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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6/13
    [SHOUT-31]느낌의 거리, 생각의 거리(4)
    토닥
  2. 2006/06/11
    [SHOUT-30]일단 멈춤(1)
    토닥
  3. 2006/06/03
    [SHOUT-29]촬영계획(4)
    토닥
  4. 2006/06/02
    [SHOUT-28]향촌에서 불타는 필름을(2)
    토닥
  5. 2006/05/24
    [SHOUT-27]어제 향촌(12)
    토닥
  6. 2006/05/07
    [SHOUT-26]요며칠(3)
    토닥
  7. 2006/04/28
    [SHOUT-25]기획안(6)
    토닥
  8. 2006/04/22
    [SHOUT-24]제목, 제목...(4)
    토닥
  9. 2006/04/12
    [SHOUT-23]어떻게 구성할까(7)
    토닥
  10. 2006/04/04
    [SHOUT-22]명함(3)
    토닥

[SHOUT-31]느낌의 거리, 생각의 거리

우리가 어떤 걸 느낄 때

그러니까

기쁘거나 안기쁘거나

슬프거나 덜슬프거나

화나거나 우울하거나

그런 느낌이 들 때

너는

그 느낌을 끌어당기는 편인가

아니면 한발짝 정도 떼어놓는 편인가

입을 크게 벌리고 큰 소리로 하하 웃는 사람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눈물을 펑펑 흘리는 사람

너는 그런 사람인가

아니면 조금 기다렸다가

나중에 혼자 조금 웃거나

한참 지나서 돌이켜보다가 조금 울어보는 사람인가

 

그런 태도가 

어떤 사람, 어떤 사물을 만났을 때

어떻게 다가가서 어떻게 촬영하는가, 하는 점과 연관되어있다

 

내가 보기에 재원이는 한발 물러서는 편인데

가끔 급하게 달려들어서 그 안에 들어가버린다

그러면서 자신이 지금 그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뭔가를 한다

그러면...후회없이 그 상황에 몰입할 수는 있지만

촬영은...잘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가끔 거리조절을 해야한다

그래야한다는 것이 무지하게 슬프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한데

영화를 만들려면 그렇게 해야한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만나서...^^

 

어제 호박잎 넘넘 맛있었어, 또 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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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UT-30]일단 멈춤

재원에게는 간단하게 말했었는데

내 생각도 정리할 겸 다시 써본다

 

6월말까지 촬영을 일단 멈춘다

지금까지 촬영한 내용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편집할 부분을 골라놓는 작업이 더 시급하다

자주, 많이, 열심히 찍는다고 해서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획의도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면

지금 촬영해놓은 것 만으로 편집을 할 수도 있다

지금은 연출자가 편집방향을 정하는 일에 집중해야한다

그런 다음

꼭 들어가야하는데 놓친 장면이나

앞으로 꼭 찍었으면 하는 장면들을 정리해서

보충촬영을 하면 될 것이다

 

 



특히 향촌투쟁 부분은 따로 제작할 필요가 있는데

참세상에 올리건 KBS 열린채널에 제출하게 되건

재원이가 이 부분을 책임졌으면 좋겠다

재원이는 자꾸 나보고 편집을 하라고 하는데

내가 지금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이기도 하지만

향촌상황을 더 잘알고 직접 촬영도 했던 재원이가

편집을 하는 게 맞다고 본다

할 수 있다, 충분히 할 수 있다

 

재원이는 이미 나보다 먼저 장편 다큐멘터리를 만든 경험이 있고

그런데도 아직 자기 작품을 공개한 적이 없으니까

이번에 실력발휘를 제대로 해주기를 바란다

내가 구성이나 대본작업에 힘을 보탤테니 그 점은 안심을 하시오

 

가장 큰 문제는 제작비다

2006년 1월부터 지금까지 고정수입은

3월부터 매달 맏은 강사료 57만원이 전부였고

나머지는 그 때 그 때 아르바이트로 대충 때웠는데

지난 5월부터는 알바할 시간이 없어서 못하고 있다

강의도 6월말에는 끝난다

 

같이 작업하는 재원에게 하루 얼마씩

일당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인건비를 충당했는데

고생하는 것에 비해 그 액수가 너무 적었다

그런데 이제 그것마저도 지급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하반기에 여러 제작지원에 다시 응모한다고 하더라도

이 작품이 선정될 가능성이 거의 없고 (왜 그런지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른다)

받는다고 하더라도 10월 이후가 될 것이므로

6월부터 9월까지 넉달동안 제작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작업을 계속할 수 없다

 

몸이 자꾸 아픈 건, 아마도 날마다

그 문제로 끙끙 앓다보니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암튼, 6월말까지는 몸을 쓰기보다 머리를 써야할 시기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바쁜 다리도 좀 접어놓고

생각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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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UT-29]촬영계획

 


[콘서트] 오후 7시 30분~10시

  •  최민식, 권해효, 오숙희, 윤도현 밴드, 전인권, 정태춘, 박은옥, 임정희, 꽃다지,
  •  박향미, 노래를찾는사람들, 오지총, 우리나라, 윈디시티, 세종문화회관 서울시예술단,
  •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
  • 시낭송: 백기완, 5인 집체시 낭송_송경동, 문동만, 손세실리아, 류외향, 이재웅
  • 영상

    • “들이 운다” : 노순택 영상사진슬라이드
    • “한미FTA, 진실과 거짓말” : 한미FTA 저지 독립영화실천단 영화인 대책위
    • “오월 그리고 2006년 5월” : 영상 밥

  • 풍물: 풍물패 터울림, 풍물굿패 살판, 인천노동자풍물패 더늠, 수원풍물패 삶터


보고싶은 사람들이 많이 온다

그동안 인천에서 만났던 사람들

오래전 안성에서, 서울에서 인연이 닿았던 사람들

 

촬영, 잘하고 싶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끼어들 틈이 있을랑가 모르겠지만

재원이가 옆에 있다면 다 잘될거야

 

* 5월 7일날 블로그에 썼던 글-한번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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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UT-28]향촌에서 불타는 필름을

상영회 후기, 클릭 :향촌 상영회

 

 

향촌에서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를 봤다

밝고 넓고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과 같이 보던 거랑

전혀 다르다

한 장면 한 장면에 숨을 죽이다가 웃다가 탄식하다가

훌쩍거리는 사람들 틈속에서

모로 누워 멍하니 화면을 들여다 봤다

 

조금 부끄러웠던 거 같다

 

향촌사람들에 관한 세번째 동영상 종편을 계속 못하고 있다

그냥 딱 앉아서 하면 되는 것인데

마음을 잡지 못하는 것이다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몸이 계속 아프기도 하고

고민해야할 일이 넘치기도 하지만

거기, 향촌, 에서 '나'는 참 작다

이걸 편집해서 올리는 것으로 커지려고 하는 게 아닌가

누군가에게 기대감을 주는 게 아닌가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조금 멀어지긴 했다

하지만 조금 다가가면 될 것이다

이것이 겨우 내가 넘어지는 두번째 문턱인가 보다

그냥, 문턱이다, 하고 일어서야지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건 건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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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UT-27]어제 향촌

인천시 남동구청에선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으니 '나가라'는 뜻을 분명히 밝혔으나

촐거대책위 건물에 모여사는 향촌 사람들은

순번대로 규찰을 서고 밥을 해먹으면서

아이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고 있다

대추리 마을이 언뜻 스쳐지나간다

대추리도 향촌도 국가권력에 대해 불복종투쟁 중

 

철대위 위원장은 쉰 목소리가 조금 풀렸고

이날따라 마음이 좀 안정되셨는지 조단조단 말씀도 많이 하시고

애 키우는 언니들은 바느질하랴 청소하랴 식사준비하랴 분주하고

와중에 재원이가 들이대는 카메라를 이제는 밥솥 보듯이 하고

애들은 재원이나 나나 향미에게 다 '선생님!' 했다가 '이모!' 했다가

무릎에 올라앉거나 손을 비비거나 눈을 들여다보거나 하고

"향미 선생님이랑 새로 온 이모(나루)랑 친구예요? 친언니예요?"

"누가 동생이고 누가 언니예요?"

그런 걸 궁금해하고

아이들에게 '난타'를 가르치는 향미는

가르친다기 보다 아이들과 같이 즐겁게 노는 방법을 이미 삼만갑자 터득한 것 같고

먼저 노래를 불러주고

한 소절씩 따라하게 하고

따라할 때 아이들이 하나씩 돌아가며 직접 기타를 쳐보게 하고

코드를 잡아주면서 아이들이 기타치는 손가락을 들여다보는 향미 눈...

노래 테잎을 개미갬이 틀면

노래에 맞춰서 향미가 먼저 통을 두드려 보고

노래에 맞는 박자를 먼저 보여주고

아이들이 한 소절씩 박자에 맞춰 통을 두드리고

북채를 들고 통을 두드리다가 싫증이 난 아이들은

"선생님, 이제 '만들기 수업'해요!"라고 하고

그러자 개구리송에 맞춰 진도를 나가던 향미는

색종이를 꺼내는 아이들에게

"그래라, 이쁘게 만들어서 창문에 붙이자"

그러고 말고

"나도 가끔 헷갈린다니까, 노래도 배우고 난타도 배우고

 기타도 배우고 그러다가 색종이 접기도 하고..."

나는 옆에서 낄낄 웃다가

"종합 엔터테인먼트구만, 멀티미디어 선물세트네"

그러면서 철푸덕 앉아서 색종이를 같이 만지고

은주 엄마가 창 밖에서 수업을 지켜보다가

저녁 먹으러 가자고 부르시고

나는 밥 얻어먹기가 어쩐지 죄송해서 좀 빼다가

결국 젤로 많이 챙겨먹어주시고

원주형은 저녁 먹으러 와서 '히야, 개밥 같지?' 이러면서 막 비벼서 우걱우걱 먹고

된장찌개와 상추와 어묵조림과 김치와 파절임과 미역줄기볶음에 나물까지...

눈물나게 맛있었다

 

어제 배운 노래 가사, 내 주제가 같다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뒷다리가 쏘옥 앞다리가 쏘옥

팔딱팔딱 개구리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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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UT-26]요며칠

4월 30일, 공연 마지막날

공연이 끝나고 기념촬영을 할 때 간신히 도착

마지막 공연, 꼭 보고 싶었는데

7시인줄 알고 있다가 4시라는 걸 뒤늦게 알고(바보잖아!)

헐레벌떡 뛰어갔으나 상황 종료...할말없음...

뒤풀이 자리에서 주인공들의 지인을 많이 만났고

공연 내용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가 다양하게 이어졌다

카메라 내려놓고 그냥

관객으로, 친구로 술 한잔 해야한다는 마음과

이런 이야기를 놓치면 후회할 거라는 직업병 사이에서

계속 갈등했던 밤

기획자 영택씨 집에서 새벽까지 떠들다가

5월 1일, 낮에 간신히 귀가

지하철 창 밖으로 봄이 익을대로 익어서

여름으로 달려가는 광경을 물끄러미 본다

 

5월 2일,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에 제출할 단편을 완성 (동영상-난자, 그를 말하다)

5월 3일, 대추리에서 충격적인 문자가 왔고 (관련기사 클릭-참세상1)

            국방부 앞에서 군부대 투입을 저지하려는 촛불집회가 열렸고 (관련-참세상2)

5월 4일, 평택에 기어이 군부대가 투입되었고  (관련글 - 참세상3 )

5월 5일, 연대하러온 시민, 학생들이 토끼몰이를 당했다 (관련글-참세상4)

5월 6일, 군인 경찰의 피해사실만 부각한 언론들 (관련글-일단 두 놈)

 

그리고

5월 7일...W 촬영테잎을 보고 싶다, 편집하고 싶다

평택에 가고 집회에 참여하고 관련 동영상을 만들거나 글쓰는 일을 해야하고 할 수 있는데

프로젝트 후반작업과 맞물려서 W에 대한 작업이 계속 미뤄지는 상황

그래서 또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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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UT-25]기획안

앞부분만 공개

등장인물 소개와 세부구성안 등은 거의 소설에 가깝기 때문에

민망해서 도저히 못올리겠고 기획의도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제작지원 기획서에 관한한 엄청나게 무식한 나에게

다양한 조언과  도움을 주신 이마리오 감독에게 감사를!



 

s. H. o. U. t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



기획구성안





내몰고 저버리고 파괴하는 이 세상에서

생산하고 품고 떠받치는 질펀한 땅의 여성성에 대해,

끝없이 밑바닥으로 내몰린 그 작고 약하고 낮은 자들의 예기치 않은 아름다움에 대해,

그리고 스스로 가장 낮은 곳에 있으려 함으로써 얻게 되는

영혼의 위안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W 홈페이지 에서-




1. 기획의도



예술하는 거 쉽지 않다.

화려하게 포장된 상업예술도 아무나 하기 힘들지만, 민주주의와 민중의 삶과 더 나은 세상에 대해 표현하는 예술은 더 고단하다. 그런데 여기 그런 예술을 10년 넘게 맨발로 땀 흘리며 체득하다 모인 사람들이 있다. 누구보다 열심히 민중문화예술운동에 앞장 섰다가 연애, 결혼, 출산, 육아의 고비를 넘기면서 가족과 헤어지거나 소통 불능의 아픔을 겪어야했던 그들이 이제는 ‘여성’의 눈과 입으로 우리네 팍팍한 삶을 이야기한다.


  가끔 우리는 되묻곤 한다.

한국 현대사의 빛과 그림자를 한꺼번에 안겨주었던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며 거리에서 광장에서 집회장에서 극장에서 그렇게나 멋지게 발언하고 분노하고 활동하고 노래하던 그 많던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왜 아무도 보이지 않을까. 그 질문의 이면에는 ‘나’, 그리고 ‘당신’의 현재가 있다. 짧은 한 때, 과거의 나/당신은 그렇게 빛이 났으나 지금의 나/당신은 생존의 덫에 찢겨 나날이 누추해진다는 슬픈 자각이 그 질문 속에 있다. 그들을 닮고 싶어하거나 그들처럼 살아보려고 노력했던 내 동생들/당신의 후배들이 지금 ‘나’와 ‘당신’을 재회하기 위해 막막한 현실의 어느 언저리를 배회하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그녀들이 있다, 끈질기게 살아있다.

산다는 것은 체념을 배워가는 길이지만 체념할 수 없는 게 무엇인지 뚜렷해지는 길이기도 하다. 누구는 오로지 평범하게 살겠다고 다짐하며 대중들 틈에 숨어 한때 거리에 나섰던 제 발자국을 끊임없이 지우고, 누구는 한 때 동지였던 한 남자의 아내이자 그 남자의 아이를 낳은 엄마이자 그렇게 형성된 혈연가족의 바람막이가 되기 위해 기꺼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농락당하며 비굴한 생존경쟁을 떠맡을 때, [W]라는 이름을 걸고 모인 그녀들이 있다. 아직은 체념할 수 없어서, 체념해서도 안되고, 체념하고 싶지 않아서... 점점 더 가난해지고 점점 더 소외당하는 ‘민중’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기에 ‘더 나은 세상, 다른 세상’을 꿈꾸는 예술은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녀들이 있다.


다른 세상, 여성의 눈으로 상상한다.

스무살, 그들은 여자도 남자도 아니었다. 노동의 역사와 자본의 음모를 공부하고 분노할 때 그들은 그저 ‘운동권’이었다. 서른살, 그들은 의심했다. 대등하게 일한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늘 무언가를 준비하고 돌보고 뒷수습하면서 후방에 머무는 자신의 모습. 누군가 연애를 걸고 결혼을 권할 때 승락을 강요당하는 순간. 이제와서 ‘여자니까 여자노릇만 하라고?’ 그들은 억울했다. 그래서 여자가 되기 싫었다. 마흔을 앞둔 지금, 그들은 기꺼이 여자로 살아간다. 누구는 혼자 아이를 키우며, 누구는 날마다 시댁의 눈치를 살피며, 누구는 다시 혼자가 된 자신을 스스로 격려하며, 누구는 연극배우였다가 영화감독이 된 자신을 지지하며. 조금 느리고 조금 약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보다 못한 게 아니라는 걸, 오히려 누구보다 강하고 누구보다 오래 살아남는 법을 터득했다는 걸 깨달았기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

2005년 12월 29일, [W]는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지켰다. 지켰다고 표현해야 한다. 스스로와의 약속, 그녀들끼리 했던 약속, 올 지 안 올 지 알 수 없었던 관객들과의 약속을 무대위에서 몸으로 보여주었으므로. 이어서 2006년 2월, 인천시 남동구 만수동 환경개선지구 향촌마을에서 2년동안 투쟁해온 철거민들과 연대한다. 이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98주년을 맞아 울산 현대차 노동조합의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주저앉지 마라-박향미의 솔로음반 [붙어]중에서’를 부른다. 4월 8일, W의 멤버 박향미는 평택 미군기지확장이전 저지투쟁이 벌어지는 대추리에서 또 다른 약속을 한다. 끊임없이 당신들로부터 배우겠다고, 많이 배워서 더 힘차게 같이 싸우겠다고. 그리고 4월 26일, 이들은 첫 무대였던 극장에서 닷새동안 관객을 만난다. 더 촘촘하고 더 예민하게, 보일 듯 말 듯 서서히 움을 트다가 와락 푸른 잎을 쏟아내는 봄의 나무들처럼, 집요한 성장의 아름다움을 선보이기 위해서.

 

 


2. 제작방향


시간의 교차, 현재는 과거를 성찰하며 미래를 확보한다

이란희, 송연수, 최금예, 박향미는 지난 20년의 단련이 현재를 낳은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과거는 그저 빛나던 시절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미래로 이어지는 기반이다. [W]라는 이름으로 다시 모일 수 있었던 것도 비슷한 시기에 같은 무대에서 만났던 인연에서 비롯된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전국 각지의 집회장에서 감동을 안겨줬던 집체극의 경험은, 이들이 지금 연극과 음악, 영화의 장르혼합을 무리없이 시도하게 하는 원형이 된다.


때문에 영화속에서 시점은 80년대 후반과 2006년 사이를 교차한다. 이 때 시점 이동의 장치는 그 때 그 때 즐겨 불렀던 민중가요, 당시의 극단과 노래패가 보관하는 사진들, 유인물과 손으로 작성하던 악보, 공연 팜플렛, 그리고 투쟁과 공연을 동시에 기록했던 ‘비디오기록’이다. 주인공들의 기억과 증언 사이로 언뜻 언뜻 삽입될 이 자료들은 W멤버들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였던 개인 역사의 반영이자, 한국 현대사에서 보수와 진보 그 누구도 명쾌하게 정리하지 못한 87년 이후의 역사를 다시한번 곰곰히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감독과 그녀들, 우리가 되다

감독은 이 영화를 기획하고 촬영하는 동안 W의 모든 성원들에게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20대에 비슷한 경험을 가진 채 결혼제도에 편입했다가 일탈한 감독은,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박향미, 시댁과 남편과 아이를 돌보며 시간을 짜내 자기 세계를 간신히 구축해야하는 이란희와 최금예, 홀로 살아가는 송연수에게서 자신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포착한다.


이 영화에서 감독이 주목해야할 문제는, [w]라는 프로젝트 문화예술집단이 현재 이 사회의 민중문화예술운동이나 진보진영 내에서 어떤 존재가치를 지니는지 증명하는 게 아니다.

 

박향미, 이란희, 송연수, 최금예가 함께 활동하게 된 계기-여성으로서의 정체성 확인’, 그 계기를 ‘구체화하는 과정-공연 기획과 연습’, ‘공연장에서 이들과 여성관객들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지점’ , 그리고 하나의 공연을 평가한 뒤 다음 공연을 기획할 때 ‘일상에서 이들의 발목을 잡는 다양한 덫을 어떻게 돌파하고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영화가 제작되는 동안 감독은 공연의 내용과 이들의 활동방향에 조금씩 개입하게 되고 자신도 이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춤출 수 있는 날을 희망하게 된다.

 

그것은 감독 개인의 소망을 넘어서 이 영화를 보는 모든 여성들, 혹은 이 영화에 공감하는 모든 관객들의 희망과도 일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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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UT-24]제목, 제목...

5월말에 배너를 슬슬 뿌리면서 이 블로그를 알리고

6월말에 웹자보 1, 2, 3을 적극 올리면서 예고편을 링크할 계획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제목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되는데

'노래하는 그녀들' 보다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라고 하면 어떨까

그래서 배너, 혹은 웹자보에 쓸 제목 이미지 시안을 몇 개...

폰트나 크기는 디자이너와 의논해서 더 멋지구리하게 변신할 것임

아래 네 가지 보기는 아주 아주 기초적인 아이디어임



 

1)

SHOUT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

 

2)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 - SHOUT

 

3)

  s. H. O. U. t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

 

4)

우리의 노래를 들어라

     S.H.O.U.T 

 

일단 이 정도...

관련자들, 혹은 방문객들

투표 부탁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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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UT-23]어떻게 구성할까

쇼킹 패밀리 뒤풀이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줄줄이 이어갈 때

향미가 '나루 언니가 저를 찍고 있는데 왜 찍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해서

충격받았다...^^;;;;

 

그래서 다같이 왕창 술 한번 먹고 엎어지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내가 늘 허겁지겁 살아와서 기회를 만들지 못했으니 할말은 없다

반성하면서 지금이라도 몇 자 적어놔야겠다



 

1. 이 나라에서 예술하는 거 쉽지 않다

   그것도 여자들이, 게다가 돈도 없도 빽도 없는 여자들이 모여서

   같이 예술을 한다는 건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때문에 W라는 모임은 이 사회에서 아주 소중한 존재다

   이런 사람들을 안찍으면 대체 뭘 찍어?

 

2. 처음에 나는 가수 박향미를 주목했다

   개인적인 인연도 있었지만 그녀가 억척스럽게 활동하는 모습이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분명히 자극이 되리라고 믿었다

   언젠가 '일다'에서 '그 많던 여자선배들은 다 어디로 갔나'고 되묻는 요지의 기사를 읽었는데

   80년대에서 90년대를 거치는 동안 앞장서서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여성들이

   연애와 결혼, 출산과 육아로 인해 서서히 퇴장하고 이제는 만날 길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길을 가던 동지를 만나 함께 생활하면서 남편은 계속 그 일을 하고 있는데

   자신은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가족의 틀내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느라 분주하고

   때로는 돈 못버는 남편을 대신해서 '실질적 가장'으로 일하느라 사라진 그녀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다른 세상으로 옮겨간 많은 여자들 중에 내가 있었고

   내가 좋아하던 많은 선배들과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따로 몸따로 힘겹게 살아가는 숱한 나/여자들과 달리

   여전히, 꾸준히, 아직도! 그 길에서 활동하는 여자들이 있다는 건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 놀라운 현장에 가수 박향미가 있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 말이다

  

   어떤 사람은 '그래도 그녀는 도와주는 사람들도 많고 그렇게 힘든 상황은 아니야'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야, 누가 연영석 다큐한다니까 너는 박향미냐?'라고 해서 낙담하기도 했지만

   나는 남들이 누구나 공인하는

   '진흙(최악의 상황?)에서 피어나는 한떨기 연꽃(그래서 더 감동적인 결말?)'에는 관심없다

   사람은 누구나 힘겨운 상황에 놓여있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지옥을 딛고 서 있다

   그렇기 때문에 뉴스에 나옴직한, 인간극장에 나옴직한, 눈이 확 떠지는 획기적인 이야기는

   거기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가서 찍으면 되겠고

   나는 가수 박향미를 보고 눈이 확 떠졌으니 이걸 열심히 찍으면 되는 일이다

   분명히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나면 당신도 왜 내가 왜 그녀를 주목했는지 알게 될거다

   기다려 보시라

 

3. 그런데 박향미를 만나보니 W라는 모임을 알게 되었던 것이고

    그 이후의 상황은 제작일지를 하나 하나 읽어보면서 대충 감을 잡으면 된다

    내가 처음 박향미를 주목했던 그 이유, 여전히 그 길을 가는 여자들이

    W에 여럿 모여있었고 그들 모두가 너무나 이뻤다

    그들의 고민과 활동하는 모습과 살아가는 이야기가 다 좋았다

    그래서 박향미와 W, W와 박향미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려고 한다

    사실 나는 아직 박향미가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못했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할만한 여러 가지 시시콜콜한 것들을 물어보지도 않았다

    보이는 대로 찍고 시간이 허락하면 만났을 뿐이다

    그러니 금례나 연수에 대해서는 정말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이 사람들에게 '내가 지금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소'라고 해놓고

    별로 해놓은 게 없어서 좀 미안하긴 하지만 초조하진 않다

    내가 그들을 좋아하고, 그들이 나를 싫어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됐다

    큰 기대없이 큰 실망없이 자꾸 만나다보면 뭔가 결과가 나오겠지, 그렇게 생각한다

 

4. 제작비지원을 아직 받지 못했고 후원자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돈을 벌어가며 다큐를 만들려니 늘 시간에 쫓긴다

   공연마치고 뒤풀이하는 자리에서 한 시간 이상 같이 앉아있어보질 못했다

   슬프다, 엄청 슬프다

   아르바이트라는 것을 올 2월에는 다 정리해버리고 인천에 이사갈 생각도 있었는데

   3월부터 덜컥 고정적인 일거리를 맡게 되는 바람에 그것도 물 건너 갔다

   게다가 감독이라는 사람이 프로젝트니 뭐니 해서 자꾸 일을 벌이는 바람에

   날마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다행히 프로젝트는 4월말이면 끝난다

   5월, 그 한달만이라도 W 멤버들한테 딱 달라붙어 있으려고 생각해보니

   중요한 공연은 4월말로 확정되었고 정들면 곧 이별이겠다, 난감하다

 

5. 우쨋든, 3월 울산공연 이후 사진도 동영상도 못올리고 좌충우돌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카메라는 돌아갈 것이고 다큐멘터리는 결국 완성될 것이다

    어떡하든 결론을 내보려고 하니까 4월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한번

    맘 편하게 밤늦도록 이야기 나눌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더 늦어지기 전에, 더 늦어져서 누군가가 또 내게 '근데 왜 찍어요?'라고 묻기 전에...

    만나자, 인천도 좋고 서울도 좋으니 새벽이 올때까지 떠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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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UT-22]명함

재원에게 명함을 전달했다

너무 늦었나

그래도 그걸 잊지 않고 만들어서 전해준 것만으로도

스스로 기특해하면서(내가 몬살아...)

 

열심히 하자, 재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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