지도 않는 사회일 것이다. 
 
나는 오늘 대한민국을 살면서 또다시 의심하고 우려하며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가 프랑스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을 뉴스로 소비하는 방식은 어떤가? 아직도 반인권과 차별로 얼룩진 이주 노동자 문제를 덮어버리는, 혐오와 증오의 극단적 반 이슬람 정서의 거울을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 다른 한 편의 거울엔 무엇이 있을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증오의 종북몰이, 혐오의 폭식투쟁, 유신을 넘어 서북청년단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내 점점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다 터지는 황산 냄비폭탄을 본다. 
 
이런 사유와 허망한 상상의 끝은 언제나 한없이 우울하고 착잡하지만 복잡한 생각을 뒤로하고 오늘부터 당분간은 이번 테러로 죽은 이들과 같은 시사만화가로서 <샤를리 엡도>의 4명의 시사만화가들에 대한 조의 기간을 가질 생각이다.  
 
그런데 또 꼬리를 물며 떠오르는 생각 하나. 
 
나는 언제까지 “살려는 드릴게!”라는 환청으로 들으며 이 땅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을까?   
 
▲ 2015년 1월 7일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에서 희생당한 4명의 시사만화가. 왼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스테판 샤르보니에(Stéphane Charbonnier), 볼린스키(Wolinski), 카뷔(Cabu),  티그누스(Tignous) ⓒwww.europe1.fr

▲ 2015년 1월 7일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에서 희생당한 4명의 시사만화가. 왼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스테판 샤르보니에(Stéphane Charbonnier), 볼린스키(Wolinski), 카뷔(Cabu), 티그누스(Tignous) ⓒwww.europe1.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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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시인·교수·작가들은 왜 <굴뚝신문> 만들었나?

 

[인터뷰]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 집행위원

15.01.09 08:24l최종 업데이트 15.01.09 09:3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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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일 창간한 <굴뚝신문> 전현직 노동담당 기자들이 모여 만든 <굴뚝신문> 1호. 쌍용차 등 정리해고 문제르 공론화하기 위해 만들었다.
ⓒ 굴뚝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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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세상에 나왔지만, 하루빨리 폐간되길 간절히 바라는 신문이 있다. 이 신문을 만들기 위해 휴일도 반납하고, 야간노동도 불사했지만 창간호가 폐간호가 되는 것을 목표로 내걸었다. 10개 언론사의 전·현직 노동 기자, 사진작가, 교수, 시인 등이 모여서 만든 <굴뚝신문>이 이야기다. 

지난 7일에 발간된 이 신문은 짐작하는 대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문제를 다뤘다. 총 12면에 걸쳐 22개 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이창근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실장이 지난 2009년부터 쌍용차지부 대변인을 하며 인연을 맺은 기자들이 썼다. 단순히 이들의 '편'을 들고자 기사를 쓴 건 아니다. 해고노동자들이 자꾸만 굴뚝위로 올라가는 상황 속에서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문제를 공론화해보자는 취지다. 

시작은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 집행위원의 제안이었다. 기자들은 지난해 12월 말 한 차례 기획회의를 거친 뒤 1월 초까지 취재와 기사 작성을 마쳤다. 매일 '마감전쟁'을 치르는 기자들은 쉬는 날과 퇴근 후에 오로지 <굴뚝신문>만을 위한 기사를 썼다. 

취재 기자 외에도 교수와 작가 등이 흔쾌히 글을 보내줬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세계적인 석학 슬레보이 지제크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언론기고나 인터뷰를 일체 하지 않았던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조교수는 <굴뚝신문>를 위해 글을 썼다. 굴뚝 위로 보내는 편지글을 보낸 김소연 시인은 주변 문인들의 쌍용차 해고노동자 지지서명을 받느라 한 달 치 무료 문자메시지를 다 써버렸다. 

이렇게 나온 기사는 <한겨레> 편집기자들의 밤샘 노동을 거쳐 지면에 옮겨졌다. 평일인 지난 6일, 당일 업무를 마친 기자들은 오후 7시께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오탈자를 바로잡고, 제목을 달았다. 그 외에도 노순택 사진작가, 박건웅 만화가 등이 자신의 작품을 내주었다. 디자이너들은 지면에 실릴 광고를 무료로 디자인 해줬다. 오로지 마음만으로 만든 신문이다. 대가를 받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굴뚝신문> 1호의 발행부수는 총 5만 부. 전국 30개 도시에서 32명의 굴뚝배달부가 8일부터 한 부당 1000원에 신문을 판매한다. 서울은 박점규 위원이 맡았다. 8일 오후 신문 묶음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서울 중구 민주노총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간단하게 정리한 것이다.

"노동자들이 굴뚝위로 올라가는 상황 방치하지 말자는 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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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4년 12월 22일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과 서울 동작구 옛 기륭전자 본사 앞에서 오체투지 행진을 한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 집행위원. 이날 박 위원과 행진단은 "사람을 노예로 만들고 사람을 오직 절망으로 내모는 반인간적인 비정규직 노동은 그 자체로 사회적 범죄이다"며 "노동에 대한 옳바른 법·제도가 적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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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개 언론사의 전·현직 노동 기자가 기획·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 모이게 된 계기는?
"지난해 12월 이창근씨가 굴뚝 위로 올라가자 그가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대변인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기자들이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전화를 주었다. 그러던 중 온라인 신문인 <굴뚝일보>를 실제 지면으로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기자들에게 제안하니 흔쾌히 받아주었다. 

지난해 말에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첫 기획회의를 했고, 지난 5일까지 모든 원고를 마감했다. 매일 마감전쟁을 치르는 기자들이라 새해 첫날에도 취재를 하는 등 개인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그렇게 <굴뚝신문>만을 위한 기사를 써주었다. 기자들이 단순히 굴뚝에 올라간 사람을 대변하고자 한 게 아니다. 노동자들이 굴뚝위로 올라가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하지 말자는 취지다." 

- 고공농성 중인 쌍용차 해고자들의 소식을 전하는 온라인 신문 <굴뚝일보>가 있는데, 오프라인 신문을 발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굴뚝일보>는 SNS로 소식을 전하는데, 이런 것에 접근하지 못하는 현장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을 위한 오프라인 신문이 있다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굴뚝 위에 올라갔는지 전달할 수 있겠다 싶었다. 

또한 <굴뚝일보>가 온라인에서 그들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면, <굴뚝신문>은 그들이 왜 굴뚝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고, 어떻게 해야 문제가 해결되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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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뚝신문 많이 봐 주세요"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연대 단체 참가자들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구로구 쌍용자동차 구로정비사업소 앞에서 정리해고 비정규직법제도 전면폐기를 위한 2차 오체투지 행진 기자회견에 참석해 굴뚝신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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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발행 비용은 어떻게 마련했나? 
"인쇄와 배포에 들어간 400만 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비용은 모두 재능기부로 충당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한겨레21> 등이 <굴뚝신문>에 광고를 내주고, 익명의 후원자들이 후원금을 보내주어 어렵지 않게 만들었다."

- 신문 발행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
"일단 쌍용차 지부에서 너무 기뻐했다. 자신들의 이야기가 여기 다 담겨있으니까. 평택시민과 공장 동료들에게 일일이 전달해주고 싶다며 5000부를 요청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서도 센터에 수리를 맡기러 온 손님이 읽을 수 있도록 비치해두겠다며 500부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 외 전국의 생협 매장, 대학 앞 서점들과도 협의 중이다.

또한 전국 투쟁사업장으로 향하는 희망버스를 기획하며 만난 분들이 굴뚝배달부를 맡아주기로 했다. 총 32명이 전국 30개 도시에서 가판을 펼치거나 직접 방문해서 <굴뚝신문> 1호를 판매한다. 더 많은 굴뚝배달부를 모집해 구석구석 신문을 전달할 예정이다." 
 

"휴일 반납하고 마음으로 만든 신문"
박 위원은 인터뷰 말미에 <굴뚝신문>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발행에 참여해 준 이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굴뚝신문 발행위원회와 제작에 참여한 이들은 다음과 같다.

발행인: 신학림
취재: 김도연(미디어오늘), 김용욱(참세상), 박철응(경향신문), 이광호(레디앙), 이정환(미디어오늘), 전종휘(한겨레), 최지용(오마이뉴스), 최하얀(프레시안), 한윤형(미디어스)
편집: 정성화, 주민규, 김원일, 박정민, 이천우, 김지야, 나성숙, 유홍상, 임병학 (모두 한겨레)
사진: 노순택, 박승화(한겨레21), 변백선(노동과세계), 이명익(시사IN), 정기훈, 정택용
광고디자인: 이원우, 정하연
기고: 김소연 전 전국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분회장, 김소연 시인,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 조교수, 박건웅 만화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이윤엽 판화가, 이창우 화백, 이택광 경희대학교 영미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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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협정가격’ 알아야 북한 경제가 보인다


<신년기획> 김정은, ‘북한의 덩샤오핑’될 수 있을까? ②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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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08  16: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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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제1위원장은 '북한의 덩샤오핑'이 될 수 있을까? 

북한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집권 4년째를 맞으며 여전히 경제발전에 전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전략적 노선으로 선택한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은 현 시점에서는 경제 건설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김정은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도 ‘인민생활 향상’을 강조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과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사회적 인프라와 생산 시스템이 약화됐고, 대외적으로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어려운 조건에서 과연 북한이 경제건설에 성공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일성 주석이 주체사상을 통해 정치사상강국을 건설했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선군정치를 내세워 핵무력에 기반한 군사강국을 건설했고, 김정은 제1위원장은 경제발전을 통해 ‘북한의 덩샤오핑’이 되고자 한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김정은 제1위원장은 ‘5.30담화’를 통해 새로운 경제정책 방향을 제시했고, 당창건 70주년을 맞은 올해는 그 같은 정책구상이 구체적인 경제적 조치로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다.

올해 북한의 경제전망을 대내적인 경제관리 개선 조치와 대외적인 경제개발구 건설 전략, 협동농장과 식량 메커니즘, 그리고 남북경협 전망 등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1. 김정은 ‘5.30담화’와 내각 상무조
2. 쌀 ‘협정가격’ 알아야 북한 경제가 보인다
3. 기업소 지배인의 ‘수입병’ 왜 생겼나?
4. 관광개발구, 경제개발구의 ‘미끼 전술’?
5. 남북 모두 먹고 싶은 ‘그림의 떡’
 



북한의 식량사정이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고 있다는 보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 근로자의 한달 공식 임금으로는 시장에서 한달치의 쌀도 사지 못한다는 난해한 현실이 놓여있다. 그만큼 바깥에서 북한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북한 경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협정가격’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국정가격과 시장가격의 커다란 격차 문제를 현실적으로 메우고 있는 ‘협정가격’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우선 협동농장과 식량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마지막 서명 문건은 ‘물고기 대책’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뜻깊은 올해에 인민생활 향상에서 전변을 가져와야 한다”며 “농산과 축산, 수산을 3대축으로 하여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식생활 수준을 한단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먹는 문제 해결과 식생활 수준 향상을 현단계 농업의 과제로 제시한 것이다.

북한이 먹는 문제 해결에 중점을 두어 온 것은 오래 된 일이지만 ‘식생활 수준 향상’이 추가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를 위해 육류를 제공하는 축산과 수산이 3대 축으로 새롭게 제시된 것이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 전날인 2011년 12월 16일 밤 마지막으로 서명한 문건과 김정은 제1위원장이 처음 서명한 문건이 ‘물고기 대책’이라고 북한 언론들이 보도했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11년 9월 9일 김정은 당시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을 대동하고 새로 건설된 보통문고기상점을 현지지도 했고,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2년 4월 만수교고기상점 준공식에 참가했다.

이들 고기상점은 1층은 물고기, 2층은 육고기 매장이, 3층은 식당으로 꾸며져 있다. 일각에서는 평양만의 ‘본보기’ 상점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고 있지만 통상 평양에서 시범운영을 거쳐 각 도소재지 등으로 확산시켜 나가는 것은 북한식 사업방식이다.

 

   
▲ 북한은 올해 당창건 기념일까지 대규모 축산기지인 세포등판 건설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2012년 말부터 최대 규모의 종합 축산기지로 개간, 건설되고 있는 세포등판은 전국적 규모의 노력동원을 통해 올해 당창건 70돌 기념일(10월 10일)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 강원도 세포군, 평강군, 이천군 일대에 총 5만 수천 정보의 방대한 목초지를 조성해 소, 양, 염소, 돼지, 토끼, 오리 등을 길러 고기를 생산하는 축산기지로 2017년 연간 5천톤, 2020년에 연간 1만톤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협동농장, 가족 단위 포전담당책임제 효과

북한이 수산과 축산을 내세우며 식생활 수준 향상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식량 문제, 즉 먹는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임에 틀림없다. 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시기의 심각한 식량난에서는 벗어났지만 만성적인 식량부족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김지석 수매량정성 부상(차관)은 지난해 12월 23일 남포항에서 진행된 러시아의 밀 5만톤 무상지원 기증식에서 러시아 <타스통신> 질문에 “올해 가뭄 피해에도 불구하고 (곡물) 수확량이 571만 톤”이라며 “지난해와 비교해 5만 톤 이상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꾸준히 식량 생산이 증가하고 있는 ‘제도적’ 이유로는 포전담당책임제와 생산물 분배 방법의 개선이 꼽히고 있다.

먼저 북한에서 농업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협동농장의 운영 방식을 2012년부터 기존의 분조관리제 안에서 포전담당책임제를 도입한 점을 들 수 있다. 재일 <조선신보>는 “조선(북한)의 농업부문에서는 원래 있었던 분조관리제를 2012년부터 새로운 방법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확인했으며, “포전담당책임제는 소수의 농민들에게 일정한 포전을 맡기고 땅다루기와 벼모기르기, 수확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공정을 책임지도록 하며 그 실적에 따라 분배를 실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 북한의 협동농장 운영은 초기의 작업반 중심에서 분조 중심으로 변화됐고,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는 분조 산하에 포전담당제를 도입해 작업단위를 더 축소하고 있다. 사진은 남포특급시 강서군에 있는 청산리협동농장의 조직도. 이 조직도에는 표시돼 있지 않지만 각 작업반 밑에서는 분조가 조직돼 있다. [자료사진 - 민족21]
기존의 10명~25명 수준의 분조 규모를 3~5명으로 세분화시켜 사실상 가족단위 포전담당책임제를 실시해 주인의식을 강화한 것. <조선신보>에 따르면 북한 농업 관계자들은 “최근 북한에서 곡물생산이 늘어난 것은 ‘농민이 생산의 주인이 되여 농사를 과학기술적으로 지은 결과’”라고 자평하고 있다.

 

텃밭에서 한발 나아가 협동농장의 기본 운영에 가족단위 수준의 소규모의 포전담담책임제를 실시함으로써 주인의식을 높여 생산성 향상을 달성했다는 평가인 셈이다. 삼지강협동농장 리혜숙 관리위원장은 “포전담당제 실시후 영농차비를 할 때부터 자세가 달랐다”며 “비료가 모자란다고 위를 쳐다보는 현상이 사라지고 자체로 거름을 비롯한 대용비료를 마련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했다”고 말했다.

<조선신보>는 “포전담당책임제 실시는 현 시기 조선노동당의 농업정책의 중요한 내용”으로서 “그것은 알곡생산을 빨리 늘여 인민들의 식량문제를 풀 수 있게 하는 기본방도의 하나로 되고 있다”면서 “최근년간의 알곡증산이 가정마다 살림살이의 안정, 식생활의 개선을 가져다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변화된 ‘3.7제’와 국가수매

그러나 식량 증산을 위해서는 생산방식의 변화 못지않게 분배구조 또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아무리 많은 생산물을 거두더라도 그 결과물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면 애써 일할 동기가 부여되지 않기 때문이다.

2012년부터 협동농장에 적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른바 ‘3.7제’는 과거 현물세 30%라는 이미지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큰 차이가 있다.

<조선신보>는 “분조에서 생산한 알곡(곡물) 가운데서 국가가 정한 일정한 몫을 제외한 나머지는 농민들에게 그들이 번 노력일에 따라 현물 즉 생산된 농작물을 기본으로 분배”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가가 정한 일정한 몫’이 얼마인지 확실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리용구 농업성 국장은 지난 2일 <조선신보>와 인터뷰에서 “지난해 농민들이 국가 앞에 지닌 생산적 의무를 자각하고 애국적 열의를 발휘한 결과 농민들의 분배 몫이 늘어나고 국가수매량도 늘어났다”며 “한해 농사를 지어 지난 시기라면 수년 분에 해당되는 분배를 받은 농촌세대들이 적지 않다”고 말해, ‘수매’와 ‘분배’를 언급했다.

<통일뉴스>는 2012년 ‘12.1조치’를 보도하면서 “국가가 농업 생산물의 70%를 수매하고 그 중 국가가 토지이용료와 인민군 지원 성미 등에 해당하는 부분만큼을 세금으로 가져가고 나머지는 수매대금으로 협동농장에 현금으로 지급한다”고 확인한 바 있다. 이른바 3:4:3의 ‘3.7제’다.

먼저 첫 번째 ‘3’은 국가에 납부하는 토지 이용료와 트랙터 같은 국가설비의 이용료, 전기세, 물세 등을 생산물의 약 30%에 해당하는 현물로 납부하는 것이다. 농장원이 국가에 내는 일종의 세금으로 과거 현물세 30%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여기서 30% 내외의 국가 납부분 중 가장 큰 변동분은 ‘비료’ 대금이다. 비료를 국가에서 공급받는지 아니면 농장에서 자체 조달하는지에 따라 국가에 현물 납부하는 비율이 달라진다. 통상 비료를 국가에서 공급받을 경우 국가 현물 납부분은 30%를 넘게 된다. 일각에서는 이 경우에는 40%로 추정하고 있다.

두 가지 협정가격의 비밀

 

   
 

두 번째 ‘4’는 국가가 협동농장에 현금을 주고 곡물을 수매해 가는 40%다. 협동농장 입장에서는 국가에 생산물의 40%를 일괄 판매하고 현금을 받는 몫이다. 공장이나 기업소, 공무원 등과는 달리 기본 월급이 없는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1년치 월급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수매가’이다. 국가가 사들이는 쌀 가격을 얼마로 책정하느냐의 문제다. 이 문제는 북한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들에게 골치아픈 문제다. 한정된 국가재정에서 농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적정한 수매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도 이른바 ‘양정 계정’은 정부 재정적자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2009년 11월 양정법을 개정하기도 했다.

실제로 북한 당국이 정한 쌀 1kg의 국정가격은 44~46원에 해당된다. 그러나 시장가격은 평양 기준으로 약 4,500원에 달한다. 북한의 공식 환율은 2013년 ‘3.1조치’ 당시 1달러에 100원이지만 실제 환율은 1달러에 5,800~8,500원 수준이었고, 현재도 약 8,000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쌀 1kg의 실제 시장가격은 달러 기준으로 큰 변동 없이 1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을 꾸준히 유지해오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실제 시장가격은 4,500~8,000원 사이에 형성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북한 수매양정 당국이 현금으로 수매하는 40%의 생산량에 대해 ‘협정가격’을 적용 수매하고, 이를 다시 국영상점이나 수매상점에서 기업소 등에 ‘협정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정확히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최근 ‘협정가격’은 국가가 사들이는 수매가는 쌀 1kg에 500~1,000원 수준이고, 국가가 되파는 판매가는 1,000~1500원 수준인 것으로 관측된다. 따라서 기업소 등에서는 시장가격이 아닌 협정가격에 쌀을 구매할 수 있어 적정한 임금체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아울러, 시장가격이 지나치게 폭등할 경우는 국가가 나서 일시적으로 ‘한도 가격’을 제시하고 엄격히 단속함으로써 시장가격을 일정한 수준 내로 묶어두는 장치도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 번째 ‘3’은 협동농장에서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30% 생산 현물이다. “그들이 번 노력일에 따라 현물 즉 생산된 농작물을 기본으로 분배하고 분배된 농작물은 농민들이 자기 요구에 따라 처분할수 있다”는 것이다. 즉, 현물분배, 현물처분이 가능한 30%다.

통상 농장원들에게 분배된 현물 30%는 농민들의 식량으로 쓰이는 것이 기본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개인 텃밭 생산분과 함께 일부가 ‘시장’으로 흘러들어 거래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배인과 당비서의 ‘후방사업’ 능력이 좌우

 

   
▲ 지난해 연말 김정은 제1위원장이 군 6월8일농장에 새로 지은 채소온실을 둘러보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이처럼 국가가 협동농장으로부터 식량생산량의 30%를 납부받고, 40%를 협정가격에 수매함으로써 국가의 식량공급권이 큰 틀에서 유지될 수 있다.

 

지난해 총 곡물수확량이 571만톤이라면 공업용이나 종자용 등으로 약 100만톤을 제외한 450~470만톤 정도가 실제로 소비가능한 곡물량으로 추산되며, 한해 평균 수입량은 30~50만톤 내외일 것으로 관측된다. 대략 500만톤의 식량을 북한 총인구 약 2,450만명이 나누어 먹는 셈이다.

북한의 인구를 식량배분 방식으로 크게 나누어보면, 국가가 식량공급을 책임지는 배급대상 600만명, 자체 분배몫으로 살아가는 농민 800만명, 식량을 사먹는 일반주민 1,000만명 정도로 거칠게나마 분류할 수 있다.

먼저,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국가 배급시스템이 망가졌고, 이를 회복하는 과정에 있어 배급대상을 세분화하고 최소화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에 따라 배급대상은 전체 인구의 약 20%수준으로 500만명으로 추산되며, 여기에 군인 100만명을 합쳐 600만명이다. 1인당 1년 식량소비량을 200~250kg로 적용하면 약 120~150만톤에 해당된다.

국가 입장에서는 농민들에게 토지 이용료 등으로 현물로 거둬들인 30%, 약 150만톤의 식량을 배급대상에게 무상으로 공급하는 셈이다.

다음으로, 약 800만명으로 추산되는 농민들은 생산량의 약 30%에 해당되는 현물 분배분을 식량으로 사용하고, 텃밭 생산분 등을 합해 여분의 식량을 시장가격으로 시장에 내다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800만명이 약 150만톤 내외만을 소비해야 하므로 내다 팔 여분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마지막으로, 일반 1,000만명의 주민은 식량을 구입해 먹어야 하는데, 대체로 소속단위인 공장이나 기업소 등에서 국영상점과 수매상점에서 ‘협정가격’에 집단으로 구입해 충당하게 된다. 국가에서는 농민들로부터 협정가격에 사들인 40%의 식량, 약 200만톤을 이익금을 붙인 협정가격에 파는 셈이다.

배급대상이나 일반주민들이 식량이 부족할 경우(농민도 마찬가지겠지만), 최후의 수단은 개별적으로 시장에서 ‘시장가격’으로 사먹어야 한다. 문제는 시장가격은 협정가격의 수배에 달해 기본 월급만으로 사먹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결국 기업소의 경우 협정가격에 식량을 많이 구입해줄 수 있는 지배인이나 당비서가 ‘후방사업’을 잘 한 유능한 지배인이나 당비서로 평가받게 되는 것이다.

시행착오 거치고 있는 포전담당책임제와 ‘애국미’

 

   
▲ 지난해 2월 개최된 '전국 농업부문 분조장대회' 모습. 김정일 제1위원장은 '사회주의농촌테제의 기치를 높이 들고 농업생산에서 혁신을 일으키자'는 제목의 서한을 이 대회에 전달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해 2월 평양에서 개최된 ‘전국 농업부문 분조장대회’에 보낸 서한을 통해 “최근에 농장원들의 생산열의를 높이기 위하여 분조관리제 안에서 포전담당책임제를 실시하도록 하였는데 협동농자들에서 자체실정에 맞게 옳게 적용하여 농업생산에서 은이 나게 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자체실정’을 언급한 대목은 실정에 맞지 않는 요소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조선신보>는 지난해 1월 삼지강협동농장 관리위원장이 “분조관리제 안의 포전담당제는 우리처럼 규모가 큰 농장보다 산골의 자그마한 농장에서 그 생활력이 보다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경지정리가 잘된 큰 농장의 경우 더 큰 분조단위의 생산활동이 더 적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올해 1월 3일자 <로동신문>은 룡천군 사례를 보도하면서 “지난해 농장들에서는 단위실정에 맞게 농장원들에 대한 포전분담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하였는데 그중에는 불합리한 것도 있었다”면서 한 농장원이 농사조건이 유리한 곳과 불리한 곳에 있는 두 개의 포전을 담당관리하도록 해 떨어져 있는 두 포전 사이를 오가며 농작물 관리를 하다보니 결국 알곡수확고를 높이는데 영향을 받았다고 사례를 들었다. 평등한 포전분배에 치중하느라 오히려 생산의 효율성이 훼손된 것.

리용구 농업성 국장은 “우리 식의 농업경제관리방법인 분조관리제, 그 안에서 진행되는 포전담당제의 우월성과 생활력을 더욱 높이 발양시켜 나갈 것”이라며 “지난해 창조된 좋은 경험들을 전국에 일반화하고 그 집행을 위한 법적 틀거리를 완비하기 위한 일련의 대책과 조치들이 강구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문제점으로는 기존의 ‘준조세’에 해당하는 각종 잡부금이나 ‘애국미’ 염출 여부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사회 전반에 만연한 ‘준조세’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여러 정책들을 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통일뉴스>는 2012년 12.1조치를 전하면서 “초과 생산물이 많이 나온 농민들이 군량미를 내놓겠다고 했지만 국가가 이를 만류해 농민들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농민들에게 분배된 몫이 고스란히 농민들에게 돌아갔음을 시사한 대목이다.

그러나 <조선신보>는 2013년 12월 25일자 기사에서 “삼지강협동농장에서 현물분배 후 한 청년의 기특한 마음이 불씨가 되여 ‘애국미’운동이 일어났다”며 “관리위원회나 웃단위에서 요청하거나 호소하지는 않았는데도 지난해는 농장에서 300t의 ‘애국미’가 마련됐고 올해는 350t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물론 기관에서의 ‘요청’이나 ‘호소’가 없는 자발적 행위로 보이지만 협동농장 현물분배 몫에서 일부가 애국미로 전달된 것만은 사실인 것이다.

포전담당책임제와 ‘3:7제’ 분배는 북한 농민들에게 주인의식을 높이고 증산에 나설 동기부여를 강하게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포전담당책임제는 시행착오를 줄여가는 과정 중에 있고, ‘협정가격제’ 또한 국정가격과 시장가격의 너무 큰 격차로 인해 불안정한 상황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준조세나 애국미 염출 등의 전 사회적 과제도 남겨져 있다.

광복 70주년과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10월의 대축전장’을 준비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제시한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식생활수준을 한단계 높여야 한다"는 과업의 수행 여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현안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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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한주호 준위 동상은 무엇을 가리킬까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1/08 14:21
  • 수정일
    2015/01/08 14:2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왜곡된 故한주호 준위 동상의 업적비
 
장유근 | 2015-01-08 13:01:1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한주호 준위 동상은 무엇을 가리킬까
-왜곡된 故한주호 준위 동상의 업적비-

“故 한주호 준위는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 것일까…?”

지난달(구랍) 27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 정문 앞에서, 천안함 사건 당시 불의의 죽음을 당한 故 한주호 준위(‘한 준위’라 한다) 동상 제막식이 있었다.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는 한 준위의 모교였다. 한 준위의 동상 제막식 소식이 알려진 후 짬이 생기면 한 번 찾아가보기로 마음 먹다가 지난 3일 이곳을 다녀오게 됐다.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 정문 앞 도로변에 세워진 동상의 특징은 고인의 오른손이 어느곳을 가리키고 있는 것. 한 준위가 가리키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필자는 고인(동상)이 가리키고 있는 위치가 어느곳인지 단박에 머릿속을 스쳤다. 한 준위의 동상 주변을 둘러보며 한 준위의 죽음을 둘러싼 비하인드 스토리를 엮어 본다.


한 준위의 목숨을 앗아간 원인은 무엇일까

천안함 사건은 어느덧 5년의 세월을 맞이하고 있다. 한 준위는 지난 2010년 3월 30일 백령도(연화리) 앞 바다 ‘제3의 지역’에서 잠수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 원인이 분분했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낮은 수온에 의한 저체온증이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사고 당시 한 준위의 생명을 앗아간 바다 온도는 섭씨 3도. 이 온도에서 잠수할 경우 또렷한 의식을 갖고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은 15∼20분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무리한 잠수를 계속할 경우 저체온증에 걸릴 수 있다는 것. 저체온증은 체온이 35도 이하로 내려가는 것으로, 저체온증에 걸리면 심장과 뇌, 폐 등 장기의 기능이 떨어지고 25도 이하가 되면 심장이 정지하게 된다. 한 준위의 사망 원인도 저체온증이었다는 것.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한 관련 전문의는 자기의 블로그에 분노의 글(작성일자: 2010/04/04 23:41)을 남겼다.

어느 흉부외과 전문의가 본 한 준위의 죽음

“(상략)도대체, 여태 원인이 알 수도 없는 이유로 인해 해군으로 입대한 사병들과 많은 부사관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차라리 북한의 공격이면 덜 답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망할 대상이라도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이건 도대체 원인도 모르고, 군에서는 계속 말 바꾸기만 하고 있으니 답답하죠.  안 좋은 일은 꼬리를 물고 찾아 온다고 했나요? 차가운 바닷물에 들어가 있을 실종자들을 구하기 위해 무리하게 구조작업을 펼치던 한주호 준위님까지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습니다.

글쎄요, 공기색전증(air embolism) 또는  저체온증에 의한 사망이죠. 공기색전증은 가압챔버가 있어야 해결되는 것이니, 이것은 다음에 다시 말씀드리기로 하고요, 오늘은 저체온증에 대해 말씀드리죠… 이번 겨울에 저는 한강대교에서 한강대교에 뛰어내린 환자 두 분을 진료한 적이 있습니다. 한강의 강물에 뛰어내리면서 받은 흉부의 충격으로 갈비뼈의 다발성 골절과 외상에 의한 공기-혈액가슴증으로 흉부외과로 입원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바로 저체온증이었습니다.  

사람은 항온동물, 즉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생명을 유지하는 동물이죠. 일반적으로 실온(20 ~ 24 도 정도)에서 평상복을 입고서 섭씨 36.2 ~ 36.7 정도를 유지하죠. 그러나 체온을 많이 일어버려서 저체온증에 빠지게 되면, 신체대사는 급격하게 떨어지게 되고, 가장 심각한 문제는 초기문제는 심실빈맥(Ventricular tachycardia)를 만들어서 심장마비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체온증에서는 심장에 전기충격을 주어도(Defibrillation), 별 효과가 없습니다. 체온이 빨리 따듯해져야 하죠. 또한, 체온이 낮으면 혈관이 모두 수축해서 신체장기에 적절한 혈액이 공급이 안되고, 심장은 과부하가 걸려서 혈압은 무지하게 낮아집니다. 그러다가 사망에 이르게 되죠… 그래서,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흉부외과 의사가 개입을 합니다. 우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주변에서 열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1) Blanket이라고 하는 매트리스를 침대에 깔아주고, 이 매트리스에 따듯한 물을 지속적으로 순환시켜 줍니다. 화상을 입히지 않고 열을 공급하는 방법이죠.

2) Bear hugger라는 담요를 덮습니다. 이 담요는 윗면은 얇은 비닐로 되어 있고, 아랫면은 부직포 같은 천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 파이프를 연결해서 따듯한 바람을 지속적으로 공급합니다. 그러면 더운 바람이 지속적으로 환자에게 공급이 되어 줍니다. 두툼한 모피의 곰이 안아주는 효과라는 표현의 제품명입니다. 다음은 혈관이나 체내로 직접 열을 공급하니다.

3) 따듯하게 데운 링거액을 주사합니다. 40 도 정도로 데운 링거액을 중심정맥을 잡은 다음에 지속적으로 주입합니다. 물론 필요하다면 이뇨제를 주사하여서 과다한 물이 체내에 남게 하면 안 됩니다.

4) 흉강 내, 또는 복강 내에 관을 삽입하고 따듯한 식염수를 주입하고, 다른 관으로 배액을 하기도 합니다. 좀 심하게 이야기하면 보일러 파이프를 몸 안에 설치한다고 할까요?? 주로 응급의학과 선생님들이 선호합니다.

5) 흉부외과 의사는 좀 더 과감합니다. 중심 정맥- 주로 대퇴 동맥/대퇴 정맥에 손가락 굵기의 큰 관을 삽입합니다. 그리고, 혈액을 체외로 빼내서 직접 가온하여서 주입합니다. 즉 체외순환을 통한 체온 증가를 유도하는 거죠. 이는 심장 수술이나 대동맥 수술에서 일부러 저체온증을 유도한 후에, 다시 가온하는 방식을 적용한 거죠. 아주 심한 저체온증에서 사용을 합니다.  

물론 제가 이번에 입원 시킨 환자 분들은 1) ~ 3) 방식으로 해결이 되어 모두 퇴원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한 준위님은 그러지 못한 것 같습니다. 도대체 이런 추운 날씨에 dry suit도 아닌, 싸구려 wet suit로 작업하는 UDT 대원들을 위해서, 구조함에는 어떤 의료 장비가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최소한 부정맥을 제거하는 제세동기(Defibrillator), warmer와 blanket, 그리고 bear hugger와 중심정맥에 주사를 할 줄하는 흉부외과 또는 응급의학과 의사와 따듯한 링거액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구조대원을 보내는 것은 구조를 위한 것인가요? 아니면, 윗사람들의 자리보전을 위한 것인가요? 더군다나, 저체온증에 의한 심정지 시에는 체내의 에너지 소모가 감소하기 때문에, 심장이 정지되어도 뇌의 기능은 다른 환자들보다 좀더 시간적 여유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고작 한 치료는 미군 함정으로 이송이라니 말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너무나 답답하고 슬픈 일들입니다.

이제 너무나 시간이 지나버려 천암함의 장병들이 살아 돌아오길 기대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워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구조하기 위한 작업도 끝이 났습니다. 침몰의 원인이야 천안함을 인수해야만 알 수 있으니, 그 어떤 추측도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제대로 된 인명구조함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적절한 의료진과 의료장비, 교대 작업이 가능하도록 여러개의 가압실과 이를 위한 크레인을 가지고 있고, UDT 대원들에게도 dry suite를 공급할 수 있으며, GPS에 의해 자동항법장치로 원하는 곳에서 머무르면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모선말이죠. 우리나라의 선박기술로 못 만들 이유는 없겠죠. 물론 정치권의 의지가 필요합니다만… 지금과 같은 국방부 및 해군 장성급의 대처,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져 나오는 군수비리, 병역비리… 아마도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하략)”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sicarus&logNo=30083771204>

죽음의 원인 왜곡된 이상한 업적비

어느 흉부외과 전문의가 쓴 한 준위의 죽음의 원인은 저체온증에 의한 심장마비였다. 천안함 사고 직후 닷새만에 일어난 이 같은 사고는 ‘잠수함 충돌설’과 무관하지 않았다. 한 준위가 사망한 지점은 천안함 승조원 구출이나 수색과 무관한 위치였기 때문이다. 당시 한 준위가 사망한 위치를 취재한 KBS 9시 뉴스는 <한주호 준위, 다른 곳에서 숨졌다>란 제목의 기사에서 “고 한주호 준위가 당초 알려진 함수 부분이 아닌 제3의 지역에서 잠수 중 사망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KBS는 “한 준위가 숨진 장소는 함수에서 1.8km, 함미에서 6km 떨어진 곳에 부표가 설치된 제3의 지역”이라며 “군이 지난 7일 이 장소에서 길이 2m의 파편 두 개를 건져올려 백령도나 독도함이 아닌 다른 어딘가로 가져갔다”고 보도한 것이다. 이와 관련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이었던 신상철(진실의 길) 대표는 “황현택 KBS 기자에 따르면 제3의 부표 뉴스가 보도된 직후 당일 오후 10시 30분경 해당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는 국방부의 반박이 있었으며 당일 밤 UDT동지회 회장이 KBS를 방문하여 동지회 회원들이 착각한 것 같다는 요지로 해명을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신 대표는 “이에 황현택 기자는 인터뷰했던 UDT 회원들에게 다시 연락하였으나 동지회 회장과 같은 취지의 이야기를 하였고 진술이 번복됐다고 판단했다”며 “다음날 KBS는 해당 뉴스를 KBS 홈페이지에서 삭제한다”고 설명했다. 신 대표는 “KBS는 더 이상 후속보도하지 않았고 그 당시 취재했던 기자 3명이 더 이상 보도하지 않으면서 묻혀 버렸다”며 “천안함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한주호 준위의 사망 사건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한 준위의 사망 지점은 제3의 장소

그러나 국방부의 우격다짐에도 불구하고 한 준위가 숨진 이후 2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천안함의 진실은 서서히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천안함 사건을 집중적으로 꾸준히 취재해 온 [미디어오늘]의 조현호 기자에 따르면, 천안함 제3부표는 한 준위가 직접 설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천안함 수색작업을 하다가 한 준위가 함미와 함수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사망했다는 이른바 ‘제3의 부표 의혹’에 대해, 당시 이를 보도했다가 기사를 삭제했던 KBS 취재진이 ‘제3의 부표’를 설명한 UDT 동지회원과의 취재녹취록을 법원에 제출한 것이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황현택 KBS 기자의 진술서에 첨부된 UDT동지회원의 녹취록에 따르면, 정철 UDT 대전지회장은 지난 2010년 4월 6일 KBS 취재진과 전화통화에서 한주호 준위가 자신이 세운 용트림 바위 앞 부표에서 사망했다고 밝혔다. 정 지회장은 이곳을 함수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함수의 위치는 이곳으로부터 3~4km 동쪽으로 떨어진 곳에 있었고, 해상크레인도 함께 있었다. 제3의 부표 위치에 대해 정 지회장은 용트림바위 앞 단상에서 “1km 안 됐죠. 너무 가깝게 보이죠. UDT 현역병들이 고무보트 타고 뺑뺑 돌고 그랬잖아요”라고 말한 것으로 녹취돼있었다. <출처: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561>

따라서 두루뭉술 얼렁뚱땅 끼적거린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 정문 앞 한 준위의 업적비는, 건립취지에 전혀 어긋나는 것으로 한 준위와 모교의 명예를 동시에 손상시킨 것이라 할 수 있는 것. 전술한 어느 흉부외과 의사의 소견과 천안함 사건 당시 보도에 충실했던 황현택 KBS 기자의 보도 등에 따르면, 한 준위는 제3의 장소에서 무리한 잠수를 시도한 끝에 심장마비로 숨진 것. 사람들은 이 같은 사실 등에 따라 한 준위가 숨진 위치에 잠수함 충돌설을 뒷받침 해 주는 물체가 존재했을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고귀한 죽음을 악용한 어둠의 세력들

천안함의 함수는 한 준위가 사망한 지점으로부터 1.8km 떨어진 동쪽에 위치해 있었고, 함미침몰지점으로부터 6.4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한 준위의 죽음은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 천안함의 생존자 구조 및 수색과 전혀 무관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에서는 이 같은 사실 등에 대해서 모르쇠로 일관하며 우격다짐으로 밀어부친 결과, 천안함 침몰사건의 원인은 ‘북한 잠수정의 기습공격’에 의한 것으로 포장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 이 사건으로 해박한 관련 지식을 가진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 한 사람의 삶과 운명은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었다.

그는 이 사건 중심에 있는 신상철 ‘진실의 길’대표이며, 지난해 12월 22일까지 제32차 공판을 통해 사력을 다해 천안함의 진실을 밝히는데 주력해 오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몰상식적으로 변한 이면에는 거짓을 참으로 여기는 사악하고 어두운 무리들 때문이며, 한 준위의 고귀한 희생을 악용하고 있는 어둠의 세력들로 인해 동상을 참배하는 사람들이 발견되지 않는 것일까. 사람들은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진실에 목말라 할 뿐 거짓을 신앙하지 않는다. 그건 곧 죽음의 길이다. 한 준위가 가리킨 궤적을 따라가다 보니 진실이 보인다. 그곳은 처음부터 가지 말았어야 할 (보호받지 못하는)제3의 장소였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5&table=dream_jang&uid=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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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주간지 테러용의자 3명 신원확인

 |  작성자 이윤영 기자

게시됨: 업데이트됨: 
FRANCE

 

 

 

 

 

 

 

 

 

 

 

 

 

 

7일(현지시간) 발생한 프랑스 주간지 테러사건의 용의자 3명의 신원이 확인됐다고 프랑스 언론, AP통신 등 외신이 일제히 보도했다.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주간지 '샤를리 엡도'의 사무실에 침입해 총기를 난사한 용의자는 각각 34세, 32세, 18세이며 이들은 모두 프랑스 파리 북서부 젠빌리에르 출신이라고 전했다.

CNN도 파리 부시장이 용의자 3명을 붙잡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익명의 프랑스 경찰들을 인용해 용의자 나이와 이름이 30대 초반의 사이드 쿠아치, 셰리프 쿠아치 형제와 18세의 하미드 무라드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쿠아치 형제의 국적은 프랑스이며 나머지 한명인 무라드의 국적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AP는 이들이 예멘의 테러리스트 조직과 연계돼 있다면서 이들이 사건 현장에서 "'예멘의 알카에다'라고 언론에 전하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목격자의 증언도 함께 소개했다.

시사잡지 르푸앵은 이들이 지난해 여름 시리아에서 돌아왔다고 전했다.

AP와 블룸버그통신 등은 그러나 프랑스 당국이 용의자가 체포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테러는 과감한 풍자로 유명한 주간지 샤를리 엡도가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평을 실은 것이 발단이 됐다.

편집장을 비롯한 직원 10명과 경찰 등 12명이 사망했고 프랑스 정부는 파리 전역에 가장 높은 수준의 테러 경계경보를 발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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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신부 "박근혜씨는 거짓말쟁이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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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세웅 신부는 7일 저녁 민주노총 경남본부 대강당에서 "한국민주주의 진로"라는 제목으로 '민주수호 강연회'를 열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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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신부가 '민주수호'를 외쳤다. 박정희 정권 때인 19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변인을 맡았던 함 신부는 그의 딸이 정권을 잡아 하는 일들을 보면서 다시 한국 민주주의 진로를 걱정하며 성당 바깥으로 나섰다. 

함 신부는 민주수호경남운동본부가 7일 저녁 민주노총 경남본부 대강당에서 연 민주수호 강연회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이날 강연회에는 김영만 6·15경남본부 상임대표와 이경희 경남진보연합 고문 등이 참석했고, 많은 사람들이 강연장을 메워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함 신부는 박근혜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박근혜씨'라고 불렀다. 불법으로 당선됐다는 게 하나의 이유였다. 이날 함 신부는 새정치민주연합(옛 민주당)에 대해 그는 "싸우지도 않고, 바보다, 능력이 없다"라는 평도 내놨다. 

그는 "2012년 12월 19일 저녁 개표할 때 한 방송에서 '박근혜 당선 유력'이라는 자막이 나오니까 새정치연합 개표참관위원들이 자포자기하고 도장 찍고 나갔다"라면서 "개표용지에 도장을 같이 찍었으니 공범자들이다, 불법관권선거에 대한 근원적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데 놓쳤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 선거를 제대로 잘하기 위해서는 '수개표'를 법제화하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 전국 투표소가 3만 개 정도인데, 투표함을 옮기고 집계하는 과정에서 장난을 칠 수 있으니까, 투표한 그 자리에서 개표를 하도록 해야 한다"라면서 "현장에 CC-TV도 설치해서 개표와 집계에서 조작 가능성을 없애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함 신부는 "수개표를 위해 입법청원을 해놨는데, 새누리당이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 선거에서는 꼭 그것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라면서 "그렇게 하자고 야당에 말하니까 영남 지역은 참관인이 부족하다고 하더라, 많은 사람들이 수개표 참관인으로 참여하는 운동을 벌여야 하고, 자녀도 많이 나아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1970년대 부총리 부인이 강론 듣고 머리 아프다더라"

함세웅 신부는 이석기 전 의원 등 구속된 7명 통합진보당 당원들의 부인이 구명운동을 위해 탄원서를 받았을 당시 일화를 소개했다.

"지난해 문익환 목사 20주기 추모행사 때였다. 기도하면서 처음에 보니 서명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문익환 목사 이야기를 했다. 문익환 목사한테 서명운동에 동참해야 하느냐고 여쭸더니 '그거 해야지 무슨 소리야'라며 야단을 치시더라. 그랬더니 추모행사를 마치고 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서명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1970년대 이야기도 했다.

"감옥 갔다 나와서 동부 이촌동 신부로 갔더니, 당시 부총리 부인이 신자로 왔다. 그분이 저의 강론을 듣고 나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분한테 성경을 다 읽어보았느냐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성경을 다 읽고 와야 한다. 성경에는 세상을 다 끌어안아야 한다고 돼 있다고 말했다.

십자가에 박힌 예수님도 머리가 아프다, 예수님이 저를 응시하며 야단을 치신다. 신자들이 가져다 주는 것만 받아먹고 교회 건물 안에만 있는 게 신부냐고 하신다. 예수님께서 저 보고 세상으로 몰아넣고 있고, 그렇게 하기 위해 신부가 됐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함 신부는 "은퇴하고 편하게 쉬고 싶은데 사건이 터지니까 가만히 있을 수 없다"라면서 "젊은 신부들이 모이면 제게 와서 가만히 앉아 있어도 힘이 된다고 한다, 작년부터 저를 세상으로 끌어내는 또 다른 힘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통합진보당이 탄압을 받을 때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했다"라고 덧붙였다. 

"박근혜, 공약 지켜라... 한 입으로 두 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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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세웅 신부는 7일 저녁 민주노총 경남본부 대강당에서 "한국민주주의 진로"라는 제목으로 '민주수호 강연회'를 열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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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 신부는 유신헌법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그때 유신철폐라고 하면 감옥에 갔다, 그때 이돈명 변호사가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해야 할 일이 많은 데 감옥에 가면 되겠느냐'고 하시더라"라며 "그러면서 '너희들이 만든 유신헌법이나 잘 지켜 달라'고 하더라, 유신헌법에도 꼭 지켜야 할 내용들이 들어 있었다, 그러면 긴급조치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을 이행하지 않는 것에 대해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박근혜, 욕할 가치도 없지만, 욕하지 말고, 그 사람이 후보 때 이야기했던 것만 지켜라고 하면 된다"라면서 "그는 거짓말쟁이의 왕이다, 자기 배반이다, 네가 말한 거 약속지켜라고 해야 한다, 왜 한 입으로 두 말 하느냐"라고 일갈했다. 

이어 "새로운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시위하고 박근혜 타도를 격렬하게 외쳐서 감옥에 가기보다 오히려 꾸짖으면서 해야 한다"라며 "박근혜씨가 후보 때 이야기 한 것을 제대로 지적하는 것처럼, 그런 묘안을 생각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함 신부는 우리 민족이 참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이 싸우고, 6·25 전쟁 때 서로 죽이고, 독재자와 졸개자들이 아직도 살아남아 있으며, 분단이 청산되지 못한 것은 우리 모두 공동의 잘못"이라면서 "선거에서 표를 찍은 사람뿐만 아니라 바꾸지 못한 사람들이 연대 책임도 있다, 우리는 하느님과 선조 앞에 참회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죽기 전에는 순수해지게 돼 있다"라면서 "지금은 연초인데, 내 생애를 어떻게 마감해야 되는가를 함께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깊은 성찰과 함께 내일을 위한 준비"

이날 함세웅 신부는 헌법재판소(아래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이야기도 꺼냈다. 그는 "헌법재판소에서 결정하기 이틀 전(2014년 12월 17일) 국회 대회의실에서 원탁회의를 하는데, 모든 분들이 헌재가 이 사건을 기각해야 된다고 하더라"라면서 "그런데 두 분은 같은 뜻이지만 조금 다른 말을 했다, 그 다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했다"라고 소개했다. 

이어 "지금은 (정당해산 결정이) 기각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해산 뒤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고, 암울한 시대의 검찰·관권·행정부 독재시대 때 통합진보당 해산은 너무나 당연하고 이런 시대에 해산되지 않으면 언제 해산될 것이며 그래야 이 정권이 독재라는 것을 더 확인하게 된다는 말도 하더라"라고 덧붙였다. 

그는 "통합진보당이 죽게 됐다, 죽은 다음부터 새로운 시작이고 살려내야 한다, 역사와 국민의 민주주의 의식을 살려내는 것이고 그것은 부활이다"라면서 "부활은 깨닫는 것이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부활은 환생이 아니라 고통을 그대로 수락하고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여 십자가를 껴안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힘도 없는데…'라고 한다"며 운을 뗀 그는 "여기서 내공을 키워야 한다, 정권과 그 하수인의 결정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수락하면서, 거짓 언론을 넘어서서 그 다음에 더 큰 일을 생각하고 계획하는 일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깊은 성찰과 함께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하자"라고 호소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연기한 것과 관련해 함 신부는 "노무현 대통령은 2012년에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기로 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3년 연장했는데, 박근혜는 무기한 연장했다"라면서 "이는 대통령 취임선서문과 어긋나는 것이다, 군사작전권을 포기하는 사람이 어떻게 나라를 지킬 수 있나, 이것을 야당도, 언론도 말하지 않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음식처럼 소식도 건강하게 들어야"

강연회에서는 언론 이야기도 나왔다. 함세웅 신부는 "한국의 썩은 언론, 특히 '조·중·동'은 국민의 머리를 썩게 만든다"라면서 "사람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건강한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소식도 건강한 소식을 들어야 한다, 거짓과 썩은 소식을 들으면 머리가 썩는다, 우리가 언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오랜 기간 동안 언론정화개혁운동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함 신부는 "정권을 바꾸고, 아름다운 공동체와 통일 공동체를 위해 함께 모여야 한다, 지금은 10인 10색이다, 진보진영도 NL이니 PD니 한다"라면서 "신학에는 원죄론이 있는데 원죄의 핵심은 인간의 분열성과 탐욕이다, 그것을 깨뜨리지 않고는 화합과 통일이 이뤄질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통일을 위한다면 큰 목적을 위해 양보했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NL, PD의 분류를 배제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함께 가야 한다"라면서 "친일청산과 유신잔재 청산, 분단 청산, 신자유주의 타파를 위해 모든 사람을 모아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민주정신과 아름다운 공동체를 위한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함세웅 신부는 "1987년 체제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끝이 났다, 해산 반대했던 김이수 재판관만이 1987년 정신을 갖고 있다"라면서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에 '8대 1'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6월항쟁의 정신과 3·15부정선거와 싸웠던 정신, 김주열 열사정신을 다시 재연하는 운동을 펼쳐야 한다"라고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각자 얼굴도 다르고, 단체도 다르다, 그러나 단체이기주의를 버리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위해 양보하면서 더 큰 집을 위해 합쳐가는 운동을 해야 한다"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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